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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아메리카/미국

미국 : 멈추지 않으면 길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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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미국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Pacific Crest Trail·이하 PCT) 종주자인 김희남씨의 PCT 가이드 기사다. 국내 준비과정부터 보급방법, 위험요소, 필수 장비, 궁금점 등 실제 트레일에 필요한 요소를 6개월에 걸쳐 연재한다. 총 6회로 기획된 기사로 1회 국내 준비, 2~4회는 PCT 1/2 길이를 차지하고 있는 캘리포니아 남부, 중부, 북부, 5회는 오레곤, 6회는 워싱턴 지역에 관한 내용을 설명한다. -편집자 주-
발목부상으로 고통스러웠던 PCT의 마지막 워싱턴 구간
PCT 워싱턴 정보신들의 다리(Bridge of the Gods)를 통해 컬럼비아 강을 건너면서 PCT의 마지막 구간인 워싱턴에 들어간다. 워싱턴 구간은 고도 차이가 큰 수많은 패스를 넘어야 한다는 점에서 캘리포니아 중부 구간과 닮아 있다. 고트 락 윌더니스(Goat Rocks Wilderness)와 레이니어 윌더니스(Mt. Rainier Wilderness) 등을 지나며 탁 트인 풍경을 볼 수 있다. 높게 솟은 레이니어 산을 바라보며 걷다 보면 어느새 노스캐스케이드 국립공원(North Cascades National Park)에 진입하게 되며, PCT도 끝을 향해 달려간다.

미국과 캐나다의 국경인 모뉴먼트 78(Monument 78)을 넘어 약 12km 떨어진 캐나다 BC주 매닝파크(Manning Provincial Park, Hwy3)까지가 현재 완성된 PCT의 끝이다. 하지만 사실상 모뉴먼트78이 PCT 종료를 나타내는 랜드 마크이며, 이곳에서 많은 PCT 하이커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각자의 길을 마무리한다.

시기상 가을로 접어들면서 기온이 떨어지고 날씨 또한 다른 구간에 비해 변덕스럽다. 마치 PCT의 마지막을 쉽게 내주지 않으려는 듯. 개인적으로는 부상에 신음하는 스스로와 격렬하게 싸우며 하루하루 버티듯 걸어 나간 구간이기도 하다. 어떻게 해서든 PCT를 완주해야겠다며 주변을 돌아볼 여유도 없이 이 악물고 걸어 나가는 스스로의 모습으로 가득한 구간이었다.구간: 캐스케이드 록스(Cascade Locks, 3450.74km) ~ 모뉴먼트78(Monument 78, 4264.92km) ~ 매닝파크(Hwy 3 near the Manning Park Lodge, 4279.09km)소요기간: 38일(예비일 8일)재보급: 3회
'워싱턴 구간 830km만 걸으면 PCT가 끝난다. 분명 짧지 않은 거리지만 지금까지 걸은 거리에 비하면 짧게만 느껴졌고, PCT가 다 끝난 것만 같았다. 자신도

모르게 PCT 이후를 생각하게 했다. 만 명이 걸어도 그 중 내가 있어야 하고,

백 명 혹은 열 명이 걸어도 내가 있어야 한다. 단 한 명이 그 길을 걷고 있다면, 그 한 사람이 나여야 한다. 이제 그 길을 찾아나갈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트라우트 레이크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필자.
오랜만에 비를 맞으며 걸었다. 얼마 전까지 화재로 트레일이 닫혔던 워싱턴이 맞나 싶을 정도로 비가 주룩주룩 계속 내린다. 샌프란시스코에서의 휴가 중 재킷을 잃어버렸지만 그 동안 비가 오지 않아 별 문제없었는데, 캐스케이드 록스에서 재킷을 지원받지 못했다면 참 난감할 뻔했다.

오랜만에 비를 맞으며 걷는 느낌이 나쁘지는 않았지만, 운행 약 16km지점(RD2226B)은 얼마 전 발생한 트레일 근방의 화재 때문에 통제되고 있었다. 며칠 전부터 계속된 비에 혹시나 통제가 풀리지 않았을까 기대하고 있었는데 어쩔 수 없이 도로를 통해 돌아가야 하는 상황. 도로 운행 경로를 알아보고 휴식도 취할 겸 히치하이킹으로 근처 마을인 트라우트 레이크(Trout Lake)로 이동했다. 점심으로 커다란 햄버거를 2개나 먹어 치우고, 잔디밭에 누워 낮잠까지 즐긴 후에 다시 트레일로 돌아와 도로운행을 시작했다. 한참을 걸어 도착한 타크라크 레이크 캠핑장(Takhlakh Lake CG)에서는 트레일 엔젤을 자처한 클러치라는 하이커의 삼촌을 만나 따뜻한 모닥불에 둘러 앉아 맛있는 저녁을 먹을 수 있었다. 운행을 마친 후 평소보다 발에 통증이 컸지만 기분은 좋은 그런 날이었다. 다음날 발 상태의 심각성을 깨닫기 전까지는.

워싱턴 구간은 고트 락 윌더니스와 레이니어 월더니스 같은 야생의 숲을 통과한다.
모두 나를 응원하고 있어

기상 후 텐트에서 나오며 일어서는데 왼쪽 발목과 발바닥 아치에 어마어마한 통증이 밀려왔다. 항상 아침이면 뻐근한 통증이 있기는 했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곧 괜찮아지겠지’하며 운행을 시작했는데 통증은 나아지지 않았다. 속도는 점점 줄어들었고, 어느 순간부터 절뚝이고 있는 스스로가 보였다. 겨우겨우 도로 운행구간을 끝내고 PCT에 복귀했지만, 더 이상 걷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되어 마을로 탈출을 결정했다. 걸어 온 도로를 되돌아가면서 히치하이킹을 시도했지만 워낙 차가 다니지 않는 도로였기에 다시 캠핑장으로 돌아가는 방법밖에는 없었다.

'다 왔어, 다 왔어. 5분만 더 가자' 라고 스스로를 달래며 폭우 속에서 터벅터벅 한 발씩 내디뎠다. 그럼에도 오늘은 도저히 스스로의 힘으로 버텨내고 가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그저 형이 부르러 간 차가 달려오기만을 간절히 바랐다. 스스로 통제할 수 없고, 다른 무언가를 기대하거나 기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너무도 답답했다. 잠시 열이 받아 스틱을 팍 하고 내리 꽂기도, ‘생각대로 다 되는 게 아니니까 인생이겠지?’라며 억지웃음을 지어보기도 했지만 답답함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그렇게 한발 한발 버티듯 걸어 나가던 중 드디어 히맨을 데리러 온 차가 멈춰 섰다. 연휴기간에 빈 방을 겨우겨우 찾아 침대에 앉은 후에야 제대로 퉁퉁 부어 오른 발목을 마주한다. 그 동안 불안정한 신발에 자주 발목이 꺾이면서도 계속 걸었던 것 때문에 문제가 커진 것 같았다. 히맨의 PCT에서 가장 큰 고통과 인내의 시간이 시작된 순간이었다.

이후 모텔과 호스텔 등으로 옮겨 다니며 예상치 않은 예비일을 보내게 되었다. 예쁜 정원과 절이 함께 있는 호스텔에서는 바람 소리, 물소리와 어우러진 풍경소리를 들으며 마음의 안정을 찾으려고 했다. 이전 같으면 여행 같은 기분을 만끽하며 즐겼을 테지만 쉬는 게 쉬는 게 아니었다. 휴식을 취하는 내내 ‘PCT를 완주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으로 가득했다.

문득 얼마 전 라디오에 소개되었다던, 아이딜와일드에서 만난 산골 아주머니의 사연이 궁금해져 다시 듣기를 찾아 들었다. 한국인을 만난 반가움, 우리를 초대해 진수성찬을 차려주시고도 제대로 대접하지 못한 것 같다며 아쉬움을 표현하셨다. 끝으로 많은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주기를 바란다는 내용의 사연은 모텔 침대에 힘없이 기대 앉아 있던 히맨을 울게 했다.

‘난 혼자가 아니었지! 나를 응원하고 도와주는 많은 사람들이 있어. 그런데도 못 해내면 히맨이 아니지!’

발목 부상과 진통제의 부작용은 필자를 신체적 정신적 한계까지 몰아붙였다.
내가 걷지 않으면 길은 끝나지 않는다

호스텔에서 나와 트라우트 레이크로 다시 이동했다. 다른 하이커와 함께 픽업차량을 통해 긴 휴식 후 만에 다시 PCT에 복귀했다. 걷기 시작한지 얼마 안 되어 지갑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안 좋은 일은 한꺼번에 일어난다더니, 덕분에 우울함은 한층 더 깊어졌다. ‘이제 진짜 거지인건가?’

형은 내 뒤에 바짝 따라 붙으며 함께 걸었고, 히맨은 이를 악물고 통증을 참으며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뎠다. 발이 조금이라도 아픈 각도로 놓이면 통증이 컸기에 정말 신경을 써서 디뎌야 했고, 동시에 주변 환경을 볼 수 있는 여유가 사라졌다. ‘10분만 더 가자’, ‘5분만 더 가자’ 하며 이 악물고 한 걸음 한 걸음 절뚝거리며 화이트 패스에 도착! 그리고 드디어 주현이가 보낸 소포를 받아볼 수 있었다. 완전 지쳐서 퍼진 상태로 소주 박스의 신민아 사진을 보며 피식했다. 상자 안에 들어있던 장문의 편지를 읽으며, 히맨을 생각하고 응원을 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생각에 감동받아 괜히 눈시울이 붉어졌다.

바로 운행을 재개하는 것은 역시 무리라는 판단에 다음날 팩우드(Packwood) 마을로 이동했다. 이곳의 RV캠핑장(Packwood RV park)에서 이틀, 그리고 모텔에서 하루를 보내며 긴 휴식을 가졌다. 재보급 박스를 마지막 보급지로 보내고 급히 교체가 필요한 신발을 주문하는 등 급한 일들을 처리했고, 오랜만에 도서관에서 사진 정리도 했다. 이후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팩우드의 캠핑장에서 계속해서 먹고 자고 동영상을 봤다. 한참 걷고 있을 시간에 이러고 있으니, 마치 죽어 있는 느낌이었다. 더 이상 할 게 없어졌을 때쯤, 앞으로 남은 거리가 떠올랐다. 이전 같으면 충분히 여유롭게 걸을 평균거리인데도 자신이 없다. 걸어야 할 길이 뻔히 보이는데도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사실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바로 눈 앞의 목표를 이루지 못하게 되면서 목표가 사라진 양 방황했다. 목표를 어서 재설정해도 모자를 판에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아무 생각도 없이 뒹굴 거리고 있는 스스로가 좀 한심했다. 스스로를 일으켜 세워줄 누군가를 찾다가, 결국 그 일을 해 줄 사람은 자신 뿐이라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반으로 자른 깔창으로 통증을 줄여보려 했으나 부상의 고통은 걸을 수록 극심해졌다.
각자의 PCT를 위하여

출발 전 깔창을 세로로 반으로 잘라 쿠션이 죽은 부분을 높여 주었는데, 어느 정도 효과가 있는 것 같아 위안이 되었다. 운행초반 어제보다 컨디션이 좋아 40km 목표를 달성할 수 있겠다 기대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통증이 거세게 몰려왔다. 막바지에는 신음을 하며, 정신이 약간 혼미해지는 느낌까지 받으며 한 걸음 한 걸음 악으로 내디뎠다. 온 신경이 내 발과 트레일에 쏠려있었다. 완주에 대한 걱정과 부담감도 함께 했으며, 그 외에 다른 생각을 할 수 없었다. 이제 이틀만 버티면 새 신발 신을 수 있다. 그걸 신는다고 발이 바로 좋아진다는 보장은 없지만.

부상 이후 목표거리를 맞추기 위해서는 일찍 출발하여 쉼 없이 12시간 이상 오랜 운행을 해야 했다. 하지만 여유 있게 출발해도 되는 형까지 힘들게 갈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동안 희종 형이 히맨에게 맞춰 뒤에서 잘 따라와 주었으나, 이렇게 계속 운행할 경우 서로에게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 뻔했다. 힘든 상황을 지켜보는 이가 더 힘들 수 있다는 걸 알기에.

'저 먼저 일찍 출발할게요. 좀 더 자고 여유 있게 출발해요' 2시간 정도를 먼저 출발했음에도 오후가 되기도 전에 형은 히맨을 앞질러 가곤 했다. 따라가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는 걸 알기에 스스로의 길에만 집중했다. 155일차부터 174일차까지의 대부분의 운행은 이러했다. 먼저 일어나 조용히 짐을 싸서 출발하고 뒤에서 형이 나타나고 가벼운 안부인사와 함께 떠나보내고, 캄캄한 한 밤중 형의 텐트에 대고 무사히 살아왔다는 안부 인사를 하며 운행을 마치는 것도 더 이상 어색하지 않았다.

156일차 역시 해가 지고 나서야 목적지인 서밋 인(Summit Inn)에 도착했다. 주인아주머니는 대뜸 한국인이냐 물어보더니, 한국말로 방을 안내해 주셨다. 아마도 먼저 체크인 한 형이 히맨의 상태를 미리 알려준 듯 했다. 침대 위에는 REI에서 급히 주문한 새 신발 상자가 올려져있었다. 드디어 엉망이 되어버린 신발에서 벗어난다는, 통증이 줄어들 수도 있겠다는 기대감이 히맨을 기쁘게 했다. 발목에 얼음찜질을 열심히 하고 다음날 새 신발을 신고 새로운 마음으로 대안 길인 골드메이어(Goldmeyer Alternate)로 진입했다.

통증을 참으며 포기하지 않고 걸었던 워싱턴 구간의 풍경.
모든 것을 쏟아 붇은 후 극한의 순간이 찾아왔다

골드메이어(Goldmeyer alternate) 후반 구간의 상당히 험한 너덜지대는 발을 디딜 때마다 악 소리를 나게 했다. 겨우겨우 한 구간을 통과하면 잠시 뒤 다시 나타나는 너덜지대에 절로 한숨이 나왔다. 골드메이어를 겨우겨우 벗어나 PCT로 돌아왔지만 아직 목표 사이트까지는 한참 남아 있었다. 체력은 바닥이 나버렸고, 해는 이미 기울었다.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한번 해보자며 오기로 악을 써가며 밤새 내리는 비를 맞아가며 끝없는 오르막을 올랐다. 지금까지 그랬듯 이번에도 스스로를 시험해보고 싶었던 것 같다. 그저 악을 쓰며 바로 앞의 한걸음을 내딛는 데만 집중했다.

밤 10시가 다 되어 도착한 넓은 사이트에서 형을 찾을 수는 없었고, 그렇다고 큰 소리를 낼 수는 없었다. 혹시라도 걱정하지 않을까 싶어 트레일 옆에 스틱을 하나 꽂아놓고 나니 몸이 떨려왔고, 운행 종료 보고도 건너뛴 채 서둘러 텐트를 꺼냈다. 여전히 세찬 비속에서 젖은 텐트를 치고 젖은 침낭 안에 들어갔다. 몸이 떨려와 스토브에 불부터 붙였고, 서둘러 밥을 하면서 그제야 운행 종료 영상을 촬영했다.

밤새 몸살로 잠을 설쳤다. 몸과 이를 덜덜 떨며 신음을 질러댔다. 여기에 겨우 잠 드려는 순간 이마 위로 달려든 쥐는 텐트 안을 헤집고 다녔다. 얼마나 깜짝 놀랐는지, 텐트 밖으로 내보내느라 한바탕 난리를 치고 나니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싶기도 했다.

다음날 아침, 일어나서 신발을 신고 텐트를 나서는데 한 발 내딛기도 고통스러웠다. 거기에 몸살까지 나 온 몸에 힘이 들어가질 않았다. 예상은 했지만 이정도일 줄은 몰랐다. 40km 운행계획을 35km로 줄였음에도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어제 모든 힘을 다 쏟은 후, 오늘은 정신력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그 동안 체력적 한계를 정신력으로 넘어온 히맨에게는 그야말로 극한의 상황이었다. 한 발 한 발 신음하며 내디뎠다. 시속 2km도 나오지 않는 아기 걸음마 수준의 속도에 여기서 포기해야 하는 건가 하는 두려움이 엄습했다. 내내 울 것 같은, 혹은 찡그린, 질려버린 표정이었다. 결국은 8km도 가지 못해 멈추고 말았다.

PCT 141일차에 마주한 타크라크 레이크의 풍경.
지금 이 눈물이 헛되지 않길

신들의 다리에서 마치 다 끝내기라도 한 듯, ‘이제 돌아가면 뭐하지?’ 등의 쓸데없는 생각을 한 것을 나무라기도 하듯, 워싱턴은 히맨에게 당장 앞의 한 걸음 한 걸음에 온 신경을 집중해야 하는 벌을 내렸다. 그래도 그간의 노력을 가상히 보았는지 조금씩 히맨을 받아주기 시작하는 것 같기도 했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정말 오랜만에 한낮에 운행을 마치고 도착한 스카이코미쉬 마을(Skykomish)의 호텔. 히맨은 침대에 앉아 양말을 벗었다. 퉁퉁 부어 오른 발목은 이제 더 이상 낯설지 않았다. 하지만 피부가 피멍이 든 듯 파랗게 변해버린 발목. 발을 디딜 때마다 전기가 오는 것 같은 찌릿함과 함께였다. 부상 이후 2주간 매일 많게는 매 끼니마다 진통제를 복용해왔다. 아마도 그 부작용인 듯 손발에 전기가 오듯 찌릿함이 전해졌다. 뜻하지 않게 부상소식이 여기저기 퍼지는 바람에 수많은 추측과 병명들이 등장했고,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어 보이는 부정적인 이야기들에 조금씩 겁이 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처음으로 진지하게 ‘포기’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PCT를 320km 정도 남긴 상황에 이런 고민을 하고 있자니, 살면서 이보다 더 괴로운 순간이 있었을까 싶다. 피곤함과 온 몸의 열로 인해 일찍 잠을 청해 보지만 쉬이 잠들 수 없는 밤이었다. 매일 빠짐없이 남기던 영상 다이어리조차 기록할 힘도 의욕도 없다. 아파서인지 슬퍼서인지 혹은 스스로가 불쌍한 건지, 그냥 눈물이 줄줄 흐른다. 문득 생각한다. ‘지금 이 눈물이 헛되지 않길.’

다음 날 결정을 했다. 많은 분들의 응원에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스스로도 포기를 허락할 수 없었기에. 형에게 양해를 구하고 체류기간을 꽉 채워 국경을 넘어가기로 했다. 그 동안 PCT를 빨리 끝내기 위해 재촉했던 히맨이었기에, PCT 이후의 계획을 바꿔야 하는 형에게 정말 미안했다. 다시 나선 길. 이틀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었지만 역시나 통증은 금세 커졌고, 속도를 줄일 수밖에 없었다. 이제 300km, 그리고 비자 만료까지 이제 10일 남짓 남았다. 끝이 눈에 보이는데도 확신이 서지 않았다. ‘과연 버텨낼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 매일 아침 오늘이 마지막인 듯 최선을 다 해보자는 각오로 운행을 시작하다가도 이내 절뚝이는 스스로의 모습에 우울함이 찾아왔다. '아, 답답해!' 라고 소리도 질러보았다.

PCT 종주를 함께한 필자 김희남과 양희종씨의 기념촬영.
아침이 오는 것이 두렵다

하루하루 해야 할 일로 가득한 일상처럼 빡빡하게 돌아갔다. 한 시간 내외로 걷고 10분 쉬는 것을 시계를 쳐다보며 철저하게 반복했다. 문득 50분 수업 10분 쉬는 시간의 반복 속에 살았던 학창시절이 떠올랐다. 점심을 먹으며 여유를 즐기는 다른 하이커들이 어찌나 부럽던지. 쉴 틈을 주고 싶지만, 쉬게 되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을 걸어야 했기에 어쩔 수 없이 스스로를 채찍질해야 했다. 그래서인지 어느 순간부터 아침을 두려워하는 스스로가 보였다. 또띠아와 시리얼을 어서 먹고 싶어 아침을 기다렸던 히맨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해가 뜨면 다시 신음하며 걸어야 한다는 생각에 아침이 두려워졌다.

제대로 된 재보급을 받지 못한 지 10일 가까이 되자 식량은 바닥을 드러냈다. 하루하루 계산하며 먹는 양을 조절했음에도 마지막 이틀은 굶어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 되었다. 그때 트레일 매직을 만났다. 따뜻한 핫도그와 감자 그리고 기꺼이 남는 식량을 꺼내 준 트레일 엔젤 덕분에 끼니 걱정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하트패스는 PCT 구간 중 차량 진입이 가능한 마지막 지점이다.

PCT에서의 마지막 밤, 텐트 안. 이제 모뉴먼트 78까지는 6km밖에 남지 않았다. PCT의 끝이 손에 잡힐 듯 가까이 있다. 기어서라도 꼭 완주하겠다고 계속해서 다짐하기는 했지만, 정말 그렇게 할 수 밖에 상황이 오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으로 하루하루를 보낸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제는 정말 기어서라도 갈 수 있겠다는 사실에 진심으로 기뻐했다.

PCT에서의 마지막 밤이 무수한 추억과 함께 깊어진다.
나는 내가 자랑스럽다!

'175일차. PCT 마지막 날입니다!'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힘이 났는지, 예상보다 6km가 짧게 느껴졌다. ‘내가 이걸 보려고 이렇게 고생을 한 건가?’ 하는 허무함에 잠시 멍하니 포스트를 바라보았다. 그 동안의 고생으로 펑펑 울 줄로 알았건만, 그런 감성은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이전 일주일간의 감정이 더욱 크게 느껴졌다. 마치 여행을 준비하는 설렘이 여행 중의 설렘보다 더 큰 것처럼. 걸어서 국경을 넘어 14km를 더 걸어 매닝파크까지 이동했다.

'축하해요! 멋져요!'

당일 산행을 나온 캐나다 사람들의 축하인사와, 곳곳에서 볼 수 있는 PCT 완주 축하 메시지들이 드디어 히맨을 웃게 했다. 그렇게 매닝파크 로지(Manning Park Lodge)에 도착했다. 먼저 도착해 쉬고 있던 희종이 형과의 하이파이브와 동시에 6개월간의 PCT는 끝이 났다.

이 길을 걸으며 기대했던 미래의 대한 계획이나 인생에 대한 정답 같은 것은 찾지 못했다. 그리고 스스로를 뭐라 딱 정의 내리지도 못하겠다. 하지만 살면서 생각해온 가치와 신념은 더욱 견고해졌다. 이 길이 남과 다를 뿐 틀리지 않았다는 확신을 갖게 된 것만으로도 충분했고, 무엇보다 살면서 가장 치열하게 목표를 위해 온 몸과 마음을 다한 히맨이 대견했고, 자랑스럽고 사랑스럽다. 어떠한 결론도 정답도 찾지 못 한, 답 없는 나지만, 답이 없는 내가 좋다. 어떤 것도 채워 넣을 수 있으니까.

PCT하이커 히맨으로서의 길은 끝이 났다. PCT는 인생에 비하면 그저 작은 하나의 갈래 길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앞으로 수많은 길이 펼쳐질 것이다. 이 소중한 경험이 김희남 스스로의 길을 걷는데 큰 힘이 되길 바라며,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의 길을 걷는데 힘을 줄 수 있기를.

PCT 워싱턴 ‘랜드마크
트라우트레이크
트라우트 레이크(Trout Lake)트라우트 레이크는 PCT에서 약 22km 떨어진 작은 마을이다. 주유소 옆의 식당에서 다양한 햄버거를 판매하는데 꼭 먹어보길 바란다. 가게 옆의 잔디밭에서는 많은 PCT하이커들이 젖은 텐트와 옷을 말리거나 누워 낮잠을 즐기는 등 개인정비를 자유롭게 할 수 있다. 재보급을 계획한다면 주말에는 열지 않고 운영시간도 짧은 우체국보다 매일 운영되는 스토어로 보내는 것이 좋다. 그 외에도 스토어에서 숙박 정보 등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으며, 내부에 하이커박스가 위치하고 있으니 꼭 먼저 필요한 물건이 있는지 먼저 확인한 후 쇼핑하기를 바란다. 숙박을 한다면 근처에 위치한 절과 함께 위치한 트라우트 레이크 에비(Trout Lake Abbey) 호스텔을 추천한다. 비교적 저렴한 이곳은 아름다운 연못 정원과 풍경소리가 어우러져 차분하면서도 신비로운 느낌을 준다.
팩우드 마을
팩우드 마을(Packwood)팩우드는 화이트패스로 향하는 도로(Hwy 12)에서 약 33km 떨어진 작은 마을이다. 아이딜와일드(Idyllwild)와 비슷한 느낌의 아기자기하고 알록달록한 카페와 식당들을 볼 수 있다. 특히 팩우드 캠핑장은 급수는 물론 사이트에서 전기와 와이파이도 이용이 가능하다. 무엇보다 저렴한 이용료가 가장 매력적이다. 따라서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관광시설에 가까운 화이트패스의 스토어보다는 팩우드에서 머물기를 권한다. 가까운 곳에 도서관 및 마트가 위치하고 있어 이곳에 머물며 얼마 남지 않은 운행을 준비하는 것도 좋겠다.
골드메이어
골드메이어(Goldmeyer Alternate)골드메이어는 41.44km의 비교적 긴 거리의 PCT 대안길이다. 초반 구간은 좁은 트레일에 많은 당일 하이커들로 붐빈다. 아마도 근처에 위치한 온천 때문인 듯 한데 여유가 있다면 온천에 들러보는 것도 좋겠다. (예약 필요) 시기 상(북향의 경우) 풀과 나무들이 울긋불긋 물들기 시작하기에 지금껏 보지 못한 화려한 트레일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 볼 수 있는 커다란 호수가 매우 아름다우며, 무엇보다 PCT하이커들이 가장 선호하는 시원한 계곡 옆 사이트가 많다는 장점이 있다. 후반 구간부터는 험한 너덜지대가 많으며, 폭포를 통과할 때는 미끄러울 수 있으므로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모뉴먼트78
모뉴먼트 78(Monument78)미국과 캐나다의 국경인 모뉴먼트 78은 PCT의 종료를 알리는 랜드 마크이다. PCT 하이커들은 이곳에서 PCT를 완주한 것을 자축한다. 어떤 하이커들은 단체로 춤을 추며 영상을 찍기도 하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완주의 기쁨을 표현한다. 방명록에 자신의 소감을 표현해 보는 것도 좋겠다. 모뉴먼트 78에서 바로 PCT를 탈출이 가능한 것은 아니다. 국경을 넘어 PCT가 완전히 끝나는 매닝파크까지 이동하거나, 왔던 길을 되돌아 가장 가까운 도로인 하트패스로 가서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히맨은 매닝파크까지 12km를 더 운행하여 PCT를 마무리했다. 모뉴먼트78 이후에는 PCT 표식을 찾아보기 힘들고 초반에 길이 갈라진 곳들이 있어 PCT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하여 길을 찾는 것을 추천한다. 캐나다 국경을 PCT를 통해 도보로 넘어가는 것은 2015년 기준으로 캐나다 국경관리국의 허가를 통해 가능했으나, 변동 사항이 있을 수 있으므로 꼭 재확인하여 준비하기 바란다.
워싱턴 재보급지 정보
재보급 22•화이트 패스(White Pass)화이트 패스는 PCT에서 약 800미터 떨어진, 아주 작은 스키 리조트이다. 스토어에서 재보급 상자수령이 가능하며, 간단한 음식들을 먹을 수 있다. 스토어 앞으로는 주유소가 있으며 언덕 위로 숙박시설이 있다. 숙박비가 저렴하지 않으므로 하루 정도의 예비일을 생각한다면, 근처의 마을인 팩우드로 이동하여 머물 것을 권한다.재보급 23•스노퀄미 패스(Snoqualmie Pass)작은 스키장을 거쳐 만나는 스노퀄미 패스의 도로변으로 식당과 마트, 모텔 등이 위치하고 있다. 식당과 함께 운영되는 서밋 인(Summit Inn)은 한국인이 운영하고 있으며, PCT 재보급 상자를 받아 준다. 또한 프론트에서는 꽤 많은 양의 하이커 박스를 볼 수 있다. 단 이곳에서 숙박을 하지 않을 경우에는 재보급 상자 수령 시 15달러의 수수료가 있다. 머물지 않고 계속 운행을 이어나갈 계획이라면 바로 옆 주유소 마트에서도 재보급이 가능하니 참고할 것. 서밋 인 앞에 위치한 푸드트럭에서는 김치찌개와 매우 흡사한 김치 스프를 판매하니 꼭 먹어보길.재보급 24•스테킨 (Stehekin)작은 커뮤니티인 스테킨은 PCT하이커들의 주요 재보급지 중 사실상 마지막 재보급지라 할 수 있다. 히맨은 부상으로 촉박해진 시간으로 인해 들리지 못 했다. 운행 중 만나게 되는 하이 브리지(High Bridge, 4135.08km)에서 버스를 타고 갈 수 있다. 이곳의 우체국에서 재보급을 받을 수 있다. 편도 요금 7달러의 셔틀버스는 하루에 4번 운행되며, 10월부터는 운행 횟수가 줄어드니 참고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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