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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이탈리아 : 에스프레소 한 잔과 복권 한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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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프레소 커피 한 잔하고 10만 유로 당첨금이 나올 복권(Lotto) 한 장!” 
바(Bar)에서의 커피 한 잔으로 아침을 여는 이태리 사람들이 동네의 단골 바 주인에게 흔히 하는 말이다. 커피와 복권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다. 그리고 성질 급한 이태리 사람답게 에스프레소가 추출되는 동안 재빨리 복권을 긁어본다. 꽝이 나오면 바 주인과 또 농을 주고받으며 다음번에는 행운이 오기를 기대한다.

이태리의 바에서는 아침에 커피를 마시며 복권을 사는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다.
나는 이태리인 모임 사람들과 같이 여행을 해본 적이 여러 차례 있다. 며칠 동안 함께 다니면 재미있는 풍경을 보게 된다. 이동하면서 목적한 여행 명소에 도착할 때마다 그들이 제일 먼저 가는 곳은 그곳에서 가장 가까운 바(Bar)다. 단체로 우르르 몰려가서 다투듯이 복권을 산다. 당첨 복권은 전국 곳곳에 분포되어 있으니까 이동할 때마다 시도해보려는 것이다. 꽝이면 커피 한 잔으로 씁쓸한 기분을 달랜다. 그러고 나서야 비로소 여행지의 풍경을 감상하기 시작한다.

커피처럼 즐기는 이태리 복권

복권에 당첨될 확률이 벼락 맞을 확률보다 낮다는 것을 알면서도 복권은 이태리 사람들에게 커피처럼 매일 즐길거리가 되어버렸다. 유럽에서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복권 즐기기로는 이태리 사람들이 단연 선두라고 한다. 이태리 사람들은 왜 유독 복권을 즐기게 되었을까. 궁금한 마음이 생긴다.

현대 복권이 이태리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이 궁금증을 풀어줄 첫 번째 열쇠가 될 것 같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고대 로마 황제 시저와 아우구스투스와 네로가 국가사업을 위해 복권을 이용했다고 한다. 그런데 현금으로 당첨금을 지급하는 지금의 로또(Lotto)는 1530년 피렌체에서 시작되었다. 작은 도시 피렌체에서 시작된 로또를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은 바로 카사노바였다.

카사노바. 그는 다양한 분야에서  명석함을 드러낸 인재였다. 여자 꼬드기는 재주는 그가 가진 재능 가운데 한 부분일 뿐이다. 백 명이 넘는 그의 여자들 중 카사노바의 바람기를 질투한 이가 한 명도 없었다는데, 이것 역시 프로 바람둥이만의 재주였던 것 같다. 비결은 만나는 여자에게 모두 한결같은 사랑을 주었다는 것이다. 사랑과 평등을 추구한 그는 여자들을 만날 때도 자신의 철학을 그대로 실천(?)했나 보다. 카사노바의 파란만장한 에피소드 중 하나. 그가 베니스의 감옥에 갇힌 일이 있었다. 물의 도시이자 화려한 가면 축제의 도시 베니스는 카사노바가 태어난 곳이다. 그는 감옥에서 극적으로 탈출해 프랑스로 도망갔고, 국가 재정난을 앓고 있던 프랑스 루이 15세 왕에게 복권을 소개했다.

이태리 남자들은 카사노바의 바람기와 도박기를 모두 물려받은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인생의 목적은 성공이 아니라 자기에게 주어진 삶의 시간을 즐기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태리 남자들에게 여자와 복권은 그야말로 딱 어울리는 관심거리인 것이다. 그래서 스포츠도 제일 단순하게 즐기는 축구를 좋아하고, 낙천주의자이기에 노래와 춤을 즐긴다. 그렇게 자유로운 사고를 가지고 있으니 예술적인 감각이 탁월하게 발달할 수밖에 없다.

복권으로 큰돈을 모으는 이태리 정부는 그 돈을 국민 복지를 위해 쓰기보다 마피아와 연관된 사업에 더 많이 투자한다. 국민들도 일반적으로 그 사실을 알고는 있지만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다. 이태리 사람들에게 정치란 심심할 때 수다로 즐길 이슈거리밖에 되지 않는다. 영화 <글래디에이터>에서 사실적으로 묘사된 전투사의 경기장 콜로세움도, 영화 <벤허>에서 실감나게 보여준 전차 경기장도 모두 사람들의 마음을 정치에서 무감각해지게 만들려는 마취제 같은 것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복권은 현대의 정치가들이 이용하는 또 하나의 강력한 마취제인 것 같다.

하지만 복권에 당첨되면 집을 사고 가족의 모든 경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아무 문제될 것 없는 건실한 이유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땀 흘리지 않고 생긴 돈은 또 그만큼 치러야 할 대가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 않다면 많은 당첨자들의 비극적인 결말 이야기가 이렇게 들려오지는 않았을 테니 말이다.
커피의 카페인과 복권이라는 마취제로 오늘 하루를 시작하는 이태리의 내일은 어떠할까, 다시 궁금해진다.

이태리 시집살이를 하는 한국 며느리 김미화는…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방송작가 일을 하다 돌연 여행가이드로 직업을 바꾸고 유럽을 자주 오갔다. 일하는 중에 만난 이태리 관광버스 기사에게 반해 잠깐의 사랑을 나누다 무모하리만큼 급속도로 결혼에 성공(?)했다. 시골에서 농장을 운영하는 시댁 근처에서 아들 하나를 키우며 남편과 살고 있다. 연초에 에세이 《나는 이태리의 시골 며느리》를 출간했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나는 이태리의 시골 며느리
국내도서
저자 : 김미화
출판 : 휴먼앤북스 2012.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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