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프스의 정취가 물씬 묻어나는 허환산의 능선길 풍경. 기래북봉의 깎아진 사면들이 빛을 받아 만년설을 연상시키고 있다.

비행기로 2시간 30여분 거리에 있는 대만은 국토의 3분의 2가 산지라는 점에서 우리나라와 비슷한 자연환경을 가졌다. 시간에서 우리와 차이는 있지만 과거 50년 동안의 일제강점기를 거쳐 독립했다는 점도 그렇다. 한국전쟁 당시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중 하나로 유엔군 파병동의안을 적극 찬성해 돈독했던 대만과의 관계는 1992년 한・중 수교로 국교가 단절됐다가 2004년 항공노선 취항을 기점으로 국교단절 12년 만에 새로운 전기를 맞이했다.

시간이 흘러 한류의 또 다른 진원지인 대만은 1960년대에 산을 다녔던 이들에겐 조금은 특별한 곳으로 기억된다. 바로 한국 해외원정등반의 문을 연 첫 번째 대상지가 대만 최고봉 옥산(3952m)이었기 때문이다. 1960년 2월 26일부터 3월 26일까지 약 한달 간의 일정으로 한국하켄클럽의 김웅 단장과 김정섭 대장, 김기환, 조중민, 이병혁, 김덕성, 장철현, 감관, 김덕치 등 9명이 원정에 참여했으며, 이후 몇 차례 이어진 옥산 원정으로 대만은 우리나라 해외등반역사의 시작점으로 자리매김했다.

↑ 등산로에서 바라다 본 허환산 주봉 전경. 삼각형 모양의 봉우리가 주봉이다.

일본 다음으로 가까운 섬나라인 대만은 면적이 남한의 절반에 채 못 미치지만 오래전 지각융기로 인해 섬의 북동쪽에서 남서쪽으로 이어지는 중앙산맥을 중심으로 고산지대가 형성, 우리나라에선 볼 수 없는 고산 봉우리들이 즐비하다. 214개나 되는 3000m급 고봉들을 중심으로 우리나라의 국립공원에 해당하는 국가공원이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위산(玉山), 타로코(太魯閣), 양밍산(陽明山) 슈에빠(雪覇), 타이찌앙(台江), 킨먼(金門), 큰팅(墾丁), 둥샤(東沙) 국가공원 등 총 8곳이며, 산 전체가 알프스의 목가적인 풍경을 자랑하는 허환산(合歡山)은 타로코 국가공원 서쪽, 난터우(南投縣)와 화롄(花蓮) 두 현의 경계에 솟아있다. 주봉(3417m)과 동봉(3416m), 서봉(3144m), 남봉, 북봉(3422m) 외에도 허환첨산(3217m) 등 여러 개의 연봉들로 이뤄졌다. 열대와 아열대기후로 연평균 기온이 23도에 달하는 고온다습한 대만은 3000m 이상 되는 고산지대에선 실상 우리의 사계와 같은 날씨를 보여 친근감을 더한다. 대만에서 5번째로 높은 허환산은 높은 지형 덕에 겨울 풍경이 유명한 곳인데 3275m에 있는 우링(武嶺) 고개까지 차로 오를 수 있어 매년 겨울철이면 설경을 감상하려는 사람들과 차들로 북새통을 이룬다고. 대만의 초록빛 원시 밀림을 품은 채 3000m급 100여 개 준봉들이 솟아있는 허환산 일대는 우서(霧社)풍경구, 유럽식으로 지어진 칭징(淸境)농장, 아오완대삼림유락구(奧萬大森林遊樂區), 고산과일의 주산지인 리산(梨山) 등의 관광지도 있어 연중 내내 사람들이 발길이 잦다.

↑ 마치 거대한 녹색 융단을 깔아놓은 듯한 허환산 등산로

대만에서 5번째 고봉 허환산

타이베이 공항에서 트레킹클럽의 최승원씨와 최오순씨 일행은 마중 나온 대만 현지 산악가이드인 치우췌이촨씨와 진기우씨 등과 함께 난터우현에 있는 설산 등반을 마치고 허환산으로 향했다. 허환산 가는 길은 타이베이에서 동남아 최장 터널인 설산터널(12.9km)을 통과해 이란현의 쟈오시와 이란시를 거쳐 난터우현으로 이어진다. 13년에 걸쳐 뚫었다는 설산터널 덕에 설산과 허환산 가는 시간이 많이 단축되었다고 한다.

이란시를 지나 점점 가파른 산사면을 오르던 길은 동쪽의 화롄시와 서쪽의 타이중시를 잇는 둥시헝관궁루(東西橫貫公路)와 만나며 천길 벼랑길과 구불구불한 산길이 극에 달한다. 이 길 중 따우링(大偊嶺)에서 우링까지 이어지는 구간은 '대만 10대 건설지'에 선정된 곳으로 건설당시 인명피해도 많았다고 한다. 지금은 고산 봉우리들이 천혜의 절경을 자랑해 대만에서 꼭 돌아봐야 하는 곳이 됐지만,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군 사령부와 부대 창고 등이 있었던 곳으로 원주민 토벌과 자원 약탈의 아픈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당시 일본군이 사용했던 옛 도로의 흔적이 아직도 남아 있다.

본격적인 허환산 북봉 산행은 '台14甲 36.7k'라고 표기된 지점에서 시작된다. '14번 도로 36.7km'지점이란 의미로 대만에선 각 도로 상에 일정한 간격으로 거리표시판을 세워 도로상의 각 지점들을 표기하고 있다. 안내판이 있는 초입 바로 아래쪽 승용차 3~4대 정도 주차할 수 있는 공터에 차를 세우고 산행준비를 마쳤다. 그 옆은 끝을 알 수 없는 낭떠러지가 이어져 보는 것만으로 위태로웠다.

초입을 올라 나뭇가지들이 허리까지 자란 관목지대를 통과하자 '0.1k'라고 적인 표지목이 나타났다. 허환산은 500m씩 표기된 설산과는 달리 100m 간격으로 거리를 표시하고 있었다. 관목지대를 통과하자 완만한 능선으로 등산로가 길게 이어졌다. 사람 키를 조금 넘는 소나무와 편백나무들이 자라곤 있지만 듬성듬성할 뿐 무릎까지 자란 수풀 지대가 대부분이었다. 그나마도 '0.4k'지점을 지나자 모두 발목에 겨우 닿을 정도다. 주변 조망에 막힘이 없다. 어깨너머로 높은 산만큼이나 깊은 탑차기리계곡(塔次基里溪)이 기래산의 연봉들과 어우러지며 화려한 자태를 한껏 뽐냈다.

첫 번째 안부까지 이어진 등산로가 한 눈에 들어왔다. 안부에 올라서자 대만을 동서로 가르는 거대한 중앙산맥의 실체가 여실히 드러났다. 우리네 백두대간처럼 마루금으로 이어진 수많은 연봉들이 마치 거대하고 둥그런 장막을 친 듯 웅장한 자태를 과시했다. 시야를 가릴 나무도 없고 햇빛을 피할 만한 쉼터 또한 없었지만 해발 3000m 고지대에서 펼쳐지는 전경은 보고 또 봐도 새로움이 묻어났다.

1.2km 구간을 통과하자 안부 너머 등산로 오른쪽으로 거대한 절개지가 나타났다. 집채만 한 그러나 멀리 있기에 작아 보이는 전파반사판 아래로 펼쳐진 절개지의 풍경은 익히 봐왔던 윈도우 컴퓨터 바탕화면의 초원 사진과 흡사해 보는 눈을 의심할 정도였다. 초원을 형성한 수풀을 자세히 살펴보니 수종을 알 수 없었지만 흔히 보는 연약한 풀이 아니었다. 키는 작지만 푸른 줄기와 잎은 헛디딘 발에도 밟히거나 쉽게 꺾이지 않을 만큼 단단했다. 해발 3000m가 넘는 척박한 환경속에서도 생명을 이어나가는 모습에 그저 신기할 따름이었다. 얼마 전 히노키로 잘 알려진 천년 넘은 편백나무를 벴다고 해서 징역 15년을 선고할 만큼 자연보호에 대해 엄격한 대만에서 누군가에 의해 나무가 모두 베어졌거나 또는 산불이라도 난 듯한 허환산 풍경에 어떻게 이러한 특이한 지대가 형성됐는지 그저 추측만 할 뿐이었다.

↑ 허환산 북봉 정상 바로 직전의 능선길. 왼쪽으로 멀리 고산족들의 집성촌이 눈에 들어온다.

정상까지 2km 구간 4시간 소요

1.3km 지점은 올라오면서 봤던 반사판이 건네다 보이는 널따란 안부에 자리 잡고 있었다. 허환산 북봉 0.7km, 서봉 5.4km 남았음을 알리는 표지판도 세워져 있다. 북봉 정상을 잇는 한 줄기 오솔길을 따라 펼쳐지는 그림 같은 풍경에 일행들의 발걸음이 더뎌졌다. 가고서고를 반복하며 주위를 둘러보지만 보는 방향에 따라 제각각인 풍경에 절로 흥이 날 정도다. 말도 통하지 않는 생면부지의 사람들과 '안녕하세요'라는 의미의 '니 하오!'를 건네는 일행들의 얼굴에 웃음이 가득했다.

정상 직전 삼거리가 나온다. 허환산 북봉 정상과 리산(梨山) 방면의 티엔뤼안지(天巒池)라 불리는 호수 입구로 가는 길이 갈라지는 곳으로 티엔뤼안지 호수 위쪽에 있는 야영지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올라온 대만의 젊은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큰 배낭에 텐트, 매트리스까지 짊어진 그들의 모습에 왠지 모를 반가움과 괴나리봇짐 마냥 가볍게 올라온 우리들 모습에 미안함이 동시에 전해졌다. 삼거리 표지판 아래엔 북봉에 다녀오려고 누군가 벗어놓고 간 배낭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삼거리에서 200m만 오르면 북봉 정상이다. 여러 봉우리 중 높이로 제일인 허환산 북봉에서 바라보는 조망은 허환산의 백미로 손꼽힌다. 맑은 날에 정상에 오르면 남호대산(3142m), 감로산(3158m), 중앙첨산(3705m), 양명산(3272m), 무명산(3451m) 등 주변의 고산들과 허환산 주봉과 동봉, 서봉으로 이어지는 허환산의 연봉들도 한 눈에 조망해 볼 수 있다. 요즘 같은 여름철엔 오후부터 빗방울이 떨어지기 일쑤이므로 일찍 산행을 시작하면 좋다.

하산은 올랐던 길을 따라 내려와야 한다. 서봉으로 이어지는 능선길 조망 후 내려가는데 올라오는 것에만 집중하느라 여념이 없어 미처 보지 못했던 풍경들이 새삼스레 펼쳐졌다. 북쪽 능선너머로 고산족들이 깎아지른 절벽에 집을 짓고 척박한 땅을 일궈 살아가는 모습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받고 누리며 살아왔던 많은 것들에 대해 돌이켜 보게 됐다. 출발지였던 초입에 도착하자 어김없이 비가 내렸다. 한낮의 무더위도 길을 걷느라 들였던 수고도 모두 씻겨 내려가고 있었다.

↑ 허환산 북봉 정상에 선 최승원씨와 최오순씨(왼쪽)

tip
허환산은 2등급?


대만의 산 정상에도 우리나라처럼 고유번호가 적힌 삼각점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다만 우리나라와 다른 점은 표지석에 1등, 2등이라는 등급이 매겨져 있다는 것이다. 허환산 북봉에 있는 사진처럼 '2등(二等)'은 삼각점 기준 8km 주변에 높은 산이 없다는 의미로, 1등은 35km 이내, 3등은 4km 이내, 4등은 2km 이내를 뜻한다. 참고로 설산 동봉은 3등, 옥산은 2등.

information

허환산 개요

허환산은 대만의 8개의 국가공원 중 타로코 서쪽, 난터우와 화롄 두 현의 경계를 지나는 중앙산맥 북단에 위치한다. 주봉과 동봉, 서봉, 남봉, 북봉 외에도 허환첨산, 석문산 등 여러 개의 연봉들로 이뤄졌으며 동쪽의 화롄과 서쪽의 타이중을 잇는 도로인 동서횡단도로가 등산로 입구까지 이어져 접근이 쉽다. 대만에서 5번째로 높은 허환산은 높은 지형 덕에 겨울 설경으로 유명하다. 원시 밀림을 품은 채 3000m급 100여 개 준봉들이 솟아있는 허환산 일대는 우서풍경구, 유럽식으로 지어진 칭징농장, 아오완대삼림유락구, 고산과일의 주산지인 리산 등의 관광지도 있어 연중 내내 사람들이 발길이 잦은 곳이다.

등산로

등산로 입구까지 이어지는 '台14甲'도로를 따라 등산로가 나 있다. 주봉의 경우 우링 휴게소 14甲도로 30.8km 지점에서, 허환첨산의 경우 허환산장에서, 남봉의 경우 14甲도로 30.6km 지점에서, 북봉의 경우 시아오펑코우(小風口)라고 불리는 14甲도로 36.7k 지점에서 산행이 가능하다. 서봉의 경우 북봉을 거쳐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서봉 자체 산행도 가능하다. 이 경우에는 타로코국가공원측에 입산신청서(http://eli.npa.gov.tw/E7WebO/index02.jsp)를 제출해야 한다. 북봉은 리산(梨山)방면의 티엔뤼안지(天巒池)라 불리는 호수 입구에서도 산행이 가능하다. 티엔뤼안지를 통과하면 북봉 아래 야영지에서 야영을 할 수 있다.

허환산은 여러 개의 봉우리로 이뤄진 만큼 짧게는 20분부터 길게는 왕복 8시간까지 다양하게 코스에 따라 시간을 조절할 수 있다. 가까운 남봉의 경우 20여분이면 정상에 오를 수 있고, 동봉의 경우 1시간, 북봉의 경우 2시간, 서봉의 경우 4시간 정도 소요된다. 북봉의 경우 정상까지 거리는 2km로 왕복 4시간이면 넉넉하지만, 3422m라는 높이를 감안해 산행시간을 좀 더 여유롭게 잡는 편이 좋다. 북봉을 거쳐 서봉을 다녀올 경우 초입에서 서봉까지 6.7km에 달해 9~10시간 정도 소요된다.

산행 준비

열대와 아열대기후로 연평균 기온이 23도에 달해 고온다습한 대만의 고산지대에선 7~8월이 되면 오후부터 수시로 비가 내리기 때문에 비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 겨울철에는 평균기온이 10~20도 사이지만 습기로 인해 온도보다 춥게 느껴진다. 3000m 이상 고산지대에선 지역에 따라 많은 눈이 내리므로 겨울철에는 한국의 겨울산 산행에 준한 준비를 해야 한다. 허환산은 산행초입까지 차로 이동이 가능해 접근이 쉬운 편이지만 고산지대이므로 고소증세를 대비해 천천히 이동하고 자주 물을 마시며, 뛰거나 무리한 동작은 자제한다.

대만은 대리석이 많이 생산되는데 이는 토양 대부분이 석회암지대이기 때문이다. 고산지대에서 솟거나 흐른 물도 석회수가 많으므로 마시지 말고 생수를 준비해 마시거나 끓인 물을 마시도록 한다. 허환산이나 설산, 옥산 등 대부분 고산지대로의 접근이 가파른 산사면을 깎아 만든 사면길이기 때문에 비가 오거나 안개가 짙을 경우 운행을 자제해야 한다.

기타 자세한 여행일정 문의 트레킹 클럽 1688-2584


숙박


허환산 주변에는 허환산 전망대에 위치한 허환산장(合歡山莊)과 후와윤산장(滑雲山莊), 관운산장(觀雲山莊) 등 다양한 숙박시설이 갖춰져 있다. 산장 모두 예약제로 운영된다. 관운산장은 타루코 국가공원 내 따우링에서 화롄시로 내려가는 8번 도로 상에 위치한다. 2인실과 4인실 10인실 외에도 다인실이 구비되어 있다. 조식(am 7~8)과 석식(pm 6:30~)을 제공한다. 대형 연회석이 마련되어 있으며 사용시 예약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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