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는 광활한 자연이 전부인 줄 알았다. 하지만 퀘벡을 본 뒤 오해였단 걸 깨달았다.
사람들의 순수한 눈동자, 옛 모습을 간직한 거리, 때묻지 않은 자연은 여행자에게 끊임없이 낭만을 이야기했다.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 잔디밭이나 벤치에 앉아 책을 읽는 사람들의 모습은 몬트리올에서 가장 흔한 풍경이다

몽트랑블랑 국립공원 정상에서 내려다본 몽트랑블랑 리조트 빌리지

옛 프랑스의 모습을 보존하고 있는 퀘벡시티의 올드 퀘벡

●Quebec City 퀘벡시티

뿌리를 기억하는 사람들

늦은 저녁 도착한 퀘벡시티엔 안개가 자욱했다. 아직 9월이었음에도 쌩 하고 부는 바람이 초겨울 날씨를 방불케 했다. 가을용 재킷과 스카프만 잔뜩 챙겨 온 것이 후회됐다. 호텔로 가는 택시 안, 프랑스어 라디오 방송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날씨가 너무 추워요." 택시 기사에게 말을 걸었더니 조금은 어눌한 영어로 대답이 돌아온다. "네, 이틀 전엔 따뜻했는데 갑자기 기온이 뚝 떨어졌어요. 퀘벡주에선 이런 일이 잦죠."


퀘벡의 날씨는 '하루에 4계절이 있다'고 할 정도로 일교차가 크다. 그 덕을 보는 것이 퀘벡 단풍이다. 일교차가 크게 벌어질수록 단풍잎이 더 선명하게 울긋불긋 물든다고 하니, 변덕스런 날씨를 미워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퀘벡주는 단풍으로 유명한 캐나다에서도 단풍이 가장 아름답기로 소문난 곳이다. 가을철엔 세계 각국의 여행객들이 단풍을 보러 퀘벡주로 몰려와 호텔 숙박요금도 크게 오른다고 한다.


퀘벡주는 프랑스어와 영어, 두 개 언어를 공식 언어로 지정하고 있다. 그러나 퀘벡 사람들이 실생활에서 주로 사용하는 언어는 프랑스어다. 그래서 퀘벡주에선 'Hello'보다 'Bonjour'를, 'Thank you'보다 'Merci'를 듣는 일이 훨씬 많다.


퀘벡은 1608년, 중국을 찾아 항해하던 프랑스의 탐험가 자크 카르티에Jacques Cartier에 의해 처음 발견됐다. 퀘벡의 풍부한 자연자원을 확인한 프랑스인들은 퀘벡시티에 캐나다 최초의 도시를 세우고 식민지를 개척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뒤늦게 퀘벡의 가치를 알게 된 영국이 퀘벡을 침략했고, 1756년부터 1763년까지 이어진 7년 전쟁에서 영국군이 승리하게 된다. 영국군의 승리 이후 80여 년 동안 퀘벡에서는 프랑스와의 무역은 물론 프랑스어 출판까지 금지됐다. 퀘벡에서 새로운 삶의 터전을 일구며 살아가던 프랑스인들이 하루아침에 영국의 점령 하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지금 퀘벡인들이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것은 4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자신들의 뿌리를 잊지 않기 위해 노력해 온 결과다.


'Je Me Souviens'. 프랑스어로 '나는 기억한다'라는 말이다. 퀘벡주의사당 건물의 외벽 한가운데 새겨져 있다. 퀘벡주의 모든 자동차 번호판에도 같은 문장이 적혀 있다. 퀘벡인들이 자신들의 뿌리를 얼마나 소중히 여기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다. 하지만 오해하지 말아야 한다. 퀘벡이 프랑스 영토였던 것만을 기억한다는 뜻이 아니다. 퀘벡의 원주민과 프랑스 식민 시절, 프랑스와 영국의 전쟁, 영국의 점령, 그리고 캐나다의 일부인 현재까지 모든 역사를 자신들의 정체성으로 여긴다는 의미다. 의사당 외벽에 영국 전쟁영웅 울프Wolfe와 프랑스 전쟁영웅 몽캄Montcalm이 나란히 조각돼 있는 모습을 보니 그 의미가 한층 깊게 와 닿았다.


퀘벡주의사당 앞에는 가격이 600만 달러에 달하는 분수대가 고귀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퀘벡시티의 밤거리는 아무리 늦은 시간에도 평화롭고 고요하기만 하다

하루 종일 걷고 싶은 올드 퀘벡


퀘벡에 머무는 동안 올드 퀘벡Old Quebec 한가운데 자리한 클라렌돈 호텔Hotel Clarendon에 묵게 된 것은 행운이었다. 밤늦도록 올드 퀘벡을 활보하면서도 숙소로 돌아갈 차편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됐기 때문이다. 올드 퀘벡은 17~18세기 프랑스 통치 시절 건축물과 거리의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구시가지다. 첫 식민지 개척자들은 배로 실어온 물건을 옮기기 쉽게 항구 바로 앞에 도시를 만들었다. 이곳의 작은 광장에서 무역상과 지역 사람들의 장터가 열리고 선원들로부터 프랑스 소식이 퍼졌으며 법령이 발표되고 재판과 처형이 이뤄졌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올드 퀘벡에는 가난한 이들만이 남게 됐고, 널어놓은 빨래까지 훔쳐 갈 정도로 슬럼화 됐다. 그랬던 곳이 퀘벡주 정부가 과거 기록을 토대로 건축물과 거리의 모습을 그대로 복원하면서 퀘벡에서 가장 아름다운 관광지 중 한 곳으로 재탄생한 것이다. 지금 올드 퀘벡의 각 건물에는 과거 그 건물이 어떤 용도로 쓰였고 어떤 사람들이 그곳에 살았는지를 알리는 푯말들이 붙어 있다.

올드 퀘벡에서 가장 사랑받는 장소는 2012년 '캐나다에서 가장 아름다운 거리'로 선정되기도 한 쁘띠 샹플렝 거리Rue du Petit-Champlain다. 파스텔톤 하늘색, 분홍색, 연노랑색 칠을 한 상점, 레스토랑, 카페들이 저마다의 개성을 뽐내며 자리하고 있다. 가격은 비싼 편이지만 퀘벡 아티스트들이 만든 수공예품과 캐나다산 기념품을 사기에 가장 좋은 곳이다. 쁘띠 샹플렝 거리는 이른바 '목 부러지는 계단Escalier Casse Cou'으로도 유명하다. 계단의 경사가 너무 가파른 탓에 술에 취한 사람들이 계단을 오르내리다 목이 부러진 일이 많아 붙은 이름이다. 캐나다에서 가장 아름다운 거리에 있는 계단의 이름 치곤 잔인하단 생각이 들었지만, 그만큼 조심하라는 의미일까?


낮에 걷는 올드 퀘벡과 밤에 걷는 올드 퀘벡은 확연히 달랐다. 낮의 올드 퀘벡이 아기자기한 재미로 혼을 쏙 빼놓았다면, 은은한 조명이 빛나는 밤의 올드 퀘벡은 거리 사이사이를 하염없이 걷고 싶게 만들었다. 새벽 1시가 넘도록 보슬비가 내리는 올드 퀘벡의 밤거리를 걷노라니, 거리의 악사는 밤거리에 재즈 선율을 입혀 주었고 젊은 연인들은 도시의 밤을 더 로맨틱하게 꾸며 주었다. 아무리 밤이 깊어도 변함없는 평화로움이 퀘벡시티를 감쌌다.


올드 퀘벡의 쁘띠 샹플렝 거리는 2012년 캐나다에서 가장 아름다운 거리에 선정됐다

퀘벡시티의 상징이자 랜드 마크인 '페어몬트 르 샤또 프론테낙 호텔Fairmont Le Chateau Frontenac Hotel'. 과거 성이었던 곳을 호텔로 개조했다. 밤이면 조명을 환하게 밝혀 아름다운 야경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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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렌돈 호텔퀘벡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호텔. 1870년부터 지금까지 130년 넘는 세월 동안 여행객들을 품어 온 곳이다. 앤티크한 분위기의 로비와 객실은 아담하지만 멋스럽다. 올드 퀘벡 중심에 위치해 있어 올드 퀘벡의 밤거리를 걷고 싶은 여행자에겐 최적의 호텔. 1층에 위치한 재즈바에선 매주 금요일과 토요일 저녁 9시부터 12시까지 라이브 재즈 공연이 펼쳐진다. 총 143개의 객실로 구성돼 있으며 무료 와이파이와 아침식사가 제공된다. 요금은 비수기 99달러, 성수기 159달러부터.
주소 57, Rue Sainte-Anne, Vieux Quebec, Quebec, QC
홈페이지www.hotelclarendon.com

신선함과 정성을 먹다, 퀘벡 로컬푸드

퀘벡에서 놓칠 수 없는 또 하나의 매력을 꼽으라면 로컬푸드Local Food다. 처음 로컬푸드의 매력에 눈뜬 것은 퀘벡시티 몽모랑시폭포Montmorency Falls 옆 레스토랑 'Manoir Montmorency'에서였다. 애피타이저로 등장한 것은 새우와 연어. 폭포 근처 강 하구에서 잡아 메이플우드에 구운 것이란 설명을 들으니 왠지 더 감칠맛이 나는 듯했다. 본식으로 나온 치킨 요리는 퀘벡시티에서 자란 닭을 4시간 동안 양념에 재웠다가 천천히 익힌 것이라고 했다. 요리에 사용된 채소와 허브 역시 모두 퀘벡시티 인근에서 수확하거나 키운 것인데다 요리 과정에서도 정성을 들인 음식인 만큼 신선도와 맛이 뛰어났다.


두 번째는 퀘벡 사과. 출출하다는 나의 말에 함께 여행하던 퀘벡주관광청 담당자가 사과 하나를 건넸다. 아이 주먹만한 크기에 선명한 빨간색 사과는 먹기 아까울 정도로 예뻤다. 이 역시 퀘벡시티 인근에서 수확한 로컬푸드. "사과를 씻을 곳이 없는데…"라고 망설이니 "유기농이라 옷에 슥슥 닦아 먹으면 돼요"라고 한다. 한입 베어 무니 신맛보다 단맛이 강한 사과 과즙이 입으로 흘러들었다. 신선함이야 두말할 것 없었다.


그 다음은 메이플시럽이었다. 사실 이번 여행 전까지 캐나다를 다녀온 모든 사람들이 하나같이 메이플시럽을 사오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마치 울릉도에 가면 호박엿을 사오고, 통영에 가면 꿀빵을 사오는 것 같은 기념품 쇼핑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랬던 내가 시럽, 캔디, 캐러멜, 버터 등 온갖 메이플 상품으로 여행 가방을 채우기 시작한 것은 퀘벡시티에서 몽트랑블랑으로 가는 길에 들른 'Chez Dany대니네 집'란 이름의 레스토랑에서부터였다. 캐나다 전통 가정식을 맛볼 수 있는 곳으로, 식사가 끝난 뒤 메이플시럽 제조 과정에 대한 주인장 대니Dany의 설명이 이어졌다. "메이플나무의 수액은 97%의 물과 3%의 당분으로 이뤄져 있어요. 40년 이상된 메이플 나무에서만 수액을 채취해 시럽을 만들죠. 40리터의 수액을 끓이면 단 1리터의 메이플시럽을 얻을 수 있어요. 온도에 따라 104℃에선 시럽, 114℃에선 태피taffy, 118℃에선 버터, 120℃에선 캔디가 만들어진답니다. 아무런 첨가물도 넣지 않고 완전히 자연 성분으로만 만드는 당분이죠." 그때서야 알았다.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메이플시럽을 찬양하는 이유를. 메이플시럽이야말로 진정한 자연과 정성의 산물이었다.


이어진 일정에서도 로컬푸드의 향연은 계속됐다. 퀘벡시티뿐 아니라 몬트리올에서도 많은 레스토랑들이 지역 식재료 사용을 원칙으로 하고 있었다. 세인트로렌스강의 풍부한 수자원과 넓은 평지, 비옥한 토양 덕에 가능한 일이리라.


Chez Dany에서 식사를 마치고 나면 즉석에서 달콤한 메이플 태피를 만들어 준다. 얼음 위에 고농도의 메이플시럽을 동그랗게 뿌린 뒤 살짝 응고됐을 때 나무막대에 돌돌 말면 완성

캐나다 전통 가정식 고기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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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ez Dany 캐나다 전통 가정식을 맛볼 수 있는 곳으로 넓은 통나무 식탁에 자리를 잡고 앉으면 큰 그릇에 담긴 햄, 콩, 감자 요리와 계란말이, 고기파이가 푸짐하게 차려진다. 테이블마다 메이플시럽이 가득 담긴 큰 물통이 하나씩 놓여 있는데, 각자 그릇에 음식을 먹을 만큼 덜어 메이플시럽을 마음껏 뿌려먹으면 된다. 친절한 직원들의 미소와 라이브로 연주되는 캐나다 전통음악이 식사 내내 흥을 돋운다. 무엇보다 디저트로 제공되는 메이플태피의 맛이 일품. 가격은 1인당 점심식사 기준, 16달러부터(세금 별도). 주소 195, de la Sabliere, Trois-Rivieres(Quebec) 홈페이지www.cabanechezdany.com

Manoir Montmorency 몽모랑시폭포 공원에 위치한 레스토랑. 로컬 식재료만으로 요리하는 것이 특징. 애피타이저, 본식, 후식이 포함된 메뉴의 가격은 점심식사 기준, 1인당 20달러 안팎. 본식으로는 파스타, 오리고기, 닭가슴살, 쇠고기 요리 등 다양한 메뉴가 준비돼 있다. 케이블카를 타고 몽모랑시폭포를 감상하거나 바위 산등성이를 따라 폭포 아래부터 위까지 연결된 계단을 통해 몽모랑시폭포 투어를 한 뒤 이곳에서 식사를 하면 좋다. 주소 Manoir Montmorency, 2490, Avenue Royal, Quebec





글·사진 고서령 기자 취재협조 캐나다관광청www.canada.travel02-733-7790



  1. Favicon of https://withcoral.tistory.com 내멋대로~ 2013.11.26 13:48 신고

    퀘백은
    프랑스어가 더 통용됐던 것으로 기억되네요

    구시가지의 엔틱한 건물과
    가을단풍이 아주 기억에 남습니다.

    아 다시가고 싶어요. 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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