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마다 냄새가 있다. 미국에 자주 가는 한 지인은 미국 모 회사의 알싸한 카펫 세제 향기를 '미국 냄새'라 하고, 중국 유학 생활을 오래 했던 한 친구는 매캐한 매연 내음을 '중국 냄새'라고 부른다. 호불호를 떠나 저마다 기억과 경험에 근거한 지극히 주관적인 정의다. 서울서 입고온 두터운 외투를 훌훌 벗어던지고, 싱가포르 창이공항에 내렸다. 이제 막 스콜이 지나간 자리에 청량한 기운이 감돈다. 맑다. 듣던 대로, 상상한 그대로. 너무 깨끗해서 '무향'이다.





 

사진제공=마리나 베이 샌즈

▶싱가포르 새 명물, 마리나 베이 샌즈=뉴욕 센트럴파크 부럽지 않게 잘 가꿔진 공원들 사이사이, 질서정연하게 뻗은 도로를 15분 남짓 달렸다. 어마어마한 랜드마크 앞에 차가 멈췄다. 올려다 보니 목이 뻐근해진다. 도시국가 싱가포르 속 또 하나의 미니도시. 마리나 베이 샌즈 리조트다. 센토사 섬과 멀라이언(Merlion: 싱가포르의 상징, 머리는 사자ㆍ하반신은 물고기인 가상 동물)으로 대표되던 싱가포르 관광의 변화를 이끌고 있다.

이른 체크인으로 짐을 맡기려 하자, 줄을 서라고 한다. 컨시어지에서 20분이 넘게 기다렸다. 리조트 내 상점마다 수십 명의 손님들로 북적였다.

전 세계 관광업계가 불황으로 허덕인다던데, 세계 최대 카지노 기업인 샌즈에서 운영하는 이곳은, 굳건하다 못해 갈수록 호황이다. 올해 객실점유율은 98%가 넘고, 최근 3분기에만 객실 가격이 전 분기 대비 11% 상승했다. 리조트 전체 매출의 90% 이상을 책임지는 카지노(리조트 전체 면적인 11만9000㎡의 3%에 불과하다)는 싱가포르 업계 1위는 물론, 라스베이거스 카지노까지 추월할 기세다.

▶57층 야외수영장에서 싱가포르의 야경을=접시 같기도 하고, 배 같기도 하다. 호텔 세 개 동이 떠받치고 있는 거대한 스카이파크에 올라갔다. 전망대, 클럽, 초콜릿바, 레스토랑 등이 관광객을 반긴다. 그리고 그 유명한 야외수영장이 있다.

마리나 베이의 금융 밀집지역이 건너다 보인다. 화려한 빌딩들이 만들어내는 스카이라인을 보며 아찔한 물놀이를 즐긴다. 낮에도 밤에도 좋다고들 하지만, 역시 하늘은 해질녘이 가장 운치 있다. 노을 지는 싱가포르의 하늘을 배경으로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는 커플들이 보인다. 말레이시아, 홍콩, 중국, 대만 등 대부분 중화권에서 온 신혼부부들이다. 카지노, 컨벤션센터, 극장 등 비즈니스 트립을 겨냥한 전형적인 복합리조트지만, 따뜻한 동남아 기후를 선호하는 일반 관광객들에겐 다양한 유흥을 즐길 수 있는 최신의 '스마트' 호텔이기도 하다.

해가 지니, 찬 기운이 감돈다. 수영장 바로 앞에 위치한 초콜릿바 '더 클럽' 에 들어가 따뜻한 차와 달달한 디저트를 즐긴다. 망고 타르트, 바나나 푸딩 등 열대과일과 초콜릿이 어우러진 다양한 간식거리가 가득하다.

▶전시회ㆍ공연ㆍ쇼핑…원스톱 관광=호텔 우측에 위치한 연꽃 모양의 예술과학박물관에서는 타이타닉 전시회가 한창이다. 잠잠하던 타이타닉 호가 침몰하기까지의 상황을 1등부터 3등칸까지 다양한 객실서 체험해볼 수 있다. 영화 '타이타닉' 에서 디캐프리오가 케이트 윈슬릿과 만나는 연회장의 계단도 재현해 놓았다.

또 최근 아시아 최초로 '카르티에 타임 아트' 전시회를 개최, 1916년부터 제작된 카르티에의 대표 시계 컬렉션을 대거 선보였다. 지난 13일 오프닝에는 7개국 100여명의 기자단이 열띤 취재경쟁을 벌이기도 했다.

'마이스(MICE: 회의(Meeting)와 포상여행(Incentive), 국제회의(Conventions), 전시ㆍ박람회(Exhibitions)의 머리글자를 딴 용어)' 산업의 상징물과도 같은 샌즈그룹의 리조트에는 업무차 호텔을 방문한 투숙객들이 쉽고 편하게 엔터테인먼트를 즐길 수 있도록 두 개의 대형 극장이 있다. 마침, 브로드웨이 인기 뮤지컬 '위키드(Wicked)'의 오리지널 팀이 공연 중이었다. 싱가포르 공연 후 한국에 들어온다는 '위키드'를 조금 먼저 감상하는 기분도 꽤 괜찮다. 비행기까지 타고 와서 즐기는 문화생활. 괜히 우쭐해진다.

이제 곧 한여름의 크리스마스. 화려한 LED 조명의 인공트리가 마리나 베이 뿐만 아니라, 싱가포르 전체를 수놓을 예정. 눈에 대한 그리움 때문인지, 여기선 알록달록한 트리보다는 새 하얀 눈 장식이 많다. 전구도 화이트 컬러를 주로 쓴다.

크리스마스를 지나, 31일 카운트다운 페스티벌까지 '향기 없는' 이 나라에 머물고 싶다. 돌아갈 때 쯤엔 나만의 '싱가포르 향'이 생겨날 것 같다. 짧지만 강렬한 기억으로 채색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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