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에 문외한인 이들도 와인 하면 프랑스와 이탈리아를 떠올리는데 일본 와인이라니 생소하다. 하지만 알고 보면 일본 역시 와인의 명가라 할 수 있다. 일본 중앙에 위치한 야마나시 현은 포도를 재배하기에 최적의 환경을 갖추고, '고슈'라는 고유의 포도 품종을 보유해 80여 개 와이너리에서 이를 이용한 다양한 와인을 생산하고 있다. 맛이 어떠냐고 묻는다면, 후지산 아래 따사로운 햇살을 머금은 '신의 물방울'이라고나 할까.
소크라테스의 제자이자 그리스의 철학자인 플라톤은 와인을 "신이 인간에게 준 최고의 선물"이라고 칭송했다. 하지만 기자가 지금까지 경험한 와인은 프랑스와 이탈리아, 독일, 칠레산이 전부. 때문에 일본 와인 투어가 낯설게 느껴진 것이 사실인데, 반면 그래서 더 궁금하고 매력적으로 다가왔는지도 모른다. '우리나라와 가까운 일본의 와인은 어떤 풍미를 지니고 있을까?'라는 호기심과 궁금증을 안고 나리타 공항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랐다.
인천에서 약 1시간 반을 비행해 나리타 공항에 도착한 뒤 다시 야마나시 현으로 향하는 버스를 탔다. 도쿄 중심에서 100km 떨어진 거리에 위치한 야마나시 현은 세계 문화유산이자 일본을 상징하는 후지산을 비롯해 많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자연미가 풍부한 지역이다. 봄이면 복숭아꽃이 만발해 환상적인 분홍빛 절경이 펼쳐지고, 가을이면 단풍, 겨울이면 후지산의 설경으로 절로 탄성이 나오는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한다. 일본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온천도 있는데, 도쿄 신주쿠에서 1시간 반 거리의 이사와 온천은 야마나시 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곳으로 1백여 채의 호텔과 료칸이 들어서 있다. 뿐만 아니라 포도를 비롯해 복숭아와 딸기 등이 재배되는 과일 왕국으로도 유명하다. 여름부터 가을까지는 관광농원에서 포도와 복숭아 따기 체험을 즐기며 갓 수확한 과일의 싱싱한 맛을 만끽할 수 있다.
일본 제1의 와인을 경험하고 싶다면
1 영국 와인 콩쿠르에서 금상을 수상한 그레이스 와이너리. 2 로리앙 와이너리 전경. 화사한 벚꽃이 들어 있는 '사쿠라 와인'을 한국에 수출하고 있다.
야마나시 현은 이번 투어의 핵심인 일본 제1의 와인 생산 지역으로, 1300년대부터 포도를 재배한 역사를 지니고 있으며 생산량도 일본에서 가장 많다. 포도가 자라는 곳은 많지만 와인용 포도가 자랄 수 있는 환경을 가진 곳은 많지 않은데, 야마나시는 해가 길어 일조량이 많고 일교차가 크며 강수량이 적은 등 와인용 포도를 재배하기 위한 최적의 조건을 갖췄다. 특히 야마나시에서만 생산되는 와인용 포도종인 '고슈(甲州)'가 2010년에 OIV(국제와인기구)에 등록되면서 고슈로 만든 다양한 토종 일본 와인이 프랑스와 영국 등 세계적으로 알려지고 있다. 와인 생산국의 선배 격인 프랑스나 이탈리아에 비하면 아직 새내기 수준이지만 때로는 새로운 것이 더 매력일 때도 있지 않은가. 우리나라는 현재 충북, 충남, 전북 등을 중심으로 와인 양조장이 1백여 개가 점재해 있어 와인 시장에서 아직 걸음마 단계인 반면, 일본은 야마나시 현에만 80여 개가 있다. 이 지역에는 견학을 하면서 시음할 수 있는 다양한 와이너리가 있으며, 일본 와인의 맛과 기술을 배우기 위해 많은 소믈리에와 와인 애호가들이 이곳을 방문한다.
야마나시 현의 와이너리 투어
나리타 공항에서 차로 3시간가량 달려 도착한 고슈는 야마나시 현 북동부에 위치한 시로 일본에서 가장 먼저 와인을 제조한 지역이다. 그중 첫 방문지는 고슈 시 안에 있는 포도와 와인의 마을인 가쓰누마에 자리한 그레이스 와인. 1923년에 설립된 이 와이너리는 영국 와인 콩쿠르에서 일본 와인으로는 처음으로 금상을 수상했다. 고슈 품종으로 만든 '그레이스 고슈'라는 화이트와인이 대표적인데 레몬과 귤, 복숭아꽃 향 등이 진하게 풍기면서 살짝 쌉싸름한 맛이 나며 깔끔하고 맑은 피니시를 지녔다. 그레이스 와인의 대표인 미사와 시게카즈씨는 "고슈는 상쾌하고 신맛이 강한 포도로 발효시킬 때 설탕을 첨가하는데, 이때 좋은 향이 생긴다. 발효시키는 온도 또한 맛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이므로 그레이스 고슈는 18℃로 와인을 발효시켜 제조한다"고 말했다. 두 번째로 맛을 본 '그레이스 가야가타케' 역시 고슈로 만든 화이트와인이다. 탄산가스 제조 기법을 이용한 것이 특징으로 부드러운 풍미가 일품. 세계적인 국제와인대회 DWWA에서 2011년에 은메달을 수상한 바 있다.
그레이스 와인을 둘러본 뒤 곧장 근처에 있는 로리앙 와인을 방문했다. 로리앙 와이너리는 한국에 유일하게 와인을 수출하고 있는 곳인데, 수출 품목은 병 안에 식용 벚꽃이 담겨 눈까지 즐거워지는 '사쿠라 와인'이다. '가쓰누마 고슈'는 고슈 품종만을 사용한 화이트와인으로 와인을 몇 개월 동안 효모 앙금과 접촉한 상태로 숙성시키는 쉬르 리 기법으로 양조했다. 깔끔한 감칠맛이 절묘하게 균형을 이루는 드라이 와인으로 만화 「신의 물방울」에 등장하기도 했다. 이 외에도 서양 유래 포도 품종인 머스캣 베일리 에이를 블렌딩한 '로리앙 머스캣 베일리 에이'는 달콤한 향기와 스모키 향이 조화를 이루는 레드와인으로 일본 최대 와인 대회인 'Japan Wine Competition'에서 올해 은상을 수상했다.
다음으로 향한 곳은 따사로운 햇살이 퍼지는 언덕에 위치한 산토리 토미 노 오카 와이너리. 이름만 듣고 '혹시?' 싶을 텐데, 맞다. 위스키와 맥주로 유명한 그 산토리다. 산토리 그룹에서 운영하는 이 와이너리는 야마나시 현의 기후를 활용해 일본 특유의 개성 있는 와인 만들기에 주력하고 있다. 포도밭에 오르면 강렬한 햇볕이 내리쬐는데 일본에서 일조량이 가장 많은 곳이라고 한다. 이와 함께 밤과 낮의 일교차가 커 와인용 포도를 기르기에는 최적의 기후 조건을 갖췄다. 덕분에 단맛이 깊은 와인을 만들 수 있는 것. 포도밭에서 내려오면 산 밑에 위치해 15℃의 시원한 온도로 냉방이 되는 숙성고가 있다. 여기에는 산토리의 역사를 알 수 있는 와인들이 보관돼 있는데, 그중 눈에 띈 것이 '귀부 와인'. 이름 그대로 '귀하게 부패했다'라는 뜻이 담긴 와인으로 곰팡이 균을 이용해 만든 제품이다. 재배 환경과 역사를 확인하고 나니 그 맛이 더욱 궁금해졌다. 곧장 산토리의 다양한 와인을 구입할 수 있는 매장으로 가서 화이트와인과 레드와인을 시음했다. 샤도네이 품종으로 만든 화이트와인은 부드러운 맛과 신맛이 조화롭게 어우러졌으며, 머스캣 베일리 에이로 만든 레드와인은 딸기와 사탕 같은 상쾌하고 화려한 향이 느껴졌다. 차갑게 마시면 특유의 향을 더욱 잘 느낄 수 있다.
1 그레이스 와이너리에서 생산되는 와인들. 대표적인 화이트와인 '그레이스 고슈'는 진한 레몬과 귤, 복숭아꽃 향에 깔끔하고 맑은 피니시가 특징이다.
2 만화 「신의 물방울」에 소개된 로리앙 와이너리의 '가쓰누마 고슈' 와인은 깔끔한 감칠맛이 균형을 이루고 있다. 3 야마나시 현의 고유 품종인 고슈를 비롯해 카베르네 소비뇽, 메를로 등 다양한 와인용 포도 품종을 재배하는 로리앙 와이너리의 포도밭. 4 입장료 1천1백 엔으로 야마나시 현 와인 업체가 생산한 1백여 개의 와인을 시음할 수 있는 가쓰누마 포도의 언덕 내의 와인 저장고.국내에서 일본 와인 판매 1위를 기록하는 샤토 메르시안도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1949년에 탄생한 브랜드 샤토 메르시안은 1966년 국제와인대회에서 일본 와인 최초로 금상을 수상했으며, 그 후 유수의 세계적인 와인 대회에서 계속해서 금상과 은상 등을 차지하는 영광을 안았다. 야마나시 현의 고유한 포도 품종 고슈는 물론 서양 포도 품종인 메를로와 카베르네 소비뇽 등을 재배하며, 여기에 일본의 기후, 풍토 등을 바탕으로 개성 있는 맛의 와인을 개발하기 위해 지금도 노력하고 있는 중. 샤토 메르시안의 몇 가지 와인을 시음해보니 깊은 향과 입 안에 맴도는 부드러운 맛이 그만인데, 과연 수상할 자격이 있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5 산토리 와이너리에서 판매하는 다양한 와인. 6 와인 리조트 리조나레 아쓰가타케 와인 하우스에는 와인을 시음할 수 있는 자판기가 있다. 매장에서 받은 카드를 넣고 취향에 따라 맛을 결정해 한 잔씩 시음할 수 있는데, 총 24가지 와인을 맛볼 수 있다. 7 산토리의 화이트와인은 신맛과 부드러운 맛이 조화로우며, 레드와인은 상쾌하고 달콤한 향을 느낄 수 있다.
8 국내에서 일본 와인 판매 1위를 기록하는 샤토 메르시안. 브랜드의 역사가 담긴 와인이 전시돼 있다. 9 야마나시 현의 포도밭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가쓰누마 포도의 언덕. 10 가쓰누마 포도의 언덕에서 와인을 체험할 때 제공하는 은빛 와인잔. 옛날 양조자들이 와인의 양조 상태를 확인할 때 사용했다고 한다.와인과 함께 경치를 감상하는
가쓰누마 포도의 언덕
야마나시 현 여행 계획이 있다면 가쓰누마 포도의 언덕을 방문하는 일정을 꼭 넣자. 가쓰누마 포도의 언덕은 야마나시 현 내 와인 제조업체 20여 곳의 와인을 1백 개 이상 전시한 공간으로, 저렴한 가격에 다양한 와인을 시음해볼 수 있어 와인 애호가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곳이다. 입장료 1천1백 엔을 내면 하루 종일 원하는 와인을 시음할 수 있는데, 옛날 와인 양조자들이 숙성고에서 양조 상태를 점검하기 위해 사용했던 은빛 와인잔을 준다. 특히 품질을 꼼꼼히 평가해 인정받은 와인만 이곳 포도의 언덕 와이너리에 전시되니 믿고 찾아보자. 다양한 와인을, 그것도 품질 좋은 제품 위주로 경험해볼 수 있어 이곳을 찾는 관광객은 연간 60만 명에 이른다고. 와인을 마시며 주변을 산책하는 것도 좋다. 아름답게 펼쳐진 포도밭과 야마나시 현의 경치를 감상할 수 있는데, 근사한 풍경을 바라보다 보면 행복감에 젖어드는 것은 물론 여행 중 쌓인 피로도 녹아내린다. 야경이 특히 멋지니 어둑어둑해지는 저녁 무렵에 방문해보자.
Tip 와인용 포도 품종 알아보기
와인용 포도는 우리가 흔히 먹는 포도와 조금 다른데 대부분 유럽산으로 껍질이 매우 두껍고 신맛이 나며 당도가 높다. 레드와인을 만드는 데 사용되는 대표적인 품종으로는 카베르네 소비뇽, 메를로, 피노누아 3가지가 있다. 화이트와인은 연둣빛과 황색을 띠는 포도 품종으로 만들어지며 샤르도네, 소비뇽 블랑, 리슬링이 대표적. 일본 야마나시 현에서 생산되는 고슈는 화이트와인을 만드는 데 적합한 포도 품종으로 자줏빛과 연둣빛이 감돌며 당도가 높은 것이 특징이다.
Tip 야마나시 현, 이렇게 가자!
일본 중앙에 위치한 야마나시 현에 가려면 인천공항에서 후지산 시즈오카 공항까지 주 5회 취항하는 아시아나항공 직항편을 이용한다. 도쿄에서 지하철 JR선을 타고 1시간 30분가량이면 도착할 수 있다.
또 야마나시 현 와인 투어에 편리한 '와인택시'가 매주 토·일·공휴일에 운행하는데, 이사와 온천(JR선 이사와 온천 역)을 기점으로 가쓰누마를 비롯한 와이너리 밀집 지역 4곳을 3천 엔이라는 비교적 저렴한 요금으로 돌아볼 수 있어 추천할 만하다. 야마나시 현과 이 지역 와인에 대한 보다 자세한 정보는 야마나시 현 한국 공식 사이트(yamanashi.kr)를 통해 확인할 수 있으며, 야마나시 현 서울관광 데스크(02-737-1122)에서도 알아볼 수 있다.
일본에서 일조량이 가장 많은 곳에 위치한 산토리 와이너리의 포도밭. 일교차도 커 와인용 포도를 기르는 데 최적의 기후 조건을 갖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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