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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미얀마

미얀마 인레호수 : 창밖으로 펼쳐지는 몽환적인 새벽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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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Myanmar)는 순박하다. 시간을 거스르는 불교유적과 소수민족들의 천진난만한 삶이 그 안에 옹골지게 녹아 있다. 황금 사원으로 채색된 불교의 흔적만 섭렵했다면 미얀마의 감동은 웅장하거나 경건함 쪽에 가까웠을지 모른다. 정신이 아득해진 것은 산속에 또 다른 세상을 만들어낸 호수와 사람들 때문이다. 미얀마 북동쪽 샨 지방의 인레호수(Inle Lake)에서 만난 흔적들은 모두 상상 밖의 모습들이다.

인레호수의 소수민족에게 호수는 삶이고 버팀목이다. 나룻배 위에 도열해 긴 장대로 물을 쳐서 고기를 쫓는 풍경은 숭고하기까지 하다.

인레호수에서는 새벽을 맞을 일이다. 창 너머로 물안개가 피어오르고, 수상 사원에서 흘러나온 낮은 톤의 불경 소리는 호수 위에 자욱이 깔린다. 호수에 사는 부족들은 장대로 물을 내리치며 여명 속을 가로지른다. 이 모든 풍경이 침실에 누운 채, 창밖에서 몽환적으로 펼쳐진다. 단언컨대 평생 경험하지 못한 벅찬 새벽이 그곳에 있다.

나룻배와 보트는 인레호수에 기대 사는 사람들의 주요교통수단이다.

인레호수까지 가는 길이 녹록하지는 않다. 헤호(Heho)에서 내려 시골길을 덜컹거리며 한참을 달려야 산정호수를 만난다. 해발 880m의 고원지대에 위치한 인레호수는 규모로만 따지면 미얀마에서 두 번째로 큰 호수다. 길이 22km, 폭 11km에 호수 위의 수상마을만 17곳에 다다르지만 그 존재를 아는 이들은 많지 않다. 에코투어의 독특한 풍경을 담으려는 몇몇 여행 잡지의 표지를 장식했을 뿐이다.

고산족의 호수에서 새벽을 맞다


대부분의 여행자들은 호텔과 게스트하우스, 식당 등이 밀집돼 있는 호수 북쪽 마을 낭쉐(Nyaungshwe)에 머무른다. 이곳에서 호수로 나서는 보트를 빌릴 수도 있고 낯선 투어를 찾아 나선 유럽의 배낭여행자들도 만날 수 있다. 하지만 발품을 팔아 호숫가 숙소에서 잠을 청해 볼 일이다. 수상 가옥 위의 외딴 방갈로에 묵는 것도 좋다. 호수에 대한 찬미는 물 위에서 새벽과 노을을 맞았을 때 한층 더 숙연해진다.

목에 굴렁쇠를 찬 까렌족 소녀들.

호수 위의 방갈로에 묵으면 새벽녘 신비로운 풍경을 만날 수 있다.

미얀마에만 160여 개의 소수민족이 살아간다. 동북부의 지방은 중국, 라오스 등과 맞닿아 있으며 고산지대 사람들의 터전이 된 땅이다. 호수 주변으로는 샨족, 인타(Intha)족, 파오(Pa-o)족이 거주한다. 붉은 두건을 머리에 감싸거나 목에 굴렁쇠를 찬 고산족과 마주치는 것은 이곳에서는 흔한 일이다.

인타족들은 호수에서 태어나 호수에 기대 생활하며
물 위에서 생을 마감한다.

호수 위의 나룻배 상점. 배 위에서 거래가 이뤄지기도 한다.

그중 호수 위에 사는 부족들의 풍경은 낯설고도 독특하다. 인레 호수의 오랜 주인은 인타족이다. 장대로 물을 내리치며 새벽을 알리는 것도 그들이고 서커스를 하듯 한 발로 노를 저으며 호수를 가로지른 것도 인타족들이다. 1,500여 명의 인타족들은 고기를 잡고 수경재배를 하며 인레호수에 기대 살아간다. 그들의 미얀마 이름에는 ‘호수의 아들’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인레호수가 세간에 알려진 것도 호수에서 태어나 물 위에서 생을 마감하는 그들의 생경한 삶 때문이다.

발로 노를 젓는 호숫가 사람들

한발로 노를 젓는 인타족들의 풍습은 독특하면서도 신비롭다.

인타족들의 노젓는 법을 보면 아슬아슬하면서도 신비롭다. 한발은 배 위에 딛고 다른 발 장딴지에 노를 끼어 젓는다. 드넓은 호수에서 방향감을 잃지 않기 위해서인데 노를 저으면서도 양손을 이용해 그물을 내리곤 한다. 여러 척의 나룻배가 도열한 채 장대로 번갈아 내리치며 물고기를 잡는 장면은 의식을 치르듯 거룩하다. 고기잡이 외에도 이들은 갈대와 대나무를 이용해 물위에 밭을 만들어 수경재배를 하며 생계를 이어간다. 수상가옥에서 살고 수상학교에 다니며 호수 위의 밭을 일구니 땅을 밟을 일이 따로 없다. 이곳에서 나온 토마토 등의 채소는 인근 고산족들과 물물교환으로 바꿔 먹기도 한다.

호수 가운데 파웅도우 사원은 호숫가 부족들에게는 사랑방 같은 곳이다. 사원 인근에는 수상시장도 들어서며 사람들은 사원 경내에서 낮잠을 즐기기도 한다. 분홍빛 가사를 입은 ‘띨라신’(비구니)과 배를 타고 유람을 가는 선글라스 낀 ‘폰지’(남승)와도 마주치는 정겨운 풍경이다. 사원에서는 매년 가을이면 부처를 배에 태우고 수상가옥을 순회하는 파웅 도우 축제가 열린다. 파오족들의 잔치인 까띠나 축제(Kathina civara)도 음력 9월 15일부터 한 달간 호수 인근에서 계속된다. 산속 은밀한 호수에 살아도 여흥을 즐기는 데는 예외가 없다.

인레호숫가의 5일장때는 모든 부족들이 한자리에 모인다.

타네카를 바른 여인. 미얀마 여인들은 얼굴 피부를 보호하기 위해 타네카라는 나뭇가루를 바른다.

호수 주변으로는 5일장이 들어선다. 인근에 사는 고산족들을 한꺼번에 만날 수 있는 시끌벅적한 시간이다. 장터에 나선 여인들은 얼굴에 하얀 분가루를 칠하고 있다. 뙤약볕 아래 하얀 피부를 유지하기 위해 여인들은 얼굴에 타네카라는 나뭇가루를 바른다. 장터에는 말린 타네카 나무를 장작처럼 쌓아놓고 팔기도 한다. 고산족들의 시골 장터지만 들여다보면 없는 게 없다.

인레 호수의 풍광은 미얀마에서 지나쳐온 것들과는 분명 다르다. 미얀마 사람들이 내륙 깊숙이 여행하려면 한 달 월급과 맞먹는 값비싼 경비를 치러야 한다. 그들에게는 단절된 여행지였던 인레호수는 덕분에 고혹스러운 풍경과 새벽을 품어내고 있다.

가는 길
미얀마까지는 태국 방콕을 경유해 양곤으로 들어가는 게 일반적이다. 양곤에서 헤호까지 항공기를 이용해야 한다. 중간에 주요 도시를 두루 경유한다. 도로상황이 좋지 않아 버스로 이동하면 한나절 가까이 소요되기도 한다. 편견과 달리 미얀마에서의 여행은 안전한 편이다. 북쪽 인레호수 지방은 낮에는 더워도 저녁이나 아침 기온은 뚝 떨어져 긴팔 옷을 준비해야 한다. 최근에 호수가 세간에 알려진 뒤로 호수의 훼손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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