진정한 낚시꾼들은 작은 물고기가 잡히면 그냥 다시 풀어준다. 지금 당장은 놓아주는 것이 손해인 것 같지만, 그들은 그 다음을 내다보는 것이다. 인도네시아 롬복해에서 참치잡이를 하며 살아가는 이들 역시 진정한 낚시꾼의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사진 함정민(EBS<세계테마기행>PD)

눈앞에 이익이 아닌 미래를 바라보는 삶

안전하고 편한 것만을 원한다면 인도네시아 술라웨시 섬을 선택할 수 있었을까? 나에게 있어 그곳의 촬영은 잊지 못할 고생이자 다시는 도전하지 못할 젊은 날의 특권이다. 술라웨시 섬에서의 여러 촬영 중 다시 한 번 경험하라면 백만 번 고민해야 할 촬영 중 하나로 꼽히는 것이 바로 참치잡이 동행기다.

국내에서도 해외에서도 고깃배는 많이 타봤지만 롬복해 참치잡이 배는 다시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그러나 너무나도 기억에 많이 남는 촬영이다. 인도네시아 술라웨시는 참치잡이로 유명한데 그 방법이 전통방식을 고수한다고 한다.

‘참치 잡는 것이 거기서 거기겠지’ ‘큰 참치 잡았으면 좋겠다’ 생각하며 참치잡이 배를 얻어 타기로 했다. 저녁에 출발한다고 해서 이른 저녁을 먹고 바닷가로 나가니 어둠속에 조그만 배가 보인다. ‘설마 저배를 타진 않겠지…’ 

사진 함정민(EBS<세계테마기행>PD)

거대한 참치를 만나기 위한 준비

“먼저 작은 배를 타고 가서 큰 배로 옮겨 탈거예요. 9시간 정도 타고 나가야 합니다”

그럼 그렇지 이렇게 작은 배를 타고 참치를 잡진 않겠지 안심하고 폴짝 뛰어 배를 타는데
그대로 배가 뒤집히는 줄 알았다. 배가 워낙 폭이 좁아 순간적으로 중심을 잃었기 때문이다. 통나무를 그대로 파낸 것 같은 작은배는 가볍고 이동하는데 속도는 빠르지만 익숙하지 않은 이방인에게는 위험해 보일 수밖에 없다. 다리를 편하게 펴지도 못하고 무릎을 꿇은 채 ‘얼음’이 되어 이동할 수밖에 없다.

해변에서 150m쯤 떨어진 곳에 참치잡이 배가 기다리고 있다. 밤에 물이 빠져 해변의 수심이 얕아 좀 떨어진 곳에 배를 대놓은 것이다. 밤바다는 어찌나 물이 맑은지 달빛에 물속이 다 들여다보인다. 큰배로 다가가는 3분도 채 안되는 짧은 시간동안 배가 뒤집힐까봐 정말 무서웠다.

사진 함정민(EBS<세계테마기행>PD)
“움직이지마, 움직이지마!”

무사히 큰 배로 옮겨 타고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오늘의 항해 대장인 선장님께 인사먼저!

“감사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참치 많이 잡게 해주세요.”

1박 2일의 항해에 함께 할 선원들이 속속 도착한다. 시계를 보니 저녁 7시밖에 되질 않았다. 사방이 깜깜하니 보름달이 더욱 휘영청 밝다. 가만히 달을 올려다보고 있으니 순간 드는 생각, ‘어라, 우리나라에서는 보름달이 뜰 때는 낚시를 나가지 않는다고 했던 거 같은데 아닌가?’ 참치가 많이 잡히는 지점까지, 밤바다를 꼬박 9시간 동안 달려야 한다는데 뭐 배도 크고 별로 걱정은 안되었다. 이때까지는…. 드디어 요란하게 시동을 걸고 출발, 열대바다의 습한 기운도 시원하게 느껴지고 산뜻하다. 출발한지 얼마 안됐는데 무슨 일인지, 선원들이 부산하게 바다를 둘러보기 시작한다. ‘뭐야 벌써 도착한거야?’ ‘9시간이 아니라 9분이야?’

이곳 어부들은 눈에 레이저내시경이라도 달렸는지 조그만 랜턴으로 깜깜한 바다를 잘도 노려본다. 그러던 중, 인근에서 커다란 그물 하나를 찾아낸다. 그물 안에 작은 물고기들이 가득이다. 선원들은 그 물고기들을 뜰채로 떠서 배에 옮겨 싣는다. 참치잡이 배에서 이 작은물고기들은 왜 잡은 걸까 궁금해졌다.

“루빠라는 물고기에요. 참치 미끼로 쓸 거예요”

참치가 가장 좋아한다는 루빠. 그런데 참치는 죽은 고기는 먹지 않는단다. 참치의 까다로운 식성을 고려해 산 것과 죽은 것으로 분류한다. 열대지방이라도 밤바다는 춥다. 배 앞에 앉아 밤바다를 즐기고 있는데 어디선가 향긋한 커피향이 난다. 

“커피 드세요” “감사합니다”

졸음도 쫓을 겸, 추위도 녹일 겸, 밤새 달려야 하는 참치잡이 배 선원들에게 커피는 상비식품이다. 커피를 달고 사는 나에게는 특히 더 반가울 수밖에 없다. 한 모금 꿀꺽 넘기는데 진짜… 진짜… 달다. 커피라기보다는 단물, 설탕물에 가깝다. 아무래도 더운 기후에 힘을 쓰는 직업이다 보니 열량이 많이 필요해서 설탕을 많이 넣은 것 같다. 배에서 마신다고 플라스틱 커피잔에는 뚜껑이 있다. 흔들리는 배에서 뚜껑 잃어버릴까봐 끈으로 연결해 놨다. 섬세함이 돋보이는 커피 잔이다.

밤바다를 보는 것도 지루해져 배 탐방에 나섰다. 거의 만 하루를 배에서 보내야 하기 때문에, 배 한 구석엔 간단한 부엌살림도 있다. 조리사 아저씨가 선원 수에 맞춰 쌀을 씻어 밥을 짓는데, 휴대용 가스렌지도 아니고 장작을 지펴서 짓는다. 참치 미끼에서 탈락한 죽은 루빠는 선원들 차지다. 나무 꼬챙이에 줄줄이 꿰어서 구워 먹는다. 
사진 함정민(EBS<세계테마기행>PD)
“통째로 먹어요?”

“생선 대가리와 내장은 떼고 드세요”

금방 구운 것이라 손가락이 데일 정도로 뜨거운데도 먹을 것에 대한 집념은 다치는 것도 상관 안한다. 조그만 물고기여서 먹을 게 뭐가 있을까 했는데 꽤 살도 있고 짭짤하고 맛있다. 루빠는 밥반찬으로 기름에 자글자글 튀겨서도 먹는다. 고기를 굽고 튀기고 하는 동안 밥이 다 지어졌다. 바닥에 빙 둘러 앉아 밤참을 먹은 다음엔, 우선 아무데나 누워서 한잠 자두어야 한다. 아침 4~5시나 되어야 참치잡이 명당에 도착하기 때문이다. 어디서 잘까 잠자리를 찾아 방황하는데 갑자기 기관사 아저씨가 나를 부른다. 이럴수가 감동이다. 

유일하게 있는 선실 겸 항해실(운전실)에 매트리스 비슷한 것도 갖다놓고 누구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베개도 갖다놓았다. 배의 유일한 여자라고 대접을 해준다. 촬영하면서 생전 여자라고 대접받은 적 없었는데 눈물이 나려고 한다. 뿌듯한 가슴을 끌어안고 자리에 누웠다. 그런데 ‘아 덥다… 시끄럽다’ 기관실이 바로 붙어있어서 귀가 떨어져 나갈 것 같다. 게다가 공기가 통하질 않아 찜질방이다. 엔진에서 올라오는 기름 냄새와 소음, 그리고 열기. 배멀미를 할 수 있는 필요충분조건을 다 갖추었다.

이제부터는 울렁울렁 물속에서 수영하는 것 같다. 이리 누웠다가 저리 누웠다가 이러다 매트리스에 그대로 실례를 할 것 같아 밖으로 뛰쳐나오니 다들 자리를 잡고 잘도 주무신다. 그 가운데서 얼굴이 누렇게 뜬 채 촬영감독이 일어섰다.

“괜찮아?” “죽을 것 같아요”

웬만한 상황에서도 ‘아프다’ ‘죽겠다’라는 소리를 안하는 이 감독이 이런 소리를 하다니 힘든 상황은 상황이다. 파도는 더 심해지고 배는 이리 저리 추풍낙엽처럼 흔들린다. 머리가 깨질 것 같다. 밤새 파도와 싸움을 하고나니 어느새 희뿌연 하게 날이 밝아오기 시작한다.
사진 함정민(EBS<세계테마기행>PD)
하늘에서 쏟아지는 참치떼

새벽 6시.11시간이나 달려온 것이다. 아저씨들이 선실 지붕에 올라 바다를 살피고 있다. 내가 보기엔 그 바다가 그 바다인 것 같은데 뭔가 다른가 보다. 참치떼의 기척을 살피느라 배 앞머리에도 선원들이 앉아 있다. 어젯밤엔 어두워서 잘 몰랐는데 폭이 한 뼘 조금 넘는 자리에 걸터앉아 계신다. 파도에 배도 엄청 흔들리는데 보는 나는 그대로 바다에 빠질까 걱정이 되지만 정작 그들은 아무렇지 않아 보인다.

참치잡이에 쓰는 낚싯대도 그냥 가늘고 긴 나무에 달랑 고리 하나 달려 있는 게 전부다. 이걸로 참치를 잡겠다니…. 잠에서 깬 선원들이 하나둘 정해진 자리를 찾아 간다. 이제 참치를 잡을 건가 보다. 나름 긴장하고 촬영감독과 준비를 했다. 

“참치가 걸리면 다들 소리를 지를꺼야. 그러면 그때 이 감독은 참치를 찍어. 난 어부들의 표정을 찍을게”

물고기를 잡는 신이라면 질리도록 찍어봤으니 작전도 완벽했다. 거대한 참치가 올라오길 기대하며 바다를 노려보고 있는데, 갑자기 한 아저씨가 미끼로 싣고 온 루빠를 바다에 휙휙 뿌린다. 루빠를 뿌리자마자 눈앞에 놀라운 풍경이 펼쳐지기 시작한다.

‘세상에 이런 일이…’ 아저씨들이 낚시대를 담그자마자 참치를 걷어 올리고 있다. 먹이를 먹기 위해 참치들이 바다 위로 튀어 오르는 것이 그야말로 참치들이 하늘에서 쉴 새 없이 떨어지는 상황이다. 참치 폭탄에 얻어맞지 않으려면 그저 구석에 얌전히 피해 있어야 한다. ‘으악’ 나와 촬영감독은 비명 지르느라 정신이 없고 발 옆에선 참치가 팔딱거리고, 하늘에서는 참치가 날아와서 나를 때린다.

거대한 참치를 긴장감 있게 잡을 것이라고 생각했지 이렇게 참치를 한 마리씩 걷어 올려 농구하듯이 던지는 것은 상상도 안 해봤고 어떤 영상에서도 본적 없다. 이곳에서 잡는 참치는 일명 ‘베이비 참치’라 부르는 참치 새끼가 아니라 종 자체가 아예 작은 것이다. 작다고는 하나 성인 남자 허벅지만하다.

그런 크기의 참치들이 쉴새없이 날아드니 정신혼이 나갈 수밖에. 게다가 다들 뒤도 안돌아보고 낚시대로 걷어 올려 참치를 한 지점에 명중해 던지는 솜씨도 놀랍기만 하다. 이 상황이 가장 난감한 건 촬영감독이다. 어부들의 얼굴을 찍기 위해 앞으로 가야 하는데 날라드는 참치로 인해 앞으로 가지도 못하고 진퇴양난이다.
사진 함정민(EBS<세계테마기행>PD)
“미치겠네, 갈수도 없고… 으악”

갑자기 날라든 참치에 얻어맞았다. 결국 좋은 그림을 찍기 위해 배 지붕위로 올라간다. 갑자기 비바람과 함께 파도가 거세지기 시작한다. 난 배 난간을 붙잡고 내 한 몸 건사하기도 힘든데, 심하게 요동치는 배위에서 참치잡이에 몰두한 어부들은 미동도 없다. 다들 참치를 잡고 있는 곳은 아까 본 폭이 작은 뱃머리에 쪼르르 10명의 어부들이 앉아 파도치는 바다에서 참치를 잡는 모습은 죽을때까지 잊지 못할 장면이다. 

이번에도 미끼를 뿌림과 동시에 참치 떼의 대공습이 시작된다. 도대체 이 배 밑에 얼마나 많은 참치 떼가 몰려와 있는 건지 물속에 들어가 보고 싶을 정도다. 낚시로 잡는다기보다 참치들이 몸을 날려 배로 뛰어드는 것만 같다. 참치들이 배로 뛰어드는 것도 신기한데 예상치 않은 일까지 벌어진다. 미끼를 엄청나게 뿌려대다 보니 작은 물고기를 먹고 사는 갈매기들까지 주변에 날아든 것이다. 호시탐탐, 미끼를 노리고 배회하던 갈매기 한마리가 그만 낚시 바늘에 걸려버렸다. 이런 일이 종종 있다고 한다.

참치는 여전히 씨가 마를 줄 모르고 잡히는 중인데 선장이 심각한 표정으로 바다를 살핀다.

“파도가 심해질 것 같아. 철수해야 될 것 같다” “철수하자”

폭풍이 오면 이대로 며칠이고 더 바다에 있어야 한단다. 비바람이 더 거세지기 전에 선원들은 서둘러 낚시도구들을 정리한다. 11시간 배를 타고 왔는데 낚시시간은 1시간 남짓. 배는 만선이다. 굵고 짧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보여준다. 배 탄 시간 빼고 허무하기도 하고 난감하다. 하지만 다들 만선의 기쁨에 다들 춥고 고된 것도 잊은 모양이다. 오늘 잡은 양은 700kg 정도. 평소보다 훨씬 많이 잡은 거라니 다들 기뻐할 만하다.

잡은 참치는 바로 준비해온 얼음을 깨서 저장고에 채워 넣는다. 다시 섬에 도착할 때까지 싱싱한 상태로 운반해야 한다. 작업이 얼추 마무리가 되어 갈 무렵, 파도가 더욱 심해진다. 금방이라도 배가 뒤집힐 것 같다. 이 거센 파도를 헤치며 다시 11시간 갈 생각을 하니 아득하다. 정말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일이 있지만 이렇게 고된 일이 있다는 걸 또 한 번 새삼 느끼게 된다.

사진 함정민(EBS<세계테마기행>PD)
밤새 배타고 와서 잠시 눈 붙이고 뱃머리에서 참치잡이 어부들. 아무리 단련이 됐다지만 육체적으로 고된 일임엔 분명한데 이들은 모두 한결같이 밝은 표정이다. 이들은 힘든 순간이 없었을까? 경력 30년의 바랑 아저씨는 딱 한번 위험한 적이 있었다고 말한다.

“낚시를 하면서 크게 다친 적은 없는데 돌아오는 길에 배의 엔진이 고장 나서 파도에 휩쓸려 하루 정도 무인도에 정박한 적이 있었죠”

생각만 해도 무서웠을 얘기를 웃으면서 이야기 하니 참 대단하다 싶다. 아직 속이 울렁거리는데 간판에서 참치회 파티가 열렸다. 한국 사람들이 참치회를 좋아한다는걸 선장님이 들으신 모양이다. 괜히 더 오바해서 좋아해야 할 것 같아 참치를 썰자마자 냉큼 하나 들어 입에 넣었다. ‘컥’ 이건 피맛만이 입안 가득 퍼졌다. 뱉지도 못하고 억지로 삼켰다. 그런데 참치를 썰던 아저씨가 다썰고 나서 참치를 물에 씻어낸다. 회전문이 아니다 보니 참치회가 피 범벅이 된 것이였고 난 그것도 모르고 바로 먹은 것이었다. 나를 제외하고 다른 사람들은 피가 씻긴 제대로 된 참치회를 먹었다. 한국에서부터 미리 챙겨온 초고추장을 내놓았다. 이곳 사람들은 참치회를 소금에 찍어먹는데 초고추장이 과연 아저씨들 입맛에 잘 맞을까?

“ 코리안 소스. 코리안 소스” “음~”

반응이 좋다. 계속 손이 가는걸 보니 맛이 괜찮은가 보다. ‘코리안 소스’에 매료된 아저씨는 혼자 맛보긴 아까웠는지 배를 운전하고 있는 어부 아저씨한테 배달까지 간다. 
난간에 매달려 낚시대로 잡아올리는 참치잡이를 보면서 내내 궁금한 것이 있었다. 큰 그물로 잡으면 쉽게 더 많이 잡을 수 있을 텐데 왜 낚시대를 사용할까? 선장님께 궁금증을 물어보니 당연한걸 묻는다는 듯 이상하게 쳐다보신다.

“만약 큰 배에서 그물을 가지고 참치를 잡으면 술라웨시의 참치는 씨가 마를 거에요. 우리 자식들도 참치를 잡을 수 있게 전통 참치 낚시 방법을 지킬 겁니다”

선장님도 내게 궁금한 것이 있으시단다. 

“나도 궁금한게 있어요”

“뭔데요”

“화장실 안가요? 어제 배 탈 때부터 봤는데 화장실 안 가는 것 같던데…”

선장님 은근히 뒷끝 있으시다. 어제 나무판으로 되어 있는 곳에서 앉아계시길래 정말 모르고 거기에서 무엇을 하시는지 물었더니 이렇게 복수하신다. 그곳이 화장실이였는지는 정말 몰랐다. 근데 생각해보니 어제 이후로 화장실을 안갔다. 내가 생각해도 이상하긴 하다. 흠.

사진 함정민(EBS<세계테마기행>PD)
섬에 거의 다 도착했을 무렵 부지런한 참치 도매상이 작은 보트를 몰고 다가와 싱싱한 참치를 잽싸게 선점해간다. 이렇게 직거래를 하면 서로 좋은 값에 사고 팔 수 있는 윈- 윈거래가 된다고 한다. 저녁때가 다 되어 배는 다시 섬으로 돌아왔다. 아저씨들과 헤어질 시간도 다가왔다. 선장님께서 갑자기 참치 두 마리를 씻으시더니 쑥 내민다. 

“이거 가져가서 먹도록 해요”

그렇게 세계를 돌아다녔어도 날 생선을 선물로 받기는 처음이다. 

“고맙습니다”

“인도네시아 여행 잘 하고 무사히 한국에 돌아가길 바래요”

뭐 하나 도움된 것도 없는데 이 따뜻한 마음들이 너무나 고맙다. 만 하루 만인데 굉장히 긴 항해를 하고 돌아온 기분이다. 바닷가엔 오늘밤 참치잡이에 나설 배들이 줄지어 있다. 분명 어제도 본 풍경인데 어제와는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육체적으로 너무 힘들어 다시 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힘들었던 롬복해 참치잡이배. 단 하루의 동행이었지만 거친 바다와 바다 사람들에게서 새로운 세상을 새롭게 배우고 간다.

인도네시아는 1만 개가 넘는 섬들로 이루어져 있어 관광지로 알려진 곳 이외에는 미지의 공간으로 남아있다. 그 중 술라웨시 섬도 잘 알려지지 않은 곳 중 하나다. 낯선 이들에게는 두려움의 대상인 화산을 자신들의 삶 안으로 끌어들여 공존하며 살아가고 있는 또다른 사람들의 이야기.

인도네시아 미지의 섬 ‘술라웨시섬’

‘남들이 다 찍는 다큐멘터리는 찍지 말자’ ‘남들이 다 생각하는 다큐멘터리는 만들지 말자’ ‘오르지 못할 나무는 찍으면서 올라가자’ 내가 이 일을 시작하면서 스스로 다짐하고 있는 신조다. 나의 신조를 다짐하며 다시한번 선택한 나라는 바로 1만 개가 넘는 섬들로 이루어진 세계 최대의 도서(島嶼)국가 인도네시아다 .

‘많은 섬들의 나라’란 뜻의 ‘누산타라(Nusantara)'라고도 부르는 그 수많은 섬엔 2억 명이 넘는 인구가 각기 다양한 풍습을 이어가며 살고 있다. 그동안 인도네시아를 4번 방문하고 촬영했으나 수도인 자카르타와 근교일대인지라 항상 아쉬움 속에 돌아와야 했다. 내가 늘 생각하는 신조와 맞지 않았기에 항상 인도네시아는 무언가 부족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이번 촬영은 좀 달랐다. 천가지 자연이 살아 숨쉰다는 인도네시아 중앙부에 위치한 술라웨시 (Sulawesi)섬. 가는 길이 만만치 않아 더욱 나의 기대감은 컸다. 힘들게 가는 곳은 언제나 최고의 장면을 만들어줬기 때문에.
화산을 삶의 터전으로 삼은 사람들

한국에서 인도네시아 자카르타까지 7시간, 자카르타에서 술라웨시 북쪽 끝에 위치한 마나도(Manado)까지 7시간, 총 14시간의 거리는 절로 한숨이 나오게 한다. 우리의 목적지인 마나도는 술라웨시의 주도인 유서 깊은 항구도시다. 특히 다이버 마니아들에게 잘 알려진 곳으로, 마나도 앞바다에 위치한 부나켄(Bunaken)은 세계에서 가장 잘 보존된 열대바다라고 한다. 굳이 다이버 장비를 착용하지 않아도 배위에서 수심 20m까지 보일 정도로 정말 물이 맑고 산호초들이 아름답다.

감탄사를 연발하며 수중카메라를 물속으로 집어넣고 연신 감동하고 있는데, 10분도 채 되지 않아 물 속 수중을 찍던 카메라 감독이 심각한 표정으로 헤엄쳐온다. 표정을 보니 불길한 예감이 든다. 

“물이 새” “뭔 물이 새? 어디? 카메라?”

절로 목소리 톤이 높아진다. 휴대하기 편한 비닐로 만들어진 하우징의 윗부분이 미세하게 찢어져 카메라로 물이 스며든 것이다. 민물도 아니고 소금기가 있는 바닷물은 카메라에 쥐약이다. 촬영 첫날부터 카메라가 고장이 나다니 걱정과 짜증이 뒤범벅되지만, 내 얼굴만 바라보고 있는 카메라 감독과 현지인 가이드에게 흔들리는 모습을 절대로 보이면 안되기에 나는 애써 표정을 감춘다. 

“이번 다큐 얼마나 대박나려고 첫날부터 카메라가 고장이지? 일단 보조 카메라 돌리고 젖은 카메라는 배터리 빼고 말려봅시다”

‘씨익’ 웃으며 말은 대범하게 했지만 속에선 천불이 난다.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석양은 붉게 타들어가고, 내 마음은 시커멓게 타들어간다. 이리 뒤집었다가 저리 뒤집었다가 밤새 카메라를 괴롭힌 탓일까? 아님 이번에도 좋은 다큐멘터리 만들라는 신의 축복일까? 새벽 6시에 조심스레 배터리를 넣고 전원을 켜자 ‘삐빅’ 거리며 작동되기 시작한다. 이럴 땐 정말 'Alleh'다!

첫날부터 터진 사고 때문에 우린 그 다음날이 돼서야 술라웨시 탐험을 시작했다. 그 첫 번째 촬영지는 웬만한 여행책에도 나와 있지 않은 현지인들만 아는 아주 멋진 장소, 여기저기 하얀 연기가 솟아나는 거대한 화산지대 ‘붓깃 카시(Bukit Kasih)’다. ‘불의 고리’라 불리는 환태평양 화산대에 위치한 인도네시아 전역엔 200개가 넘는 활화산이 있는데 붓깃 카시도 그 중 하나다. 발아래에선 뜨거운 화산이 요동하고 있고 땅이 움직이는게 느껴진다. 조금이라도 발을 헛디뎌 중심을 잡기 위해 돌이라도 잡을라치면 바위가 뜨겁다. 따뜻한 기후를 가진 곳에서, 더 따뜻한 온기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이 뜨거운 산위에 사람의 얼굴을 한 거대한 석상이 두 개 있다. 1991년 한 석공이 바위를 그대로 깎아 조각한 것이라는데, 마나도 지역의 조상신이란다. 우리로 치면 ‘환웅과 웅녀’랄까. 이렇게 산 중턱에 조상의 얼굴을 새겨 놓은 것은 다 이유가 있다. 언제 닥칠지 모르는 화산폭발의 재앙으로부터 마을을 보호해달라는 간절한 마음을 담은 것이다. 진짜로 조상신의 가호가 있었는지 5년 전 한 차례 폭발이 있었는데 다행히 마을 사람들은 단 한사람도 다친 사람이 없었단다. 

뜨거운 땅에 터를 잡고 사는 이곳 사람들은 뜨거운 환경을 알차게 활용하며 살고 있다. 건너편 숲 한가운데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것이 보인다. 시멘트로 벽을 만들어 놓은 것이 마치 온천 같다. 카메라 감독이 다가갈려고 하니 현지 가이드가 놀라서 뛰어온다. 

“노노 미스터 Lee 노노. only 마담 마담”

이곳은 여자들만의 공간이라고 한다. 빨래터 겸 목욕탕. 이곳 온천은 마을 여자들의 공동 빨래터 겸 공짜 목욕탕인 것이다. 이럴 땐 여자 피디인 것이 큰 장점이다. 카메라를 든 내가 민망 할 정도로 마을 여자들은 ‘훌러덩 훌러덩’ 옷을 벗고 온천으로 들어가 그동안 쌓인 빨래를 한다. 옷을 입고 있는 나를 보더니, 나에게도 옷 벗고 들어오란다. 동네 아줌마들이 모인 빨래터 겸 목욕탕이니 그 소란함과 수다가 거의 귀가 따가울 지경이다. 영어 한마디 통하지 않지만 몇 마디 배운 인도네시아 말로 즐거운 목욕탕 수다촬영을 끝마칠 수 있었다. 

이곳 사람들에게 화산은 단순이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다. 화산을 직접적으로 느껴본 적이 없어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화산재 덕분에 토양이 비옥해 다른 지역에 비해 농사가 잘된다고 한다. 또 하나 화산지역엔 금광이 많단다. 마나도 또한 인도네시아에서 알아주는 황금의 땅이라고. 

금광 촬영이야 세계를 돌아다니며 많이 했었고 별 관심이 없었는데, 여기 금 채취 방식이 다르다며 한번 가보자고 가이드가 설득한다. ‘다르다’ 이 한마디에 귀가 얇아진 나는 황금이 묻혀있는 노다지 땅 금광을 찾아갔다.

화산지대가 낳은 황금의 땅

사금(砂金)이나 토금(土金)이 아닌 석금(石金)을 채취하는 광산은 어떻게 생겼을까? 얼마나 올랐을까, 길도 제대로 나있지 않은 산길을 1시간 반쯤 걸었을까, 산중턱, 야자수 사이사이로 색색의 천막들이 들어앉아있는 것이 보인다. 금맥 있는 곳에 각각 땅굴을 파놓은 ‘루방’이라는 소규모 금광이다. 작은 산 하나에 루방이라는 작은 금광은 300개가 넘는다. 제법 규모가 큰 루방(금광)에 인사를 하고 얘기가 잘되어 촬영허가가 떨어졌다. 사실 이런 경우는 정말 운이 좋은 것이다. 전화나 이메일이 없으니 사전섭외도 할 수 없고, 현장에서 들은 정보로 찾아온 아이템을 촬영하게 해주다니…. 바로 10년 촬영을 같이 다닌 이용택 감독이 한마디 한다.

“복도 많은 피디” 정말 난 복이 많은 피디다.

광산 대장이 금광을 안내한다. 한참 광부들이 돌 더미 위에서 돌 고르는 작업에 한창이다. 그들의 작업을 보고 있자니 육안으로는 잘 보이지가 않는다. 원석이라면 황금색을 띄고 있어 바로 구분이 가능할 줄 알았는데 말이다.

“여기 보이죠? 이게 금이에요.”

손으로 금이 있다는 부위를 짚어주어도 어디가 금이 있다는 건지 당최 보이지가 않는다. 역시 어떤 일이든 전문가와 일반인의 눈은 다르다. 갑자기 천막 한쪽이 소란해진다. 급하게 다가가 보니 땅에 웬 구멍하나가 뚫어져 있다. 정말 땅굴이다. 

“줄에 묶어!” “줄이 밑바닥까지 닿게 해!”

정말 허술하게 보이는, 직접 깍은 것이 분명해 보이는 도르래로 짐작되는 물체를 돌리자 줄이 조금씩 감기면서 시커먼 땅굴에서 자루하나가 딸려 올라온다. 자루 안에 가득 든 것은 땅속에서 방금 캐낸 원석이다. 그렇다면 금광은 이 땅굴 밑에 있다는 것인가? 가이드를 통해 궁금한 것을 물어본다. 

“몇 미터나 되죠?” “지금 뚫려 있는 곳은 한 50m정도일거에요. 별로 깊지 않죠. 깊으면 800m 까지 가거든요”

50m라… 언뜻 보기에도 아주 좁아 보이고, 어두워서 과연 저기에서 어떻게 작업하는지 순간 궁금해졌다. 땅굴로 들어가는 통로는 아주 좁다. 보아하니 광산에서도 체구가 작은 사람이 굴속에 들어가는 일을 맡고 있다. 계속 내 눈을 피해 다른 것만 촬영하던 카메라 감독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무언의 압력을 보낸다. 결국 카메라 감독은 내려갈 준비를 한다.  처음 내려가는 우리에겐 특별히 줄 끝에 앉을 수 있는 나무토막까지 마련해줬다. 카메라 감독이 체구가 큰 편인데다 카메라에 조명까지 달고 있어서 굴을 통과하는게 쉽지가 않았다. 

“오늘 당신을 만나서 너무 기뻤어요. 난 당신이 진짜 금광에 들어 갈 줄은 몰랐어요. 왜냐하면 당신은 여자잖아요 내 친구들도 놀랐어요. 몸 건강히 그리고 당신이 찍고 싶은거 찍어가길 기도합니다. 건강하세요”  - 29살 샬디

“아아아… 아파 아파”

나무토막을 다리사이에 끼우고 내려가다 보니 남자로서 느끼는 고통이 심한가 보다. 괜히 더 미안해진다. 어쨌든 무사히 내려간 것 같다. 

“ 잘 내려갔어요?” “응, 근데 여기 서있을 곳이 없어”

뭔 소리야 이건. 서 있을 곳이 없다니?

“나 내려간다”

내가 내려간다고 하니 지켜보고 있던 광부들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여자잖아. 위험해요” “노 프라블럼. 오케이 오케이. 마이 바디 스몰 오케이 오케이”
말리는 광부아저씨들을 뒤로 하고 줄에 매달려 내려가는데 이건 결코 만만치가 않다. 줄은 내 몸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끊어질 것 같고, 바닥은 컴컴해 보이지 않고, 울퉁불퉁한 흙벽에 양쪽어깨는 계속 부딪치고…. 저 아래 카메라에 단 조명 불빛 하나가 보인다. 이제 다 내려 온건가 싶었는데, 이제 시작이다. 

카메라 감독은 한쪽에 간신히 비켜서 있고 그 옆으로 더 깊게 구멍이 나 있다. 어쩐지 50m가 생각보다 짧다고 생각했다. 토끼굴 같은 금광은 수직으로 10m 이상 들어와서 다시 옆으로 한사람만 간신히 들어갈 수 있는 구멍을 계속 뚫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곳이 800m가 되는 곳도 있다니 직접 땅굴 금광 안으로 들어와 있지만 이렇게 깊숙이 일하고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엉덩이는 끼고 어깨도 끼고 손에 든 작은 카메라는 이미 진흙으로 뒤범벅이다. 몸을 돌려 나갈 공간도 없어 돌아나갈 수도 없는 상황. 눈물을 머금고 앞으로 전진이다. 무릎으로 기어기어 가다 보니 망치소리가 들린다. 

땅굴 가장 안쪽에서 29살의 광부 샬디가 아무런 안전장비 하나 없이 손에 망치를 들고 돌을 깨고 있다. 어둠 속 빛 하나. 촬영 조명을 끄면 아무 것도 보이지 않을 만큼 깜깜하다. 그는 평소엔 헤드랜턴 하나에 의지해 일을 한다고 한다. 가만히 앉아 있을 뿐인데도 전혀 바람이 통하지 않아 온몸에 땀이 흥건해 질 정도다. 산소도 부족해서 비닐 산소관을 통해 공기를 공급받고 있었다. 도저히 생각도,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작업 환경이다. 많고 많은 일 중에 샬디는 왜 이렇게 힘든 일을 택했을까?

“저는 남자니까 일을 해야죠. 먹고 살기 위해 이 일을 시작했어요”

원래 농사일을 했던 샬디는 밥을 먹고 사는 일조차 힘들어지자 힘든 만큼 다른 직업에 비해 벌이가 나은 광부일을 택했다. 2교대로 26자루를 캐야하는 고된 노동. 하루에 13자루씩 돌을 쪼고 쪼아야 하는데 거기에 만만치 않은 일이 하나 더 있다. 25kg에 달하는 무거운 자루를 혼자서 들고, 다시 그 좁은 굴을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것이다. 한자루의 작업이 완성되면 자루를 묶을 수 있는 나무 막대에 묶어 지상과 수직으로 연결돼 있는 구멍으로 자루를 올려 보낸다. 이러한 작업을 그는 하루에 13번을 반복해야 일이 끝나는 것이다.

자루를 한번 올려 보낼 때마다 샬디도 지상으로 올라가 잠깐 휴식을 취하고 내려온다. 샬디가 맨발로 척척 오르던 길을 나는 자루처럼 도르래에 매달려 힘겹게 올라왔다. 땅굴 금광 속에 있었던 시간은 고작 1시간도 안되었지만 극과 극의 세상을 경험한 기분이다. 나의 뒤를 이어 카메라 감독이 무사히 올라왔다. 

“세상에서 촬영이 제일 쉬워요. 여기 일 너무 힘들어요”라는 말을 하며. 
오후 3시가 돼서야 천막 안 한쪽 구석에서 샬디가 늦은 점심을 먹는다. 괜히 촬영 때문에 점심이 늦어진건 아닌지 미안해졌다. 매운 고추와 감자를 끓인 우리식 찌개에 밥을 비벼먹다가 갑자기 한 숟가락 듬뿍 퍼서 내민다. 한입 받아먹으니 눈물 콧물이 날 정도로 맵다. 인도네시아에선 남자도 20살이면 거의 다 결혼을 한다는데 29살인 샬디는 아직 결혼을 못했다.

“돈 벌어서 집도 사고 좋은 여자 만나서 결혼도 하고 싶어요”

아주 소박한 샬디의 소원이 하루빨리 이루어지길 기도해본다. 

굴속 깊이 들어가는 광부들이나 밖에서 하루종일 돌을 깨부수면서 날카로운 돌에 피를 보는 광부들이나 만만한 노동이 없다. 금광 한번 촬영하느라 바닷물을 마시고 간신히 부활한 카메라는 또다시 만신창이가 되고 온몸이 진흙범벅이 되었지만 나의 심장은 미친듯이 뛰고 있다. 누구나 황금빛 인생을 꿈꾼다. 나 역시 도심의 기준으로 좀 더 많은 재물과 좀 더 많은 명예를 꿈꾸고 있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온몸으로 치열하게 사는 법을 가르쳐 준 이들과의 촬영을 통해 진정한 ‘황금빛 인생’이 어떤 것인지를 생각하게 된다. 남보다 더 열심히, 내 땀 흘려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것이야말로 ‘황금빛 인생’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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