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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인도

인도 뭄바이 - 맛살라 또는 혼돈의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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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천연색의 빨랫감 같은 도시 - 도비 가트

뭄바이에는 사진작가나 여행자들을 유혹하는 포토 포인트가 하나둘이 아니다. 바다 위에 떠 있는 성문, 비현실적일 만큼 거창한 기차역, 사람 하나 빠져나갈 수 없을 것 같은 시장…. '도비 가트(Dhobi Ghat)'는 그들과는 또 다른 매력으로 카메라를 끌어들인다.


마하락스미 기차역 근처에 있는 도비 가트는 이 도시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시영 세탁소다. 말하자면 매머드급의 야외 빨래터인데, 이곳에 고용된 빨래 일꾼(dhobi)들은 매일 아침 4시부터 오후 6시까지 1인당 4백 벌가량의 세탁물을 처리한다. 이들은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커다란 빨래통에 세탁물을 불린 뒤 그것을 빨아 만국기처럼 줄에 매달아 놓는다. 그 총천연색의 빨래들은 마치 혼재의 도시 뭄바이를 상징하는 것처럼 여겨진다. 어디에서 날아왔는지 알 수 없는 온갖 더러운 빨래감들이 그곳에서 새로운 내일을 맞는다.

 

 

정글북의 고향 - 키플링의 생가

"나에게는 도시들의 어머니, 내가 그 문에서 태어났기에, 야자수와 바다 사이, 세계의 끝으로 가는 증기선이 기다리는 곳." [정글북], []의 노벨문학상 수상자 루디야드 키플링(Rudyard Kipling)은 이렇게 말했다. 진짜 그가 태어난 도시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이름은 뭄바이(Mumbai)가 아니라 봄베이(Bombay)였다.


봄베이는 17세기 후반부터 영국의 동인도 회사의 거점으로 육성된 무역항이다. 뭄바이(Mumbai)라는 지역 고유의 마라티 어로 개칭된 것은 1995년부터. 하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봄베이라고 부르고 있고, 도시 역시 19세기 영국 식민지 시절의 풍경을 간직하고 있다. 곳곳에 남아 있는 빅토리아 식의 거대한 건물들을 지나치다 보면, 키플링의 시대로 돌아가는 것도 어렵지 않아 보인다. 


키플링은 다섯 살 때 봄베이를 떠나 영국에서 공부를 한다. 그리고 십대 후반 옥스포드 대학으로의 진학이 여의치 않자 인도로 돌아오게 되는데, 봄베이 항에 들어서며 이렇게 생각했다고 한다. "이제 나의 영국 시대가 끝났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그는 라호르(Lahore)를 비롯한 아시아 곳곳을 돌아다니며 그 이전의 유럽인에게서는 전혀 없던 감수성을 가지고 새로운 문학을 토해냈다. 키플링이 태어난 생가는 그의 아버지가 교수로 있었던 J.J. 응용예술학교(Sir J.J. Institute of Applied Art)의 캠퍼스 안에 남아 있다.    


 

키플링과 [정글북]의 감수성은 봄베이 해안에서 태어났다.

 

 

모든 신들과 짐승들의 기차역

1903년의 빅토리아 터미너스. 지금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 도시는 모든 것이 과장되어 있다. 건축물에서부터 영화에 이르기까지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만들었을까'라는 마음이 들게 한다. 그 정점이 아마도 이 기차역(차트라바띠 시와지 터미너스, Chhatrapati Shivaji Terminus) 같다. 봄베이-뭄바이처럼 구 영국의 잔재를 없애기 위해 빅토리아 터미너스라는 이름을 내던졌지만 여전히 빅토리아로 부르는 이들이 많다. 터미너스는 1887년 '대 인도 반도 철도회사(Great Indian Peninsular Railway Company)'의 본부로 사용하기 위해 건설되었다. 웅장한 고딕의 형체 위에 온갖 상상과 현실의 동물들이 조각되어 있어, 카메라를 들이대다 보면 메모리 용량의 한계를 절실히 느끼게 한다.

 

 

식민의 도시이며 불복종의 도시 - 간디 기념관

인도인들은 말한다. "뭄바이는 인도지만 인도가 아니다. 오히려 유럽에 가깝다."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인지도 모르겠다. 봄베이는 동인도 회사와 영국의 식민 거점이었다. 초기에는 아라비아 해상 무역의 중심지로 본토와는 독립적인 기능을 수행했다. 그러나 영국군이 1818년 마라타인들을 물리치고 서부 인도의 영토를 합병하면서부터는 본격적으로 인도 식민화의 중심지가 된다. 그러나 동시에 인도 독립운동에 있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도시였기도 하다.


뭄바이에는 파시족이라는 페르시아 계의 소수 민족이 경제계에서 아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밝은 피부를 지니고 있는 그들은 일찍부터 영국인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고, 무굴 제국과의 거래 중계를 통해 영국에 막대한 이익을 안겨주었다. 그런데 인도 식민화가 가속화되자 그 독립 운동을 위해 경제적 지원을 아낌없이 베푼 것도 그들이었다. 덕분에 뭄바이는 인도 독립운동의 중심지로 끝없는 투쟁의 장소가 되었다.  


뭄바이에 있는 간디 기념관(Mani Bhavan)은 그를 지지했던 친구의 집으로, 간디가 각지의 지지자들과 만난 장소였다. 1917~1934년에 독립운동 본부로 사용되었고 1932년 간디가 체포된 장소이기도 하다. 2층에 보존되어 있는 간디의 방에는 그가 실 잣는 법을 배우던 현장과 그가 애용하던 대나무 지팡이 등이 재현되어 있다. 


뭄바이는 간디의 비폭력 불복종 운동을 기억한다.

 

 

볼리우드의 환영 - 필름 시티

볼리우드 영화는 할리우드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때 인도 하면 '카레'를 떠올리는 시대가 있었다. 그러나 이제 또 하나의 강력한 경쟁자가 등장했다. 바로 '맛살라' 영화다. 온갖 향신료를 집합해놓았다는 뜻의 '맛살라'는 인도 영화의 특색을 곧바로 전해준다. 영웅과 미녀의 로맨스, 춤과 노래의 향연, 권선징악과 쾌락의 공존…. 한 편의 영화 안에 좋다는 것은 모두 모아놓았다. 그 양념의 향연을 만들어내는 제작소 볼리우드(Bollywood)가 바로 뭄바이다.


봄베이와 할리우드가 합쳐져서 태어난 단어인 '볼리우드'는 원조 할리우드를 넘어 세계 최다의 영화 제작 편수를 자랑한다. 그 현장을 볼 수 있는 곳이 뭄바이 북쪽 산제이 간디 국립공원에 인접해 있는 대규모 영화 스튜디오인 '필름 시티(Film City)'다. 현지 투어를 이용하면 여러 영화의 제작현장을 둘러본 뒤 맛살라 스타일의 디스코 파티로 마무리 할 수 있다. 시내에 있는 100개가 넘는 영화관 역시 볼리우드의 진면목을 현지인들과 함께 즐길 수 있는 장소다. 처치게이트 스테이션 맞은편의 에로스, 메트로 극장 등이 유명하다.

 

 

슬럼 위의 공중 정원 - 행잉 가든

볼리우드 바깥에서 만들어진 것 중, 이 도시를 가장 잘 보여주는 영화는 아마도 대니 보일의 [슬럼독 밀리어네어]가 아닐까? 영화는 도시 북서쪽에 있는 주후 슬럼에서 태어난 어린 주인공들이 암흑가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 애쓰는 모습을 '백만장자 퀴즈 대회'를 통해 보여준다. 대니 보일 특유의 스타일 감각이 굴절된 렌즈를 제공하지만, 영화는 이 도시의 극과 극, 빈곤과 사치의 대조를 분명히 보여준다.   


말라바 언덕에 있는 행잉 가든(Hanging Garden)은 이 도시의 아이러니를 가장 잘 보여주는 장소 같다. 이 도시 연인들의 쾌적한 데이트 장소인 이 정원은 문자 그대로 호수 위의 공중에 지어져 있다. 이 근처에는 조로아스터교의 신자인 파시족들이 시체를 독수리에게 쪼여 먹이는 '침묵의 탑'이 있다.


공중정원에서 도시의 아이러니를 내려다본다. [슬럼독 밀리어네어]의 한 장면. 

 

새들은 시체를 포식한 뒤 가까운 이 호수로 날아가 목을 축이는데, 그 때문인지 호수의 물이 지독히 오염되었고 공원을 그 위 공중에 지을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지금은 독수리가 거의 사라졌는데, 시체들에서 나오는 화학물질을 너무 많이 먹어서라는 풍문도 있다.

 

 

웃음의 요가 - 게이트 오브 인디아

 

조지 5세의 방문을 위해 지어진 '게이트 오브 인디아'. 웃음 요가의 명소가 되었다. <출처: (cc) Rhaessner at en.Wikipedia>


'게이트 오브 인디아(Gateway of India)'는 1911년 영국 왕 조지 5세의 방문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바다 위의 거대한 문이다. 그 지나친 스케일이 희극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하는 건축물인데, 매일 아침 그 문 아래에서 혼신을 다해 웃고 있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그렇다고 그들이 영국의 인도 지배를 비웃고 있는 건 아니다. 그들은 '웃음 요가'를 하고 있다. 


뭄바이의 의사인 마단 카타리아(Madan Kataria)는 1995년 모두 다섯 명의 구성원을 모아첫 번째 공개적인 웃음 클럽의 행사를 열었다. 웃기는 일이 없어도 웃는 것 자체만으로도 몸과 마음에 활력을 얻을 수 있다는 증명하기 위해서였다. 이 웃음 요가는 곧바로 큰 인기를 모아 전 세계 60여 개국에 퍼져 나갔고, 뭄바이에만 70개 이상의 클럽이 만들어졌다. BBC의 다큐멘터리 [휴먼 페이스]의 진행자인 코미디언 존 클리즈는 뭄바이의 교도소에서 열리는 웃음 요가 행사에 함께하기도 했다. 이것도 요가인 만큼 무턱대고 웃는 게 아니다. 절차와 수련법이 있다. 깊은숨을 들이쉬고 웃음 연습을 시작해, 침묵의 웃음, 사자의 웃음, 칵테일 웃음 등을 배워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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