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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서부 석굴 기행
![중국 간쑤성 황하 상류 병령사 계곡에 눈꽃이 날린다. 높이 27m짜리 대불(大佛) 머리 위에 나무로 만든 잔교(棧橋)가 아슬아슬하게 걸려 있다. 석굴 벽화와 불상을 보기 위해선 잔교가 유일한 통로다.](http://travel.chosun.com/site/data/img_dir/2015/02/25/2015022502399_0.jpg)
실크로드는 '욕망의 길'이다. 중국 진(秦)과 한(漢), 당(唐)의 수도였던 장안(현재의 시안)을 출발해 타클라마칸 사막을 넘어 서역(西域)으로 이어지는 이 길을 따라 중국에서 비단과 자기(磁器)가 건너가고, 서역의 향신료와 유리공예가 넘어올 때마다 부(富)가 쌓였다. 화약 제조술이 건너가고 요즘 탱크와 같은 위력적 기동력의 말(馬)이 건너올 때마다 실크로드 양쪽에선 권력의 향배가 바뀌었다. 그 부(富)와 권력의 신기루를 좇던 인간의 욕망이 2000년 동안 이 길에서 명멸(明滅)했다. 그러나 욕망이 닦아놓은 이 길로 제지술(製紙術)도 가고, 그리스 미술 양식과 서역풍 의복과 춤, 그리고 불교 경전과 스님, 부처님 사리도 건너왔다. 중국 서부 황량한 곳곳에 남은 1600년 된 석굴들은 실크로드에 핀 문화의 꽃, 문명의 오아시스다. 이달 초 4박 5일 동안 조계종 백련불교문화재단(이사장 원택 스님)과 함께 맥적산, 병령사, 둔황 석굴을 답사했다.
![병령사석굴, 맥적산석굴](http://travel.chosun.com/site/data/img_dir/2015/02/25/2015022502399_1.jpg)
#1. 부처님 머리 위에 서다
지상 50m라 했다. 발아래엔 높이 27m짜리 대불(大佛)이 벽에 기대어 있는 걸 알지만 내려다볼 엄두가 나질 않는다. 삐걱거리고 휘청거리는 나무 사다리를 타고 올라오는 동안 이미 공포는 온몸 가득 팽창했다. 바위를 뚫어 횡(橫)으로 나무를 박고 그 위에 폭 1~2m 널빤지를 댄 '잔교(棧橋)'. 곳곳에 옹이가 빠져 드러난 구멍으로 허공과 함께 이 잔교의 부실한 정체가 보인다. 두께는 겨우 2~3㎝. 그 위에 지금 20여명이 서 있다. 동굴 사방 벽엔 온통 불상(佛像)이다. 간쑤성(甘肅省) 병령사 석굴은 그렇게 천불동(千佛洞) 만불동(萬佛洞)이었다.
황하(黃河) 세 협곡의 물을 막았다 해서 황하삼협(黃河三峽)댐으로도 불리는 유가협댐의 상류. 하류엔 황토흙에 실어온 온갖 영양분을 선물하는 황하이지만 정작 그 고향 주변 땅엔 선물한 게 별로 없었다. 해발 420m 시안에서 톈수이(天水)를 거쳐 해발 1500m 란저우(蘭州)에 이르기까지, 서북향 길은 끝없는 오르막. 그동안 차창 밖에선 녹색을 황색이 대체하고 옥수수는커녕 풀도 귀해졌다. 그러나 하늘은 무심치 않았다. 댐 선착장에서 작은 보트에 몸을 맡겨 물안개 헤쳐가길 54㎞, 한 굽이 돌아서니 바로 선경(仙境)이다.
무딘 칼로 내리찍은 듯 우툴두툴한 수직 절벽이 병풍처럼 둘러 펼쳐진 천하의 기암절벽들. 그 자연의 위대함에 겸손해진 인간들은 신앙심이 솟았던 모양이다. 절벽에 잔교를 놓고 올라가 굴 수백 개를 파고 색색의 그림 그리고 조각을 새겼다. 하이라이트는 역시 대불(大佛). 상체는 석벽을 깎은 마애불이고, 하체는 나무로 뼈대를 세우고 흙을 발라 만들었다는 당나라 때 불상은 이집트 아부심벨의 람세스상(像)을 연상케 한다.
의자에 앉은 모습도 그렇고 크기도 비슷하다. 이집트는 아스완댐을 만들면서 람세스상을 70m 옮겼지만 중국은 유가협댐을 만들 때 병령사 석굴들이 물에 잠기지 않도록 설계했다고 한다. 하긴 석굴을 옮기려면 산을 통째로 옮겨야 하니 아무리 우공이산(愚公移山)의 나라 중국이라 해도 그건 힘들었을 것이다. 그래도 와불(臥佛) 한 점은 떼어내 계곡 맞은편 전시관에 옮겨 놓았다.
#2. 1600년 시간을 뒤섞다
그 전날 찾은 톈수이 인근 맥적산(麥積山)은 보릿단을 쌓아놓은 모양이라는 뜻 그대로다. 뒷덜미엔 소나무가 무성한 산이 동남쪽만은 지표면에서 60~70m에 이르는 깎아지른 절벽이었다. 여기도 인간은 그냥 두지 않고 굴을 파고 조각 새기고 그림 그렸다. 5호16국시대, 즉 4~5세기부터 파기 시작했다는 굴에는 불상은 당나라, 주변 벽화는 청나라 때 그린 것이 혼재돼 1600년 시간이 뒤섞여 있었다.
지상 50m라 했다. 발아래엔 높이 27m짜리 대불(大佛)이 벽에 기대어 있는 걸 알지만 내려다볼 엄두가 나질 않는다. 삐걱거리고 휘청거리는 나무 사다리를 타고 올라오는 동안 이미 공포는 온몸 가득 팽창했다. 바위를 뚫어 횡(橫)으로 나무를 박고 그 위에 폭 1~2m 널빤지를 댄 '잔교(棧橋)'. 곳곳에 옹이가 빠져 드러난 구멍으로 허공과 함께 이 잔교의 부실한 정체가 보인다. 두께는 겨우 2~3㎝. 그 위에 지금 20여명이 서 있다. 동굴 사방 벽엔 온통 불상(佛像)이다. 간쑤성(甘肅省) 병령사 석굴은 그렇게 천불동(千佛洞) 만불동(萬佛洞)이었다.
황하(黃河) 세 협곡의 물을 막았다 해서 황하삼협(黃河三峽)댐으로도 불리는 유가협댐의 상류. 하류엔 황토흙에 실어온 온갖 영양분을 선물하는 황하이지만 정작 그 고향 주변 땅엔 선물한 게 별로 없었다. 해발 420m 시안에서 톈수이(天水)를 거쳐 해발 1500m 란저우(蘭州)에 이르기까지, 서북향 길은 끝없는 오르막. 그동안 차창 밖에선 녹색을 황색이 대체하고 옥수수는커녕 풀도 귀해졌다. 그러나 하늘은 무심치 않았다. 댐 선착장에서 작은 보트에 몸을 맡겨 물안개 헤쳐가길 54㎞, 한 굽이 돌아서니 바로 선경(仙境)이다.
무딘 칼로 내리찍은 듯 우툴두툴한 수직 절벽이 병풍처럼 둘러 펼쳐진 천하의 기암절벽들. 그 자연의 위대함에 겸손해진 인간들은 신앙심이 솟았던 모양이다. 절벽에 잔교를 놓고 올라가 굴 수백 개를 파고 색색의 그림 그리고 조각을 새겼다. 하이라이트는 역시 대불(大佛). 상체는 석벽을 깎은 마애불이고, 하체는 나무로 뼈대를 세우고 흙을 발라 만들었다는 당나라 때 불상은 이집트 아부심벨의 람세스상(像)을 연상케 한다.
의자에 앉은 모습도 그렇고 크기도 비슷하다. 이집트는 아스완댐을 만들면서 람세스상을 70m 옮겼지만 중국은 유가협댐을 만들 때 병령사 석굴들이 물에 잠기지 않도록 설계했다고 한다. 하긴 석굴을 옮기려면 산을 통째로 옮겨야 하니 아무리 우공이산(愚公移山)의 나라 중국이라 해도 그건 힘들었을 것이다. 그래도 와불(臥佛) 한 점은 떼어내 계곡 맞은편 전시관에 옮겨 놓았다.
#2. 1600년 시간을 뒤섞다
그 전날 찾은 톈수이 인근 맥적산(麥積山)은 보릿단을 쌓아놓은 모양이라는 뜻 그대로다. 뒷덜미엔 소나무가 무성한 산이 동남쪽만은 지표면에서 60~70m에 이르는 깎아지른 절벽이었다. 여기도 인간은 그냥 두지 않고 굴을 파고 조각 새기고 그림 그렸다. 5호16국시대, 즉 4~5세기부터 파기 시작했다는 굴에는 불상은 당나라, 주변 벽화는 청나라 때 그린 것이 혼재돼 1600년 시간이 뒤섞여 있었다.
![‘모래가 운다’는 뜻의 둔황 명사산 모래 비탈에 관광객들이 발자국으로 글자를 썼다.](http://travel.chosun.com/site/data/img_dir/2015/02/25/2015022502399_2.jpg)
#3. 고속도로 전 마지막 주유소
마지막 방문지는 둔황. 란저우에서 침대기차를 타고 12시간 반, 하룻밤을 꼬박 달려 도착한 사막 속 오아시스 도시였다. 들어가면 살아 돌아오기 어렵다는 타클라마칸 사막 직전 마지막 오아시스, 요즘 식으로 치면 '고속도로 전 마지막 주유소'다. 먼저 간 사람과 낙타의 해골을 이정표 삼아 걷는다는 길이다.
그래서인지 이곳에 동굴을 파고 그린 벽화에선 비장한 아름다움이 더한 것 같았다. 스카이다이빙하듯 상체가 아래로 향하고 다리와 옷깃은 하늘을 향해 나풀거리는 비천상(飛天像)들은 저 죽음의 사막을 건너온 이들에겐 자신을 반기는 천사와 다름없었을 것이다. 부처와 보살이 늘어선 극락세계를 그린 벽화들은 명사산(鳴沙山) 넘어 길 떠날 이들에겐 사막 너머 그들이 꿈꾸는 서방정토처럼 보였을 게다.
현장 스님처럼 중국에서 출발한 이들도 생환(生還)을 기약하기 어려운 길, 서라벌을 떠나 장안에서 좀 쉬었다 이 사막 앞에 섰을 때 혜초 스님의 머릿속 계획표엔 신라로의 귀국은 아예 없었을 수 있겠다. 사즉생(死則生), 로프 없이 번지점프하듯 백척간두에서 몸을 던지는 각오로 떠난 길이기에 그의 '왕오천축국전'은 세계인의 보배로 남은 모양이다. 막고굴을 떠나 차로 2~3분 달렸을 뿐인데도 뒤돌아보니 모래바람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방금 본 화려한 석굴과 벽화, 불상들은 신기루였던가.
마지막 방문지는 둔황. 란저우에서 침대기차를 타고 12시간 반, 하룻밤을 꼬박 달려 도착한 사막 속 오아시스 도시였다. 들어가면 살아 돌아오기 어렵다는 타클라마칸 사막 직전 마지막 오아시스, 요즘 식으로 치면 '고속도로 전 마지막 주유소'다. 먼저 간 사람과 낙타의 해골을 이정표 삼아 걷는다는 길이다.
그래서인지 이곳에 동굴을 파고 그린 벽화에선 비장한 아름다움이 더한 것 같았다. 스카이다이빙하듯 상체가 아래로 향하고 다리와 옷깃은 하늘을 향해 나풀거리는 비천상(飛天像)들은 저 죽음의 사막을 건너온 이들에겐 자신을 반기는 천사와 다름없었을 것이다. 부처와 보살이 늘어선 극락세계를 그린 벽화들은 명사산(鳴沙山) 넘어 길 떠날 이들에겐 사막 너머 그들이 꿈꾸는 서방정토처럼 보였을 게다.
현장 스님처럼 중국에서 출발한 이들도 생환(生還)을 기약하기 어려운 길, 서라벌을 떠나 장안에서 좀 쉬었다 이 사막 앞에 섰을 때 혜초 스님의 머릿속 계획표엔 신라로의 귀국은 아예 없었을 수 있겠다. 사즉생(死則生), 로프 없이 번지점프하듯 백척간두에서 몸을 던지는 각오로 떠난 길이기에 그의 '왕오천축국전'은 세계인의 보배로 남은 모양이다. 막고굴을 떠나 차로 2~3분 달렸을 뿐인데도 뒤돌아보니 모래바람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방금 본 화려한 석굴과 벽화, 불상들은 신기루였던가.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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