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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세의 끝에서 - 모순적인 매력이 있는 '인도 바라나시'사진으로 보는 Varanasi는 매력적인 장소지만, 이상하게도 Varanasi에서 며칠 되지 않아 지쳐버렸다. 매일같이 들어와서, 아침저녁마다 좋은 사진을 찍기 위해 이곳저곳 떠돌아다니는 관광객들과 마리화나를 팔려고 끈질기게 붙는 젊은 인도 애들, 인도의 여느 도시나 마찬가지로 인파로 북적대는 바라나시에서 잠시 방향성을 잃었다고나 할까?
매일 같은 광경 속에서 특별히 할 일을 찾지 못한 나는 3일째부터는 강가에서 멍하니 강을 바라다보는 일이 잦아졌다. 때로는 시체가 떠내려오는 것도 보고, 때로는 배를 빌려 저 멀리 강 건너편에 혼자 노를 저어 가볼까 생각도 해봤다. 여행하다가 한 곳에 며칠 있게 되면, 그래도 마음에 드는 장소가 생기게 되고, 다른 곳보다 그곳에 자주 가게 되곤 하는데. Varanasi에도 그런 곳이 있었다. 지금은 그 Ghat이름이 생각이 나지 않지만, 사람들의 인적이 뜸했던 곳이었던 것만은 기억한다.
며칠 그 Ghat에서 앉아서 강을 쳐다보니, 아는 사람이 한 명 생겼다.
- ▲ 처음 만난을 때 Babu, 연주해달라는 부탁을 하지도 않았지만, 연주를 선보여 주었다. ⓒ 이형수
- ▲ 빠뿌의 딸 무갈 ⓒ 이형수
우리나라 아쟁처럼 키는 현악기인데, 빠뿌 말로는 라자스탄 악기인 ‘라븐카’라 했다.
라자스탄이라면, 인도의 서쪽인데, 혹시 거기서 왔느냐고 하니, 라자스탄州 자이푸르 변두리 시골에 자기네 집이 있다며, 가족사진을 꺼내 보여준다.
- ▲ 빠뿌와 빠뿌의 딸 무갈, 그리고 동네꼬마 ⓒ 이형수
그런데 그런 사랑스러운 가족을 두고 라자스탄을 왜 떠났느냐고 물어봤다.
그의 얘기인즉, 라자스탄에서 만난 서양 여행객이 있었는데, 자신에게 음악을 배우다, 라자스탄 다음에는 바라나시로 갈 계획이니, 바라나시에서 다시 음악을 가르쳐달라고 했단다. 물론 교습비를 내고 말이다. 빠뿌에게는 그 교습비가 꽤 괜찮은 수입이었던 것 같다. 황당하게 들릴지는 몰라도, 그 말을 믿고, 빠뿌는 바라나시로 왔고, 하지만 바라나시로 온지 2주가 지났는데도 아직 그를 만나지 못했다고 했다. 전화도 없이 어떤 식으로 그를 만나려고 했는지 몰라도, 그 여행객에 대한 믿음이 컸던 만큼 실망도 커 보였다. 그리고 설상가상으로 한 주 전부터 시름시름 아파서, 돈벌이도 못하고, 낮 동안에 거의 Ghat에서 누워 지내는 일이 많았다. 그나마, 근처 외국에서 운영하는 무료 진료소가 있어서, 진통제류라도 조금 받아와서 먹고 있었다.
- ▲ 말이 통하지 않아 늘 혼자 놀아야 했던 무갈. ⓒ 이형수
의사에게 가볼 만한 처지로 보이는지? 괜히 내가 화가 났었다.
빠뿌와 나는 거의 매일 만났고, 빠뿌의 딸(처음에는 아들인 줄만 알았다)인 무갈과도 금세 친해져, 무갈을 데리고 여기저기 구경도 다니고, 배도 태워주곤 했다.
- ▲ 아픈 모습의 Babu ⓒ 이형수
아버지가 아픈 걸 아는지 모르는지, 그래도 무갈은 해맑게 까르르 웃으며, 이리저리 뛰어다니다, 빠뿌와 내가 짜이를 마시면, 어느새 금세 나타나서 자기 것도 시켜서 배달해온다.
빠뿌와 만나는 동안 만 31번째 생일을 맞았는데, 빠뿌가 내 생일 축하곡을 직접 연주해주었다.
- ▲ 내 생일날 곡을 연주해준 Babu. ⓒ이형수
- ▲ 매일 몇 잔이고 마시던 설탕과 같던 짜이. ⓒ 이형수
떠나기 전, 빠뿌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래도 뭐라도 한줌 쥐어주는 것 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늘 설탕이 반인 짜이로 배를 채우는 무갈이 안쓰러워 저녁이라도 같이 한끼 사서 먹이라고, 돈을 좀 쥐어줬다. 다음 날 아침에 물어보니, 그 주변에서 어슬렁거리던 협잡꾼한테 사모사(인도식 튀김만두)를 좀 사오라고 시켰는데, 그 길로 날라버렸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그 인간을 같이 보곤 했는데 그날 이후로 볼 수 없었다.
잘 못 먹는 무갈이 안타까워 무갈을 데리고, 근처 한국식당에 가서, 애들이 좋아하는 치킨가스를 사서 먹였더니, 너무 잘 먹었다. 한번은 돈 없는 빠뿌에게 비싼 치킨가스를 사달라고 할까봐, 그 집을 지나쳤더니, 온 동네가 떠나가라고 울어 재꼈다. 할 수 없이 또 사줘야만 했다.
- ▲ 떠나는 날 밤, 내 손에 장난감 헤나로 문양을 그리는 귀여운 무갈. ⓒ 이형수
바라나시의 밤, 가로등 불 아래 수많은 곤충과 모기떼가 날아다니고, 그 딱딱한 콘크리트 바닥에 잠자리를 피는 그부녀를 두고 나는 그렇게 돌아서야 했다. 죄책감과 아쉬움, 무력함을 같이 느끼며. 언젠가는 빠뿌가 그의 고향 라자스탄으로 돌아가 그의 아내와 아이들과 사진 속 호숫가에 모여 앉아 라븐카를 키고 있을 것을 상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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