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칠던 '항구'의 삶 
예술로 다시 폈네

치후등대에서 내려다본 치친섬의 풍경.
치후등대에서 내려다본 치친섬의 풍경. /우지경 작가 제공

섬나라 타이완(대만)의 남쪽, 항구도시 가오슝이 있다. 영어식 표기는 카오슝(Kaohsiung), 현지 발음은 까오숑, 국립국어원 외래어 표기법대로 쓰면 가오슝(高雄). 낯선 이름 탓에 먼 도시 같지만 서울에서 세 시간 슝 날아가면 도착할 만큼 가깝다. 등잔 밑이 어둡다 하지 않았던가. 혹 미처 몰라본 보석 같은 곳은 아닐까. 대항해시대 탐험가의 마음으로 올여름 휴가를 위한 미개척 여행지를 찾아 떠났다.

사랑의 강이라는 감미로운 이름의 아이허(愛河)가 구시가지와 중심가를 가로지른다. 유유히 흐르는 강줄기를 따라 내려가면 가오슝항에 다다른다. 타이완 제2의 도시라는 수식어가 무색할 만큼 거리가 한적하다. 항구라는 거친 삶의 무대 옆으로 보얼이수터취(駁二藝術特區)가 이어진다. 버려진 부둣가 2번 창고를 갤러리, 카페, 공연장으로 탈바꿈시킨 예술특구다. 무채색 건물들은 컬러풀한 벽화로 옷을 갈아입은 지 오래다. 창고까지 물건을 운송하던 철길 옆으로는 자전거 도로가 시원스레 뻗어 있다.

◇지친 일상 위로하는 치친, 노을빛 여유의 시쯔완

한국에서 왔다니 택시 기사가 가이드로 돌변한다. 시쯔완으로 가달라고 했는데, 구산페리터미널에 내려줄 테니 치친부터 다녀오란다. 친절일까, 오지랖일까, 한 푼 더 벌려는 영업 전략일까 의심하며 값을 치른다. 그런 내게 동전 몇 닢을 다시 쥐여준다. 돈을 더 냈단다. 눈을 찡긋하더니 인사를 건넨다. "웰컴 투 까오숑!"이라고.

치친은 구산페리터미널에서 페리로 10분도 채 안 걸리는 섬이다. 고풍스러운 선착장, 세월을 낚는 낚시꾼, 홍등을 매단 사원, 크고 작은 가게들이 모여 있는 해산물 거리가 여행객들을 맞이한다. 북적임 속의 여유랄까. 천천히 걸어도 어깨가 들썩인다. 내친김에 등대까지 오르기로 한다. 등대 앞에 서면 가오슝의 전망이 열두 폭 병풍처럼 펼쳐진다.

땀 흘린 뒤 맛보는 망고빙수 한 그릇은 더 달콤하다. 그것도 망고 과육이 알알이 박힌 망고 얼음 위에 생 애플망고를 숭덩숭덩 썰어 가득 올려준다. 한 입 푹 떠넣으니 입 안에서 사르르 녹아내린다. 뜨거운 햇살 아래 영근 애플망고의 맛은 차원이 다르다. 일년 열두 달 중 열 달이 여름인 가오슝에선 빙수집이 연중 성황이다. 치친의 여우젠빙푸는 망고빙수로 유명하고, 구산페리터미널 앞 빙수 거리는 과일빙수로 유명하다. 빙수 거리에서 제일 잘나가는 하이즈빙은 메뉴만 150가지가 넘는다. 사이즈도 1인용에서 20인용까지. 스케일이 다르다.

더 늦기 전에 다거우 영국영사관으로 발걸음을 재촉한다. 1860년 아편전쟁에 패한 중국이 가오슝항을 개방하자, 영국인들이 지은 영국 영사관이다. 옛 모습 그대로 재현해 역사적 의미와 가치를 지닌 건물이다. 언덕 위에 있어 전망과 일몰이 아름답기로 손꼽힌다. 어느새 해가 기운다. 다거우 영국 영사관으로 가는 갈 지(之) 자 계단을 오르는 사람들의 어깨 위로 금빛 햇살이 부서진다. 뒤 돌아보니 눈이 시리게 황홀한 석양이 하늘에서 바다로 고요히 낙하 중이다.

◇류허에서 아이허까지 입도 눈도 즐거운 밤

걸음걸음 맛있는 냄새가 깃든 류허 야시장으로 향한다. 타닥타닥 리드미컬한 소리와 함께 으아젠(타이완식 굴전)을 익히는 노련한 손놀림도 흥을 돋운다. 현지인들에게 뭘 먹어야 되느냐고 물으니 타이완 총통도 먹고 갔다는 파파야 우유와 새우 구이는 꼭 먹고 가란다. 한손에 파파야우유 한손에 새우를 들고 또 꼬치 굽는 노점 앞에 줄을 선다. 이쯤 돼야 진정한 야시장 먹방이다.

강변을 따라 늘어선 고층빌딩과 가로등이 불을 밝히는 때가 바로 그 순간이다. 사랑의 유람선이란 뜻의 아이즈촨도 화려한 빛을 뿜어내며 강 위를 누빈다. 강변 산책로를 따라 쭉 걸으면 강과 바다가 만나는 전아이(眞愛) 부두에 닿는다. 진정한 사랑이라는 뜻을 품은 전아이 부두가 어쩐지 입에 착 감긴다. 깊어가는 가오슝의 밤, 진정한 사랑의 다른 이름은 설렘이 아니라 익숙함이 아닐까.

여행수첩

인천 공항에서 가오슝까지 약 3시간이 걸린다. 금요일 밤 비행기로 떠나면 휴가를 하루 이틀만 내도 3박 4일 일정으로 다녀올 수 있다. 중화항공, 만다린항공 등이 인천에서 가오슝을 오간다. 부산에서도 에어부산이 주 4회 직항으로 취항한다. 서울보다 1시간이 느리다. 1년 중 겨울이 두 달밖에 없는 가오슝은 언제 가도 여름휴가 분위기를 낼 수 있다. 습도가 올라가고 태풍이 몰려올 가능성이 있는 7~8월보다는 4~6월에 여행하기 더 좋다.

통화는 뉴타이완달러, 전압은 110V를 쓴다. 대한민국 여권 소지자는 90일 무비자 체류 가능하다.

주요 관광지는 MRT(지하철)와 페리로 이동할 수 있다. 지하철역마다 고유의 번호가 있어 중국어를 몰라도 길 찾기가 편리하다. 페리 타고 가는 재미에 찾아간 치친, 걸어서 돌아보다가는 쉽게 지친다. 자전거를 빌려 섬 한 바퀴 돌면 한결 여유롭다. 옌첸, 시즈완 등 지하철역에서도 자전거를 대여할 수 있다. 가오슝 쭤잉역에서 컨딩콰이센(컨딩익스프레스버스)을 타고 2시간이면 남국의 정취를 물씬 풍기는 바다를 만나게 된다. 타이완의 최남단에 있는 어롼비 등대, 태평양을 마주한 해안절벽 룽판공원 등이 볼거리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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