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 '빈'

오스트리아 빈을 대표하는 작곡가 겸 왈츠의 대가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이 바로 이곳이다. 여름 도나우(다뉴브)강엔 뜨거운 날씨를 피해 수영을 하고 요트를 타는 주민들로 가득하다. 그래도 여유롭다. 이게 자유다.
오스트리아 빈을 대표하는 작곡가 겸 왈츠의 대가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이 바로 이곳이다. 여름 도나우(다뉴브)강엔 뜨거운 날씨를 피해 수영을 하고 요트를 타는 주민들로 가득하다. 그래도 여유롭다. 이게 자유다.
지금 유럽에서 가장 '뜨는' 지역을 꼽으라면 단연코 독일 베를린이다. 싼 집값, 개방된 문화에 매료된 세계 각지의 젊은 예술가들이 모여들면서 베를린은 곧 자유로운 영혼들의 아지트가 됐다. 1990년대 '힙스터(hipster·비주류 대안 문화를 일구는 개성 넘치는 젊은 층)' 문화를 이끌던, 여전히 가장 '힙'한 동네로 불리는 영국 런던 쇼디치(shoreditch)의 예술가 상당수가 최근 베를린으로 활동 무대를 옮긴 것만 봐도 그렇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중심은 한 곳에 머물지 않는다. '넥스트 베를린'이 뜬다. 옛 합스부르크 왕가의 영광을 간직한 도시, 오스트리아 빈(Wien)이다. 베를린을 쥐락펴락하던 젊은 예술가들이 하나둘씩 빈으로 주거지를 옮기고 있다는 얘기가 들린다. 예술에 '포화'란 단어를 들이미는 것 자체가 무리이겠으나 새로운 영감을 받고자 하는 이들의 발길이 잦아지고 있다. 하기야 예술이란 단어를 도시로 바꿔 말한다면 빈 아닐까. 이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모차르트가 기거했던 방이고, 저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프로이트가 상담했던 공간이며, 또다시 몇 발짝 옮기면 에곤 실레와 오스카 코코슈카의 세기말적 미학이 펼쳐졌던 이곳에서 예술을 떼어놓는 것이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왕조는 패망했지만 문화는 영원하다. 1차 세계대전을 목전에 두고 불온한 열기가 도전적인 창조와 파괴, 도발적인 반항과 거역의 힘으로 만개했던 세기말 빈 예술은 한 세기가 지난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며, 본능을 자극한다. 전통 화풍에 반기를 든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와 실레의 정신은 영국 출신 설치미술가 트레이시 에민 등에 영향을 주며 현대성을 강화하고 있다. 틀에 박힌 조성(調性)을 파괴한 혁명적 음악가 쇤베르크는 "평범한 사람이 언젠간 내 음악을 흥얼거릴 것"이라 했다. 구스타프 말러도 "나의 시대는 올 것"이라 했다. 그들은 예언대로 자신의 시대를 열었다. 요즘 가장 화제가 되는 심리학의 거장 알프레드 아들러가 나고 자란 동네이기도 하다. 너무나 찬란해서 애잔한, 그 빈을 걷고 있다.

빈의 카페 문화. 빈(비엔나)엔 ‘비엔나 커피’가 없다. 우유가 들어간 멜랑쥐와 생크림이 들어간 아인슈페너가 있을 뿐.
빈의 카페 문화. 빈(비엔나)엔 ‘비엔나 커피’가 없다. 우유가 들어간 멜랑쥐와 생크림이 들어간 아인슈페너가 있을 뿐.
모든 것은 카페에서 시작한다

빈에서 카페에 들어간다는 건 단순히 커피를 마시기 위함이 아니다. 문화를 만나러 가는 길이다. '빈 3대 카페'라 불리는 카페 첸트랄(café Central)로 향했다. 이렇게 '3대' '5대' 등으로 숫자를 매겨 무리짓고 서열을 세우는 건 전 세계에 우리나라밖에 존재하지 않는다고는 하지만. 카페 첸트랄은 1876년 문을 연 뒤 카페와 살롱 문화의 상징이 됐다. 빈을 대표하는 지식인 알텐부르크가 자주 찾았다고 해서 입구에 그가 앉아있는 동상이 있다. 클림트도 애인과 함께 자주 찾았다고 한다. 히틀러와 트로츠키도 단골이었다.

클래식한 분위기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낯선 풍경은 카페 한가운데 놓인 피아노였다. 슈트 차림에 어깨를 들썩이며 건반을 두드리는 피아니스트는 손님에게 눈을 찡긋해주는 매너도 잊지 않는다. 열정적인 연주에 박수로 화답한다. 고급 레스토랑처럼 검은 앞치마를 한 종업원이 주문을 받는다. 입구 앞쪽에는 도서관에서 보던 나무 봉으로 된 신문철이 있다. 서걱서걱, 차르르 하며 신문 넘기는 소리가 반갑다. 피아노와 연주자, 신문, 앞치마에 제복을 차려입은 종업원은 첸트랄 같이 전통적인 카페의 구성 요소란다. 100년 전 이곳에선 정신의학자 겸 작가 슈니츨러, 과거 양식으로부터의 탈피를 주장하는 제체시온(Sezession·分離) 운동을 일으킨 건축가 요제프 호프만, '젊은 빈'의 중심인물인 문예비평가 바르 등 많은 예술가가 모여 토론하고 신문을 보고 정치인의 연설을 들었다. 이렇게 한 시대를 풍미한 천재들이 묶음 다발로 쏟아지기도 어려워 보인다. 절망적이고 암울했던 세기말에 영감과 상상력이 가득한 빛의 도시로 만든 바탕엔 카페 문화가 있었다. 창조와 지식은 유기적인 얽힘과 나눔에서 시작한다. 몇 시간을 앉아 있어도 나가란 소리는 없다. 햇살을 등받이 삼아 책장을 넘긴다.

빈 관광청에서 꼭 가보라고 추천해준 카페 스펄(Sperl)도 찾았다. 1880년 문을 연 카페로 영화 '비포 선라이즈'의 두 주인공이 마음을 고백했던 그 장소다. 바로크풍의 실내장식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 '장식은 죄악이다'라는 말을 남긴 19세기 건축가 아돌프 로스가 디자인한 카페 무제움(Museum), 프로이트가 빈에 살 때 애용했던 카페 란트만(Landtmann)을 비롯해 빈엔 2000개가 넘는 카페가 있는데 지금도 이처럼 유서 깊은 카페가 150여곳에 달한다고 한다. 고풍스러운 커피하우스 문화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레오폴드 뮤지엄 등이 있는 미술관 밀집지역 MQ.
레오폴드 뮤지엄 등이 있는 미술관 밀집지역 MQ.
압도적인 황금빛, 욕망의 적극적 출현… 클림트와 에곤 실레

크지 않은 도시라 생각했는데, 예상 외였다. 볼 게 너무 많아 대체 어디서부터 봐야 할지 동선 짜기가 어려울 지경. 그나마 다행인 건 600년 역사의 합스부르크 왕조의 프란츠 요제프 황제가 방어 성벽을 허물고 건설한 환상(環狀) 도로(링슈트라세·Ringstrasse)를 따라 대형 볼거리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는 것이다. 빈은 23개 구역으로 나뉘어 있는데 링슈트라세로 둘러싸인 곳이 1구역으로 그 중심이다. 1865년 완공돼 올해로 150주년을 맞았다. 5㎞의 도로를 따라 90여개의 거리와 광장, 500여개의 건물이 들어서 있다. 빈 관광의 출발점이라 하는 케른트너 거리를 지나다 보면 13세기부터 300년간에 걸쳐 완공된 성 슈테판 성당을 비롯해 미술사 박물관과 자연사 박물관이 대칭으로 서서 위용을 뽐낸다. 시청과 빈 국립대학의 르네상스 풍 건물을 지나면 세계적인 수준의 오페라 극장에 도달한다. 시민의 숲이라는 정원을 비롯해 곳곳에 숨통을 틔우는 쉼터가 있다.

베토벤이 살았던 집과 레스토랑, 햇 와인인 호이리겐 등을 갖춘 레스토랑 호이리거(heuriger), '없는 게 없다'는 재래시장 나쉬마크트, 뉴욕 센트럴파크 두 배 크기의 놀이터 겸 숲인 프라터(prater) 등 발걸음을 재촉했는데도, 주어진 사흘이란 시간은 부족하기 짝이 없었다. 한정된 시간에 최대한 보려면 우선순위를 정할 수밖에 없었다. 72시간 동안 지하철·버스 등을 마음껏 이용할 수 있는 빈 카드(21.9유로)를 구입했다. 미술관 등도 일부는 할인이 된다. 클림트의 '키스'가 있는 벨베데레 궁전과 최근엔 뮤지컬 '엘리자베스'로도 잘 알려진 엘리자베스 왕비(일명 시시·Sisi)의 여름 별궁이었던 쉔부른 궁전 등을 모두 지하철로 갈 수 있다. 쉔부른은 마리 앙투아네트도 어린 시절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1400여개 방 중 일반인에게 40개 방이 개방되는데 1시간 코스인 그랜드 투어(15.9유로)가 가장 인기다. 작은 베르사유궁전이라 불리듯 1.7㎞에 달하는 정원이 볼거리다.

훈데르트바서의 쿤스트하우스가 있는 레스토랑.
훈데르트바서의 쿤스트하우스가 있는 레스토랑.

클림트의 '키스'는, 단단히 싸맨 마음의 봇짐이 한 번에 팍 소리 내며 터지는 느낌이었다. 동시에 온몸을 누가 붕대로 꽁꽁 두르는 듯했다. '그럴 것'이라고 상상했던 것 그 이상이었다. 감탄사는 온몸에서 튀어나오는데, 압도되는 기운에 발걸음을 떼기 힘든 느낌. 몰락과 쇠퇴의 순간을 황금빛으로 승화했던 그의 머릿속이 더 궁금해지던 시간이었다. 전날 뮤지엄 카르티에(Museum Quartier·MQ)로 불리는 박물관 밀집지역 내의 레오폴드 미술관에서 마주한 에곤 실레 작품이 송곳처럼 마음 구석구석을 쪼았다면 벨베데레의 클림트 작품은 거대한 망치로 한 대 맞는 기분이었다. 어느 것이 더 좋았냐고 묻는 건 작품에 대한 예의가 아니게 느껴질 만큼.

건축가이자 화가인 프리덴스라이히 훈데르트바서(1928~2000)의 집합 주택 '훈데르트바서 하우스'는 창작 공간으로서 빈의 미래를 엿볼 수 있는 곳이다. 곡선을 사랑하고 색채에 능했던 그의 손에서 탄생한 주택은 마치 고정된 시멘트가 아닌 꿀렁꿀렁한 유기체 같은 느낌을 준다. 52개 주택 어느 하나 같은 게 없다.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전시관 겸 레스토랑인 쿤스트하우스는 스페인 가우디의 작품을 연상시키면서도 투명한 색채감이 한결 청량하다.

1 최근 바뀐 빈의 신호등. 남남 커플이 걷는 모습이다. 남녀·여여 커플도 있다. 개방적 사고를 엿볼 수 있다. 2 성 슈테판 성당. 3 비엔나식 아이스커피.
1 최근 바뀐 빈의 신호등. 남남 커플이 걷는 모습이다. 남녀·여여 커플도 있다. 개방적 사고를 엿볼 수 있다. 2 성 슈테판 성당. 3 비엔나식 아이스커피.
빈 관광청 추천 맛집·볼거리

쇼콜라트(Xocolat)
 400종이 넘는 다양한 초콜릿이 있는 곳. 프라이융(Freyung) 2, 1010 Wien, www.xocolat.at

랍스텔(Labstelle) 빈 음식 전문 식당. Lugeck 6, www.labstelle.at

팔멘하우스(Palmenhaus) 프랑스 식당. Burggarten 1, www.palmenhaus.at

카페 스펄 비포 선라이즈 촬영소. Gumpendorfer Str. 11, 1060 Wien, www.cafesperl.at

마이어(Mayer) 베토벤이 기거했던 곳. 현재 와인&레스토랑. Pfarrplatz 2, 1190 Wien, www.pfarrplatz.at

벨베데레궁전 Prinz-Eugen-Str. 27, 1030 Wien, www.belvedere.at

쉔부른 궁전 Schönbrunner Schloßstraße 47, 1130 Wien, www.schoenbrunn.at

빈 3대 카페

카페 자허
 초콜릿 케이크인 자허토르테(Sacher Torte)의 원조. 필하모니커르슈트라세(Philharmonikerstrasse) 4, 1010 Wien.

카페 데멜 왕실에 납품하던 베이커리. 콜마르크트(Kohlmarkt)거리 14, 1010 Wien.

카페 첸트랄 지식인들의 집합소. 헤렌가세(Herrengasse) 14, 1010 Wien.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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