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라구나 비치(Laguna Beach), 예술가들의 놀이터

해질 녘 캘리포니아의 1번 국도를 달리다 보면 쏴~ 쏴~ 파도 소리가 끊임없이 들리고 저 멀리 온 세상이 오렌지빛으로 찬란하게 빛나는 아름다운 노을을 볼 수 있다. 가끔은 돌고래도 보이고 태평양 바다의 시원한 파도를 가르는 보트들의 행진도 보인다.

라구나 비치는 예술인들이 많이 살아서 그런지 분위기가 무척 색다르다. 해안을 따라 오르락내리락 하는 언덕들을 따라가다 보면 작고 큰 갤러리들이나 해안공원들 그리고 바닷가 레스토랑들이 늘어서 있다.

미국의 리비에라 해안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이곳에는 멋진 오픈카를 탄 연인들과 백발을 휘날리며 올드 카를 모는 노인들이 해안 도로에 가득하다. 라구나 비치에 가면 재미있는 광경을 가끔 볼 수 있는데, 아름다운 아가씨가 중절모를 쓰고 비치 드레스를 휘날리며 스케이트 보드를 타고 다니는가 하면 사람들이 모래를 체에 거르는 모습이다. 시 소속의 사람들이 바닷가에서 유리나 커다란 돌멩이 등을 체에 거르는데 어느 해변에서도 본 적이 없는 낯설고 생소한 풍경이어서 오랫동안 서서 지켜보았다.

LA에서 라구나 비치로 가려면 1번 국도를 타고 내려가도 되고 5번 고속도로를 타고 얼바인 쪽으로 가도 된다. 라구나 비치 인근에는 예술인촌답게 예술가들의 갤러리와 창고로 된 작업실들이 모여 있고, 예술대학도 있다. 예술가들의 작업실을 지나 바닷가로 다가가면 산 위에 멋진 집들이 보이는데, 상상을 초월하는 고급 주택이 많다. 신기하게도 시에서 그 높고 가파른 언덕에 염소를 풀어놓고 기르는데, 처음에는 가짜 염소인 줄 알았을 정도로 독특한 풍경이었다.

라구나 비치에서 일어나는 가장 멋진 일은 예술제이다. 대표적인 예술제로는 '소더스트 축제(Sawdust Fesival)'와 '예술제(Festival of Arts)'를 들 수 있다. 소더스트 축제는 여름과 겨울에 열린다. 소더스트란 '톱밥'이란 의미인데 예술가들이 바닥의 흙먼지가 날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톱밥을 깔고 그 위에 작품을 전시하기 시작한 것을 유래로 지금은 전통이 되었다. 이 축제는 아마추어 작가와 프로 작가 모두 참여할 수 있는데 정말 흥미롭고 재미있다. 어린이들을 위한 도자기 시연 코너와 유리 공예 시연 코너도 있다. 이외에도 상상을 초월하는 재료들로 만든 눈이 번쩍 뜨이는 작품을 보면 그야말로 감탄이 절로 나온다.

'예술제'는 라구나 비치에서 가장 유명한 축제인데, 이 축제에서 공연하는 <패전트 오브 아트>는 최소 6개월 전에 예매를 해야 좋은 자리를 기본 가격으로 볼 수 있다. 이 공연은 그해의 예술가가 테마를 정하고 그에 맞추어 고른 명화들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살아 있는 사람이 그대로 재현해 내는 작품인데,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근사하다. 얼바인 보울에서 새까만 여름 밤하늘의 별빛 아래 살아 있는 명화를 보는 것 그 자체가 예술의 한 장르이다. 수많은 사람이 숨소리 하나 내지 않고 명화 속 인물들과 혼연일체가 되는 모습은 뭐라 설명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아름답다.

[2] 키웨스트(Key West), 한 편의 소설 같은 섬

에메랄드빛으로 온 세상이 물들어 있었다.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아름다운 바다와 그 위에 떠 있는 짙은 청록빛의 섬들……. 마이애미에서 약 한 시간을 날아가 도착한 곳은 미국의 최남단이며 미국의 땅끝마을인 키웨스트였다. 키웨스트는 미국 어느 지역의 바다와도 다른 바다 빛깔을 가진 곳이며 미국 플로리다 주의 전체를 대변하는 곳이라고 할 수 있다.

택시를 타고 호텔로 가는 길에는 빛의 바다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늘에서 내리는 찬란한 빛을 고스란히 다 받아 주는 바다를 보며 여유롭게 걷고 있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니 자연과 동화된 인간들의 모습이 마치 한 편의 소설처럼 느껴졌다.

바다를 끼고 있는 호텔 근처에는 기다란 부두들이 한두 개씩 있어 남국의 정취가 물씬 느껴진다. 호텔 종업원이 짐을 옮겨 주면서 키웨스트의 노을을 놓치지 말라며 귀띔해 주었다. 일몰 시간에 맞추어 카메라 두 대를 들고 노을을 보러 갔는데 크루즈가 한가롭게 떠 있는 푸른 바다가 눈앞에 펼쳐졌다. 한쪽엔 미국 최남단의 집도 보였다. 이 집은 키웨스트에서 가장 아름다운 집인 콩크하우스이다. 노을과 함께 남쪽의 바다 내음을 폐 깊은 곳까지 들이마시고는 밤늦도록 키웨스트의 아름다운 야경에 취해 잠이 오질 않았다.

마이애미에서 키웨스트로 가는 비행기는 귀여운 프로펠라가 양쪽에 달린 쌍발기이다. 이 예쁜 비행기는 몸집이 작아 짐을 실을 곳도 마땅치 않아서 짐은 모두 항공사에서 맡아서 일괄적으로 실어 주고 찾아가게 한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콩크 공화국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라는 문구가 눈에 띈다. 콩크는 커다란 소라의 일종인데 키웨스트의 주민을 부르는 닉네임이기도 하다. 그래서 키웨스트를 콩크 공화국이라고도 한다. 그 아래는 미국 최남단 표시 기둥이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 기둥에는 쿠바까지 90mile(약 150km)이라고 표시되어 있다.

미국 최남단 표시를 지나 갤러리들이 늘어서 있는 곳을 지나고 나비와 화려한 새들이 모여 있는 박물관을 지나서 《노인과 바다》, 《무기여 잘 있거라》 등을 쓴 헤밍웨이가 살았던 집으로 향했다. 화이트헤드 가 방향으로 열심히 걷다 보니 키웨스트의 등대 박물관과 함께 헤밍웨이의 집이 나왔다. 이 집은 늘 방문객들로 북적거리는데, 헤밍웨이가 살았던 시절에 키웨스트에서 수영장이 있는 유일한 집이었다고 한다. 헤밍웨이의 서재와 그의 작품을 탄생시킨 타이프라이터를 보고 있으니 온몸에 전율이 이는 듯했다. 집 안은 아주 고풍스럽고 아름다웠으며 헤밍웨이가 아끼던 정원에는 바나나 나무나 연꽃 연못이 있었다.

헤밍웨이의 집을 나와 등대 박물관을 둘러본 뒤 조류학자인 오듀본의 박물관을 찾아갔다. 오듀본 하우스는 멜로리 광장 근처에 있는데 정원이 무척 아름답다. 조류학자이자 화가이며 선장이었던 오듀본이 살던 곳으로, 화려한 트로피컬색으로 물든 정원이 있어 젊은 연인들이 사진을 찍으러 오거나 여기서 결혼식을 하기도 한다. 3층으로 지어진 이 집은 오듀본이 살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해 놓아서 볼거리가 많다. 특히 침대나 술 저장 트렁크 등이 아주 이색적이었다. 그의 화가로서의 재능이 돋보이는 새 그림들도 있었는데, 마치 살아서 날아갈 것처럼 느껴져서 한참을 보게 되었다. 항해를 즐기고 음악과 그림을 사랑하며 누구보다 새를 좋아한 오듀본……. 키웨스트에는 참 멋진 남자가 많이 살았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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