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만드는 아티스트 정화, 베를린을 읽어내다
베를린이 우연히 내게로 걸어오다

내가 베를린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8할이 우연이다. 베를린행을 결심할 당시 나에겐 전환점이 필요했다. 타인이 가르쳐주는 정형화된 디자인을 배우기보다, 내 안으로 끝까지 파고들어 새로운 디자인을 실현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유학을 빙자했지만 나의 베를린 생활을 긴 여행이라 정의하고 싶다. 예쁜 것만 찾아보는 짧은 여행보다 낯선 곳에서 새로운 호흡법을 배우고 적응해가는 나를 체험하는 진정한 여행을 하고 있다고. 난 이곳에서 베를린만의 독특한 환경을 체험하고 직접 경험하면서 열정을 되찾게 된 것이 더없이 기쁘다.

내게 흑백 영화 속의 이미지로 기억되던 베를린은 예술과 여유, 자유, 다양성 등 여러 가지 빛깔을 띠며 나의 삼십 대를 무지갯빛으로 물들이고 있다.

NO.1 베를린 매거진 리스트

요즘 내가 가장 주목하고 있는 독일 잡지는 <FT>다. 이 잡지는 매 회 다른 주제로, 그들이 직접 만들어낸 타이포그래피와 드로잉, 사진과 아트 디렉팅, 그리고 레이아웃을 선보인다. 매 호 새로운 잡지가 창간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흥미로운 것은 Vier5라는 작은 팀이 이 모든 것을 만들어낸다는 것. 이 잡지는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공존하고, 그 중간쯤의 미학을 보여준다. 컴퓨터 세대가 만들어내는 날카롭고 매끈한 그래픽 이미지가 지배하는 이 시대에 핸드메이드 감성을 지닌 예술가들이 만들어냈다. 이 잡지는 작은 글씨체, 여백, 낙서, 실수로 보이는 흔적까지 모두 그대로 보여주면서 날카로운 내 감성을 자극한다. 물론 이들이 만들어내는 건조하고 반항적인 이미지는 철저히 계산되어 생산된 것이기에 더 가치가 크다.

베를린을 대표하는 컬처 매거진 <032c>도 소장 가치가 높은 잡지이다. 건축과 예술, 디자인, 패션의 경계를 넘나들며 문화 전반을 보여준다. 고전적인 스타일의 빨간 표지 속에는 매 호 현대문화를 <032c>만의 독자적인 시각으로 다룬 기사가 가득하다. 너무나 대중적인 주제를 이렇게 다양한 방식으로, 또 깊이 있게 다룬 내용을 읽으면, 잡지의 역할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대중매체가 미디어로서의 역할을 책임감 있게 지켜내고 있다는 것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홈페이지www.032c.com/kim/hedislimane에 들어가면 2007년 에디 슬리만과 함께한 파티 사진도 구경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추천하고 싶은 잡지는 <Slanted>이다. 타이포그래피 전문 잡지인 <Slanted>는 발간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갈수록 기대를 품게 되는, 강단 있는 잡지다. 타이포그래피의 세계를 보다 넓은 영역으로 펼치고자 하는 다양한 시도로 지면을 가득 메우고 있으며, 그 세계를 발견할 수 있는 수십 가지의 길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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