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유럽/스페인

스페인 캄포 데 크립타나 - 라 만차의 풍차마을

반응형

메마른 대지, 갈색 평원. 돈 키호테의 무대로 유명한 캄포 데 크립타나(캄포 데 크리프타나, Campo de Criptana)의 언덕 위에는 10여 개 풍차가 이상향의 세계를 꿈꾸는 듯 서 있다. 스페인의 유명한 소설가 세르반테스에 의해 묘사된 라 만차의 풍차마을, 소설의 무대였지만 캄포 데 크립타나에 서면 라 만차의 광활한 대지는 마치 현실처럼 포근하기만 하다.

광활한 라만차 평원 위 캄포 데 크립타나 언덕. 하얀 풍차 사이로 시간도 숨을 쉰다.



아련한 그리움의 언덕, 캄포 데 크립타나

뻥 뚫린 하늘 아래로, 황갈색 평원이 끝없이 펼쳐진다. 끝을 알 수 없는 평원을 지난다. 라만차의 태양을 마주하고, 끝 간데없는 지평선을 바라보는 것. 돈 키호테가 시나브로 떠오르는 순간이다. 그리고 다시 두 단어가 오버랩 된다. 공허함, 그리고 평원, 그 자체가 라만차의 독특한 아름다움이다.


돈 키호테의 연인 둘시네아가 살던 흰 벽의 거리 엘 토보소를 지나 소설 속 무대로 발길을 돌린다. 새털구름 한들거리는 한가한 오후, 라 만차의 풍차마을 캄포 데 크립타나는 호기심 그득한 이방인에게 소설 같은 마을로 다가선다. 그 유명한 소설 속의 주인공 돈 키호테, 그리고 이국적인 하얀 풍차는 라만차 언덕 위에서 너무나 잘 어우러진다. 유럽, 그중에서도 이베리아 반도의 독특한 풍광을 이고 있는 라 만차의 캄포 데 크립타나를 만나러 가는 여정은 한가롭고 느긋하다. 평화로운 들판 캄포 데 크립타나를 만나기 위해 수도 마드리드를 출발한다. 고도 톨레도를 지나고 이내 메마른 대지 위로 하얀 마을 캄포 데 크립타나가 그림처럼 나타난다.

뭉게구름과 유채꽃 피어 오르는 라만차의 풍차는 낭만의 대상이다.


풍차가 아닌 새하얀 벽이 먼저 눈앞에 다가선다. 지방색 강한 작은 집들과 그 집들을 장식한 파란색이 이 도시의 첫인상 위에 또 하나의 색채를 더해준다. 완만한 경사 길에 구불구불 여러 갈래로 갈라진 시골마을의 골목 사이를 기웃거리듯 걷는 것도 흥미롭다. 도무지 풍차는 제 모습을 쉬이 드러내지 않았다. 그러나 골목을 두리번거리다 마을의 언덕에 오르면 집들 사이로 하얀 풍차들이 얼굴을 내밀기 시작한다.


한들거리는 유채꽃밭 사이로 고개를 내민 풍차들. 돈 키호테가 거인 브리아레오스로 오해하고 돌격했다는 그 풍차들이 햇살 아름다운 오후에, 텅 비어 있는 듯한 고요한 마을 캄포 데 크립타나에서 상징처럼 이방인을 반긴다.


마을의 풍광은 한편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 같다. 혹은 영화 속 마지막 장면처럼 강렬한 영상미로 다가선다. 하늘거리는 들풀들, 풍차 사이로 이어지는 먼지 폴폴 피어 오르는 마을 언덕 위의 오솔길이 그것이다. 마을 아이들은 벌써 동구 밖 언덕 위에서 풍차와의 숨바꼭질을 시작한 지 오래다. 마을의 어른들도 유일한 공터이자 놀이터인 풍차 언덕에 올라 초여름 청량한 공기를 들이마시며 세월을 노래한다.

마을 언덕 위에서 바라보는 풍차는 그 자체로 하얀 그리움이다.



외로움도 낭만이 되는 곳, 캄포 데 크립타나

붉은 노을이 대지를 물들이기 시작한다. 언덕 너머로 개와 함께 달음박질하던 청년의 모습은 지는 노을 속에서 한편의 서정시처럼 이방인의 가슴에 강렬한 영상으로 회오리친다. 마을을 굽어보고 있는 몇몇 카페의 테라스에서는 오순도순 정담이 오간다. 마주치는 카페마다 레스토랑마다 독특한 디자인의 간판들로 정겹고, 골목들은 온통 낭만의 물결이다.


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멋진 테라스에 앉은 여행객들은 시원한 맥주잔을 기울이며 틀림없이 돈 키호테를 그리워했을 것이다. 작가 세르반테스가 이곳을 무대로 자유와 정의를 갈구하는 인간적인 돈 키호테를 탄생시킨 데에는 이 작은 도시를 관통하는 돈 키호테적 기질이 머물고 있음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캄포 데 크립타나의 로맨틱한 저녁 노을.


이상과 현실, 환상과 사실의 충돌이 머무는 이곳 캄포 데 크립타나. 대도시와 격리되어 있는 작은 시골마을의 폐쇄성. 작은 도시 공간이 가져다주는 소외감과 적막함은 마을의 젊은이들에게 방황과 좌절을 경험하게 했을 것이다. 여기에서 작가 세르반테스도 자신의 꿈과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저돌적으로 나아가는 돈 키호테의 성격을 만났을 것이다.


작은 골목길이 무성한, 답답한 마을의 현실성은 풍차의 이미지와 상반된, 지극히 현실적인 이미지를 가져다준다. 드넓은 대지 위에서 하늘과 땅과의 끊임없는 대화가 가능했을 풍차들은 이 작은 마을 사람들의 삶을 관통하는 방황과 격정을 함께 호흡했으리라. 도시의 골목길은 한가롭고 평온하다. 역시나 돈 키호테의 이미지를 그대로 안고 있는 마을 사람들은 이상과 현실의 괴리, 고독과 정체의 감정들을 다스리며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캄포 데 크립타나에서라면 외로움은 그 자체로 낭만이 된다.


마을 언덕 위에 10개의 풍차가 뭉게구름과 푸른 하늘을 이고 돈 키호테의 꿈과 이상을 노래하고 있는 캄포 데 크립타나는 오늘의 태양과 마주하고 서 있다. 스페인의 이단아, 변방의 작고도 평온한 라 만차는 환상과 이상을 추구하는 자유로운 여행자들에게 분명 영원히 잊히지 않을 추억의 무대가 될 것이다.



가는 길
서울에서의 직항편이 없으므로 KLM항공으로 서울에서 암스테르담을 경유, 마드리드로 들어가면 된다. 마드리드의 아토차역에서 캄포 데 크립타나까지 2시간 정도 소요된다. 열차는 대부분 밤에 출발하므로 성수기에는 숙소를 예약하고 출발하는 게 좋다. 마드리드에서 오전에 출발하는 당일치기 여행이라면 렌터카로 다녀오는 것도 좋다. 환승과 걷는 시간을 생각한다면 오히려 기차나 버스보다 효율적일 수 있겠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