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샤모니 트레킹

프랑스령 알프스의 한 산중턱 바윗길. 초가을 햇볕이 남서쪽의 몽블랑 정상(4807m) 부근에 내려왔다. 몇 시간을 걸었지만 몽블랑은 같은 자리에 있다. 눈 쌓인 정상이 빛난다.

북쪽 산비탈 아래로 고개를 돌리면 길이 23㎞에 달하는 거대한 U자형 계곡이 두 눈을 압도한다. 계곡 아래로 조그마한 집들이 점처럼 붙어 있다. 이곳은 프랑스의 남동쪽 끝, 몽블랑과 함께 살아가는 샤모니 마을이다.

샤모니의 트레킹 코스는 깎아지른 듯한 산비탈을 둘러둘러 이어진다. 해발 2000m가 넘는 둘레길을 여성 가이드가 앞장서 걷고 있다. 계곡 맞은편으로 에귀유 뒤 미디의 뾰족한 바위봉우리가 보인다

샤모니 몽블랑(Chamonix Mont-Blanc)은 스위스·이탈리아 국경과 맞닿아 있는 작은 산골마을이다. 해발 1036m의 계곡에 1만명 남짓한 주민이 모여 산다.

이 작은 마을의 남쪽에는 서유럽의 최고봉, 몽블랑이 있다. '하얀 산'이라는 뜻의 몽블랑 덕분에 샤모니는 근대 알피니즘(등반)의 성지가 됐다. 1786년 처음으로 몽블랑에 사람이 선 뒤로, 수많은 산악인들이 샤모니를 찾아와 산과 인생을 논했다.

200여년이 흐른 지금도 매년 여름이면 180만명이 넘는 외지 사람들이 샤모니를 찾는다. 예전 모험가들처럼 몽블랑을 밟기 위해서? 아니다. 샤모니에는 몽블랑 외에도 총연장 350㎞에 달하는 천혜의 트레킹 코스가 있다.

늦은 밤 샤모니 시내는 적당히 시끌벅적했다. 팔뚝에 털이 수북한 서양인들이 배낭을 한쪽 어깨에 짊어진 채 늦은 저녁을 해결하려고 레스토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시청 앞 거리에는 호텔, 레스토랑, 식료품 가게들이 오밀조밀 들어서 있다. 12년차 여성 가이드 크리스틴 페리외(45)는 "6~8월 성수기에는 호텔 방을 잡기도 힘들다"고 했다.

샤모니 주변 산길은 수십 수백개 갈래로 나뉜다. 이 중 '4대 산길'로 불리는 길이 있는데, '그랑 발콩 노드'와 '프티 발콩 노드', '그랑 발콩 수드'와 '프티 발콩 수드'다. '그랑(grand)'이란 이름이 붙은 길은 산세가 험하고, '프티(petit)'는 비교적 낮고 평탄하다.

다음날 아침 '그랑 발콩 노드'를 걷기 위해 출발했다. 이 길에 가려면, 에귀유 뒤 미디(3842m) 전망대로 가는 케이블카를 타고 중간정거장에서 내려야 한다. 에귀유 뒤 미디는 몽블랑을 둘러싼 수많은 에귀유(Aiguille·뾰족한 바위봉우리) 중의 하나다. 꼭대기의 전망대는 몽블랑을 지척에서 볼 수 있어 인기가 좋다.

오후 1시. 에귀유 뒤 미디를 구경한 뒤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와 중간정거장 플랑 드 에귀유(2317m)에 도착했다. 샤모니 계곡을 사이에 두고 맞은편 북쪽에 우뚝 선 브레방(2525m) 정상이 보였다.

가이드 크리스틴이 앞장을 섰다. 샤모니 산길 구석구석 안 가본 곳이 없다는 크리스틴은 유독 다른 등반객들이 가지 않는 험한 길을 골랐다.

사실 샤모니의 바위산에서 등반객들을 위한 일률적인 '정답'은 없다. 총연장 350㎞에 이르는 길이 어찌 한 길이겠는가. 곳곳에 표지판이 있어 방향만 잡으면 길 잃을 염려는 없다.

몇십 분 정도 산비탈을 걸어 내려가자 샤모니 계곡이 한눈에 들어오는 둘레길이 모습을 드러냈다. 우리 일행은 마치 산비탈을 사과 껍질 벗기듯 수평으로 둘러 걸었다. 옛날 양치기 소년들이 걸었던 길이다.

샤모니의 길을 걷는 이들은 남녀노소가 따로 없다. 만삭의 임신부도 남편의 손을 꼭 잡고 길을 걸었다.

2시간쯤 걸었을까. 크리스틴이 다시 가파른 바위 계단으로 방향을 틀었다. 어느새 전나무·자작나무 숲은 사라지고 바위에 붙은 이끼들이 초록빛 풍경을 연출했다. 시냘 포브스(2198m)에 오르는 마지막 바위에 선 순간, 불어오는 바람에 얼음 입자가 느껴졌다. "빙하다!"

거대한 돌무더기 벌판 끝에서 '메르 드 글라스(Mer de Glace)'가 모습을 드러냈다. 산맥 정상에서 흘러 내려오는 '빙하의 바다'다. 멀리 빙하 끝자락에는 유럽의 3대 북벽(north face) 중 하나인 그랑 드 조라스(4208m)가 태양을 등진 채 깎아지른 듯한 절벽을 드러냈다. 몽블랑보다 등정이 어렵다는 '마의 산'이다.

지난해 그랑 드 조라스를 등반하다 숨진 한국 산악인의 추모 동판을 뒤로 하고, 메르 드 글라스 아래로 향하는 산비탈길을 내려갔다. 가파른 지그재그 길에는 다홍빛 석남화가 가득했다.

오후 4시 50분. 드디어 비탈길의 끝에서 기차역을 만났다. 샤모니로 향하는 빨간 기차가 몽텐베르 역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샤모니 북쪽 산자락의 '락 블랑' 산장에서 등반객들이 몽블랑을 바라보며 쉬고 있다.

가는 길 인천공항에서 파리를 거쳐 제네바 공항으로 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제네바 공항에서 샤모니까지 버스가 운행한다. 편도 20~25유로 정도. 1유로는 1500원 정도. 비슷한 가격으로 운행하는 봉고형 택시도 있으나, 4명 이상 예약을 해야 한다.

숙박·교통 샤모니에는 60여개의 호텔이 있다. 2~3성급 호텔은 몇대째 내려오는 가업인 경우가 많은데, 그리 넓진 않지만 정갈하다. 기자가 묵었던 포시니 호텔은 2성급으로 1인실 기준 50유로였다. www.hotelfaucigny-chamonix. com, 33-4-50-53-01-17

모든 호텔은 머무는 기간 동안 샤모니의 대중교통(버스·기차)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교통카드를 발급한다.

케이블카 케이블카 이용도 카드 한장으로 해결할 수 있다. 1일 자유이용권은 50유로, 3일짜리는 70유로다. 각 트레킹 코스로 향할 때 케이블카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미리 끊어두면 유용하다.

안내소 시청 광장의 성당 왼편에 여행자 안내소(Office de Tourisme)가 있다. 간편한 지도와 여행 책자를 무료로 받을 수 있다. 모든 트레킹 코스가 담긴 상세 지도는 4유로에 판다. 사전에 이곳에 숙박 문의를 하면 여행 예산에 맞는 숙박업소를 직접 알아봐 준다. 예약 및 문의는 www.chamonix.com, 33-4-50-53-00-24

트레킹이나 고산 등반을 할 여행자라면 성당 오른편 고산등반 안내소(Office de Haute Montagne)를 방문하는 게 좋다. 직원 4명은 모두 등반 전문가로, 여행자에게 맞는 등반 코스와 그날의 날씨 정보를 알려준다. 33-4-50-53-22-08

식당 대부분 프랑스 전통 레스토랑이다. 향내 깊은 치즈와 사부아(Savoie) 지역 포도주는 여행의 피로를 잊기 딱 좋다. 한국 음식이 그립다면 에귀유 뒤 미디로 가는 케이블카 탑승장 앞 '산마루'를 찾아보자. 20년 가까이 샤모니에 거주하고 있는 조문행(51)씨가 주인이다. 유스호스텔도 운영한다. 33-4-50-18-50-73

가이드 해발 2000m 부근의 '그랑 발콩' 이상은 길이 복잡하므로 가이드를 쓰는 게 좋다. 일반 트레킹 가이드 비용은 하루에 187유로이며, 가이드 1인당 12명까지 이용할 수 있다. 고산 등반 가이드는 1일 280유로로 제법 비싸다.

샤모니에는 세계에서 가장 역사가 오랜 가이드 회사 '샤모니 몽블랑 가이드'가 있다. 직원은 200여명이며, 사전에 마음에 드는 가이드를 예약할 수 있다. 한국말을 조금 쓰는 싹싹한 가이드가 있는데, 이름은 베르데나트로, 한왕용 대장과 함께 등반을 한 경험이 있다. 33-4-50-53-00-88

문의 프랑스 관광청 한국사무소 kr.franceguide.com, (02)776-9142


하늘 아래 첫 마을, 체르마트와 고르너그라트 설원 파노라마

동화 속 엘프의 마을처럼 눈 쌓인 샬레를 배경으로 한 아담한 마을 체르마트. 스위스 하이킹 루트 중 체르마트와 고르너그라트에서는 장대한 알프스의 파노라마가 장관을 이룬다.

“고르너그라트 전망대에는 유럽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5성급 호텔. 천문망원경을 통해 별보는 식사 코스가 유명하다.”

알프스의 대표 인명 구조견 세인트버나드(좌)와 고르너그라트 전망대에서 볼 수 있는 주요 산봉우리들을 표시한 안내판(우).

스위스에서는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노선에 파노라마 기차가 다닌다. 그중 빙하특급은 생모리츠(St. Moritz)에서 체르마트(Zermatt)까지 운행된다. 레만 호의 풍경에 익숙해질 때쯤 비스프(Visp)에서 체르마트로 오르는 빙하특급 열차에 올랐다.

지금까지 보아오던 풍경과는 확연히 다르다. 고개를 들어도 쉽사리 끝을 볼 수 없을 정도로 높은 산, 소와 양이 한가로이 풀을 뜯는 목초지, 굽이치며 흐르는 골짜기, 산비탈 마을로 곡예하듯 움직이는 케이블카…. 지루할 틈이 없었다.

고르너그라트 전망대에서 본 설경.
“스위스 최고봉인 3634m의 몬테로사와 리즈캄, 츠빌링에, 부라이트호른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그 앞에 선 고산 까마귀의 앙증맞은 모습.”
고르너그라트 전망대로 오르는 산악열차로 오르던 중 맞닥트린 설경.
스위스 지역의 전통가옥인 샬레가 험난한 산들을 배경으로 아늑하게 들어선 마을, 체르마트의 전경.

체르마트는 동화 속 엘프가 살고 있는 듯 아담한 마을이다. 샬레(아랫부분은 돌, 전체적인 골조는 나무로 된 주택)가 계곡을 따라 점점이 흩뿌려져 있다. ‘알프스의 여왕’으로 불리는 마터호른 관광의 유일한 리조트로 웅대한 알프스의 설원을 감상하기 위해 일 년 내내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봄부터 가을까지는 약 400km에 달하는 하이킹 코스를 걷기 위해, 겨울에는 스키를 타기 위해 방문한다. 특히 일본인들이 좋아하는 관광지를, 최근에는 중국 관광객도 늘고 있다.

산악박물관 마터호른 뮤지엄. 체르마트 마을 광장에 들어선 이 박물관에서는 스위스를 비 롯한 알프스 등반과 산악지역 주민들의 생활상이 아기자기 하게 전시되어 있다



산위의 눈이 녹아내린 물은 체르마트 마을을 관통하는 강이 되어 흐른다.
고르너그라트 전망대에는 유럽에서 가장 높은 5성급 호텔이 있다. 여름이면 천문 망원경으로 별을 보며 식사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도 한다. 이곳에서 하루 묵어도 좋고, 아쉬운 대로 전망대에 앉아 시원한 맥주 한 잔으로 목을 축여도 좋다. 설산의 감동을 한쪽으로 하고, 하이킹 채비를 했다. 고르너그라트에서 열차를 타고 리펠알프(Riffelalp)에서 내려 체르마트까지 내려가는 길은 약 2시간이 걸리는 코스다.
체르마트로 내려가는 하이킹 코스 시작 지점.
하이킹 코스 중간에는 어김없이 쉴 수 있는 레스토랑이 자리하고 있다.
겨울 스키 슬로프로 이용되는 초입부분은 다소 가파르고 자갈이 많은 것이 흠. 이곳만 벗어나 하늘을 뒤덮은 침엽수림 숲으로 들어가면 또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고요한 숲에 발소리만 울린다. 눈 녹은 물이 길을 따라 작은 개울을 만들기도 하고 폭포가 되기도 한다. 물이 흐르는 주변에는 생명의 기운을 머금은 풀이 돋고, 들꽃이 피어나고…. 그 길은 결국 사람이 사는 마을로 이어진다.

산 이래로 내려올수록 설원대신 풍경은 초록빛이 더 감돈다.
트레킹 길은 울창한 숲 사이를 지난다.
“겨울에는 스키 슬로프로 사용되는 길을 여름 눈 녹은 철이면 사람들이 걸어 오르기도 한다. 노르딕워킹을 즐기고 있는 사람들.”


천둥번개가 치는 듯한 굉음과 깎아 지르는 절벽…. 고르너 계곡의 위용은 상상을 초월한다.

구불구불한 오솔길을 따라 얼마쯤 걸었을까. 천지를 진동하는 우레 소리가 들려온다. 고르너 계곡에 다다랐다. 우리나라의 동굴 폭포와는 규모가 다른 고르너 계곡 안에 나무다리를 놓아 바위에 부딪히는 물살이 생동감 있게 느껴진다. 머리털이 곤두설 정도로 아찔한 경험이 바로 이런 것이리라. 4G로 어드벤처 영화 한 편을 감상하고 나니 저 멀리 체르마트 마을이 놀란 마음을 토닥여주듯 인사를 건넨다.

체르마트 인근 레스토랑
체르마트서는 환경을 보존하기 위해 소형 전기자동차만이 운행한다. 역에는 말과 마부가 관광객을 기다리고 있다.

 

“스위스에서는 산악열차로 오르지 못할 곳이 없다. 고르너그라트 전망대 앞 열차 정거장 모습.”
고르너그라트 전망대로 오르는 길에서 만난 양떼.

i.n.f.o.
코스
Zermatt-산악열차-Gornergrat-산악열차-Riffelalp-Gornerschlucht-Zermatt 난이도 소요시간 2시간 찾아가는 법 비스프 역에서 체르마트로 가는 열차 이용. 코스 특징 등산철도를 타면 리펠알프와 고르너그라트에, 케이블카로는 마테호른 글래시어 파라다이스에 오를 수 있다. 레스토랑 Alphitta(+41 (0)27 967 21 14) 숙박 Hotel Perren(+41 (0)27 966 52 00)


호주 퀸즐랜드 여행

'선샤인 스테이트(Sunshine State)'가 되살아났다. 선샤인 스테이트는 연중 300일 이상 태양이 내리쬐는 호주 최고의 관광명소 '퀸즐랜드(Queensland)'의 또 다른 이름.

퀸즐랜드는 지난 1월 100여년 만의 대홍수에 이어 2월 열대 저기압 사이클론으로 큰 피해를 봤다. 그러나 호주 정부가 신속히 복구 작업을 마쳐 이제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지금은 티없이 맑은 하늘 아래 보석처럼 빛나는 바다가 관광객들을 기다리고 있다.

퀸즐랜드 윗선데이 제도에 있는 데이드림섬. 바닷물을 끌어다 만든 인공 석호 바닥의 오색빛깔 산호초가 손에 잡힐 것 같다. / 윗선데이제도 관광청 제공
퀸즐랜드를 가장 특별하게 만드는 자연유산은 수십억년 바다의 신비를 품고 있는 산호초 군락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Great Barrier Reef)'. 퀸즐랜드 해안을 따라 남북으로 2300㎞ 뻗어 있다. 세계 7대 자연 불가사의 중 하나라 할 만하다. 헬기를 타고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를 내려다보면 하트모양을 닮은 산호초 군락인 '하트 리프'를 볼 수 있다.

이곳은 수중 스포츠의 천국이기도 하다. 육지에서 10㎞ 떨어진 윗선데이 제도(Whitsundays Island) 내 해밀턴섬을 출발해 배로 두 시간을 달려가면 바다 한가운데를 수놓은 산호초 '하디리프(Hardy Reef)'가 눈에 들어온다. 대형 수상플랫폼에 배를 묶어 놓고 스노클링과 스쿠버다이빙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바닷물이 얕아 산호 사이를 헤엄치는 물고기들과 바다거북이 생생하게 눈에 들어온다. 물 흐름도 고요해 발이 닿을 듯한 바닷물에 편안하게 몸을 맡기다 보면 형형색색의 물고기떼에 깜짝 놀라곤 한다.

윗선데이제도의 화이트헤이븐 비치(Whitehaven Beach)는 7㎞에 이르는 하얀 모래와 투명한 에메랄드빛 물을 자랑하는 휴양 명소다. 이곳은 육지와 해변을 오가는 관광선이 하루 몇편 오고갈 뿐 모든 것을 내려놓고 여유를 즐기기에 안성맞춤이다.

브리즈번 남쪽 교외에 있는 골드코스트(Gold Coast)는 자연과 도시가 공존하는 관광휴양지다. 고층빌딩과 금빛 백사장이 어우러져 이국적인 풍경을 자아낸다. 골드코스트를 대표하는 서퍼스 파라다이스(Surfer's Paradise) 해변은 이름 그대로 서핑의 천국이다. 바다가 얕은데도 높은 파도가 끝없이 밀려온다.

골드코스트의 랜드마크인 Q1빌딩 77·78층에 있는 '스카이 포인트 전망대'는 사방으로 탁 트인 시야를 자랑한다. 칵테일 한잔을 곁들여 밀려오는 파도와 모래사장, 그리고 파도 타는 서퍼들을 구경할 수 있다.

놀이동산 드림월드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직낙하 놀이기구로 기네스북에 등재된 '자이언트 드롭'(119m)을 타보자. 놀이기구에 오르면 골드코스트의 고층 빌딩과 열대 우림 전망이 한눈에 들어온다. 발이 공중에 붕 뜬다 싶더니 어느새 시속 135㎞ 속도로 떨어지는 짜릿한 경험을 할 수 있다.'파라다이스 제트 보트'는 50여분 동안 골드코스트 해안선과 스카이라인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최고속도는 시속 80㎞로 급커브나 360도 회전을 할 때는 물벼락을 맞기 십상이다.

그래픽=김현지 기자 gee@chosun.com
여행수첩

●환율:
1호주달러($AUD)=약 1141원

●항공: 대한항공에서 인천공항발 브리즈번행 직항을 주 3회 운항한다. 시드니행 직항은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모두 매일 운항. 해밀턴섬행 국내선은 브리즈번·시드니·멜버른 등에서 출발.

●교통: 해밀턴섬·화이트해븐비치 등 윗선데이제도의 섬 관광은 배편이 편리하다. 브리즈번 국제공항에서 골드코스트까지 철도·공항버스로 1시간30분 소요. 시내에선 주요 관광지행 투어버스 운행.

●관광안내: 호주정부관광청 www.australia.com, 퀸즐랜드 관광청 www.tq.com.au

지상에서 가장 오래된 공화국  '산마리노' 에 가보셨나요?
 
아드리아해의 바닷바람을 맞으며 자신의 전통과 문화를 지켜온 사람들.
그들을 본격적으로 만날 수 있는 중세의 날 축제.
7월 중순 닷새 동안중세의 향연이 펼쳐지는데 누가 뭐라 해도 이 기간이
산마리노 여행의 최적기다.


7월 중순 즈음 산마리노는 중세의 도시로 탈바꿈한다
중남미를 빼고는 거의 모든 대륙을 다녔다. 서아프리카 말리의 진흙도시 젠네의 골목길을 헤매기도 하고, 인도 푸시카르 사막에서 수십만 낙타와 함께 잠들기도 했다. 런던에서 공부할 때는 사우스 뱅크 산책을 즐겼고, 이탈리아 베네치아는 6개월 사이에 세 번이나 다녀 온 적도 있다. 하지만 보통 직장인들에게 여행을 떠날 수 있는 휴가란 대게 일주일을 넘지 않는다. 그래서 현실적으로 한정된 시간 안에 느긋이 걸을 수 있는 코스를 추천해볼까 한다.

이탈리아 동북부 내륙에 위치한 산마리노는 뙤약볕이 내리쬐는 여름이라도 한나절 걷기에 효율대비 최적의 장소다. 티타노산(Titano Mt.749m)을 중심으로 위치한 산마리노는 과이타 요새 정상에 서면 경계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조그만 도시 국가지만 가장 오래된 공화국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나라다.

301년 세워진 산마리노 공화국은 로마 황제의 지배를 받으며 2명의 집정관을 두었던 전통을 지금까지 지켜오고 있다. 우리로 치자면 대통령이 2명인 것이다. 내무부 장관이 산마리노 사람들의 결혼식 주례를 서는데, 인구 3만 명의 국가에서는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좌) 자유의 광장을 지키는 바위 경비대. 근엄해 보이지만 관광객들을 위해 기꺼이 사진 모델이 되어준다. (우) 301년에 세워진 산마리노는 로마 황제의 지배를 받으며 2명의 집정관을 두었던 전통을 지금까지 지켜오고 있다.
산마리노의 매력을 만끽할 수 있는 최적의 루트 혹은 당신이 걸었던 길은 어디인가.
기차가 이탈리아 리미니역 플랫폼에 다다르면 저 멀리 티타노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역 앞에서 산마리노행 버스를 타면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공화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는 국경선의 표지판을 지나 10여 분 뒤 산마리노의 본격 여행이 시작되는 성벽 바로 아래까지 데려다준다. 차에서 내리는 순간 느낄 수 있다. 불과 해발 700여m 높이에 부는 시원한 산바람이 얼마나 고마운지.

눈앞에 시원하게 펼쳐지는 푸른 평원을 감상하며 아드리아해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온몸으로 맞는다. 산 프란체스코 관문을 통과해 50여m를 오르면 곧 산마리노 의회가 있는 자유의 광장에 이르게 된다. 이곳에는 ‘바위 경비대’라는 멋진 이름을 가진 군인들이 의회를 지키고 서 있다. 조용히 다가가 옆에 서면 기꺼이 사진 모델이 되어준다.

여기저기 나 있는 골목길을 따라 계속해서 오르다보면 티타노산 제1의 요새인 과이타에 이르게 된다. 3개 요새가 있지만 개방되는 곳은 제2 요새 체스타를 포함한 두 곳뿐. 이 모두를 돌아보는데 반나절이면 충분하다.

뙤약볕 내리쬐는 여름이라도 한나절 걷기 좋은 산마리노 길
산마리노에서 꼭 즐기거나 느껴야 할 것이 있다면? 당신은 무엇을 즐기고, 느끼고, 가져왔나. 7월 중순 닷새 동안 산마리노는 중세의 도시로 탈바꿈한다. 골목골목 중세의 복장을 한 사람들이 거닐고, 자신의 키보다 긴 칼을 부딪치며 중세 기사들이 칼싸움을 벌인다. 그들은 산마리노를 쳐들어오는 이탈리아인들에 맞서 용감하게 싸운 조상들의 전투를 재연한다. 그런가하면 광장 곳곳에서는 젊은 남녀들이 르네상스 시대의 감미로운 음악에 맞춰 춤을 춘다. 이들 모두는 산마리노 자원봉사자들이다.

목마른 아이들에게는 시원한 수박 한입 물리고 중세의 장난감을 쥐어준다. 밤이 깊도록 광장에서 벌어지는 화려한 중세의 축제를 즐겨야 한다. 축제의 백미는 역시 축제 마지막 날 벌어지는 석궁대회. 산마리노 국가대표팀과 이탈리아 인접 도시 대표 팀들 간의 시합으로 선수들은 단 한번의 기회를 살려 3cm의 과녁 중앙을 정확히 맞히고 싶어 애를 쓴다.

(좌) 산마리노 구석구석 중세 분위기가 물씬 (우) 밤이 깊도록 화려한 중세의 축제는 계속된다
산마리노를 걸을 때 주의할 점을 귀띔한다면? 우리는 여행을 간다고 하면 최대한 편한 복장으로 간다. 하지만 서유럽인들은 이와 더불어 대개 정장 한 벌씩을 가지고 다닌다. 밤이 되면 드레스로 갈아입고 전망 좋은 레스토랑에서 그날만큼은 화려한 음식으로 한껏 분위기를 즐긴다. 똑같이 주어진 여행시간이라도 어쩐지 그들은 그 시간을 최대한 즐긴다. 지금 여행 가방을 꾸리는 중이라면 일회용 컵라면은 당장 빼버리고 가벼운 정장을 한 벌 챙기자. 그래서 소중한 여행 동반자에게 근사한 시간을 선물하자.

티타노산을 중심으로 위치한 산마리노는 과이타 요새 정상에 서면 경계선이 한눈에 들어올 정도로 작은 도시국가다.
여행의 유형에 따라 여행자들을 크게 3가지로 나눠 볼 수 있다. 고운 모래 해변에 선크림을 바르고 파도 소리를 들으며 ‘이대로 시간이 멈춰버렸으면’ 하는 여행자와 산을 오르거나 신나게 자전거를 타면서 모험을 즐기는 여행자 부류, 그리고 컬처 벌처(Culture Vulture) 즉 독수리가 먹이를 낚아채듯 이색적인 문화를 체험하기 위해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부류다.

PD라는 직함으로 해외에 다니다 보니 가만히 앉아서 즐기는 신세는 못되고, 자연히 여기저기 발품을 팔아가며 최대한 돌아다녀야 한다. 다행히 적성과도 맞다. 걷는 이유는 바로 그것이다. 눈앞에 펼쳐지는 이색적인 풍광에 고동치는 나의 심장 소리를 들으며 온 마음을 다하고 온 정신을 집중하여 그 자리, 그 시각에 온전히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해외여행 유럽, 영국 런던
지금 나는 수많은 문화와 인종이 섞여 다양한 색깔을 만들어내는 도시 런던에 살고 있다. 런던에서 길을 잃어가며 나를 찾으면서 말이다.

패션 에디터를 꿈꾸는 최빈 런던을 만나다

내가 런던행을 포기할 수 없었던 진짜 이유는 어쩌면 테이트 모던의 7층에서 바라본 창밖 풍경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세인트 폴 성당과 여기저기 삐죽삐죽 솟아오른 크레인이 합주를 이룬 런던 풍경을 보면서 나는 ‘이 도시는 옛것을 함부로 부수지 않는구나. 천천히 고치면서 새로운 문화를 더해가는구나’라고 생각했다. 나도 나를 깨부수고 다시 만들어가면서, 새로운 ‘나’를, 더 나은 ‘나’를 만들고 싶었다.

런던에 오는 것만이 정답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생에는 정답이나 정도가 없고, 인생을 살아가는 속도도 저마다 다르다. 내가 내 삶과 제대로 마주하기에는 런던만한 도시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Nordic cafe 노르딕 카페

유러피언처럼 유럽을 즐기는 방식(1)
티보다 커피, 커피, 커피!


매년 크리스마스 시즌에 포트넘 앤 메이슨Fortnum&Mason에 가면 크리스마스 티를 마실 수 있다. 홍차와 생강, 클로브,상큼달콤한 오렌지 껍질이 들어 있어 스파이시한 향이 나는 크리스마스 티는 추운 겨울에 잘 어울리는데, 나는 이 차를 매우 좋아한다.

가끔 프레시 민트티, 엘더플라워 레모네이드를 마시기도 한다. 그런데 영국의 티가 아무리 맛있다 해도 나는 역시 커피가 제일 좋다. 커피에 관한 한 ‘유난스럽다’는 말을 듣기도 하는데, 그래서 맛있는 커피를 내주는 카페를 찾는 일에는 일가견이 있다.

런던의 커피는 다른 유럽과 마찬가지로 진한 맛이 특징. 카페 네로나 프레타망제의 커피는 스타벅스에 비해 훨씬 더 진하다. 저지방 우유를 넣으면 스키니 라테Skinny Late 혹은 스키니 카푸치노Skinny Cappuccino라고 부르는데, 런더너들은 호주에서 만들어진 진한 라테와 부드러운 카푸치노의 중간 맛인 ‘플랫 화이트Flat White’를 즐겨 마신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곧이어 나 또한 중독.

Nordic cafe 노르딕 카페

1. Nordic cafe 노르딕 카페
나의 아지트 겸 카페. 조용한 공간과 깔끔한 커피 맛, 그리고 시나몬 번즈 등 카페의 필수 요소를 제대로 갖춘 곳이다. 골든 스퀘어에 위치한 노르딕 카페는 영화 <카모메 식당>처럼 세련된 인테리어가 인상적이다. 에그 버터와 포테이토 파이는 가벼운 점심으로 딱이다.
Add Nordic Bakery, 14 Golden Square, W1F 9JF Tel 44 20 3230 1077
URL www.nordicbakery.com Station Piccadilly Circus

Monmouth Coffee 몬마우스 커피
2. Monmouth Coffee 몬마우스 커피
런던에서 가장 맛있는 커피를 만드는 카페 90% 이상이 몬마우스 커피빈을 쓸 정도로, 이곳의 커피맛은 명성이 자자하다. 2주에 한 번씩 커피빈을 구입할 정도로 커피홀릭인 나에겐 없어선 안 되는 곳이다. 패키지도 예뻐서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선물용으로도 그만이다
Add Monmouth Coffee Company, 27 Monmouth Street, WC2H 9EU
Tel 44 20 7379 3516 URL www.monmouthcoffee.co.uk
Station Covent Garden

Flat white 플랫 화이트
3. Flat white 플랫 화이트
런던의 베스트 커피라고 생각하는 커피숍. 테이크아웃을 하면 종이컵에 이름을 써주는데, 이젠 내 이름이 알리스인 것도, 내가 언제나 카푸치노를 마신다는 사실까지 기억한다. 진한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강력 추천!
Add 17 Berwick Street, Soho, W1F 0PT Tel 44 20 7734 0370
URL www.flat-white.co.uk Station Oxford Circ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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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바르셀로나

퀴즈 하나. 이 나라, 거대하지만 섬세하다. 순례길에는 종교적인 경건함이 있다. 이비사 해변에는 거추장스러운 옷을 벗어 던지고 날것 그대로의 나를 찾아가는 진지함이 있다. 끈기, 열정? 차라리 말을 말자. 우리나라라면 건축 공기 5년도 많다고 난리 칠 일을 수백 년 공을 들여 자자손손 짓고 있는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을 보라. 이쯤 되면 대부분 독자들, '스페인'을 당연히 입에 올리실 게다. 

이 가을, 유럽 중에서도 이국적인 풍물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나라인 탓에 요즘 유럽여행의 트렌드는 스페인으로 옮겨가고 있다. 서유럽 대신 스페인, 혹은 서유럽 다녀온 다음에는 스페인 여행 이런 식이다. 거기에는 따뜻한 지중해성 기후가 큰 몫을 한다. 여행객의 즐거운 하루를 보장하는 데 밝은 햇살과 눈부신 하늘만큼 중요한 것이 또 있을까. 태양의 나라 스페인의 부드러운 바람은 두터운 겨울 외투를 벗어 던지게 만든다. 스페인을 이루는 문화는 참 다양하다. 거칠게 질주하는 투우의 강렬함과 현란한 세고비아 기타 선율 위로 튀어나오는 플라멩코와 탱고의 에로틱한 춤사위는 강렬한 붉은색을 품고 죽은 영혼을 살려낸다. 들어는 봤나. 건축가 가우디. 21세기 들어 주가가 쭉쭉 올라간 스페인이 낳은 걸출한 인물이다. 자연과 건축의 공존이라는 건축 테마가 신선하다. 스페인 사람들 엉뚱한 데도 있는 모양이다. 풍자소설 '라만차의 돈키호테'는 고전문학인데도 웹툰만큼 구성이 기발하다. 살바도르 달리의 초현실주의 작품세계는 또 어떻고. 

축구팬에게는 프리메라리가 상위권 레알 마드리드 축구팀이 최고일 터. 감각적인 CF를 선보이며 우리나라에도 매장을 늘려가고 있는 트렌디한 의류 브랜드 자라도 스페인이 본산이다. 노란색 샤프란이 들어간 해산물 쌀요리 파에야는 우리 입맛에도 잘 맞으니 스페인 여행 적응 준비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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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론다

그저 유럽이 입에 붙어서 언젠간 유럽여행을 찜해 두고 있다면 이 가을 '유럽 멜팅폿(용광로)' 스페인만 찍어도 딱이다. 남들 다 가는 서유럽 끄트머리에 자리 잡은 스페인이란 나라. 프랑스와 맞닿은 이 드넓은 땅덩이에는 태양의 심장을 가진 사람들이 정열을 불태우며 살아간다. 굴곡 없이 오늘에 이르지 않아 이 나라의 오늘은 더 깊은 울림을 준다. 마드리드를 시작으로 이슬람 문화가 숨쉬는 그라나다를 만나고, 아랍 최고 유적지 알람브라 궁전에서는 이슬람 문화의 진수를 본다. 안달루시아 지방의 백색 도시 미하스와 아찔한 요새도시 론다는 그 옛날 어떻게 저런 장소에 집을 지었을까 의문이 생긴다. 사그라다 파밀리아성당과 구열공원 등 천재 건축가 가우디가 숨결을 불어넣은 바르셀로나에서는 손수건을 준비해두는 것이 좋겠다. 길어야 100년살이 짧은 인생이 영원 속에 들어간 것 같을 테니. 스페인을 쭉 훑어 올라가다 보면 스페인의 정열과 인생철학에 메말랐던 내 감성에 촉촉촉 물기가 돌지도. 

그런데 가을에서 겨울로 달리는 시기, 스페인 여행을 추천하는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스페인이라는 이 나라, 유럽에서도 한때 잘나가던 큰 형님이다. 잘난 척 대마왕으로 뻐길 법도 하다. 지금은 왜 이 모양 이 꼴이냐고 신세 한탄을 한다면 그야말로 하수. 그런데 한껏 여유로운 풍모로 현재를 즐기고 있다. 잘나가던 시절 맞춰둔 흰 구두 흰 양복 백고 모자를 갖춰 입고 젠틀한 그레이 신사의 매너를 보여주시니 어디에서나 환영 받는다. 환절기 거울 속 거칠어진 내 모습이 못생김으로 나와 "이렇게 또 세월이 가는구나" 초조해 하는 나의 등을 거친 인생 지나온 살집 좋은 손으로 투닥투닥 두드려줄 것만 같은 큰 형님. 아직 즐길 인생은 남아 있다고 네 인생이 어때서 그러느냐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고민을 싹둑 잘라줄 고민 해결사 큰 형님 최고. 태양처럼 강렬하게 열정적으로 살고 싶다고? 그렇다면 볼 것 없다. 늦가을, 무조건 스페인이다. 


오랜 역사의 도시… 축구 팬들에게는 영국 런던보다도 먼저 떠오르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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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초의 산업도시 맨체스터의 면모는 현대 맨체스터의 풍경 속에도 도저하게 담겨 있다. 맨체스터의 현재를 보여주는 인공 항공 샐퍼드 키와 미디어 시티./ⓒShutterstock_Gordon Bell
축구 팬들에게는 영국, 하면 런던보다도 먼저 떠오르는 도시인 맨체스터. TV 중계 화면으로 셀 수 없이 드나든 올드 트래퍼드는 버킷리스트 맨 위에 올라 있는 꿈의 구장이다. 축구가 이유가 되었든, 런던 너머의 영국이 궁금해서 찾게 되었든, 이곳을 여행하는 사람은 모두 기대와 상상 이상의 경험에 놀라게 된다. 축구는 맨체스터를 장식하는 영롱한 보석 중 단 하나일 뿐. 오랜 역사의 맨체스터는 여러 빛깔의 크고 작은 찬란한 보물을 품고 있다.



세계 최초의 산업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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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하가 있어 온종일 청량한 물소리가 들리는 아기자기한 동네 캐슬필드./ⓒShutterstock_Shahid Khan

어웰강과 작은 운하들이 흐르는, 온종일 청량한 물소리가 들리는 아기자기한 동네 캐슬필드(Castlefield)는 맨체스터에서 가장 운치 있기로 이름난 곳이다. 물 맑고 공기 좋은 동네라면 특별한 무언가가 없어도 하루를 오롯이 보낼 만하지만, 고맙게도 캐슬필드에는 맨체스터의 정체성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과학과 산업 전반의 역사를 보여주는 과학·산업박물관(Museum of Science and Industry)이 있다.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이 가장 먼저 영향을 미친 곳은 직물 산업으로 일찍이 부를 축적한 맨체스터다. 세계에서 가장 먼저 산업화를 이룬 이 도시의 업적은 생각보다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견고한 벽돌 건물에 자리한 박물관을 찾는 것으로 자랑스러운 역사를 반나절도 채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에 알 수 있다. 롤스로이스와 스피트파이어 항공기 엔진을 비롯해 맨체스터에서 발견·발명돼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친 250여 종의 물건과 기술을 산업 직군별로 분류해놓은 전시는 기술 발전과 맥을 같이하는 인류의 역사를 차근히 되돌아보게 한다. 가장 먼저 봐야 할 곳은 맨체스터를 일명 ‘코트노폴리스(Cottonopolis, 면의 수도)’라 불리게 만든 면 산업에 헌정된 ‘텍스타일스 갤러리’. 낡고 불편해 보이는 기계들이 한때 최첨단 기술의 집약체였다는 점을 상기하며 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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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산업박물관 내 '텍스타일스 갤러리'에서는 맨체스터를 '면의 수도'라고 불리게 한, 한때 최첨단 기술의 집약체였던 방적기를 볼 수 있다. / 맨체스터의 정체성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과학과 산업 전반의 역사를 보여주는 과학 산업박물관

가상 항공기 조종 체험, 실내 스카이다이빙 등 정적이고 조용한 박물관에 대한 편견을 부수는 짜릿한 체험도 마련되어 있으며, 4세 미만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감각 놀이를 통한 체험 학습 프로그램은 몇 주 전에 예매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인기가 좋다. 과학에 관심이 많은 여행자라면 맨체스터 시내에 위치한 새크빌 공원(Sackville Park)의 벤치에 앉아 있는 천재 수학자이자 현대 컴퓨터공학의 선구자인 앨런 튜링의 동상을 찾아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붉은 유니폼을 입고 뛰는 꿈을 꾸다

파리에 에펠탑이, 뉴욕에 자유의 여신상이 있다면 스케일 큰 맨체스터에는 올드 트래퍼드(Old Trafford)가 있다. 이 도시의 상징이자 최고의 여행 명소인 올드 트래퍼드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맨유’ 팬들이 ‘OT’라는 애칭으로 부르는 7만5,000석 규모의 대형 스타디움. 수십 년간 맨유를 세계 축구의 정점에서 이끌었던 알렉스 퍼거슨 경의 동상이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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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이 가장 사랑하는 스포츠인 축구의 모든 것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축구 박물관 내부 모습 / 전 세계에 팬을 거느린 신화적인 구단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구장인 올드 트래퍼드

박지성 선수도, 퍼거슨 감독도 지금은 맨유를 떠나고 팀의 영광은 예전만 못하지만, 스타디움과 박물관 투어를 통해 명문 구단의 화려한 역사를 살펴보노라면 ‘클래스는 영원하다’는 말을 실감할 수 있다. 양손 가득 유니폼과 구단 굿즈를 들고 OT를 나서는 것만으로 성에 안 찬다면, 혹은 올드 트래퍼드에 가는 것이 영 내키지 않는 축구 문외한이라면 맨체스터 대성당 옆에 위치한 맨체스터 국립 축구박물관(The National Football Museum)으로 향하자. 무료로 운영하는 축구의 보고에서 방문자들은 영국이 가장 사랑하는 이 스포츠의 규칙과 유산, 최고의 선수들과 감독들, 전술과 리그, 대륙 대회의 역사를 배울 수 있다. 직접 페널티 킥을 차보고 BBC 캐스터들의 생동감 넘치는 해설을 들어볼 수 있으며, 명장들의 노하우를 짚어보고 최고의 브랜드와 함께해온 축구용품의 변천사도 한눈에 볼 수 있다. 박물관을 나서는 사람들은 십중팔구 다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나 시티의 경기 일정을 확인하게 될 정도로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알차고 유니크한 전시관이다.

축구사에 한 획을 긋는 명장 펩 과르디올라가 부임하며 EPL(English Premier League)의 최강자로 떠올라 군림 중인 맨체스터 시티는 맨체스터를 연고지로 하는 맨유의 라이벌로, 맨체스터 시내를 가운데 놓고 올드 트래퍼드의 반대편에 구장 에티하드 스타디움을 두고 활약 중이다. 시즌 중 두세 번 맞붙는 이 두 팀의 ‘맨체스터 더비’는 열정 넘치는 맨체스터 사람들의 에너지를 최고조로 끌어올리는 축제. 운이 좋아 여행 중 더비를 볼 수 있다면 무리해서라도 표를 구해보자. 수만 명이 “골!”을 외치며 열광하는 90분간의 아드레날린 파티에 참여하는 기회는 흔치 않다.

현대 건축의 아름다움이 빛나는 항구

맨체스터를 여행하는 날들 중 하루는 온전히 인공 항구 샐퍼드 키(Salford Quays)에서 보내자. 항구 한쪽에는 올드 트래퍼드와 전쟁박물관(Imperial War Museum North)이, 시내와 가까운 반대편에는 황홀한 부둣가 경관을 이루는 로우리 극장(The Lowry)과 비즈니스 센터인 미디어시티(MediaCityUK)가 있다. 맨체스터에서 나고 자란 화가 L. S. 로우리의 이름을 따고 2000년 엘리자베스 여왕이 개관한 로우리 극장과 BBC 등 여러 방송국이 밀집해 있어 한국의 상암동이 떠오르는 미디어시티와 함께 전쟁박물관은 항구 부근에 세련되고 도시적인 느낌을 조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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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여왕이 화가 로우리의 이름을 따서 개관한 로우리 극장.ⓒShutterstock_Alastair Wallace / 단순한 전쟁 소개가 아닌 전쟁이 개인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주제로 해 더욱 무게감이 느껴지는 전쟁박물관

한국에도 몇몇 작품을 세워놓은 세계적인 건축가 다니엘 리베스킨트(Daniel Libeskind)가 설계한 전쟁박물관은 맨체스터 스카이라인의 큰 부분을 책임지는 아름다운 현대 건축물이다. 깨어져 조각난 지구본을 모티브로 한 전쟁박물관은 외관에서부터 느껴지는 위엄과 무게감이 상당하다. 단순히 세계의 크고 작은 전쟁의 역사를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전쟁이 개인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주제로 한다는 점이 특별하다. 물론, 한국전쟁에 대한 전시도 마련되어 있다. 박지성 선수만을 위한 응원가도 불러주었던 맨체스터 사람들은 한국이 동북아시아의 분단국가 그 이상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지만,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가 머지않은 미래에 평화로운 결실을 맺은 나라로 소개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한 것은 어쩔 수 없다.



맨체스터의 미래를 기대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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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서 가장 오래된 도서관인 체담 음악대학 도서관

맨체스터에는 영국에서 가장 오래된 무료 공공 도서관인 체담 음악대학 도서관이 있다. 영화 <해리 포터> 속 도서관의 배경이기도 한 이 도서관의 존재는 그 자체로 맨체스터라는 도시의 저력을 짐작케 한다. 맨체스터의 미래가 밝은 또 하나의 이유는 바로 케임브리지와 옥스퍼드 대학의 뒤를 이어 영국에서 세 번째로 뛰어난 연구 역량을 자랑하는 맨체스터 대학이 있기 때문이다. 조지프 스티글리츠를 비롯한 노벨상 수상자들이 거쳐 간 맨체스터 대학에서는 오늘도 석학들이 도시의 영광을 재현하고 인류의 발전에 다시금 이바지하기 위해 땀을 흘리고 있다. 누가 훗날의 스티글리츠가 될지를 단박에 찾아낼 수는 없지만 대학교가 지닌 가치를 공적으로, 대중적으로 치환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캠퍼스 안의 맨체스터 박물관을 찾아 짐작해볼 수는 있다. 맨체스터 출신의 제조업자 겸 수집가인 존 리 필립스(John Leigh Philips)의 컬렉션으로 시작된 이 박물관은 ‘2016~2026 10개년 프로젝트’를 통해 맨체스터를 영국에서 가장 문화적으로 민주적인 도시로 만드는 시의 목표에 일조하고 있다. 연령과 성별 등 신분을 초월해 접근하는 지속 가능한 전시와 교육 과정 개발, 물리적인 제한에 영향을 받지 않는 전시 주최 등을 추진 중이다. 이 박물관에서 가장 유명한 전시품은 2013년부터 스스로 움직이기 시작해 세계의 이목을 끌어온 이집트 오시리스상인데, 아직까지도 조각상이 회전하는 이유를 정확하게는 밝힐 수 없어 매일 큐레이터가 박물관 오픈과 함께 반 바퀴 돌아가 있는 오시리스상을 다시 앞으로 돌려놓는다고 한다.







심지 굳은 이 도시의 봄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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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체스터 시민들이 사랑하는 피카디리 가든에서 오후 햇살을 즐기고 있는 시민들./ⓒShutterstock_Moomusician
작년 봄, 팝스타 아리아나 그란데의 맨체스터 아레나 콘서트 중 폭탄 테러 사건이 있었다. 22명이 숨지고 116명이 다친, 2005년 런던 지하철 테러 사건 이후 최악의 영국 테러 사건으로 기록된 비극이었다. 문화와 예술을 사랑해 마지않는 맨체스터 시민들은 분노하고 슬퍼했다. 애도와 추모는 오랜 시간이 지나도 계속될 것이지만, 금세 다시 일어나 추모 공연을 열고 ISIS 테러 집단에 함께 대항하는 맨체스터 시민들을 향해 전 세계가 응원의 박수를 보냈다. 세월의 풍파와 빠르고 느린 변화에 적응하고 대처하며 성장해온 이 도시의 진정한 유산은 산재한 박물관과 스타디움, 학교와 건축물보다도 굳은 심지를 지닌 사람들, 그들의 영혼이 아닐까.

· 글 : 맹지나(여행 작가, 작사가. '이탈리아 카페 여행', '크리스마스 인 유럽', '그리스 블루스', '그 여름의 포지타노', '바르셀로나 홀리데이',  '프라하 홀리데이', '포르투갈 홀리데이' 등 다수의 유럽 관련 여행 서적의 저자.)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홋카이도는 겨울의 나라라고 했다. 눈이 20m 내려야 한겨울이 끝난단다. 넓게 보면 10월 말부터 5월까지가 동장군의 시간적 영토다. 동장군의 치세는 1년의 반 이상에 뻗친다. 영화 '철도원' '러브레터'를 비롯해 갖가지 소설, 드라마, 뮤직비디오 속 설국의 심상(心象)이 '홋카이도'라는 네 음절에 담겨 있다.

그러나 무거운 눈 옷 벗은 여기는 이제 초록 여름의 나라다. 삿포로 신(新)지토세 공항에서 시라오이(白老)까지 가는 도로 양편으로 유화처럼, 무겁도록 짙은 녹음이 마중 나왔다. 도로 가장자리 허공에는 땅으로 꽂히는 화살표 모양의 낯선 교통 표지판이 군데군데 떴다. 겨울 눈으로 차도 폭이 불분명해지는 것에 대비해 설치한 일종의 공중 차선인데, 이제 쓸 데를 잃고 파란 여름 하늘에 달린 귀고리가 됐다. 자작나무는 먼 산을 덮었다.

여름 홋카이도의 특장점은 열도의 여름을 괴롭히는 장마와 태풍이 비껴간다는 것. 위도가 높아 여름 날씨치고 선선해 래프팅, 파도타기, 낚시, 등산 등 아웃도어 활동을 즐기기 좋다. 가미후라노의 라벤더 꽃밭도 바로 이때 펼쳐진다.

▶무겁도록 짙은 녹음, 여름 홋카이도=아이누 민속박물관이 있는 시라오이는 지금은 흑소(와규ㆍ和牛)로 유명하다. 선주민 아이누는 본토의 동화 정책으로 자취를 감췄다. 이곳 박물관에서 그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을 뿐이다. 곰 신을 숭배하고 짚으로 만든 집에서 연어를 말리며 살던 아이누의 삶이 축소 보존돼 있다. 매일 열리는 아이누 전통 공연은 독특한 구음과 악기 연주, 춤이 어우러져 볼거리다. 한국 말을 천연스레 섞어내는 사회자 입담이 맛깔난다.

여름에 즐기는 온천 맛은 어떨까. 노보리베츠는 규슈의 벳푸, 하코네와 더불어 일본 3대 온천지에 든다. 물빛이 부연 유황 온천. 차 타고 노보리베츠에 접어들면 수천만엔을 들여 합성수지로 만들었다는 커다란 도깨비상이 반긴다. 도깨비가 많이 살았다는 이곳은 지옥 계곡으로 유명하다. 비탈 위로 차를 몰아 이곳에 들른다. 화산 폭발로 산 반쪽이 날아간 곳에 비릿한 유황 냄새, 여기저기서 피어오르는 흰 연기, 유황에 시달려 식물을 잃고 울퉁불퉁 황량한 땅이 지옥도를 이뤘다. 간헐천까지 나무 널판이 이어진다. 부글부글 끓어 솟는 온천의 진면을 볼 수 있다. 겨울과 달리 푸른 산과 극적인 대비를 이루는 지옥 계곡은 여름 홋카이도에서만 볼 수 있는 정경이다. 비탈진 산책로를 따라 30분쯤 걸으면 물 끓는 호수, 오유누마에 닿는다. 22m 깊이에 수중 최고 온도는 135도, 표면 온도도 40도 이상이다. 1만년 전 분화의 흔적이다.

노보리베츠 인근 시대촌(時代村)에 가면 박진감 넘치는 리얼 액션의 닌자 쇼, 게이샤 쇼를 즐기고 토리우동무시(닭 우동 찜)를 맛볼 수 있다. 홋카이도의 것은 아니지만 에도시대 일본 본토의 전통도 맛보기로 즐길 수 있는 셈이다.







▶여름 홋카이도의 꼭짓점, 우스산 전망대=시대촌을 나와 면적 181㎢의 대호수 도야코(洞爺湖)로 가는 1시간 길은 대관령을 연상케 하는 산고개 지름길을 택한다. 여름이라 눈이 없으니 시원하게 뚫린 이 도로는 정상쯤에 꼭 들러야 할 전망 포인트(요로호레)를 품었다.

여기서 요테이산(羊蹄山)이 보인다. 높이 1898m의 사화산. 언뜻 보면 후지산이다. 정상에서 갈라져 나온 만년설 모습이 양 발굽 닮아 신비하다. 요테이산 왼편 원경엔 도넛 모양으로 둘레 43㎞에 달하는 칼데라호 도야코가 깔렸다. 최고 수심 179m, 동서 지름 11㎞에 달하는 거대 호수다. 물이 깨끗해 송어, 향어 낚시가 되고 수상스키도 즐길 수 있다.

어느새 그 호수를 옆에 끼고 달린다. 화산 활동으로 생긴 또 다른 신비, 우스산(有珠山)을 향해. 우스산은 남동쪽에 붉은 얼굴을 내민 쇼와신산(昭和新山)에서 로프웨이(케이블카)를 타고 6분가량 올라가야 한다. 케이블카 정거장에 내려 야생화 거느린 계단길을 5분쯤 오르면 탁 트인 우스산 전망대가 나온다.

이곳이 여름 홋카이도의 한 꼭짓점이다. 남서(南西)로 푸른 태평양, 북으로 요테이산 만년설과 도야코 호수, 서편으로 흰 연기 뿜는 흑갈색 분화구(지름 350m), 남동으로 붉은 쇼와신산, 북서로 검은 우스산 정상에 일순 포위된다. 파란 하늘을 인 채로. 수학여행 온 현지 여중생 여남은 명이 일제히 나무 난간에 올라 태평양을 향해 뜻 모를 외침을 던지더니 까르르 웃는다. 영화 속인가. 문득 헛되이 카메라를 찾아 고개를 돌린다.


황제와 신의 특별한 관계, 천단공원(天壇公園)

황제가 된다는 것은 신과 교류한다는 뜻. 낱낱이 신께 고해바치고 백성의 안위를 약속받는다는 뜻. 베이징 황성 내에는 네 개의 제단이 있다. 남쪽의 천단(天壇), 북쪽의 지단(地壇), 동쪽의 일단(日壇), 서쪽의 월단(月壇)은 이름에서도 볼 수 있다시피 각각 제사를 지내는 대상이 다르다. 이중 천단(天壇)은 가장 중요시되던 제단으로, 명청시대에 황제가 매년 이곳에서 천신에게 제를 올렸다. 이곳의 넓이는 무려 자금성의 네 배. 고대규모로는 가장 큰 제단이라 할만하다. 현존하는 세계 최고, 최대의 제전이기도 하다. 명나라의 영락제가 1420년에 세운 이 제단은 1961년 최초의 전국중점문물보호단위 중 하나로 선포되었고, 1998년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됐다.


건축법의 다양한 활용으로 “천원지방(天圓地方-하늘은 둥글고 땅은 모나다.)”, “천고지저(天高地底-하늘은 높고 땅은 낮다.)”는 천지의 순리를 담아내기도 했다. 제사를 지내는 환구단(圜丘壇) 정중앙에는 하늘을 상징하는 천심석(天心石)이 놓여 있는데, 이 천심석 위에서는 독특한 메아리현상이 발생한다. 이는 황궁우(皇穹宇)를 둘러싼 회음벽(回音壁), 황궁우 앞에 깔린 세 개의 돌, 삼음석(三音石)에도 생기는 기이한 현상이다. 회음벽의 이쪽에서 서서 말한 작은 소리는 벽을 따라 전파되어 다른 쪽 벽에서도 들린다고 하고, 삼음석의 경우는 첫 번째 돌에서 손뼉을 치면 한번, 두 번째 돌에서는 두 번, 세 번째 돌에서는 세 번의 메아리가 들린다고 한다.


천단의 중심 건축물인 기년전(祈年殿) 천정에는 용과 봉황이 어우러진 그림이 그려져 있는데, 전설에 따르면 바닥에 조각되어 있던 봉황이 밤에 천정의 용에게 놀러 갔다가 날이 밝자 그대로 눌러앉은 것이라고.

애정소설 속에서 신의 뜻을 읽는다, 대관원(大觀園)

단순한 애정소설에도 신의 뜻은 깃들어 있다. 인생무상 한편의 꿈과 같다는 덧없는 교훈일지언정, 그 과정에서 인간의 깨달음은 천계와 인간계를 넘나든다. 청나라 시절 조설근이 지은 소설 장편고전소설 [홍루몽(紅樓夢)]은 가히 중국의 정신이라 할만하다.

소설 속의 배경인 대관원(大觀園)은 소설 속에 등장하는 귀공자 가보옥(賈宝玉)이 살고 있는 가상의 장소인데, 현재 베이징에는 소설을 정밀하게 재현하여 만든 [대관원]이 자리하고 있다. 1984년에서 1989년까지 홍루몽만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인 홍학(紅學)의 학자들과 전문가들이 원작을 재현하기 위해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여 만든 결과, 이후 대부분 홍루몽과 관련된 영화와 TV 드라마는 이곳에서 촬영된다.


[홍루몽]의 ‘홍루’는 ‘붉은 누각’이라는 뜻. 아녀자들이 거처하는 규방을 홍루라 일컬었으니, 소설의 제목을 번역하면 ‘규방의 꿈’이라는 의미이다. 중국판 로미오와 줄리엣이라 할 정도로 주인공들의 애정관계를 중심에 두고 있으나, 이들이 인간 세상에 내려오기 이전, 전생의 인연을 중국고대신화의 하나인 여와신화로 설정하는 등 각종 신화와 유,불,도의 사상을 깊이 있게 담고 있다.


소설 속의 대관원은 황제의 귀비가 된 보옥의 친누이인 가원춘이 친정나들이를 하면서 막대한 돈을 들이부어 조성한 곳으로 설정되어 있다. 뱃놀이를 할 수 있는 연못, 거대한 정원, 고급저택으로 이루어진 이곳은 천상과 인간의 경치를 모두 겸비한 고대정원건축의 집대성으로 일컬어진다. 무릉도원의 이상향으로 그려진 대관원의 동쪽에서는 미려한 풍경을 감상할 수 있고, 서쪽 편에서는 청대 귀족들의 생활모습을 볼 수 있어 홍루몽의 팬들뿐 아니라 관광객들에게도 큰 인기를 끌고 있다.


[홍루몽]은 중국을 이해하기 위해 꼭 읽어야 할 소설이다.

야단법석 사람들의 신 섬기기, 백운관(白云觀)

유가,도가,불가의 세 사람이 강을 바라보고 함께 웃는 송나라의 그림.


신이 인간과 관계 맺는 방식은 예나 지금이나 사찰, 사원, 교회를 거친다. 백운관(白云觀)은 현재에도 대규모 회합이 열리는 중국 최대의 도교사원으로, 739년 당나라 현종 때 천장관(天長觀)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세워졌다. 이후 1203년에 태겁궁(太極宮)으로 이름이 바뀌었다가, 쿠빌라이 칸 시대 국가 승려였던 구처기(丘處機)가 기거하면서 명실상부한 도교의 중심지가 되었다. 14세기 명나라와의 전쟁을 거치며 파괴되었다가 다시 재건축되어 오늘날까지 백운관 이라는 이름으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도교의 일파인 전진교의 중심으로, 전진교의 제일숲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리운다. 이곳에 자리한 노율당(老律堂) 앞에 놓인 청동노새는 치유의 능력이 있어 이를 만지면 병이 낫는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정기, 부정기적으로 이루어지는 도교의 행사를 먀오후이(廟會)라 하는데, 그중에서도 백운관의 축제가 유명하다. 특히 정월 19일, 백운관이 모시는 악진인의 생일을 기념하는 회신선은 성대하다. 이날 진인이 하계로 내려와 인간들과 인연을 맺는데, 내려오는 그 모습이 일체만유의 모습인 ‘법상’이라 일반인들은 그가 진인임을 알 수 없다고 한다. 그날 사제들은 도교전통의식을 거행하며 화려한 시가행진을 벌이고, 사찰 앞에서는 수예품이나 과자를 판매하는 시장이 열린다. 화려한 복장과 건물장식이 볼만하다.

하늘의 비밀을 엿보려 한 오래된 증거, 고관상대(古觀象臺)

옛 현인들은 별을 보면서 무엇을 읽으려 했을까. 건조한 과학지식 너머 촉촉한 목소리를 들으려 했던 것은 아닐까. 신이 우주를 작동하는 방식을 엿보려 한 것은 아닐까. 북경의 천문대인 고관상대에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기구와 천문자료들이 보관되어 있을 뿐 아니라, 이 천문대 자체의 천체 관측의 역사도 500여 년에 이르러 현존하는 세계에서 제일 오래된 천문대로 꼽히고 있다. 처음 북경에 천문대가 설치된 것은 여진족이 통치하던 금나라 시절. 1127년 송나라는 하남에서 천문기구들을 가지고 와 북경에서 천문을 관측했고, 원나라 세조는 1279년 사천대(司天臺)를 건설하고 새 천문기구들을 제작했다. 1436년에서 49년, 명나라 시절 사천대 근처에 세운 관상대가 바로 현재의 고관상대이다. 당시에는 관성대(觀星臺)라 불리었으며, 명청시대에 이곳을 중심으로 천문관측이 이루어져 명청관상대로 불리기도 했다.


17세기 서구인이 그린 고관상대 옥상의 천문기구.

‘베이징 고대천문의기(古代天文儀器) 진열관’이 된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은 지난했다. 기나긴 역사를 통해 하나 둘 모였던 천문기기들은 1900년 8개국 연합군이 베이징에 침입하면서 약탈해갔고, 결국 프랑스가 약탈해간 것은 1902년에, 독일이 빼앗아간 것은 1921년에 돌려받았다. 명대에 만들어진 기기들은 중일전쟁 때 약탈을 우려해 1931년 ‘자금산(紫金山) 천문대’와 남경박물관으로 옮겨졌고, 현재 이곳에는 청대에 제조된 대형 천문기기 8개가 전시되어 있다.

속죄와 화합을 도모하다, 옹화궁(雍和宮)

그림속의 용맹한 남자는 옹화궁에서 살았던 청나라 옹정제이다.


사람을 죽인 뒤에 신에게 속죄만 하면 모든 죄가 지워질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속죄의 노력과 속죄의 흔적들은 지금도 남아 옛 사람의 고뇌를 엿보게 한다. 베이징 최대의 라마교 사원인 옹화궁(雍和宮)이 처음 지어진 것은 1694년. 처음의 용도는 청조 제3대 황제인 옹정제가 즉위하기 전에 머물던 저택이었다. 옹정제가 즉위하고 나서 3년 뒤에 옹화궁으로 이름이 붙여졌으나, 정식으로 라마교 사원으로 결정된 것은 이곳에서 태어난 건륭제 때 이르러서이다. 몽골과 티베트 등 소수민족과 관계를 돈독하게 하기 위해 1744년 이곳을 정식으로 라마교 사원으로 만들었는데, 그 배경은 단지 외교적 목적만은 아니었다. 스스로 사람을 너무 많이 죽였다고 생각한 건륭제 스스로의 속죄의 의미도 있었다.


옹화궁 내에 자리 잡은 만복각 안에는 기네스북에 오른 세계 최대의 목조 미륵불이 있다. 지상 18m, 지하 8m, 합쳐서 26m인 이 목조 미륵불은 한 그루의 백단목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티베트의 달라이라마가 건륭제에게 선물한 이 불상 이외에도 볼만한 것은 활짝 웃는 얼굴을 한 불상인 포대화상(布袋和尙). 사람들이 큰 배 미륵불이라고도 부르는 이 불상은 9세기 말 현존했던 스님을 모델로 하고 있다. 큰 자루에 온갖 필요한 일용품들을 넣고 다녀서 얻은 이름이 자루스님, 즉 포대화상인 것이다.

인간의 근원을 생각하다, 주구점 북경원인 유적(周口店北京猿人遺迹)

신이 직접 내려와 이룬 천하인 듯 여겨왔던 중국도, 사실은 지난한 인류진화의 한 과정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발견하는 것은 어떤 느낌이었을까. 1929년, 북경원인의 두개골 화석 발굴은 인류의 기원을 찾아내는 데 획기적으로 기여한 발견이었다. 이곳에서 발굴된 화석은 두개골 6개, 두개골의 조각 12개, 아래턱뼈 15개, 치아 157개 등 상당한 분량이었으나, 1941년 일어난 태평양전쟁을 거치면서 모두 잃어버리고 말았다. 이후 최근 들어 다시 발굴이 재개되면서 2003년 6월 또 다시 인간의 화석이 대량 발굴되었다. 5~60만년 전의 인류가 불을 사용했다는 증거, 석기를 사용했다는 증거, 무덤을 만들고 장식품을 착용했다는 증거가 발견된 15개의 발굴지들과 발굴품들을 전시한 박물관이 이곳에 자리 잡고 있다.

근처의 작은 산 이름은 용골산(龍骨山). 이름에서도 짐작하다시피 용의 뼈라 불리는 각종 동물의 뼈 화석들이 심심치않게 발견되었던 곳이다. 고래로 이곳에서 나온 뼈는 사람들 사이에서 만병통치약이라 불리며 높은 가격에 팔렸다고 한다.


북경원인의 두개골 측면.

그렇게 잃어버린 뼈 중에 소중한 화석이 있었을지도 모를 일. 어찌나 섬세하게 작업했는지 손상 없이 두개골에 붙은 흙을 제거하는 데 4개월이 걸렸다는 고고학자들의 일화와 비교해보면 그 안타까움을 짐작할 수 있다. 현재 이곳은 세계문화유산이자 전국중점문물보호단위로 지정되어 있다.

신과 인간, 오래 싸우고 오래 속이다. 숭문문(崇文門)

유백온은 중국의 노스트라다무스로 불리기도 한다.


신과 인간이 늘 좋은 관계를 유지한 것은 아니었다. 북경은 용왕과 오래고도 힘겨운 싸움을 한 도시이다. 북경 지방이 전부 바다여서 ‘고해유주(苦海幽州)’라 불렸던 시절, 사람들은 용왕과 싸워 이겨 북경을 육지로 만들었다. 이때 도망쳤던 용왕의 아들 용공은 이후 명나라 주원장의 군사인 유백온과 요광효가 북경성을 짓는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금 북경을 빼앗을 궁리를 한다. 처음엔 북경 안의 모든 물을 빼앗을 계략을 짰던 용공은 실패하자 북경을 물에 잠기게 하려고 아들 용아를 데리고 지하의 수로를 따라 북경으로 온다. 북경이 물바다가 되자 요광효는 그들과 대치하고, 힘겨운 싸움은 결국 또다시 사람의 승리로 끝나게 된다.


요광효는 그때 잡은 용공과 용아를 각각 북신교와 숭문문 근처에 묶어두고, “언제쯤 풀어줄거요?”라는 말에 “성문을 열 때 돌판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면 풀어주겠노라”라고 답하게 된다. 그 뒤, 북경성의 아홉 개의 문 중 여덟 개의 문만 성문을 열 때 누각에 달아놓은 돌판을 두드리고, 숭문문 하나만이 쇠종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이런 연유로, ‘구문팔전일구종(九門八錪一口鐘)’이라는 말이 생겨났다.


또 다른 전설은 유백온과 요광효가 북경성을 짓기 위해 엄청난 폭우를 내리며 장난치는 용들을 잡아들이면서 시작한다. 놀라고 겁이 난 용들이 사방팔방으로 도망치자 마지막으로 남은 아버지 늙은 용이 이들과 대치하게 된다. 힘겨운 싸움 끝에 사대천왕의 도움으로 늙은 용을 이긴 이들은 그를 숭문문 근처 철탑에 가두고, “북경성이 완공되어 숭문문의 돌판소리가 들리게 되면 풀어주겠노라.”약속한다. 14년간의 대공사 끝에 북경성이 완공된 날, 늙은 용은 돌판소리가 들리기만을 학수고대하였으나 숭문문만 종을 쳐서 결국은 풀려나지 못했다 한다.

↑ 0001(카파도키아 명물인 기구투어. 중력의 힘을 가뿐하게 이겨내어 새가 되어 날아보자. 열기구의 규모는 상상할 수 없이 크다.)

[MOUNTAIN=김지영] 최근 들어 TV나 블로그 등의 홍보로 터키 여행은 이제 할머니, 할아버지부터 갓 초등학교에 입학한 꼬마들까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여행 필수코스가 되어버렸다. 이들은 자고 먹고 반복해도 제자리의 시계바늘처럼 쉽게 줄어들지 않는 12시간의 비행시간을 비웃듯이 가볍게 비행기에 올랐다. 저녁에 출발해, 도착하니 다시 저녁이다.

중력을 이겨내는 어마어마한 힘을 얻다
터키 아타투르크 공항에 도착했다. 하지만 여행은 이제 시작. 영어와 터키어로 복잡하게 뒤얽힌 국내선으로 한 번 더 갈아타고, 총 14시간의 비행시간 후에 도착한 곳은 카파도키아 지역의 괴레메 마을이다.

↑ 0002(비잔틴 시대의 수도원. 바위 안에 파인 수도원으로 들어가, 박해받은 그리스인들이 되어보자.)

카파도키아는 비잔틴(로마)시대에 기독교인에 설립 된 터키 중부 아나톨리아 중동부를 일컫는 고대시대의 지역 명이다. 로마의 지배를 받던 이 시기에 초기 기독교인들은 로마시대의 탄압을 피해 이곳에 자리매김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세계 최초의 기독교 국가인 아르메니아 왕국에 기독교를 전파한 것도 카파도키아였다. 또한 비잔틴 시대에 정치권력과 손을 잡은 타락한 기독교인들을 비판하는 수도승들이 함께 모여 살며 개혁 운동을 시행하던 곳에서 의미가 깊다. 로마시대의 일상은 지금의 우리에게는 새롭고 신기할 뿐이다. 기독교 박해로 수천, 수만 세월 동안 자연의 풍화 작용으로 만들어진 희귀한 바위 속에 동굴을 만들어 숨어 살던 그들의 일상은 현 시대의 우리에게는 소중한 역사 속의 한 순간이 되는 것이다.

↑ 0003(그리스도인들이 카파도키아에서 교회를 세우고, 예수, 성모 마리아 등의 그림들을 그리고,숭배했다.)

카파도키아는 화산에서 분출된 용암층이 굳어 긴 시간동안 자연적으로 생겨난 모습이다. 이 곳의 지역에 있는 바위들이 비슷하고, 똑같이 생겼더라 하더라도,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모습이 아니라, 자연이 자연스럽게 만들어낸 희귀한 광경이다. 이러한 지리적 특성으로 카파도키아에서는 생명체가 살 수 없을 것 같은 황량함을 느낀다.

↑ 0004()

↑ 0005(수 만년의 세월을 이겨내고 기괴한 풍경을 만들어내는 제미벨리의 바위 속에 파뭍혀 길을 걸어보자.)

이틀간의 카파도키아 여행은 첫날 기구투어, 그린투어에 합류해 진행하고, 둘째 날에는 카파도키아를 내 몸으로 느끼기 위해 다양한 지역 주민에게 물어물어 잘 나오지 않은 지도를 보고 협곡 트레킹을 떠났다.
한국에서 카파도키아는 기구투어를 하는 곳으로 잘 알려진 곳이다. 새벽 일출과 함께 카파도키아의 다양한 모양의 바위 위를 날고 있노라면, 한가로이 하늘 위에 둥둥 떠다니는 한 마리의 물고기가 된다. 나를 누르는 중력은 어디 갔는지 찾아 볼 수가 없다. 이 기구에 비춰지는 카파도키아는 어떤 모습일지 기대를 하며, 서로의 여행 계획을 묻는다. 그리고 여행에서 있었던 재밌는 사건 사고들을 말하며 서로 공감하고 좋아한다. 터키여행의 시작이 좋다.
기구는 엄청난 열기와 공기로 힘껏 어깨 필 준비만으로도 충분한 위엄을 자랑하며 우리를 압도 시킨다. 누워만 있던 열기구가 이제 기운을 차린다. 조금씩 일어난다. 아무리 열과 공기를 불어넣어도 일어나지 못할 것 같았던 열기구가 벌떡 일어선다. 모두 환호성을 지르고 열기구에 올랐다. 열기구에서 내려 보는 카파도키아는 우주에서 자전을 멈춘 지구를 보는 듯하다. 나를 누르는 중력을 내가 손 하나 까딱 해 밀어내고 있다. 하늘 위에서 내일의 트레킹 코스도 함께 가늠해본다.


↑ 0006(황폐할 것만 같은 카파도키아에 흐르는 생명력 넘치는 으흘랄라 계곡. 그린투어를 이용하여 반드시 방문해보자.)

황량한 카파도키아에서 생명을 찾다
그린투어는 카파도키아 괴레메에서 약 1시간가량 차로 달려야 만날 수 있는 으흘라라 계곡을 가기 위해 신청했다. 입구에서 내려다보는 계곡과 양쪽으로 높이 뻗은 바위들은 다시 한 번 환호성을 지르게 한다. 하지만 더 놀라운 것은 높은 이 바위틈에서 은둔 생활을 하던 기독교인들의 보금자리가 있다. 이러한 놀라움에 바위를 따라 내려가 길의 바닥에는 흐르는 계곡 물이 있다. 황량했던 카파도키아에서 계곡을 보다니.
으흘랄라 계곡 트레킹은 처음 약 10분간 계단을 내려가다 보면 계곡에 이르러 평평한 오솔길로 이어져 있다. 이 오솔길을 약 1시간 30분에서 2시간 가량 걷다보면 출구가 나온다. 버스를 이용해도 되지만, 그린투어에 참가하면 먼 곳까지 쉽게 이동이 가능하다.

↑ 0012(카파도키아에 방문하면 동굴호텔에서 분위기를 흠뻑 느껴보자.)

그린투어에는 이 밖에도 유네스코에 등록된 데린쿠유 지하도시도 함께 방문 할 수 있다. 기독교인들이 땅 아래에 굴을 파고 조성한 도시인데, 카파도키아 전체 30개가 넘는 지하도시가 있다고 한다. 뜨거운 햇볕을 뒤로 하고, 지하 8층 깊이의 이곳에 들어가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시원하고, 아늑해 좋다. 하지만 아직 지하 일층. 가이드의 인솔아래, 한 층 한 층 계속 내려간다. 내려갈수록 내 한번 굽혀진 허리는 펼 생각을 하지 않는다. 왠지 산소도 부족해서 숨도 더 차는 듯 한 느낌이다.
이 지하도시는 과학적으로 만들어져서 환풍구도 있고, 지하 8층까지 식수나, 물건들을 나를 수 있는 통로도 있다. 이러한 좁은 곳에서 박해를 받아도시를 형성하고, 살아갔다는 비잔틴 시대의 사람들을 생각하니, 재미있게 구경하러 온 나의 마음이 숙연해졌다.

스타워즈 주인공처럼 희귀한 바위들 사이를 누벼보자
오늘은 어떤 투어에도 참여하지 않고, 내 두발로, 내 눈으로 길을 찾고 걸어 다닐 예정이다. 물론 내 보물인 지도를 들고 총 네 곳의 협곡을 트레킹했다. 유명하지만 일반적으로 투어가 연결되지 않아 사람들이 거의 오지 않는 제미벨리를 비롯하여 로즈벨리와 레드벨리까지 계획했다. 약 6~7시간에 걸친 벨리 트레킹은 서로 연결되어 있어 대중교통 없이도 쉽게 걸어가면서 찾을 수 있다. 또한 인적이 드물지만, 넓은 벨리 속에서 그들만의 트레킹 길 표시가 수많은 길에서 어디로 갈지 몰라 헤매는 우리에게 길을 제시해준다. 길이 다양하게 있을 때는 주위를 둘러보고 방향표시를 찾자.


↑ 0014(인적이 드물지만, 길을 잃을 위험은 없다. 주위를 둘러보고 표지판만 잘 따라가면 된다.)

제미벨리는 괴레메 마을에서 걸어서 10분 정도의 거리에 위치해 있다. 벨리의 초입은 우뚝 솟은 바위들 사이로 길이 나있다. 사실 이 계곡은 여행책자에 따르면 4~5km 정도라고 되어있다. 하지만 계곡 끝부분은 길이 보수가 되어있지 않고, 잃을 위험이 크다. 시작점에서 출발해, 약 한 시간가량 표시가 잘 되어있는 길을 따라 둘러보고 나오는 것이 좋다.


↑ 0013(레드벨리와 로즈벨리는 미국의 그랜드 캐년에 버금가는 아름다운 일몰을 바라볼 수 있다.)

제미벨리를 걷고 있으면 멀리 마치 미국의 그랜드 캐년과 같은 풍광을 자랑하는 레드벨리와 로즈벨리를 함께 볼 수 있다. 제미벨리를 따라 걷다보면 유네스코에 등록된 교회를 볼 수 있다. 이 교회에서 일하고 있는 할아버지 한 분이 우리의 가던 길을 붙잡고 차 한 잔주시며 교회를 소개시켜주신다. 처음엔 이렇게 친절하게 대해주는 현지인이 처음이라 거리감을 두었지만, 이야기를 하다 보니 이 교회를 몇십 년 동안 지키시면서 세계 각국의사람들에게 괴레메 마을의 자랑거리와 구경거리를 소개해 주시고, 한숨쉬고 갈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제공해주셨다. 그의 친절함에 낮선 길을 걷는 나의 긴장감을 따뜻한 홍차 한 잔으로 사르르 녹여주었다.

↑ 0011(갈라타 탑에서 바라본 이스탄불 전경.)

레드벨리와 로즈벨리가 발걸음을 재촉한다. 꼬리를 살랑 거리는 레드벨리와 로즈벨리는 같이 이어져 있어서 한 번 가면 일석이조로 트레킹을 할 수있다. 보통은 로즈벨리 투어에 있어서 약 만 원 정도만 여행사에 지불하면 트레킹 시작하는 입구에 데려다 주고, 아크테페라는 일몰 전망대에서 일몰을 보고 데려와 준다. 몇 몇 게스트 하우스에서는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않은 여행객들을 위해 기구투어, 그린투어를 하면 서비스로 함께 신청해 주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는 직접 제미벨리를 지나 레드벨리 향했다.
이곳은 투어로는 보지 못할 길들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바위 사이도 지나가고, 스타워즈 영화에 나오는 외계의 행성에 와 있는 느낌도 준다. 그렇게 한참을 구경하다 길이 없으면 주위를 살피라. 또 길 표시가 있다.
한참을 오르락 내리락을 반복하면 레드벨리가 나온다. 약 2km를 가면 입구가 나오고 이제 전망대에 오르면 된다. 레드벨리와 로즈벨리는 미국의 그랜드 캐년의 축소판이다. 광활한 붉은 바위들로 장관을 만드는 협곡들 사이로 메마르지만 장엄한 바위들이 솟아나 있다. 이렇게 트레킹을 마치고 내려오면 괴레메 마을과 차우신 마을로 갈라지는 지점이 나온다. 각자의 목적지에 따라 길을 선택을 하면 된다.

기운이 넘치는 자연의 힘을 보고, 듣고, 느껴보자
페티예 시내에서 한 시간 반 정도 고불고불한 산길을 가다보면 눈앞에 펼쳐진 사클라켄트를 발견한다. 사클라켄트는 페티예 남동쪽 약 55km에 자리한 협곡으로 여름에는 계곡 트레킹이 명성을 날린다. 계곡 입구 마을부터 이미 적벽대전에서 승리하고도 남을 엄청난 기운을 느낀다. 표를 끊고 200 미터 가량은 안전하게 계곡 트레킹을 하지 않는 사람들도 충분히 기운을 받을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하지만 여름이나, 오전 중엔 가이드와 함께 안전하게 계곡에서 두발로 걸어보고, 얼음장같이 차가운 계곡 물 속에서 내 두발은 왠지 모를 신선노름이다.

↑ 0007(욜루데니즈 해변의 사람들 틈에 낚시하는 노인.)

페티예의 이튿날은 고대하던 욜루데니즈 블루라군 트레킹이다. 시작은 페티예의 카야쾨이, 그리스인들이 거주하였다가 지금은 다 빠져나가버린 유령도시이다. 이곳에서 도착해 한걸음씩 올라가면 송글송글 맺히는 내 이마의 땀. 더워서인지, 아무도 살지 않는 카야쾨이의 적막함으로 등골이 오싹해져서 인지 알 수 없다. 왠지 모르게 발걸음이 빨라진다.
페티예에서 올라가는 길은 노란색과 빨간색 선으로 돌이나, 기둥 등에 표시가 되어 있다. 또한, 카야쾨이 마을 위에만 올라가면 평탄한 길로 블루라군 뿐만 아니라, 봄이면 나비가 가득한 버터플라이 계곡까지 보면서 내려올 수 있다. 하지만 반대로 오면 길을 찾기 어렵고 오르막길이 계속되며, 무엇보다 블루라군에게 당신의 뒷모습만 보여준다. 그러니 선택은 자유.

↑ 0008(파묵칼레. 따뜻한 온천수 속에 발을 담가 여행의 피로를 풀어보자.)

약 두 시간의 트레킹을 마치면 바로 욜류데니즈의 해변에 도착한다. 트레킹을 하면서 쌓인 땀들을 씻어 내기에 이 해변의 해수욕은 보너스. 게다가 머리 위에서는 세계 3대 패러글라이딩 장소의 명성에 걸맞게 2700m 가량의 높이에서 패러글라이딩을 즐기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이들을 보며 해수욕을 하노라면, 내 마음도 몸도 절로 두근거린다.
아침이면 더욱 빛나는 욜루데니즈 블루라군 바라보며 바람과 함께 생활의 스트레스도 함께 날려보는 것도 재미있는 추억이 된다.

↑ 0015(히에나 폴리스. 파묵칼레 뒤편에는 아름다운 그리스 신화 속 주인공들이 살고 있는 유적지를 발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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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여행기 

세계에서 꼭 방문해야 하는 도시 '페루 수도 리마'

다양한 역사·문화·음식·풍미를 느낄 수 있는 도시투어코리아 | 조성란 기자 | 입력 2014.11.11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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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어코리아=조성란 기자] 세계에서 꼭 방문해야 하는 도시로 페루의 소도 '리마'가 꼽혔다.




페루관광청은 페루의 수도 리마가 미국의 리딩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오뜨 리빙 매거진(Haute Living Magazine) 선정 '세계에서 꼭 방문해야 하는 도시' 12곳 중 한 곳으로 선정 됐다고 11일 밝혔다.




리마는 가파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곳으로, 역사, 문화, 음식, 페스티벌 등 다양한 풍미가 한 데 모이는 곳이다. 특히, 스페인 정복 이전 시대의 고고학 유적지를 비롯해 수많은 역사 유물 등을 보유하고 있어 박물관의 도시라고도 불린다.




리마는 태평양 해안가에 위치하고 있어 광활한 바다와 현대적 삶을 모두 접할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또한, 페루는 해안, 정글, 고산지대 등에서 온 다양한 원재료와, 스페인이 잉카를 정복하면서 도입된 서구 요리법이 페루만의 독창적인 음식 문화를 만들어내 남미에서도 손꼽히는 미식강대국으로 자리잡고 있다.




'센트럴(Central)', '아스트리드 이 가스통(Astrid y Gaston)' 등 남미 최고의 레스토랑 50 어워즈에서 수상한 레스토랑들이 페루의 수도 리마에 대거 밀집해 있다.




한편, 페루의 대표적인 관광 명소인 마추픽추는 트립어드바이저(Tripadvisor)가 뽑은 '세계 최고의 여행 명소'로 뽑힌 바 있다.





모든 음모론의 도시로 어서 오세요 - 산 마르코 대성당

네모 선장의 잠수함 노틸러스 호가 바다 위로 불쑥 솟아오르면, 저기 산 마르코 대성당(Basilica Cattedrale Patriachale di San Marco)이 웅장한 자태를 드러낸다. 늙은 모험가 알란 쿼터메인, 아름다운 뱀파이어 미나, 미국의 젊은 첩보원 톰 소여, 영원히 늙지 않는 도리안 그레이, 그리고 지킬 박사와 투명인간까지... [젠틀맨 리그]의 올스타 영웅들은 왜 이 물의 도시로 왔을까? 악의 집단 팬텀이 세계 정부 수반들의 회담이 벌어지는 이곳에서 테러를 벌이려는 걸 막기 위해서란다. 그렇다면 나는 묻고 싶다. 그 정부 수반들은 왜 이곳에 모인 걸까?


그림자 정부론이라는 게 있다. 세계 각국의 정부는 선거에 따라 뒤바뀌는 것 같지만, 사실은 수백 년 동안 프리메이슨이나 일루미나티 같은 어둠의 조직에 의해 통치되고 있다는 음모론이다. 영국(좁게는 시티 오브 런던)과 네덜란드가 그 음모의 중심으로 자주 언급된다. 바다와 금융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줄기를 더듬어 가면 결국 지중해에 자리잡은 베니스의 금융 자본이라는 뿌리에 와 닿는다. 안젤리나 졸리가 멋진 몸매를 뽐내는 [툼 레이더]에서 이 도시는 세계 정복을 꿈꾸는 일루미나티 조직의 집결지로 그려진다. 그들은 절대적인 힘을 가져다줄 '트라이앵글'의 마지막 열쇠를 찾고 있다.

베니스의 상인에 얽힌 이중의 음모 - 게토

세계사의 음모론 중에 가장 널리 알려진 케이스는 이것이 아닐까? 셰익스피어의 걸작 희곡들은 사실 철학자 프란시스 베이컨이나 여타의 인물이 쓴 것이라는 주장 말이다. 공교롭게도 셰익스피어의 대표작 리스트에서 이 도시를 만날 수 있다. 그런데 왜 17세기의 영국 작가가 저 먼 나라 [베니스의 상인]을 주인공으로 희곡을 썼을까?


지중해가 세계의 중심이었을 때 베니스의 금융 자본은 바로 그 세계를 지배했다. 영국, 독일, 프랑스의 왕들은 그들의 채무자에 불과했고, 로마의 교황청조차 이들엔 손끝도 못 댔다. 또한 그들은 기독교 사회의 돈줄을 완전히 주무르면서도 아랍의 여러 나라와 적극적인 교역을 할 만큼 약삭빨랐다. 그 베니스의 실세가 바로 유대인들이었다. '1파운드의 살'을 담보로 삼는 음흉한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이라는 캐릭터는 당시의 유럽 사회가 베니스의 유대 상인들을 어떻게 바라보았는지 잘 보여준다.


베니스 유대인 사회의 영향력을 보여주는 또 다른 예가 '게토(ghetto)'라는 단어다. 오늘날은 유대인, 흑인, 예술가 등의 폐쇄적 공동체를 일컫는 일상적인 용어가 되었지만, 원래 이 도시의 유대인 거주 지역을 가리키는 말에서 유래했다. 베니스 북서쪽의 게토 지역은 2차 대전 때 큰 손상을 입은 뒤 복구되어 오늘날도 오랜 유대 문화의 잔재를 볼 수 있다. 참고로 신 게토(Ghetto Nuovo)와 구 게토(Ghetto Vecchio)라는 지명이 붙어 있지만, 실제로는 신 게토가 더 오래된 동네라고 한다. 여러모로 수상쩍다.


고리대금업자 샤일룩은 베니스 유대 자본의 잔혹한 힘을 보여준다.

인디아나 존스와 최후의 십자군 - 산 바르나바 교회

성배와 아버지를 찾을 단서를 얻기 위해 도서관의 지하를 뒤지는 인디아나 존스.


예수가 최후의 만찬 때 입에 대었다는 성배(Holy Grail)는 기독교 문명의 여러 전설과 픽션에 끝없이 등장하며 모험가들을 유혹한다. 20세기의 고고학 히어로 인디아나 존스 역시 그 추적자들 중의 하나. 인디아나는 성배의 행방을 찾던 아버지가 위기에 처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그 뒤를 쫓다가 베니스에까지 오게 된다. 여기에 오래된 교회를 개조한 도서관이 있는데, 인디아나는 그 지하에 있는 옛 기독교인의 비밀 거주지(catacomb)로 이어지는 통로를 발견하고 거기에서 십자군 기사인 리차드의 무덤을 찾아낸다. 그리고 베니스에 존재하는 수많은 밀교 집단 중의 하나인 '십자가 검 형제회(The Brotherhood of the Cruciform Sword)'와 추격전을 벌이게 된다.


그렇다면 이 도서관은 어디에 있을까? 소설 판에는 '산 마르코 광장 옆의 마르시아나 도서관'이라고 나오지만 영화에서는 다른 장소가 사용되었다.

이들이 뛰쳐나오는 문에 '산 바르바나 도서관(Biblioteca di S. Barnaba)'이라고 적혀 있는데, 실제로는 '산 바르바나 교회(Campo San Barnaba)'의 이름을 살짝 바꾼 것. 이 고풍스러운 교회와 주변의 가게들은 캐서린 헵번 주연의 영화 [섬머타임]의 배경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베니스에서 죽다. 죽은 뒤에 베니스에 가다 - 그랑 호텔 데스 바인스

어떤 연유에서이든 베니스는 사람들을 유혹한다. 때론 죽음에 이르게 할 정도로. 1911년 독일의 소설가 토마스 만은 베니스의 리도 섬에 있는 '그랑 호텔 데스 바인스(The Grand Hotel des Bains)'에 머무른 뒤 [베니스에서의 죽음, Death in Venice]이라는 소설을 쓴다. 주인공인 구스타프 폰 아센바흐는 그랑 호텔 데스 바인스에 머무르면서 폴란드계의 미소년인 타지오를 보게 된다. 그의 젊음과 아름다움에 매혹된 구스타프는 자신의 노회함을 깨닫고 어떤 죽음의 계시를 받게 되는데, 결국 여기에서 생을 마감한다. 이 소설은 1971년 루치노 비스콘티에 의해 영화화되는데, 바로 그 호텔에서 촬영되었다.


베니스의 몽환은 니콜라스 로에그 감독의 호러 스릴러 [지금 보면 안돼, Don't Look Now]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불의의 사고로 딸을 잃은 뒤 그 슬픔을 잊고자 베니스로 이사 간 부부가 오히려 그곳에서 딸에 연관된 초현실적인 체험에 빠져드는 이야기다. 빨간 비옷을 입고 익사한 아이와 물의 도시 베니스가 기묘하게 연결되며 관객의 심장을 조인다. 영화 속에서 부부가 머무는 호텔 유로파는 가상의 장소로, 베니스에 있는 두 개의 럭셔리 호텔(Hotel Gabrielli Sandwirth, Hotel Bauer Grunwald)에서 촬영되었다고 한다.


[베니스의 죽음]에서 미소년 역할을 맡은 비요른 안데르센은 그 전설적인
미모로 아직도 사랑받고 있다.

카사노바의 풋풋한 밀실 - 팔라초 말리피에로

베니스가 낳은 가장 유명한 인물.카사노바는 이곳에서 사랑의 기술을 베웠다.


베니스를 찾은 이들이라면 절대 잊을 수 없는 이미지가 있다. 리알토 다리 주변 가게에서 만날 수 있는 온갖 가면들. 산 마르코 광장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카니발에 참가한 사람이라면 더욱 그 신비에 매혹되었으리라. 가면을 쓴 채 신분과 가문을 지우고 하룻밤 연인을 찾는 전통이라니, 이 도시가 낳은 최고의 유명인 카사노바 (Giacomo Casanova)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카사노바는 1700년대 초반에 이 도시에서 태어나 근처에 있는 파도바의 학교를 오가며 청춘 시절을 보냈다. 베니스는 당시 영국을 중심으로 시작된 '그랜드 투어(Grand Tour)'라는 여행 붐의 필수적인 코스였다. 카니발, 도박, 곤돌라, 점술 등 온갖 환락의 기운이 넘치는 곳. 이 도시가 21세기까지 그 명성을 떨칠 바람둥이를 배출해낸 것도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던 것 같다. 팔라초 말리피에로(Palazzo Malipiero)는 베니스의 거의 한가운데 있는 멋진 건물로, 당시 카사노바의 후견인이었던 알비세(Alvise Gasparo Malipiero)의 소유였다. 카사노바는 바로 이 건물에서 그가 여자들을 행복하게 하기 위해 태어났다는 걸 처음 깨닫는다.

이 도시의 천사는 그것도 뗐다 붙였다? - 페기 구겐하임 콜렉션

시대는 그 시대의 전설을 만들어낸다. 비엔날레와 영화제로 세계적인 예술 도시로 발돋움한 현대의 베니스는 그를 통해 제법 귀여운 전설을 탄생시켰다. 뉴욕과 빌바오에 거창한 미술관을 만들어놓은 페기 구겐하임은 베니스에는 작은 콜렉션(Peggy Guggenheim Collection)을 내놓고 있다. 그 입구에 이탈리아인들이 아주 좋아하는 마리노 마리니의 '도시의 천사(Angelo della Città)'라는 조각 작품이 서 있다. 마리니의 트레이드마크인 말 위에 두 팔을 펼친 남자가 앉아 있는 연작 중의 하나인데, 문제는 이 남자의 중심부가 꼿꼿하게 노출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탈리아는 에로 영화의 거장 틴토 브라스의 나라이면서, 교황청을 품고 있는 나라다. 어린 소녀들도 자연스럽게 지나며 이 작품을 보고 있지만, 그래도 보수적인 가톨릭 인사들의 심기를 거스를 위험도 없지 않나 보다. 때문에 귀빈이 올 때는 이 부분을 나사를 돌려 뗀 뒤 그가 떠난 뒤에 다시 붙인다. 그래서 여러 번 그 부분이 도난당했다는 풍문이 있는데, 그것은 말 그대로 풍문일 뿐이라고 한다.


'도시의 천사'는 이탈리아 미래주의와 미국의추상표현주의의 세계로 우리를안내한다.

다른 바다로 통하는 비밀 통로 - 병기창의 사자상

바깥의 사람들은 눈치도 못 챌 이 도시의 신비를 가장 잘 그리고 있는 작품은 아마도 휴고 플라트의 만화 [베네치아의 전설, Favola di Venezia]일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작가 자신이 이 도시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게토의 비밀 정원에서 할머니의 친구들로부터 갖가지 이국의 우화들을 듣고 자라났기 때문이다. 만화의 주인공인 코르토 말테제는 베니스의 밤거리를 거닐며 유대-그리스-베네치아의 전통 부적, 마법의 에메랄드, 아라비아의 묘석과 같은 신비주의의 퍼즐을 맞추어간다. 그리고 그 유명한 병기창(Arsenal)의 사자 상 앞에 선다.

병기창 앞에 있는 사자의 고향은 그리스이고.그 팔뚝에 바이킹의 낙서가 새겨져 있다.


베니스의 병기창 앞에 앉아 있는 네 사자 중의 하나는 원래 그리스 아테네의 외항인 피레우스에 앉아 있던 것. 1687년 오스만 제국과의 전쟁에 나선 프란체스코 모로시니 장군에 의해 이곳으로 옮겨졌다고 한다. 사자는 기원전부터 피레우스 항에 앉아 그 바다의 주인이 되고자 하는 여러 인간 군상들을 지켜보아왔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이 사자의 어깨와 팔뚝에 루닉(Runic) 알파벳과 특이한 문양으로 이루어진 문장이 새겨져 있다는 사실. 18세기에 베니스를 찾아온 스웨덴 외교관에 의해 이것이 스칸디나비아의 고대 언어임이 밝혀졌는데, 아마도 11세기에 지중해를 찾은 바이킹이 새긴 것으로 보인다. 그 내용은 웅장한 전사의 언어로 표현되어 있지만, 간단히 말하면 "스웨덴에서 여기 왔다 가요. 여기서 돈 좀 벌었지요."라는 내용이라고 한다. 배낭여행자가 여행지에 새긴 낙서와 비슷한 종류랄까?

코르토 말테제는 베니스 곳곳의 신비주의 문양과 문자를 해독해 에게 해의 로도스섬으로 통하는 마법의 통로를 발견한다. 피레우스의 사자도 고향의 바다로 돌아가고 싶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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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travelbible.tistory.com 오리궁둥이 2014.12.02 09:58 신고

    가보고시 은 베니스여


타는 쪽은 가볍게 한 사람만 달랑 타는 경우가 거의 없다. 무게를 달아서 요금을 책정하는 기준 및 시스템 같은 것도 없다. ⓒ 이형수 (※ 사진을 클릭하시면 크게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시티오브조이'라고 하면, 누구나 알 것이라 여겼는데, 요즘 젊은 세대들 중에는 모르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1992년에 영화로 만들어진 작품이라서, 이미 20년이나 가까이 된 영화인걸 생각하면, 모른다고 해도 그리 이상할 일도 아닌 것 같다. 그래도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다 알고있을 만한 영화가 바로 '시티오브조이'다. 미션과 킬링필드 등의 수작들로 이미 아카데미상을 탔었던 롤랑조페가 메가폰을 잡았던 영화라고 하면 도움이 될 듯. 나는 이 영화를 한참 후인 30살이 되기 직전에 봤다. 그러나 학창시절, 길에 보았던 인상적인 포스터는 그 전부터 머리 속에 남아 있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 시티오브 조이만큼 내게 인도에 대해서 잘 가르쳐준 영화나 책은 없었다.

하지만 영화가 나왔을 당시엔, 영화 내용은 고사하고, 인도란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었다. 중동으로 가는 길목의 거대한 나라, '인더스 문명의 태고지'라고 들어만 봤을 뿐, 얼마나 깊은 역사를 가진 나라인지… 얼마나 많은 사람과 많은 종교, 많은 문화가 공존하는 나라인지 조차 전혀 알지 못했다. 국제화가 급속하게 이루어진 지금도 밸리댄스라든지, 요가 등 수출용으로 상업화된 인도의 문화에서부터 교과서에 나오는 역사,  그리고 관광 책자에 나오는 타지마할의 아름다운 사진을 통해서 사람들은 인도를 피상적으로 접하지 않는가.

테레사 수녀님이 잠드신 Mother house. ⓒ 이형수

어느 나라나 그렇겠지만, 인도는 가보기 전에는 이야기 하기가 특히나 힘든 나라다.
마음과 영혼으로 느껴야 되는 나라라고도 얘기한다. 그런 인도로 가는 이는 누구나, 통상적으로 인도의 3대 메가시티 중 하나에 착륙해서 가게 되는데, 그 메가시티란 델리, 뭄바이, 그리고 꼴까따(구,캘커타)다.

이 씨티오브조이의 배경이 바로 그 사람 많은 메가시티 중에서 제일 지저분하고 가난한 도시로 알려진 꼴까따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이 꼴까따는 테레사 수녀가 말기 환자(나병 환자)를 위한 요양소를 비롯한 많은 선행을 한 곳이기도 하다.

영화에서는 바로 이 꼴까따가 절망과 희망이 공존하는 도시로 비춰진다. 가뭄이 흉년을 불러온 비하르(bihar)지방의 평범한 농부 하사리 팔(Hasari Pal)이 가난과 소작농의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 아내와 아들둘 딸하나를 데리고 무작정 웨스트 벵갈 최대의 도시인 꼴까따로 향한다. 하지만 그 꼴까따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성공의 꿈이 아니라, 그들과 똑같은 처지의 수많은 빈민과 사기꾼, 가진자가 부리는 권력의 횡포 등. 그들이 순박한 시골에서 보지 못했던 인간들의 온갖 추한 모습과 삶의 치열함이었다. 그런 잔인한 현실에 부딪혀 갈 곳을 잃고, 길 바닥에서 한 가족이 여러 밤을 지새는 동안, 하사리가 어렵게 얻은 직업이 바로 릭샤왈라.

※ 릭샤왈라 : 인력거 또는 영화에서 human horse(인간말)이라고 표현되기도 한다.

미국에서 의사에 대한 회의를 느끼고, 무작정 인도로 온 '닥터 맥스'분의 패트릭스웨이지가 인력거인 릭샤뒤에서 환호하는 모습. 릭샤왈라인 하사리 팔과 닥터 맥스의 우정을 그리는 장면. ⓒ 이형수
하사리는 간신히 얻은 직업에 뛸듯이 기뻐하지만, 모든 종류의 운송 수단이 개미처럼 얽힌 복잡한 시내를 맨발로 달리는 일은. 기술, 지식 아무것도 제시할 것이 없는 사람이 맨몸으로 할 수 있는 가장 힘든 직업 중 하나이다.

언제 사고가 날지 모르는 거리 위를 쉴새 없이 달려야 하는 열악한 환경 속에 살아야 하는 것이다. 영화에서 이 릭샤는 주변 빈민들을 불러모으는 거대한 메기의 입 같은 꼴까따의 치열한 삶, 그리고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의 꺼지지 않는 에너지 전체를 상징하는 심볼이 된다. 주인공인 하사리는 매일 뼈가 쑤시는 고통과 결핵에 걸리는 와중에서도 릭샤로 버는 푼돈을 모아, 딸인 암리타를 시집 보내겠다는 희망으로 살아간다.

※ 원판 책을 읽어보면, 당시 웨스트벵갈과 비하르 지방에서는 딸을 시집보내기 위해서는 Dowry(결혼 지참금)가 필요한데, 딸을 시집 못 보내는 것만큼 아버지로써 불명예는 없다고 한다.

사실, 이 시티오브조이는 단순히, 릭샤왈라(인력거꾼)과 닥터맥스라는 사람의 드라마 이상의 가치가 있다. 영화에서는 극적인 장면만을 하이라이트 하기 위해, 책 내용중 많은 부분이 생략되어 있지만, 원판인 책은 마치 인도를 소개하는 교과서가 따로 필요 없을만큼 많은 문화가 맛있는 양념처럼 가미되어있다. 저자인 도미닉 라피에르는  십수년동안 꼴까따와 인도에서의 경험과 릭샤꾼들과의 인터뷰로, 이 책을 완성했다. 하사리 팔이나, 그 주변인물들이 소설 속 인물이지만, 그 책의 스토리는 허구가 아니라, 그가 보고, 경험했던 인도인들의 삶 그 자체였다.

영화도 수작이지만, 원판인 책은 영화에서 언급되지 않은 세세하고 가슴 짠한 얘기들이 훨씬 더 많은 수작이므로, 한번씩 다 읽어보길 권유한다.

꼴까따에 와서 처음 찍은 사진, 빈 릭샤를 끄는 릭샤왈라가 보인다. ⓒ 이형수
이 훌륭한 작품의 심볼인 이 릭샤(인력거)를 아직도 꼴까따에서는 만날수 있다.

여행자거리인 Sudder St.와 주변 시장에서 특히나 많이 볼 수 있는데, 현재 관광상품이 아닌 생계형 인력거꾼은 이곳 꼴까따만이 유일하게 남아있다고 한다. 사실 꼴까따에서는 교통체증으로 인력거의 수를 줄이고 있다. 이제는 다시 볼 수 없는 풍경이 될지 모를 일이다.

비오는 날 sudder st의 릭샤, 릭샤는 그들에게 우산이며 집이다. ⓒ 이형수
여행자들 중에는 인력거를 타지 않는 사람이 상당히 많다. 그 이유는 일단 가격흥정을 해야되고, 그 보다 큰 이유는 인력거 꾼이 대개 깡마르고, 늙은 탓에, 죄책감을 느끼고, 불편해 하는 탓이다. 하지만, 인력거꾼에게는 자신의 뒤에 타는 손님이 가벼운 어린 아이든, 뚱뚱하든, 자신의 일에 충실할 뿐이며, 그 일로 내일 아침 밥벌이를 할 수 있다면, 당신이 몇 kg이든 문제가 되지 않는다. 깡마른 인력거꾼이 힘든 일을 하는게 안타깝다고 느낄지 모르지만, 당신이 그에게 다른 직업을 만들어 줄 능력이 없다면, 인력거를 타는게 그를 도와주는 일이고 그들의 직업을 존중해주는 일이 될 것 이다.

사실 인도에는 그날 벌지 못하면, 말 그대로 내일의 먹을거리를 걱정해야 되는 사람이 많다. 많은 릭샤왈라들도 그런 삶을 살고 있다. 그리고 그마저도 그들이 건강하게 뛸 수 있을때까지라는 것.

꼴까따의 도로는 차와 릭샤,오토바이뿐아니라 소, 염소 등의 통로이기도 하다. ⓒ 이형수
흥정의 경우도, 릭샤왈라들이 관광객 상대로 바가지를 치기도 하지만, 그건 인도 어디서나 있는 일이며, 인도를 편안히 여행하려면 오히려, 흥정에 재미를 느끼고, 익숙해지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다. 심지어 영화에서도, 순진한 농부였던 하사리마저, 딸의 사리를 살 돈을 모으기 위해 손님의 거스름 돈을 떼먹는 장면이 나온다.

인도에서는 단 몇 푼의 바가지에 열을 올리기 보단, 그 경험으로 우리 일상에서는 느껴보지 못하는 그들 만의 삶 속에서 볼 수 있는 매순간 치열함을 느껴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

외모로 보기엔, 노인정에 있어야 할 분들이 릭샤를 끄시기도 한다. 하지만 고생을 해서 그런지 외모로 보이는 것 보다는 나이가 대부분 적다. ⓒ 이형수
영화에서는 인도에서 가장 가난하다고 하는 Bihar지방의 사람들이 주로 꼴까따에서 릭샤왈라(인력거꾼)을 하고 있지만, 최근에는 이웃 나라인 방글라데시에서도 와서 릭샤를 끈다고 한다. 책에서처럼 아직도, 릭샤를 독점하고 있는 부자 몇몇에게 버는 돈의 절반 이상을 높은 대여료로 지급해야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현재도 그들의 힘든 삶이 릭샤를 끌어서 개선될 것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 이형수

꼴까따에 온 이후, 나는 며칠동안 릭샤에 넋을 잃고 있었다. 저 큰 바퀴 위로 어떤 사연을 짊어지고, 달리고 있을까? 뒤에 탄 승객이나, 짐이 아무리 무거운들, 눈에 보이지 않는 그들의 삶의 굴레와 사연들만큼 무겁지는 않을 것 같았다. 저 사람들은 가족이 있을까? 영화처럼 가족을 홀로 먹여살리고 있을까? 몸에 병은 없을까? 잠은 어디에서 잘까?

(좌) 릭샤는 비를 피하게 해주는 쉘터고, 씨에스타를 위한 침대이기도 하다. (우) 릭샤왈라에게 다리를 다친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나쁜 소식이다. 다리를 다쳐, 일을 못하게 된 릭샤왈라와 그를 대신해서 일하는 친구. ⓒ 이형수
사진을 찍으면서, 저 사람들의 깡마르고 단단한 몸,굳은 표정과 터질 것 같은 다리의 핏줄을 내가 나중에라도 다시 보면, 적어도 내일 아침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내 생활에 감사하며, 주위에 힘든 사람들을 다시 한번 돌아보는 계기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얼마나 이 릭샤왈라를 볼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이 가장 기초적이며 원시적인 운송수단이 아직도 굴러다닌다는 것은, 단순히 영화에 나왔기 때문이 아니라, 다른 운송수단이 가지지 못하는 것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근거리를 택시보다 싸고, 빠르게 갈 수 있다는 장점뿐아니라, 거친 운명을 가지고 태어난 이들의 치열한 삶 속에서 묻어나는 인간미, 정감 때문일 것이다.


25년이 지난 후 베를린의 모습은 완전히 달라졌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이후 수많은 가능성이 눈앞에 놓여 있었다.
독일 각지에서 몰려온 프로파간다들은 자신만의 아이디어로
꿈을 키워나갔고 지금의 베를린을 만들어냈다.

↑ 이미지 설명을 넣어주세요

혼돈의 시대를 기록하다

크리스 켈러&앙케 페젤

뮤지션이었던 크리스와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앙케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직후 베를린으로 이주했다. 베를린을 탈환한 아티스트들의 작업실로 대표되는 타헬레스에서 활동하며 격동의 시기를 지켜봤다. 그 이야기를 <베를린 원더랜드> 한 권에 몽땅 담아냈다.

↑ 호평을 받은 책

예술 및 라이프스타일 전문 출판사인 게슈탈텐과 함께 만든 책. 얼마 전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 참가해 호평을 받았다. 베를린에 얼마나 별난 사람들이 모여들었는지를 보여주는 사진들로 가득하다.



↑ 1992년 풍경

현재는 세련된 갤러리들로 가득 차 있는 오라니언부르거 거리의 1992년 풍경.



포토그래퍼이자 뮤지션이다. 독일 중부 도시인 다름슈타트Darmstadt 출신이며 1990년 베를린에 왔다. 현재 앙케와 함께 봅스에어포트Bobsairport(www.bobsairport.de)라는 포토 에이전시를 운영 중이다. (앙케) 그림 형제의 동화 <브레멘 음악대>로 유명한 북부 도시 브레멘Bremen 출신이다. 1990년 베를린자유대학에 입학하면서 베를린에 왔다. 현재 그래픽 디자이너로 카파Capa라는 디자인 스튜디오를 따로 운영하고 있다.



내가 속해 있던 밴드와 공연 리허설 중이었다. 공연은 취소됐고 밴드도 해체됐다. 다들 베를린 장벽으로 몰려가버렸으니까. (앙케) 고등학생으로 진로를 고민하고 있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것을 TV로 보곤 베를린으로 향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전혀 다른 세상, 새로운 미래가 펼쳐지고 있음을 느꼈다.



혼돈의 세상이었다. 정부가 재정비될 때까지 시간이 걸렸다. 이는 '자유'를 선사했다. 독일은 물론 전 세계의 예술가, 펑크족, 무정부주의자, 몽상가, 괴짜가 베를린으로 모여들었다. 우리는 빈집을 점거해 예술, 콘서트, 불법 파티 등을 여느라 바빴다. 앙케는 라이브 뮤직 클럽인 쇼콜라덴Schokoladen, '무단 점거'의 대표 아이콘이 된 타헬레스Tacheles에서 새로운 개념의 콘서트, 음악 이벤트를 열어 큰 호응을 얻었다.



타헬레스가 들어선 건물은 1907년에 지은 백화점이었는데 제2차세계대전 후 폐허가 되었다. 1990년 2월 여러 명의 예술가들이 방치된 백화점으로 향해 화려한 그래피티로 건물을 무장시켰다. 이러한 무단 점거 운동을 스Squat이라고 한다. 철거될 운명의 건물은 예술가들로 인해 베를린의 명소로 거듭났다. 하지만 정부의 입장은 달랐고, 강제 퇴거의 위기가 여러 번 있었다. 하지만 예술가들은 끝까지 버텼고 결국 정부는 베를린 역사의 한편을 장식할 반문화 운동의 상징이자 문화 공간으로 인정했다. 안타깝게도 건물 소유주의 압력에 의해 2012년에 문을 닫은 상태다.



<베를린 원더랜드>를 펴냈다. 사진과 내용이 굉장하다. (크리스&앙케)오랫동안 기획한 것이었다. 7명의 사진가가 1990년부터 1996년까지 베를린의 '야생의 시기'를 담아냈다. 사진 촬영을 할 당시의 상황과 자세한 이야기를 곁들였다. 그 시대를 함께 겪은 사람으로서 가슴을 다시 쿵쾅거리게 하는 훌륭한 사진이 많다.



표지에 올린 1990년의 킨칙 거리Kinzig Str. 풍경이다. 다큐멘터리 포토그래퍼 벤 드 빌Ben de Biel이 촬영한 것으로 베를린 동쪽 프리드리히스하인 지역의 무단 점거 현장을 사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1990년대 초를 휩쓸었던 다채로운 서브컬처는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특히 베를린 미테 지역. 하지만 여전히 많은 예술가들이 자리를 옮겨 열정을 쏟아내고 있다. 다른 대도시에 비하면 여전히 베를린은 '한번 해볼 만한' 도시다. 우리는 사진과 디자인을 통해 베를린을 기록하는 일을 할 것이다.



↑ 마크 볼라베

자게 클럽Sage Club 앞에서 만난 클럽 커미션의 창립자 마크 볼라베.

크리스 켈러&앙케 페젤

마크는 베를린에서 태어나고 자란 진짜 베를리너다. 그는 130여 개 클럽을 거느리는 클럽 커미션Club Commission의 대부답게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던 그날 밤 클러빙을 즐기고 있었다.

↑ 베를린의 클럽

실험적인 예술의 무대가 되고 있는 베를린의 클럽.



서베를린 노이쾰른 지역에 위치한 유명한 록 클럽이었다. 그날 새벽 4시쯤 클럽을 나서다 거리에서 친구를 만났다. 그런데 그녀가 대뜸 "브란덴부르크 문이 개방됐대!"라고 말하며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술에 취해 헛소리를 한다고 생각했다. 집에 가려고 택시를 탔다. 아무래도 기분이 이상해 택시 기사에게 물어보니 택시 기사 또한 베를린 장벽에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난 것 같다고 하더라. 당장 브란덴부르크로 가자고 했다.



동, 서 양쪽에서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브란덴부르크 문 앞으로 운집했다. 사람들은 장벽 위로 올라섰고 반대편 지역으로 뛰어내렸다. 예전 같았다면 군인이 탄압하거나 총을 쏘았을 텐데 군인들은 어찌할 줄 몰라 했다. 나도 다른 사람들을 따라 장벽을 넘었고, 동베를린에 발을 디딘 후 브란덴부르크 문을 통과해 다시 서베를린으로 돌아왔다. 축제 같은 분위기였지만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몰라 조금 긴장했다. 1953년도에 일어난 동베를린의 폭동 때처럼 무장한 소련군이 몰려올 수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시민들도 정부도 평화를 지켰다. 기적과도 같았다.



1980년대에 이미 독일은 영국과 함께 테크노 음악의 중심지로 거듭났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자 베를린 미테 지역을 중심으로 무료 지하 테크노 파티와 레이브 신이 생겨났다. 베를린엔 주인이 없는 '빈 공간'들이 넘쳐났다. 특히 장벽이나 양쪽의 정부 기관이 들어서 있던 곳이 그랬다. 포츠다머플라츠Potsdamerplatz, 빌헬름 거리Wilhelm Str.에 에-베르크E-Werk, 데어 벙커Der Bunker, 트레조Tresor와 같은 전설적인 클럽들이 생겨났다. 하지만 1990년대 말 베를린에 불어닥친 개발 계획으로 인해 클럽들은 문을 닫거나 다른 지역으로 쫓겨나야 했다. 이러한 일을 겪은 뒤 클럽 신의 보존과 발전을 위해 2000년에 클럽 커미션을 창설하게 됐다.



트렌스 음악의 거장으로 불리는 동독 출신 DJ 폴 반 다이크Paul van Dyk는 베를린 장벽 붕괴 직후 벌어졌던 테크노 파티와 레이브 신이 동서독의 사회를 연결하는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베를린에서 클럽은 단순히 하룻밤 유흥을 위한 장소가 아니다. 베를린에는 미술, 영화, 음악, 패션, 디자인 업계에서 활동하는 이들이 많다. 이들은 클럽에서 창조적 아이디어를 얻는다. 클럽엔 음악, 음향, 건축, 미술, 그래픽, 조명 디자인 등 다양한 예술적 장치들이 어우러진다. 훌륭한 클럽은 예술적인 생각, 실험 정신을 가져야 한다. 클럽 커미션은 이러한 클럽을 발굴하도록 돕는다. 처음엔 20여 개 클럽이 모여 시작했는데 현재 130개 클럽이 가입되어 있다.



베를린 클럽 신의 산증인과도 같은 트레조. 규모나 음악, 음향 시설, 레지던스 아티스트 등 여러모로 최고 수준을 보여주는 베르그하인Berghain.



기도의 '물 관리'는 클럽의 질을 높이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겉치장과는 상관없다. 이미 술에 취했다면-특히 남성 무리-입장이 어렵다. 평화로운 분위기를 지니며 감각을 열고 자유롭게 클러빙을 즐길 이들을 감별해내도록 교육받는다. 너무 어렵나?



↑ 톰 미헬베르거&이현지

미헬베르거 호텔의 아늑한 안마당에에서 만난 톰과 이현지.

오래된 공장의 창조적 변신

톰 미헬베르거&이현지

진짜 베를린을 만나고 싶다면 미헬베르거 호텔에서 머무르기를 추천한다. 오래된 공장이나 창고에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지닌 이들이 모여 새로운 일들을 만들어내는 대표적인 모델이다.



↑ 카페

편안하면서도 멋스러운 카페.




독일 남부의 작은 도시 출신이다. 2003년 베를린을 처음 찾았다. 장벽뿐만 아니라 도시 곳곳이 허물어져 있었다. 베를린 동쪽의 경우 3개 건물 중 하나는 레노베이션이 필요해 보였다. 베를린에 도착한 첫째 날, 이곳이 나의 새로운 터전이 될 것이라 직감했다. 나는 국제 비즈니스를 공부했지만 예술과 문화에 관심이 많았고 나만의 독자적인 일을 꾸리고 싶었다. 베를린은 최적의 도시였다. 이곳엔 한층 여유로운 시간과 공간이 존재했다. 저렴한 물가 덕분이다. 삶을 유지하기 위해 혹은 커리어를 쌓기 위해 쫓기지 않아도 됐다. 독일은 물론 세계 각지에서 몰려온 전혀 다른 사람들, 도시가 지닌 놀라운 역사, 그래피티, 음악 등 곳곳에서 영감을 얻을 수 있었다.



영화감독이나 프로듀서를 꿈꿨지만 특출한 재능을 지닌 것 같지 않아 마음을 접었다. 공동 창업자인 나딘과 오랜 고민 끝에 호텔을 열자고 의견을 모았다. 호텔이라는 공간에서는 두 사람 모두 잘할 수 있고 또 하고 싶은 일들을 벌여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스위스 로잔에 위치한 호텔 학교에서 유학 중이었다. 취업을 알아보다 베를린에 새로운 호텔이 문을 연다는 소식을 들었다. 비행기를 타고 베를린까지 면접을 보러 갔다. 호텔리어답게 블랙&화이트 슈트를 차려입고 호텔에 도착했는데 캐주얼한 차림새의 톰과 나딘이 신선하게 느껴졌다. 대형 호텔들에서 느낄 수 없는 열정, 가족적인 분위기에 반해 미헬베르거 호텔에 합류했다.



2004년부터 호텔 오픈을 준비했다. 각종 계획을 짜고 호텔 건물을 알아보는 데 총 4년의 시간이 걸렸다. 딱 맞는 호텔 건물을 찾는 것이 관건 이었다. 베를린 내 100여 채가 넘는 건물을 보러 다녔고 결국 2008년 계약에 성공했다. 호텔 빌딩은 19세기에 지어진 공장이었다. 국가적으로 보존되고 있어 외관은 과거의 모습을 그대로 살리고 내부만 레노베이션했다. 우리는 호텔의 콘셉트와 디자인을 정할 때 다른 호텔들을 참고하지 않았다. 미헬베르거의 스태프와 참여한 건축가, 디자이너 등의 독자적인 아이디어와 컬래버레이션으로 완성한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



오픈한 지 1년 만이었다. 런던에서 주최하는 어워드로 '카페, 바, 나이트클럽 혹은 라운지'의 카테고리에서 수상했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아자르을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 런던과 바르셀로나에서 활동하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이자 일러스트레이터로 호텔에 합류해 아이덴티티 구축과 디자인 등을 전체적으로 담당했다. 호텔 로고는 물론이고 브로슈어, 벽화, 홈페이지의 일러스트와 디자인 등 아자르 만의 독특한 스타일이 잘 어우러졌다. 늘 새로운 도전을 한다. 베를린에 '코코넛 워터'라니.

코코넛 워터는 물론 미헬베르거 크래프트 비어, 리큐어도 출시했다. 그중 리큐어는 미국에서도 판매될 예정이다. 뉴욕이나 런던과 같은 도시였다면 이러한 도전이 마냥 쉽지 않았을 것이다. 베를린의 매력은 바로 여기에 있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물가 덕분에 자신이 원하는 일에 더욱 쉽게 도전할 수 있고 수많은 아이디어, 열정을 가진 이들을 만나 이를 실현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 이미지 설명을 넣어주세요

컨테이너에서 싹튼 서브컬처

톰 뵈셔만

플래툰은 베를린과 서울을 본거지로 활동하고 있는 아트 커뮤니케이션 그룹이다. 이들이 각 도시에 들여놓은 컨테이너 '쿤스트할레'에선 서브컬처가 꿈틀댄다. 플래툰의 대표인 톰 뵈셔만은 최근 평양 여행을 다녀왔다.



↑ 쿤스트할레 베를린

서울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느낌의 쿤스트할레 베를린. 크리에이터들의 아지트로 자리 잡았다.



↑ 톰이 촬영한 평양 시내의 모습

톰이 촬영한 평양 시내의 모습. 놀랍다.



↑ 쿤스트할레 서울

쿤스트할레 서울. 컨테이너를 이용한 건축과 디자인으로 독일의 레드 닷 디자인 어워드에서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아니. 중부 하노버 근교의 데트몰트Detmold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1997년 베를린으로 옮겼다.

16세 때. 서베를린에 할머니가 사셨다. 할머니는 베를린에 온갖 '크레이지'한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다고 했다. 당시 서베를린엔 젊은 청년들과 예술가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예술가들은 체질적으로 도발적인 환경을 좋아한다지만 청년들은 왜냐고? 베를린에 거주하는 남자는 군대를 가지 않아도 됐거든.

하노버에서 서베를린에 이르는 아우토반이 하나 있었다. 모두 그 길을 이용했다. 서베를린까지는 2시간 30분쯤 걸렸다. 베를린에 도착하기에 앞서 동독의 관문 도시인 막데부르크Magdeburg를 지나쳤는데, 와, 깜짝 놀랐다. 그렇게 가난할 줄 몰랐다. 얼마 전 북한을 방문했을 때와 비교해도 그때가 훨씬 충격적이었다.

독일문화원과 평양국제영화제를 다녀왔다. 베이징에서 고려항공을 타고 평양에 입성, 4박 5일간 있었다. 영화제 공식 일정과 평양 시내 투어를 했는데 북한 가이드가 내내 동행했다. 평양에서 찍은 사진을 보면 놀랄 것이다. 서울의 타워팰리스와 같은 초호화 아파트가 들어서 있고, 값비싼 독일 차들이 도로를 달리며, 규모가 작긴 하지만 고급 백화점도 있다. 빼어난 레스토랑도 많다. 최근 오픈한 일식집에서 8코스 디너를 먹었는데 식재료며 요리 수준이 굉장히 높았다. 6년간 쿤스트할레 서울을 운영하며 한국 음식을 많이 먹어봤지만, 솔직히 말해 밥과 김치 등 기본적인 음식은 북한의 것이 더 맛있다. 그리고 술! 대동강 맥주! 감히 아시아 맥주 중 최고다.

소련의 신고전주의 양식 건축물과 거대한 동상들, 군인들의 시가 행진에 필요한 전시용 대로 등을 보며 베를린의 카를 마르크스 알레를 떠올렸다. 무엇보다도 평양과 베를린의 닮은 점은 '선택받은 자'들을 위한 도시라는 것이다. 평양에 사는 이들은 북한의 지도층이나 엘리트들이다. 동베를린도 마찬가지였다. 정치가나 군인, 교사, 예술가들이 기회를 얻었다.

당시 데트몰트의 한 마케팅 회사를 다니고 있었는데 휴가를 내고 친구들과 함께 베를린으로 향했다. 수많은 인파가 모여들어 장벽을 허물고 있었다. 사람들은 장비를 챙겨 장벽을 무너뜨렸다. 불도저와 크레인도 동원됐다. 지난여름 브라질 월드컵 우승 후 브란덴부르크 문에서 축하 파티가 벌어진 것을 보았나? 그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내 인생 최대의 축제를 경험했다.

1997년 베를린에 왔고 2년 후 동업자인 크리스토프를 만났다. 나의 마케팅 경력과 크리스토프의 디자인 실력을 합쳐 새로운 것을 창조해보자고 결의했다. 4~5개월간의 브레인스토밍으로 찾아낸 답은 '문화 마케팅'이었다. 1990년대 말은 신문, 방송, 잡지, 빌보드 등 매스커뮤니케이션이 급속도로 발달했던 시기였다. 우리는 새로운 문화를 통해 브랜드와 대중을 연결시켜주는 역할을 도맡았다. 그래서 비디오 아트, 그래픽 디자인, 스트리트 아트, 클럽 음악 등 서브컬처에 주목했다.

파드핀더라이Pfadfinderei는 모션 디자인과 비주얼 아트 분야에서 최고의 명성을 떨치는 아티스트 그룹이다. 이들은 일렉트로닉 음악과 비주얼 아트를 접목하며 VJ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선보였다. 그리고 슈퍼스타가 된 모데셀렉터Modeselektor. 일렉트로닉 듀오로 또 다른 일렉트로닉 뮤지션인 아파라트Apparat와 함께 모던 테크노 그룹인 모데라트Moderat를 결성해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2009년 쿤스트할레 서울에서 공연을 한 바 있다.

플래툰은 전 세계 다양한 분야에 포진하고 있는 3500여 개 커뮤니티와 네트워크를 이뤄 문화 활동을 기획, 지원하고 있다. 베를린을 시작으로 서울에 아시아 본부를 열었고, 내년에는 멕시코시티로 향한다. 그다음엔, 평양도 기대해본다.

↑ (호이안<베트남>=연합뉴스) 임동근 기자 = 복건회관은 중국 푸젠성 출신 이주민들의 모임 장소이다. dklim@yna.co.kr

↑ (다낭<베트남>=연합뉴스) 임동근 기자 = 참 조각 박물관은 참파 왕국의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dklim@yna.co.kr

↑ (다낭<베트남>=연합뉴스) 임동근 기자 = 선짜 반도의 몽키 베이에 자리한 특급 리조트이다. dklim@yna.co.kr

↑ (시엠립<캄보디아>=연합뉴스) 임동근 기자 = 시엠립 야시장에서는 스카프, 의류, 공예품, 장신구 등을 판매한다. dklim@yna.co.kr

↑ (시엠립<캄보디아>=연합뉴스) 임동근 기자 = '육지의 바다'라 불리는 동남아 최대의 호수인 톤레삽에서는 수상촌 사람들의 생활을 엿볼 수 있다. dklim@yna.co.kr

(호이안·다낭·시엠립=연합뉴스) 임동근 기자 = 베트남 다낭과 호이안, 캄보디아 시엠립은 함께 돌아보기 좋은 여행지이다. 시엠립은 다낭에서 비행기로 2시간이면 닿을 수 있고, 휴양과 유적지 답사를 함께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호이안

>>복건회관 = 푸젠성 출신 중국인들의 모임 장소로 외관과 내부가 화려하게 꾸며져 있다. 정문을 들어서면 금빛으로 치장된 문이 다시 나타난다. 안쪽에서 보면 문 위쪽에 '천후궁'(天后宮)이란 단어가 새겨져 있다. 바다를 여행하는 사람들을 도와주는 여신인 마조를 모시고 있다는 뜻이다. 회관 안쪽에는 왕관을 쓰고 온화한 표정을 짓고 있는 마조상이 전시돼 있다. 또 옆에는 푸젠성 사람들이 이주해 올 때 탔다는 배를 축소한 모형이 있다.

>>관우 사당 = 호이안에는 과거 해상 무역을 하며 이곳에 정착한 중국인이 많이 살고 있어 중국식 사당이 많다. 쩐푸 거리 동쪽 끝의 재래시장 길 건너에는 '삼국지연의'의 등장인물인 관우를 모신 사당이 있다. 안으로 들어서면 사각형 정원이 있고, 뒤편으로 관우와 적토마의 상이 있는 제단이 마련돼 있다. 많은 중국인과 관광객이 찾아와 향에 불을 붙이고 고개를 숙이며 기도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덕안 고가(Old House of Duc An) = 베트남 가옥은 길을 따라 어깨를 맞대고 있는데 정면이 좁고 안쪽이 긴 직사각형 구조이다. 덕안 고가는 1850년에 건축된 건물로 이런 베트남 가옥의 특징을 살펴볼 수 있다. 20세기 초에 약방으로 이용된 이 건물은 한때 반프랑스 운동의 중심지이기도 했다. 내부에는 탁자가 놓여 있고 벽면에는 빛바랜 흑백 사진들이 걸려 있다. 이전 거주자는 호찌민과 함께 공산 혁명 활동을 했는데 관련 사진도 볼 수 있다.

◇다낭

>>한(Han) 시장 = 다낭 중앙에는 휴양지와 신도심을 연결하는 드래건 다리(Dragon Bridge)가 있다. 다낭 최대 규모의 한 시장은 휴양지 쪽 다리 옆에 위치한다. 사각형 2층 구조로 1층에서는 각종 건어물과 채소, 향신료 등 식자재를 판매하며, 2층에서는 의류와 신발 등을 취급한다. 다낭의 일상생활을 엿볼 수 있는 공간이다. 시장 바깥 강변에는 조각 공원이 있어 휴식을 취하며 한 강과 드래건 다리의 경치를 감상할 수 있다.

>>참(Cham) 조각 박물관 = 참파 왕국의 유물을 보존·전시하고 있는 세계 유일의 박물관이다. 프랑스 식민지 시절인 1915년 '프랑스 극동 연구소(French Far-East Research Institute)의 재정 지원을 받아 설립됐다. 총 10개의 전시실에는 브라마(Brahma), 비슈누, 시바(Shiva) 등 힌두교의 신을 소재로 한 정교하고 다양한 조각상이 전시돼 있다.

>>인터컨티넨탈 다낭 선 페닌슐라 리조트 = 다낭 시내에서 25㎞ 떨어진 선짜 반도의 몽키 베이(Monkey Bay)에 자리한 특급 리조트이다. 나무가 울창한 수려한 숲과 바다를 조망할 수 있고 전용 해변을 갖추고 있다. 스위트, 펜트하우스, 빌라 등 검정색과 흰색이 조화를 이룬 베트남 스타일의 객실 197개가 있다. 내부에는 고급 욕실과 80개 채널의 평면 TV, 아이팟 스테이션과 서라운드 음향 시스템, 에스프레소 머신 등이 마련돼 있다. 천국, 하늘, 땅, 바다 등 4개 레벨로 나뉘어 있는데 각 레벨은 케이블카로 연결된다. 또 코스 요리를 내는 '라 메종 1888', 간단한 요리와 음료를 즐길 수 있는 '롱 바', 메인 레스토랑인 '시트론', 해변에 있는 '베어풋 카페'(Barefoot Cafe) 등 고품격 레스토랑이 있다. danang.intercontinental.com

>>몽고메리 링크스 베트남 = 다낭 공항에서 20분 거리의 수려한 해변을 바라보는 곳에 위치한 18홀(파72) 골프장으로 세계적인 골퍼 콜린 몽고메리가 디자인했다. 홀마다 하늘을 찌를 듯한 소나무가 둘러싸고 있어 풍경이 시원스럽고 골프를 칠 때 독립성이 보장돼 좋다. 특히 5번 홀(파3)은 워터 해저드를 넘어 티샷을 해야 하고, 6번 홀(파5)은 티 박스 옆에 베트남 전쟁 당시 사용됐던 벙커가 있어 주의가 요구된다. 비교적 코스가 어렵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골프장에는 숙박을 할 수 있는 다양한 크기의 빌라도 있다.

◇시엠립

>>시엠립 야시장 = 시엠립 시내에는 큰 규모의 야시장 두 곳이 있다. 시엠립 강변에 있는 '앙코르 야시장'은 비교적 깨끗한 분위기의 현대적인 시설이며, 이곳에서 강을 건너 북서쪽에 있는 '나이트 마켓'은 길이 미로처럼 이어지는 복잡한 시장이다. 스카프, 의류, 공예품과 미술품, 장신구 등 취급하는 품목은 비슷하다. 여행자들은 나이트 마켓을 더 많이 찾는다.

>>펍 스트리트(Pub Street) = 나이트 마켓 동쪽에는 밤의 여흥을 즐기기 좋은 펍 스트리트가 있다. 화려한 조명이 밝혀진 길이 100m 정도의 거리를 따라 양옆으로 다양한 분위기의 레스토랑과 바가 들어서 있다. 가장 유명한 곳은 앤젤리나 졸리가 방문했다는 거리 초입의 '레드 피아노'(Red Piano)로 빈자리를 찾기가 쉽지 않다. '툼레이더'란 이름의 칵테일도 맛볼 수 있다.

>>톤레삽(Tonle Sap) 호수 = '육지의 바다'라 불리는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큰 호수로 물 위에 집을 짓고 고기를 잡아 살아가는 수상촌 사람들의 생활을 엿볼 수 있다. 선착장에서 보트를 타고 수로를 따라 10여 분 정도를 가면 수상 가옥과 학교, 슈퍼마켓, 식당, 교회, 보트 수리 센터 등을 볼 수 있다. 또 관광객을 대상으로 과일과 과자, 음료를 판매하는 일명 '슈퍼마켓 보트'를 만날 수 있다. 보트를 대고 쉴 수 있는 휴게소에는 메기와 악어가 전시돼 있고, 전망대에서는 주변 경치를 내려다볼 수 있다. 이곳에서 조금만 더 가면 바다처럼 넓은 호수를 볼 수 있다. 우기 때 호수의 면적은 제주도의 8배가량으로까지 늘어난다.

◇항공편 = 베트남항공이 인천과 다낭, 하노이, 호찌민을 잇는 항공편을 운항하고 있다. 특히 다낭을 거쳐 시엠립을 여행한다면 베트남항공이 최선의 선택이다.

다낭 항공편은 인천에서 월· 화· 목· 금· 토요일 오전 11시 20분에 출발해 현지에 오후 2시 도착하고, 복항편은 같은 요일 오전 12시 5분 출발해 오전 6시 25분에 도착한다. 비행기는 에어버스 A321이 투입된다.

다낭-시엠립 구간은 매일 운항한다. 북부 하노이와 남부 호찌민을 경유해 시엠립을 갈 수도 있다. www.vietnamairlines.co.kr

◇캄보디아 입국 방법 = 캄보디아는 현지 공항에서 도착 비자를 받아야 한다. 수수료는 20달러이며, 여권용 사진 2장을 가져가야 한다. 그러나 출입국 과정은 순탄하지 않다. 공항에서 비자 발급 서류를 작성해 줄을 서서 제출하지만 순서대로 발급되지는 않는다. 또 출입국 심사를 할 때 심사관이 웃돈을 요구하기도 한다. 웃돈을 내면 쉽게 통과되지만 그러지 않으면 지문과 얼굴 사진을 찍는 불편함을 겪어야 한다. 물론 출입국에 문제는 없다. 단, 기내에서 작성하는 출입국 신고서 중 출국 신고서가 없으면 이후 문제가 될 수 있으므로, 입국 심사대에서 꼭 확인해 받도록 한다.

dklim@yna.co.kr

↑ 칼튼 힐에서 바라본 에든버러의 야경.

↑ 에든버러의 상징인 에든버러 성.

↑ 스코틀랜드 독립 영웅 윌리엄 월레스로 분장한 배우.

↑ 칼튼 힐의 저녁 무렵.

에든버러의 첫 인상은 귀족 가문의 조용한 숙녀와 마주하는 것 같았다. 도시 곳곳에 들어선 조지안 스타일의 건물들과 오래된 벽돌길, 잘 다듬어진 공원과 우뚝 솟은 성은 기품이라는 말을 떠올리게 한다. 고풍스러운 건물들이 저녁 햇살에 붉게 물들 때 바람에 실린 백파이프 소리가 아련하게 번져왔다.

스코틀랜드인의 자존심, 에든버러 성

에든버러는 영국이지만 영국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이다. 도시의 풍경도 다르지만 언어도 확연히 다르다. 사투리가 굉장히 심하다. 사람들은 영어를 말하지만 마치 독일어처럼 들린다. 파운드화를 사용하지만 화폐 디자인도 잉글랜드 지역과 다르다.

올드타운 서쪽의 바위산에 자리한 에든버러 성(Edinburgh Castle)은 스코틀랜드 사람들의 자부심을 상징한다. 6세기에 처음 지어진 에든버러 성은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격렬한 투쟁사를 보여주는 현장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성의 대부분은 군사 박물관으로 이용되고 있다. 수많은 전시품 중 제임스 2세의 손자 찰스 에드워드가 일으킨 1746년의 컬로든 모어 전투에서 사용된 군기 조각도 있다. 스코틀랜드인들이 국가의 자랑스러운 유물처럼 다루는 물건이다. 또한 16세기에 만들어진 스코틀랜드 전통의 왕관, 칼, 지휘봉 등이 전시돼 있다.

많은 작가가 배출된 에든버러에서 가장 사랑받는 작가는 소설 '아이반호'로 유명한 월트 스콧 경이다. 에든버러 시내 한가운데에 우뚝 서 있는 스콧 기념탑은 스콧 경의 죽음을 애도하기 만들어진 것이다.

에든버러의 정수를 품은 로열마일

에든버러의 가을을 즐기는 좋은 방법 중 하나는 로열마일(Royal Mile)을 천천히 거니는 것이다. 여기만 거닐어도 에든버러는 다 봤다고 할 수 있을 정도다. 올드타운에 있는 로열마일은 에든버러 성과 홀리루드하우스 궁전 사이에 뻗은 길이 1.6㎞의 자갈길이다. 지도에는 보통 하이 스트리트(High Street)라고 표시돼 있다. 과거에는 귀족들만 걸을 수 있었기 때문에 로열마일이라 부른다. 이곳에는 전통 토산품점, 오래된 펍, 시립박물관, 천문관측대, 스코틀랜드 각지의 위스키를 한자리에 모은 '스코치 위스키 헤리티지 센터' 같은 볼거리가 늘어서 있다.

평범한 백성들은 로열마일 대신 클로스(close)라는 작은 오솔길로 다녀야 했다. 클로스 중 가장 유명한 곳은 브로디스(Brodie's) 클로스다. 낮에는 목수와 시의원으로, 밤에는 강도와 도둑으로 살다가 단두대에서 생을 마감한 윌리엄 브로디의 이름을 따서 붙여졌다. 그의 이중적인 캐릭터는 영국 소설가 R.L.B.스티븐슨에게 영감을 줬고, 소설 '지킬박사와 하이드'로 쓰여졌다.

로열마일 끝의 홀리루드하우스 궁전(Palace of Holyroodhouse)은 영국 왕실이 에든버러를 방문할 때 사용하는 궁전이다. 바로크 양식으로 호화롭게 지은 궁전은 과거 부유했던 스코틀랜드의 영광을 그대로 보여준다. 여왕의 식당에서는 16~17세기의 찻잔과 수저 장식물 등을 볼 수 있다.

낭만적인 에든버러의 야경, 칼튼 힐

가을에 잠긴 에든버러를 보고 싶다면 프린스 스트리트 동쪽 끝의 칼튼 힐(Calton Hill)로 가면 된다. 해발 105m 높이지만 대부분 평지인 에든버러에서는 높은 언덕과 같다. 칼튼 힐에는 에든버러의 역사를 보여주는 기념비가 가득하다. 칼튼 힐에서 가장 크고 눈에 띄는 건물은 국립 기념비다. 나폴레옹 전쟁에서 전사한 용감한 스코틀랜드 민족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졌다. 에든버러 최고의 건축가 중 한 명인 윌리엄 헨리 플레이페어가 아테네의 신전을 본떠 설계한 것으로, 1822년 공사에 들어갔지만 재정상의 문제로 완공되지 못했다. 저녁 무렵 칼튼 힐에 올라가면 넬슨 기념비, 스콧 기념탑, 에든버러 시내를 붉게 물들인 노을을 볼 수 있다.

여행 정보

한국에서 에든버러까지 가는 직항이 없기 때문에 런던을 거쳐 가는 법이 제일 간단하다. 이지젯, 라이언에어 등 저가 항공편을 이용하면 싸다. 에딘버러공항은 시내 북서쪽으로 약 16㎞ 떨어져 있다.

런던 빅토리아 코치 스테이션에서 에든버러까지 매일 내셔널 익스프레스 버스가 운행된다. 9~12시간 정도 걸린다.

런던 킹스 크로스 역에서는 매일 20회 정도 에든버러까지 가는 기차가 운행된다. 4시간30분~5시간 정도 걸린다.

  1. Favicon of https://travelbible.tistory.com 오리궁둥이 2014.10.07 21:52 신고

    가고싶다 나도 ㅠ


혼과 철학이 담겨있는 곳으로 떠나다

세계에서 7번째로 넓은 국토 면적을 자랑하는 인도는 여행자들을 무척 고민하게 만드는 나라다. 북인도와 남인도의 개성 강한 도시들을 비롯해 다양한 종교 유적지들, 독특한 인도인 삶이 묻어나는 장소 등 구석구석 둘러볼 곳이 많기 때문이다. 한정된 시간에 인도를 좀 더 알차게 둘러보고 싶다면 몇 가지 테마를 정해 목적지를 정하는 것이 좋다. 현지인들에게 중요한 의미가 되는 가트와 종교 문화 유적지를 둘러보는 일정도 추천할 만하다.

↑ 사르나트

↑ 아그라 타지마할

◆ 다양한 사연 담은 종교 유적지 오랜 역사를 거쳐 왔으며 다양한 종교가 공존하는 인도에는 역사적인 문화유산이 무척 많다. 그중에서도 아그라에 위치한 타지마할은 인도의 상징이자 세계적으로 불가사의한 건축물로 꼽힌다.

타지마할은 무굴 제국 5대 황제 샤쟈한의 부인 뭄타즈 마할 무덤으로, 인도 이슬람 예술의 걸작이라고 평가받는다. 순백 대리석으로 이루어진 궁전 같은 모습이 눈부시다. 공사기간 22년에 2만여 명이 동원되었고 1653년에 완공되었다. 물안개가 낀 새벽녘과 해가 질 무렵 석양과 어우러진 타지마할 모습이 특히 인상적이다.

이번에는 인도가 자랑하는 또 다른 유적지, 아잔타 동굴군을 찾아가보자. BC 2세기부터 AD 7세기에 걸쳐 형성된 것으로 미완굴을 포함해서 30개 석굴이 있다. 아잔타 석굴 사원은 모두 불교 동굴로 이뤄졌고 동굴 안에는 생동감 넘치는 벽화가 가득하다. 흙이나 점토 등으로 그림을 그리고 색칠한 벽화들이 선명하게 남아 있는 것이 신기할 정도다.

'인디아게이트'라고 하는 인도문은 인도 역사의 한 부분을 보여주는 건축물로 뭄바이와 델리 두 군데에 세워져 있다. 뉴델리 중심가, 코넛플레이스에서 동남쪽으로 2.5㎞ 지점에 위치한 델리 인도문은 1차 세계대전 때 전사한 인도 병사들을 위한 위령비다. 높이가 42m로 멀리서도 잘 보이며 뒤로는 국회의사당 건물과 정부 청사 건물이 서 있다.

델리에는 또 인도에서 가장 규모가 큰 이슬람 사원 '자미 마스지드'가 있다. 타지마할을 완성한 샤자한 황제가 세운 건축물로 1658년에 완공되었다. 인도와 이슬람 양식을 적절하게 혼합했으며 약 2만명이 동시에 무릎을 꿇고 경배를 올릴 수 있을 규모를 자랑한다.

40m 높이로 양쪽에 솟은 뾰족한 탑도 인상적이다. 일반인에게 개방된 남쪽 탑에 올라가면 델리 시내가 한눈에 펼쳐진다. 자미 마스지드 사원 주변으로는 많은 상점이 늘어서 있어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고 언제나 사람들로 북적인다.

◆ 인도인 삶의 일부, 가트많은 여행자들이 인도 여행에서 기억에 남는 곳으로 꼽는 곳이 바로 '가트(Ghat)'다. 인도 북부를 흐르는 갠지스강가에 위치한 가트는 강 옆에 이어진 돌계단을 말한다. 강을 따라서 100여 개 가트가 조성되어 있는데 화장터와 빨래터, 목욕탕 등 여러 용도로 사용돼 여행자 눈길을 끈다.

바라나시 젖줄이기도 한 갠지스강은 인도인들에게 '어머니의 강'으로 불리며 오래전부터 성스러운 것으로 여겨져 왔다. 또 강 곳곳에 인도인 사상과 삶의 모습이 녹아 있다. 갠지스강 가트에는 화장터가 여러 곳 위치해 하루에도 많은 시신들이 화장된다. 한쪽에는 강물에서 목욕을 하며 수영을 즐기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이러한 상반된 모습들이 낯설게 느껴지지만 육체에서 영혼이 해방하는 화장 의식을 성스럽게 생각하는 인도인 사상을 이해하고 본다면 공감이 되는 부분도 있다.

가트 중에는 집단 빨래터로 이용되는 곳도 많은데, 이를 도비가트라고 한다. '도비(Dhobi)'는 빨래하는 것을 직업으로 가진 사람들로 그들의 공동 작업장이자 일종의 대형 세탁소라 할 수 있는 장소들이 가트에 위치해 있다.

'도비가트'는 인도 뭄바이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풍경으로 많은 여행객이 들르는 곳이다. 180년 넘는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도 놀랍다. 뭄바이 시내에서 수거된 많은 빨랫감이 이곳에서 사람들 손으로 세탁되는 모습에서 이들 애환과 인도에 아직 남아 있는 신분제도를 엿볼 수 있다.



↑ (사진제공=트래블포커스)

남의 것을 막무가내로 탐하거나 지각없이 부러워하는 성정은 아니지만 다른 나라 여행을 하면서 종종 시기와 질투를 금할 수 없을 때가 있다.

대부분의 경우 그냥 그 나라의 특징으로 이해하지만 어떤 부분은 이 땅에도 이식시킬 수 없을까 하며 비교의 잣대를 들이대는 일이 있다는 뜻이다.

지금까지 몇 번 그런 적이 있었는데, 유럽을 다니면서는 유독 두 가지가 부러웠다. 하나는 보행의 즐거움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고성의 존재였다.

유럽에서 얻는 보행의 즐거움은 산이나 지방 혹은 외곽지역이 아니라 대도시에 있다는 것.

우리네와 대별되는 지점인데, 철저하게 보행자 위주로 조성된 대도시의 거리 그리고 걷는 멋과 맛을 한껏 돋우는 주변 경관은 수도 서울의 복잡하고 혼탁한 거리에 비해 확실히 부러움을 자아낸다.

고성만해도 그렇다.

독일 하이델베르그의 고성과 퓌센의 노이쉬반스타인 성을 비롯해 돈키호테와 그의 애마 로시난테가 터벅터벅 함께 걸어갔을 듯한 시골길을 따라 방문하는 스페인의 고성들, '프랑스의 정원'이라 불리는 루아르 지방의 호화로운 고성들은 해당 도시에 고색창연하고 중후한 멋을 드리운다.

또 이들 고성은 실용적이기까지 해서 일부는 관광객들을 위한 호텔로, 일부는 박물관 등으로 전용돼 관광객 유치에 단단히 한몫을 한다. 물론 고성들을 유지, 보수하기 위한 민관의 노력 또한 각별하다.

◈ 걷는 즐거움, 보행자의 천국 = 서두를 길게 뗐지만 결국은 덴마크를 이야기하고자 함이었다.

으레 덴마크하면 동화의 아버지 안데르센과 인어공주 그리고 장난감 레고 등을 거의 반자동적으로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지만 사실 덴마크는 보행자들의 천국이자 아름다운 고성들이 곳곳에 들어선, 고상하고 우아한 풍치가 넘치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 (사진제공=트래블포커스)

특히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은 한 마디로 '걷고 싶은 도시'로 압축해 표현할 수 있겠다. 보행자 편의를 위해 과감히 계단을 없앴으며, 발길에 치이는 설치물도 치워버렸다.

또 모든 건물은 시청의 종탑 보다 낮아야 한다는 원칙에 의거, 건물 높이를 6층으로 제한했다. 도심을 걷는 이들에게 다정한 탑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함이었으니, 우리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아름다운 결정'이었던 셈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사람들이 걷는 즐거움과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보행 인프라 구축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다시 소개하겠지만 보행자 전용도로인 스트로이의 경우 폭 10미터 안팎의 길 양쪽에 명품점과 레스토랑 등 2000여 개의 작은 가게들이 입점한 중세풍 건물들이 쭉 늘어서 있어, 거리에 살가운 기운을 불어넣는다.

도자기 명품점으로 세계적 명성을 누리는 로열 코펜하겐, 꽃을 사기 위해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야 할 정도로 꽃장식이 대단한 테에 아나슨 꽃가게, 100년 동안 한 자리에서 빵을 구워내는 라인반하원 등의 명품점들과 함께 싸구려 할인마트나 기념품 코너도 공존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작은 가게들의 성공은 보행자 전용도로와 역사적 건물의 재생을 연동시키는 계획이 없었다면 이루어질 수 없었다.

걷고 싶은 도시 코펜하겐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세계에서 가장 길고 오래된 보행자 전용도로인 스트로이다. 스트로이는 덴마크어로 '산책'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콩겐스 뉘토우 광장에서 시청 앞 보행자 광장까지 5개 보행자 전용도로를 통칭한다.

시민들은 누구나 주저 없이 '스트로이를 밟지 않고서는 코펜하겐을 다녀간 것이 아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짱짱한 자부심의 표현이다. 사람들은 1.4km에 이르는 스트로이를 시나브로 끝까지 걷게 되는데, 이유는 앞서 말한 그대로다.

◈ 중세로의 행복한 잠입 = 자, 이제 시간을 거슬러 중세로 잠입할 시간이다. 덴마크 여기저기에 산재한 고성을 찬찬히 뜯어보자는 것이다.

코펜하겐을 벗어나 기차로 45분 정도 가면 명미한 도시 헬레뢰드가 있다. 주변의 비옥한 농촌지역에서 경제적 뒷받침을 받는 번창한 시장도시이자 철도 교차점이기도 한데, 무엇보다 프레데릭스보그 성(Frederiksborg Slot)이 있어 유명하다.



↑ (사진제공=트래블포커스)

1602년부터 1630년까지 국왕 크리스티안 4세가 지은 붉은 벽돌로 된 독일 르네상스 형식의 이 성은 '덴마크의 베르사이유'로 일컬어진다. 200여 년 동안 7명의 국왕이 이 성에서 대관식을 올릴 정도로 덴마크를 대표하는 성이다.

1859년 화재로 성의 대부분이 소실되었을 때 왕실에서 이를 재건할 경제적 여유가 없자, 맥주 재벌인 칼스버그 야콥센의 기부로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현재는 덴마크의 유구한 역사를 알 수 있는 각종 자료와 회화, 가구, 보물 등을 전시하는 역사박물관으로 기능한다. 성을 둘러싼 호수에서 뱃놀이를 즐길 수 있으며, 탐스럽게 꾸며진 정원은 소풍을 즐기기에 이상적인 장소이다.

로젠보그 궁전 (Rosenborg Slot)은 1617년 당시 국왕이었던 크리스티안 4세의 뜻에 따라 세워진 네덜란드 양식의 별장으로 그의 건축물 중 가장 매력적으로 평가받는다. 크리스티안과 연인인 키아스텐 뭉크와 사랑을 나누었던 곳으로 유명하다.

궁전 내에는 무도회장, 홀, 응접실 등이 있는데 웅장함보다는 왕이 언제든지 되돌아 올 것 같은 친밀감이 느껴진다. 궁전에는 크리스티안 4세와 5세의 대관식에 사용되었던 2개의 왕관이 있다.

전임 국왕의 왕관은 절대 군주제 전의 것으로 머리 부분이 열려있고 후임 왕의 왕관은 국내를 통일했다는 의미로 하나로 막혀 있는 점이 특이하다.

덴마크의 정원이라 불리는 핀 섬은 셀란 섬과 스토레 해협을 사이에 두고 있는 이 나라 제2의 섬이다.

낙농업이 발달했으며 특히 전원풍경이 아름답다. 섬의 중심지는 바로 1000년의 역사를 가진 덴마크 제3의 도시 오덴세. 안데르센과 세계적인 작곡가 카룰 닐센의 고향으로 특히 유명하다. 섬 남쪽에는 이에스코우(Egeskov) 성이 화려한 자태를 자랑하고 있다.

르네상스 양식의 옛 성으로 1552년에 세워졌는데, 호수 위에 건립된 빨간 벽돌의 성벽과 탑은 주위의 넓은 정원과 어울려 덴마크는 물론이고 유럽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경관으로 손꼽힐 정도다.

로코코 양식의 최대 걸작으로 꼽히는 아말리엔보그 궁전(Amalienborg Slot)은 1794년 이래 덴마크 왕실의 공식 거주지로 사용되고 있는 곳.

왕실의 거처라고는 하지만 곰털 모자를 쓴 위병이 서있지 않다면 궁전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검박한 분위기다. 여왕이 궁전에 머무르고 있는 날에는 낮 12시쯤 왕실 근위병의 교대식을 볼 수 있다.

빨간색 상의를 입은 70명의 위병들이 로젠보그 궁전 숙사에서 출발, 시내를 지나 궁전 광장으로 입장한다. 만약 산책 중에 위병 행진을 만난다면 피하지 말고 악대의 음악에 맞춰 뒤를 따라가 보자. 순간 수백 년 전 과거로 불시착한 느낌을 받을 것이다.

붉게 노을 지는 하늘, 키 큰 침엽수림을 배경으로 안개 자욱한 호수, 장대한 산맥이 연이어 이어진 아름답고 웅장한 산 능선이 펼쳐지는 곳. 게다가 야성의 동물들과 마주치고, 카약 트레킹 등 레포츠의 정수를 즐길 수 있는 온전한 자연의 땅, 바로 케나이 국립공원이다. 그 거대하고 깊은 알래스카의 정수를 음미하기 위해, 알래스카 남단 시워드에서 앵커리지까지 달려가는 파란색 철마에 몸을 싣고 달린다.

케나이 반도를 향하기 위해 프린스 윌리엄 사운드의 발데스에서 유람선에 오른다.


알래스카 레일로드 위에서 누리는 대자연의 파노라마.

알래스카 여행의 출발지라 불리는 South Central 지역은 제 1의 도시 앵커리지와 인접해 있고, 알래스카의 놀이터라 불릴 만큼, 다양한 볼거리와 자연이 혼재되어 있어 휴식과 명상, 대자연을 호흡하며 자연 치유에 적합한 지역이다. 피요르드와 고래 관찰, 빙하 탐험 등 원시 자연의 풍경과 해양 생물을 마주할 수 있는 케나이 반도의 거친 바다와 섬, 피요르드와 유빙이 반겨주는 프린스 윌리엄 사운드 Prince William sound 를 동시에 즐길 수 있기에 놀이터라는 표현이 과장은 아니다.

앵커리지에서 시워드로 남쪽으로 이동할 경우, 버스나 렌터카 혹은 캠핑 캐러반으로 자유롭게 이동하고, 디날리 국립공원의 마운틴 매킨리나 와실라, 페어뱅크스 등 북쪽 지역을 둘러보기 위한 이동은 알래스카 레일에 온전히 몸을 맡겨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알래스카의 진정한 탐험은 몸과 마음이 자유로운 열차 여행으로, 거대한 자연을 온전히 감상할 수 있기에 최상의 선택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Seward 시워드를 빠져 나와 Resurrrction Bay 를 지나면 아름다운 섬 FOX Island에 도착한다.


거대한 빙하와 녹음이 우거진 숲 속을 질주하고, 초록의 호수와 눈 덮인 계곡을 가로지르며, 자작나무 숲과 야생 꽃들이 만발한 초원 위를 달리는 일은 대자연이 선사하는 최고의 초대가 아니고 무엇이랴. 육중하고 미끈하게 생긴 철마, 파란색 바탕에 노란 띠를 띤 알래스카 레일로드에 몸을 실으면 출발 전 마음도 설렌다. 전망 칸이 있는 2층 객차와 고급 레스토랑, 카페와 라운지까지 골고루 갖춘 철마는 그 자체로 로맨틱한 홀리데이의 낭만을 선사해 주고 있다.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 경이로운 자연이 번갈아 옷을 갈아입는 알래스카에서 인생에 단 한번 호사를 누려도 좋은 전망 파노라마 열차. 엉덩이를 객실 좌석에 붙여놓고 있을 시간 조차도 아까운, 다이내믹한 자연의 파노라마가 끝임 없이 펼쳐지는 곳. 게다가 기관사는 너무나 친절하게도 곰이 나타나거나, 흰머리 독수리가 둥지에 앉아 있거나 빙하가 나타날 때면, 어김없이 달리던 열차를 스르르 세운다. 기꺼이 곰과 독수리, 무스와 산양 등을 확인시켜 보여주며, 친절한 안내까지 전해주니 이 또한 감동이 아니고 무엇이랴.


케나이 반도 남단, 시워드를 출발한 철마는 강, 호수, 산맥, 빙하를 지나며 목적지 앵커리지를 향한다.


케나이 반도 남단, 해양 생물의 보고이자 케나이 빙하의 전진기지, 시워드에서 철마 여정은 시작된다. 고래, 바다사자, 수달, 퍼핀 등 해양 생물 관찰과 빙하 투어가 주를 이루는 시워드의 해양 투어를 마치면, 곧 열차에 몸을 싣는다. 6시 정각, 파란 열차가 기적을 울리며 출발하면 이내 엑싯 빙하 Exit Glacier를 지나면서 대자연의 경이로운 모습들은 하나 둘, 그 정체를 드러낸다.


무스가 지나다녔다는 마을, Moose Pass를 지나면서 좌측으로는 케나이 호수 Kenai Lake의 초록 물빛, 턴 레이크 Tern Lake의 자작나무 설원풍경 등 크고 작은 호수들이 감탄을 자아낸다. 열차가 계곡과 절벽, 터널과 평원 사이를 질주하는 동안, 우측으로 눈을 돌리면 사젠트 아이스필드 Sargent Icefield 와 스펜서 빙하 Spencer Glacier 가 연이어 푸르스름한 빛을 드러내며 거대하고 하얀 속살을 유감없이 드러낸다.


열차가 달리는 구간과 나란히 이어져 있는 Seward Hwy 위로 할리 라이더들이 바람을 가르고 있다.


원시의 숲과 거대 빙하의 대자연, 만년설과 창 밖에서 불어오는 서늘한 공기를 만끽하며 열차는 앵커리지로 거대한 몸체를 파도처럼 출렁이며 쉼 없이 달린다. 높은 산맥의 터널을 관통하고, 좌우로 거대한 몸체를 비틀거리다가도 커다란 원형으로 서클 회전하며, 길고 거대한 철마는 자연의 품속에 길 잃은 바람처럼 고요히 안긴다.


Costal Classic Train 이라 명명된 데이 트립의 명물, Seward- Anchorage 구간의 네 시간 가까운 여정은 그랜드뷰 Grandview, 스펜서 Spencer, 포테지 Portage역을 지나면서 절정을 맞는다. 케나이 반도 내륙의 추카치 산맥과 빙하, 호수를 음미하며 달려온 여정은 포테지역을 지나면서 은은한 빛깔의 쿡 내항 Cook Inlet 의 회색 빛 오션과 마주하는 순간 절정을 맞이한다. 이때부터 철마는 좌측으로 바다를 조망하며 턴 어게인 암 Turnagain Arm 내항의 Seward Highway 를 질주하는 자동차와 함께 달리며 바람 같은 자유가 된다.


파란 열차는 잠시 거우드 Girdwood 역에 정차, 내륙 최고의 알파인 스키 휴양지이자, 호텔 알리에스카로 향하는 손님들을 내려놓는다. 거우드는 헬리 스키, 크로스컨트리, 스키, 전망 케이블 카 탑승 등 동계 스포츠는 물론, 여름 개 썰매 투어, 경비행기 투어 등 레포츠와 트레킹 등 수준 높은 레저를 즐기기엔 완벽한 휴양지다. 이글 빙하 Eagle Glacier 에서 경비행기나 헬기를 타고 겨울에나 즐길 수 있는 개 썰매의 짜릿함을 맛볼 수 있으니 이 또한 한 여름의 묘미가 아닐까.

추카치 산맥 깊은 계곡, Bird Creek에서는 ATV를 즐기며, 숲 속의 청정함을 만끽한다.


열차는 우측으로 거대한 삼림지대인 추카치 국립공원 Chugach National Forest의 품속으로 질주한다. 이 곳은 트레킹과 ATV 어드벤처로 인기가 높아 깊은 산속의 원시림과 버드 크릭 Bird Creek 의 계곡을 따라 달리는 ATV 투어를 즐겨볼 만 하다. 누구나 5분 정도면 쉽게 배울 수 있는 ATV는 거대한 네 바퀴로 거친 산길을 달리며, 쾌감을 느낀다. 낚시와 트레킹도 가능하며, 산양과 야생의 곰을 관찰하거나, 직접 마주할 수 있기에 모험적인 사람들에게 새로운 시도가 될 것이다.

회색 빛 바다와 멀리 거대한 설산의 장관을 바라보며, 열차는 점차 속도를 줄여간다. 추카치 산맥의 산 자락이 낮아지면서 숲 속 전원주택들이 나타나고, 앵커리지가 그리 멀지 않은 듯 차량의 행렬도 많아진다. 미국 본토와 유럽, 아시아에서 온 캠핑 매니아들은 앵커리지에서 렌탈한 캠퍼밴을 달려, 케나이 반도의 대자연을 찾아 나서기도 한다. 경제적이면서도 다이내믹한 여행을 원하는 사람이라면, 손수 운전하며 알래스카의 비경을 찾아가는 캠핑카 여정도 권할 만 하다.

앵커리지 쿡 내항의 Ship Creek에서 방금 잡아 올린 1 M 길이 연어의 가른 배를 보여주는 낚시꾼.


앵커리지 다운타운을 가로질러, 토니 노우레스 코스탈 트레일 Tony Knowles Costal Trail 을 잠시 달리면, 듬성 듬성 빌딩들이 얼굴을 내미는 앵커리지의 다운타운으로 열차는 미끄러져 들어간다. Cook Inlet의 Knit Arm 내륙으로 들어서자 연어를 잡는 강태공들의 낚시질이 눈길을 끈다. 다운타운으로 들어섰지만, 열차가 정차하는 앵커리지의 마지막 포인트 또한 대자연이다. 열차에서 발을 내려 눈앞을 바라보면, 소박하고 정겨운 Ship Creek 의 냇가가 마지막 여정의 휴식처임을 알린다.


알래스카 최대의 도시 앵커리지를 기점으로 한 South Central 지역은 손쉽게 대자연을 마주하며 케나이 반도의 야성의 세계와 마주하는 곳이다. 설봉으로 이어진 높은 산과 거대한 바다와 울창한 삼림지대까지 자연의 숨소리에 귀 기울이며, 휴식과 레포츠를 동시에 즐겨볼 수 있다. 매혹적인 Costal Classic 철마 여정의 낭만을 영원히 추억하고, 해양 생물의 전진기지 Seward 에서 마주한 험백고래의 꼬리와 돌고래의 하얀 포말의 전율도 온몸의 세포로 기억하게 될 것이다.



여행정보
알래스카로 가는 길이 다양해 졌다. 7, 8월 손쉽게 대한항공을 이용하여, 8시간 만에 앵커리지로 입국하거나, 시애틀을 경유 알래스카 항공으로 앵커리지로 들어가는 방법도 있다. 장대한 산맥과 빙하투어, 개 썰매와 블랙 베어 혹은 고래 관찰, 매킨리 경비행기 투어도 도전해 볼만하다. 무더운 여름을 피해, 영상 17, 8도의 선선한 알래스카를 찾아 피서 투어를 가는 것도 좋을 것이다. 흔히 볼 수 없는 야성의 대자연과 조우하는 일, 거대한 자연 앞에서 잊었던 나를 발견하고 좀더 겸손해진 나로 감동의 세상과 마주하는 일, 그 자체로 회복과 치유의 여정이 될 것이다.

열차 여정은 그 자체로 낭만과 감동이다. 바람을 가르며 청정지역 케나이 반도를 달리는 철마.



열차 여행 팁
알래스카 열차의 메인 루트는 남부 해양 도시 Seward 에서 중부 도시 페어뱅크스까지 이어진다. 원하는 구간을 선택하여, 일부만 달려보아도 좋은 추억이 될 것이다. 알래스카 열차 여행의 하이라이트는 시워드 구간에서 앵커리지가 될 것이다. 프린스 윌리엄 사운드의 콜롬비아 빙하투어를 원한다면 앵커리지에서 위티어 Whittier 로 달리는 Glacier Discovery Train을 놓치지 말자. 그곳에서 발데즈와 코르도바로 연결하는 대형 크루즈선도 기다리고 있다. 알래스카 레일의 열차 운행은 5월 초순부터 9월 말까지만 운행하며 요금은 구간별로 성인기준 편도 50 $부터 100$ 안팎이다.

 

  1. Favicon of https://blogandme2.tistory.com 블로그앤미 2014.10.23 14:44 신고

    안녕하세요. 블로그 내용이 좋아서♡ 블로그모음 서비스인 블로그앤미(http://blogand.me) 에 등록했습니다. 원하지 않으시면 삭제하겠습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

캐나다는 광활한 자연이 전부인 줄 알았다. 하지만 퀘벡을 본 뒤 오해였단 걸 깨달았다.
사람들의 순수한 눈동자, 옛 모습을 간직한 거리, 때묻지 않은 자연은 여행자에게 끊임없이 낭만을 이야기했다.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 잔디밭이나 벤치에 앉아 책을 읽는 사람들의 모습은 몬트리올에서 가장 흔한 풍경이다

몽트랑블랑 국립공원 정상에서 내려다본 몽트랑블랑 리조트 빌리지

옛 프랑스의 모습을 보존하고 있는 퀘벡시티의 올드 퀘벡

●Quebec City 퀘벡시티

뿌리를 기억하는 사람들

늦은 저녁 도착한 퀘벡시티엔 안개가 자욱했다. 아직 9월이었음에도 쌩 하고 부는 바람이 초겨울 날씨를 방불케 했다. 가을용 재킷과 스카프만 잔뜩 챙겨 온 것이 후회됐다. 호텔로 가는 택시 안, 프랑스어 라디오 방송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날씨가 너무 추워요." 택시 기사에게 말을 걸었더니 조금은 어눌한 영어로 대답이 돌아온다. "네, 이틀 전엔 따뜻했는데 갑자기 기온이 뚝 떨어졌어요. 퀘벡주에선 이런 일이 잦죠."


퀘벡의 날씨는 '하루에 4계절이 있다'고 할 정도로 일교차가 크다. 그 덕을 보는 것이 퀘벡 단풍이다. 일교차가 크게 벌어질수록 단풍잎이 더 선명하게 울긋불긋 물든다고 하니, 변덕스런 날씨를 미워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퀘벡주는 단풍으로 유명한 캐나다에서도 단풍이 가장 아름답기로 소문난 곳이다. 가을철엔 세계 각국의 여행객들이 단풍을 보러 퀘벡주로 몰려와 호텔 숙박요금도 크게 오른다고 한다.


퀘벡주는 프랑스어와 영어, 두 개 언어를 공식 언어로 지정하고 있다. 그러나 퀘벡 사람들이 실생활에서 주로 사용하는 언어는 프랑스어다. 그래서 퀘벡주에선 'Hello'보다 'Bonjour'를, 'Thank you'보다 'Merci'를 듣는 일이 훨씬 많다.


퀘벡은 1608년, 중국을 찾아 항해하던 프랑스의 탐험가 자크 카르티에Jacques Cartier에 의해 처음 발견됐다. 퀘벡의 풍부한 자연자원을 확인한 프랑스인들은 퀘벡시티에 캐나다 최초의 도시를 세우고 식민지를 개척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뒤늦게 퀘벡의 가치를 알게 된 영국이 퀘벡을 침략했고, 1756년부터 1763년까지 이어진 7년 전쟁에서 영국군이 승리하게 된다. 영국군의 승리 이후 80여 년 동안 퀘벡에서는 프랑스와의 무역은 물론 프랑스어 출판까지 금지됐다. 퀘벡에서 새로운 삶의 터전을 일구며 살아가던 프랑스인들이 하루아침에 영국의 점령 하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지금 퀘벡인들이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것은 4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자신들의 뿌리를 잊지 않기 위해 노력해 온 결과다.


'Je Me Souviens'. 프랑스어로 '나는 기억한다'라는 말이다. 퀘벡주의사당 건물의 외벽 한가운데 새겨져 있다. 퀘벡주의 모든 자동차 번호판에도 같은 문장이 적혀 있다. 퀘벡인들이 자신들의 뿌리를 얼마나 소중히 여기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다. 하지만 오해하지 말아야 한다. 퀘벡이 프랑스 영토였던 것만을 기억한다는 뜻이 아니다. 퀘벡의 원주민과 프랑스 식민 시절, 프랑스와 영국의 전쟁, 영국의 점령, 그리고 캐나다의 일부인 현재까지 모든 역사를 자신들의 정체성으로 여긴다는 의미다. 의사당 외벽에 영국 전쟁영웅 울프Wolfe와 프랑스 전쟁영웅 몽캄Montcalm이 나란히 조각돼 있는 모습을 보니 그 의미가 한층 깊게 와 닿았다.


퀘벡주의사당 앞에는 가격이 600만 달러에 달하는 분수대가 고귀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퀘벡시티의 밤거리는 아무리 늦은 시간에도 평화롭고 고요하기만 하다

하루 종일 걷고 싶은 올드 퀘벡


퀘벡에 머무는 동안 올드 퀘벡Old Quebec 한가운데 자리한 클라렌돈 호텔Hotel Clarendon에 묵게 된 것은 행운이었다. 밤늦도록 올드 퀘벡을 활보하면서도 숙소로 돌아갈 차편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됐기 때문이다. 올드 퀘벡은 17~18세기 프랑스 통치 시절 건축물과 거리의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구시가지다. 첫 식민지 개척자들은 배로 실어온 물건을 옮기기 쉽게 항구 바로 앞에 도시를 만들었다. 이곳의 작은 광장에서 무역상과 지역 사람들의 장터가 열리고 선원들로부터 프랑스 소식이 퍼졌으며 법령이 발표되고 재판과 처형이 이뤄졌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올드 퀘벡에는 가난한 이들만이 남게 됐고, 널어놓은 빨래까지 훔쳐 갈 정도로 슬럼화 됐다. 그랬던 곳이 퀘벡주 정부가 과거 기록을 토대로 건축물과 거리의 모습을 그대로 복원하면서 퀘벡에서 가장 아름다운 관광지 중 한 곳으로 재탄생한 것이다. 지금 올드 퀘벡의 각 건물에는 과거 그 건물이 어떤 용도로 쓰였고 어떤 사람들이 그곳에 살았는지를 알리는 푯말들이 붙어 있다.

올드 퀘벡에서 가장 사랑받는 장소는 2012년 '캐나다에서 가장 아름다운 거리'로 선정되기도 한 쁘띠 샹플렝 거리Rue du Petit-Champlain다. 파스텔톤 하늘색, 분홍색, 연노랑색 칠을 한 상점, 레스토랑, 카페들이 저마다의 개성을 뽐내며 자리하고 있다. 가격은 비싼 편이지만 퀘벡 아티스트들이 만든 수공예품과 캐나다산 기념품을 사기에 가장 좋은 곳이다. 쁘띠 샹플렝 거리는 이른바 '목 부러지는 계단Escalier Casse Cou'으로도 유명하다. 계단의 경사가 너무 가파른 탓에 술에 취한 사람들이 계단을 오르내리다 목이 부러진 일이 많아 붙은 이름이다. 캐나다에서 가장 아름다운 거리에 있는 계단의 이름 치곤 잔인하단 생각이 들었지만, 그만큼 조심하라는 의미일까?


낮에 걷는 올드 퀘벡과 밤에 걷는 올드 퀘벡은 확연히 달랐다. 낮의 올드 퀘벡이 아기자기한 재미로 혼을 쏙 빼놓았다면, 은은한 조명이 빛나는 밤의 올드 퀘벡은 거리 사이사이를 하염없이 걷고 싶게 만들었다. 새벽 1시가 넘도록 보슬비가 내리는 올드 퀘벡의 밤거리를 걷노라니, 거리의 악사는 밤거리에 재즈 선율을 입혀 주었고 젊은 연인들은 도시의 밤을 더 로맨틱하게 꾸며 주었다. 아무리 밤이 깊어도 변함없는 평화로움이 퀘벡시티를 감쌌다.


올드 퀘벡의 쁘띠 샹플렝 거리는 2012년 캐나다에서 가장 아름다운 거리에 선정됐다

퀘벡시티의 상징이자 랜드 마크인 '페어몬트 르 샤또 프론테낙 호텔Fairmont Le Chateau Frontenac Hotel'. 과거 성이었던 곳을 호텔로 개조했다. 밤이면 조명을 환하게 밝혀 아름다운 야경을 선사한다

▶travie info
클라렌돈 호텔퀘벡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호텔. 1870년부터 지금까지 130년 넘는 세월 동안 여행객들을 품어 온 곳이다. 앤티크한 분위기의 로비와 객실은 아담하지만 멋스럽다. 올드 퀘벡 중심에 위치해 있어 올드 퀘벡의 밤거리를 걷고 싶은 여행자에겐 최적의 호텔. 1층에 위치한 재즈바에선 매주 금요일과 토요일 저녁 9시부터 12시까지 라이브 재즈 공연이 펼쳐진다. 총 143개의 객실로 구성돼 있으며 무료 와이파이와 아침식사가 제공된다. 요금은 비수기 99달러, 성수기 159달러부터.
주소 57, Rue Sainte-Anne, Vieux Quebec, Quebec, QC
홈페이지www.hotelclarendon.com

신선함과 정성을 먹다, 퀘벡 로컬푸드

퀘벡에서 놓칠 수 없는 또 하나의 매력을 꼽으라면 로컬푸드Local Food다. 처음 로컬푸드의 매력에 눈뜬 것은 퀘벡시티 몽모랑시폭포Montmorency Falls 옆 레스토랑 'Manoir Montmorency'에서였다. 애피타이저로 등장한 것은 새우와 연어. 폭포 근처 강 하구에서 잡아 메이플우드에 구운 것이란 설명을 들으니 왠지 더 감칠맛이 나는 듯했다. 본식으로 나온 치킨 요리는 퀘벡시티에서 자란 닭을 4시간 동안 양념에 재웠다가 천천히 익힌 것이라고 했다. 요리에 사용된 채소와 허브 역시 모두 퀘벡시티 인근에서 수확하거나 키운 것인데다 요리 과정에서도 정성을 들인 음식인 만큼 신선도와 맛이 뛰어났다.


두 번째는 퀘벡 사과. 출출하다는 나의 말에 함께 여행하던 퀘벡주관광청 담당자가 사과 하나를 건넸다. 아이 주먹만한 크기에 선명한 빨간색 사과는 먹기 아까울 정도로 예뻤다. 이 역시 퀘벡시티 인근에서 수확한 로컬푸드. "사과를 씻을 곳이 없는데…"라고 망설이니 "유기농이라 옷에 슥슥 닦아 먹으면 돼요"라고 한다. 한입 베어 무니 신맛보다 단맛이 강한 사과 과즙이 입으로 흘러들었다. 신선함이야 두말할 것 없었다.


그 다음은 메이플시럽이었다. 사실 이번 여행 전까지 캐나다를 다녀온 모든 사람들이 하나같이 메이플시럽을 사오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마치 울릉도에 가면 호박엿을 사오고, 통영에 가면 꿀빵을 사오는 것 같은 기념품 쇼핑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랬던 내가 시럽, 캔디, 캐러멜, 버터 등 온갖 메이플 상품으로 여행 가방을 채우기 시작한 것은 퀘벡시티에서 몽트랑블랑으로 가는 길에 들른 'Chez Dany대니네 집'란 이름의 레스토랑에서부터였다. 캐나다 전통 가정식을 맛볼 수 있는 곳으로, 식사가 끝난 뒤 메이플시럽 제조 과정에 대한 주인장 대니Dany의 설명이 이어졌다. "메이플나무의 수액은 97%의 물과 3%의 당분으로 이뤄져 있어요. 40년 이상된 메이플 나무에서만 수액을 채취해 시럽을 만들죠. 40리터의 수액을 끓이면 단 1리터의 메이플시럽을 얻을 수 있어요. 온도에 따라 104℃에선 시럽, 114℃에선 태피taffy, 118℃에선 버터, 120℃에선 캔디가 만들어진답니다. 아무런 첨가물도 넣지 않고 완전히 자연 성분으로만 만드는 당분이죠." 그때서야 알았다.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메이플시럽을 찬양하는 이유를. 메이플시럽이야말로 진정한 자연과 정성의 산물이었다.


이어진 일정에서도 로컬푸드의 향연은 계속됐다. 퀘벡시티뿐 아니라 몬트리올에서도 많은 레스토랑들이 지역 식재료 사용을 원칙으로 하고 있었다. 세인트로렌스강의 풍부한 수자원과 넓은 평지, 비옥한 토양 덕에 가능한 일이리라.


Chez Dany에서 식사를 마치고 나면 즉석에서 달콤한 메이플 태피를 만들어 준다. 얼음 위에 고농도의 메이플시럽을 동그랗게 뿌린 뒤 살짝 응고됐을 때 나무막대에 돌돌 말면 완성

캐나다 전통 가정식 고기파이

▶travie info
Chez Dany 캐나다 전통 가정식을 맛볼 수 있는 곳으로 넓은 통나무 식탁에 자리를 잡고 앉으면 큰 그릇에 담긴 햄, 콩, 감자 요리와 계란말이, 고기파이가 푸짐하게 차려진다. 테이블마다 메이플시럽이 가득 담긴 큰 물통이 하나씩 놓여 있는데, 각자 그릇에 음식을 먹을 만큼 덜어 메이플시럽을 마음껏 뿌려먹으면 된다. 친절한 직원들의 미소와 라이브로 연주되는 캐나다 전통음악이 식사 내내 흥을 돋운다. 무엇보다 디저트로 제공되는 메이플태피의 맛이 일품. 가격은 1인당 점심식사 기준, 16달러부터(세금 별도). 주소 195, de la Sabliere, Trois-Rivieres(Quebec) 홈페이지www.cabanechezdany.com

Manoir Montmorency 몽모랑시폭포 공원에 위치한 레스토랑. 로컬 식재료만으로 요리하는 것이 특징. 애피타이저, 본식, 후식이 포함된 메뉴의 가격은 점심식사 기준, 1인당 20달러 안팎. 본식으로는 파스타, 오리고기, 닭가슴살, 쇠고기 요리 등 다양한 메뉴가 준비돼 있다. 케이블카를 타고 몽모랑시폭포를 감상하거나 바위 산등성이를 따라 폭포 아래부터 위까지 연결된 계단을 통해 몽모랑시폭포 투어를 한 뒤 이곳에서 식사를 하면 좋다. 주소 Manoir Montmorency, 2490, Avenue Royal, Quebec





글·사진 고서령 기자 취재협조 캐나다관광청www.canada.travel02-733-7790



  1. Favicon of https://withcoral.tistory.com 내멋대로~ 2013.11.26 13:48 신고

    퀘백은
    프랑스어가 더 통용됐던 것으로 기억되네요

    구시가지의 엔틱한 건물과
    가을단풍이 아주 기억에 남습니다.

    아 다시가고 싶어요. 덴장



↑ 인도 자이푸르의 거리모습

경중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사람들은 저마다 중독증에 시달린다.

사랑에, 영화에, 돈에, 알코올에 그리고 사람에. 집 떠나면 고생인 줄 알면서도 틈만 나면 떠나고 싶어 쩔쩔매게 되니, 여행 역시 중독의 기운이 있다. 그리고 여행목적지 가운데 가장 중독성이 강한 곳을 고르라면 하릴없이 인도를 꼽게 된다.

인도를 한 번이라도 다녀온 사람들의 반응을 살펴보면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을 발견하게 된다.

"너무 너무 좋아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와 "고생을 하도해서 생각도 하기 싫다"는 두 부류로 극명하게 갈린다는 점이다. 더 흥미로운 발견은 시간이 점점 흐르면서 두 진영의 의견이 결국 하나로 귀결된다는 것.

"인도에 다시 가고 싶다"로, "인도가 자꾸만 부른다"로, 무엇이 인도 중독증을 불러일으키는 것일까. 무엇이 그 수많은 관광지 중에서도 인도를 독특한 자리에 위치 지우는 것일까. 어떤 광휘로 사람들의 마음을 몰아치는 것일까.

그 해답의 단초는 극단의 경험에서 오는 어떤 깨달음에서 찾아야하지 않을까 싶다.

세상의 어느 나라이건 간에 저쪽 끝과 이쪽 끝, 저편과 이편 사이의 간극이 존재하지 않는 곳이 없겠지만 인도만큼 유별난 곳도 드물다. 최고와 최저, 무한과 유한, 화려함과 초라함 등 양 극단의 모습을 시치미 뚝 떼고 보여 준다.

양쪽 끝을 체험하는 것이 한편으로는 어지럽고 적잖이 당황스럽지만 인도 여행이 끝날 즈음에는 그렇게 느끼는 것조차 사치스럽게 느껴진다. 어느 시점부터라고 꼭 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그저 보면 느끼고, 느끼면 보인다는 마음가짐이 자연스레 자리 잡게 된다.



↑ 인도 자이푸르의 거리모습

극단의 모습을 오간다는 것은 인도가 그만큼 다양한 얼굴을 하고 있다는 뜻도 된다.

길거리 여기저기에는 갈비뼈가 앙상하게 드러난 소들과 구걸하는 사람들이 즐비한 반면 과거 지배층의 맥을 잇는 현재 인도 부호들의 여유로움은 상상을 초월한다.

봉건시대에서나 남아 있음직한 신분제도인 카스트 제도가 뉴 밀레니엄의 시대에도 버젓이 남아 있고, 불교와 힌두교의 발상지로서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신들이 존재하기도 한다.

수많은 문화유적과 고단한 삶의 애환은 최첨단 테크놀로지와 어깨를 부딪는다. 어딘가 허전해 보이고 가열찬 희망의 빛이 희박한 듯 하면서도 볼리우드라 불릴 정도로 많은 영화를 생산해내고 있다. 영화가 꿈의 공장임을 떠올릴 때 참 묘한 이중성이란 생각이 든다.

서로 융화화기 어려울 것 같은 다양한 면을 통해 얻는 깨달음이 인도 기행의 가장 큰 매력이자 수확임을 감안하면 인도에 대한 지레짐작, 예단은 당연히 금기사항에 속한다. 다시 말해 인도는 너무 거대하고 복잡다단하여 인간의 조악한 마음과 작은 머리로 가늠하기란 어림없는 일이다.

예를 들어 인도하면 바랜 황토빛만이 너울거릴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빨강, 노랑, 파랑, 분홍 등의 선명한 원색이 눈길을 잡아끌기도 한다.

어떤 로맨틱한 기운마저 피워 올린다. 그리고 인도의 어느 주보다도 화려하고 강렬함을 전하는 곳이 있으니 바로 인도 북서부의 라자스탄이다. 그리고 라자스탄의 주도가 바로 자이푸르다.

◈극단의 미학이 펼쳐지다

파키스탄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라자스탄은 독특한 느낌으로 중무장한 곳.

역사가 뿜어내는 신비로운 전설과 다양한 이야기 거리들이 발길에 채이고, 광활한 사막을 울타리 삼은 아름다운 궁전과 산과 호수가 신비스런 분위기를 자아낸다. 라자스탄은 인도에서도 대표적인 저개발 지역이다.

인구밀도도 가장 낮고 문자가득률 또한 저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이 지역 주민들의 자부심은 다른 지역 사람들의 그것보다 훨씬 더 팽팽한데, 면면히 흘러온 역사 그리고 라즈푸트족과 관련이 있다.



↑ 인도 자이푸르의 거리모습

라자스탄이 역사의 한 페이지에 본격적으로 이름을 내민 것은 기원 후 4세기에서 6세기 경. 8세기에서 12세기에는 오늘날 라자스탄의 특색과 전통을 이루는 데 골간이 되는 라즈푸트의 여러 왕조가 흥과 쇠를 거듭했다.

힌두교를 신봉하는 라즈푸트족은 용맹스러운 전사였다. 전쟁에 임하면 죽을지언정 물러서지 않는 불퇴전의 정신으로 유명했다. 이러한 용맹함이 있었기에 인도 전역을 통일하였던무굴제국도 라자스탄만은 무력에 의한 점령 포기하고 혼인을 통한 유화정책으로 화해를 이뤄냈다.

라즈푸트족의 남자들은 전쟁에서 전세가 불리하면 목숨을 초개같이 버렸을 뿐만 아니라 여자와 아이들마저 적을 피해 불 속으로 뛰어들었다. 이러한 불굴의 의지가 오늘날의 자부심을 형성했다.

라자스탄의 여행은 자이푸르에서부터 시동을 걸어야 한다.

인도의 수도 델리, 타지마할이 있는 아그라와 더불어 소위 '골든 트라이앵글'로 불린다. 인도의 참모습을 가장 잘 알 수 있는 코스로 힌두문화와 이슬람문화가 어우러져 있다고 할 수 있다.

델리와 아그라에 무굴제국의 흔적인 선연하게 남아 있는 반면에 자이푸르는 힌두문화가 잘 보존되어 있다.

코발트 빛 바다, 울창한 숲, 그리고 그 청량한 공기. ‘파라다이스’라는 단어가 꼭 들어맞는 천지 창조 그대로의 풍광이 청정 자연 뉴질랜드에 숨어 있다. 유럽의 노르웨이에나 있을법한 피오르(피오르드)가 남반구에 그 경이로움을 간직하고 있다. 퀸스타운에서 좁고 가파른 언덕길과 호수를 따라 300km쯤 달리면 밀퍼드 사운드(밀포드 사운드, Milford Sound)에 닿는다. 누구나 이곳에 닿으면 순간, 눈앞으로 펼쳐지는 원시의 자연풍광에 탄성을 지르고 말 것이다.

피오르랜드 최고의 볼거리, 해수면에서 올려다 보는 단애(斷崖)를 즐기려면 크루즈에 올라타자.



남반구의 피오르, 밀퍼드 사운드

바다에서 솟아오른 십여 개의 거대한 봉우리는 아름답다는 표현보다 신비롭고 영롱하다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 수백 미터 길이의 장쾌하게 쏟아내는 폭포, 바위 끝에 아슬아슬하게 자리 잡고 있는 푸른빛의 빙하도 경이로움의 극치를 보여준다. 남반구의 피오르 중에 가장 아름다운 지역으로 알려진 밀퍼드 사운드, 약 1만 2천 년 전 빙하에 의해 형성된 피오르 지형이다.

1877년 도날드 서덜랜드라는 탐험가에 의해 밀퍼드 사운드로 가는 길이 처음 발견되어 우리는 이 신비하고 경이로운 자연에 다가갈 수 있게 되었다. 뉴질랜드 남섬의 남서부에 자리 잡고 있는 피오르랜드 국립공원은 14개를 헤아리는 사운드(구불구불한 좁은 만)와 호수, 산, 숲 등으로 형성되어 있는 자연의 보고로,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는 테 와히포우나무 공원에 속한다. 뉴질랜드에서는 가장 크며 세계에서는 다섯 번째로 큰 국립공원이다.

지역버스가 들판과 굽이치는 산길을 헤치고 밀퍼드 사운드로 향하고 있다.


퀸스타운에서 300km 거리, 그러나 중간에 높은 산이 가로막혀 있고 바위산을 뚫은 터널을 통과해야 한다. 하지만 가는 길이 너무 아름다워 연방 감탄하느라 긴 시간도 지루한 줄 모른다. 가다가 수많은 양 떼를 만나기도 하고, 난생처음 보는 야생동물과도 조우한다. 가뜩이나 인구가 적은 뉴질랜드에서도 이곳은 특히 인적이 드물고 눈이 오면 폐쇄되는 길이 많다. 한참 달리다 보면 우뚝우뚝 솟은 설산들과 만나게 되고 바다처럼 넓게 펼쳐진 들 풀밭을 만나기도 한다.


이 풀밭을 만나면 밀퍼드 사운드가 가까워졌다고 생각해도 좋다. 그러나 여기서부터 길은 더 험해지고 산꼭대기에 있는 터널을 통과해야 하는 마지막 관문이 남아 있다. 터널은 바위산을 뚫어 만든 데다 비포장길이어서 다른 차와 마주 달릴 때는 조마조마하다. 터널을 통과하자마자 구불구불 내리막길을 내려가면 드디어 애타게 찾던 피오르 관광 유람선이 출발하는 선착장에 도착한다.


피오르 깊숙이 위치한 선착장에서 유람선이 출발한다. 뒤쪽으로 높이 160m의 보엔폭포(Bowen Falls, 보웬폭포), 왼쪽으로 삼각형의 멋진 능선을 자랑하는 마이터 피크(Mitre Peak)가 솟아있다. 이 봉우리는 밀퍼드 사운드의 절정으로 바다에서 수직으로 솟아오른 산 중에서 세계에서 가장 높은 것 중의 하나이며 이 봉우리 아랫부분의 물 깊이는 피오르 지역 중 가장 깊은 265m의 깊이를 자랑한다.

수직으로 깎아지른 단애와 폭포를 바라보며, 자연의 포근한 숨결을 

호흡한다.

빙하에 의해 수직으로 깎여진 사면을 힘차게 흘러 내리는 보엔폭포.


멋진 유람선에 올라타자 바다의 계곡을 헤치고 출항한다. 급경사의 산들이 포개어지듯 이어지는 사이로 스치듯 배가 지난다. 험준한 바위산과 초록 골짜기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배를 타고 있다는 사실도 잊고 깊은 산 속에 들어선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포개어진 산 너머로 바다가 있다는 사실도 믿어지지 않는다.


배는 피오르에서 가장 폭이 좁은 지역인 코퍼 포인트(Copper Point)로 들어간다. 구리 침전물이 발견되어 그런 이름이 붙었으며 폭이 좁다 보니 바람이 돌풍을 일으키기도 하는 곳이다. 조금 더 나아가면 바다가 조금씩 넓어지고, 비로소 이곳이 바다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배는 다시 피오르로 방향을 틀어 나아가는데 조금 들어가면 뉴질랜드 물개가 한가로이 햇볕을 쬐고 있는 실 록(Seal Rock)에 다다른다. 그리고 최고의 볼거리 스털링 폭포에 이르면 배는 폭포 속으로 빨려 들어갈 듯 가까이 지나간다. 예상치 못한 물 포탄 세례 때문에 물을 뒤집어쓴 여행객들 사이에 한바탕 소란이 벌어진다. 운이 좋으면 귀여운 돌고래도 볼 수도 있으니 모두들 눈은 초롱초롱하다.


날씨가 좋은 날엔 무지개와 함께 피오르의 수려한 아름다움을 선명하게 볼 수 있어 좋고,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자욱한 안갯속에 폭포가 떨어지는 신비한 아름다움을 맛볼 수 있어 좋다. 비가 오는 날은 깎아지른 직각의 벼랑으로 쏟아지는 빗물이 모두 거대한 폭포가 되어 바다로 떨어진다. 비가 오는 날 여행한다면 평생 볼 폭포보다 더 많은 다양한 물줄기의 폭포를 보게 될 것이다. 이곳의 바다, 계곡, 산들의 자연과 어우러져 반나절을 보내고 나면 ‘환경’과 ‘생태’가 얼마나 소중한 가치인지를 자연을 통해 느끼게 된다.

크루즈를 타고 절벽을 따라 이동하면서, 밀퍼드 사운드의 생태를 자세히 관찰할 수 있다.

남태평양을 배경으로 우뚝 솟아있는 밀퍼드 사운드는 지구 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국립공원 중 가장 청정한 지역으로 손꼽힌다. 국립공원 지역에 위치한 산장이나 로지(lodge)에서 머물면서 밀키웨이가 춤추는 남반구 별밤을 감상하거나 조용한 숲길을 걸어 보자. 그러면 밀퍼드 사운드가 간직하고 있는 다양한 생태계와 숨겨진 비경이 우리 앞에 차분히 그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고요한 그 순간, 지구 위에 인간 말고도 얼마나 많은 생명이 함께하고 있는가를 문득 깨닫게 되는 것이다.



가는 길
인천에서 밀퍼드 사운드로 가려면, 뉴질랜드에서 가장 큰 도시인 오클랜드까지 직항 편을 이용한 다음 국내선으로 갈아타고 퀸스타운으로 이동하거나 밀퍼드 사운드행 비행기를 타야 한다. 퀸스타운에서는 당일 투어를 비롯해 다양한 상품이 있지만 가능하면 자동차를 렌트해 천천히 둘러보는 것도 좋다. 밀퍼드 사운드 지역에서는 크루즈 투어와 트레킹, 항공투어가 모두 가능하다. 테아나우 호수, 웨스틀랜드 국립공원(웨스트랜드 국립공원) 등 아름다운 자연풍광에 둘러싸여 있어 볼거리가 많다.



숙소와 의상
숙박시설로는 자연유산 지역에 위치한 로지(lodge)와 주변호텔을 이용한다. 대자연을 만끽하려면 로지가 좋고 주변 도시와 마을을 둘러볼 계획이라면 4시간 거리의 퀸스타운에 머무는 것이 편리하다. 호텔은 비싼 편이므로 퀸스타운의 숙소를 이용하고 렌터카를 이용하여 다녀오면 저렴하다. 치안 상태는 깨끗한 자연만큼이나 안전하다.
뉴질랜드 여행은 운전석이 반대편이라 좀 불편하기는 하나 누구나 금방 적응할 수 있다. 남섬 여행은 국제 운전면허증이 필수일지도 모른다. 밀퍼드 사운드 지역은 남반구로 한국과는 계절이 반대인 까닭에 겨울 휴가철에 떠나는 이들은 반소매의상을 꼭 챙겨가자.



밀퍼드 트랙
밀퍼드 사운드가 뉴질랜드에서 가장 아름다운 피오르라면 밀퍼드 트랙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산책로(World Finest Walk)라고 불리는 트레킹 코스. 테아나우에서 출발하여 밀퍼드 사운드까지 54km의 코스로 대자연의 아름다운 경관을 부족함 없이 느껴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4박 5일의 트레킹 투어에 참가하는 것이 좋겠지만 시간이 충분하지 못한 여행자라면 당일 코스를 선택해도 좋다. 넓은 초원, 원시림의 환상적인 풍경, 서던 알프스의 빙하나 U자형의 피오르 계곡이 내려다보이는 매키논 패스(MacKinnon Pass) 등 광활한 대자연의 매력에 흠뻑 빠질 수 있는 여행지이다.

발끝에 닿는 이끼의 느낌이 보드랍다. 호수 옆으로 숲길은 아득하게 이어진다. 땀에 젖은 몸이 바위 해안에서의 다이빙으로 순간 정갈해진다. 고개를 돌리면 호숫가 마을에는 단아한 포구가 담겨 있다. 캐나다 오대호의 숨은 보물 브루스 반도(Bruce Peninsula)에서 펼쳐지는 장면들이다.

브루스 반도 북쪽 끝에 위치한 토버모리의 전경. 아늑한 포구마을은 따사롭고 평화롭다.

캐나다가 거대한 자연으로만 채색되는 것은 아니다. 살갑고 정겨운 정취도 여행자의 가슴을 적신다. 캐나다 오대호의 브루스 반도는 짙푸른 호숫가 마을과 두 곳의 국립공원을 품은 땅이다. 최근 설문에서 ‘캐나다의 숨겨진 보물 같은 여행지’로 최상위에 꼽힌 곳이기도 하다.


낯선 여행지라고 해서 대륙의 외딴 모퉁이에 위치한 것은 아니다. 토론토 북쪽, 자동차로 3~4시간 달리면 만나는 반도는 동쪽으로는 조지안 베이(georgian bay), 서쪽으로는 휴런 호수(Lake Huron)를 끼고 있다. 점 같은 섬들을 넘어서 수평선 위를 단장한 크리스탈 물빛은 예상과 달리 바다가 아니라 잔잔한 호수다.

위어튼 상공에서 내려다본 조지안 베이의 풍경.




숲과 호수가 어우러진 국립공원

브루스 반도의 귀한 보석은 브루스 국립공원이다. 로키산맥처럼 높은 산세나, 나이아가라 폭포처럼 스펙터클한 장면이 아니더라도 잔잔한 감동이다. 길 위를 걷다 보면 그 전율에 낮고 묵직한 힘이 실린다. 국립공원 내의 숲길은 호수를 따라 20여 km 이어진다. 호숫가에는 1만 년 세월 동안 치이고 패였다는 절벽과 바위가 늘어서 있다.

조지안 베이의 푸른 호수를

오가는 카약들.

브루스 국립공원은 브루스 트레일의 핵심 루트다.

하이킹과 다이빙이 가능한 그로토 지역은 브루스 국립공원 내에서 인기가 높다.

여행자들에게 인기 있는 코스는 해안동굴이 위치한 ‘그로토’(Grotto)로 향하는 루트다. 숲을 지나 해안절벽을 내려서면 해식동굴이 나타나고 동굴 밑바닥은 호수와 연결돼 있다. 빛이 은은하게 스며드는 동굴 인근에서 사람들은 다이빙을 즐긴다. 호수에서 이뤄지는 생소한 다이빙은 마니아들에게도 꽤 인기가 높다.


브루스 국립공원의 호숫가 숲길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하이킹 코스인 브루스 트레일의 연장선이다. 캐나다에서 가장 길고 오래된 걷기 여행 루트는 반도 북쪽 끝에서 나이아가라까지 800여km 이어진다. 브루스 반도에 속한 코스만 450여km에 해당한다. 반도의 관문인 위어튼(Wiarton)을 시작으로 조지안 베이 쪽에 위치한 라이온스 헤드, 토버모리 등의 해안마을이 하이킹 코스에 기대 있다. 브루스 트레일은 유네스코에 등재된 생태보존 지역이기도 하다. 반도 일대는 ‘Dark Sky'(검은 하늘) 지역으로도 지정돼 있다. 생명이 숨쉬는 땅에 등을 대고 누우면 ’빛의 공해‘에 찌들지 않는 어둠 속의 에코투어가 실현된다.

화분섬은 패덤 파이브 

국립공원의 상징적인 이정표다.

브루스 트레일은 호숫가 절벽을 따라 수십km 이어지기도 한다.


반도는 캐나다 최초의 수중 국립공원도 품에 안았다. 광활한 동서해안을 지닌 캐나다의 첫 번째 수중 국립공원이 호수와 닿아 있는 것도 이례적이다. 패덤 파이브(Fathom Five) 수중 국립공원은 호숫속 침식지형뿐 아니라 이색 섬들, 섬들의 식생, 호수에 잠겨 있는 배들까지 모두 소중한 자산이다. 꽃이 심어진 화분 모양을 닮은 화분섬은 관광객들에게 인기 있는 코스로 투박한 이곳 지형의 특색을 엿볼 수 있다. 이방인들은 다이빙이나 트래킹으로 호수, 해안과 은밀한 소통을 한다.




행복하고 아늑한 포구 ‘토버모리’

반도 북쪽 끝에 매달린 호수마을 토버모리(Tobermory)는 두 국립공원과 맞닿은 아늑한 포구다. 호수로 나서는 어선과 요트들은 이곳에서 아련하게 숨을 돌린다. 1850년대 스코틀랜드 이민자들에 의해 콜린즈 포구에서 명칭이 바뀌었지만 한적하게 고기잡이배들이 드나드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포구마을 토버모리는 브루스 국립공원, 패덤 파이브 국립공원과 맞닿아 있다.


벤치에서 바라보는 포구 풍경은 평화롭다. 낮게 드리운 포구 양쪽으로는 앙증맞은 노천바와 가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호수의 잔물결에 맞춰 행복이 가슴까지 밀려드는 정말 아름다운 풍경이다.


피겨스타 김연아가 올림픽 금메달을 딴 뒤 지난 여름 휴가차 방문한 곳도 바로 토버모리와 브루스 국립공원 일대였다. 그녀는 아늑한 포구와 바위 해안에 머물며 지난한 마음을 다독이고 앳된 미소를 되찾았다.

호수마을 토버모리는 800km가 넘는 브루스 트레일의 출발점이다.

브루스 국립공원에서는 울창한 숲을 벗어나면 아득한 수평선의 호수가 펼쳐진다.



토버모리에서 서남쪽으로 내려서면 소블 비치(Sauble Beach)다. 길이가 12km로 담수호 모래사장으로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길며 캐나다의 10대 비치로도 선정돼 있다.


해가 지면 숲과 호수가 만나는 아늑한 숙소에 짐을 푼다. 모닥불 사이로 세상 사는 얘기는 두런두런 쏟아진다. 이곳 주민들이 최고로 꼽는 ‘화이트피시(흰 살 생선)’ 냄새가 구수하다. 호수와 숲만큼이나 브루스 반도에서 인상적인 것은 자연의 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대도시를 벗어나 서너 시간 달려왔을 뿐인데 만나는 낯선 이들은 모두 구수하고 다정다감한 얼굴이다.




가는 길
에어캐나다 등이 밴쿠버를 경유해 토론토에 닿는다. 토론토가 반도 여행의 출발 기점으로 북쪽으로 향하면 관문인 위어튼(Wiarton)을 시작으로 라이언스 헤드, 브루스국립공원, 토버모리 등이 늘어서 있다. 중간 중간 호수의 정경과 조우할 수 있다. 브루스 트레일 인근은 가을이면 단풍이 붉게 드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곳곳에 산악자전거용 코스도 마련돼 있다.

쿠바는 여행자들에게 로망의 종착역으로 섬겨지는 땅이다. 환상을 품고 달려왔던, 변해버린 실체가 낯설던, 뛰는 가슴은 이미 헤밍웨이와 체 게바라의 흔적을 찾아 방황하고 있다. 낯선 곳 어디에 머물러도 부에나 비스타 소셜클럽의 잔잔한 색소폰 선율이 들려오는 듯하다.


코히마르(Cojimar)는 헤밍웨이의 풍류가 서린 마을이다. 수도 아바나 동쪽, 한적한 어촌마을인 코히마르는 헤밍웨이에게 노벨문학상을 안겨줬던 소설 [노인과 바다]의 모티브가 된 곳이다. 해변 한쪽에는 헤밍웨이의 동상이 서 있고 그가 즐겨 찾았다는 술집도 남아 있다. 헤밍웨이를 기리는 청새치 낚시 대회도 매년 이곳에서 열린다.

어촌마을인 코히마르는 소설 [노인과 바다]의 모티브가 된 곳이다.




[노인과 바다]의 모티브가 된 포구

예술가에게는 제2의 고향이라는 게 있다. 그가 태어나지 않았어도 집필이나 창작의 자양분이 된 곳. 유럽의 문호들에게 지중해의 외딴 도시가 그러했듯 헤밍웨이에게는 아바나와 함께 이 낯선 어촌마을이 제2의 둥지였다. 이념도 피부색도 달랐던 공간에서, 헤밍웨이는 카리브해의 아득한 바다를 촉매 삼아 꿈을 포기하지 않은 한 늙은 어부의 삶을 그려냈다.

20년 넘는 세월을 쿠바에 머물렀던 헤밍웨이는 코히마르에서 낚시를 즐겼고, 소설 속 노인인 선장과 술잔을 기울이며 풍류를 나눴다. “낚시하기 안 좋은 날이면 당장 글을 쓰겠다”고 할 정도로 낚시에 푹 빠져 살던 시절이었다. 노인은 세상을 떠났지만 아직도 그의 가족들은 어촌마을에 남아 옛 추억을 전하고 있다.


마을은 요란스럽지 않고 아담한 풍경이다. 현란한 이정표도 없고, 관광지를 떠올리게 하는 상인들이 몰려드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더욱 운치 있다. 해변을 거닐다 우연히 마주치는 헤밍웨이의 흉상이 이곳이 소설의 모티브가 된 포구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흉상은 한 어부가 기증한 선박의 프로펠러를 녹여 만들었다는 사연을 담고 있는데, 그가 그토록 동경했던 바다를 바라보고 외롭게 서 있다.

‘라 테레사’에서는 라이브 선율이 흘러나와 포구마을의 운치를 

더한다.

턱수염 가득한 헤밍웨이의 얼굴이 새겨진 동판.



레스토랑 ‘라 테레사(La Terraza)’는 유일하게 이 포구마을에서 붐비는 곳이다. 헤밍웨이가 즐겨 찾았다는 단골 술집으로 내부에는 그의 사진들이 빼곡하게 진열돼 있다. 이곳에서 창밖 바다를 배경으로 라이브 음악을 들으며 그가 마셨던 모히토(Mojito) 한 잔을 기울이는 기분은 묘하다.




순박한 쿠바의 풍경을 만나다

코히마르가 가슴 깊이 박히는 것은 단지 헤밍웨이 때문만은 아니다. 아바나의 도심이 변질돼 가는 것과는 달리 이곳 어촌마을의 골목에서는 상상 속에 오래 묻어둔 순박한 쿠바인들을 만난다. 카메라를 들이대면 성긴 이를 먼저 드러내고 웃는 모습들이다. 가난 속에서도 쾌활하고 때가 묻지 않은 미소와 눈빛. 그 정경들이 알알이 새겨진다. 소설 속 감흥을 이끌어낸 헤밍웨이의 선택에는 분명 이유가 있었다.

외딴 코히마르의 골목에서는 박물관에서나 볼 듯한, 50년대 올드카들과 마주치는 게 오히려 낯설다. 미군정 시절, 아바나 근교는 미국 부호들의 휴양지였고 그들이 남긴 유흥의 흔적이 수십 년 세월을 지나 그대로 남아 있다. 울퉁불퉁한 올드카들은 외국의 자동차 마니아들이 눈독을 들여도 팔지 않는 쿠바의 명물이 됐다.

코히마르에서는 순박한 쿠바인들의 삶을 엿볼수 있다.


헤밍웨이는 쿠바를 사랑했고, 쿠바의 여인을 사랑했고, 쿠바의 럼을 사랑했던 소설가였다. 미국과 쿠바의 관계악화로 헤밍웨이는 쿠바를 떠나야 했지만 그의 흔적은 쿠바 곳곳에 흩어져 있다. 소설 [노인과 바다] 배경의 다른 한 축을 이뤘던 마리나 헤밍웨이는 요트가 즐비한 관광지가 됐고, 그가 실제로 거주했던 아바나 남쪽의 저택은 헤밍웨이 박물관으로 남아 있다. 박물관에 들어서면 그의 애장품인 낚싯배도 함께 전시돼 있다. 헤밍웨이는 아바나 도심의 암보스 문도스 호텔에 머물며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집필했으며 해가 저물면 대성당 옆 ‘라 보데기타(La Bodeguita)’나 ‘라 플로리디타(El Floridita)’에 들려 럼주를 기울였다. 20세기 문학을 대표하는 대문호의 숨결은 이렇듯 쿠바의 낯선 해변, 골목과 바에 잔잔하게 녹아 있다.




가는 길
미국 LA~멕시코시티를 경유하는게 일반적인 루트다. 중미 지역에서 에어로 멕시코 항공, TACA항공, 쿠바 항공이 아바나까지 수시로 오간다. 캐나다를 경유할 수도 있다. 입국 전에 공항에서 비자를 구입할 수 있으며 출국 때 역시 별도의 공항세가 있다. 아바나에서 코히마르까지는 버스가 다닌다. 택시를 타기 전 가격 흥정은 필수. 쿠바 내에서는 달러나 유로를 쿠바 화폐로 교환이 가능한데 미국 달러는 캐나다 달러에 비해 80~90%의 환율이 적용돼, 캐나다 달러로 가져가 환전하는 게 더 유리하다.

아고라, 너를 드러내어, 너 자신을 알라

대화를 나눈다는 것은 자신을 드러내는 일이기도 하고, 자기자신이 누구인가 스스로 깨닫는 과정이기도 하다. 옛 철학자 소크라테스의 말, “너 자신을 알라”는 그 철학적 대화의 효용성에 대해서 말해준다. 소크라테스와 대화를 하다보면 스스로를 노출시키지 않을 수 없다. 그렇게 알몸으로 드러난 자신을 찬찬히 들여다보고 알아가는 것. 그것이 철학의 기본이라고, 그는 말한다.

아테네에서 태어나 아테네에서 죽은 아테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 그가 주로 출몰한 곳은 아고라였다. 아고라는 그리스식 민주주의가 직접 이루어진 공간이다. 아테네의 시민들은 이곳에서 재판도 열고, 시장도 보고, 모여서 공동체에 관한 여러 가지 결정도 내렸다. 직접 민주주의가 이루어지는 장소이자 철학이 실천적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곳이기도 했다.

소크라테스가 방문하기 전, 아고라를 휘어잡고 있는 이들은 소피스트들이었다. 사소한 결정에서부터 목숨이 걸린 재판에 이르기까지 대화와 설득으로 해결하려했던 이들에게 있어 말을 잘한다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한 재능이었다. 소피스트들은 사람들에게 말 잘하는 법, 즉 웅변술을 돈 받고 가르쳤다. '현자'를 뜻하던 ‘소피스트’라는 단어는 '궤변가'를 뜻하는 말로 추락했다. 중요한 건 말재주가 아니라는 것을 집요한 문답으로 밝혀낸 소크라테스가 결국 아테네 시민들의 손에 의해 죽은 것은, 스스로를 안다는 것이 사실은 두려운 일이라는 것을 반증하는 것일까?

디오게네스의 등불에 나를 비추다

“나는 대왕 알렉산드로스다. 네가 원하는 것을 말하라.”라며 위풍당당하게 그를 내려다보는 청년 앞에서 남루한 옷자락 속으로 손을 넣어 긁적거리며 “햇볕을 가리지 말고 비켜주시오”라고 말했다는 철학자 디오게네스. 시노페에서 태어나 일명 “시노페의 디오게네스”라 불리는 그는 퀴닉학파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문명을 반대하고 원시적인 생활을 추구한 그는 가능한 한 욕망을 줄이고 수치심을 느끼지 않으며 스스로 만족하는 것에 큰 가치를 두었다. “아무것도 필요로 하지 않는 상태”가 되어야 신에게 가까워진다고 생각했던 것. 그의 세계관에 맞게, 그의 외양은 초라했다. 한 벌의 옷, 한 개의 지팡이, 그리고 약간의 소지품이 든 자루. 그리고 그의 집은 통이었다. 그의 철학이 퀴닉학파라는 이름을 얻은 이유는 통속에 사는 그의 모습이 개(퀴온Kyon)와 같았기 때문이었다. 아무것이나 잘 먹고 잠자리를 걱정하지 않으며 불평없이 정직하게 살아가는 개에게 찬사를 보내며 개처럼 살고자 했던 것이 가장 큰 이유였지만.


디오게네스는 헐벗고 다녔지만 그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알렉산드로스 대왕과의 에피소드만큼이나 알려진 그의 기행은, 환한 대낮에 등불을 켜서 들고 다녔다는 것이다. 진실한 사람, 정직한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며 들고 다녔던 그 등불은 “디오게네스의 등불”이라는 이름으로 구전되었다.

현재 아테네에는 ‘디오게네스의 등불’ 기념비라고 알려진 것이 있다. 아크로폴리스의 동쪽에 있는 리시크라테스 기념비(Lysikrates Monument)는 BC 335 년경 소년 합창대회의 스폰서들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진 비석이다. 그러나 그 생김새 때문인지 사람들은 이 비석을 디오게네스의 등불이라 부른다. 현재 이 비석이 자리하고 있는 수도원은 1810년 바이런 경이 아테네를 방문했을 때 머물렀던 곳이기도 하다.

파르테논신전, 매연에 노출되다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에 자리잡고 있는 아름답지만 폐허에 가까운 파르테논 신전은 기구한 시절을 지나왔다. 아테나 여신에게 바치는 신전으로 지어진 이곳은 비잔틴 제국이 통치할 때는 동방정교의 교회가 되었다가, 십자군에 의해 점령당한 후 카톨릭 교회가 되기도 했다. 오스만 투르크가 지배할 때는 모스크가 되기도 하였으나, 성격이야 어찌되었건 비교적 잘 보존된 셈이었다. 하지만 1687년 베네치아공화국이 아테네를 점령하고 있던 오스만 투르크를 공격했을 때 파르테논 신전은 치명적인 상처를 입게 된다. 탄약고로 사용하던 파르테논 신전에 베네치아 군의 구포탄이 날아든 것이다. 이후 이어진 베네치아군의 약탈, 영국의 엘진의 유물 반출 등을 통해 파르테논 신전은 되돌릴 수 없는 폐허가 되었다.

파르테논 신전은 지금도 산성비에 노출되어 조금씩 부식되고 있다.


현재 파르테논 신전의 적은 ‘산성비’다. 파르테논 신전을 구성하고 있는 석회석, 대리석은 탄산칼슘을 주성분으로 하고 있는데, 이는 또한 산에 녹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아테네가 대도시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공해에 의한 그리스 고대유물들의 침식 현상이 본격적인 문제로 대두된 것은 1970년대. 그리스 문화부에서는 에렉테이온의 여상주와 파르테논 신전의 조각 등에서 심각한 훼손의 흔적을 발견했다.

1990년,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한 아테네 시가 본격적인 오염 규제정책을 발표하면서 피해는 줄어들고 있지만, 공해에 노출된 파르테논 신전으로서는 공해자체를 현격히 줄이는 것 이외에는 다른 보호방책이 없다. 다행히 시끄럽고 공해로 가득차 있기로 유명한 아테네도 최근들어 상당한 개선을 보이고 있다고.

올림픽경기장, 벌거벗고 달려라

세계인의 축제인 올림픽은 고대 그리스에서 시작되었다. 기원전 776년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이 정설. 4년마다 한번씩 열렸던 이 경기는 시민권이 있고, 범법행위를 한 적이 없으며, 제우스에 대해 불경한 행동을 한 적이 없던 남자만 참가할 수 있었다. 여성의 경우는 관전조차도 금지되어 있었는데, 이 경기에 참여한 모든 선수들이 벌거벗은 채였다는 것이 하나의 이유가 될까? 색다른 것은, 당시 고대 올림픽에는 운동선수만 참여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시인, 철학자, 예술가들도 참가해 문학, 예술, 연극 등을 겨루었다는데 현재에는 그 전통이 이어지지 않는 것이 아쉽다.


서기 393년 로마제국의 데오도시우스 1세가 반 기독교행사라고 규정하면서 제293회 대회를 마지막으로 고대 올림픽은 막을 내렸다. 역사 속에 묻힌 올림픽을 1896년 되살린 이는 프랑스의 쿠베르탕 남작. 빈곤한 그리스를 대신하여 돈을 쾌척한 그리스의 대부호 아베로프 덕분에, 아테네는 고대 경기장을 복원하여 제 1회 근대올림픽 개최지에 걸맞는 대리석 좌석의 경기장을 갖게 되었다. 지금도 그곳에 가면 아베로프의 동상을 볼 수 있다.


마라톤 승전을 알리고 죽은 병사, 그도 누드였을까?

세계에서 유일하게 대리석으로만 된 이 경기장의 또 하나의 특징은 고대경기장과 같이 말발굽 모양의 구조라는 것. 5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이곳은 로마시대에는 투기장으로 사용되었으며, 현재에도 각종 육상경기와 행사 등에 사용되고 있다. 28회 2004 아테네 올림픽 당시에는 개막식과 폐막식이 거행되기도 했다.

이곳은 또한 마라톤의 도착지점이기도 하다. BC490년, 아테네를 공격한 10만의 페르시아군을 1/5밖에 안 되는 2만의 아테네시민군이 물리친 마라톤 전투의 승전보를 알리기 위해 42.195km를 달려온 병사의 죽음을 기리는 이 뜻깊은 경기는 올림픽의 꽃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나저나, 그 병사도 누드였을까?

피레우스 항구, 가식과 위선을 벗은 그리스인 조르바를 만나다.

그리스인 조르바는 ‘자유인’의 또 다른 이름이다.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만난 남자, 그의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에 나오는 실존인물. 그는 거침없는 삶의 에너지를 발산하여 그가 ‘두목’이라 부르던 소설 속의 ‘나’를 감명시켰다.

그리스인 조르바는 가식을 벗은 자유인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들 둘이 만나는 곳이 바로 피레우스 항이다. 피레우스 항은 아테네의 외항으로, 기원전 490년에 테미스토클레스에 의해 건설되었다. 아테네 시내에서 남서쪽으로 약 10km쯤 떨어진 곳에 자리잡은 곳으로, 유럽 각국으로 오가는 배들은 모두 이곳에서 출발하고, 또 도착한다. 에게해의 크루즈선들도 모두 이곳으로 온다. 크레타 섬, 키클라데스 제도, 사모스, 낙소스, 파로스, 미코노스, 사로니코스 제도, 도데카니사 제도 등. 지중해를 여행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거쳐야 될 항구다.

그곳의 카페에서 크레타로 가는 배를 기다리던 ‘나’는 눈빛이 강렬한 한 남자를 만난다. 둘은 함께 크레타로 건너가고, 그곳에서 ‘나’는 조르바의 삶의 철학을 두 눈으로 바라보게 된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자유인. 그의 삶은 어설픈 철학들을 가차없이 부순다.

크레타섬에 있는 카잔차키스의 묘비명에 쓰여있는 말은, 그가 생전에 남긴 말이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이는 그리스인 조르바가 할법한 말이기도 하다. 그는 말한다. “나는 인간이니까”. ‘나’가 묻는다. “인간이라니, 그게 무슨 뜻이지요 조르바?” 다시, 그가 대답한다. "글쎄, 자유라는 거지” 그렇다. 모든 가식과 위선을 벗어버렸을 때, 인간은 자유다.

아테네 국립고고학박물관, 누드조각상들이 가득한 곳

벌거벗은 옛 그리스인들을 보고싶다면 아테네 국립고고학박물관에 가면 된다. 물론 당시의 그리스인들이 이토록 멋진 몸매를 하고 있었을 것 같지는 않지만, 사실적으로 묘사된 나체의 조각상들이 박물관을 꽉꽉 채우고 있다. 아프로디테 여신이 기원전 4세기의 조각가 프락시텔레스가 만든 자신의 조각상을 보고 놀라 "도대체 프락시텔레스는 어디서 내 벌거벗은 모습을 보았는가?"라 했다는 이야기는 물론 지어낸 에피소드이겠지만, 당시 그리스인들이 그 조각상을 보고 놀라 “도대체 프락시텔레스는 언제 아프로디테 여신의 벌거벗은 모습을 보았는가?”라며 수근거렸을 법하다.


1891년에 문을 연 아테네 국립고고학박물관은 고대 그리스의 건축을 본떠 지어졌다. 조각상뿐 아니라 선사시대에서 헬레니즘 시대에 이르는 시기에 만들어진 조각, 회화, 공예품들이 한곳에 모였다. 조각상은 대부분 그리스의 신들을 모델로 하고 있는데, 입고 있는 옷이 없다보니 소지품으로 정체를 판단할 수밖에 없다. BC460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진 유명한 포세이돈 청동상은 멋진 자세로 뭔가를 던지기 위해 팔을 뻗고 있는데, 그 손에 든 것이 삼지창인지 번개인지 알 수 없어 “제우스 또는 포세이돈 청동상”이라 표기해놓았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널리 포세이돈 청동상이라 알려진 이유는 아마도 바닷 속에 빠져있던 것을 건져올렸기 때문인 게 아닐까. 1928년 아르테미시온의 바닷속에서 건졌기에, 아르테미시온의 포세이돈상이라 불리기도 한다.


그리스 조각들은 사실적인 미를 추구했다.

리카베투스, 아테네를 굽어보는 민둥산

아테네는 벌거벗은 산에 둘러싸여있다. 큰 강이 없는 아테네는 늘 물 부족에 시달린다. 그 이유는 “아테네”라는 도시 이름의 유래에서부터 찾아볼 수 있다. 어느날 포세이돈아테네는 이 도시에 자신의 이름을 달겠다며 다투었다. 결국 이들은 시민들을 모아놓고 그들이 좋아하는 선물을 준 신의 이름을 도시에 달겠다고 제안했다.

리카베투스의 민머리에서 보는 아테네의 전경은 훌륭하다.


포세이돈이 준 선물은 물이었다. 그는 자신의 삼지창으로 바위를 내리쳐, 물이 솟아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 물은 소금물이었다.

아테네는 방패로 땅을 내리쳐 올리브나무가 자라나게 하였다. 올리브 기름과 올리브 열매를 시민들에게 준 것이다. 이를 본 시민들은 아테네의 손을 들어주었고, 이에 화가 난 포세이돈은 아테네에 ‘물 부족’이라는 저주를 내렸다.

이토록 물이 부족한 아테네에 산에까지 물이 안 올라가는 것은 당연할지 모른다. 리카베투스가 민둥산인 이유는 신화에서 나온 바로 그 이유 때문일까? 하지만 석회암으로 이루어진 바위는 물을 품기에 좋다. 그 덕분에, 리카베투스는 완전히 헐벗은 산은 면하게 되었다. 리카베투스는 ‘늑대들의 언덕’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산기슭에 우거진 소나무숲에 늑대들이 살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리카베투스 산이 생기게 된 유래도 아테네 여신과 관계가 깊다. 아테네는 막 태어난 에리크토니오스를 바구니에 담아 케크롭스의 딸들에게 맡기며 “절대 열지 말라”고 당부했다. 그리고는 아크로폴리스를 만들 산을 가지러 팔레네로 갔는데, 그 사이를 참지 못한 케크롭스의 딸들이 바구니를 열어본 것이다. 이 사실을 안 아테네는 화를 내며 들고오던 산을 집어던졌는데, 그것이 바로 리카베투스가 되었다고 한다. 리카베투스의 맨숭맨숭한 정상에는 아기오스 조르기오스라는 교회가 있는데, 이곳까지 오르면 아테네의 전망이 기다리고 있다. 민둥산이기에 얻을 수 있는 선물이다.

해마다 수많은 여행자들이 찾는 캐나다의 명소 로키산맥은 자연과 야생 동식물이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곳이다. 밴프(Banff)에서 재스퍼(Jasper)까지 이어지는 약 300㎞의 고속도로인 아이스필드 파크웨이는 로키산맥의 웅장함과 에메랄드빛 호수 뾰족한 침엽수림이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을 연상케 한다.

로키산맥과 함께 걷고 뛰는 것만큼 로키를 잘 이해하는 방법은 드물다.

시간이 빚어낸 로키산맥의 위용과 요정이 잠들어 있을 법한 고요한 호수는 세계 그 어느 길에서도 볼 수 없었던 독특한 이미지를 여행자에게 선사한다. 때문에 비경을 놓치기 아쉬워 도로 한쪽에 차를 세우는 횟수가 점점 많아진다.

대자연은 비록 험준하지만 이루 형용할 수 없는 거대함과 아름다움으로 여행자를 인도한다. 자연 속에서 걷고, 타고, 날고, 함께 호흡하는 것이 앨버타를 느끼는 가장 탁월한 여행 방법이다. 앨버타(Alberta)는 대자연의 광대한 품속으로 직접 뛰어드는 사람에게만 궁극적 희열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그 때문인지 산과 호수를 끼고 MTB를 타거나 트레킹과 마운틴바이크를 즐기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눈에 들어온다.


거대한 산맥의 위용을 가슴에 품고

로키산맥의 골짜기 깊숙한 곳에 위치한 재스퍼는 매우 작은 도시다. 작은데다 구획정리도 깔끔하기 때문에 지도 한 장이면 도보나 렌터카로 누구나 쉽게 돌아다닐 수 있다. 서부영화에서 보았던 아담한 시골마을을 연상케 한다.

사실 로키산맥에 위치한 도시에 뭐 볼게 있겠는가? 당연히 재스퍼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나타나는 협곡과 산줄기, 호수가 아닐까 싶다. 재스퍼를 방문하는 이유는 인간에 의한 작품이 아닌 자연이 만들어낸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는데 있다.

우선 첫 목적지는 휘슬러산(2,277m)이다. 한반도 최고봉인 백두산보다 500m가량 낮다. 더욱이 트램웨이를 이용하니 두 손 놓고 간편하게 재스퍼 국립공원 구경이나 하면 된다. 트램웨이는 휘슬러 산 정상까지 올라가는 케이블카로 재스퍼나 로키산맥을 조망하는데 트램웨이만큼 좋은 것은 없다. 삼각형 형태로 조성된 재스퍼 다운타운과 기묘한 협곡이 눈에 들어온다.

휘슬러산 정상 부근에는 트레킹 코스가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다. 트램웨이를 통해 MTB를 편하게 가져올 수도 있어 다양한 액티비티를 즐기기에 손색이 없다. 가벼운 옷차림과 물병만을 손에 든 채 트레킹에 열중하고 있는 커플도 눈에 띈다. 생각보다 트레킹 코스는 꽤 가파르다. 하지만 트램웨이에서 내려 능선을 따라 걸음을 내디디면 바로 밑으로 거대한 로키산맥과 푸른빛 호수가 펼쳐지는 광경은 장관이다. 평소 운동부족으로 거친 숨을 내쉬면서도 두 눈과 머리는 내 몸의 안위를 생각지 않게 된다는 점이 가장 놀라운 점이다. 생각해보라. 구름 위를 걷는 것 같은 기분. 무엇이 이보다 더 멋질 수 있을까?

작고 아담한 재스퍼 다운타운. 고전 서부영화의 배경지 느낌이 물씬 난다.

휘슬러산까지 여행자를 편하게 이동시켜주는 트렘웨이. 멀리 재스퍼 다운타운이 보인다.



요정들의 안식처 멀린 호수

재스퍼 인근에는 빙하가 만들어낸 많은 호수가 있다. 패트리샤 호수나 피라미드 호수, 세컨드 호수 등 저마다의 특색을 발하는 다양한 호수들이 여행자를 맞이한다. 호수까지 가는 꾸불꾸불한 길 양쪽에 펼쳐 진 경관도 환상이다. 시간상 한군데밖에 들를 수 없다면 멀린 호수를 추천한다.


멀린 호수(Lake Maligne)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빙하호이고 캐나디안 로키 지역 내에 있는 호수 중 가장 크다. 또한 워낙 맑은 물 덕분에 민물 송어와 무지개 송어의 주요 서식지로도 유명하다. 멀린 호수의 동쪽 끝에는 스피릿 아일랜드(Spirit Island)라는 섬이 호젓이 떠 있는데, 육로가 연결되어 있지 않아서 호수를 건너는 크루즈를 통해서만 섬으로 갈 수 있다.


이는 멀린 호수 투어의 가장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데, 재스퍼의 대표 사진 촬영 장소로도 유명하니 꼭 가봐야 한다. 캐나다 로키 지역을 대표하는 엽서나 달력의 사진에 언제나 가장 먼저 등장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호수의 전체 길이는 22km, 넓이는 630만 평에 달하는 거대한 규모의 호수이다.



예정된 결말은 탄식으로, 컬럼비아 아이스필드

재스퍼까지 와서 휘슬러 산과 멀린 호수만 봤다고 끝이 아니다. 또 다른 자연의 위대함을 경험해야 할 일이 남았다. 앞서 설명했듯 밴프에서 재스퍼에 이르는 아이스필드 파크웨이라 불리는 93번 고속도로의 정확히 중간쯤 끝없는 빙하가 펼쳐지는데 이를 빼놓고 로키 산맥을 이야기할 수는 없다.


컬럼비아 아이스필드(ColumbiaIcefield)라 불리는 이곳은 북극을 제외하고 지구 상에 가장 큰 빙원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맨해튼의 5배에 달하는 이 빙원은 밴프 국립 공원과 재스퍼 국립 공원에 걸쳐 있다.

아이스필드 파크웨이를 따라 자전거를 탄 관광객이 지난다. 아이스필드 파크웨이는 재스퍼 국립공원과 밴프 국립공원을 연결하는 고속도로로 로키에서 가장 아름다운 드라이브 코스다.


설상차를 타고 빙하 위를 질주하는 체험은 남녀노소 누구라 할 것 없이 탄성을 내지르게 만든다. 만년설과 빙하가 전하는 시간의 공백은 낯설지만 이 놀라운 경험은 모든 이에게 매력적이다. 지구 온난화 현상으로 100여 년 후에는 사라져 버릴지도 모른다는 가이드의 말은 보는 이의 탄성을 아쉬움으로 바꿔놓는다.


지금 발 딛고 서 있는 지구의 어느 곳도 다시 돌아왔을 때 똑같은 모습으로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순백의 빙하가 전하는 애틋함이 더 간절하게 다가온다.




가는 길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에어 캐나다 등을 이용해 밴쿠버에 도착한 다음, 국내선으로 갈아타고 캘거리까지 가면 된다. 밴쿠버~캘거리 구간의 비행 시간은 약 1시간. 캘거리에서 차로 2시간 정도를 달리면 밴프에 도착한다. 다시 밴프에서 산간도로를 따라 약 300Km를 질주하면 재스퍼에 도달할 수 있다.

미국의 경제전문지 ‘포브스’는 구단 가치가 높은 축구단 20팀을 매년 선정한다. 세계의 수많은 축구팀 중에서 올해까지 7년 연속 1위 자리에 오른 축구단이 있다. 바로 우리나라의 박지성 선수가 맹활약 했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다.


세계 최초의 공업도시, 록밴드 오아시스, 더 스미스와 자동차 브랜드 롤스로이스의 고향인 맨체스터는 현재 영국에서 가장 활기가 넘치는 도시 중 한 곳이 되었다. 자! 이제 맨체스터로 축구여행을 떠나보자.

경기장 내부. 좋은 잔디를 위한 관리가 한창이다.



세계인의 명소가 된 ‘올드 트래퍼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의 홈구장인 올드 트래퍼드(올드 트래포드)까지 가는 길은 보통 기차와 우리나라의 지하철 격인 메트로 링크 중 선택할 수 있다. 피카딜리역은 모든 기차와 버스가 오가는 교통의 중심지다. 이 도시의 주요 교통수단 중 하나인 메트로 링크를 선택해 출발한다.

피카딜리역에서 경기장이 있는 올드 트래퍼드 역까지는 일곱 정거장. 그동안 소요되는 약 15분 동안은 흥분한 마음이 가시질 않는다. 세계 최고의 축구구장 중 하나인 올드 트래퍼드 경기장을 방문하는 길인데 이 어찌 흥분을 감출 수 있으랴! 역에서 내려서 경기장까지 가는 길은 생각보다 한산하다. 비교적 습윤한 날씨로 조금 쌀쌀했지만, 오히려 영국만의 독특한 멋이 느껴졌다. 로마시대로까지 거슬러갈 정도로 오랜 역사를 지닌 맨체스터는 지금도 도시 곳곳에 역사의 향기를 내재하고 있다.

지금은 세계적인 축구구단을 보유한 도시로 유명하지만, 그전에도 맨체스터는 영국의 가장 전통적인 여행지 중 하나였다. ‘북부의 수도’로 일컬어지는 맨체스터는 1990년대의 IRA 폭탄 테러의 아픔이 있었지만, 굳건히 일어서 오늘날엔 영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도시 중 한 곳이 되었다.

올드 트래퍼드 경기장 입구. 웅장한 크기를 자랑한다.


드디어 마주한 올드 트래퍼드의 거대한 위용에 말을 잊는다. 곁에 있던 사람들은 사진을 찍는 데 여념이 없다. 시즌 티켓을 구하기는 이미 하늘의 별따기(?) 보다 어렵지만, 그렇다고 아쉬워만 할 필요가 없다. 맨유에서는 팬들을 위해 맨체스터 경기장 투어를 마련했다. 경기장 투어는 보통 20명 이하의 소그룹으로 진행된다. 팬으로서는 평소엔 들어가 보지 못하는 선수들의 라운지도 들어가 보고, 다양한 설명도 들을 수 있는 더없이 소중한 기회다.


맨 처음 목적지는 역시 올드 트래퍼드 경기장. 경기장에 들어서면 초록색 잔디와 맨유를 상징하는 강력한 빨간색 의자가 선명한 대비를 이루며 강렬한 인상을 받는다. 경기장 의자에 앉아 가이드의 설명을 들은 후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뮌헨 참사에 대한 아픈 이야기를 간직한 뮌헨 터널이다. 뮌헨 참사는 1958년 2월 6일, UEFA 챔피언스 리그(유러피언컵) 경기를 치른 맨유 선수들이 탑승한 비행기가 독일 뮌헨 공항에서 이륙 도중 전복돼 선수 8명을 포함, 취재진, 팀 관계자 등 23명이 숨진 사건이다. 해마다 이때를 기리는 기념행사를 하고 있다. 벽면에 있는 사건기사나 현장 사진들을 바라보며 잠시 그분들을 기리는 기도를 드려본다.


다음으로 경기장 투어가 아니면 들어가 보기 어려운 구장 내부를 방문한다. 이곳에선 맨유 선수들이 실제로 이용하는 라운지를 들어가 볼 수 있다. 벽면에는 맨유를 거쳐 간 수많은 선수들의 이름이 빼곡히 적혀 있다. 당연하게도 우리나라 박지성 선수의 이름이 자랑스럽게 새겨져 있다. 이제는 실제 선수가 된 기분으로 선수 대기실에 들어선다. 감독과 코치들이 경기 전 작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거나 선수들이 휴식을 취하기도 하는 곳이다. 맨유 선수들의 유니폼이 걸려 있어 자연스레 몸은 달아오르고 흥분한 마음 가실 길이 없다.

올드 트래퍼드의 경기 관람석. 앉으면 착석감이 매우 뛰어나다.

박지성(13) 선수의 유니폼.


선수 대기실에서 경기 전 준비를 마쳤으니 이제는 그라운드를 누비러 나가야 하지 않은가. 실제로 선수들이 경기 시작 전 입장하는 통로로 걸어간다. 최대한 이 느낌을 만끽하기 위해 조금은 느리게 걸어보기도 하고, 선수처럼 손발을 돌리며 몸을 풀어보기도 한다. 자! 이제는 경기장에 들어설 차례. 어느새 양쪽에서 올드 트래퍼드 입장 음악이 흘러나온다. 이곳 맨체스터에서 올드 트래퍼드는 이미 경기장을 넘어서 하나의 문화가 된 듯 보인다.



맨체스터의 또 다른 매력 속으로

경기장 투어를 마쳤다고 해서, 맨체스터를 다녀왔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큰 오산이다. 맨체스터의 매력은 올드 트래퍼드 만이 아니다. 맨체스터 시내 중심에 위치한 피카딜리 공원은 주말에는 시장이 열리기도 하며, 도시의 크고 작은 주요 행사가 많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나 맨체스터 시티 팀의 경기가 있을 때면 원정팀의 응원단들이 아침 일찍부터 모여 북적북적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곳이기도 하다.


공원 앞으로 조금 걸어가면 메트로 링크 정류장 건너편 건물 1층에 관광안내센터가 위치해 있다. 관광정보에 대한 지식을 얻을 수도 있으며 도시의 안내지도를 무료로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맨체스터 관광을 위해서는 빠뜨릴 수 없는 시작점 역할을 한다. 또한 공원 반대 방향으로 두 블록 정도만 걸어 들어가면 차이나타운이 있다. 들어서자마자 중국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이곳에서는 태국,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식당뿐 아니라 맛 좋은 아시아 음식을 맛볼 수 있다.


피카딜리 가든과 함께 또 하나의 도시 중심가를 이루는 곳은 대형몰인 ‘안데일(Arndale)’이 위치한 지역이다. 이 두 곳은 모든 버스가 오가고, 시내 노면전차인 트램이 모두 거쳐 가는 교통의 중심지라고도 할 수 있다. 맨체스터 쇼핑의 중심지인 이곳 안데일의 마켓스트리트는 정말 다양한 상점들이 즐비해 있는 쇼핑 천국이다. 한적해 보였던 도시의 모습과는 달리 이곳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쇼핑을 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상징하는 붉은색 간판들이 가득하다.

타운 홀은 신고딕양식이 돋보이는 시청 건물이다.


고즈넉한 걸음이 이어질 찰나 눈에 확 띄는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바로 1887년에 건설된 맨체스터의 시청 건물인 타운 홀이다. 고딕양식인 이 건물의 중앙탑은 높이가 85m에 이르며, 매 시각 23개의 종을 울린다고 한다. 특히 내부 천장에 있는 장식은 더없이 고풍스럽다.


타운 홀의 매력에 빠져 시간을 빼앗겨 버린 탓일까. 해는 이미 저물고 있어 어둑어둑해졌다. 서둘러 택시를 잡아 세우고 호텔로 발걸음을 돌린다. 택시 차창 밖으로 다양한 커플들이 보인다. 이 도시 어딘가에 게이와 레즈비언 공동체를 위한 게이 마을도 있다고 들었던 기억이 난다. 맨체스터에서 만났던 사람들을 하나하나 떠올리며 웃음 짓다보니 어느새 호텔에 도착했다.


맨체스터는 역사적인 산업혁명의 중심 도시 중 하나다. 그에 걸맞게 화려한 겉모습보다는 실용적인 느낌이 물씬 풍긴다. 하지만 ‘평범한 것이 진리’라는 말이 있듯이, 그 평범함 속에는 결코 무시 못 할 영국인들만의 오랜 세월 동안 이어온 강인함이 숨겨 있다. 부슬비가 내리고 있는 날씨 속에서도 이 도시에서는 사람들의 끊임없는 발걸음들로 분주하다.




가는 길


핀에어가 헬싱키를 경유한 서울에서 맨체스터까지의 항공편을 운항한다. 런던에서는 약 420킬로미터 떨어져 있기 때문에 런던에서 출발한다면 기차를 타는 게 좋다. 런던 유스턴(Euston)역에서 맨체스터 피카딜리 역까지 2시간 10분 정도 걸리며, 오전 6시 20분부터 오후 11시 30분까지 기차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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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버마)는 베일에 싸인 땅이다. 낙후된 불교 국가, 군사 독재국 등의 편견으로 가로막힌 나라다. 오랜 기간 폐쇄돼 있던 미얀마는 동남아의 새로운 여행지를 찾는 젊은 여행자들에게도 선뜻 넘어서기 어려운 낯선 곳이었다.

황금으로 단장된 쉐다곤 파고다는 미얀마인들의 성지이자 휴식처 역할을 한다.


하지만 미얀마를 떠올리며 긴장할 필요는 없다. 동남아 지역 중 안전도를 따져도 뒤처지지 않는다. 밤길 야시장에서는 온화한 웃음과 접하고, 불교를 국교로 하는 착한 민족성 때문에 성난 모습을 찾아보기도 힘들다. 유럽 청춘들이 꾸준히 찾는 여행지인 미얀마는 닫혀 있고 내성적이지만 속은 의외로 고혹하다. 한국에는 불교 순례 여행자들의 입소문을 통해 그 수려한 풍광이 하나둘 전해졌을 뿐이다.


사원지대로 유명한 바간, 고산족의 호수로 알려진 인레 외에도 미얀마에서는 도시인의 삶을 엿볼 수 있는 거리와 마주치게 된다. 미얀마의 관문인 양곤이나 제2도시 만달레이에는 번잡하고 독특한 일상이 짙게 녹아 있다.

쉐다곤 파고다에서 소원을 빌고 있는 신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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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인들의 성지 ‘쉐다곤 파고다’

양곤은 미얀마 최대의 상업도시다. 이 도시는 변화상을 짚어보는 것만으로도 흥미롭다. 2005년 미얀마의 수도가 산악지대인 네피도로 갑자기 옮겨지기 전까지 양곤은 미얀마의 수도였다.


양곤의 단상은 묘한 대비 속에서 빛을 발한다. 양곤의 중심인 쉐다곤 파고다의 풍경과 신세대들이 몰려드는 인야 호수에서 벌어지는 모습은 닮은 듯 이질적이다. 도시의 70% 이상이 숲으로 뒤덮여 있지만 심각한 공해 때문에 도심도로에서 모터사이클의 운행은 금지돼 있다. 서울의 청담동 같은 골든 밸리와 양곤강 건너 낙후된 ‘달라’ 지역은 지독한 삶의 차이를 보여준다.

인야호수는 양곤 신세대들의 아지트다.



쉐다곤 파고다는 양곤의 상징이자 불교의 성지처럼 여겨지는 탑이다. 높이 99m의 금빛 탑은 탑 외관이 실제 황금으로 단장돼 있다. 옛 왕조의 여왕이 자신의 몸무게만큼 황금을 보시한 것을 시작으로 수많은 양의 황금이 기부돼 황금 무게만 수십 톤에 이른다고 한다. 탑 꼭대기는 수천 개의 다이아몬드로 치장돼 있다. 쉐다곤 파고다는 시내 어디서나 바라보고 의지할 수 있도록 인공으로 만든 도심 언덕 위에 있다.

탑의 면면을 가만히 살펴보면 종교 이상의 의미가 담겨 있다. 쉐다곤 파고다는 종교이자 삶터이고 휴식처이기도 하다. 탑 내부에서는 승려들이 수행을 하고 연인들은 경내에서 데이트를 즐기며, 가족들은 불전 안에서 도시락도 먹고 낮잠도 잔다. 미얀마에서 불교와 삶이 깊숙하게 밀착돼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쉐다곤 파고다는 미얀마인들이 평생 소원으로 꿈꾸는, 생전에 한번은 방문해야 할 메카와 같은 대상이기도 하다.




‘양곤의 명품족’을 만나다

쉐다곤 옆에는 인공호수인 깐도지 호수가 들어서 있다. 깐도지에 고급 레스토랑들이 즐비하다면 양곤대학교 옆 인야 호수는 신세대들의 아지트다. 호수 한 편으로는 아웅산 수 치(아웅산 수지) 여사가 연금됐던 가택이 있고 한쪽 호수변으로는 노천바와 벤치가 즐비하다. 벤치에 앉아 기타를 퉁기는 양곤 젊은이들의 복장을 살펴보면 사뭇 이채롭다. 미얀마 남자들은 대부분 치마처럼 생긴 론지를 입고 여인들은 하얀 피부를 유지하기 위해 얼굴에 흰색 타네카를 바른다. 이곳 대담한 신세대들은 민소매에 미니스커트를 즐겨 입는다. 타네카 대신 값비싼 화장품으로 얼굴을 치장한다. 인야 호수 옆 골든 밸리 지역은 집도 으리으리하고 명품 숍도 들어서 있는 낯선 분위기다.


혹 ‘양곤의 상류층’을 만나려면 도심 사쿠라 타워로 간다. 사쿠라 타워 20층에 있는 스카이라운지는 양곤의 패션리더들이 드나들며 밀담을 나누는 곳이다. 주말이면 공연도 열리는 별천지다. 이곳에서 슐레 파고다까지 이르는 일대가 양곤의 중심지다. 양곤의 도심은 영국식민지 시절의 영향을 받아 바둑판처럼 반듯하게 거리가 조성돼 있다. 양곤에서는 한류 때문에 한국인들의 인기도 꽤 높은 편이다. 현지여성들이 한국 남자들을 드라마 속 ‘원빈, 송승헌’처럼 매너남으로 착각하는 것이다.

승려와 중생이 함께 어우러진 

만달레이 거리.

수백 개의 흰 탑이 늘어서 있는 만달레이의 쿠도더 사원.


미얀마 제2도시인 만달레이는 양곤과는 모습이 또 다르다. 분위기는 좀 더 숙연하다. 만달레이는 미얀마의 마지막 왕조인 꽁바웅 왕조의 도읍지로 승가대학 등이 있어 미얀마 스님의 절반 이상이 이곳에 머물고 있다. 길에 나서면 온통 승려들의 세상이다. 상점마다 아침 공양을 하고, 미니 트럭에 매달려 가는 승려들과 흔하게 마주치게 된다. 만달레이 언덕에 올라 왕궁과 사원의 자취를 음미하고 일몰을 감상하는 몽환적인 체험은 평화롭고 아늑하다. 만달레이 인근 마하 간다용 짜용 수도원은 수천 명 스님들이 탁발 공양 행렬로 장관을 이루는 곳이기도 하다. 미얀마의 도시는 이렇듯 어제와 오늘, 승려와 중생이 가지런하게 공존하는 모습이다.




가는 길

양곤까지는 태국 방콕을 경유하는게 일반적이다. 성수기 때 한시적으로 인천에서 직항편이 운행되기도 한다. 미얀마 입국에는 비자가 필요하다. 미얀마 화폐는 짯(Kyat)으로, 달러를 지니고 있으면 현지 금은방 등에서 환전할 수 있다. 양곤의 날씨는 한국의 한여름처럼 더운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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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티아고 성지순례

[투어코리아] 여행초보자들 여행을 떠난다는 자체에 설레지만 조금 더 생생하고 알찬 여행을 떠나고 싶다면 '여행 좀 다녀봤다'고 이들이 선호하는 여행지를 참고해보는 건 어떨까. 이들의 선호여행지를 살펴보니 단순 명소 둘러보기식 여행보다는 코스프레미식출사건담 등 색다른 취향 맞춤형 테마여행을 즐겨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인터파크투어에 따르면 자사의 테마여행 상품인 '먹고찍고'의 2015년 매출이 전년대비 43% 증가했다. 이러한 테마형 상품은 단순 가이드 동행이 아닌 각 분야의 전문가가 멘토로 동행하며 숨겨진 여행지 방문이나 사진레슨 등 차별화된 경험을 할 수 있다. 또 자유여행과 패키지 여행의 장정만을 꼽아 즐길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특정 주제를 중심으로 하는 테마여행이 주목받으면서 많은 여행사들도 더욱 특색 있고 다양한 테마여행 상품을 선보이고 있다. 아직 여름휴가 계획을 세우지 못했거나, 특별한 해외여행을 계획하고 있는 이들을 위해 흥미진한 이색 테마여행상품을 소개한다.

▲ 일본 세계코스프레 서밋 나고야

코스프레 관심 돞다면 '일본 세계코스프레 서밋 나고야'로!


애니메이션, 게임, 코스프레 등에 관심이 많다면 '일본 세계코스프레 서밋 나고야'가 열리는 일본 나고야로 가보자. 올해 14회를 맞는 '2016 월드 코스프레 서밋'은 한국을 포함한 30여개국의 코스튬플레이어가 참여하는 세계적인 축제다. 라구나텐보스 등을 방문해 만화 속에서 보던 명소와 코스프레 모델을 배경삼아 촬영을 즐길 수 있다. 또한 나고야 티비타워, 나고야성, 오아시스 21 등 나고야 곳곳의 명소를 둘러볼 수 있다.


일본 여행 전문 작가 박용준(베쯔니) 작가와 떠나는 여행상품을 이용하면, 재미있는 이야기는 덤으로 들을 수 있다. 박용준 작가와 함께 여행 기간은 7월 29~31일이며 가격은 69만 9천원.

▲ 일본 세계코스프레 서밋 나고야

스위스의 광활한 자연을 만끽하다! '스위스 그랜드 트레인투어'


스위스의 광활한 자연과 낭만적인 문화까지 모든 것을 경험하고 싶다면 스위스패스를 타고 떠나는 '스위스 그랜드 트레인투어'가 답이다. 라보 와이너리투어를 시작으로 마테호른의 절경을 감상할 수 있는 수네가 호수 트레킹, 알프스 여행의 하이라이트인 융프라우, 스위스의 역사를 품은 도시 루체른 등 유명 명소들을 알차게 즐길 수 있다.


특히 인터파크투어의 '스위스 그랜드 트레인투어 7박9일 상품'은 여행사진 전문 박성빈 작가와 함께 할 수 있어, 동화 속에 있는 듯한 스위스의 경치들을 더욱 특별하게 기록할 수 있다. 가격은 성인 기준 339만원.

▲ 스위스 융푸라우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다!


예수님의 제자였던 야곱이 선교를 위해 걸었던 것으로 알려진 산티아고 순례길. 이 길을 따라 걷다보면 많은 것을 버린 온전한 자신과 대화하며 삶과 내면의 방향을 찾을 수 있어 최근 주목받는 여행코스.


여행 전 이 곳에 대한 궁금증을 풀고 싶다면 김지선 여행작가의 '산티아고 순례길 여행 설명회'를 눈여겨보자. 산티아고 순례길의 의미와 여행 준비 및 노하우 등 실전팁까지 수백km에 이르는 여정 속에서 김지선 작가가 느꼈던 모든 것들을 생생하게 전할 예정. 설명회는 오는 29일 오후 7시 30분 인터파크투어 8층 컨퍼런스룸에서 진행되며 참가 비용은 5천원이다.


한편, 인터파크투어에 따르면 테마여행상품은 '먹고찍고'를 가장 많이 이용한 연령대는 40대(37.2%)와 30대(32.9%)였다.


인터파크투어 기획운영팀 노선희 팀장은 '먹고찍고 상품은 널리 알려진 명소 외에도 현지 그대로를 느낄 수 있는 생생한 여행이 가능하며 관심사를 공유할 수 있는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어 여행만족도가 높은 편'이라고 전했다.




유럽의 젖줄 라인강 따라 오르며 만난 스위스의 고색창연한 소도시들

라인강은 스위스 알프스에서 발원해 유럽 중부를 가로질러 흐르다가 북해를 만나 그 여정을 마무리한다. 총길이가 무려 1320㎞에 이르는 장대한 물길이다. 라인강 상류 스위스 지역 물줄기를 따라 오르며, 강이 이뤄낸 아름다운 풍경과 강변에 깃들인 매혹적인 소도시들을 둘러봤다.

라인강 유일의 폭포, 라인폭포와의 만남

라인강, 그 기나긴 여정 속에서 만날 수 있는 폭포는 단 한곳이다. 그 폭포가 바로 스위스 샤프하우젠의 라인폭포다. 폭포의 낙차는 23m밖에 안 되지만, 그 폭은 150m나 되며 1만7000년의 세월 동안 쏟아져 왔다고 한다. 수량은 매초 700㎥나 되는 엄청난 양이다. 유럽에 있는 폭포들 중에서 가장 큰 폭포인데, 멀리서 볼 때는 평범해 보여서 살짝 시큰둥하다가도 가까이 다가가면 그 엄청난 위력에 압도당한다.

라우펜 성을 통과해서 폭포 전망대로 내려가는 벨베데레 산책길이 폭포를 감상하기에 가장 좋은 전망 포인트다. 특히 마치 폭포 한가운데 들어가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켄첼리 전망대에 서면 라인폭포의 웅장한 힘을 실감할 수 있다. 유람선을 타고 폭포 가운데에 솟아오른 섬에 올라가거나 폭포에 근접하는 것도 색다른 경험이 된다. 라인강 유일의 폭포이자 유럽 최대의 폭포라는 희귀성과 그 웅장함으로 인해 외국 여행자들뿐만 아니라 스위스 현지인들도 즐겨 찾는 관광 명소가 라인폭포다.

라인폭포 바로 위쪽에서 라인강을 내려다보고 있는 라우펜 성은 일반적으로 라인폭포에 접근하는 통로로만 인식이 되어 여행자들의 외면을 받기도 하지만 실상은 1000년의 역사를 가진 멋진 성이기도 하다. 성에서 라인폭포로 이어지는 벨베데레 파노라마 산책로의 모토인 '보고, 듣고, 감탄하라'처럼 라인폭포를 찾는 이는 누구나 보고 듣고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배의 집' '돌출창의 도시' 샤프하우젠

라인강을 따라 교역을 위해 물자를 실어 나르던 배들은 라인강 유일의 이 폭포로 인해 인근 도시인 샤프하우젠에서 짐을 내리고 육로로 폭포를 지나가야 했다. '배의 집'이라는 뜻을 지닌 샤프하우젠의 지명에서 알 수 있듯이 예전부터 라인강의 수운 교역으로 번영을 누렸던 도시가 바로 샤프하우젠이다. 구시가 골목길을 따라 고딕, 르네상스 양식의 건축물에 화려한 장식이 더해진 돌출 창문은 샤프하우젠의 가장 흥미로운 볼거리 중 하나이다.

샤프하우젠은 바이에른(바바리아)과 티롤 지역으로부터 소금과 곡물을 교역하고 1501년에 스위스 연방에 가입하면서 급성장했다. 18세기에 많은 부를 쌓으며 성장한 상인들이 자신들의 부와 고상한 취향을 자랑하기 위해 그리고 실내에 있는 사람들이 거리 풍경을 잘 내다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고안된 창문이 바로 돌출창이었다. 그래서 샤프하우젠은 '돌출창의 도시'라고도 불린다. 각양각색의 돌출창과 벽화들을 구경하며 구시가를 걷노라면 목이 뻐근할 지경이다. 특히 샤프하우젠에서 가장 유명하고 가장 아름다운 집으로 손꼽히는 '기사의 집'(Haus zum Ritter)의 프레스코화는 16세기 샤프하우젠의 유명 화가인 토비아스 슈티머의 작품인데, 알프스 북쪽에 남아 있는 르네상스 시대의 프레스코화 중 가장 뛰어나고 아름답다고 인정받고 있다. 포르더가세 65번지 건물에 있는 그림은 1930년대에 복제된 것이며 원본은 대성당 근처 알러하일리겐 박물관에 있다.

또한 포어슈타트 거리 중심에 자리잡고 있는 '황금 황소의 집'은 옛 샤프하우젠의 가장 화려한 집들 중 하나이다. 특히나 우아한 다섯 개의 돌출창은 인간의 오감을 표현하고 있는 여성을 드러내고 있다. 거울(시각), 장갑(촉각), 꽃(후각), 현악기(청각), 케이크(미각) 등 다섯 가지 사물로 오감을 표현하고 있다.

수운교역으로 번영 누린
중세도시 샤프하우젠
건물마다 화려한 돌출창 장식 눈길
슈타인암라인 프레스코화도 볼만


샤프하우젠 옛시가 동쪽 비탈진 언덕 위에는 1527년 건축가 알브레히트 뒤러가 발표한 '이상적인 요새'라는 아이디어를 실용화한 무노트 요새가 우뚝 솟아 있다. 360도로 한 바퀴 돌아볼 수 있는 원형의 지붕에 오르면 요새 바로 아래 포도밭과 중세의 느낌 가득한 옛시가와 유유히 흐르는 라인강이 어우러진 멋진 풍경을 볼 수 있다. 요새답게 육중한 대포들도 놓여 있다. 지금은 시민들에게 무료로 개방되는 휴식공간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다양한 음악 공연이나 영화를 상영하는 노천극장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주말에는 뮌스터 대성당 근처 넓은 잔디밭에서 벼룩시장도 열리고, 와인 셀러 방문과 시음을 할 수 있는 '포도 개화 축제'(6월), '포도 밟기 축제'(9월) 등 다양한 축제들도 열린다.

라인강의 보석, 슈타인암라인

'라인강의 보석'이라고 불리는 소도시 '슈타인암라인'은 샤프하우젠에서 동쪽으로 20㎞ 떨어진 곳에 있다. 라인강변 도시들 중에서도 가장 완벽하게 중세의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옛시가의 건물들마다 화려하고 섬세하게 장식된 16세기의 프레스코화는 슈타인암라인이 왜 라인강의 보석으로 불리는지 의구심을 가진 이들의 마음속 의문부호를 저절로 사라지게 한다.

매년 거의 100만명에 가까운 여행자들이 이곳에 들른다. 관광객이 몰려들기 전인 오전 10시 전이나 단체관광객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오후 5시 이후가 되어서야 비로소 조금 한가로운 산책을 할 수 있다. 옛시가는 시청사를 중심으로 운터슈타트 거리와 오버슈타트 거리로 길게 계란형으로 형성되어 있다. 슈타인암라인의 시청사 광장에 들어서서 360도 한바퀴 돌아보면 마치 입체동화책 속의 한 페이지를 펼쳐 놓은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시청사는 16세기에 거상의 집이자 곡물과 옷가게, 그리고 시청으로 건설되었다. 절반이 목재로 구성된 꼭대기 층은 16세기 원형 그대로이며 가운데층은 1745년 개축 때에, 제일 아래층의 파사드와 입구는 1865년에 추가되었다.

시청사를 등지고 광장의 오른편 바로 옆에는 가장 화려하면서도 이 도시에서 가장 오래된 프레스코화이자 홀바인(Holbein) 양식인 '바이센 아들러' 건물이 있다. 라인강 방향으로 늘어선 다양한 프레스코화는 숨막힐 정도로 아름답고 우아함이 넘친다. 이 프레스코화들로 인해 시청사 광장의 전체적인 그림이 비로소 완성된다. 시청사 광장의 주요 건물들의 이름은 각각의 벽화의 특징을 따서 붙여졌다. 바이센 아들러(Weissen Adler)는 흰 독수리, 히르셴(Hirschen)은 수사슴, 크로네(Krone)는 왕관, 로터 옥센(Roter Ochsen)은 붉은 황소를 의미한다. 특히 고딕식의 붉은 황소 건물엔 이 도시에서 가장 오래된 선술집이 있다.

옛시가 중심 거리인 운터슈타트 거리를 따라 걷다가 중간 지점에서 만날 수 있는 린트부름 박물관은 슈타인암라인의 옛 생활 모습을 잘 재현해 놓았다. 예수 탄생 이야기를 전세계의 전통의상과 건축양식으로 모형으로 만들어놓은 크리스마스 박물관도 숨은 볼거리다. 풍요로운 라인강에서 잡은 생선을 주재료로 하는 메뉴가 인기가 있고 가격대도 적당해서 별미로 추천한다. 시청사 광장의 '헤스 그라프'에서는 치즈 장인과 함께 치즈 제조 체험 및 치즈 시식을 할 수 있다.


스위스 라인강 여행 정보

라인폭포 스위스 샤프하우젠 남쪽으로 약 4㎞ 거리에 있는데, 샤프하우젠 역에서 '에스반(S-Bahn) 33번'을 타고 라우펜 성에서 하차. 5분 소요. 라우펜성 역까지는 4~10월 사이에만 운행한다. 이 시기 외에 방문할 경우 샤프하우젠에서 1번이나 6번 버스를 타고 노이하우젠 마을에서 내린 뒤 이정표를 따라 5분 정도 걸으면 라인폭포가 보이는 강변 선착장에 닿는다. 2012년 6월부터 라인폭포와 샤프하우젠을 왕복하며 48명까지 탑승 가능한 라이팔 익스프레스 관광열차가 운행중이다. 10~15분 소요.

샤프하우젠 취리히에서 IC, IR, RE 열차를 타고 40분 정도 소요. 1시간에 2~3대꼴로 운행한다. 4~10월 사이에는 크로이츨링겐, 슈타인암라인, 샤프하우젠 사이를 오가는 유람선(www.urh.ch)이 운행한다. 샤프하우젠 누리집(www.schaffhauserland.ch) 참조.

슈타인암라인 취리히에서 기차로 샤프하우젠에 도착한 뒤 한번 갈아타면 된다. 샤프하우젠에서 25분 소요. 누리집(www.schaffhauserland.ch)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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