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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노르웨이

노르웨이 오슬로 : 노르웨이 나라 전체가 국립공원… 할 말 잃게 만드는 풍경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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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킹은 말하네… 우리가 살던 계곡은 여전히 아름답다고
노르웨이 베르겐

베르겐 남쪽 작은 마을 에트네 고갯길에서 만난 풍경. 피오르 협만 위로 물안개가 짙게 피어 올랐다. 눈 덮인 산은 해발 1000m가 넘는다. 눈 돌릴 때마다 대자연 앞에 먹먹해지는 나라, 노르웨이다.
베르겐 남쪽 작은 마을 에트네 고갯길에서 만난 풍경. 피오르 협만 위로 물안개가 짙게 피어 올랐다. 눈 덮인 산은 해발 1000m가 넘는다. 눈 돌릴 때마다 대자연 앞에 먹먹해지는 나라, 노르웨이다.

일흔한 살 노르웨이 여자 트리드 기예르가 말했다. "우리 조상 바이킹이 어찌나 악랄했던지 20세기 들어서도 유럽 사람들은 노르웨이는 거리에 북극곰이 어슬렁대고 문명은 없는 야만국가로 알고 있다"라고. 바이킹이 쇠퇴하고 나서는 그저 정어리 통조림이나 만들고 대구포나 말려 파는 야만인들이 사는 나라로 생각했다고 했다.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굉장히 다르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기로 하자. 노르웨이, 멀다. 비싸다. 하지만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곳을 고르라면 노르웨이를 반드시 포함시키도록 하자. 이미 여러 유럽, 미국 언론이 노르웨이를 그런 목적지로 선정했다. 이유는 이러하다.

우선 문화. 노르웨이 수도 오슬로에서는 해마다 노벨평화상 시상식이 열린다. 스웨덴 사람인 노벨이 평화상만은 오슬로에서 주라고 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절규'의 작가 에드바르 뭉크가 이곳에 살았고, '절규'의 영감을 얻은 장소도 이곳에 있다. 여느 유럽 도시들처럼 오슬로는 산책하기 좋은 도시다. 고색창연한 건물들이 도심을 채운다. 그러니 오슬로에서는 자연보다는 문화와 문명에 집착해 길을 걸어본다. 탄생 150년을 맞은 뭉크의 작품들을 미술관에서 감상해본다. 두 번씩이나 도둑질당한 '절규' 이야기까지 들어본다. 여기까지는 노르웨이가 소유한 '문화' 이야기다.

하지만 오슬로는 노르웨이 여행 시작점에 지나지 않는다. 예술과 여유 가득한 오슬로를 떠나서 베르겐으로 간다. 오슬로에 수도 지위를 빼앗기기 전 노르웨이 왕국의 수도, 베르겐에서 비로소 노르웨이에 온 이유를 알게 된다. 바로 자연, 대자연(大自然)이다.

피오르 산악 관광열차.
피오르 산악 관광열차.
항구도시 베르겐은 14세기 독일 상인들에게 항구 한쪽인 브리겐 지역을 빌려줬다. 당시 북해 주변 북유럽 도시 가운데 대표적인 무역도시였다. 주로 말린 대구를 거래했던 브리겐 독일 상인지역은 독신 남자들만 입주가 허용됐다. 목조건물인지라 조리도 금지됐다. 당연히 주변은 식당과 주점이 흘러넘쳤고 여가를 때울 문화가 발달했다.

‘솔베이지의 노래’를 지은 작곡가 에드바르 그리그는 베르겐에서 나고 죽고 묻혔다. 153cm 단신인 그는 역시 단신인 사촌 동생 니나와 결혼해 피오르가 내려다보이는 집에 살았다. 집 이름은 ‘트롤하우겐’, 숲의 괴물이 사는 집이란 뜻이다. 베르겐으로 향하면서 그의 음악을 듣는다. 피아노 협주곡 a단조 작품번호 16번 혹은 솔베이지의 노래. 여행이 더 진해진다. 그러다 문득 피오르가 현현한다. 사람들은 대자연과 직면한다. 자연 앞에 ‘대(大)’라는 말을 붙일 수 있는 지형이 지구상에 얼마나 될까. 더군다나 그 자연이 문명세계 바로 옆에 있는 곳이라면.

빙하기가 퇴각하며 U자형으로 깎아내린 지형이 피오르다. 웅장한 산봉우리들이 수면에서 솟아 있다. 해발 1000m가 넘는 산들이다. 꼭대기에 빙하가 남아 있기도 하고, 때로는 봄과 여름과 겨울이 해발 0m에서 1000m를 동시에 채우는 비현실적인 풍경이 펼쳐지기도 한다.

송네피오르의 관문 플롬 입구 아울란드 마을. 빙하가 깎은 계곡이 구름 속으로 사라진다. 바이킹들이 생존 투쟁을 해야 했던 협곡은 관광지로 변했다.
송네피오르의 관문 플롬 입구 아울란드 마을. 빙하가 깎은 계곡이 구름 속으로 사라진다. 바이킹들이 생존 투쟁을 해야 했던 협곡은 관광지로 변했다.
중세 때 무역으로 반짝 빛을 받았지만, 피오르에서 생존하기 위해 바이킹들이 택한 직업은 주로 노략질이었다. 유럽을 휩쓸며 닥치는 대로 여자와 물건을 훔치고 납치하고 패악질을 해댔다. 흉흉한 역사적 기억과 음습한 추위를 상상하며, 유럽 사람들은 노르웨이를 그저 변방의 소국으로 취급했다. 가끔 북해 건너 잉글랜드에서 호기심 많은 귀족이 배 타고 건너와 낚시와 여행을 하고 가는 작은 나라 정도?

무관심은 가난 때문이기도 했다. 볼거리라고는 자작나무로 가득한 숲, 먹을 거라곤 말린 대구와 정어리밖에 없는 추운 나라. 그런데 1960년대 북해(北海) 국경을 정리하자마자 노르웨이 쪽 바다에서 유전이 터져버린 것이다. 낭패감에 빠진 유럽인들 대뇌피질에서 순식간에 북극곰, 바이킹, 식인족 기타 등등 야만적인 단어는 실종되고 대자연과 1인당 국민소득 7만달러의 국부(國富)를 가진 완벽한 문명국가 노르웨이가 탄생했다. 당나귀 길을 만들어 살았던 험준한 협곡은 죽기 전에 반드시 가봐야 할 목적지가 되었다. 세리(稅吏)들이 닥치면 사다리를 올려버렸던 천 길 낭떠러지 위 집들은 하룻밤 수십만원짜리 수퍼 럭셔리 펜션으로 변했다.

그 피오르 지역에서, 입 다물 수 없는 비경(秘境)을 스치면서도 버스 기사 비야르테 함레는 무작정 액셀러레이터를 밟아댔다. “아직 멈출 데가 아니라”는 것이다. 과연 고갯길을 넘으면 아까보다 더한 비경이, 바다를 건너면 더한 기경(寄景)이 출몰했다. 불과 서너 시간의 드라이브 동안 ‘순간순간 샘솟는 흥분’을 경험했다. 국부와 자연에 대한 부러움은 질투로 변질돼 갔다.

그 질투의 중요한 몇몇 포인트는 이렇다.

노르웨이 위치도
1.오슬로: 국립미술관 뭉크미술관. 뭉크 탄생 150주년을 맞아 많은 행사가 열린다. 묵을 곳은 노벨평화상 시상식 참가자들이 꼭 묵는 그랜드 호텔(www.grand.no).

2.송네피오르: 피오르의 압권. 중심 도시 플롬 프레트하임호텔(www.fretheimhotel.no)에 묵으며 산악관광열차(Flamsbana)와 모터보트로 즐기는 피오르 사파리를 꼭 해볼 것. 운 좋으면 여주인 유령도 볼 수 있다.

3.베르겐 남동쪽 로프트후스: 5대째 운영 중인 울렌스방호텔(www.hotel-ullensvang.com)에 묵으며 피오르의 전경을 감상할 것. 호텔 전용 증기선을 타고 베르겐을 오가며 베르겐 도시 투어, 그리고 왕복 경치를 즐길 것. 호텔에서는 “늦은 밤에 와서 아침 일찍 떠나는 한국 단체관광객을 보면 좀 안돼 보인다”며 “원한다면 김치도 만들 수 있으니 오래오래 머물며 즐겨주시라”고 했다.

4.베르겐: 작곡가 그리그가 살던 집 필수. 대개 한국인들이 빼먹고 가는 코스다. 베르겐에 가면 반드시 전문 가이드 손여영씨(yeoyoungs@hotmail.com)에게 연락할 것.

항구도시 베르겐에 남아 있는 독일 상인들의 거주지 브리겐.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이다.
항구도시 베르겐에 남아 있는 독일 상인들의 거주지 브리겐.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이다.
5.노르웨이 관광청 서울 사무소(02-777-5943): 여타 명소들에 대한 정보. 싸게 여행할 수 있는 정보 포함.

힘과 시간과 돈이 남는다면 순록과 자작나무와 오로라가 나오는 그 북쪽까지 가야 함이 마땅하나, 그러지 못한 사람들은 오슬로와 베르겐, 그리고 주변 피오르만으로 만족하도록 하자.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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