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비치.

< 일요신문 > 지령 1000호를 맞아 잠시 우리나라 바깥 여행지로 눈을 돌려봅니다. 지루하게 장마가 이어진 탓인지 푸른 하늘과 바다, 그리고 붉은 석양이 그립습니다. 그래서 그 마음 '접수'하고 환상의 섬 보라카이를 내놓습니다. 직항 비행편도 늘어서 다녀오는 데 불편함이 없습니다. 올여름에는 이 멋진 섬으로 과감히 떠나보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아시아 남동쪽에 자리한 필리핀은 섬으로 이루어진 나라입니다. 무려 7000여 개의 크고 작은 섬들이 산재해 있습니다. 보라카이도 그중 하나입니다. 필리핀 파나이섬의 북서부에 딸린 보라카이는 그 규모가 크지는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라카이는 가히 '필리핀의 보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만 3000명이 거주하는 보라카이는 오이처럼 길게 누운 산호섬입니다. 길이가 7㎞인 데 반해 너비는 1㎞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보라카이가 지닌 매력은 도무지 가늠할 수 없을 지경입니다. 끝도 없이 펼쳐진 에메랄드빛 바다와 세상을 다 태울 듯 사위를 새빨갛게 물들이는 석양, 마치 머리 위로 쏟아질 것처럼 밝게 부서지는 무수한 별들, 밤이면 더욱 생기를 띠는 상업중심지 D-Mall. 생각만으로도 황홀한 섬, 보라카이를 향해 떠납니다.

보라카이로 가는 길은 그리 만만치 않습니다. 일단 보라카이에는 공항이 없습니다. 따라서 파나이섬의 깔리보공항을 이용해야 합니다. 예전에는 이 공항으로 가는 직항 비행기도 없어서 마닐라로 먼저 건너가야 했습니다. 그곳에서 다시 비행기를 타고 깔리보공항으로 가는 방식이었습니다. 비행기 연결 시간이 짧은 경우야 그나마 괜찮지만, 길어질 경우 4~5시간을 넘길 때도 있어서 버려지는 시간이 무척 아깝습니다. 어떻게 쥐어짠 시간들인데 말이죠.





산정에서 굽어본 보라카이의 모습.

그러나 요즘은 깔리보로 가는 직항이 생겨 시간을 절약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인천에서 4시간 30분 정도 하늘길을 날아가면 깔리보공항에 닿습니다. 여기서부터는 육로를 달린 후 배를 갈아타야 보라카이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1시간 20분 정도 버스를 타고 보라카이행 선착장이 있는 까띠끌란으로 갑니다. 파나이섬의 시가지와 시골을 지나는 길입니다. 피곤하지만 그 이국적 풍경이 졸음을 몰아냅니다. 까띠끌란에서는 배를 타고 20분만 가면 보라카이입니다. 어서 보라카이를 만나고 싶다는 조급함 때문에 그 시간이 길게 느껴집니다.

필리핀은 우기와 건기가 뚜렷합니다. 6월부터 11월까지는 비가 많은 우기입니다. 이때는 보라카이의 서쪽 화이트비치가 아니라 동쪽 블라복비치에 배를 댑니다. 서쪽은 바람이 드세고, 파도가 높기 때문입니다. 블라복비치에서 리조트들이 몰려 있는 화이트비치까지는 삼발이라고 알려진 트라이시클을 타고 20여 분 정도 가면 됩니다. 제법 스릴이 느껴지는 '탈것'입니다.

보라카이는 동서 해변의 풍광이 아주 다릅니다. 동쪽이 수초를 비롯해 개펄이 다소 섞여 있는 반면, 서쪽은 그야말로 쌀가루처럼 하얀 백사장입니다. 그래서 이 서쪽의 백사장을 화이트비치라고 부릅니다. 이 해변은 산호초들이 부서져서 이뤄졌습니다. 그 길이가 무려 3.5㎞나 됩니다.

세계 3대 해변으로 꼽히는 화이트비치의 아름다움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지경입니다. 뭉게구름 낮게 드리운 파란 하늘과 에메랄드빛 바다, 그리고 눈부시도록 빛나는 백사장. 그림으로나 봐왔던 파라다이스의 풍경입니다.

그저 수영을 하거나, 백사장을 거닐거나, 혹은 야자수 그늘 아래서 낮잠을 청하거나 한가하게 시간을 보내는 것도 좋지만 보다 역동적으로 즐겁게 시간을 보내는 것도 괜찮습니다. 보라카이에는 즐길 만한 레포츠들이 많습니다. 호핑투어와 산악오토바이, 세일링보트 등은 선택해도 후회가 없습니다.

호핑투어는 배를 타고 나가 섬 일주를 한 후 배낚시와 스노클링을 즐기는 프로그램입니다. 물고기가 입질을 하는 모습까지 보이는 투명한 바다에서 즐기는 낚시는 기분이 색다릅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렇게 잡은 물고기를 배 위에서 회로 떠먹는다는 사실, 그것도 열대어를 말이죠. 필리핀 사람들은 원래 생선을 날 것으로 먹지 않습니다. 한국인 여행객이 워낙 많아 입맛을 맞추기 위해 회 뜨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생선비린내가 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자외선이 워낙 강해 바로 살균되기 때문입니다.





호핑투어를 하는 모습.

스노클링이 다소 밋밋하게 느껴진다면 스쿠버다이빙에 도전해보는 것도 좋습니다. 화이트비치 곳곳에 다이빙전문점이 있습니다. 산소통을 짊어지고 보라카이의 바다로 첨벙 들어가 열대어들과 노니는 30분 남짓의 기억이 두고두고 남습니다.

화이트비치와 함께 명품해변에 속하는 푸카셀비치는 산악오토바이 투어코스에 포함돼 있습니다. 이효리가 등장한 광고 때문에 '망고비치'란 이름을 갖고 있는 푸카셀비치는 화이트비치에 비해 모든 것이 더 진합니다. 그래서 이곳에서 찍은 사진은 인상화가의 작품을 연상케 합니다. 만약 한 가지 레포츠프로그램만 선택해야 한다면 단연 세일링보트입니다. 커다란 삼각돛이 달린 보트를 타고 무서운 속도로 바다를 질주하다보면 마음 속 찌꺼기들이 다 씻겨 내려가는 듯합니다. 보트를 타기에는 해가 뉘엿뉘엿 질 때쯤이 제일입니다. 하늘과 바다를 모두 붉게 물들이는 석양을 보며 보트를 타는 모습, 상상만 해도 멋있지 않은가요.

이윽고 밤이 되지만, 보라카이는 쉽게 잠들지 않습니다. 촘촘히 박힌 하늘의 별이 다시금 보라카이를 밝히고, D-Mall은 쇼핑객들로 북적입니다. 골목골목 뒤척이다가 여행객들의 발걸음이 결국 향하는 해변가 맥주바. 사탕수수로 빚은 산미구엘의 부드러운 목넘김에 테이블 위 빈병은 자꾸만 늘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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