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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스페인

스페인 바르셀로나 : 스토리만 보면 막장 중에 막장 스페인 하늘 아래니까 까짓 것 참아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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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만 보면 막장 중에 막장 스페인 하늘 아래니까 까짓 것 참아준다

소피아 코폴라의 영화 'Lost In Translation'은 제목과 전혀 다른 의미인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라는 제목으로 개봉되어 큰 화제가 되었었다. 닉 혼비 원작의 'High Fidelity'는 '사랑도 리콜이 되나요?'라는 제목으로 개봉되었는데, 그 이후 '사랑도 리필이 되나요?' '사랑도 흥정이 되나요?' 같은 제목이 연달아 나와 소개되었다.

나이 칠십에도 여전히 일 년에 한 편은 영화를 만들고 있는 우디 앨런의 '비키, 크리스티나, 바르셀로나'는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라는 엉뚱한 제목으로 개봉되었다. 재미있는 건 영화의 제목만 바뀐 게 아니라 포스터도 교묘히 수정되었다는 것이다. 섹시 아이콘으로 알려진 스칼렛 요한슨의 가슴은 조금 더 부풀어 올랐고, 그녀의 상의는 포토샵에 의해 조금 더 지워졌다. 이 영화의 막장 코드를 조금 더 부각시키기 위한 의도된 장치들이다. 사실 영화의 줄거리만 놓고 보자면 막장도 이런 막장극이 없다. 약혼녀의 외도, 유부녀의 외도와 더불어 포르노의 단골 소재인 스리섬까지.

'사랑밖에 난 몰라'라고 주장하는 낭만적인 로맨티스트 '크리스티나'와 지극히 현실적이고 이성적인 '비키'는 스페인의 '바르셀로나'로 휴가를 온다. 이들은 이곳에서 열정적인 화가 후안 안토니오 곤잘레스를 만나 오비에도라는 섬으로 놀러 가게 된다. '아름다운 섬에서의 관광과 즉흥적인 섹스'를 제안한 후안에게 호의적인 크리스티나와 달리 비키는 이 호색한에게 악의를 느낀다. 하지만 우연히 후안이 건 마술 같은 사랑에 사로잡힌 비키는 그와 사랑을 나누게 되고, 예정된 결혼을 위해 바르셀로나로 돌아가게 된다.

영화‘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에서 로맨티스트 크리스티나와 이성주의자 비키는 스페인의 도시 바르셀로나에서‘이루어지지 않는 로맨스’를 즐긴다. 사진은 1992년 올림픽유치 후 조성된 인공해변 바르셀로네타. 
비키가 혼란스러워하던 그때, 바르셀로나에 남게 된 크리스티나와 후안은 둘만의 사랑을 쌓아가며 꿈 같은 나날을 보낸다. 그러던 어느 날, 후안의 전처 '마리아'가 둘 사이에 나타난다. 그들의 불안정한 동거생활도 끝나는 듯했지만, 어느새 가까워진 마리아와 크리스티나는 사랑을 나누며 기묘한 삼각관계에 빠져들게 된다.

태초에 삼인조가 있었다. 연애는 둘이 하는 것이라 생각하지만 우리는 이런 '삼인조' 이야기에 늘 열광해왔다. 이 영화의 후안, 크리스티나, 마리아 역시 그렇다. '수퍼맨'은 어떤가. 로이스와 클라크, 로이스와 수퍼맨. 여자 하나에 남자가 둘이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토마스와 테레사, 사비나의 경우는 어떤가. '줄 앤 짐' 역시 비슷한 경우다.

클라크와 수퍼맨은 같은 인물이지만 로이스에게 이 둘은 분명 다른 남자이다. 찾아보면 그런 예는 의외로 많다. 니체와 루 살로메 프로이드의 경우, 달리와 갈라, 피카소의 삼각연애…. 어디 그뿐인가. 성경에는 최초의 삼인조가 등장한다. 아담과 이브 그리고 뱀. 숫자 삼이 만드는 그 뾰족한 꼭짓점들은 세 사람 모두의 삶의 표면들을 찔러대며 비명을 낭자한 후에야 삶의 균열들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야기꾼의 본능은 바로 이런 비명 어린 균열에서부터 시작된다.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의 원제가 '비키, 크리스티나, 후안'이 아닌 '비키, 크리스티나, 바르셀로나'가 된 것은 영화의 배경인 '바르셀로나'가 이 해프닝에 기이한 정당성을 부여해주기 때문이다. 그렇다. 어떤 이야기는 특정한 장소가 아니고서는 설명하기 힘들다. 만약 이 영화의 배경이 '도쿄'였다면 영화는 성립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곳이 로맨스 영화의 단골인 '파리'나 '뉴욕'이었다 해도 마찬가지다.

이런 막장 줄거리가 혐오스럽지 않기 위해선 넘쳐흐르는 많은 종류의 '빛'과 '호르몬'이 필요하다. 스페인의 태양, 싸고 달콤한 와인, 천재 건축가 가우디가 지은 물결처럼 흐르는 성당과 기이한 정원들 말이다. 영화가 젖은 모래를 떨어뜨릴 때의 형상을 모티브로 한 '사그라다 파밀라' 성당을 비추고, 사막과 땅을 주제로 한 '카사밀라'와 카사 바트요 등을 보여주는 건 철저히 관광객의 시선이지만 계산된 그 시선 아래에는 '한여름 밤의 꿈'처럼 사라질 로맨스를 숨기고 있다.

만약 바르셀로나 그 뜨거운 태양 아래가 아니라면 그토록 못생긴 '하비에르 바르뎀'이 매력적인 남자로 보이진 않았을 것이다. 지중해의 뜨거운 태양은 그가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미치광이 살인마 '안톤 시거'였다는 것조차 잊게 한다. 하루키의 소설 '1Q84'가 달이 두 개 뜨는 세상에서 만난 소년과 소녀의 사랑을 다루었다면 우디 앨런은 태양이 지금보다 두 배로 뜨거워진 세상의 남자와 여자의 사랑을 다루었다. 그러므로 그 미친 태양빛이 사라질 때, 한순간의 로맨스는 '정신 차려, 이 친구야~'로 끝날 가능성이 많다. 비행기를 타고 나면 그 신기루처럼 모두 다 사라질 테니까 말이다.

서로를 미치도록 좋아하고도 맞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한 남자 주인공 후안은 사랑의 지속성을 '불균형'이란 말로 설명한다. 모든 걸 넘치도록 가지고 있지만 소금이 없다면? 칼슘은 과도하고 비타민이 하나도 없다면? 결국 그 사랑은 지속되기 힘들 것이다. 하지만 지속되지 못한 사랑, 미완성의 사랑에는 '로맨스'가 축복처럼 남는다. 첫사랑의 추억이 재생 반복되는 것도 결국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 아닌가. 어쩌면 20세기 인간들이 발명해낸 '여름휴가'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좋은 건 '이루어지지 않은 로맨스'일지도 모른다.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
 거장 우디 앨런 감독의 영화. 할리우드의 섹시 아이콘 스칼렛 요한슨과 영국 출신의 연기파 배우 레베카 홀, 스페인의 국민배우 페넬로페 크루즈와 하비에르 바르뎀이 출연했다. 미치광이 아내 ‘마리아 엘레나’ 역을 맡은 페넬로페 크루즈는 이 영화로 2009년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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