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인된 성지(聖地) - 할렘의 작은 재즈 클럽들

뉴욕을 방문한 재즈 팬들에게 놓칠 수 없는 성지가 있다. 할렘의 남쪽에 있는 재즈 클럽들. 특히 1939년에 문을 연 레녹스 라운지(Lenox Lounge)는 마일스 데이비스존 콜트레인이 밤을 지새우며 재즈를 한 단계 도약시킨 곳이다. 그 안에 있는 지브러 룸(Zebra Room)은 할렘 르네상스의 작가들과 흑인 운동가 말콤 X의 휴식처이기도 했다.


나 역시 이런 재즈를 사랑한다. 그러나 2차 대전이 일어나기 이전의 재즈는 작은 클럽의 음악이 아니었다. 빅 밴드의 압도적인 사운드가 거대한 홀을 울리면, 수천 명의 댄서들이 미친 듯 춤을 추어대던 당대의 히트 댄스 음악이었다. 트위스트, 소울 트레인, 문 워크, 브레이크 댄스, 비보잉의 원천이 그 재즈에 있다. 나의 뉴욕 지도는 그 궤적을 따라간다.

위대한 춤과 음악의 배틀 - 사보이와 아폴로

센트럴파크 북쪽의 할렘 지역은 남부에서 몰려온 가난한 흑인들이 모여 살던 동네였다. 20세기 초반, 이들은 월세를 마련하기 위해 작은 파티를 열어 뉴올리언즈에서 가져온 재즈 음악을 연주하며 춤추고 놀았다. 백인들의 사교댄스를 흉내 내 만든 찰스턴(Charleston) 댄스는 '하얀 바퀴벌레'들에게 진짜 춤이 무언지를 보여주었고, 댄서 조세핀 베이커에 의해 프랑스와 유럽 전역을 열광시켰다.


사보이 볼룸(Savoy Ballroom)은 할렘을 대표하는 댄스홀로, 1920년대 후반 오늘날 '스윙 댄스'로 알려져 있는 린디 홉(Lindy Hop)이 태어난 곳이었다. 사보이에는 정기적인 밴드 배틀이 있어, 카운트 베이시, 듀크 엘링턴, 엘라 피츠제럴드, 베니 굿맨 등 재즈 초기의 거장들이 피 튀기는 대결을 벌였다. 린디 홉 댄서들의 더 큰 박수를 받는 쪽이 당대 최고의 뮤지션이라는 증거였다. 사보이 볼룸이 있던 자리엔 현재 기념공원이 들어서 있고, 당시 여러 공연이 벌어졌던 아폴로 극장은 여전히 성업 중이다. 마이클 잭슨 등 흑인 스타들의 등용문인 '아마추어 나이트'가 매주 목요일 열리고 있다.


사보이와 아폴로는 할렘이 가장 뜨거웠던 한 시절을 대변한다.

양철 나무꾼의 악보 공장 - 틴 팬 앨리

구겐하임 앞에서 만난 스트리트 재즈 밴드 '틴 팬'


재즈나 블루스 등, 초창기 미국 음악을 접하다 보면 '틴 팬' 이라는 말을 자주 듣게 된다. 나는 그 말을 들으면 [오즈의 마법사]에 나오는 양철 나무꾼이 자기 몸을 두드리며 연주하는 모습이 떠오른다. '틴 팬 앨리(Tin Pan Alley)'는 미국의 음악 창작자 혹은 음악 산업 전체를 일컫는 말로, 맨해튼의 어떤 거리에서 유래했다.


맨해튼 최초의 마천루였던 다리미 빌딩(Flat Iron Building)이 등장할 무렵, 근처인 5번가와 6번가 사이의 28번 거리에는 악보 출판사들이 밀집해 있었다. 당시 이 거리에 들어서면 사방에서 양철 팬을 두드리는 듯한 소리로 시끄러웠다고 한다. 출판사에 곡을 팔기 위해 온 작곡자들과 악보를 사가려는 사람들이 여기저기에서 피아노를 두드리며 불협화음을 만들었던 것이다. 이로부터 틴 팬 앨리가 태어났다.

이상한 열매가 열린 곳 - 카페 소사이어티

1938년 급진파 유대인 바니 요셉슨은 그리니치빌리지(Sheridan Square 1번지)에 카페 소사이어티(Café society)라는 클럽을 연다. 별명은 '올바른 사람들의 잘못된 장소(The wrong place for the right people)'. 그때까지 뉴욕에서는 '코튼 클럽'처럼 백인 관객들이 흑인 예능인들의 재주를 관람하는 방식이 대부분이었다. 흑인 유명 인사가 와도 기둥 뒤의 격리된 좌석을 내주었다. 요셉슨은 유럽의 카바레에서 흑인 뮤지션과 댄서들이 차별 없이 사랑받는 것을 보고, 이를 뉴욕으로 역수입하자고 마음먹었다.


소사이어티는 백인들과 흑인들이 자유롭게 무대와 객석에서 섞이게 했으며, 레나 혼, 레스터 영, 사라 본 등 수많은 흑인 스타들을 발굴했다. 빌리 홀리데이가 남부에서 린치당해 나무에 매달린 흑인들을 은유적으로 그린 노래 '스트레인지 프루트'를 처음 부른 곳도 여기였다. 소사이어티는 2차 대전 중에도 번성했으나, 이후 매카시 광풍 속에 문을 닫아야 했다.


빌리 홀리데이는'스트레인지 프루트'를 부른 뒤 앵콜도 없이 퇴장했다.
관객들에게 그 가사를 되새겨보라고

재즈 파티의 플래퍼들 - 이스트사이드의 안틱 숍

미국이 가장 행복했던 시절의 패션.플래퍼


미국의 1920년대를 두고 '재즈 에이지' 또는 '으르렁거리는 20년대(Roaring Twenties)'라고 한다. 당시 유럽은 1차 대전의 잔재를 떠안은 채 괴로워하고 있었지만, 미국인들은 대공황이 닥쳐올 걸 모른 채 미친 듯 파티를 즐기고 있었다. 그때 등장한 세대가 플래퍼(flapper) - 답답한 코르셋을 벗고 하늘거리는 드레스를 입고 밤마다 자유분방한 파티를 즐기던 젊은 여성들을 일컫는 말이다.


1920년대 플래퍼 스타일은 끝없이 재현되며 패셔니스타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 뉴욕의 정말 좋은 점은 자신이 좋아하는 시대가 있다면 완벽하게 그때의 스타일로 변신할 수 있다는 사실. 이스트 빌리지나 로어 이스트사이드의 안틱 숍에서 아르누보 문양의 하늘거리는 드레스와 해변의 파티를 위한 실크 수영복을 만날 수 있다.

[위대한 개츠비]의 시대로 통하는 섬 - 거버너스 아일랜드

플래퍼로 변신한 뒤에는 진짜 재즈 댄스 파티에 가보고 싶지 않나? 맨해튼 남쪽에 거버너스 아일랜드라는 작은 섬이 있다. 원래는 군사 지역으로 통제되어 있지만, 매년 여름을 전후로 일반에 공개된다. 때를 잘 맞춘다면 이 낙원의 잔디밭에서 F. 스콧 피츠제럴드의 소설 [위대한 개츠비]에 묘사되는 바로 그 댄스파티(Jazz Age Lawn Party)에 참여할 수 있다.


공짜 페리를 타고 무성 영화에서 갓 튀어나온 것처럼 그 시대의 복장을 완벽하게 재현한 사람들을 따라가라. 산뜻한 나무 바닥의 야외용 댄스홀이 보인다. 빨간 피아노와 구닥다리 마이크로폰을 들고 나온 복고풍의 밴드는 1920년대의 재즈를 그 시대와 같은 스타일로 연주한다. 눈부신 햇볕 아래 사람들은 피크닉 가방을 펼치고 춤을 춘다. 미국이 가장 아름다웠던 시대가 눈앞에 있다.


[위대한 개츠비]의 몽롱한 꿈이 거버너스 아일랜드에서 재현된다.

루이 암스트롱 박물관

퀸즈의 라과디아 공항 근처에 루이 암스트롱의 하우스 뮤지엄이 있다.


춤추는 재즈, 듣는 재즈... 당신이 어느 쪽을 더 좋아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 모든 재즈를 이야기할 때 빠뜨릴 수 없는 이름이 있다. 루이 암스트롱. 그가 없었다면 오늘날의 재즈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있었더라도 무척이나 다른 모습이리라. 두툼한 입술로 마치 이야기하듯 뿜어내는 트럼펫 솔로, 반대로 관악기처럼 울려나오는 스캣 창법의 보컬, 대중을 사로잡는 따뜻한 음색 속에서 급변하는 브리브... 그의 인생을 돌아보면 재즈의 모든 것이 보인다. 루이 암스트롱은 1943년 맨해튼에서 다리를 건너가야 하는 퀸즈에 집을 마련해, 그의 부인 루실과 함께 오래도록 살다가 눈을 감았다. 바로 그 집에 루이 암스트롱 하우스 뮤지엄이 자리 잡고 있다.

뉴욕에서 어떻게 재즈를 만나느냐고? 뉴욕에 가서 재즈를 만나지 않을 수 있는 법을 알려주시라. 도시는 언제나 재즈로 흘러 넘친다. 지하철과 공원에서 스트리트 재즈 뮤지션들을 만나는 일은 일상의 풍경이다. 뉴요커들은 '올해의 지하철 뮤지션'과 같은 상을 만들어 이들을 기린다. 좀 더 정제된 연주를 듣고 싶다면, <빌리지 보이스>와 같은 정보지를 통해 재즈 클럽의 공연을 찾아가면 된다. 링컨 센터(jalc.org)와 콜럼버스 광장 근처의 디지스 클럽 코카콜라는 저명한 재즈 코스다. 야외 공짜 공연도 굉장히 많다. 여름밤에는 링컨 센터나 강변 공원에서 벌어지는 스윙 재즈 댄스파티를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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