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처음 일본에 와 도쿄에서 기차를 타고 하코네를 여행할 때의 일이다. 표를 사고 시간이 남아 기차역 주변을 거니는데, 역 앞 도시락을 파는 가게에 길게 늘어선 줄을 보고 의아했다. 양복을 차려입은 샐러리맨부터 젊은 여성에 이르기까지 나이와 성별에 상관없이 모두 언제 나올지 모르는 도시락을 기다리고 있었다. '굳이 저렇게 줄을 서면서까지 도시락을 살 이유가 있을까? 우동이나 김밥 같은 간단한 음식으로 대충 때우고 가면 될 것을….' 당시 들던 생각이다.

general_image

하지만 일본 생활에 익숙해진 지금 어느덧 도시락을 사기 위해 줄을 선 자신을 발견하곤 새삼 웃음이 난다. 어느새 나도 일본 문화에 익숙해진 것이다. 그만큼 나 역시 에키벤을 사랑하게 되었다. '에키벤'이란 '역(驛)'이란 뜻의 '에키'에 '벤또(도시락)'의 '벤'을 합성한 말이다. 어떤 일본 사람은 에키벤을 먹기 위해 기차여행을 하기도 한다. 그만큼 일본 사람들에게 에키벤은 여행의 멋과 즐거움을 더해주는 필수 아이템인 것이다.

종류가 다양해 골라 먹는 재미도 있다. 전국적으로 2천5백여 종이 있을 정도로 에키벤은 지역 향토 음식부터 세계 모든 음식을 망라하고 있다. 규슈 지방의 고구마튀김 도시락부터 인도 카레, 한국 불고기, 영국 샌드위치, 미국 햄버거까지, 온갖 도시락이 기차역에서 손님을 기다린다. 가격은 3백 엔대부터 2천 엔대까지 다양한데, 사람들은 보통 1천 엔 내외의 에키벤을 고른다. 여기에 1백 엔 내외의 녹차 음료를 더하면 멋진 한 끼 식사가 완성된다.

general_image

에키벤이 워낙 인기가 있고, 대중적이다 보니 일본에서는 에키벤 콘테스트가 벌어지기도 한다. 올해 규슈 지방에서 실시한 에키벤 콘테스트에서 1등을 차지한 도시락은 '사가규 스키야키 벤또'였다. 우리말로 쉽게 풀면 '불고기덮밥'인 셈. 청정 지역 사가 현의 쇠고기는 부드러운 육질로 유명한데 그 쇠고기를 볶아 밥 위에 얹은 도시락이 사가규 스키야키 벤또다. 이 밖에 오징어를 주재료로 하는 '이카 산마이', 닭뼈 육수로 지은 밥 위에 닭고기와 지단, 감가루를 섞어 올린 '카시와 메시' 등이 '올해의 규슈 에키벤'으로 선정되었다.

이처럼 도쿄를 조금만 벗어나면 향토 음식으로 만든 에키벤을 맛볼 수 있는데, 그 지역의 정취도 느낄 수 있고 맛도 독특해 여행에 또 다른 즐거움을 안겨준다. 만약 일본을 여행할 계획이 있다면 반드시 기차여행을 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경치를 감상하면서 각지의 특산물을 재료로 한 에키벤을 맛보다 보면 눈과 입이 즐거운 오감 만족 여행이 될 것이다.

general_image

글쓴이 안민정씨는… 정치, 경제, 문화 칼럼을 아우르는 일본 전문 뉴스 사이트, 제이피뉴스(www.jpnews.kr)의 재일 저널리스트로 주로 문화 관련 뉴스를 담당하고 있다. 국내 일간지에 재밌는 일본 문화 뒷이야기, 인터뷰 등을 기고하고 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