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일이든 힘든 일을 이겨낸 뒤 얻는 것은 그 기쁨이 두배다. 여행지도 마찬가지. 위험천만한 길을 넘고 넘어 대자연의 아름다움을 봤을 때 그 감동은 두배가 된다. 때 묻지 않은 순수한 자연의 아름다움을 찾아 떠나가는 길.

티베트 불교의 상징인 오색의 타르초가 휘날리고 있는 절다산 고개 <사진 : 함정민>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사람이 나라를 차별한다는 것이 있을 수 없는 일이겠지만 이상하게 나랑 궁합이 맞지 않는 나라가 있으니 바로 중국이다. 지금까지 중국을 수도 없이 많이 갔는데 그때마다 이상하게 사기를 당하거나 장비가 고장나거나 화를 벌컥 내고 얼굴을 붉히게 되는 나라가 중국이었다.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항상 중얼거리는 똑같은 멘트, ‘아… 이 나라 사람들은 정말 인내심 하나는 끝내주는구나. 중국에 사는 한국인들은 대단해…’

그런 중국을 또 가게 되었다. 하지만 이번엔 남다른 기분. 쓰촨성 청두를 거쳐 내가 가고자 하는 곳은 티베트 본국은 아니지만 외국인들을 감시하고 있는 시점에서 그래도 티베트 문화가 살아있는 동티베트다. 티베트를 제대로 여행한 사람들이 본다면 ‘동티베트가 무슨 티베트냐 한족들의 허울 좋은 방패막이지’ 라고 할지도 모르지만 이런 저런 이유를 떠나 난 티베트의 숨결을 그래도 느낄 수 있는 동티베트로 향한다.

사진 : 함정민
티베트인의 진한 삶이 묻어나는 곳, 캉딩

한반도 전체의 약 44배에 달하는 거대한 대륙, 중국. 이곳의 서남부 쓰촨성만 해도 남한 면적의 약 5배에 달할 정도다. 쓰촨의 절반 이상은 장족 자치주, 즉 티베트인들이 사는 곳이다. 동티베트의 관문인 캉딩에서 출발한다. 해발 2560m, 고원의 도시 캉딩에선 만년설로 뒤덮인 설산이 즐비한데 이곳에서는 그냥 동네 뒷산 정도다.

티베트로 들어가는 입구에 차들이 엉켜 있고 다들 오도가도 못하고 삼삼오오 서 있는 걸 보니 무슨 문제가 생겨도 단단히 생긴 모양이다. 꼭 이런 불길한 예감은 제대로 적중한다. 워낙 통행하기 어려운 길이기도 하고 2008년 티베트 사태 이후 특히나 외국인들은 제한을 하고 있고 내국인들도 부분적으로만 통행을 시키고 있는 중이란다. 자세한 사정을 알아보러 간 운전사는 더 끔찍한 소식을 들고 온다.

“어제 저녁에 출발한 차들이 밤새 산 속에 있대요.”

어제 저녁에 출발한 차들이 밤새 이러고 있는거라면 우리는…. 오전 9시쯤이면 길이 열린다더니 벌써 12시인데 아직도 감감무소식이다. 뭐라고 항의라도 하고 싶은데 다들 참 이렇게 느긋할 수가 없다. 카드 놀이하는 사람, 잠자는 사람, 그저 멍하니 있는 사람 등 각자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저 그들의 느긋함이 존경스러울 뿐이다. 

발이 묶인 지 무려 6시간 만에 드디어 출발이다. 공사 중이라 도로 사정은 말이 아니다. 승용차로는 속도를 내기 어려운 길이지만, 다행히 우리 차는 사륜구동이다. 이런 길만 10년 이상 운전해온 베테랑 운전사 리웨이는 잘도 추월해 간다. 쓰촨성 대지진이 이 일대를 강타한지 딱 1년이 지났는데 여전히 복구공사가 한창이다. 

“아유, 말도 못해요. 여기가 상해부터 라싸까지 이어진 길인데 전체 거리가 한 5000km죠. 근데 그 중에 특히 이 구간, 쓰촨 지나가는 길이 아주 어려웠어요. 시인 이태백이 쓰촨의 길은 아주 어렵다. 어렵기가 하늘에 올라가는 것만큼 어렵다고 했죠.”
사진 : 함정민
상해에서 대륙을 가로질러 쓰촨의 중심도시인 청두로 이어지는 중국의 318번 국도는 다시 천장북로와 천장남로, 두 갈래로 갈라져 라싸까지 연결한다. 우리는 이 중 천장남로를 따라 이동했다. 해발 4000m는 거뜬히 넘어가는 하늘과 맞닿을 듯한 길, 천장남로. 때문에 여정 내내, 설산과 구름이 길동무다. 그렇게 서쪽으로 달릴수록 중국이라기보다는 티베트에 가까운 풍경이 펼쳐진다.

깡바 제1계곡. 캉딩에서 차로 2시간 정도 달리자 중국과 티베트의 분기점인 절다산(저뚜오싼) 고개에 도착한다. 본격적으로 티베트의 영역이 시작되는 것을 알리려는 듯, 고갯마루엔 티베트 불교의 상징인 오색의 타르초가 바람에 휘날리고 있다.

“이 깃발의 의미는 깃발에 경전이 적혀 있어요. 티베트인들은 이 경전이 바람에 나부끼면 경전에 적혀있는 불력이 멀리 세상에 퍼진다고 믿기 때문에 높은 나무나 산꼭대기에 걸어놓고 있죠.”

그래서 티베트 사람들은 타르초가 펄럭이는 소리를 ‘바람이 경전을 읽고 가는 소리’라고 말한다. 야딩으로 가는 길은 그 바람 소리를 따라 가는 여정일지도 모르겠다.

티베트 산 곳곳에는 '옴마니반메홈'이란 글자가 새겨져 있다 <사진 : 함정민>
험준한 설산의 허리를 가로질러 깎아지른 듯한 길을 구불구불 달리다 보면, 시야에 나무 한 그루 없는 황량한 민둥산이 펼쳐지기도 한다. 또 다른 세계에 들어온 듯한 풍경이다. 광활한 중국대륙, 그 중에서도 특히 티베트의 자연을 품고 있는 서남부지역에 벌써부터 마음이 이끌린다.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든다. 전생에 내가 한 마리 야크였던가? 내가 서있는 곳은 4000m가 넘는 곳으로 머리도 조금 아파야 하고 숨도 차야 한다는데 고산증세가 아직은 오질 않았다. 눈 덮인 설산과 그 위에 하얀 뭉게구름, 깊고 파란 하늘빛과 뜨거운 태양, 게다가 한가롭게 풀 뜯고 있는 야크의 모습,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모습이다. 바로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하지만 아름다운 풍경 뒤에는 또 다른 면이 도사리고 있다. 깎아지른 협곡을 끼고 달리는 아슬아슬하게 좁은 길. 게다가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 같은 위태위태한 흙길. 조금 마음 놓아도 되겠다 싶은 길에선 엄청난 먼지라도 감수해야 한다. 처음 몇 시간은 이런 오프로드의 길도 너무나 멋지고 아름답지만 하루이틀 계속 되다보니 토가 나올 지경이다.

“3일째 차만 타고 있어요. 차 타는게 제일 힘들어요.”

나랑 10년 이상 세계의 오지라는 오지는 다 다닌 이용택 감독의 처절한 한마디다. 그나마 위험한 길은 더이상 나오지 않을거라는 운전사의 말에 안심하고 있던 참인데, 갑자기 차가 급정거를 한다. 이번엔 차가 말썽이다. 며칠째 산길만 달렸더니 엔진이 결국 과열이 되었다. 

“물이 필요해요. 차를 좀 쉬게 해야 돼요.”

“오늘 얼마나 달린 거죠?”

“아침 7시 반에 출발해서 지금 오후 5시 반이니까 10시간 정도 됐죠. 밥도 먹고 수리하면서 1시간 이상은 차를 쉬게 해야 할 것 같아요."

이왕 이렇게 된 거 엎어진 김에 쉬어가기로 했다.
사진 : 함정민

오랜 해외 촬영에서 얻는 노하우는 벌어진 상황에 순응하자다. 마침 차가 엎어진 길 옆으로 아담한 장족 마을 하나가 있다. 티베트 전통 건축방식으로 지어진 돌집들이 산기슭에 사이좋게 들어앉아 있다. 창문 하나하나까지 공을 들여 장식한 흔적이 역력하다. 그런데 가만 보면 집집마다 하나 같이 깃발을 높게 내걸어 놓았다.

오는 길에 봤던 타르초와 같은 의미인데 이렇게 장대에 한 폭의 깃발을 걸어 세워 놓으면 ‘룽다’, 만국기처럼 가로로 줄줄이 깃발을 걸어놓으면 ‘타르초’라 부른다. 장족 마을에 있는 것들은 모두 그들의 종교와 연관이 있다. 개울이 흐르는 곳에 뭔가가 눈에 띈다. 언뜻 보면, 물레방아인가 싶지만 이것 역시 수차를 이용한 ‘마니차’, 즉 불교 경전을 넣은 경통이다.

“왜 이런 마니차를 설치해 놓았냐면 낮 동안에 밭에서 혹은 소나 양을 치면서 일을 하잖습니까. 노동의 시간이 너무 많기 때문에 하루 종일 불공을 드릴 수가 없어요. 그래서 자기가 일을 하고 있는 동안에도 물의 힘에 의해 계속 불공을 드리고 불력이 멀리 퍼져 나가라는 뜻에서 설치한 것이죠. 산에 걸려있는 타르초와 거의 비슷한 의미에요 바람에 의해서 하는 경우와 물의 힘에 의해서 한다는 차이만 있죠.”

타르초와 같은 의미의 '롱다'를 집집마다 걸어놓은 장족마을 <사진 함정민>

이렇게 물을 이용해 돌리는 마니차를 설치하려면 일단 물이 있어야 하고, 또 마을 사람들의 불심도 단단해야 할 것이다. 흔히 볼 수는 없는 것이라 물소리를 들으며 한참을 앉아 있는데, ‘짜시델레’ 지나가던 마을 사람들이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장족, 즉 티베트 사람들은 손에 작은 마니차를 항상 들고 다니는데, 이들은 경전이 들어있는 마니차를 한번 돌릴 때마다 경전을 한 번 읽는 것과 같다고 여긴다. 외지인들의 눈엔 장난감을 돌리는 것 같아 보일 수도 있을 테지만, 티베트인들에겐, 깊은 믿음이 담긴 아주 경건한 신앙행위다. 

“매번 외출하실 때마다 이런 마니차를 가지고 다니시나요?”

“항상 갖고 다녀요. 우리 집에서 잠깐 쉬다 가세요.”

“할머니 집에서요?”

어르신이 갑자기 초대를 하신다. 이럴 땐 항상 거절하지 않고 따라 들어간다. 여기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자연스럽게 들여다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니까 말이다. 어르신의 집은 이 마을에서 가장 잘 사는 집이었다. 집 안에서도 할머니는 쉼 없이 마니차를 돌리고 계신다. 

“올해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

“84세야. 이가 다 빠져서 말을 잘 못해. 가까이서 찍으면 얼굴이 크잖아”

그 연세에도 자꾸만 부끄러워 하시는게 소녀 같다. 손님이 오면 따뜻한 차 한 잔이라도 대접하는 것이 장족들의 오랜 풍습이다. 할머니는 소나 양의 젖에서 얻어낸 버터에 끓는 찻물을 부어 만든 티베트 전통차 쑤요차를 건네 주셨다. 춥고 건조한 고원지대에 사는 티베트인들은 몸을 따뜻하게 하기 위해 열량이 높은 이 쑤요차를 하루에 수십 잔씩 마신다고 한다(고산병 예방에도 좋다는 말에 석잔이나 배부르게 마셨다).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집을 나서는데 3층 창문에 할머니의 모습이 보인다. 잠깐 엉덩이 붙였다 훌쩍 갈 뿐인 뜨내기 여행자에게, 참 오래도 손을 흔들어주시는 할머니. 주름 가득 웃는 이 얼굴을 꽤 오래 기억할 것 같다.



신비한 옥색 물빛이 아름다운 야딩의 우유해 <사진 : 함정민>

세 신선과 마주하다

캉딩에서 야딩까지는 보통 하루 여정이다. 그런데 이번엔 도로 사정이 안 좋아 그 배로 걸린다. 결코 좋지 않은 도로사정과 차 고장 등 녹록치 않은 상황임에도 후회가 된다거나 돌아가고 싶진 않다. 여기가 아니면 그 어디서도 절대 누릴 수 없는 아름다운 풍경 때문이다.
눈앞에 우뚝 솟은 설산이 눈에 들어온다. 드디어 야딩의 초입에 들어선 것이다. 해발이 무려 6032m인 센나이르 설산은 티베트인들이 신성한 산으로 추앙하는 3대 설산 중 하나다. 바로 이 센나이르 설산 밑에 마지막 샹그릴라라 불리는 야딩이 숨어 있다.

그렇다고 다 왔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가장 힘든 코스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부터 무려 50km나 되는 산길을 오직 두 발로, 정직하게 걸어 올라가야 한다. 초입에서부터 3km 지점에 있는 충고사라는 작은 사찰까지는 말을 빌려 타고 갈 수 있는데, 그래서 충고사까지만 다녀오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우린 말도 타지 않고 야딩까지 50km를 걸어가야 한다.

티베트인들은 대부분 소나 양을 치면서 일을 한다. 설산아래 초원을 거닐고 있는 소와 양의 모습 <사진 : 함정민>

이제 시작인데 벌써 숨이 가빠온다. 평지를 걷는 것보다 3~4배는 힘든 거 같다. 어느 정도 걷자 가장 높은 3개의 설산이 한꺼번에 시야에 들어온다. 티베트인들이 성스럽게 여기는 설산의 초입. 어김없이 그들의 염원이 담긴 타르초가 바람에 휘날리고 있다.

때 묻지 않은 비경 덕분에 ‘최후의 샹그릴라’라고 불리는 야딩은, 1928년 영국인 탐험가 루커에 의해 서구에 처음 소개되었다. 하지만 워낙 접근하기 쉽지 않은 오지여서 그 이후에도 이곳은 인간의 손을 거의 타지 않았다. 이제 제법 알려졌어도 여전히 미지의 세계에 가까운 땅. 이런 저런 고생스러움을 무릎쓰고 야딩을 찾아온 이유다.

이 차가운 설산 아래에도, 생명들이 깃들어 산다. 3시간 정도 걸어 올라온 지점, 해발 4150m에 낙융목장이 위치해 있는데 비록 춥고, 높고, 척박한 고산이지만 사람이 살고 민가가 있다. 이곳에서 야크를 키우며 사는 현지인을 만났다.

“한번 먹어 보세요”

“이게 뭐에요?”

“모모. 고산보리의 일종인 칭거로 만든 빵입니다. 담백하고 고소하고 맛있어요.”

그리고 같이 내미는 것은 야크우유로 만든 치즈다. 이 두 가지를 싸갖고 다니면서 뜯어서 요기를 하는데 선뜻 이방인에게도 내민다. 약간 비릿한데 맛있다. 그런데 16살 먹은 아들이 쓰고 있는 모자가 눈에 들어온다. ‘스키모자’라고 한글로 큼직하게 새겨진 이 모자는 대체 어디서 구한 걸까 궁금해진다. 현지인들 틈 사이에서 몸을 앉히고 쉬다 보니 센나이르 설산과 함께 성스러운 3대 설산 중 하나로 꼽히는 양마이용 설산이 눈에 들어온다. 이 산이 이들에겐 어떤 의미일까?

“저 산의 정상까지 등반을 할 수 있나요?”

“안돼요”

“왜요?”

“신령한 산으로 우리를 보호해 주고 있어요. 산에 올라가면 부정을 타기 때문입니다.”

목장이 있는 평지에서 이제 다시 험한 산길로 접어든다. 위로 올라갈수록 바람은 더 거세지고 만년설의 차디찬 기운마저 바람에 실려 그대로 얼굴을 때린다. 그냥 힘들다는 말로는 부족한, 어찌 보면 고행에 가까운 여정.

야딩에서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해 있는 오색해 <사진 : 함정민>

“아이고…아이고”

자연스레 신음소리가 나온다. 누가 떠미는 것도 아닌데 묵묵히 오른다. 갑자기 불안감이 밀려온다. 눈 덮인 하얀 설산과 파란 하늘을 보고 있으니 지금 힘든 것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야딩을 또 찾게 되는건 아닐까? 야딩의 절경을 마주하려면 이 험한 돌산 하나를 마저 넘어야한다. 가까스로 산 정상을 넘은 뒤, 잠시 요기를 하고 가기로 했다. 아침에 나서면서 도시락을 챙겨 왔었다. 

“계란이 안 익었어요. 이거 봐 이거 봐. 흰자도 안 익었어.”

“안에는 거의 날달걀인데? 까지지도 않네.”

껍질에 붙은 채 버리는게 아까워 원샷이다. ‘아 처량해’ 하지만 맛있다. 든든히 먹고 힘을 써야 하는 이용택 카메라 감독은 비닐에 넣은 볶음밥을 좋다고 먹고 있다. 덜 익은 계란에 다 식어빠진 볶음밥이 전부이지만 시장이 반찬이라 그저 꿀맛이다. 거기에 절로 입맛 돌게 하는 훌륭한 밑반찬이 하나 더 있다. 바로 눈앞에 시원스레 펼쳐진 설산! 이제 진짜로 마지막 고지 하나만 남았다.

“다 왔다! 호수다!”

뉴나이아이, 즉 우유해(牛?海)란 이름은 호수 가장자리가 우윳빛이라 하여 붙은 이름이다. 이 신비한 옥색 물빛의 비밀은 바로 만년설에 있다. 빙하가 녹은 물이 흘러내려오면서 주변의 바위에 포함된 미세한 암석 성분이 함께 녹아들어 아름다운 물빛을 내게 된 것이다.

“처음에 여기 올라왔었을 때, 이 위에 호수가 있을까 반신반의하면서 올라왔던 기억이 나요. 막 올라와보고는 깜짝 놀랐어요. 이 높은 곳에 이 눈 녹은 물이 내려와서 이런 아름다운 빛깔을 내고 있다는 것이요.”

사진 : 함정민

뉴나이아이가 벌써 5번째라는 가이드는 또다시 감탄사를 연발한다. 다섯 번이나 왔다는 가이드가 이 정도니 이곳이 처음인 나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걸 보려고 그렇게 고생을 한 것인가? 하지만 이곳을 보는 순간 고생에 대한 보상이 되고도 남는다. 야딩의 설산 사이엔, 뉴나이아이 말고도 숨은 비경이 또 하나 있는데, 여기서 해발 100m를 더 올라가야 만날 수 있단다.

“지금 약 해발 4550m쯤 되고요, 해발 4600m에 위치한 우써하이-오색해(五色海)라는 곳에 가고 있습니다. 이 호수는 야딩에서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해 있습니다. 야딩의 제 1설산인 센나이르 설산 바로 뒤편에 있습니다.”

40분 남짓 더 마지막 기운을 내 올라간 그 곳엔 또 한 번의 수고를 보상하고도 남을 만한
아름다운 풍경이 기다리고 있었다. 오색해가 한눈에 보이는 자리에 서서 굽어보면 그 이름의 의미를 선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햇빛에 따라, 그리고 구름의 그림자에 따라, 물빛은 시시각각, 여러 겹의 오묘한 색채로 변신한다.

우써하이는 지구상에서 가장 높다는 티베트 라싸의 남초 호수와 불과 해발 100m차이. 외국 관광객들의 라싸 진입이 통제된 지금 상황에서 우리가 만날 수 있는, 하늘에서 가장 가까운 호수다. 무엇보다 이 오색해는 야딩의 성스러운 3개의 설산을 모두 한꺼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단지 이 한 장의 풍경과 대면하는 찰나의 순간을 위해 때론 위험천만한 길, 언제나 악전고투의 여정, 그런 만만치 않은 과정을 몇 번이고 치러야 한다. 하지만 나는 지금 이 순간 느낀다. 머지않아 또다시 그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야딩을 향할 것이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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