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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의 땅에서 만난 인도인 동생 Anup
보드가야에 도착했을때는 10월 초순, 2개월간 내 몸이 이미 인도의 무더위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보드가야에서 만난 더위는 인도 여행의 어느때보다 참을 수 없을만큼 힘들었다. 10분마다 물을 계속 마셔주지 않으면 갈증을 느낄 정도였다.보드가야 옆을 흐르는 큰 강은 무릎에도 차지 않을만큼 차츰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보드가야 (또는 부다가야라고도 한다)는 전 세계 불자들의 최고의 성지이다. 후에 부처가 된 싯다르타왕자가, 보리수 나무 아래서 마침내 해탈(Nirvana)에 이르렀던 바로 그 장소이기 때문이다.
마하보디 사원이라고 불리는 이 성지에 가면 아주 커다란 보리수(Bodhi tree)가 있다. 부처가 열반을 할 당시 보리수나무는 불교를 반대하던 왕에 의해 잘려져 나갔었다. 지금 성지에 자리잡은 보리수는 스리랑카의 한 공주가 원래 보리수를 스리랑카에 일부 옮겨다 키웠다가 그 후손을 다시 가져다 놓은 것이라고 한다. 매일 전세계의 수많은 승려와 불자들이 이 곳을 찾아, 절을 하고, 경전을 읽고, 명상을 한다.
- ▲ (왼쪽부터) 마하보디 사원의 마하보디 대탑의 모습. 경전을 외고 있는 태국에서 온 비구니. 보디 사원 안에서 수련을 하고 있는 승려. ⓒ 이형수
나는 당시 미얀마 스님들이 머무르는 수도원인 Vihara라고 하는 곳에 머물렀는데, 아침 겸 점심은 주로 Vihara앞에 있는 너저분한 식당에서 해결하곤 했다. 다시 생각해도 보드가야의 주변식당은 다른 인도지방에 비해 형편없는 수준으로 기억되지만, 그 더위에 어떤 음식이 맛있었으랴?
한 날은, 맛없는 고무 같은 오믈렛을 질겅질겅 씹고 있는데, 옆 테이블의 한 인도청년이 일본말로 인사를 해왔다. 일본인처럼 보이나 보지? 그때까지 방문했던 여느 다른 인도지방의 젊은 애들처럼, ‘뭐 한건 해먹을건 없나’ 찔러볼 수도 있고, 그냥 심심하니 말장난이나 하자는 식 일수도 있었다.
- ▲ 보드가야 마을 풍경. ⓒ 이형수
몇번 말을 안 받아주다가, 계속 옆에서 웃으며 말을 거는데, 무시할 수는 없어, 한 두번 못내 말을 받아주었다. 이름은 Anup, 나이는 한 20대 초반으로 보이고, 하는일은 현재는 무직, 이전에는 어떤 불교방송의 리포터를 맡았다고 한다. 몇 마디 주고받더니, 대뜸 자기 마을을 보여줄 테니 따라 가자고 한다. 더위 때문에 어떤 것도 흥미가 동하지 않는 시기라, 이런들 어떠랴 하는 마음으로 그를 따라 나섰다.
Anup의 집은 수자타(Sujata)라는 마을 안에 있었다. 그는 마을과 주변 사원들을 두루 보여주며, 자신이 아는 흥미로운 부처이야기를 내게 들려주었다.
동굴 안에서 먹지 않고, 6년간의 고행을 마친 피골이 상접한 싯다르타에게 맨 처음 우유죽을 대접한 여인인 수자타 이야기부터 재미로 사람의 손가락을 잘라서 목에 걸고 다니던 악인에게 부처가 풀잎을 땐 후, 다시 붙여보라는 얘기를 들려준 후(때어진 풀잎도 다시 붙이지 못하면서, 하물며 사람의 손가락을 어떻게 뗄 수 있냐는 의미) 그 악인이 부처의 제자가 되었다는 이야기. 그리고, 풀잎을 흐르는 강에 놓으니, 풀잎이 강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갔던 이야기까지 이전에는 모르고 있었던 이야기들을 하나 둘씩 해주었다. 이야기를 들으며 내가 그 이야기의 현장에 두발로 서있다고 생각하니, 옛날 속으로 타임머신을 타고 가는듯한 착각도 들었다.
- ▲ 전정각산 주변 풍경, 아이들은 학교에 가야할 나이지만, 전정각산의 고행동굴을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구걸을 하고 있었다. ⓒ 이형수
Anup이 이곳 저곳 보여주긴 했지만, Anup과 더 친해지게 된 계기는 따로 있었다. Anup은 나와 지낸 3일째, 그가 추진하고 있는 조그만 사업을 조심스레 보여주었다. 그것은 고아와 가난한 마을아이들을 위한 학교.
- ▲ 연령대가 다른 아이들이 시멘트 바닥에 앉아서 열심히 수업을 듣는 모습. ⓒ 이형수
나와 Anup이 들어서니 아이들이 일제히 일어나, “Good morning Sir!”라고 외쳤다. 당황한 마음에 급히 애들을 앉히고 보니, 그 조그만 공간 안에 20명이 넘는 아이들이 옹기종기 앉아 있었다. 나이가 4살 남짓한 아이부터, 16살쯤 되는 아이까지 한 교실에서 같이 배우고 있었다. 선생님이 4살 또래 애들을 가르칠때 그 나머지 연령대 아이들은 숙제를 혼자 푸는 식이었다.
- ▲ (좌) Anup이 싼 월급을 주고 고용한 비정규 선생님, 전과목을 가르친다. 영어만 봤을때 문법을 많이 틀리게 가르쳐주고 있었다. (우) 숙제를 안해온 죄로 벌을 서는 모습. 쪼그려서 고개를 숙인 자세로 벌을 받는다. 벌을 서는 모습이 이채롭다. ⓒ 이형수
그렇게 교실을 방문한 첫날, 나는 일일교사가 되었다. 눈에 넣어도 아플 것 같지 않은 아이들이 알파벳이나 산수 숙제를 가지고 와서 힌디도 못하는 내게 검사를 맡으면, 틀린 것이 있는지 체크하고 사인을 해주는 역할을 했다.
- ▲ 학교도 가지않고, 주변 웅덩이에서 고기를 잡는 마을 아이들 모습. ⓒ 이형수
우리처럼 초등교육이 의무교육이 아닌 인도에는 글 한자라도 배우려면 돈을 내고 학교를 가야한다. 불교의 최고 성지이며, 매년 수많은 불교 순례자가 오는 그 유명한 보드가야의 바로 옆 마을은 이렇게 가난 때문에 교육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이 수없이 많다. 여담이지만, 부처가 태어난 불교 성지인 네팔의 룸비니도 주변 마을이 가난하며, 교육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이 많다.
- ▲ 아이들의 해맑은 모습과 작은 칠판. 닳아 거의 없어진 분필로 알파벳을 적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 이형수
또, 어렵게 건물 옆에 아이들의 식수를 위해 설치한 수도도 어느 누군가가 밤에 뜯어갔다고 했다. 뿐만 아니라, 보드가야에서 나와 Anup이 같이 밥을 먹고 어울려 다닐때는, 주변 청년들이 질투심에 그를 사기꾼으로 모함하기도 했다. 이런 환경 속에서도 그는 그만의 학교를 힘들게 꾸려나가고 있을 것이다.
- ▲ 두르가푸자때는 저렇게 조금 촌스러운 인형극을 곳곳에서 한다. 내용은 두르가 여신이 악마를 처치하는 내용. 인도인 조차도 매년 보는 내용이라 흥미는 없지만, 신이 자신들을 악마로부터 보호해준다는 믿음으로 본다고 한다. ⓒ 이형수
- ▲ 축제일이라, 때때옷으로 한껏 멋을 낸 Anup의 아이들. ⓒ 이형수
병원에서 독한 항생제를 맞는 몇 시간 동안, Anup이 나를 지켜주었다. 치료가 끝난 후 의사가 나에게 현지인의 몇배가 넘는 바가지 요금을 매겼다. 다행이도 Anup이 의사에 항의하여 바가지 요금을 받아낼 수 있게 도와주었다. (삐걱거리는 녹슨 철제 간이 침대에 누워 링거를 맞는데, 침대 비용을 숙소 비용보다 비싸게 받았다. 링거만 꼽아줬는데도 간호 비용이라는 명목으로 몇 만원을 청구하였다.)
- ▲ 떠나기 전날, Anup과 아이들과 함께. ⓒ 이형수
다시 인도를 돌아갈 수 있는 날이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인도에 도착해서 제일 먼저 가게될 곳이 Anup의 집이라는 사실은 언제가 되었든 변함 없을 것이다. 그때까지 나의 인도인 동생 Anup의 사랑의 학교가 번창하기를 바라며, 이 글을 마칠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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