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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이탈리아 : 걷기, 여행과 순례를 하나로 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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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티칸과 강가사가르

긴 여행 뒤에 쌓인 사진들은 여행의 기억처럼 뒤죽박죽이다. 엉뚱한 사진들이 짝을 맺는다. 그 사이에 나만의 여행 이야기가 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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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티칸 성베드로 광장에서 볼리비아로부터 온 순례자들이 행진하고 있다. / 채승우 사진가

미켈란젤로가 그린 천장화 '천지창조'를 올려다보느라 무리한 목을 주무르며 바티칸 광장으로 나왔다. 기둥으로 둘러싸인 타원형 광장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행진을 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십자가를 앞세우고 걷고 있는 사람들의 거뭇한 피부색이 그들이 아주 멀리서 왔음을 알려주었다.

남미 대륙의 볼리비아에서 온 순례자들이었다. 종교적인 이유를 가지고 어딘가로 찾아가는 여행을 '순례'라고 부른다. 순례에는 반드시 걷기가 포함된다. 그들은 볼리비아에서 어쩔 수 없이 비행기를 타고 와서 로마 공항에 내렸을 터라, 걷기 의식을 행하기 위해 바티칸 광장을 걸어서 돌기로 한 것이 분명했다.

순례로 유명한 장소들이 있다. 스페인의 '산티아고 가는 길'이 그렇고, 일본의 '시코쿠섬 헨로미치 순례길'이 그렇다. 스페인의 길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의 성당에 이르면 완성되고, 일본은 88개의 절을 방문하며 섬을 한 바퀴 돌아 제자리에 돌아오면 완성된다. 앞의 길은 선(線)이고 뒤의 길은 원(圓)이라 서양과 동양을 비교하는 듯도 하다.

최근에 이 순례 길들은 여행의 길로도 인기 있다. 이 길을 택한 여행자들은 순례의 모범을 따른다. 여행자가 종교를 갖고 있는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길을 걷는 자세는 종교적 순례자와 여행자를 구분할 수 없다.

'여행자의 책'을 지은 폴 서루는 많은 순례자와 여행자를 관찰한 끝에 '마음을 편하게 하는 걷기는 순례자의 목적이기도 하다. 여기에는 어떤 영적인 차원도 있다. 걷기 그 자체는 정화 과정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걷기는 여행의 오랜 형태로 가장 근본적이고, 아마도 가장 계시적인 형태일 것이다'라고 했다. 여행과 순례는 처음에는 하나였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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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갠지스 강이 바다와 만나는 ‘강가사가르’에서 사람들이 바닷물에 몸을 담그고 의식을 치르고 있다. / 채승우 사진가

아주 오래전 인도를 여행하면서 '나는 순례자입니다'라고 말하고 다녔던 적이 있다. 순례자라고 하면 인도의 사원들이 공짜로 재워주고 먹여 주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나는 정말로 내가 순례자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내가 나를 그렇게 생각한다는데 누가 뭐라 하겠나? 눅눅한 침대와 콩 요리를 제공받는 대신 몇 푼의 기부금을 내고 다음 목적지로 떠났다.

인도 순례 코스는 힌두교의 신성한 강 갠지스의 발원지에서부터 시작했다. 갠지스 강이 바다를 만나는 곳까지 가는 데 두 달이 걸렸다. 발원지는 히말라야 산맥 위에 있는 '강고트리'라는 곳이다. 빙하로 이루어진 얼음 동굴에서 차가운 물이 콸콸 흘러나온다. 강고트리까지 오르는 길은 너무 험해서 여름철에만 오를 수 있다. 인도의 순례 전통은 대단하다. 여름이 와 길이 열리면 수많은 사람이 강고트리까지 와서 차디찬 물에 목욕을 하고 강물 한 종지를 떠 집으로 가져간다. 구불구불 비포장도로를 걸어 올라왔다 걸어 내려가는 사람도 있고, 올 때는 버스를 타고 올랐다 내려갈 때만 걸어가는 사람도 있다. 히말라야의 입구인 하리드와르에서 목욕을 하고 돌아가는 사람도 있다. 각자의 사정이다.

바다를 만나는 강물은 정확히 말하면 갠지스 강의 본류가 아니다. 본류는 방글라데시 삼각주로 흘러가고, 갠지스 강의 지류인 후글리 강이 바다를 만난다. 이곳 역시 '강가사가르'라고 불리는 힌두교의 성지이다. 이곳에서는 겨울인 1월에 축제가 열린다. 나는 강고트리에 오른 몇 년 후, 때를 맞추어 강가사가르를 다시 찾아갔다. 솔직히 말하자면, 갠지스 강의 이야기를 완성하는 사진을 찍고 싶은 '욕심' 때문이었다. 순례의 마음과는 한참 먼 생각이었지만, 그때도 사원을 찾아가서 순례자라고 말했다. 그리고 앞으로 인생 전체를 순례라고 여기면 어떨까 혼자 생각해보았다. 그래서 순례로 얻은 것이 뭐냐고? 글쎄, 아직 순례 중이라서….

바티칸 강가사가르
■바티칸은 성베드로의 무덤 위에 세워진 대성당이 순례의 의미를 더하지만, 예술사의 관점에서도 중요한 순례지이다.

강가사가르는 후글리 강 하류의 사가르 섬에 있다. 콜카타(옛 이름이 캘커타였던 인도 서해안의 도시)에서부터 시외버스를 타고 갈 수 있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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