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 유럽, 영국 런던
지금 나는 수많은 문화와 인종이 섞여 다양한 색깔을 만들어내는 도시 런던에 살고 있다. 런던에서 길을 잃어가며 나를 찾으면서 말이다.

패션 에디터를 꿈꾸는 최빈 런던을 만나다

내가 런던행을 포기할 수 없었던 진짜 이유는 어쩌면 테이트 모던의 7층에서 바라본 창밖 풍경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세인트 폴 성당과 여기저기 삐죽삐죽 솟아오른 크레인이 합주를 이룬 런던 풍경을 보면서 나는 ‘이 도시는 옛것을 함부로 부수지 않는구나. 천천히 고치면서 새로운 문화를 더해가는구나’라고 생각했다. 나도 나를 깨부수고 다시 만들어가면서, 새로운 ‘나’를, 더 나은 ‘나’를 만들고 싶었다.

런던에 오는 것만이 정답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생에는 정답이나 정도가 없고, 인생을 살아가는 속도도 저마다 다르다. 내가 내 삶과 제대로 마주하기에는 런던만한 도시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Nordic cafe 노르딕 카페

유러피언처럼 유럽을 즐기는 방식(1)
티보다 커피, 커피, 커피!


매년 크리스마스 시즌에 포트넘 앤 메이슨Fortnum&Mason에 가면 크리스마스 티를 마실 수 있다. 홍차와 생강, 클로브,상큼달콤한 오렌지 껍질이 들어 있어 스파이시한 향이 나는 크리스마스 티는 추운 겨울에 잘 어울리는데, 나는 이 차를 매우 좋아한다.

가끔 프레시 민트티, 엘더플라워 레모네이드를 마시기도 한다. 그런데 영국의 티가 아무리 맛있다 해도 나는 역시 커피가 제일 좋다. 커피에 관한 한 ‘유난스럽다’는 말을 듣기도 하는데, 그래서 맛있는 커피를 내주는 카페를 찾는 일에는 일가견이 있다.

런던의 커피는 다른 유럽과 마찬가지로 진한 맛이 특징. 카페 네로나 프레타망제의 커피는 스타벅스에 비해 훨씬 더 진하다. 저지방 우유를 넣으면 스키니 라테Skinny Late 혹은 스키니 카푸치노Skinny Cappuccino라고 부르는데, 런더너들은 호주에서 만들어진 진한 라테와 부드러운 카푸치노의 중간 맛인 ‘플랫 화이트Flat White’를 즐겨 마신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곧이어 나 또한 중독.

Nordic cafe 노르딕 카페

1. Nordic cafe 노르딕 카페
나의 아지트 겸 카페. 조용한 공간과 깔끔한 커피 맛, 그리고 시나몬 번즈 등 카페의 필수 요소를 제대로 갖춘 곳이다. 골든 스퀘어에 위치한 노르딕 카페는 영화 <카모메 식당>처럼 세련된 인테리어가 인상적이다. 에그 버터와 포테이토 파이는 가벼운 점심으로 딱이다.
Add Nordic Bakery, 14 Golden Square, W1F 9JF Tel 44 20 3230 1077
URL www.nordicbakery.com Station Piccadilly Circus

Monmouth Coffee 몬마우스 커피
2. Monmouth Coffee 몬마우스 커피
런던에서 가장 맛있는 커피를 만드는 카페 90% 이상이 몬마우스 커피빈을 쓸 정도로, 이곳의 커피맛은 명성이 자자하다. 2주에 한 번씩 커피빈을 구입할 정도로 커피홀릭인 나에겐 없어선 안 되는 곳이다. 패키지도 예뻐서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선물용으로도 그만이다
Add Monmouth Coffee Company, 27 Monmouth Street, WC2H 9EU
Tel 44 20 7379 3516 URL www.monmouthcoffee.co.uk
Station Covent Garden

Flat white 플랫 화이트
3. Flat white 플랫 화이트
런던의 베스트 커피라고 생각하는 커피숍. 테이크아웃을 하면 종이컵에 이름을 써주는데, 이젠 내 이름이 알리스인 것도, 내가 언제나 카푸치노를 마신다는 사실까지 기억한다. 진한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강력 추천!
Add 17 Berwick Street, Soho, W1F 0PT Tel 44 20 7734 0370
URL www.flat-white.co.uk Station Oxford Circus


오랜 역사의 도시… 축구 팬들에게는 영국 런던보다도 먼저 떠오르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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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초의 산업도시 맨체스터의 면모는 현대 맨체스터의 풍경 속에도 도저하게 담겨 있다. 맨체스터의 현재를 보여주는 인공 항공 샐퍼드 키와 미디어 시티./ⓒShutterstock_Gordon Bell
축구 팬들에게는 영국, 하면 런던보다도 먼저 떠오르는 도시인 맨체스터. TV 중계 화면으로 셀 수 없이 드나든 올드 트래퍼드는 버킷리스트 맨 위에 올라 있는 꿈의 구장이다. 축구가 이유가 되었든, 런던 너머의 영국이 궁금해서 찾게 되었든, 이곳을 여행하는 사람은 모두 기대와 상상 이상의 경험에 놀라게 된다. 축구는 맨체스터를 장식하는 영롱한 보석 중 단 하나일 뿐. 오랜 역사의 맨체스터는 여러 빛깔의 크고 작은 찬란한 보물을 품고 있다.



세계 최초의 산업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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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하가 있어 온종일 청량한 물소리가 들리는 아기자기한 동네 캐슬필드./ⓒShutterstock_Shahid Khan

어웰강과 작은 운하들이 흐르는, 온종일 청량한 물소리가 들리는 아기자기한 동네 캐슬필드(Castlefield)는 맨체스터에서 가장 운치 있기로 이름난 곳이다. 물 맑고 공기 좋은 동네라면 특별한 무언가가 없어도 하루를 오롯이 보낼 만하지만, 고맙게도 캐슬필드에는 맨체스터의 정체성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과학과 산업 전반의 역사를 보여주는 과학·산업박물관(Museum of Science and Industry)이 있다.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이 가장 먼저 영향을 미친 곳은 직물 산업으로 일찍이 부를 축적한 맨체스터다. 세계에서 가장 먼저 산업화를 이룬 이 도시의 업적은 생각보다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견고한 벽돌 건물에 자리한 박물관을 찾는 것으로 자랑스러운 역사를 반나절도 채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에 알 수 있다. 롤스로이스와 스피트파이어 항공기 엔진을 비롯해 맨체스터에서 발견·발명돼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친 250여 종의 물건과 기술을 산업 직군별로 분류해놓은 전시는 기술 발전과 맥을 같이하는 인류의 역사를 차근히 되돌아보게 한다. 가장 먼저 봐야 할 곳은 맨체스터를 일명 ‘코트노폴리스(Cottonopolis, 면의 수도)’라 불리게 만든 면 산업에 헌정된 ‘텍스타일스 갤러리’. 낡고 불편해 보이는 기계들이 한때 최첨단 기술의 집약체였다는 점을 상기하며 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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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산업박물관 내 '텍스타일스 갤러리'에서는 맨체스터를 '면의 수도'라고 불리게 한, 한때 최첨단 기술의 집약체였던 방적기를 볼 수 있다. / 맨체스터의 정체성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과학과 산업 전반의 역사를 보여주는 과학 산업박물관

가상 항공기 조종 체험, 실내 스카이다이빙 등 정적이고 조용한 박물관에 대한 편견을 부수는 짜릿한 체험도 마련되어 있으며, 4세 미만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감각 놀이를 통한 체험 학습 프로그램은 몇 주 전에 예매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인기가 좋다. 과학에 관심이 많은 여행자라면 맨체스터 시내에 위치한 새크빌 공원(Sackville Park)의 벤치에 앉아 있는 천재 수학자이자 현대 컴퓨터공학의 선구자인 앨런 튜링의 동상을 찾아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붉은 유니폼을 입고 뛰는 꿈을 꾸다

파리에 에펠탑이, 뉴욕에 자유의 여신상이 있다면 스케일 큰 맨체스터에는 올드 트래퍼드(Old Trafford)가 있다. 이 도시의 상징이자 최고의 여행 명소인 올드 트래퍼드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맨유’ 팬들이 ‘OT’라는 애칭으로 부르는 7만5,000석 규모의 대형 스타디움. 수십 년간 맨유를 세계 축구의 정점에서 이끌었던 알렉스 퍼거슨 경의 동상이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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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이 가장 사랑하는 스포츠인 축구의 모든 것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축구 박물관 내부 모습 / 전 세계에 팬을 거느린 신화적인 구단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구장인 올드 트래퍼드

박지성 선수도, 퍼거슨 감독도 지금은 맨유를 떠나고 팀의 영광은 예전만 못하지만, 스타디움과 박물관 투어를 통해 명문 구단의 화려한 역사를 살펴보노라면 ‘클래스는 영원하다’는 말을 실감할 수 있다. 양손 가득 유니폼과 구단 굿즈를 들고 OT를 나서는 것만으로 성에 안 찬다면, 혹은 올드 트래퍼드에 가는 것이 영 내키지 않는 축구 문외한이라면 맨체스터 대성당 옆에 위치한 맨체스터 국립 축구박물관(The National Football Museum)으로 향하자. 무료로 운영하는 축구의 보고에서 방문자들은 영국이 가장 사랑하는 이 스포츠의 규칙과 유산, 최고의 선수들과 감독들, 전술과 리그, 대륙 대회의 역사를 배울 수 있다. 직접 페널티 킥을 차보고 BBC 캐스터들의 생동감 넘치는 해설을 들어볼 수 있으며, 명장들의 노하우를 짚어보고 최고의 브랜드와 함께해온 축구용품의 변천사도 한눈에 볼 수 있다. 박물관을 나서는 사람들은 십중팔구 다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나 시티의 경기 일정을 확인하게 될 정도로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알차고 유니크한 전시관이다.

축구사에 한 획을 긋는 명장 펩 과르디올라가 부임하며 EPL(English Premier League)의 최강자로 떠올라 군림 중인 맨체스터 시티는 맨체스터를 연고지로 하는 맨유의 라이벌로, 맨체스터 시내를 가운데 놓고 올드 트래퍼드의 반대편에 구장 에티하드 스타디움을 두고 활약 중이다. 시즌 중 두세 번 맞붙는 이 두 팀의 ‘맨체스터 더비’는 열정 넘치는 맨체스터 사람들의 에너지를 최고조로 끌어올리는 축제. 운이 좋아 여행 중 더비를 볼 수 있다면 무리해서라도 표를 구해보자. 수만 명이 “골!”을 외치며 열광하는 90분간의 아드레날린 파티에 참여하는 기회는 흔치 않다.

현대 건축의 아름다움이 빛나는 항구

맨체스터를 여행하는 날들 중 하루는 온전히 인공 항구 샐퍼드 키(Salford Quays)에서 보내자. 항구 한쪽에는 올드 트래퍼드와 전쟁박물관(Imperial War Museum North)이, 시내와 가까운 반대편에는 황홀한 부둣가 경관을 이루는 로우리 극장(The Lowry)과 비즈니스 센터인 미디어시티(MediaCityUK)가 있다. 맨체스터에서 나고 자란 화가 L. S. 로우리의 이름을 따고 2000년 엘리자베스 여왕이 개관한 로우리 극장과 BBC 등 여러 방송국이 밀집해 있어 한국의 상암동이 떠오르는 미디어시티와 함께 전쟁박물관은 항구 부근에 세련되고 도시적인 느낌을 조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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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여왕이 화가 로우리의 이름을 따서 개관한 로우리 극장.ⓒShutterstock_Alastair Wallace / 단순한 전쟁 소개가 아닌 전쟁이 개인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주제로 해 더욱 무게감이 느껴지는 전쟁박물관

한국에도 몇몇 작품을 세워놓은 세계적인 건축가 다니엘 리베스킨트(Daniel Libeskind)가 설계한 전쟁박물관은 맨체스터 스카이라인의 큰 부분을 책임지는 아름다운 현대 건축물이다. 깨어져 조각난 지구본을 모티브로 한 전쟁박물관은 외관에서부터 느껴지는 위엄과 무게감이 상당하다. 단순히 세계의 크고 작은 전쟁의 역사를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전쟁이 개인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주제로 한다는 점이 특별하다. 물론, 한국전쟁에 대한 전시도 마련되어 있다. 박지성 선수만을 위한 응원가도 불러주었던 맨체스터 사람들은 한국이 동북아시아의 분단국가 그 이상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지만,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가 머지않은 미래에 평화로운 결실을 맺은 나라로 소개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한 것은 어쩔 수 없다.



맨체스터의 미래를 기대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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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서 가장 오래된 도서관인 체담 음악대학 도서관

맨체스터에는 영국에서 가장 오래된 무료 공공 도서관인 체담 음악대학 도서관이 있다. 영화 <해리 포터> 속 도서관의 배경이기도 한 이 도서관의 존재는 그 자체로 맨체스터라는 도시의 저력을 짐작케 한다. 맨체스터의 미래가 밝은 또 하나의 이유는 바로 케임브리지와 옥스퍼드 대학의 뒤를 이어 영국에서 세 번째로 뛰어난 연구 역량을 자랑하는 맨체스터 대학이 있기 때문이다. 조지프 스티글리츠를 비롯한 노벨상 수상자들이 거쳐 간 맨체스터 대학에서는 오늘도 석학들이 도시의 영광을 재현하고 인류의 발전에 다시금 이바지하기 위해 땀을 흘리고 있다. 누가 훗날의 스티글리츠가 될지를 단박에 찾아낼 수는 없지만 대학교가 지닌 가치를 공적으로, 대중적으로 치환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캠퍼스 안의 맨체스터 박물관을 찾아 짐작해볼 수는 있다. 맨체스터 출신의 제조업자 겸 수집가인 존 리 필립스(John Leigh Philips)의 컬렉션으로 시작된 이 박물관은 ‘2016~2026 10개년 프로젝트’를 통해 맨체스터를 영국에서 가장 문화적으로 민주적인 도시로 만드는 시의 목표에 일조하고 있다. 연령과 성별 등 신분을 초월해 접근하는 지속 가능한 전시와 교육 과정 개발, 물리적인 제한에 영향을 받지 않는 전시 주최 등을 추진 중이다. 이 박물관에서 가장 유명한 전시품은 2013년부터 스스로 움직이기 시작해 세계의 이목을 끌어온 이집트 오시리스상인데, 아직까지도 조각상이 회전하는 이유를 정확하게는 밝힐 수 없어 매일 큐레이터가 박물관 오픈과 함께 반 바퀴 돌아가 있는 오시리스상을 다시 앞으로 돌려놓는다고 한다.







심지 굳은 이 도시의 봄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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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체스터 시민들이 사랑하는 피카디리 가든에서 오후 햇살을 즐기고 있는 시민들./ⓒShutterstock_Moomusician
작년 봄, 팝스타 아리아나 그란데의 맨체스터 아레나 콘서트 중 폭탄 테러 사건이 있었다. 22명이 숨지고 116명이 다친, 2005년 런던 지하철 테러 사건 이후 최악의 영국 테러 사건으로 기록된 비극이었다. 문화와 예술을 사랑해 마지않는 맨체스터 시민들은 분노하고 슬퍼했다. 애도와 추모는 오랜 시간이 지나도 계속될 것이지만, 금세 다시 일어나 추모 공연을 열고 ISIS 테러 집단에 함께 대항하는 맨체스터 시민들을 향해 전 세계가 응원의 박수를 보냈다. 세월의 풍파와 빠르고 느린 변화에 적응하고 대처하며 성장해온 이 도시의 진정한 유산은 산재한 박물관과 스타디움, 학교와 건축물보다도 굳은 심지를 지닌 사람들, 그들의 영혼이 아닐까.

· 글 : 맹지나(여행 작가, 작사가. '이탈리아 카페 여행', '크리스마스 인 유럽', '그리스 블루스', '그 여름의 포지타노', '바르셀로나 홀리데이',  '프라하 홀리데이', '포르투갈 홀리데이' 등 다수의 유럽 관련 여행 서적의 저자.)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 칼튼 힐에서 바라본 에든버러의 야경.

↑ 에든버러의 상징인 에든버러 성.

↑ 스코틀랜드 독립 영웅 윌리엄 월레스로 분장한 배우.

↑ 칼튼 힐의 저녁 무렵.

에든버러의 첫 인상은 귀족 가문의 조용한 숙녀와 마주하는 것 같았다. 도시 곳곳에 들어선 조지안 스타일의 건물들과 오래된 벽돌길, 잘 다듬어진 공원과 우뚝 솟은 성은 기품이라는 말을 떠올리게 한다. 고풍스러운 건물들이 저녁 햇살에 붉게 물들 때 바람에 실린 백파이프 소리가 아련하게 번져왔다.

스코틀랜드인의 자존심, 에든버러 성

에든버러는 영국이지만 영국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이다. 도시의 풍경도 다르지만 언어도 확연히 다르다. 사투리가 굉장히 심하다. 사람들은 영어를 말하지만 마치 독일어처럼 들린다. 파운드화를 사용하지만 화폐 디자인도 잉글랜드 지역과 다르다.

올드타운 서쪽의 바위산에 자리한 에든버러 성(Edinburgh Castle)은 스코틀랜드 사람들의 자부심을 상징한다. 6세기에 처음 지어진 에든버러 성은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격렬한 투쟁사를 보여주는 현장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성의 대부분은 군사 박물관으로 이용되고 있다. 수많은 전시품 중 제임스 2세의 손자 찰스 에드워드가 일으킨 1746년의 컬로든 모어 전투에서 사용된 군기 조각도 있다. 스코틀랜드인들이 국가의 자랑스러운 유물처럼 다루는 물건이다. 또한 16세기에 만들어진 스코틀랜드 전통의 왕관, 칼, 지휘봉 등이 전시돼 있다.

많은 작가가 배출된 에든버러에서 가장 사랑받는 작가는 소설 '아이반호'로 유명한 월트 스콧 경이다. 에든버러 시내 한가운데에 우뚝 서 있는 스콧 기념탑은 스콧 경의 죽음을 애도하기 만들어진 것이다.

에든버러의 정수를 품은 로열마일

에든버러의 가을을 즐기는 좋은 방법 중 하나는 로열마일(Royal Mile)을 천천히 거니는 것이다. 여기만 거닐어도 에든버러는 다 봤다고 할 수 있을 정도다. 올드타운에 있는 로열마일은 에든버러 성과 홀리루드하우스 궁전 사이에 뻗은 길이 1.6㎞의 자갈길이다. 지도에는 보통 하이 스트리트(High Street)라고 표시돼 있다. 과거에는 귀족들만 걸을 수 있었기 때문에 로열마일이라 부른다. 이곳에는 전통 토산품점, 오래된 펍, 시립박물관, 천문관측대, 스코틀랜드 각지의 위스키를 한자리에 모은 '스코치 위스키 헤리티지 센터' 같은 볼거리가 늘어서 있다.

평범한 백성들은 로열마일 대신 클로스(close)라는 작은 오솔길로 다녀야 했다. 클로스 중 가장 유명한 곳은 브로디스(Brodie's) 클로스다. 낮에는 목수와 시의원으로, 밤에는 강도와 도둑으로 살다가 단두대에서 생을 마감한 윌리엄 브로디의 이름을 따서 붙여졌다. 그의 이중적인 캐릭터는 영국 소설가 R.L.B.스티븐슨에게 영감을 줬고, 소설 '지킬박사와 하이드'로 쓰여졌다.

로열마일 끝의 홀리루드하우스 궁전(Palace of Holyroodhouse)은 영국 왕실이 에든버러를 방문할 때 사용하는 궁전이다. 바로크 양식으로 호화롭게 지은 궁전은 과거 부유했던 스코틀랜드의 영광을 그대로 보여준다. 여왕의 식당에서는 16~17세기의 찻잔과 수저 장식물 등을 볼 수 있다.

낭만적인 에든버러의 야경, 칼튼 힐

가을에 잠긴 에든버러를 보고 싶다면 프린스 스트리트 동쪽 끝의 칼튼 힐(Calton Hill)로 가면 된다. 해발 105m 높이지만 대부분 평지인 에든버러에서는 높은 언덕과 같다. 칼튼 힐에는 에든버러의 역사를 보여주는 기념비가 가득하다. 칼튼 힐에서 가장 크고 눈에 띄는 건물은 국립 기념비다. 나폴레옹 전쟁에서 전사한 용감한 스코틀랜드 민족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졌다. 에든버러 최고의 건축가 중 한 명인 윌리엄 헨리 플레이페어가 아테네의 신전을 본떠 설계한 것으로, 1822년 공사에 들어갔지만 재정상의 문제로 완공되지 못했다. 저녁 무렵 칼튼 힐에 올라가면 넬슨 기념비, 스콧 기념탑, 에든버러 시내를 붉게 물들인 노을을 볼 수 있다.

여행 정보

한국에서 에든버러까지 가는 직항이 없기 때문에 런던을 거쳐 가는 법이 제일 간단하다. 이지젯, 라이언에어 등 저가 항공편을 이용하면 싸다. 에딘버러공항은 시내 북서쪽으로 약 16㎞ 떨어져 있다.

런던 빅토리아 코치 스테이션에서 에든버러까지 매일 내셔널 익스프레스 버스가 운행된다. 9~12시간 정도 걸린다.

런던 킹스 크로스 역에서는 매일 20회 정도 에든버러까지 가는 기차가 운행된다. 4시간30분~5시간 정도 걸린다.

  1. Favicon of https://travelbible.tistory.com 오리궁둥이 2014.10.07 21:52 신고

    가고싶다 나도 ㅠ

미국의 경제전문지 ‘포브스’는 구단 가치가 높은 축구단 20팀을 매년 선정한다. 세계의 수많은 축구팀 중에서 올해까지 7년 연속 1위 자리에 오른 축구단이 있다. 바로 우리나라의 박지성 선수가 맹활약 했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다.


세계 최초의 공업도시, 록밴드 오아시스, 더 스미스와 자동차 브랜드 롤스로이스의 고향인 맨체스터는 현재 영국에서 가장 활기가 넘치는 도시 중 한 곳이 되었다. 자! 이제 맨체스터로 축구여행을 떠나보자.

경기장 내부. 좋은 잔디를 위한 관리가 한창이다.



세계인의 명소가 된 ‘올드 트래퍼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의 홈구장인 올드 트래퍼드(올드 트래포드)까지 가는 길은 보통 기차와 우리나라의 지하철 격인 메트로 링크 중 선택할 수 있다. 피카딜리역은 모든 기차와 버스가 오가는 교통의 중심지다. 이 도시의 주요 교통수단 중 하나인 메트로 링크를 선택해 출발한다.

피카딜리역에서 경기장이 있는 올드 트래퍼드 역까지는 일곱 정거장. 그동안 소요되는 약 15분 동안은 흥분한 마음이 가시질 않는다. 세계 최고의 축구구장 중 하나인 올드 트래퍼드 경기장을 방문하는 길인데 이 어찌 흥분을 감출 수 있으랴! 역에서 내려서 경기장까지 가는 길은 생각보다 한산하다. 비교적 습윤한 날씨로 조금 쌀쌀했지만, 오히려 영국만의 독특한 멋이 느껴졌다. 로마시대로까지 거슬러갈 정도로 오랜 역사를 지닌 맨체스터는 지금도 도시 곳곳에 역사의 향기를 내재하고 있다.

지금은 세계적인 축구구단을 보유한 도시로 유명하지만, 그전에도 맨체스터는 영국의 가장 전통적인 여행지 중 하나였다. ‘북부의 수도’로 일컬어지는 맨체스터는 1990년대의 IRA 폭탄 테러의 아픔이 있었지만, 굳건히 일어서 오늘날엔 영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도시 중 한 곳이 되었다.

올드 트래퍼드 경기장 입구. 웅장한 크기를 자랑한다.


드디어 마주한 올드 트래퍼드의 거대한 위용에 말을 잊는다. 곁에 있던 사람들은 사진을 찍는 데 여념이 없다. 시즌 티켓을 구하기는 이미 하늘의 별따기(?) 보다 어렵지만, 그렇다고 아쉬워만 할 필요가 없다. 맨유에서는 팬들을 위해 맨체스터 경기장 투어를 마련했다. 경기장 투어는 보통 20명 이하의 소그룹으로 진행된다. 팬으로서는 평소엔 들어가 보지 못하는 선수들의 라운지도 들어가 보고, 다양한 설명도 들을 수 있는 더없이 소중한 기회다.


맨 처음 목적지는 역시 올드 트래퍼드 경기장. 경기장에 들어서면 초록색 잔디와 맨유를 상징하는 강력한 빨간색 의자가 선명한 대비를 이루며 강렬한 인상을 받는다. 경기장 의자에 앉아 가이드의 설명을 들은 후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뮌헨 참사에 대한 아픈 이야기를 간직한 뮌헨 터널이다. 뮌헨 참사는 1958년 2월 6일, UEFA 챔피언스 리그(유러피언컵) 경기를 치른 맨유 선수들이 탑승한 비행기가 독일 뮌헨 공항에서 이륙 도중 전복돼 선수 8명을 포함, 취재진, 팀 관계자 등 23명이 숨진 사건이다. 해마다 이때를 기리는 기념행사를 하고 있다. 벽면에 있는 사건기사나 현장 사진들을 바라보며 잠시 그분들을 기리는 기도를 드려본다.


다음으로 경기장 투어가 아니면 들어가 보기 어려운 구장 내부를 방문한다. 이곳에선 맨유 선수들이 실제로 이용하는 라운지를 들어가 볼 수 있다. 벽면에는 맨유를 거쳐 간 수많은 선수들의 이름이 빼곡히 적혀 있다. 당연하게도 우리나라 박지성 선수의 이름이 자랑스럽게 새겨져 있다. 이제는 실제 선수가 된 기분으로 선수 대기실에 들어선다. 감독과 코치들이 경기 전 작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거나 선수들이 휴식을 취하기도 하는 곳이다. 맨유 선수들의 유니폼이 걸려 있어 자연스레 몸은 달아오르고 흥분한 마음 가실 길이 없다.

올드 트래퍼드의 경기 관람석. 앉으면 착석감이 매우 뛰어나다.

박지성(13) 선수의 유니폼.


선수 대기실에서 경기 전 준비를 마쳤으니 이제는 그라운드를 누비러 나가야 하지 않은가. 실제로 선수들이 경기 시작 전 입장하는 통로로 걸어간다. 최대한 이 느낌을 만끽하기 위해 조금은 느리게 걸어보기도 하고, 선수처럼 손발을 돌리며 몸을 풀어보기도 한다. 자! 이제는 경기장에 들어설 차례. 어느새 양쪽에서 올드 트래퍼드 입장 음악이 흘러나온다. 이곳 맨체스터에서 올드 트래퍼드는 이미 경기장을 넘어서 하나의 문화가 된 듯 보인다.



맨체스터의 또 다른 매력 속으로

경기장 투어를 마쳤다고 해서, 맨체스터를 다녀왔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큰 오산이다. 맨체스터의 매력은 올드 트래퍼드 만이 아니다. 맨체스터 시내 중심에 위치한 피카딜리 공원은 주말에는 시장이 열리기도 하며, 도시의 크고 작은 주요 행사가 많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나 맨체스터 시티 팀의 경기가 있을 때면 원정팀의 응원단들이 아침 일찍부터 모여 북적북적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곳이기도 하다.


공원 앞으로 조금 걸어가면 메트로 링크 정류장 건너편 건물 1층에 관광안내센터가 위치해 있다. 관광정보에 대한 지식을 얻을 수도 있으며 도시의 안내지도를 무료로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맨체스터 관광을 위해서는 빠뜨릴 수 없는 시작점 역할을 한다. 또한 공원 반대 방향으로 두 블록 정도만 걸어 들어가면 차이나타운이 있다. 들어서자마자 중국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이곳에서는 태국,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식당뿐 아니라 맛 좋은 아시아 음식을 맛볼 수 있다.


피카딜리 가든과 함께 또 하나의 도시 중심가를 이루는 곳은 대형몰인 ‘안데일(Arndale)’이 위치한 지역이다. 이 두 곳은 모든 버스가 오가고, 시내 노면전차인 트램이 모두 거쳐 가는 교통의 중심지라고도 할 수 있다. 맨체스터 쇼핑의 중심지인 이곳 안데일의 마켓스트리트는 정말 다양한 상점들이 즐비해 있는 쇼핑 천국이다. 한적해 보였던 도시의 모습과는 달리 이곳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쇼핑을 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상징하는 붉은색 간판들이 가득하다.

타운 홀은 신고딕양식이 돋보이는 시청 건물이다.


고즈넉한 걸음이 이어질 찰나 눈에 확 띄는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바로 1887년에 건설된 맨체스터의 시청 건물인 타운 홀이다. 고딕양식인 이 건물의 중앙탑은 높이가 85m에 이르며, 매 시각 23개의 종을 울린다고 한다. 특히 내부 천장에 있는 장식은 더없이 고풍스럽다.


타운 홀의 매력에 빠져 시간을 빼앗겨 버린 탓일까. 해는 이미 저물고 있어 어둑어둑해졌다. 서둘러 택시를 잡아 세우고 호텔로 발걸음을 돌린다. 택시 차창 밖으로 다양한 커플들이 보인다. 이 도시 어딘가에 게이와 레즈비언 공동체를 위한 게이 마을도 있다고 들었던 기억이 난다. 맨체스터에서 만났던 사람들을 하나하나 떠올리며 웃음 짓다보니 어느새 호텔에 도착했다.


맨체스터는 역사적인 산업혁명의 중심 도시 중 하나다. 그에 걸맞게 화려한 겉모습보다는 실용적인 느낌이 물씬 풍긴다. 하지만 ‘평범한 것이 진리’라는 말이 있듯이, 그 평범함 속에는 결코 무시 못 할 영국인들만의 오랜 세월 동안 이어온 강인함이 숨겨 있다. 부슬비가 내리고 있는 날씨 속에서도 이 도시에서는 사람들의 끊임없는 발걸음들로 분주하다.




가는 길


핀에어가 헬싱키를 경유한 서울에서 맨체스터까지의 항공편을 운항한다. 런던에서는 약 420킬로미터 떨어져 있기 때문에 런던에서 출발한다면 기차를 타는 게 좋다. 런던 유스턴(Euston)역에서 맨체스터 피카딜리 역까지 2시간 10분 정도 걸리며, 오전 6시 20분부터 오후 11시 30분까지 기차가 있다.

조금 더 많은 것을 보기 위해 조금 더 멀리, 스코틀랜드로 떠났다. 얼마 되지 않아 그곳의 모든 것에 흠뻑 취해 주문처럼 외쳤다. 슬란지바!

features editor KIM YOUNG JAE여행지에서 느긋함은 사치. 눈 뜨면 나가고, 잠자기 전까지 부지런히 발품을 판다. 그래야 남는 여행이지. 밤 11시가 돼야 하늘이 컴컴해지고 새벽 3시에 동이 트는 스코틀랜드야말로 이상적인 여행지!

런던 찍고, 에든버러로 데려다준 영국항공의 보잉 787 드림라이너. 비행 중 기체가 흔들릴 때마다 안절부절못하는데 이번 여행은 심신이 편안했다.

스코틀랜드에서 가장 유명한 도보 여행길 ‘웨스트 하이랜드 웨이’에는 소박한 품위를 지닌 전원 마을 드리멘(Drymen)이 있다.

스코틀랜드 위스키를 마실 땐 이렇게 외쳐라. 슬란지바!

하이랜드 지역의 글렌고인 증류소에서 제조 과정을 탐방하고 세상에 하나뿐인 나만의 위스키를 만들었다.

불멸의 전사 ‘하이랜더’처럼 세월의 풍파를 묵묵히 견뎌낸 에든버러 성은 스코틀랜드 역사의 산증인이다.

매킨토시가 설계한 글래스고 예술학교. 2년 전 화재로 인해 지금은 복구 작업 중이다.

영국 런던의 히드로공항. 인천공항에서 출발한 비행기의 승객들은 둘로 나뉘었다. 열에 여덟은 입국심사장으로, 나를 포함한 소수의 일행은 환승 구역으로. 런던은 내게 종착지가 아니었다. 이곳을 경유해 스코틀랜드의 수도 에든버러로 가는 길. 비행기로 1시간을 가면 에든버러다. 가깝다면 가깝지만, 마음의 거리는 다르다. 런던을 끼고 이야기하면 에든버러는 쉽게 닿을 수 없는 먼 곳처럼 느껴진다. ‘런던 다녀왔어’ ‘스코틀랜드 다녀왔어’ 어느 한쪽의 반응이 큰 것도 그런 이유다. 스코틀랜드란 단어에는 어떤 동경이 담겨 있다. 그걸 좇아 좀 더 먼 곳으로 떠났다. 5월의 끝자락, 에든버러에는 삭풍이 날을 세웠다. 가끔 햇볕을 장전하기도 했지만 찬 공기에 금방 마모됐다. 구시가지인 로열 마일(Royal Mile)을 걸었다. 이방인에게 공기는 더 차갑게 다가왔다. 수세기 전의 이맘때도 그랬겠지. 과거에는 왕족과 귀족만이 다니던 길이었다. 로열 마일은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에든버러 내에서도 수세기의 역사가 옹골게 버티고 서 있다. 어디를 걷든 역사의 편린들이 발등에 쌓였다. 나이를 세기에도 고단해 보일 만큼 오래된 건물들은 여전히 당당하고, 기품을 잃지 않았다. 나이테를 더할수록 아름다워지는 나무들처럼. 한 호흡으로 긴 숨을 쉬고 있는 에든버러에선 낡은 것을 떠나 보내는 현대 도시의 허세가 유치해 보였다. 삶이란 최선을 다해 늙어야 비로소 완성된다고, 이 도시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에든버러에 온 사람들은 성에 오른다. 아니, 역사를 오른다. 깎아지른 화산암 절벽 위의 에든버러 성. 왕실의 거처이자 요새였던 성의 축조 과정에는 세월이 겹겹이 쌓여 있다.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는 티격태격하길 시계추처럼 반복했다. 그때마다 에든버러 성은 부러지고 박살 난 상처를 붙이며 억세게 버텼다. 적군이 아니라 쉬지 않고 폭력을 배설해 온 인간의 본성을 묵묵히 견뎌야 했다. 에딘버러 성 꼭대기에 오르자 시가지가 넓고 편안하게 내려다보였다. 성이 간직한 긴 사연을 듣고 난 직후라 아래 세상은 더 평화롭고 살 만해 보였다. 과거의 슬픔과 비명은 수만 번의 밤과 함께 다 씻겨진 상태였다. 저 아래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은 어떨까. 괜한 낭만에 빠진 나 같은 여행자처럼 그들도 굳센 성을 올려보며 ‘끝까지 살아보자’라고 다짐할까.

에든버러에서 이틀을 보내고 도시를 옮겼다. 정주와는 거리가 먼 여행자에게 변덕스러움은 무죄다. 차로 1시간 거리에 스코틀랜드에서 가장 큰 도시인 글래스고가 있었다. 사람도 많고 현대적인 건축물도 시야에 자주 걸렸다. 글래스고의 역사는 에든버러와 다른 의미로 치열했다. 무역업으로 기반을 닦은 이곳은 산업혁명과 맞물려 번성기를 누렸다. 철강과 조선업의 요충지였고 돈과 사람이 넘쳐났다. 인류 역사에서 영원한 상승 곡선은 없다. 이후 경기침체의 영향으로 도시는 생기와 풍요를 잃었다. 하지만 글래스고는 흐릿한 연기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스코틀랜드의 산업도시는 우아한 변신을 도모했다. 예술과 문화로 전공을 바꿔 여전히 36.5도의 뜨거운 생동을 유지하고 있다. 침체를 극복하고 불멸의 시를 쓴 글래스고의 거리는 색채미가 선연했다. 미술관과 박물관, 갤러리들이 산재해 있었다. 그 가운데 붉은 벽돌로 지은 켈빈그로브 아트 갤러리 앤 뮤지엄(Kelvingrove Art Gallery and Museum)을 찾았다. 글래스고를 대표하는 미술관 겸 박물관으로 중세미술 작품부터 자연사, 고고학 등 다양한 전시가 이뤄지고 있었다. 바쁜 걸음을 멈추고 오래 본 작품은 살바도르 달리의 1951년 작 ‘십자가의 성 요한의 그리스도’. 미술관에서 직접 작가에게 구입한 작품이라고 했다. 초현실주의자가 그린 종교화라니. 달리의 작품을 스코틀랜드에서 보게 될 줄이야. 어느 쪽이 됐든 오래 기억될 사건이었다. 그래서 왠지 억울했다. 훗날 글래스고 여행을 추억할 때 달리의 긴 콧수염이 먼저 떠오르는 건 아닐까 하고.

찰스 레니 매킨토시(Charles Rennie Mackintosh)의 발자취를 찾아 나섰다. 매킨토시는 스코틀랜드의 걸출한 건축가 겸 디자이너이다. 20세기 초반, 천편일률적인 건축디자인에 식물 모티프의 유려한 곡선 양식을 적용해 화려한 족적을 남겼다. 그는 글래스고 토박이였다. 이곳에서 나고 자라 글래스고 미술대학에 다녔다. 1909년에는 글래스고 예술학교를 설계했다. 현대건축사를 논할 때마다 빠지지 않는 위대한 건축물을 고향에 선물했다. 이러이러해서 매킨토시가 살바도르 달리보다 글래스고의 추억에 적합하다는 얘기다. 매킨토시는 현존하지 않지만 도시 곳곳에 그의 업적과 천재성이 단단하게 뿌리 박고 있다. 이를 알현하기 위해 전 세계 건축학도들이 ‘매킨토시의 도시’를 찾는다. 열이면 열, 그들 모두가 알현하는 윌로 티룸(Willow Tearoom)을 방문했다. 약 100년 전 매킨토시가 디자인한 찻집으로 가구며 인테리어며 매킨토시의 인장들이 그대로 남아 있다. 마치 그의 비전 속으로 들어온 듯했다. 주문한 애프터눈 티가 나왔을 때 나도 모르게 외쳤다. 

슬란지바(Sla′inte Mhath)!

슬란지바는 스코틀랜드 언어로 ‘건강을 위하여’란 뜻이다. 스코틀랜드 사람들이 많이 쓰는 말 중 하나다. 이 말이 거침없이 돌고 도는 곳은 펍이다. 사람들은 데시벨을 높여 소리친다. 슬란지바! 그러니까 이건 건배사다. 스코틀랜드에 와서 가장 먼저 배운 말도, 가장 많이 쓴 말도 ‘슬란지바’였다. 에든버러 사람들만 아는 맛집 ‘그레인 스토어(Grain Store)’에서 풍요로운 첫 식사를 할 때부터, 미식 가이드와 함께 에든버러 먹방 투어를 할 때도, 드리멘(Drymen)이란 작은 마을에서 발견한 스코틀랜드에서 가장 오래된 펍 ‘클라첸 인(The Clachan Inn)’에서도, 영드 <다운튼 애비>의 촬영지로 유명한 인바레이어 캐슬을 구경하고 들린 시푸드 레스토랑에서도, 하이랜드 지역에 있는 싱글 몰트 위스키를 생산하는 글렌고인 증류소에서 투어를 하면서도 와인이든 위스키든 맥주든 술이 빠지지 않았다. 삼시세끼 동안 ‘슬란지바’란 말이 입에 쫙쫙 붙다 보니 술이 아닌 뭔가를 마실 때도 그냥 슬란지바. 어쩌면 이번 여정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경쾌하고 순조로웠던 건 약간의 취기가 나를 도취시켰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술과 사랑은 눈으로 들어오는 것들을 더 아름답게 만드는 힘을 갖고 있으니까.

물론 스코틀랜드의 서정성은 그런 것 없이도 충분히 눈부셨다. 에든버러와 글래스고의 공통점은 도심을 빠져나오면 금세 ‘산 넘어 산’ 풍경이 펼쳐진다는 것. 그 길을 따라가다 만난 로몬드 호수의 전원 마을인 러스(Luss)는 아름다운 적막함이 감돌았고, 화평한 것이 무엇인지 보여줬다. 호수를 마주한 언덕 위 포트넬란 농장(Portnellan Farm)에선 광막한 초원에서 방향 감각을 상실해 봤고, 사람 좋은 농장주와 보트 투어를 하는 동안에는 잘 익은 바람을 어루만졌다. 다른 곳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목가적 풍경에 무방비 상태가 되자 스코틀랜드의 서정은 가슴에 스며들어 여운이 됐다. 여정이 여운이 되는 곳, 좋은 여행은 그런 마법 같은 순간을 선물한다.

editor 김영재

photo COURTESY OF british airways,VISITSCOTLAND

digital designer 오주희

‘유럽에서 현지인이 되어 살아보기’를 목표로, 겁 없이 비행기에 몸을 실었던 부부. 그 나라의 진짜를 경험하기 위해 그들이 선택한 것은, 이름마저 낯선 ‘우프(WWOOF)’! 8개월 동안 8개국을 누비며 느꼈던, 부부의 우여곡절 시골생활을 이제 독자들과 함께 나누고자 한다. 그들이 전해주는 생생한 이야기에 매달 귀 기울여보자.



+ 가자! 호빗 마을로!

“일주일 뒤면 우리도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호빗 같은 집을 지을 수 있겠지?”

집짓기 워크숍에 참여하기로 한 우리는 설레는 마음으로 영국 웨일스의 Clunderwen역에 도착했다. 정말로 손꼽아 기다리던 순간이다. 우프로 농장 경험을 해 보는 것도 좋지만, 생태건축, 목공, 수공예 등 생활에 도움이 될 만한 기술을 하나쯤 배워가야지 생각했었다. 흙과 나무집에서 살고 싶다는 나의 바람을 전했을 때 미동조차 없었던 영글은 몇 년 전 우연히 인터넷에 ‘호빗 하우스’를 검색했다가 그런 집을 만드는 사람이 있어 호기심에 북마크를 해 놓았다고 한다. 마침 여름에 워크숍이 예정되어 있었고, 선착순 10명이었던 코스에 우린 운 좋게 참여할 수 있었다. 


호기심을 자극한 호빗 하우스 이미지(출처 : www.simondale.net)   /   우리의 커뮤니티 공간


호스트인 ‘자스민’과 ‘사이먼’ 부부가 사는 곳은 ‘Lammas village’라는 에코빌리지이다. 영화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호빗 마을 샤이어 같은 풍경이 펼쳐질 것이라는 설렘을 안고 픽업을 나온 ‘마씨’를 만나 강원도 산골 같은 좁은 길을 따라 30분을 넘게 달리니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했다.

영화 같은 풍경이 펼쳐질 것이라 기대했건만 마을은커녕 집 한 채도 보이지를 않는다. 군데군데 캐러밴이 몇 개 있을 뿐. 샤이어를 기대했는데 실망이다. 알고 보니 이 마을에는 고작 9가구만 들어와 있고, 땅이 넓어서 그마저도 흩어져 있는 것이었다. 어쨌든 그저 바람뿐 일 거라 생각했던 경험인데 이렇게 인연이 될 줄이야. 워크숍의 호스트인 자스민은 우리의 메일을 받고는 매우 걱정스러운 답변을 보냈었다.

‘정말 멀리서 오는 것 같은데,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된다면 물론 환영한다. 단, 캠핑장은 매우 기본적(basic)인 수준이고, 음식도 매우 심플하다, 그리고 영국 문화가 한국과는 매우 다르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깨끗한 샘물이 있고, 기본적인 샤워가 가능하다. 날씨는 변화무쌍해서 해도 나고 비도 오고, 춥고 덥고 그렇다.’

우리가 이 코스 때문에 한국에서 오는 거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문화적인 것, 배우는 것에 대한 걱정은 없었지만 일주일간의 캠핑 생활이 걱정이 되긴 한다. 스페인에서 ‘basic’ 이라는 것에 호되게 경험을 했었던지라 나름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다. 이탈리아에서부터 들고 온 단돈 24유로짜리 텐트로 머리끝까지 꽉 차오른 배낭 양옆에 은빛캠핑매트를 말아 끼워놓으니, 뒤에서 보면 사람은 안 보이고 마치 로봇 같았다. 


우리가 텐트 치고 7일을 보낼 이곳은 정말 basic 중의 basic이다. 경사진 땅이라 텐트를 칠만한 평지도 마땅치 않고, 작은 임시 건물에서 모두가 함께 먹고 씻고 쉬고 다 해야 한다. 수도꼭지 한쪽은 지하수, 한쪽은 모아둔 빗물이 나오는데, 지하수는 음식을 할 때만 사용하는 것이 규칙이다. 하여간 지하수건 빗물이건 잘 나오지도 않는다는 것이 함정. 샤워는 빗물을 받아서 한참을 끓이거나 팩에 넣어 햇빛으로 데워서 사용해야 한다. 당연히 화장실도 재래식이다. 소변은 그냥 자연에서 해결했다. 더 심각한 것은 음식이다. 뭐가 있다고 해서 아무것도 준비해 오지를 않았는데, 음식이 들어 있다는 서랍을 열어보니 다 썩어가는 양파와 비트, 감자 한 두 개가 끝이다. 그 흔한 달걀도 없다. 지금 상태라면 고작 포리지(오트밀 죽)와 쌀, 카레 가루로 연명해야 한다. 아니 여기서 어떻게 일주일을 지내라고!!!

우리를 놀라게 한 것은 이곳에 봉사자들이 꽤 와 있다는 거다. 각자 텐트 또는 캐러밴을 가지고 와서 집을 짓는 것을 도우며 배우고 있다. 짧게는 몇 주일인데, 길게는 2~3년도 머문다고 한다. 이 열악한 환경에서 어찌 그리 오래도록 봉사를 할 수 있는지 우리로서는 정말 이해가 되지 않았다. 도대체 이 마을이 얼마나 대단한 곳이기에 사람들이 모여드는 걸까. 뭣도 모르고 온 우리는 대체 무슨 인연인 걸까.

첫날밤부터 비가 내리고 춥다. 폭이 120㎝인 텐트 안에 둘이 꼭 붙어 누워 타닥타닥 텐트 천장을 두드리는 빗소리가 제법 낭만스럽다 느끼며 밤잠을 청했다. 잠결에 배낭 안에서 주섬주섬 겉옷을 꺼내 덮었다. 새벽공기가 한겨울 날씨 마냥 으스스한 기운이 살을 파고든다. 지독한 영국 감기에 또 걸리면 큰일인데…….


+ 새로운 시선을 선물 받다

다음날 오후부터 코스가 시작되었다. 우리를 포함해 워크숍에 참여하는 봉사자 10명은 자스민네 집과 마을을 돌아보며 라마스빌리지 설명을 들었다. 자스민과 사이먼은 둘째를 임신했을 때(2009년) 이 마을에 들어왔다. 2003년에 지은 첫 번째 집도 첫째가 태어나고 지은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아이들이 커서도 살 수 있는 세 번째 집을 짓고 있는데, 우리는 그 일을 도우면서 워크숍에 참여하는 것이다. 아이가 태어나고 자람에 따라 집을 새로 짓는다니, 재미있는 삶이다. 자신이 짓고 있는 건물과 사는 집을 보여주며 설명해주는 기분은 어떨까. 그리고 그런 부모 밑에서 자랄 수 있는 아이들은 얼마나 행복할까. 우리도 언젠간 이런 삶을 살 수 있겠지? 

자스민과 사이먼은 아직 나이가 30대 후반으로 그리 많지 않다. 이런 집을 지을 수 있다는 예술성은 물론이거니와, 일찍부터 이런 새로운 삶을 선택한 용기와 의지가 대단하게 느껴진다.


비주얼 임팩트를 고려한 자스민의 집. 경사면을 이용한 반지하 공간으로, 정말 멀리서는 집이 있는지 알 수가 없다. 군용 벙커라고 해도 믿겠다.

집 둘레에 유리온실을 만들어 정원, 빨래건조, 야외목욕탕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한다.


이 마을이 특별했던 것은 영국에서 계획허가(Planning permission)를 받아 새롭게 만들어진 최초의 에코빌리지라는 것이다. 땅을 기반으로 환경에 영향을 최대한 미치지 않고(Low-impact) 살아가는 대안적 모델로 허가를 받음으로써 이 분야에 대한 시금석이 되었다. 건물들은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자연재료로 지어지고, 재생 가능한 에너지를 사용한다. 자스민 부부의 집 역시 뒷산에서 베어온 나무와 주변의 흙을 파서 지어진 것이다. 창문은 유리공장에서 남은 자투리를 공짜로 얻어 와서 만들었다.

마을 중앙에 있는 커뮤니티 허브 말고 공용공간은 없다. 공동으로 어떤 사업을 한다든지 그런 건 없고 각자가 생업을 가지고 있다. 지금까지 공동체를 떠올렸을 때는 꼭 뭔가를 같이 해야 한다고 여겼었는데, 그건 정말 틀에 박힌 생각이었다.


새로 짓는 중인 집의 그림. 아이들이 자신의 방을 직접 디자인하였다.

마을의 유일한 공용 공간인 커뮤니티 허브


물론 허가를 받는 것에는 정말 힘든 과정이 많았다고 한다. 표준을 따르지 않는 형태의 건축물을 짓는 데다가, 허가를 받으려면 마을의 운영에 대한 현실적인, 자세한 계획이 필요하다. 게다가 ‘Visual impact’라는 항목이 있어서 건물을 지을 때 멀리서 안 보이게 지어야 한다. 나무와 수풀을 울타리로 활용해 집을 잘 가려야만 한다. 허가를 받았다 해도 끝이 아니다. 계획대로 실행되고 있는지 5년 후에 점검을 나오기도 한다. 그리고 누구든 민원을 제기할 수 있는데, 방어를 못 한다면 건물을 허물어야 하는 경우까지 생긴다. 이 집도 소송을 당해서 몇 년 동안 씨름을 했단다.

워크숍이라 하여 ‘아마 풍부한 자료의 바다에서 헤엄칠 수 있을 거야, 우리 배낭은 더 무거워지겠지’라고 생각했는데, 웬걸! 강의실도, 페이퍼도, 영상자료도 내가 기대했던 것은 하나도 없다. 모든 걸 듣고 이해하고 말하고 싶은데, 잘 들리지도 않는 영어. 답답해서 죽을 지경이다. 게다가 집과 환경, 우리의 비전에 대해 생각해보고 이야기를 나누어야 하니 머릿속에 과부하가 걸린다.

워크숍의 주제는 ‘Living in the landscape’. 우리말로 번역하자면 ‘풍경 속에서 살아가기’이다. landscape는 단순히 풍경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의 생태계, 구조물, 환경 등의 요소도 모두 포함하는 것이다. 오전에는 ‘*Permaculture’의 원리와 디자인 방법을 배우고, 오후에는 밖으로 나가 집 짓는 일을 돕는다.

첫날의 주제는 랜드스케이프를 관찰하는 것이었다. 자스민은 간단히 네 가지 관찰 방법에 관해 설명을 하더니 텅 비어 있는 넓은 들판으로 우리를 데려간다.


*퍼머컬쳐(Permaculture)란? 

영속적이라는 뜻의 ‘permanent’와 농업을 뜻하는 ‘agriculture’의 합성어로 식량, 토양, 수자원, 에너지, 주거지 등 인간에게 필요한 자원을 공급하기 위한 시스템을 자연 생태계와 조화롭게 만드는 방법을 말한다. 다시 말해 환경, 생태, 농업을 하나로 통합하여 지속 가능한 인간의 삶을 지탱해주는 체계를 만드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황량한 벌판에서 무엇을 찾으라는 걸까

아날로그 수업은 정말 오랜만이다. 딱딱한 우리나라의 수업들과는 달리 초등학생들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정말 쉽고 재미있게 강의를 진행하는 자스민. 기초적인 원리만 알려주고 페이지를 채우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40분 동안 좀 전에 알려준 방법으로 여기를 관찰하세요. 먼저 10분은 직관적으로 첫인상이 어떤지, 경계를 걸어보며 어떤 느낌을 받는지 보세요. 그다음은 객관적인 시각에서 사실만을 보세요. 어떤 동식물이 있는지, 토양은 어떤지, 어떤 건물이 있는지요. 손끝의 바람을 느껴보세요. 그리고는 상상력을 동원하세요. 사람이 살기 전에는 어땠을지, 그 후는 어땠을지, 계절, 시간에 따라서는 어떻게 변할지 생각해보세요. 마지막은 주관적인 관점에서 살펴봅니다. 마음에 드는 장소를 찾으시고, 그곳에서 지속적으로 무언가를 해보세요. 가만히 누워있거나 앉아있거나 굴러다녀 보거나, 노래를 부르거나 무엇이든지요. 이 과정은 굉장히 중요해요. 저희도 집을 구상하면서 그곳에서 텐트를 치고 몇 달을 지내보았어요. 처음에는 아무 느낌이 없다가도 편안해지는 공간이 있는 반면, 그렇지 않은 곳도 있어요. 아무리 좋은 조건을 가졌더라도 개인적으로 좋은 느낌을 받지 못한다면 다른 곳을 찾든지 그 원인을 찾아 해결해야겠죠?”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이렇게 어떤 공간을 자세히 관찰해본 적이 있었던가? 이런 땅에 던져진 경험조차 별로 없었던지라 굉장히 당황스럽다. 우리는 여기서 40분 동안 뭘 해야 할까. 나름 천천히 관찰하고 생각하며 시간을 보냈지만, 도무지 보이는 것도 느껴지는 것도 별로 없다. 그저 바람이 많이 불고, 춥고, 이름 모를 풀들이 서너 가지 보인다는 것 밖에는. 상상력을 동원해 봐도 얼마 전 보았던 영화 ‘브레이브하트’의 전쟁 모습만 생각날 뿐이다.

40분이 지나 흩어져 있던 팀원들이 하나둘씩 모였다. 비가 오면 물이 어떻게 흘러갈지, 사람이 살았던 공간이 있는지, 이쪽과 저쪽의 식생은 어떻게 다른지. 역시나 우리가 생각지 못했던 많은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우리의 상상력과 시각에는 한계가 있는 걸까? 나름 자연을 가까이하려고 노력하며 살았었는데. 분명 어릴 때부터의 교육과 환경의 차이일 거라고 위로해본다.


오후에는 사이먼과 함께 집 짓는 작업에 돌입한다. 돌로 벽을 쌓는 일이 이렇게 어려울 줄이야.

우리에게 많은 영감을 준 거지 공주 박정미. 그녀는 지금도 여행 중이다.


다시 집으로 들어와서는 퍼머컬쳐 디자인의 첫 과정을 실습했다. 집을 구상할 때 가장 먼저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다. 랜드스케이프의 요소들과 집에 기본적으로 필요한 것들에 대한 것을 마인드맵으로 그려보았다. 굉장히 쉽고 단순한 작업이지만, 생각하느냐 하지 않느냐의 차이는 정말 큰 것이었다. 지금까지 물과 전기, 가스 등은 당연히 주어지는 것이라 여겼지 그것이 어디에서 올지 궁금해 본 적이 없다. 퍼머컬쳐 디자인의 핵심은 정말 아무것도 주어지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상태에서 어떻게 살아갈지를 생각해본다는 것이다. 외부에 의존하지 않고 주변 환경을 이용하여 물과 에너지를 얻는 방법을 찾아본다. 자연스럽게 우리에게 지금까지 주어졌던 모든 것들이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 생각해보게 된다. 상하수도, 전기, 가스 연결이 끊어져 버린다면 우리의 도시는 아스팔트와 시멘트로 뒤덮인 사막이나 마찬가지 아닐까.

이 마을에서는 식수로는 지하수를 사용하고, 그 외의 용도로는 빗물, 수로를 통해 내려오는 물을 사용한다. 전기는 소형 수력발전기와 태양광 발전으로 얻는다. 이런 곳에 10명의 워크숍 참여자가 왔으니, 당연히 물이며 전기가 남아날 리가 없다. 빗물이 동나서 씻을 수도, 설거지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며칠 동안 이어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하수 펌프가 작동하지 않아 식수도 없다. 결국은 언덕 아래의 물가로 내려가서 물을 길어오고, 연못에서 발가벗고 찬물로 몸을 씻어내야 했다. 춥고 불편했지만 자연 속에서 몸을 씻어내는 상쾌함을 잊을 수 없다. 마을 사람들은 전기 쓸 일이 거의 없으니까 오히려 불편함이 없다. 집 안에 전자제품이라고는 핸드폰밖에 없고, 전기드릴이나 집짓기에 필요한 장비를 사용할 때만 전기를 쓴다. 냉장고도 없다는 사실은 정말 충격이다. 아침으로 시리얼을 먹기 위해 우유를 사 왔지만 얼굴에 근심이 내려앉았다. 그때 봉사자 ‘맥스’가 우유를 들고 안절부절못하는 우리에게 천연냉장고가 있다며 나무가 우거진 곳으로 데려간다. 그곳엔 구덩이가 파여 있고 그 안에는 아이스박스가 들어 있었다. 나름 성능이 괜찮다. 우유를 묻어놓고 며칠을 먹었다.


# 거지 공주, 박정미

“안녕하세요!” 

저 멀리서 한국말이 들린다. 캠핑장에 도착했을 때 우리를 맞이해 준 건 뜻밖에도 한국 사람이었다. 당연히 여기에 온 한국인은 우리가 처음일 거로 생각했는데, 이런 곳까지 찾아오는 특이한 사람이 또 있을 줄이야. 영글과 동갑인 언니인데, 단단한 체구에 까무잡잡한 피부가 딱 봐도 보통내기가 아니다. 물론 놀라기는 그 언니도 마찬가지였다.

“작년 10월부터 ‘돈 없이 살아보기’라는 프로젝트를 하고 있어. 그래서 우프나 이런 생태공동체 같은 곳을 찾아다니면서 지내는 중이야. 여기서는 워크숍 참가비를 안내는 대신에 한 달 동안 일을 돕기로 했어.”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8개월 동안 우프를 통해 노동력을 제공하고 숙식해왔다고. 돈 없이도 어디까지 배움을 얻을 수 있을지 실험 중이고 그래서 라마스도 찾게 되었다고 했다. 전기 없이 산다는 사람은 봤어도 돈 없이 산다는 건 상상해 보지 못했다. 물론 무전여행을 하는 사람은 있지만, 여기는 물가가 비싸기로 유명한 영국이다. 게다가 1년 동안이라니. 호기심이 발동한 우리는 꼬치꼬치 궁금한 것들을 캐묻는다.

“이동은 어떻게 해? 우프를 하지 않을 때는 어떻게 먹고 자고?

“런던에서 자전거포에서 일을 해주고 거기에서 자전거를 조립해서 타고 다녀. 잠은 카우치 서핑이나, 자전거 여행자들끼리 서로 재워주는 커뮤니티를 통해 해결하고, 음식은 체인점 같은 곳에서 영업이 끝나면 밖에 버려놓는 것을 먹었어.”

“뭐! 도둑고양이도 아니고!”

잠은 그렇다 치고 먹는 걸 그렇게 해결한다는 건 충격적이다. 런던에서 빈집점거 운동(스쾃 : squat)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서 함께 지냈는데 그때 배웠다며, 이런 걸 ‘스킵다이빙’이라고 한단다. 멀쩡한 음식들을 버리는 것에 대해 반대하는 운동이기도 하다.

“돈이 없이 지내보니 저절로 친환경적으로 살게 돼.”

이전에는 전혀 환경에는 관심이 없었는데 이 프로젝트를 하면서 많은 것을 느끼고 있단다. 돈 없이 공주처럼 산다고 자기를 ‘거지 공주’라고 했고, 다른 봉사자들에겐 한국어 발음으로 ‘공주님’이라 부르라 했다. 뭔지도 모르고 다들 공주님이라 부르는데 들을 때마다 웃음보가 터진다. 오늘도 우리는 타인의 경험을 통해 배운다.  <다음 호에 계속…>


Soul Food Recipe 6.  

비트루트 리소토(Beetroot Risotto) 레시피

생소한 비트루트, ‘빨간 무’ 라고 생각하는 편이 상상에 도움이 된다. 주먹만 한 크기의 비트루트를 요리하면 도마와 칼은 물론 손가락까지 빨갛게 물든다. 쌀이 주식인 한국인인 우리가 라마스에서 살아남은 방법은 치즈와 비트를 넣어 만든 리소토! 맛도 색도 근사한 리소토를 소개한다.

준비할 것 (2인분 기준)  1~1.5개 비트루트, 야채스톡(육수) 500㎖, 올리브오일, 다진 마늘, 양파, 레드와인, 아보리오 쌀(Arborio rice), 소금, 후추, 파르메산 치즈, 바질 

* 야채스톡이 없다면 양파, 대파, 멸치, 각종 야채를 넣어 육수를 만들어 사용하자.

* 리소토용 아보리오 쌀을 대신해 일반 백미를 사용해도 무관하다. 

❶ 야채 육수를 미리 준비해 둔다.

❷ 팬에 마늘과 올리브오일을 두르고 달아오르면 다진 양파를 넣어 볶는다.

❸ 양파가 투명해지면 쌀을 넣어 볶고, 쌀도 투명해지면 와인을 넣고 저어준다.

❹ 잘게 다진 비트를 넣고 육수를 한 국자씩 넣어주며 익힌다. 수분이 거의 다 스며들어 갈 즈음 육수를 넣는 것을 반복하며 쌀을 익힌다.

❺ 파르메산 치즈를 강판에 갈아 원하는 상태의 리소토를 만든다.

❻ 소금과 후추로 간을 하고 접시에 담은 후 바질 잎을 올린다.


글_  유영글, 정우정   |    정리_ 김연정  

ⓒ 월간 전원속의 내집 2016년 7월호 / Vol.209

■ "언제 떠나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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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영혼은 하늘로 날아가네' 영국이 낳은 세계 최고 극작가 셰익스피어가 살아 있었다면 필시 이 여행 코스를 두고 이렇게 말했을 것 같다. 타계 400주년을 맞아, 영국항공은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영국과 유럽의 여러 도시를 보다 편안하게 방문할 수 있는 코스를 추천한다. 스트랫퍼드 어폰 에이번의 셰익스피어 생가를 방문해 그의 전시회를 관람하거나, 런던의 템스 강변에 위치한 역사적인 글로브 극장에서 상영 중인 그의 작품을 관람해 보는 루트도 포함된다. 아, 꿀팁 한 가지 더 추가. 히스로를 중심으로 유럽 전역으로 뻗어 있는 영국항공의 편리한 연결 편을 이용한다면 랜드마크를 보다 쉽게 찍을 수 있다. 

 오, 나의 줄리엣 베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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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을 대표하는 도시 베니스는 '로미오와 줄리엣' '베니스의 상인' 등 셰익스피어 작품의 주 무대로도 유명하다. 

유럽을 대표하는 문화 수도인 이탈리아. 북부 도시 베로나(Verona)가 핵심이다. 여기를 배경으로 한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가 바로 로미오와 줄리엣(Romeo and Juliet). 당연히 셰익스피어 작품들의 주 무대가 된 곳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이탈리아 베니스(Venice)는 비극 오셀로(Othello)와 희곡 베니스의 상인(The Merchant of Venice)의 중심지다. 베니스에서 셰익스피어의 작품에 등장한 도시들을 찾아 떠나는 여행자라면, 북적거리는 리알토 시장(Rialto Market)만큼은 꼭 찍어야 한다. 가판에서 판매하는 신선한 채소, 과일, 해산물 등을 맛보는 것만으로도 타임머신을 타고 책 속으로 공간이동을 한 느낌이 드니까. 

대운하의 대표 명물인 곤돌라에 올라 베니스의 상인 주인공인 로렌조와 제시카가 되어 보는 것도 놓치지 말아야 할 포인트.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Antony and Cleopatra), 코리올레이너스(Coriolanus), 타이터스 앤드로니커스(Titus Andronicus)와 줄리어스 시저(Julius Caesar) 등 '로마극'으로 잘 알려진 이 작품들은 모두 고대 로마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셰익스피어의 비극 코리올레이너스에 등장하는 화산 지형의 알바니 구릉(Alban Hills)은 중심 지역에서 약간 벗어난 곳에 위치해 있지만, 역시나 눈을 사로잡는 풍광을 만나 볼 수 있는 핫스폿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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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로미오와 줄리엣'

 한여름 밤의 꿈같은 아테네 

고대 도시 아테네(Athens). 이 도시를 듣고 바로 한여름 밤의 꿈을 떠올린다면 셰익스피어 마니아라 할 만하다. 낭만적이고 신비로움으로 가득 찬 희곡, 한여름 밤의 꿈(A Midsummer Night's Dream)의 배경이 되는 곳이 여기다. 잠깐 작품 설명. 아테네의 테세우스 공작과 아마존족의 여왕 히폴리타가 어둠이 깔리고 달빛만이 비추는 숲에서 펼치는 결혼 이야기를 들려준다. 

아테네를 찾는 여행자들은 아크로폴리스(Acropolis), 파르테논(Parthenon), 헤파이스테이온(Hephaesteion·헤파이스토스의 신전) 등의 역사적인 유적을 통해 고대의 신비로운 감성에 흠뻑 빠져보는 시간여행을 즐길 수 있다. 이 멋진 고대 도시를 한눈에 보기를 원한다면, 트램을 타고 리카베투스산(Mount Lycabettus)에 올라 보실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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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아테네는 셰익스피어의 희곡 '한여름 밤의 꿈' 배경이 된 도시다. 

 맥베스를 눈 멀게한 스코틀랜드 

수많은 배우가 '스코틀랜드 연극'이라고 부르는 맥베스(Macbeth)는 스코틀랜드의 인버네스(Inverness)와 파이프(Fife)를 배경으로 펼쳐진다. 하일랜드(Highland) 지방의 중심도시였던 인버네스는 풍부한 스코틀랜드의 문화유산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당연히 이곳의 핫스폿은 하일랜드의 유명한 호수, 공포의 네스(Ness). 수많은 추측을 낳은, 악명 높은 호수의 괴물 '네시(Nessie)'를 보려고 매년 수많은 사람이 모여든다. 해안 지대 근처에 자리 잡은 도시 파이프는 케임브리지 공작과 공작 부인을 배출한 세인트앤드루대(the University of St. Andrews)로도 잘 알려져 있다. 

스코틀랜드 사슴 공원(The Scottish Deer Centre) 역시 머스트 씨(Must see)포인트. 희귀종 살쾡이와 함께 14종이 넘는 사슴들이 뛰어노는 가족 나들이 명소다. 골프 마니아들 역시 파이프만큼은 버킷리스트에 넣어둬야 한다. 가장 유명한 곳은 명불허전 세인트앤드루스 골프클럽(St. Andrews Links).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코스 중의 하나를 보유하고 있고 일곱 개의 모든 코스를 대중에게 개방하고 있다. 기자 같으면 일단 드라이버를 들고 세인트앤드루스 코스부터 찍을 것 같다. 

 리어 왕의 무대 런던 

윌리엄 셰익스피어에게 런던은 의미심장한 포인트다. '헨리 4세'와 '리어왕' 같은, 그의 유명한 희곡들의 무대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압권은 런던 중심부에 위치한 웨스트민스터 성당(Westminster Abbey). 이곳을 방문한다면 고딕 건축 양식의 교회와 뜰을 엿볼 수 있다. 

영국 왕궁 중 하나인 런던탑(The Tower of London)도 셰익스피어 작품의 배경이 되는 런던의 랜드마크 중 한 곳. 정기적으로 사용되는 여왕의 왕관 보석(The Queen's Crown Jewels)을 보관하는 장소로도 널리 알려진 곳이다. 

글로브(The Globe) 극장에서 엘리자베스 1세 시대에 상연되던 작품들을 경험해 보는 것도 '강추'.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을 주로 상연하던 곳이니 의미도 있다. 글로브 극장은 그때의 모습 그대로 재현해 놓아 셰익스피어의 다양한 작품들을 야외 공연으로 관람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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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명의 영화 속 한 장면. 

 셰익스피어 특별전 윈저 

템스 강을 끼고 있는 윈저. 셰익스피어의 코미디, '윈저의 즐거운 아낙네들(The Merry Wives of Windsor)'의 무대가 된 곳이다. 런던에서 차나 기차로 쉽게 갈 수 있는 포인트다. 윈저성(Windsor Castle)은 영국의 공식 왕실 거처 중 하나. 실제 거주자가 있는 성으로는 세계 최대 규모다. 윈저성은 현재 셰익스피어 특별전을 열고 있다. 2017년 2월까지 왕립 도서관(Royal Library)에서 관람할 수 있다. 이 전시회에는 왕실에서 수집한 셰익스피어 관련 소장품과 이 성에서 공연되었던 작품들 관련 기념품, 기록들까지 전시하고 있다.  

▶ 셰익스피어 투어 즐기는 Tip 

영국항공을 이용하면 보잉 787 드림라이너로 이동한다. 한국에서 출발하는 모든 항공편은 런던 히스로 공항 터미널 5로 도착한다. 영국항공을 이용하는 승객이라면 히스로 공항에서 영국과 유럽 전역으로 뻗어 있는 연결편들을 통해 보다 쉽게 환승할 수 있다. 마침 영국항공은 현재 런던과 인천 노선의 왕복 특가 항공권을 판매 중이다. 예약 관련 문의는 홈페이지 참고(ba.com). 

[신익수 여행·레저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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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뱅크사이드 밀레니엄브리지에서 바라본 세인트폴 대성당 모습. 

런던은 전 세계 여행자들의 눈을 매료시킨다. 축복받았다고는 할 수 없는 우울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전통과 첨단이 한곳에 버무려져 콧대 높은 여행객의 욕심을 다 채워줄 수 있는 도시다. 

하지만 런던이라는 도시는 영국이 낳은 세계 최고의 극작가 셰익스피어를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다. 그가 남긴 위대한 유산은 아직도 런던 곳곳에 그대로 살아 있다. 특히 주목해야 할 곳은 런던 템스강 남쪽 뱅크사이드(Bankside)다. 그가 고향인 스트랫퍼드어폰에이번(Stratford-upon-avon)을 떠나 런던으로 온 뒤 연기자이자 극작가로서 삶을 시작한 의미 있는 곳이다. 올해는 셰익스피어 서거 400주년을 맞아 이곳에서 셰익스피어를 전 세계인들에게 알리기 위한 다채로운 시도들이 진행되고 있다. 뱅크사이드 지역 최초 극장인 '로즈 플레이하우스(The Rose Playhouse)'를 비롯해 셰익스피어가 소유했던 '글로브 극장(The Globe Theater)' 두 곳은 꼭 방문해보자. 

타워브리지나 빅벤, 세인트폴대성당 등 관광객 '단골 메뉴'였던 명소뿐 아니라 셰익스피어의 숨결을 느껴보는 여행을 떠나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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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즈 플레이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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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흉상. 

셰익스피어가 런던으로 삶의 무대를 옮겼을 당시 뱅크사이드 지역은 매춘과 도박, 투우 등 향략이 들끓는 곳으로, 고상한 예술과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이곳에 로즈 플레이하우스가 생기면서 뱅크사이드도 변모하기 시작했다. 유명한 글로브 극장도 로즈의 성공을 목격한 뒤 1599년에 세워졌을 정도. 템스강변에서 안쪽으로 조금 들어간 뒷골목으로 가면 지금으로부터 까마득히 먼 1587년 처음으로 세워진 로즈 플레이하우스를 마주하게 된다. 런던에 들어선 극장으로는 다섯 번째, 뱅크사이드에 자리 잡은 극장으로는 최초인 만큼 역사적으로도 상당히 의미가 깊은 곳이다. 이 극장은 역사 속에 오랜 시간 잠들어 있었지만 주변 재개발 과정에서 1989년 처음 발견된 이후 보존돼 전 세계 셰익스피어 팬들을 끌어모으고 있다. 재개발로 인해 역사의 뒤안길로 영원히 사라질 뻔했지만 배우 로런스 올리비에를 비롯한 학자들과 대중들이 펼친 '세이브 더 로즈(Save the Rose)' 프로젝트 덕에 지금의 모습으로 남게 됐다. 소극장 수준으로 협소한 공간이지만 극장의 3분의 2는 여전히 발굴 작업으로 일반인이 들어갈 수 없는 공간이라 연기자들의 숨소리까지 들릴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서 생동감 넘치는 연극을 감상할 수 있으니 꼭 한 편 관람하는 것도 잊지 말자. 

 글로브 극장 

글로브 극장은 템스강변이 내다보이는 곳에 자리 잡고 있어 이곳을 스쳐 지나가는 여행객이라도 한번쯤 눈길을 줄 수밖에 없는 곳이다. 셰익스피어 극단의 주 공연장으로 유명해진 글로브 극장은 원래 로즈 플레이하우스에서 가까운 골목 한쪽에 1599년 세워졌지만 1613년 연극 도중 발생한 화재로 전소됐다. 두 번째 글로브가 같은 자리에 1614년 세워졌지만 1642년 청교도 정권의 압력으로 다시 문을 닫고 현재의 글로브가 지금 자리에 1997년 문을 열었다. 남아 있는 자료를 토대로 1599년과 1614년에 세워졌던 글로브의 디자인을 살려냈다. 

글로브 극장 내부 역시 옛 모습 그대로다. 원형경기장을 연상시키는 형태로, 무대 주변을 원형으로 둘러싸고 관객석이 1·2·3층에 자리 잡고 있다. 더 독특한 것은 무대 바로 앞에 마련된 공터 같은 공간인데 관객들은 이곳에 서서 마치 콘서트를 보듯 공연을 관람한다. 셰익스피어가 활동하던 당시 가난하지만 연극을 보려는 사람들이 1페니만 내면 서서 연극을 볼 수 있었는데 그 전통을 그대로 살린 것이다. 원형극장 천장은 뚫려 있어 무대와 하늘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장관을 감상하는 것도 묘미 중 하나다. 글로브 극장에서는 햄릿, 맥베스, 베니스의 상인, 한여름밤의 꿈 등 셰익스피어의 다양한 작품을 선보이고 있으니 상영 시기를 확인한 뒤 본인이 원하는 연극을 감상하면 좋다. 셰익스피어와 글로브 극장에 대해 더 알고 싶은 여행객은 투어를 신청하면 숨겨진 이야기를 들으며 30분간 글로브 극장을 투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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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브극장 내부 모습. [사진 제공=존 트램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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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러마켓 

사우스뱅크는 셰익스피어만 만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버러마켓(Borough Market)에 가면 런던 사람들의 입을 즐겁게 하는 싱싱한 식재료들을 눈과 입으로 즐길 수 있다. 버러마켓은 1276년 처음 생긴 재래식 시장으로 런던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를 자랑하는 곳이다. 버러마켓 근처에는 런던에서 가장 오래된 펍(pub) 중 하나이자 셰익스피어도 자주 드나들었던 '조지 인(The George Inn)'도 있으니 어디서 끼니를 때워야 할지 고민이라면 한번 들러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셰익스피어 투어 즐기는 Tip〓영국항공을 이용하면 보잉787 드림라이너로 이동한다. 한국에서 출발하는 모든 항공편은 런던 히스로공항 터미널5로 도착한다. 영국항공을 이용하는 승객이라면 히스로공항에서 영국과 유럽 전역으로 뻗어 있는 연결편들을 통해 보다 쉽게 환승할 수 있다. 셰익스피어 서거 400주년을 맞아 힐튼 뱅크사이드 호텔과 세인트제임스코트 타지 호텔 등에서는 셰익스피어에서 영감을 얻은 칵테일도 선보이고 있다. 

※ 취재협조=영국관광청(www.visitbritain.com) 

[강다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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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herlock To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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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에서 '마니아', 속칭 '덕후(일본의 '오타쿠'의 변형으로, 어느 한 분야를 깊게 좋아하는 이들을 지칭하는 표현)'가 가장 많이 모이는 곳은 어딜까. 

흔히 일본 도쿄를 떠올리지만, 원조는 영국 런던이다. 영어를 배우러 가는 사람이나 옥스퍼드대 같은 명문 대학에 유학하러 가는 사람도 있지만, 많은 사람이 런던을 방문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비틀스의 음악을 좋아하는 '비틀스 덕후'는 비틀스의 흔적을 찾으러 갈 것이다. 소설 해리포터 덕후는 해리포터의 무대가 된 거리를 맛보고 싶을 것이다. 그 밖에도 '노팅힐' '러브 액츄얼리' 등 수많은 영화의 무대가 된 만큼 영화 속 장면을 찾아 삼삼오오 런던으로 떠난다. 

이 중에서도 최근 가장 강한 중독성을 보이며 전 세계인을 런던으로 불러모으는 건 바로 '셜록 홈스'다. 전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캐릭터로 꼽히는 셜록 홈스. 아서 코넌 도일의 원작 추리소설에 등장하는 셜록 홈스는 세계 최초의 민간자문탐정이다. 최근 이를 재해석한 영국 드라마 '셜록'은 덕후들을 런던으로 소환하고 있다. 비엔날레도 아니고 2010년부터 2년 간격으로 띄엄띄엄 3부작씩 한 시즌을 내놓아서일까. 셜록이 그리워 몸이 근질근질한 전 세계 셜록 덕후들이 런던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베이커가 투어는 지하철역부터 

셜록이 절친 왓슨과 함께 지내던 221B Baker Street, London은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집 주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인지 베이커가는 지하철역부터 셜록으로 가득하다. 베이커가는 런던 지하철 베이커루 라인(Bakerloo line)과 서울 지하철 2호선 같은 서클 라인(Circle line)을 타면 갈 수 있다. 런던의 언더그라운드(지하철) 역은 승강장마다 특색 있는 벽화와 그림으로 꾸며져 있는데 베이커가 역(Baker Street tube station)에는 '빨간 머리 클럽' '공포의 사자 갈기' 등 원작 소설의 일러스트가 벽 전체를 채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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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베이커가는 지하철역부터 셜록의 흔적들로 가득하다.

승강장을 벗어나 찾아간 221B번지에 셜록의 집 대신 '셜록 홈스 뮤지엄'이 셜록의 흔적을 찾으러 온 이들을 반기고 있었다. 드라마 속에서 셜록과 왓슨의 집으로 등장했던 곳은 아니어서 드라마 팬보다는 셜록 홈스 자체를 좋아하는 이들에게 더 환영받는 장소다. 실제로 박물관이 자리 잡은 이곳은 양옆에 237·241번가가 있는 것으로 봐서 239번가여야 하지만, 런던시의 허가를 받아 특별히 221B로 했다고 한다. 더 흥미로운 것은 코넌 도일이 셜록 홈스를 쓰던 시절에는 베이커가에 200번대 번지가 없었기 때문에 '가상의 주소'로 221B를 사용했다고 한다. 

셜록 박물관의 개장 시간은 오전 9시 30분~저녁 6시. 좁은 장소로 입장객이 제한돼 항상 밖에는 입장을 기다리는 셜록 팬으로 가득하다. 박물관 기념품 숍 내부 카운터에서 입장료 15파운드를 내면 셜록과 왓슨의 집으로 들어가볼 수 있다. 

좁은 계단을 올라가면 셜록과 왓슨이 지낸 거실이 제일 먼저 보인다. 각종 약품과 실험도구, 신문지, 파이프 등으로 어지럽혀진 실내는 19세기 말 분위기를 풍긴다. 거실 벽난로 앞에 마련된 셜록 의자에 직접 앉아서 기념사진을 찍을 수 있다. 셜록 모자도 쓸 수 있어 셜록 덕후 인증이 가능하다. 

박물관에는 몇몇 셜록 홈스 에피소드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물건을 전시해놨는데, 해당 에피소드와 대표적 구절이 함께 적혀 있어 관람객의 이해를 돕는다. 거실 침실 등 세 층에 걸쳐 마련된 셜록 박물관은 '덕후' 수준이 아니라면 실망스러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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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속에서 셜록이 사용했던 파이프, 실험도구 등이 전시되어 있는 '셜록 홈스 뮤지엄'. 

 드라마 '셜록' 신드롬의 무대 

셜록 박물관을 둘러봤으니, 다음은 진짜 드라마 속 셜록과 왓슨 집으로 사용된 드라마 촬영지를 갈 차례다. 언더그라운드를 타고 런던 중앙역이기도 한 킹스크로스역과 멀지 않은 유스턴역(Euston Station)에 내리면 5분도 안 돼 찾아갈 수 있다. 바로 드라마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스피디스 카페(Speedy's sandwich bar&cafe)'다. 아마 셜록 드라마 팬이 런던에서 가장 많이 다녀가는 곳일 것이다. 스피디스 카페는 주택가에 위치한 카페로 원래 현지 주민이 가볍게 식사하러 찾는 곳이었는데, 드라마 셜록 방영 이후로는 명실상부하게 런던에서 가장 유명한 카페로 자리 잡았다. 

지금까지도 전 세계 셜록 덕후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 카페 왼편에는 드라마에서 셜록과 왓슨의 집으로 등장해 이들이 문지방이 닳도록 드나들던 검은 현관문이 있다. 드라마처럼 이곳의 대문 문고리는 살짝 삐뚤어져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드라마와는 달리 실제 주소는 187번가다. 지금도 실제로 거주하는 사람들이 있어 문을 열고 들어갈 수 없으니, 문 밖에서 사진 찍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카페 안에 들어가면 드라마 촬영 당시 찍은 베네딕트 컴버배치(셜록 홈즈 역)와 마틴 프리먼(왓슨 역)의 사진이 걸려 있다. 가볍게 식사할 사람은 가장 인기 있는 메뉴 중 하나인 '셜록 랩(Sherlock Wrap)'이나 '왓슨 랩(Watson Wrap)'을 먹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아침과 점심을 위주로 운영하는 스피디스 카페는 평일은 오전 6시 30분~오후 3시 30분, 토요일은 오전 7시 30분~오후 1시 30분까지 문을 연다. 매주 일요일은 휴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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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 홈즈' 원작자 아서 코넌 도일 집안의 지원을 받아 탄생한 '셜록 홈즈 펍'.

 19C 런던 느낌 '셜록 홈즈 펍' 

셜록의 흔적을 찾느라 분주하게 돌아다녀 다리가 피곤해질 때쯤 목을 축이러 가보자. 런던 트래펄가 광장에서 조금 걸어가면 발견할 수 있는 '셜록 홈즈 펍(The Sherlock Holmes Pub)'이다. '셜록 홈즈'의 원작자인 아서 코넌 도일 집안의 지원을 받아 문을 연 이곳은 셜록 덕후들이 찾는 또 다른 성지 중 하나다. 런던 도심인 트래펄가 광장 인근이라 관광객뿐만 아니라 현지 젊은이나 직장인도 즐겨 찾는 펍이다. 1층에서는 가볍게 맥주 등을 마실 수 있다. 약간 어두운 조명과 19세기 말 분위기가 풍기는 1층 곳곳에는 셜록 홈즈 흔적이 가득하다. 셜록과 관련된 드로잉이나 옛 포스터, 사진 등도 걸려 있다. 

1층 펍에 자리 잡으면 꼭 맛봐야 할 것이 바로 '셜록 홈즈 에일 맥주(Sherlock Holmes Ale)'다. 영국 최대 양조업자인 그린 킹을 통해 자체 생산하는 셜록 홈즈 에일 맥주는 부드러운 영국 스타일 에일 맥주로, 쌉싸름한 맛이 특징이다. 그 밖에도 '왓슨의 강타(Watson's Wallop)' 등 셜록 홈즈 덕후라면 누구나 좋아할 만한 이름을 가진 맥주가 가득하다. 

식사 메뉴는 드라마의 인기 때문인지 '셜록이 좋아하는 등심 스테이크' '모리아티의 소고기 버거', '베네딕트 컴버배치의 풀드 포크 버거' 등 드라마 속 캐릭터나 배우들의 이름이 붙어 있다. 메뉴를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음식 맛은 전반적으로 나쁘지 않은 편. 하지만 10~16파운드 정도로 착하지 않은 가격을 생각하면 가성비는 그냥저냥이다. 가격이 부담스러우면 가볍게 6~7파운드 내외로 먹을 수 있는 샌드위치 메뉴를 추천한다. 

2층은 식사가 가능한 레스토랑으로 운영되는데, 일부 공간에는 셜록 홈즈의 서재를 재현해 초상화 등을 전시하고 있다. 연중무휴인 셜록 홈즈 펍은 일~목요일은 오전 11시~오후 11시, 금·토는 0시까지 운영한다. 점심시간이나 저녁 퇴근시간에는 자리가 없어 바에 서서 맥주를 마셔야 하니 의자에 앉고 싶으면 붐비는 시간을 피해 가길 바란다. 

[조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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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 여행을 만들다

1830년 9월 15일, 리버풀 사람들은 최초로 도시 간을 오가는 철도 여행의 승객이 되었다. 스티븐슨이 증기기관차를 만들어내고도 한참 동안 기차는 그저 석탄이나 옮기고 가까운 거리에 있는 사람들을 부정기적으로 실어 나르는 도구에 불과했다. 리버풀 앤 맨체스터 레일웨이(Liverpool and Manchester Railway)가 개통되고 나서야 정기적인 시간표를 가지고 운행되는 도시 간 철도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처음 철로를 놓을 때는 리버풀 항구와 맨체스터 공장 사이의 물자 교역을 위한 목적이 컸지만, 열차의 편리함을 알게 된 승객들 덕분에 본격적인 기차 여행의 시대를 열게 된 것이다.

역사적인 첫 운행의 승객들은 당시 영국과 리버풀을 대표하는 유명인사들이었는데, 그들은 또 다른 최초의 기록, 그러나 매우 비극적인 사건의 목격자가 되어야만 했다. 처녀 운행을 하던 증기 기관차가 물을 공급받기 위해 중간 지점에 잠시 서 있을 때였다.

리버풀의 인기 높은 하원 의원이었던 윌리엄 허스키슨이 객차에서 잠시 내렸다가 수상 월링턴이 다른 객차에 타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그가 반갑게 인사하며 다가가던 그때, 기관차 '로켓'이 달려와 그의 다리를 깔아뭉개 그를 죽이고 만다. 이것은 철도 역사 초기의 가장 유명한 철도 사상 사고가 되었다.


불행한 사건에도 불구하고 리버풀과 맨체스터 사이의 열차는 세계 최초의 철도 우편을 수송하는 등 활기차게 연기를 뿜으며 내달렸고, 1840년대 영국 철도 붐을 일으킨 장본인이 된다. 개통 당시 크라운 스트리트에 있었던 리버풀의 종착역은 1836년에 라임 스트리트로 옮겨왔고, 현재 이곳에 대형 역사를 두고 있다.


리버풀 앤 맨체스터 레일웨이의 처녀 운행, 도시 간 철도여행의 시대를 열었다.




타이타닉과 대서양 횡단 여행을 만들다

허스키슨의 불행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러나 타이타닉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타이타닉호는 1912년 4월 10일 영국 사우스햄튼에서 출발해 뉴욕으로 항해하다 빙산에 부딪혀 침몰한 초대형 여객선이다. 대서양 횡단여행의 시대를 개척하기 위해 건조된 이 배의 공식항구는 리버풀이었고, 승무원과 승객의 상당수도 리버풀 사람들이었다.

알버트 독은 1년에 4맥만 명이 찾아오는 리버풀의 최대 명소다.


비록 이 도전은 역사적인 실패로 끝났지만 리버풀은 오랫동안 대서양을 가로지르는 항해의 중심지로 이름을 떨쳐왔다. 비틀즈의 노래로 만든 뮤지컬 영화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의 첫 장면은 리버풀 항구에서 주드라는 청년이 꿈을 찾아 뉴욕으로 가는 배를 타는 데서 시작한다.


한때 제국의 항구로 번성했던 리버풀은 영국 산업의 침체와 더불어 시들어갔다. 낡은 항구의 창구는 이제 알버트 독이라는 복합 건물로 변신해 이 도시의 또 다른 얼굴이 되고 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 건물 안에는 머시사이드 해양 박물관(Merseyside Maritime Museum), 비틀즈 스토리, 테이트 리버풀 등의 명소들이 자리 잡고 있다. 해양 박물관은 우리에게 리버풀이 바다를 지배하던 시대를 기억하게 해준다. 아메리카와 오스트레일리아로 향한 신대륙 이민사의 도전 정신과 더불어 이 항구가 주도했던 노예무역의 참상도 깨닫게 해준다.




움직이는 장난감을 만들다

기차들은 칙칙폭폭, 배들은 뿌우뿌우. 사방에서 새로운 기계들이 쏟아지던 산업혁명의 시대, 특히 리버풀은 온갖 창의적인 아이디어들을 현실로 변화시키는 엔지니어들의 땅이었다. 당연하게도 이곳의 아이들은 어린 시절부터 공작과 발명의 매력에 흠뻑 빠져 있었다. 리버풀 북쪽인 맥헐에 살고 있던 프랭크 혼비는 바로 그 공학 소년들의 꿈에 힌트를 얻어 놀라운 장난감들을 만들어냈다. 바로 메카노(Meccano). 여러 종류의 부속품과 실제 작동하는 기어를 가지고 기차, 자동차, 교량 등을 만드는 조립 완구로, 한국에서도 오래전부터 과학 소년들에게 사랑을 받아왔다.


프랭크 혼비가 1908년 처음 생산하기 시작한 메카노는 1980년까지 리버풀을 대표하는 브랜드로 세계적인 사랑을 받았다. 그는 이밖에도 혼비 모형 철도, 딩키 토이즈 등 스스로 작동하는 장난감 분야에서 탁월한 성과를 거두었다. 현재 맥헐(Maghull) 지역 주민들을 중심으로 혼비 박물관 설립 운동이 진행되고 있는데, 그의 첫 번째 철도 모형의 모델이 된 맥헐 기차역 주변이 될 것이라고 한다. 현재는 맥헐의 미도우즈 센터(Meadows Centre)의 공간을 빌려 그와 관련된 전시를 하고 있다.


탄생 100주년을 넘긴 메카노. BBC의 <제임스 메이의 토이 스토리(James May's Toy Stories)>는 메카노의 재료만으로 실물 크기의 다리를 만들어 리버풀의 운하에 세우는 과정을 방영하기도 했다.




비틀즈를 만들다

비틀즈의 영광이 시작된 캐번 클럽의 명예의 벽


뭐니뭐니해도 이 도시가 만들어낸 최고의 히트 상품은 비틀즈다. '리버풀의 비틀즈'가 아니라, '비틀즈의 리버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도시 곳곳에서 이 전설적인 밴드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존 레논의 이름을 딴 공항, 폴 매카트니가 살았던 집(20 Forthlin Road), 애비 로드와 스트로베리 필드 등 그들 노래에 영감을 준 장소들, '비틀즈 스토리'를 비롯한 여러 기념관들... 그리고 그들의 전설이 시작되는 매튜 스트리트의 캐번 클럽(The Cavern Club)까지.


비틀즈는 1961년부터 63년까지 이 클럽에서 292회 동안 출연하며, 첫 번째 유명세를 만들어냈다. 후에 그들의 매니저가 되고 '다섯 번째 비틀즈'라 불리는 브라이언 엡스타인을 처음 만난 것도 여기에서였다. 현재 이 거리는 비틀즈를 기념하는 온갖 조형물들로 가득한데, 클럽 바깥에는 어린 존 레논이 벽에 기대어 있는 조각상이 있고, 명예의 벽에는 비틀즈의 멤버들은 물론 척 베리, 롤링스톤즈 등 이곳에서 연주한 록 스타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올림픽을 만들다. 미친 축구에 빠지다

리버풀은 육체노동자의 도시다. 영국에서도 가장 스포츠를 사랑하고, 특히 축구에 대한 열정으로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1862년에서부터 67년까지 리버풀은 매년 그랜드 올림픽 페스티벌(Grand Olympic Festival)을 개최했다. 고대 그리스의 올림픽을 재현하고자 했던 움직임으로, 오직 아마추어들만이 모여 스포츠를 통해 이상에 도전하는 자세를 보여주었다. 피에르 드 쿠베르탕은 이 행사로부터 많은 영감을 얻어 1896년 최초의 근대 올림픽을 개최하기에 이른다.


또한 이 도시는 에버턴 F.C.와 리버풀 F.C.라는 걸출한 축구팀을 가진, 영국에서도 가장 뜨거운 축구 열기를 자랑하는 도시다. 특히 1970~80년대에 무적에 가까운 위용을 자랑한 리버풀 F.C.의 전설은 아직도 시민들에게 깊은 자부심으로 남아 있다. 그러나 그 격렬한 사랑은 훌리건이 만들어낸 양대 참사를 경험하게 만들기도 했다.


리버풀 F.C.는 1892-93년 시즌에 에버튼 F.C.와 갈라져 발족하게 된다. 그해 랭커셔 리그에서 우승했다.

1985년 유러피언 컵 결승전이 열린 브뤼셀 보두앵 경기장에서 리버풀과 유벤투스의 서포터들이 난투극을 벌여 39명이 사망한 헤이젤 참사, 영국 셰필드의 힐즈브러 스타디움의 경기장이 무너져 FA컵 준결승전을 보러 간 리버풀 팬 96명이 압사한 힐즈브러 참사가 그것이다. 두 사건은 영국의 훌리건 문화에 대한 깊은 반성과 변화를 가져오게 했다. 여러 사건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안필드의 경기장에는 모인 4만의 관중은 응원가 'You'll Never Walk Alone'를 목이 터져라 부르고 있다.




끝까지 저항하는 항구를 만들다.

첨바웜바는 '텁섬핑'이라는 신나는 댄스곡으로 리버풀 항만 노동자의 파업을 응원했다.


비틀즈의 백 비트와 축구의 박력, 그 밑바탕에는 리버풀 시민들의 땀에 대한 사랑과 투철한 반역 정신이 깔려 있었다. 2011년 새로운 박물관(The New Museum of Liverpool)으로 변신하게 될 '리버풀 생활 박물관(The Museum of Liverpool Life)'이 간판으로 내세운 전시는 '목소리를 요구한다(Demanding a Voice)'였다. 리버풀 극장 동맹, 여성 참정권 운동, 항만 노동자의 파업과 같은 역사적인 정치 투쟁의 모습이 바로 리버풀 시민들의 생활이라는 것이다. 아일랜드의 전설적인 노동운동가 짐 라킨도 리버풀에서 태어나 이곳 항만노조의 파업 운동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찾았다고 한다.


1980년대 대처 정부가 광산 노조들을 거의 함락시키고 항만 노조를 차례대로 손들게 하였지만, 오직 리버풀의 항만 노조만이 끝까지 저항했다. 1990년대 중반 항만 노조의 파업은 전 세계적인 관심을 끌었다.

1998년 영국을 대표하는 대중음악상인 브릿 어워즈(BRIT Awards)의 시상식에서 첨바왐바(Chumbawamba)는 자신들의 히트곡 '텁섬핑(Tubthumping)'의 가사를 바꾸어 "새로운 노동당은 항구를 팔아먹었다. 마치 우리들 모두를 팔아먹은 것처럼"이라고 노래했다. 그리고 보컬 댄버트 노바콘은 당시 관중석에 있던 노조운동가 출신 부수상 존 프레스콧의 머리에 얼음물을 부어버렸다. "이건 리버풀 항만 노동자의 몫이다."라고 외치며. 파업은 블레어의 노동당 정부의 배신으로 결국 깃발을 내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가짜 도시를 만들다

언제나 과격하고 박진감 넘쳤던 도시. 그러나 리버풀 항구가 퇴색하고 축구도 과거와 같은 영광을 얻지 못하고 있는 지금, 시민들은 새로운 시대를 위해 도시를 단장하고 있다. 리버풀의 고전적인 모습을 내다 버리기보다는 깔끔하게 다듬으며 익숙한 듯 색다른 비전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덕분에 이 도시는 여러 영화에서 다른 유명 도시를 대신하는 역할로 인기를 모으고 있다. 주드 로가 멋쟁이 뉴요커로 나오는 [알피]에서는 뉴욕이 되었고, [불의 전차]에서는 파리에 있는 영국 대사관 건물의 역할로 시청을 내주었다. [배트맨 리턴즈]에서는 고담 시의 운하, [셜록 홈즈]에서는 영국의 부두를 대신해서 이곳의 강과 스탠리독이 출연한다.


아마도 이 도시에서 가장 압도적이고 고전적인 건물은 세인트 조지 홀(St George's Hall)로 보인다. 최초의 네오클래식 건물로 일컬어지는데, 법정과 콘서트홀이라는 서로 어울리지 않는 두 목적을 위해 1854년에 지어졌다. 테러범으로 억울한 옥살이를 하게 된 아일랜드 인들의 투쟁을 그린 [아버지의 이름으로]에서 런던의 여러 장면을 연출하기 위해 등장한다.


세인트 조지 홀은 리버풀이 누렸던 19세기의 영광을 상징한다.

해외여행의 묘미 중 하나는 예상하지 못했던 사람과 문화, 음식을 만나는 것이다. 이런 이국 정서를 잘 느낄 수 있는 곳은 이미 널리 알려진 도심이나 유명관광지가 아니라, 여행가이드북에도 잘 나와 있지 않고 여행사의 패키지 여행코스에도 들어가지 않는 낯선 골목인 경우가 많다. 런던 이스탄불 거리에서 숨겨진 보석을 발견했다. 

100년 이상 품위 지켜온 남성의 보물창고 같은 곳

'신사의 나라' 영국. 그 수도 런던엔 남성용 의류·잡화 매장이 모인 '신사의 거리'가 있다. 간판에 적힌 창업연도를 보면 100년은 기본이고 200년이 넘는 곳도 있다. 오랜 세월 신사복의 품위를 묵묵히 지켜온 물건을 만날 수 있어 클래식한 멋을 추구하는 남성들에게는 보물창고와도 같은 곳이다. 런던 중심가 지하철 피카딜리서커스 역(驛)의 한 블록 아래를 지나는 600m 남짓한 이 거리. 저민 스트리트(Jermyn Street)다.

셔츠 사이즈만 50여 가지

쇼핑백을 든 남성들이 런던 저민 스트리트의 셔츠 전문점 '핑크'앞을 지나고 있다. / 채민기 기자
셔츠 전문으로 이름난 가게들이 눈에 띈다. 'T.M.르윈'도 그중 하나. 매장 벽면 전체에 셔츠가 차곡차곡 꽂혀 있다. 줄자를 목에 건 직원에게 도움을 청하면 목 둘레와 화장(뒷목 가운데부터 팔끝까지의 길이)을 재서 사이즈를 찾아 준다. 세분된 목 둘레와 화장을 조합하면 50가지가 넘는 사이즈가 나온다고 한다.

몇 걸음 옮기면 '핑크' 매장이 나온다. 셔츠 색은 저마다 달라도 브랜드 이름의 뜻을 살려 거셋(재봉선에 덧대는 삼각형의 헝겊)은 분홍색 헝겊을 쓰는 것으로 유명한 곳이다. '턴불 앤 아서'는 영국 왕실의 납품 허가(royal warrant)를 받은 고급 셔츠 전문점이다. 찰스 왕세자를 비롯한 명사들이 찾는 셔츠로 알려져 있다.

셔츠뿐 아니라 남성 의류도 다양하다. '해켓'은 세계적인 패션 블로그 '사토리얼리스트'에 등장하는 등 멋쟁이로 이름난 제레미 해켓 회장이 이끄는 브랜드. 감색에 굵은 흰 줄무늬가 들어간 보팅(boating) 블레이저처럼 클래식하면서 멋스러운 옷을 선보인다. '찰스 티릿'도 반바지 같은 캐주얼 의류부터 예복인 모닝코트까지 갖추고 있다.

최고급 영국 구두로 꼽히는 '존 롭'과 '에드워드 그린'을 비롯해 한국에서도 패션 리더들 사이에서 인기인 '처치스'와 '크로켓 앤 존스' 등 구두 매장도 모여 있다. 고객이 착용을 원할 경우 직원이 고객과 마주 앉아서 신발을 신고 끈을 매는 것까지 세심하게 도와준다.

지팡이, 면도칼… 영화에서 보던 소품들

런던 세인트 제임스 스트리트에 있는 J.J. 폭스 매장 지 하에 꾸며놓은 시거 전시실. / 채민기 기자
'테일러 오브 올드 본드 스트리트'라는 긴 이름의 가게는 쇼윈도에 면도용품이 들어차 있다. 가죽띠에 문질러 쓰는 면도칼, 오소리털로 만든 면도용 솔처럼 영화에나 나올 법한 물건들이 가득하다. '베이츠'는 중절모부터 팔각형의 '뉴스보이 캡'까지 모자를 취급하는 전문점이다. 이달 한국 진출을 앞둔 '벤슨 앤 클렉'은 재킷에 부착하는 단추와 휘장이 전문이다. 이곳 역시 왕실 납품 허가를 받았다.

'다비도프'는 시거가 주력이지만 담배를 피우지 않는 사람에게도 재미있는 곳이다. 크기와 소재가 조금씩 다른 파이프나 시거 커터 같은 끽연용구를 구경할 수 있다. 손잡이에 조각을 새긴 지팡이, 긴 우산처럼 영국 신사가 들고 다닐 법한 액세서리도 갖췄다.

저민 스트리트와 수직으로 만나는 세인트 제임스 스트리트에도 재미있는 가게들이 있다. 1787년 창업한 시거 전문점 'J.J. 폭스'는 매장 지하에 무료로 입장할 수 있는 전시실을 꾸며 놨다. 전시된 거래 기록에 따르면 이곳의 단골이었던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총리는 26살이었던 1900년 8월 9일 처음 이 가게를 방문해 4파운드 11실링어치의 담배를 사간 것으로 돼 있다. 그가 가게를 방문할 때마다 앉곤 했던 '처칠 의자'도 남아 있다.

1805년 이 거리에 문을 연 이발소 '트루핏 앤 힐'은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부군 필립 공(公)부터 비틀스 멤버였던 폴 매카트니까지 각계의 명사가 고객이다. 면도만 하는 데 30분쯤 걸린다. 39파운드(약 7만원)라는 가격이 만만치는 않지만 세계적 명사들이 애용하는 서비스를 받는 즐거움을 느껴볼 수 있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산빛과 물빛에 취해 걷는 길. 산과 계곡, 호수와 18세기의 풍경이 오롯이 남은 마을. 영국식 티룸에서 ‘애프터눈 티’ 한 잔에 지친 다리를 쉴 수 있는 곳. 자연과 역사가 함께 살아 있는 곳.

열여섯 개의 크고 작은 호수와 높은 산들

“잉글랜드에서 걷기의 심장과 영혼으로 불리는 곳이 있다면, 그곳은 레이크 디스트릭트다.” 여행 가이드북 ‘론리플래닛’은 레이크 디스트릭트에 대해 이렇게 소개한다. 잉글랜드 북서부의 쿰브리아주에 위치한, 동서로 50킬로미터 남북으로 40킬로미터의 레이크 디스트릭트 국립공원. 예측할 수 없는 날씨와 1년 내내 관광객들이 몰린다는 치명적인 단점에도 불구하고, 이곳은 거부할 수 없는 매력으로 가득 찬 영국 도보여행의 성지다. 잉글랜드에서 가장 큰 호수인 윈더미어를 비롯해 열여섯 개의 크고 작은 호수와 깊은 계곡, 높은 산들에 둘러싸여 산빛과 물빛이 고운 그 미색 때문이다. 그래서 일찍이 걷기의 아름다움을 예찬한 워즈워드나 요절한 키츠, 셸리러스킨 등 수많은 시인과 작가들에게 영감을 주기도 했다. 이곳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산길과 물길, 능선길, 계곡길, 마을길, 들길이 전방위로 펼쳐져 있어 걸으며 소요하기 좋아하는 이들을 행복한 고민에 빠뜨린다.

한없이 고즈넉하고 평화로운 레이크 디스트릭트. 18세기 풍경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시인 윌리엄 워즈워드가 즐겨 걸었던 트레일

레이크 디스트릭트의 거미줄처럼 뻗어나간 수많은 트레일 중 한 곳을 꼽기란 뷔페식당에서 첫 접시를 채우는 일만큼이나 어렵다. 그래도 대표적인 길 두 곳만 소개하자. 첫째는 페어필드 홀스슈(The Fairfield Horseshoe) 코스. 걷기를 놀이로 선택한 최초의 인간 중의 하나인 워즈워드가 즐겨 걸었던 트레일이다. 페어필드는 레이크 디스트릭트 중심부에 자리한 873미터의 산이다. ‘페어필드 홀스슈’는 이름 그대로 페어필드산의 한 쪽 능선을 타고 정상에 오른 후 반대편 능선을 타고 내려오는 말발굽 모양의 코스로 6시간 남짓 소요된다.

길은 A191도로를 따라 암블사이드 마을을 빠져나오면서 시작된다. 도로 옆으로는 양들이 풀을 뜯는 들판이 이어진다. 30분 남짓 도로를 따라 걷다가 라이달 마운트(Rydal Mount)라는 이정표가 붙은 길로 들어선다. 라이달 마운트는 영국 낭만주의 시인의 대표격인 워즈워드가 1813년부터 사망할 때까지 37년을 살았던 집이다. 워즈워드의 후손들은 그의 선조가 쓰던 물건과 가구가 그대로 남겨진 이 집의 일부를 일반에 공개하고 있다. 회칠을 한 흰색 건물은 16세기의 골격을 그대로 유지해 고풍스런 느낌이다. 워즈워드가 시를 쓰곤 했다는 작은 방의 창문으로는 푸른 호수의 끝자리와 정원의 나무들이 가득 담겨온다.


페어필드산 정상으로 향하는 오르막 능선길.

산빛, 물빛 영롱한 대자연의 신비

정원을 둘러본 후 라이달 마운트를 나서면 이제 본격적으로 페어필드산으로 향하는 길이다. 페어필드는 워즈워드가 라이달 마운트에 사는 37년간 수도 없이 오르내렸던 산이다. 길은 초입부터 가파른 오르막이다. 돌담이 장식처럼 박힌 가파른 길을 올라갈수록 풍경이 시원스레 펼쳐져 걸음이 늦어진다. 암블사이드와 윈더미어 호수와 주변 숲이 따라온다. 초반부는 경사가 급하지만 중반 이후는 비교적 평이하게 오를 수 있다. 정상에서의 전망은 시원하다. 서쪽으로는 잉글랜드에서 가장 높은 산인 스카펠 파이크(Scafell Pike 978미터)가, 동쪽으로는 하이 스트릿 산(High Street)의 긴 능선이, 남쪽으로는 윈더미어 호수의 아름다운 전경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아름다운 풍경을 지닌 아담한 호수 '라이달 호수'주변

수백 년의 세월을 견뎌온 돌담과 운치 있는 낙엽길

하산길은 돌무덤으로 표시된 길을 따라 반대편 능선으로 내려가는 길이다. 능선길에는 양떼를 위해 설치한 돌담이 길게 늘어서 있다. 돌담을 따라 내려오는 길에 호수를 넘어온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오고 가을햇살이 어깨로 내려앉는다. 물빛은 곱고 산세는 넉넉해 마음까지 상쾌해진다. 아스라이 보이던 암블사이드가 손에 잡힐 듯 가까워지면 길의 끝이다.

1년 내내 편안하게 걸을 수 있는 길

두 번째 코스는 암블사이드에서 그라스미어까지 가는 4시간의 코스. 비교적 평탄한 길이 이어지기 때문에 어려움 없이 레이크 디스트릭트의 빼어난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다. 폭우가 쏟아진다거나 강풍이 불어온다 해도 1년 내내 걸을 수 있는 것은 물론이다. A591 도로를 따라 암블사이드를 벗어나면 길이 시작된다. 러프릭 테라스(Loughrigg Terrace)를 경유해 그라스미어까지 2시간 남짓은 순한 능선길이다. 곳곳에 이정표가 있어서 길을 잃을 염려도 없다. 그라스미어 마을에 도착하면 워즈워드가 묻힌 성 오스왈드 교회와 그의 생가 ‘도브 코티지’를 둘러본다. 주변의 작은 티룸에 들어가 ‘애프터눈 티’를 즐기는 것도 영국 여행의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다. 이 마을을 유명하게 만든 생강빵도 베어 물고 걷는다. 돌아올 때는 도브 코티지 옆으로 난 길을 따라 걷기 시작해 코핀 루트를 지나 라이달 마운트를 둘러본 후 암블사이드로 돌아오면 된다.

그라스미어와 주변 산들이 파노라미처럼 펼쳐진다.

코스 소개
가장 영국적인 풍경을 자랑한다는 레이크 디스트릭트는 도보 여행자들의 천국이다. 19세기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마을들이 호수 주변으로 병풍처럼 둘러선 곳이라 한 번 이곳의 매력에 빠지면 벗어나기가 힘들 정도다. 또 도보여행뿐 아니라 본격적인 등산, 낚시와 항해, 산악 자전거 등 다양한 야외활동을 할 수 있다. 워즈워드와 베아트릭스 포터의 자취로 가득한 이곳에서는 워즈워드의 생가와 박물관, 포터의 농가인 힐탑(Hill Top)과 호크쉐드(Hawkshead)에 위치한 베아트릭스 포터 갤러리 등도 볼 수 있다.

찾아가는 길
잉글랜드 북서부 호수지방의 중심지 윈더미어까지는 런던 휴스턴 역에서 출발하는 기차를 타면 4시간 소요. 빅토리아 코치 스테이션에서 암블사이드행 버스를 타도 되지만 시간이 오래 걸린다. 작은 마을 암블사이드는 교통이 편리하고, 다양한 숙소와 각종 편의시설을 잘 갖추었기 때문에 도보여행자들의 베이스 역할을 하는 곳이다.

여행 TIP
잉글랜드와 웨일즈의 국립공원은 국가의 소유인 공적 공원이 아니라 농장이나 단체 혹은 개인이 소유한 사적 공간이다. 국립공원 내의 트레일은 종종 마을이나 개인 소유의 목초지 등을 통과할 때가 많으므로 그들의 사생활을 침해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호수 지역은 변덕스러운 날씨로도 악명 높다. 이곳을 여행할 때는 반드시 여벌의 옷과 방수잠바, 방수신발, 지도와 나침반을 준비하자.

느림과 전원…그리고 자유 역사를 머금어 더 풍요롭네

영국 시인 윌리엄 모리스가“영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로 묘사했던 코츠월즈의 바이버리지역. 조르르 늘어선 잿빛 지붕 건물은 중세 때 코츠월즈에서 나는 석회암으로 만들었다. 한때 방직공들이 살며 모직을 만들던 집이다.

여행 가이드북에 도배된 세계 명소를 섭렵한 여행자들은 흔히 착각에 빠진다. 세상의 많은 것을 봤노라고. 하지만 여행 고수들은 안다. 여행의 깊은 맛은 인공으로 구축된 대도시가 아니라 산천과 초목이 빚어낸 시골길에 스며있다는 걸. 가이드북이 기껏해야 한두 장 훑고 스치는 시골 마을에서 우리는 되레 여행(旅行)의 참의미를 깨닫는다. 잠시나마 일상을 잊고 나그네(旅)가 되어 쉬엄쉬엄 거니는(行) 여유, 이것이 진정 떠남의 주목적임을.

영국 잉글랜드 중서부의 코츠월즈(Cotswolds)는 이런 시골 여행의 진수를 만끽할 수 있는 여행지이다. 1960년대 영국 정부가 자연이 아름다운 지역으로 선정한 곳으로 크고 작은 마을 100여개가 오밀조밀 들어서 있다. 아름다운 풍광이 지천으로 널려 있는 영국 내에서도 '그림엽서 같은 마을(picture postcard village)'로 꼽히는 곳, 케이트 모스·엘리자베스 헐리 같은 유명인들이 숨 막히는 런던 생활이 싫다며 박차고 나와 보금자리를 튼 곳이다. 유기농 선진국 영국에서 그린 시크(Green chic·고급 자연주의)를 주도하는 지역이기도 하다. 역사를 머금어 더 풍요로운 코츠월즈의 자연을 만났다.

코츠월즈의 대표적 친환경 농장‘데일스포드’에 진열된 유기농 사과.
산업혁명으로 뒷전에 밀린 자연의 재발견

런던 패딩턴 역을 출발한 기차가 북서쪽으로 2시간 20분 정도 달려 첼트넘(Cheltenham) 스파역에 도착했다. 서울을 떠나 런던에 도착했을 때의 상쾌함보다 몇 배는 더 짙은 상쾌함이 밀려든다. 알싸한 풀 내음과 소똥 냄새가 뒤범벅돼 매연에 무뎌진 후각을 시험한다. 첼트넘은 코츠월즈 여행이 시작되는 관문이다.

코츠월즈는 쉼 없이 마음 비우기를 재촉한다. 잡념으로 엉킨 마음의 실타래를 풀어내고 평온을 엮어내라고 끊임없이 속삭인다. 렌터카에 올라 5분 정도 흘렀을까, 차창 너머로 완만한 구릉 위에서 평화로이 풀을 뜯는 양떼가 보인다. 쪽빛 하늘을 수놓은 양떼구름이 이 모습을 느릿느릿 굽어본다. 코츠월즈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전형적인 풍경. 코츠월즈라는 이름 자체가 양 우리를 뜻하는 '코트(cot)'와 언덕을 일컫는 옛날 영어 단어 '월드(wold)'에서 왔음을 눈으로 이해할 수 있다.

코츠월즈의 자연은 산업화의 반작용이 재발견한 아름다움이다. 중세 때 코츠월즈는 가내 수공 형태의 양모 산업을 기반으로 영국 내에서도 부유한 지역으로 손꼽혔다. 귀족들의 대저택이 즐비하고 한가로이 정원을 꾸미던 여유로운 전원이었다. 하지만 산업혁명으로 기계식 대량 생산이 시작되면서 급격한 쇠퇴를 맞이한다. 돈줄이 마르자 사람들은 떠나고 마을은 황폐해졌다. 쇠퇴 일로를 걷던 코츠월즈로 사람들이 다시 모이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후반 산업화에 반기(反旗)를 든 미술공예 운동이 시작되면서였다. 미술공예 운동을 이끈 공예가이자 시인인 윌리엄 모리스는 산업화의 물결이 미치지 못한 코츠월즈를 본거지로 삼았다. 산업혁명으로 뒷전에 밀렸던 자연과 예술이 다시 부흥했다. 

코츠월즈의 남동쪽에 있는 마을 바이버리(Bibury)는 자연 회귀를 실감할 수 있는 곳이다. 윌리엄 모리스가 “영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이라 묘사했던 마을로, 개발의 뒤안길에서 방치됐던 방직공들의 집이 지금은 그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풍경을 자아낸다. 

①영화 '브리짓 존스의 일기' 1편 촬영 장소였던 스노스힐. 한여름에 크리스마스 장면을 찍으려고 온 마을을 인공 눈으로 덮었다고 한다. ②'코츠월즈의 베니스'라 부르는 보턴온더워터. 아담한 개울이 흐르는 평화로운 마을이다. ③찰스 황태자 농장에 딸린 채소 가게 '베지 셰드'. 밭에서 갓 따온 흙 묻은 당근이 진열돼 있다. ④동화 속 한 장면 같은 브로드웨이의 아기자기한 티룸(tea room). 
◇잿빛 돌집 사이로 자연이 보이네

첼트넘에서 차로 20여분 북쪽으로 향하자 중세의 흔적을 간직한 작은 마을 윈치콤(Winchcombe)이 나타났다. 잿빛 지붕을 얹은 집들이 한 아름 시야에 들어왔다. 코츠월즈의 풍경을 더할 나위 없이 목가적으로 만드는 ‘코츠월즈 스톤 코티지(cottage·시골집)’였다. 런던의 세인트 폴 대성당을 짓는 데도 쓰였다는 코츠월즈 석회암을 쌓아올려 만든 집으로 코츠월즈의 상징이다. 마을마다 조금씩 스타일은 다르지만 전체적 느낌은 비슷하다. 

윈치콤 동쪽으로 차로 15분 정도 떨어진 브로드웨이(Broadway)나 그 옆의 스노스힐(Snowshill)은 좀 더 아기자기한 동화 속 한 장면을 선사한다. 브로드웨이는 전원풍 인테리어로 유명한 로라 애슐리가 살던 곳이고, 스노스힐은 영화 ‘브리짓 존스의 일기 1’을 찍은 곳이다. 브리짓이 크리스마스를 맞아 방문한 시골 고향집이 여기에 있다. 빨간 공중전화 부스 옆 가지런한 돌담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어느덧 영화 속 장면으로 빨려 들어간다.(잠깐, 영화 속 장면은 한여름에 찍었다고. 인공 눈으로 마을 전체를 덮어 장관을 이뤘단다.)

코츠월즈 중간 지점에 있는 스토온더월드(Stow-on-the-Wold)는 앤틱 용품 애호가가 찾을 만한 곳이다. 오후 4시, 영국의 맛을 느끼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다. 지역 주민에게 인기 있다는, 스토온더월드 광장에 있는 카페 허프킨스(Huffkins)에 들러 5.99파운드(약 1만850원)를 주고 크림 티(cream tea) 세트를 시켰다. 갓 구운 스콘과 크림, 잼이 애프터눈티와 함께 나왔다. 달콤한 스콘을 한 입씩 베물며 백발의 영국 할머니들 틈에서 뉘엿뉘엿 저물어가는 해를 하염없이 바라봤다. 여행자의 낭만적 휴식이다.

이곳에서 다시 차를 타고 10여분 떨어진 거리에 있는 보턴온더워터(Bourton-on-the-Water)로 향했다. ‘코츠월즈의 베니스’라는 지역 소개책자의 비유에 헛웃음이 나올 정도로 작은 규모의 개울이 흐르는 동네였다. 하지만 느림과 전원, 자유와 아기자기함을 비교 기준으로 하자면 베니스에 판정승을 거둘 만큼 아름다운 마을이다. 느림을 만끽하려고 우체국에서 엽서 한 장을 보냈다. 수신자는 곧 일상으로 복귀할 나 자신. 우편값은 76펜스(약 1380원)였다. 고물가 속에 발견한 몇 안 되는 저렴한 물가였다.

◇자선사업 하는 찰스 황태자의 유기농장

“밭에서 방금 따온 당근이에요. 겉은 이래도 맛은 죽여준다니까요. 이거 한번 봐요.” 소박한 아낙이 흑갈색 흙이 덕지덕지 붙은 당근을 들어 우지끈 동강 냈다. 흙냄새가 당근에서 폴폴 풍겼다. 이곳은 코츠월즈 남쪽 테트버리(Tetbury)에 있는 ‘베지 쉐드(The Veg Shed)’. 낡은 이 허름한 창고 매장의 주인은 놀랍게도 찰스 황태자다. 가게 옆 농장에서 갓 따온 유기농 채소가 여기서 팔린다.

찰스 황태자는 1980년대 초반 테트버리에 있는 대저택 ‘하이그로브(Highgrove)’를 사들여 농장과 정원을 가꿨다. 친환경 유기농을 실천하기 위해 그는 이 작고 허름한 창고를 운영한다. 테트버리 시내에는 저택과 같은 이름을 내건 유기농 가게 ‘하이그로브’가 있다. 수익금 전액이 자선 기금으로 사용된다. 고부가가치의 수단으로 여겨지는 유기농이 코츠월즈에선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도구로 승화되고 있었다. 유기농 애호가라면 킹햄 외곽에 있는 데일스포드 유기농 매장은 필수 코스이다. 매끈하게 상업화된 유기농을 만날 수 있다.

코츠월즈의 나날을 뒤로 하고 일상으로 복귀한 지 일주일이 되던 날. 야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보턴온더워터에서 부친 엽서가 딱 열흘 만에 아파트 우편함에 도착해 있었다. 이미 망각의 문을 지난 추억이 기억의 강을 건너 잠시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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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스코틀랜드 위스키 증류소 관람·시음
"미네랄 풍부한 토양, 기름진 민스트럴 보리, 증류 원액 맑은 암반수, 증류기 재료가 될 구리…
이 네 가지가 어울려 좋은 위스키 만듭니다"

스코틀랜드 스페이사이드 지역은 숲과 언덕을 따라 유서깊은 위스키 증류소와 고성(古城)들이 들어선 아름답고 고즈넉한 곳이다. 대표적 관광명소인 발린달로크 성. / 정지섭 기자

푸른 숲 끝으로 황금빛 단풍이 사뿐히 내려앉았다. 두툼하고 붉은 털옷을 입은 스코틀랜드 특산종 하이랜드 소(Highland Cow)가 풀을 뜯는 잔디밭은 햇살에 반짝였다.

드문드문 서 있는 건물들은 서양 동화집에서 나온 것처럼 뾰족한 세모 지붕이다. 누군가 일깨워주기 전까진 여기가 '술 만드는 곳'이라는 걸 쉽게 눈치 못 챌 것 같다. 런던 히스로공항에서 1시간 30분을 날아와 도착한 스코틀랜드 애버딘. 다시 공항에서 차로 1시간 30분가량을 달려 도착한 맥캘란(Macallan) 위스키 증류소의 늦가을 풍경이다.

물과 흙, 보리, 구리가 빚은 위스키

햇살이 갑자기 숨더니 차가운 빗줄기가 쏟아졌다. "진정한 스코틀랜드 날씨"라며 데이비드 콕스 맥캘란 총괄 디렉터가 껄껄 웃었다. 맥캘란 위스키 증류소 관람·시음 투어는 빗속에서 첫 걸음을 뗐다.

술 공장이니 술 구경부터 할 줄 알았는데, 반대쪽으로 방향을 틀어 유유히 흐르는 스페이(Spey)강가로 갔다. 강줄기를 끼고 있는 스코틀랜드 동부지역을 스페이사이드(Speyside)라고 일컫는다.

콕스씨가 말했다. "넷이 어우러져 위스키가 됩니다. 미네랄이 풍부한 흙, 여기서 잘 자라는 기름기 풍부한 민스트럴 보리, 증류 원액으로 쓰일 맑은 암반수… 스페이강과 땅의 선물이죠. 여기에 증류기의 재료가 될 훌륭한 구리가 더해져요."

1824년 문을 연 이곳은 맥캘란의 유일한 증류소다. 싱글몰트라고 불리는, 단일 증류소에서만 제품을 만드는 시스템을 180여년 고집해왔다. 스코틀랜드의 위스키 증류소 100여곳 중 50여곳이 '물 좋고 흙 좋다'는 스페이사이드에 몰려 있다.

강가를 등지고 180여년의 비밀이 전수되는 곳, 증류 공장으로 갔다. 거대한 돔처럼 생긴 금속 용기 앞에서 매시턴(mashturn) 작업이 한창이었다. 보리의 싹을 틔워 곱게 빻은 뒤 뜨거운 물을 부어 당분을 최대한 뽑아내 단맛을 이끌어내는 과정이다.

매쉬턴을 마친 원액은 지름 4m 짜리 3만L들이 통으로 나뉘어 옮겨졌고, 통마다 부글부글 끓어 거품을 냈다. 효모를 넣고 발효시켜 알코올 성분을 일으키는 워시백(washback) 과정이다.

그렇게 '물'은 '술'이 돼 거꾸로 세운 나팔처럼 생긴 증류기로 들어가 다시 펄펄 끓여진다.

이렇게 만들어진 따끈한 새내기 위스키들은 짧게는 12년, 길게는 60년 넘도록 참나무통에서 긴 잠을 잔다.

관광객들이 맥캘란 위스키 증류소를 둘러보고 있다. / 정지섭 기자
스페인산(産) 참나무통에서 무르익는다

증류장이 정적이라면 숙성장은 동적이었다. 아름드리 굵기에 사람 키만 한 참나무통에 호스로 위스키 원액을 주입시키는 작업이 한창이다.

참나무통 저장고는 맛과 향을 마지막으로 책임지는 곳이다. 앞 단계까지는 스코틀랜드 안에서 자급자족했지만, 숙성 과정만큼은 '외세'가 개입됐다. 숙성을 책임질 참나무는 모두 스페인 발렌시아산이다. 깊고 그윽한 맛과 향을 간직하기에 그만한 게 없다고 한다.

고즈넉한 고성과 시골철길 볼거리

증류소 말고도 스페이사이드의 볼거리가 있으니 숲과 언덕 사이로 꼭꼭 숨어 있는 작고 아담한 성(castle). 그 중 한 곳인 발린달로크(Ballindalloch)성으로 가는 길은 빼어난 드라이브길이었다.

언덕진 초원을 따라 달리다 스친 곳은 대장간이 있다는 읍내 더프타운. 한국에서도 보기 힘든 단선 철길과 간이역을 만났다. 이 시골 철길의 애칭은 '위스키 라인(Whiskey Line)'이다. 성탄절 등 연휴시즌에만 간간이 운행된다.

저녁 무렵 발린달로크성에 도착했다. 16세기에 지어져 줄곧 한 가문(맥퍼슨-그랜트·Macpherson-Grant)이 살아온 곳이라 했다. 응접실, 주방, 식당에 초라한 하녀 방까지 온전히 보존돼 있다.

여·행·수·첩

어떻게 가나

애버딘까지는 직항편이 없기 때문에 런던에서 영국 국내선으로 갈아타야 한다. 히스로공항 5번 터미널에서 애버딘행 국내선이 하루 4~6차례 운항된다. 운행 시간은 1시간 30분.

어떻게 보나

스코틀랜드의 유명 위스키 증류소는 100곳이 넘고 견학과 시음을 곁들인 투어 코스가 마련돼 있다. 대부분 유료로 10~20파운드(약 1만8000~3만5000원)대. 숙식을 겸한 패키지도 있다. 대중교통편이 마땅치 않기 때문에 현지 투어 프로그램에 참가하는 게 더 편리할 수 있다. 스코틀랜드 위스키협회 홈페이지(www.scotch-whisky.org.uk), 스코틀랜드위스키닷컴(www.scotlandwhisky.com)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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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전통이 살아 숨 쉬는 도시, 영국 런던

유럽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도시 런던은 영국의 수도이자 정치·경제·문화·교통의 중심지다. 세계적인 명소와 관광지가 많아 언제나 전 세계에서 몰려든 관광객으로 북적인다. 작년 모 여행 사이트가 추천하는 세계 최고의 여행지 1위로 선정되기도 했다.

런던을 대표하는 웨스트민스터 사원(Westminster Abbey), 국회 의사당(the Houses of Parliament), 빅벤(Big Ben)을 둘러보고 템즈강(River Thames)을 따라 걸으며 음악을 듣는 것은 여행을 좋아하는 이라면 한 번쯤 꿈꿔봤을 것이다. 볼거리를 쫓아다니다 지치면 식사가 곁들어져 나오는 술집에서 시원한 '에일 맥주'를 맛보는 것도 런던 여행의 묘미다. 우리가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소소한 일조차 특별하게 느껴지도록 하는 묘한 매력이 있는 도시다.

사진=런던 브릿지(London Bridge)/롯데JTB 제공

◆런던 아이(BA London Eye)

런던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런던 아이는 세계에서 가장 큰 회전 관람차다. 런던 아이에 올라타고 30분간 멋진 유람을 즐기기 위해서는 미리 예약해야 한다. 맑은 날에는 어느 방향이든 25마일 떨어진 곳까지 전망할 수 있고, 런던 도심의 멋진 장관과 도시를 굽이쳐 흐르는 템즈 강의 모습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런던 탑(Tower of London)

런던 탑은 중세 시대의 요새이자 감옥이었던 곳이다. 성채라고 불릴 수 있을 정도로 웅장한 규모로 관광객의 눈길을 사로잡는 명소가 되었다. 노르만 정복자 '윌리엄(William the Conqueror)'이 런던을 방어하고 권력을 과시하기 위한 목적으로 세웠으며, 현재 이 탑을 지키는 붉고 화려한 제복 차림의 호위병들(Beefeaters)이 길고 굴곡진 역사 이야기를 들려준다. 어느 지하철역에서나 입장권을 구매할 수 있다.

◆대영박물관(British Museum)

세계 3대 박물관 중 하나인 대영박물관은 런던 여행객이 가장 많이 찾는 장소이자 한 번쯤 꼭 가보고 싶은 곳으로 손꼽힌다. 1759년에 개관했으며, 이집트·메소포타미아·로마 시대 등의 고대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로제타 스톤(Rosetta Stone), 서튼 후 청동 유물(Sutton Hoo Bronzes), 파르테논 대리석 조각 작품(Parthenon Marbles) 등을 볼 수 있으며, 유럽에서 가장 큰 규모의 지붕 덮인 광장인 그레이트 코트(Great Court)에서는 카페, 안내데스크, 상점 등이 있어 잠시 휴식을 취해도 좋다.

◆테이트 현대 미술관(Tate Modern)

2000년 5월에 개관한 테이트 현대 미술관은 내부에 전시된 예술품만큼이나 화려한 건물 외부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예전 뱅크사이드 발전소(Bankside Power Station)를 고쳐 만든 이 미술관은 세인트 폴 대성당에서 나와 밀레니엄 브릿지(Millennium Bridge)를 건너면 찾을 수 있다. 풍경·정물·누드·역사 등 주제별로 전시되어 있고, 20세기 이후의 세계적인 현대 미술품 수천 점을 관람할 수 있다. 이밖에 꼭대기 층 카페에서 내려다보는 런던의 전망도 볼거리 중 하나다.

◆캠든 시장(Camden Market)

캠든타운 역에서 내리면 펑크족·고스족·스케이트 족이 모두 한 데 모인 곳을 발견할 수 있다. 바로 '벅 스트리트 마켓(Buck Street Market)'이라고도 불리는 캠든 시장이다. 독특한 아이템을 찾는 북쪽 런던 사람들과 여행객에게 인기 있는 관광명소로 고급 디자이너의 의류부터 세계 음식·오래된 가구 등 다양한 종류의 물건을 찾아볼 수 있다.

◆사우스 켄싱턴(South Kensington) 

사우스 켄싱턴은 자연사 박물관(Natural History Museum), 과학박물관(Science Museum), 빅토리아 & 알버트 박물관(Victoria & Albert) 등이 모여 있는 일명 '박물관 천국' 지역이다. 몇 주의 시간이 훌쩍 지나가도 모를 정도로 다양한 분야의 전시를 관람할 수 있다. 무료입장으로 부담 없이 전시를 즐길 수 있다.

사진=런던 버킹검 궁전/롯데JTB 제공

런던의 세계적인 명소를 구경하는 시간도 빠듯하지만 도시 곳곳에 숨겨진 명소를 찾아보는 재미도 놓칠 수 없다. 런던에 처음 방문하는 여행자에게 특별한 추억을 만들 수 있는 보석 같은 장소를 추천한다.

◆존 손 경 박물관(Sir John Soane's Museum)

잉글랜드 은행(Bank of England)을 설계한 유명 건축가 존 손 경은 세상을 떠났지만, 그가 설계했던 아름다운 건물은 변함이 없다. 원래 상태 그대로 보존하기로 약속하고 국가에 기증한 '존 손 경 박물관'에서는 수만 개의 건축 드로잉과 서적·건축 장식물을 감상할 수 있다.

◆버러 시장(Borough Market)

런던 서더크(Southwark)에 있는 버러 시장은 세계적인 규모의 재래시장이다. 13세기 이후부터 런던의 식료품 실(London's Larder)이 다양한 형태로 이곳에 존재했다고 알려지며, 입맛을 자극하는 환상적인 맛의 치즈부터 독특한 재료를 섞어 구운 소시지까지 영국에서 생산되는 다양한 종류의 식품을 만나볼 수 있다.

◆하이게이트 공동묘지(Highgate Cemetery)

하이게이트(Highgate)를 향해 북쪽으로 가면 고상한 분위기의 마을이 나타나는데 이곳에는 수많은 유명인이 잠들어 있는 무덤이 있다. 칼 마르크스(Karl Marx), 조지 엘리엇(George Eliot) 등 유명인의 묘지 외에도 근처에는 런던에서 가장 푸른 녹지대로 이루어진 함스테드 황야(Hampstead Heath)가 자리 잡고 있다.

◆그리니치(Greenwich)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배 중 하나인 커티 삭(Cutty Sark), 국립 해양 박물관(National Maritime Museum), 왕립 천문대(Royal Observatory) 등을 관람할 수 있는 그리니치는 런던 시내에서 라이트 철도(DLR)를 타면 15분 정도 걸린다. 중세의 역사적 건물이 많이 남아있으며, 예술품과 공예품을 파는 시장을 둘러보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롯데그룹 여행기업 롯데제이티비는 영국 속 네 나라를 여행할 수 있는 '영국 한나라 일주' 상품을 출시했다. 런던은 물론 스코틀랜드·북아일랜드·웨일즈·아일랜드를 여행하는 상품으로, 영국 전역을 두루 돌아볼 수 있는 일정으로 구성되어 있다. 셰익스피어 생가 투어, 기네스 맥주 양조장 방문, 북아일랜드 수도 벨파스트, 고고학 유적지 스톤헨지 방문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제공된다. 매주 금요일 출발하며 전 일정 1급 호텔이 제공된다. 자세한 사항은 롯데제이티비 홈페이지(http://www.lottejtb.com)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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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스타·패션 블로거·셰프 등 전문가가 말하는 유명 도시의 진면목

파리에선 백화점이나 명품 매장에서 쇼핑하고, 피렌체에서는 두오모를 비롯한 역사 유적을 감상하고, 런던에서는 홍차를 마셔야 한다고 알았다? 틀린 건 아니지만 많은 걸 놓치실 뻔했습니다. 올여름 많은 한국 사람이 찾을 세계 유명 도시들의 숨겨진 진면목을 알려드립니다. 바리스타, 패션 블로거, 요리사 등 전문가들이 어떻게 이 도시들을 즐기며 여행하는지 이제 보여드립니다.

영국 그리고 런던 하면 홍차(紅茶)가 자연스럽게 떠오르지만, 사실 런던은 세계 최고 수준의 커피숍과 바리스타들이 곳곳에 있는 ‘커피의 도시’이기도 하다. 짧은 휴가 기간 방문할 만한 카페를 소개한다.

 몬머스 커피(Monmouth Coffee)

영국의 스페셜티 커피(Specialty Coffee·커피 전문가들이 엄선한 상위 10% 미만의 고급 커피)의 산증인이다. 토트넘 코트 주변 몬머스가(Monmouth Street) 본점 포함, 2개의 매장이 있다. 가장 독창적인 메뉴는 핸드드립(hand drip) 커피로 만든 카페오레다. 에스프레소 커피가 아닌 핸드드립 커피에 따뜻한 우유를 첨가해 만들었다. 에스프레소를 넣은 일반적인 카페라테가 커피와 우유의 조합이 날카롭게 대칭된다고 하면, 몬머스의 카페오레는 서로를 보듬어 주는 융합적인 성향이라 할 수 있다. 바리스타들이 착용한 독특한 앞치마가 중세적이며 고즈넉한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매장에서 원두 구입이 가능하다. 27 Monmouth Street, 020-73793516

 프루프록 커피(Prufrock Coffee)

영국 최고 바리스타로 꼽히는 길림 데이비스가 창업한 런던의 ‘프루프록 커피’. 특유의 상큼한 맛을 품은 에스프레소가 이름 높다.
영국 최고 바리스타로 꼽히는 길림 데이비스가 창업한 런던의 ‘프루프록 커피’. 특유의 상큼한 맛을 품은 에스프레소가 이름 높다. / 심재범 제공
2009년 미국에서 개최된 WBC(세계바리스타챔피언십)대회에서 우승한 기림 데이비스(Gwylim Davies)가 창업한 매장. 현존하는 영국 바리스타 중 최고의 커피 추출 실력을 가졌다고 알려졌다. 최고의 로스터리(roastery·커피 원두 배전업체)로 꼽히는 스퀘어마일(Square Mile)의 커피 원두를 사용한다. 에스프레소 커피와 브루잉 커피(brewing·일반 커피) 모두 마실 수 있다. 여름에도 서늘한 영국 날씨 탓인지 한여름에도 따뜻한 커피 종류가 많고 리스트레토(진하고 적게 추출한 에스프레소)가 굉장히 특징적이다. 특유의 상큼한 에스프레소 맛 때문에 호불호(好不好)가 갈리기도 한다. WBC를 비롯해서 수많은 대회 우승 트로피가 매장 내 곳곳에 놓여 있다. 23-25 Leather Lane, 020-72420467

 에스프레소룸(Espresso Room)

홀덴(Holden)역 주변에 있는 에스프레소룸은 룸(room)이라는 단어가 적절할 정도로 아담하다. ‘미스터 벤(Mr. Ben)’으로 통하는 이 집주인은 또 다른 커피 강국인 호주 출신이다. 영국에는 호주에서 온 바리스타들이 많은데, 미스터 벤은 호주 출신 바리스타들의 대부(代父)격이다.

영국 현지 커피전문가 랭킹에서 해마다 수위(首位)를 다툴 정도로 정확하고 안정적인 커피 추출로 알려졌다. 대표적인 메뉴는 호주 커피의 대명사인 플랫화이트(flat white). 호주식 플랫화이트는 거품이 적은 라테의 다른 이름이다. 영국식 플랫화이트는 2샷 정도의 에스프레소 커피가 들어가는 진하고 강한 라테를 말한다. 31-35 Great Ormond Street Bloomsbury, 077-60714883

 T&P

커피 추출 관련 전문 용어인 태핑(tapping)과 패킹(packing)의 앞글자를 매장 이름에 사용한다. 독특한 사연이 많고 독창적인 매장 분위기로 유명하다. 3개의 매장 중 1호점은 자전거가 간판 기능을 하고 있고, 매장에 걸린 거울은 건물에서 발견된 것으로 수 세기 전 것으로 추정된다. 스퀘어마일과 함께 영국을 대표하는 로스터리인 유니언 로스팅(Union Roasting)의 커피 원두를 사용한다. 미국에서 선호하는 하리오(Hario) 브랜드의 드리퍼(추출기)를 이용한 핸드드립 커피가 특징적이다. 영국 브루어스컵 챔피언으로 현재 스퀘어마일에서 일하는 한국계 박상호 바리스타가 근무했던 곳이기도 하다. 114 Tottenham Court Road Fitzrovia, 020-75802163

 노트 뮤직&커피(Notes Music & Coffee)

런던 최고의 커피점 중 하나로 꼽히는 ‘노트 뮤직 & 커피’.
런던 최고의 커피점 중 하나로 꼽히는 ‘노트 뮤직 & 커피’. / 심재범 제공
런던의 대표적 미술관인 내셔널갤러리 옆에 있는 커피·와인·음반 복합매장이다. 원래는 희귀 음반을 취급하는 곳이었지만 커피와 와인은 물론 저렴하지만 품질 좋은 식사까지 가능한 장소로 이름났다. 스퀘어마일의 커피 원두와 이탈리아 라 마르조코(La Marzocco)의 최상급 에스프레소 머신인 스트라다(Strada), 정확한 계량 및 온도 측정이 가능하다는 ‘우버 보일러’까지 갖췄다. 지난해 전문가 평가에서 런던 커피 랭킹 2위에 올랐다. 고급스러운 매장 분위기도 훌륭하다. 리스트레토 추출의 에스프레소도 좋고, 밀크 스티밍(milk steaming·우유 거품내기) 솜씨가 좋아 카푸치노도 맛있게 만든다. 내셔널갤러리를 관람하고 나와 샐러드를 곁들인 샌드위치를 먹은 다음 얄미울 만큼 양이 적지만 맛의 균형이 좋고 깔끔한 리스트레토를 한잔 한다면, 정말 영국에 있다는 느낌을 받을지 모른다. 커피를 마신 다음 희귀한 클래식 음반을 발견할 수도 있지 않을까? 31 Saint Martin’s Lane, 020-7240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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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운 신부는 왜 언덕을 올랐을까 - 햄스테드 히스

작고 땅딸막한 몸에 커다란 챙의 모자, 우중충한 영국 날씨를 못 미더워 하는 우산…. 영국을 대표하는 지성 G.K 체스터튼은 뒷모습의 실루엣만으로도 추리 광들의 마음을 두근거리게 하는 탐정, 브라운 신부를 탄생시켰다. 신부는 단편 [푸른 십자가]를 통해 처음 우리 앞에 등장해, 프랑스에서 건너온 세기의 도둑 플랑보를 데리고 런던 여기저기를 돌아다닌다. 그가 노리는 사파이어 십자가를 안전하게 처리한 뒤에, 파리 경찰청장 발렝탱으로 하여금 그를 잡을 기회를 주기 위한 것. 스트랫퍼드 역에서 리버풀 가를 지나 투프넬 공원을 지나면서, 신부는 온갖 이상스런 행동으로 발렝탱의 주의를 끈다. 레스토랑 벽에 수프를 뿌리고, 땅콩과 오렌지 팻말을 바꾸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노란 버스를 타고 간 곳이 런던 북쪽의 녹지 햄스테드 히스(Hampstead Heath). 인적 드문 공원에서 세기의 도둑과 천재적인 탐정의 입담 대결이 펼쳐진다.

셜록 홈즈는 아직 거기 살고 있나 - 베이커 가 221b 번지

런던에서도 가장 시끌벅적한 지하철 역 중의 하나인 베이커 스트리트(Baker Street)에 내리면 익숙한 얼굴을 만나게 된다. 역의 안내판 아래에 사냥 모자를 쓰고 파이프 담배를 문 그 남자, 셜록 홈즈가 등장한다. 작가 코난 도일은 소설 속에서 이 명탐정의 주소를 ‘베이커 가 221b 번지’로 기록했는데, 런던 시민들은 그 영웅을 진짜 그 동네에서 살아가도록 만들었다. 베이커 가에는 원래 221b 번지가 없었다. 그러나 많은 독자들이 진짜 홈즈가 존재하는 양, 그에게 팬레터나 사건을 의뢰하는 편지를 보냈다고 한다. 편지는 주소가 가까웠던 애비 내셔널 뱅크(Abbey National Bank)로 전달되었는데, 지금은 이 거리 북쪽에 세워진 ‘셜록 홈즈 뮤지엄’으로 보내진다고 한다. ‘221b’로 주소가 표기된 이 박물관 안에서 우리는 홈즈와 왓슨의 집무실과 여러 사건의 기록을 들여다볼 수 있다.


셜록 홈즈 박물관에 재현된 집무실의 모습

여행자는 왜 늑대우리에 갇혔나 - 런던 동물원

런던의 미스터리는 괴물들의 세계로 이어진다. 19세기에는 지킬 박사가 변신한 하이드 씨, 그리고 20세기에는 미국에서 온 늑대인간이 안개 낀 런던의 밤거리를 헤매 다닌다. 1981년에 등장한 [런던의 늑대인간](An American Werewolf in London)은 저예산으로 제작된 컬트 호러로, 세계 최첨단 도시 런던을 빅토리아의 악몽으로 되돌려놓는다. 영국으로 배낭여행 온 미국의 젊은이들이 요크셔의 황무지에서 정체불명의 야수에게 물린 뒤, 하나는 죽고 나머지 하나는 런던의 병원으로 이송된다. 달이 뜨면 광폭한 늑대인간으로 변하게 된 이 청년은 런던의 거리와 지하철에서 여러 희생자를 만들고, 다음날 런던 동물원(London Zoo)의 늑대 우리에서 눈을 뜬다. 동물원은 리젠트 파크의 북쪽에 자리잡고 있다. 마이클 잭슨은 이 영화에 매료되어, 런던에 살고 있던 존 랜디스 감독을 불러 뮤직 비디오 ‘스릴러’의 연출을 맡겼다고 한다.

포와르는 집에 돌아와 있을까 - 화이트헤이븐 맨션

런던의 미스터리 세계에서 여왕 아가사 크리스티를 빠뜨릴 수는 없다. 그러나 [나일 살인사건], [오리엔트 특급 살인], [캐리비안 미스터리]와 같은 그 대표작들의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그 상상력의 행동반경은 런던을 크게 벗어나 아시아와 아프리카에 이르고 있다. 아니면 밀실과도 같은 시골의 장원이나 섬을 배경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크리스티 여사의 가장 유명한 주인공인 전직 벨기에 경찰 엘큘 포와르가 바로 여기 런던에 살고 있다. 런던 중심부인 차터하우스 스퀘어(Charterhouse Square)에 있는 플로린 코트(Florin Court)는 1936년에 지어진 아름다운 아르데코 스타일의 아파트다. 1980년대에 제작된 TV 미스터리 시리즈에서 바로 이곳이 포와르가 살고 있는 가상의 건물, 화이트헤이븐 맨션(Whitehaven Mansion)로 등장한다.


포와르는 런던을 홈 베이스로 삼아 대륙을 넘나든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살인마는 어디에 - 이스트 엔드

잭더 리퍼가 절반의 신장과 함께 보냈다는 편지 '프롬 헬'


어쩌면 런던을 진정한 공포의 도시로 만든 것은 바로 이 한 명의 범죄자 때문인지 모른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살인마, 잭 더 리퍼(Jack the Ripper). 1888년 당시 런던의 동쪽인 이스트 엔드(East End)는 팽창하는 도시의 가장 밑바닥 인생들을 수용하기 위한 어두운 군락이었다. 가난한 노동자, 걸인, 창녀들이 뒤엉켜 사는 이곳 화이트채플(Whitechapel) 주변에서 의문의 연쇄 살인 사건이 벌어진다. 주로 창녀들을 노린 이 살인 사건이 세간에 엄청난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사이에, 런던 경찰국 ‘스코틀랜드 야드’에 범인이라 자칭하는 자가 편지를 보내온다. 지금은 가짜라는 게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어쨌든 그 편지에서 스스로를 지칭한 ‘잭 더 리퍼’는 연쇄 살인마의 대명사가 되었다. 잭 더 리퍼는 이후 수백 편의 픽션으로 만들어졌는데, 셜록 홈즈가 잭 더 리퍼라는 사실을 왓슨 박사가 밝혀내는 이야기도 있다. 그 중에 가장 뛰어난 작품은 앨런무어와 에디 켐벨의 [프롬 헬]이 아닐까?

모든 사건이 모여드는 하수구 - 뉴 스코틀랜드 야드

미국 범죄 드라마의 팬들이 'NYPD'를 모를 수 없듯이, 추리 소설 광들에게 ‘뉴 스코틀랜드 야드(New Scotland Yard)’는 불멸의 울림을 가진 이름이다. ‘더 야드’는 런던 경찰총국, 혹은 런던 경찰을 말한다. 원래 경찰서가 있던 거리가 스코틀랜드 야드여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웨스터민스터에 있던 건물이 현재는 빅토리아 스트리트로 옮겨졌는데, 여기에 블랙 뮤지엄(Black Museum)이라는 범죄 박물관이 있다. 지팡이 칼과 우산 총 등 여러 범죄 관련 증거물, 잭 더 리퍼가 썼다고 여겨지는 편지 ‘프롬 헬’을 비롯해, 여러 사형수들의 데스마스크도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1951년 오손 웰즈는 이곳의 전시품을 테마로 꾸민 라디오 쇼 ‘블랙 뮤지엄’을 만들기도 했다.


잭 더 리퍼 사건 당시, 경찰의 무능을 풍자한 만화

탑에서 사라진 미소년 왕자들은 어디로 - 런던 타워

존 에버렛 밀레스가 그린 탑 속의 두 왕자(1878년,부분)


대영제국의 역사는 피의 역사다. ‘브레이브 하트’를 비롯한 수많은 반역자, 살인자, 해적들이 이 도시에서 처형되어 피를 뿌렸다. 그 중에서 가장 가슴 아픈 미스터리의 장소는, 지금도 많은 여행객들이 방문하는 런던 타워(Tower of London). 1483년 영국 왕 리차드 3세는 자신의 형 에드워드 4세의 두 아들인 에드워드와 리차드를 이 탑에 가둔다. 런던 타워는 견고한 성에 둘러싸인 탑인데, 왕족들의 거주지이기도 했지만 실질적으로는 이들의 감옥이나 마찬가지였다. 13살과 10살인 어린 형제는 의회와 연관된 불법 행위의 혐의를 받고 있었는데, 이 탑에 갇힌 후 그들의 모습을 본 사람이 없었다. 처형되었다거나 병으로 죽었다거나 장례를 치렀다거나 하는 기록이 전혀 없이 사라진 것이다. 1674년 화이트 타워의 보수 공사 중에 두 어린이의 뼈가 발견되어 이들로 여겨져 안장되기도 했으나, 확실한 증거는 없다.

미스터리와 범죄를 테마로 런던을 돌아다니는 여행의 방법은 무궁무진하다. 셜록 홈즈 박물관이 있는 베이커 스트리트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밀랍 인형 박물관 ‘마담 투소’가 처음 문을 연 곳이다. ‘공포와 경악의 방(Chamber of Horrors and Scream)’은 범죄에 대해 페티시즘을 지닌 런던 시민들의 취향을 잘 보여준다. 여러 연쇄 살인범과 피살자들의 모습을 복원해 놓았고, 마리 앙트와네트의 목을 자른 길로틴도 있다. 안개 속의 런던 밤거리를 헤매며 공포의 현장들을 찾아가는 미스터리 투어 코스(tourguides.org.uk)도 여러분을 기다린다. 진짜 탐정이 된 듯 런던을 헤매며 범죄자를 추격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게임들도 있다. [스코틀랜드 야드]는 게이머들이 런던의 경찰이 되어 한 명의 엑스맨을 추적하는 보드 게임, [미스터리 인 런던]은 여러 힌트들을 통해 런던에서 벌어지는 범죄를 해결해나가는 PC게임이다.

 

영국 밸런싱 반 호텔

[클릭 여기] (2) 영국 밸런싱 반 호텔
리빙 아키텍처 제공
얼마 전 영국의 사보이호텔 관계자를 만났을 때다. "영국이 현대적 의미의 호텔 발상지라는 점에서 호텔업이 발달하기도 했지만, 많은 혁신을 이뤄 업계의 '참고서'가 되고 있죠. 120년 역사의 사보이호텔도 마찬가지예요. '펜트하우스' 개념을 처음 선보인 곳이죠." 오픈 당시 영국 호텔로는 처음으로 전기 엘리베이터를 도입한 뒤, 총괄 지배인은 생각했다. '엘리베이터도 있고, 옥상에서 바라보는 런던 템스 강도 훌륭하다. 그럼 뭘 망설이는가. 꼭대기에 최고급 룸을 만들자.' 당시 최고급 객실은 모두 1층이었다고 한다. 사보이의 실험은 성공했고, 오늘날 대부분 특급 호텔은 이를 따르고 있다.

과거 사보이의 시도처럼 고정관념에 도전장을 내민 호텔들이 늘고 있다. 영국 남부 지방 서포크를 향한 것도 '도전의 현장'을 확인하고 싶어서다. 국내에도 많은 팬이 있는 소설가 알랭 드 보통의 아이디어로 탄생한 곳이라는 설명에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CNN이 선정한 '죽기 전 가봐야 할 호텔 15곳'에도 이름을 올렸다. 런던에서 다른 취재를 하다 짬을 냈는데, 기차로 왕복 세 시간이 안 되는 거리라 하루 반나절만 투자하면 됐다.

언덕 위에 아슬아슬하게 세워진 건물이 눈을 사로잡는다. 반은 땅에, 나머지 반은 언덕 위에 걸처져 있는 모습이다. 아니, 15m 높이 허공에 떠 있다. 어린 시절 수학 비율 문제를 풀 듯 균형점을 정확히 찾은 형태다. 그 이름도 밸런싱 반(Balancing Barn·균형 있는 헛간·사진)이다. 이를 선보인 영국 창작 그룹 '리빙 아키텍처(Living Architecture)' 운영담당 리처드 데이는 "우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알랭 드 보통이 제기한 '행복한 건축물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서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됐다"며 "건축가의 창의를 실험하고, 사람과 건물, 조경이 얼마나 조화를 이루며 행복해질 수 있는지 보여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리빙 아키텍처는 지난 2008년 버려진 건물들, 폐허가 된 헛간이 있던 지역에 '지역 생물 보호'와 '인간'이라는 키워드를 가장 잘 조화시킬 수 있는 공간을 디자인했다. 마구잡이로 번식해 이 지역 전통 식물의 생태를 위협하던 외래 식물들은 최대한 줄였다.

건축은 네덜란드 건축가 그룹인 MVRDV가 맡았다. 창업자 위니 마스는 각종 인터뷰를 통해 "다른 한쪽으로 갈수록 위태해지는 기분을 통해 삶의 '균형'이란 무언지 생각해 보게했다"며 "카펫을 까는 대신 밑바닥 통유리를 통해 잔디가 마치 카펫 같게 했다"고 말했다. 방 4개로 8명 정원 기준으로 4박 5일에 150만원 정도. 1박에 1인당 5만원이 안 돼 가족·친구끼리 휴가를 보내거나 파티하기 위해 온다고 했다. 현재 7월까지 예약이 꽉 차 있었다. 알랭 드 보통은 그의 책 '행복의 건축'에서 이렇게 말했다. "어떤 공간과 어떤 희망이 일치했을 때 그걸 우린 집이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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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의 묘미 중 하나는 예상하지 못했던 사람과 문화, 음식을 만나는 것이다. 이런 이국 정서를 잘 느낄 수 있는 곳은 이미 널리 알려진 도심이나 유명관광지가 아니라, 여행가이드북에도 잘 나와 있지 않고 여행사의 패키지 여행코스에도 들어가지 않는 낯선 골목인 경우가 많다. 런던이스탄불 거리에서 숨겨진 보석을 발견했다.

100년 이상 품위 지켜온 남성의 보물창고 같은 곳

'신사의 나라' 영국. 그 수도 런던엔 남성용 의류·잡화 매장이 모인 '신사의 거리'가 있다. 간판에 적힌 창업연도를 보면 100년은 기본이고 200년이 넘는 곳도 있다. 오랜 세월 신사복의 품위를 묵묵히 지켜온 물건을 만날 수 있어 클래식한 멋을 추구하는 남성들에게는 보물창고와도 같은 곳이다. 런던 중심가 지하철 피카딜리서커스 역(驛)의 한 블록 아래를 지나는 600m 남짓한 이 거리. 저민 스트리트(Jermyn Street)다.

셔츠 사이즈만 50여 가지

쇼핑백을 든 남성들이 런던 저민 스트리트의 셔츠 전문점 '핑크'앞을 지나고 있다. / 채민기 기자
셔츠 전문으로 이름난 가게들이 눈에 띈다. 'T.M.르윈'도 그중 하나. 매장 벽면 전체에 셔츠가 차곡차곡 꽂혀 있다. 줄자를 목에 건 직원에게 도움을 청하면 목 둘레와 화장(뒷목 가운데부터 팔끝까지의 길이)을 재서 사이즈를 찾아 준다. 세분된 목 둘레와 화장을 조합하면 50가지가 넘는 사이즈가 나온다고 한다.

몇 걸음 옮기면 '핑크' 매장이 나온다. 셔츠 색은 저마다 달라도 브랜드 이름의 뜻을 살려 거셋(재봉선에 덧대는 삼각형의 헝겊)은 분홍색 헝겊을 쓰는 것으로 유명한 곳이다. '턴불 앤 아서'는 영국 왕실의 납품 허가(royal warrant)를 받은 고급 셔츠 전문점이다. 찰스 왕세자를 비롯한 명사들이 찾는 셔츠로 알려져 있다.

셔츠뿐 아니라 남성 의류도 다양하다. '해켓'은 세계적인 패션 블로그 '사토리얼리스트'에 등장하는 등 멋쟁이로 이름난 제레미 해켓 회장이 이끄는 브랜드. 감색에 굵은 흰 줄무늬가 들어간 보팅(boating) 블레이저처럼 클래식하면서 멋스러운 옷을 선보인다. '찰스 티릿'도 반바지 같은 캐주얼 의류부터 예복인 모닝코트까지 갖추고 있다.

최고급 영국 구두로 꼽히는 '존 롭'과 '에드워드 그린'을 비롯해 한국에서도 패션 리더들 사이에서 인기인 '처치스'와 '크로켓 앤 존스' 등 구두 매장도 모여 있다. 고객이 착용을 원할 경우 직원이 고객과 마주 앉아서 신발을 신고 끈을 매는 것까지 세심하게 도와준다.

지팡이, 면도칼… 영화에서 보던 소품들

런던 세인트 제임스 스트리트에 있는 J.J. 폭스 매장 지 하에 꾸며놓은 시거 전시실. / 채민기 기자
'테일러 오브 올드 본드 스트리트'라는 긴 이름의 가게는 쇼윈도에 면도용품이 들어차 있다. 가죽띠에 문질러 쓰는 면도칼, 오소리털로 만든 면도용 솔처럼 영화에나 나올 법한 물건들이 가득하다. '베이츠'는 중절모부터 팔각형의 '뉴스보이 캡'까지 모자를 취급하는 전문점이다. 이달 한국 진출을 앞둔 '벤슨 앤 클렉'은 재킷에 부착하는 단추와 휘장이 전문이다. 이곳 역시 왕실 납품 허가를 받았다.

'다비도프'는 시거가 주력이지만 담배를 피우지 않는 사람에게도 재미있는 곳이다. 크기와 소재가 조금씩 다른 파이프나 시거 커터 같은 끽연용구를 구경할 수 있다. 손잡이에 조각을 새긴 지팡이, 긴 우산처럼 영국 신사가 들고 다닐 법한 액세서리도 갖췄다.

저민 스트리트와 수직으로 만나는 세인트 제임스 스트리트에도 재미있는 가게들이 있다. 1787년 창업한 시거 전문점 'J.J. 폭스'는 매장 지하에 무료로 입장할 수 있는 전시실을 꾸며 놨다. 전시된 거래 기록에 따르면 이곳의 단골이었던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총리는 26살이었던 1900년 8월 9일 처음 이 가게를 방문해 4파운드 11실링어치의 담배를 사간 것으로 돼 있다. 그가 가게를 방문할 때마다 앉곤 했던 '처칠 의자'도 남아 있다.

1805년 이 거리에 문을 연 이발소 '트루핏 앤 힐'은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부군 필립 공(公)부터 비틀스 멤버였던 폴 매카트니까지 각계의 명사가 고객이다. 면도만 하는 데 30분쯤 걸린다. 39파운드(약 7만원)라는 가격이 만만치는 않지만 세계적 명사들이 애용하는 서비스를 받는 즐거움을 느껴볼 수 있다.

느림과 전원…그리고 자유 역사를 머금어 더 풍요롭네

영국 시인 윌리엄 모리스가“영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로 묘사했던 코츠월즈의 바이버리지역. 조르르 늘어선 잿빛 지붕 건물은 중세 때 코츠월즈에서 나는 석회암으로 만들었다. 한때 방직공들이 살며 모직을 만들던 집이다.

여행 가이드북에 도배된 세계 명소를 섭렵한 여행자들은 흔히 착각에 빠진다. 세상의 많은 것을 봤노라고. 하지만 여행 고수들은 안다. 여행의 깊은 맛은 인공으로 구축된 대도시가 아니라 산천과 초목이 빚어낸 시골길에 스며있다는 걸. 가이드북이 기껏해야 한두 장 훑고 스치는 시골 마을에서 우리는 되레 여행(旅行)의 참의미를 깨닫는다. 잠시나마 일상을 잊고 나그네(旅)가 되어 쉬엄쉬엄 거니는(行) 여유, 이것이 진정 떠남의 주목적임을.

영국 잉글랜드 중서부의 코츠월즈(Cotswolds)는 이런 시골 여행의 진수를 만끽할 수 있는 여행지이다. 1960년대 영국 정부가 자연이 아름다운 지역으로 선정한 곳으로 크고 작은 마을 100여개가 오밀조밀 들어서 있다. 아름다운 풍광이 지천으로 널려 있는 영국 내에서도 '그림엽서 같은 마을(picture postcard village)'로 꼽히는 곳, 케이트 모스·엘리자베스 헐리 같은 유명인들이 숨 막히는 런던 생활이 싫다며 박차고 나와 보금자리를 튼 곳이다. 유기농 선진국 영국에서 그린 시크(Green chic·고급 자연주의)를 주도하는 지역이기도 하다. 역사를 머금어 더 풍요로운 코츠월즈의 자연을 만났다.

코츠월즈의 대표적 친환경 농장‘데일스포드’에 진열된 유기농 사과.
산업혁명으로 뒷전에 밀린 자연의 재발견

런던 패딩턴 역을 출발한 기차가 북서쪽으로 2시간 20분 정도 달려 첼트넘(Cheltenham) 스파역에 도착했다. 서울을 떠나 런던에 도착했을 때의 상쾌함보다 몇 배는 더 짙은 상쾌함이 밀려든다. 알싸한 풀 내음과 소똥 냄새가 뒤범벅돼 매연에 무뎌진 후각을 시험한다. 첼트넘은 코츠월즈 여행이 시작되는 관문이다.

코츠월즈는 쉼 없이 마음 비우기를 재촉한다. 잡념으로 엉킨 마음의 실타래를 풀어내고 평온을 엮어내라고 끊임없이 속삭인다. 렌터카에 올라 5분 정도 흘렀을까, 차창 너머로 완만한 구릉 위에서 평화로이 풀을 뜯는 양떼가 보인다. 쪽빛 하늘을 수놓은 양떼구름이 이 모습을 느릿느릿 굽어본다. 코츠월즈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전형적인 풍경. 코츠월즈라는 이름 자체가 양 우리를 뜻하는 '코트(cot)'와 언덕을 일컫는 옛날 영어 단어 '월드(wold)'에서 왔음을 눈으로 이해할 수 있다.

코츠월즈의 자연은 산업화의 반작용이 재발견한 아름다움이다. 중세 때 코츠월즈는 가내 수공 형태의 양모 산업을 기반으로 영국 내에서도 부유한 지역으로 손꼽혔다. 귀족들의 대저택이 즐비하고 한가로이 정원을 꾸미던 여유로운 전원이었다. 하지만 산업혁명으로 기계식 대량 생산이 시작되면서 급격한 쇠퇴를 맞이한다. 돈줄이 마르자 사람들은 떠나고 마을은 황폐해졌다. 쇠퇴 일로를 걷던 코츠월즈로 사람들이 다시 모이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후반 산업화에 반기(反旗)를 든 미술공예 운동이 시작되면서였다. 미술공예 운동을 이끈 공예가이자 시인인 윌리엄 모리스는 산업화의 물결이 미치지 못한 코츠월즈를 본거지로 삼았다. 산업혁명으로 뒷전에 밀렸던 자연과 예술이 다시 부흥했다.

코츠월즈의 남동쪽에 있는 마을 바이버리(Bibury)는 자연 회귀를 실감할 수 있는 곳이다. 윌리엄 모리스가 “영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이라 묘사했던 마을로, 개발의 뒤안길에서 방치됐던 방직공들의 집이 지금은 그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풍경을 자아낸다.

①영화 '브리짓 존스의 일기' 1편 촬영 장소였던 스노스힐. 한여름에 크리스마스 장면을 찍으려고 온 마을을 인공 눈으로 덮었다고 한다. ②'코츠월즈의 베니스'라 부르는 보턴온더워터. 아담한 개울이 흐르는 평화로운 마을이다. ③찰스 황태자 농장에 딸린 채소 가게 '베지 셰드'. 밭에서 갓 따온 흙 묻은 당근이 진열돼 있다. ④동화 속 한 장면 같은 브로드웨이의 아기자기한 티룸(tea room).
◇잿빛 돌집 사이로 자연이 보이네

첼트넘에서 차로 20여분 북쪽으로 향하자 중세의 흔적을 간직한 작은 마을 윈치콤(Winchcombe)이 나타났다. 잿빛 지붕을 얹은 집들이 한 아름 시야에 들어왔다. 코츠월즈의 풍경을 더할 나위 없이 목가적으로 만드는 ‘코츠월즈 스톤 코티지(cottage·시골집)’였다. 런던의 세인트 폴 대성당을 짓는 데도 쓰였다는 코츠월즈 석회암을 쌓아올려 만든 집으로 코츠월즈의 상징이다. 마을마다 조금씩 스타일은 다르지만 전체적 느낌은 비슷하다.

윈치콤 동쪽으로 차로 15분 정도 떨어진 브로드웨이(Broadway)나 그 옆의 스노스힐(Snowshill)은 좀 더 아기자기한 동화 속 한 장면을 선사한다. 브로드웨이는 전원풍 인테리어로 유명한 로라 애슐리가 살던 곳이고, 스노스힐은 영화 ‘브리짓 존스의 일기 1’을 찍은 곳이다. 브리짓이 크리스마스를 맞아 방문한 시골 고향집이 여기에 있다. 빨간 공중전화 부스 옆 가지런한 돌담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어느덧 영화 속 장면으로 빨려 들어간다.(잠깐, 영화 속 장면은 한여름에 찍었다고. 인공 눈으로 마을 전체를 덮어 장관을 이뤘단다.)

코츠월즈 중간 지점에 있는 스토온더월드(Stow-on-the-Wold)는 앤틱 용품 애호가가 찾을 만한 곳이다. 오후 4시, 영국의 맛을 느끼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다. 지역 주민에게 인기 있다는, 스토온더월드 광장에 있는 카페 허프킨스(Huffkins)에 들러 5.99파운드(약 1만850원)를 주고 크림 티(cream tea) 세트를 시켰다. 갓 구운 스콘과 크림, 잼이 애프터눈티와 함께 나왔다. 달콤한 스콘을 한 입씩 베물며 백발의 영국 할머니들 틈에서 뉘엿뉘엿 저물어가는 해를 하염없이 바라봤다. 여행자의 낭만적 휴식이다.

이곳에서 다시 차를 타고 10여분 떨어진 거리에 있는 보턴온더워터(Bourton-on-the-Water)로 향했다. ‘코츠월즈의 베니스’라는 지역 소개책자의 비유에 헛웃음이 나올 정도로 작은 규모의 개울이 흐르는 동네였다. 하지만 느림과 전원, 자유와 아기자기함을 비교 기준으로 하자면 베니스에 판정승을 거둘 만큼 아름다운 마을이다. 느림을 만끽하려고 우체국에서 엽서 한 장을 보냈다. 수신자는 곧 일상으로 복귀할 나 자신. 우편값은 76펜스(약 1380원)였다. 고물가 속에 발견한 몇 안 되는 저렴한 물가였다.

◇자선사업 하는 찰스 황태자의 유기농장

“밭에서 방금 따온 당근이에요. 겉은 이래도 맛은 죽여준다니까요. 이거 한번 봐요.” 소박한 아낙이 흑갈색 흙이 덕지덕지 붙은 당근을 들어 우지끈 동강 냈다. 흙냄새가 당근에서 폴폴 풍겼다. 이곳은 코츠월즈 남쪽 테트버리(Tetbury)에 있는 ‘베지 쉐드(The Veg Shed)’. 낡은 이 허름한 창고 매장의 주인은 놀랍게도 찰스 황태자다. 가게 옆 농장에서 갓 따온 유기농 채소가 여기서 팔린다.

찰스 황태자는 1980년대 초반 테트버리에 있는 대저택 ‘하이그로브(Highgrove)’를 사들여 농장과 정원을 가꿨다. 친환경 유기농을 실천하기 위해 그는 이 작고 허름한 창고를 운영한다. 테트버리 시내에는 저택과 같은 이름을 내건 유기농 가게 ‘하이그로브’가 있다. 수익금 전액이 자선 기금으로 사용된다. 고부가가치의 수단으로 여겨지는 유기농이 코츠월즈에선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도구로 승화되고 있었다. 유기농 애호가라면 킹햄 외곽에 있는 데일스포드 유기농 매장은 필수 코스이다. 매끈하게 상업화된 유기농을 만날 수 있다.

코츠월즈의 나날을 뒤로 하고 일상으로 복귀한 지 일주일이 되던 날. 야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보턴온더워터에서 부친 엽서가 딱 열흘 만에 아파트 우편함에 도착해 있었다. 이미 망각의 문을 지난 추억이 기억의 강을 건너 잠시 찾아왔다.


해외여행 유럽 영국 런던
우리가 유럽을 상상하면서 꿈꾸는 모든 로망을 갖춘 도시

윈도 디스플레이가 뛰어난 백화점, Selfridges

패션 에디터를 꿈꾸는 최빈 런던을 만나다
유러피언처럼 유럽을 즐기는 방식(4) Musical 웨스트엔드 뮤지컬
 

런던의 잊지 못할 밤은 웨스트엔드에서 시작된다. 매일 저녁 7시면 어김없이 뮤지컬의 막이 올라가는 웨스트엔드는 레스터 스퀘어Leicester Square와 코벤트 가든Covent Garden 지역을 중심으로 펼쳐진 극장 지역Theaterland을 통칭하는 말이다. <레미제라블> <오페라의 유령> <맘마미아> 등 롱런하는 뮤지컬은 불경기여도 그 인기가 식을 줄 모르고, <빌리 엘리어트> <위키드> <라이온 킹> 그리고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올리버> 등도 그 뒤를 잇고 있다.

‘뮤지컬’ 하면 뉴욕의 브로드웨이를 떠올리기 쉽지만, 사실 뮤지컬의 시작은 런던 웨스트엔드이다. <오페라의 유령> <캐츠> <미스 사이공> <레미제라블> 등 세계 4대 뮤지컬이 모두 웨스트엔드에서 먼저 제작돼 미국으로 건너갔다. 브로드웨이 뮤지컬이 쇼에 가깝다면, 웨스트엔드 뮤지컬은 대부분 문학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 특히 웨스트엔드의 연극은 철학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작품이 많은데, 할리우드 스타들이 출연하는 경우도 많다. 얼마 전 막을 내린 <햄릿>에서는 주드 로가 열연했고, 영국의 연기파 배우 제임스 맥워보이도 웨스트엔드로 다시 돌아와 리처드 그린버그의 작품인 <스리 데이즈 오브 레인>에 출연했으며, 조시 하트넷도 웨스트엔드에서 연극 <레인맨>에 출연했다. 젊은 할리우드 영화배우들이 연기 실력을 다지는 곳이 웨스트엔드인 셈이다.

이것이 뮤지컬 관람 매너

1. 한여름이면 짧은 반바지에 슬리퍼를 신고 극장에 오는 관광객들이 종종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데, 드레스 업까지는 아니더라도 최대한 단정히 입는 것이 뮤지컬 극장을 찾는 매너이다.

2. 공연 시작 전 스탠딩바에서 음료를 마시는 시간을 즐겨보라.

3. 티켓 할인 부스를 이용하면 싼 값에 좋은 공연을 볼 수 있다.
Add Leicester Square URL www.tkts.co.uk

4. 요즘 각광받고 있는 <빌리 엘리어트> <위키드>, 그리고 그 뒤를 잇는 <올리버>는 어차피 레스터 스퀘어의 할인 부스에서도 할인 티켓을 팔지 않는다. 적어도 하루, 이틀 전에 뮤지컬을 상영하는 극장에 직접 가서 표를 구해야 한다.

런던 특유의 스타일을 고집하는 편집숍, TOPSHOP

최근 런던에서 가장 핫한 뮤지컬

Oliver 올리버
최근 웨스트엔드에서 가장 핫한 뮤지컬이다. 찰스 디킨슨의 소설 <올리버 트위스트>를 뮤지컬로 각색한 작품으로, 1960년 웨스트엔드에서 초연한 후 전 세계적으로 리바이벌 됐다. 현재 오픈런으로 공연 중. ‘미스터 빈’으로 유명한 로완 앳킨슨이 출연하고, 2008년 올리비에 어워드 최고 연출가상을 수상한 루퍼트 굴드가 연출을 맡았다.
Add Royal drury lane, Catherine Street, London WC2B
Tel 44 844 412 4660, 44 20 7087 7960
Url www.oliverthemusical.com Station Covent Garden

Billy Elliot 빌리 엘리어트
2005년에 초연을 시작하자마자 이슈가 되어 지금까지 롱런하고 있는 작품. 영화 <빌리 엘리어트>와 스토리는 똑같다. 하지만 빌리 엘리어트로 분한 10대 소년 배우의 연기와 화려한 안무는 뮤지컬 특유의 생생한 재미를 제대로 안겨준다.
Add Victoria Palace,Victoria Street, London SW1E 5EA
Tel 44 870 895 5577
Url www.billyelliotthemusical.com Station Victoria



해외여행 유럽, 영국 런던
우리가 유럽을 상상하면서 꿈꾸는 모든 로망을 갖춘 도시

패션 에디터를 꿈꾸는 최빈 런던을 만나다
유러피언처럼 유럽을 즐기는 방식 (2) 런던 스피리트, 빈티지 패션

빈티지 패션의 메카, 런던. 유행보다 개성을 중시하는 런더너는 트렌디한 패션에 빈티지 아이템을 믹스앤매치한 스타일링을 좋아한다. 그래서 런던 거리에는 구멍 난 검은 스타킹, 낡고 해진 재킷, 오래 입어 무릎이 툭 튀어나온 스키니진, 빈티지숍에서 구입한 옛날 교복재킷, 버버리의 빅사이즈 트렌치코트를 입은 런더너를 흔히 볼 수 있다.

진짜 해군이 입던 스트라이프 티셔츠에 할머니가 물려준 빈티지 주얼리로 스타일링한 후, 바지 끝단을 롤업하거나, 비비드한 컬러의 양말을 매치하는 등 포인트를 더해 런더너만의 빈티지 패션을 완성한다.

세계적인 패션 아이콘 케이트 모스와 시에나 밀러, 그리고 차세대 패션 아이콘으로 떠오른 알렉사 청의 시그너처 패션 스타일도 빈티지 패션이다. 이들은 트렌드를 좇아 럭셔리 브랜드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치장하기보다는 디자이너 라벨과 하이스트리트 브랜드, 그리고 빈티지 아이템을 자유롭게 믹스앤매치해 자신만의 룩을 완성했다.

이들처럼 런더너가 매 시즌 빠르게 퍼지는 패션 트렌드보다 자신만의 스타일을 완성하는 데 중점을 두는 것, 바로 빈티지 아이템을 통해서다. 그들에게 머스트 해브 아이템이란 그 시즌의 잇백이 아닌 세상에 하나뿐인 빈티지 아이템이다.

빈티지 초보의 쇼핑 팁
1. 처음 빈티지숍에 입문한다면, 자칫 촌스러워 보이는 허리나 어깨 라인의 빈티지 드레스나 재킷에 도전하기보다 노스탤지어를 자극하는 체크 무늬 셔츠 혹은 레트로풍의 가죽 벨트나 스카프 등 활용도 높은 액세서리부터 시작해보자.

2. 빈티지를 구입할 때는 라벨을 과감히 무시하자. 꼭 무엇을 찾아내야겠다는 욕심보다는 마음을 비우고 천천히 돌아다니다 보면, 진짜 자신만의 빈티지 아이템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세컨드핸드 리미티드 에디션이건, 진짜 빅토리안 커스튬이건 말이다.

Covent Garden 코벤트 가든
Blackout II 블랙 아웃 2
1920~1980년대 빈티지 의상을 만날 수 있는 곳으로, 코벤트 가든을 대표하는 빈티지숍이다. 가격은 다소 높지만 상태가 좋은 빈티지 제품만 엄선해서 판매하기 때문에 초보자라도 쉽게 쇼핑할 수 있다. 물건이 산더미처럼 쌓인 빈티지 마켓에서 어떤 것을 사야 할지 감을 못 잡는 초보자에게 딱 알맞은 빈티지숍.
Add Endell Street, Covent Garden, London WC2H 9HJ tel 44 20 7240 5006, 51 Url www.blackout2.com Station Covent Garden

Central 센트럴
Butler & Wilson 버틀러 앤 윌슨

영국판 <보그>가 사랑하는 액세서리숍으로 빈티지 이브닝 드레스와 화려한 액세서리를 구입할 수 있다. 특히 여성을 드라마틱하게 연출해줄 커스텀 메이드 주얼리가 강추 아이템. 숍 2층에서는 1920년대의 빈티지 드레스 컬렉션이 준비되어 있다.
Add South Molton Street, London W1K 5QY tel 44 20 7409 0872, 20
Url www.butlerandwilson.co.uk Station Bond street

Brick lane 브릭 레인
Beyond Retro 비욘드 레트로
패셔너블한 런더너의 빈티지 차림을 보면서 ‘저건 어디서 샀을까’ 궁금해했다면 십중팔구는 비욘드 레트로에서 구입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런던의 스트리트 패션은 이곳에서 시작한다고 할 정도로 빈티지 러버들의 베스트 숍이다. 셔츠와 진, 부츠 등 캐주얼 아이템을 기본으로 방대한 양을 자랑한다. 해가 빨리 지는 겨울철에는 캡을 불러준다.
Add 110-112 Cheshire Street, London E2 Tel 44 20 7613 3636 Url www.beyondretro.com Station Liverpool street

Notting hill 노팅힐
Rellik 렐릭
까탈스럽기로 유명한 세 명의 오너가 운영하는 숍으로 하이엔드 브랜드의 빈티지를 만날 수 있다. 런던과 파리를 오가며 공수한 샤넬, 비비안 웨스트우드, YSL, 요지 야마모토, 콤데가르송 등 디자이너 빈티지 옷과 액세서리로 구성되어 있다. 아주 작은 액세서리까지 모두 디자이너 라벨이 붙어 있을 정도. 스타일리스트와 디자이너 등 패션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는 곳으로 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연다. 단 토요일은 사전 예약이 필수다.
Add 8 Golborne Road, Notting Hill W10 5NW tel 44 20 8962 0089
Url www.relliklondon.co.uk Station Westbourne Park

Angel 엔젤
Annie's Vintage 애니스 빈티지
디자이너 소니아 리키엘을 닮은 빨강머리의 할머니가 운영하는 애니스 빈티지는 빈티지 드레스 마니아들을 불러 모으는 곳이다. 파리에서 공수해온 아이템을 중심으로 웨딩드레스로 손색없는 화이트 드레스가 가득하기 때문. 이외에도 레이스, 퍼, 시퀸, 깃털 등으로 장식된 독특하면서도 개성 있는 드레스를 만날 수 있다. 1950년대 랑방 드레스, 글래머러스한 1920~30년대 드레스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곳에 갈 이유는 충분하다.
Add 12 Camden Passage, Islington London, N1 8ED
tel 44 20 7359 0796
Url www.anniesvintageclothing.co.uk Station Angel



영국 스코틀랜드 위스키 증류소 관람·시음
"미네랄 풍부한 토양, 기름진 민스트럴 보리, 증류 원액 맑은 암반수, 증류기 재료가 될 구리…
이 네 가지가 어울려 좋은 위스키 만듭니다"

스코틀랜드 스페이사이드 지역은 숲과 언덕을 따라 유서깊은 위스키 증류소와 고성(古城)들이 들어선 아름답고 고즈넉한 곳이다. 대표적 관광명소인 발린달로크 성. / 정지섭 기자

푸른 숲 끝으로 황금빛 단풍이 사뿐히 내려앉았다. 두툼하고 붉은 털옷을 입은 스코틀랜드 특산종 하이랜드 소(Highland Cow)가 풀을 뜯는 잔디밭은 햇살에 반짝였다.

드문드문 서 있는 건물들은 서양 동화집에서 나온 것처럼 뾰족한 세모 지붕이다. 누군가 일깨워주기 전까진 여기가 '술 만드는 곳'이라는 걸 쉽게 눈치 못 챌 것 같다. 런던 히스로공항에서 1시간 30분을 날아와 도착한 스코틀랜드 애버딘. 다시 공항에서 차로 1시간 30분가량을 달려 도착한 맥캘란(Macallan) 위스키 증류소의 늦가을 풍경이다.

물과 흙, 보리, 구리가 빚은 위스키

햇살이 갑자기 숨더니 차가운 빗줄기가 쏟아졌다. "진정한 스코틀랜드 날씨"라며 데이비드 콕스 맥캘란 총괄 디렉터가 껄껄 웃었다. 맥캘란 위스키 증류소 관람·시음 투어는 빗속에서 첫 걸음을 뗐다.

술 공장이니 술 구경부터 할 줄 알았는데, 반대쪽으로 방향을 틀어 유유히 흐르는 스페이(Spey)강가로 갔다. 강줄기를 끼고 있는 스코틀랜드 동부지역을 스페이사이드(Speyside)라고 일컫는다.

콕스씨가 말했다. "넷이 어우러져 위스키가 됩니다. 미네랄이 풍부한 흙, 여기서 잘 자라는 기름기 풍부한 민스트럴 보리, 증류 원액으로 쓰일 맑은 암반수… 스페이강과 땅의 선물이죠. 여기에 증류기의 재료가 될 훌륭한 구리가 더해져요."

1824년 문을 연 이곳은 맥캘란의 유일한 증류소다. 싱글몰트라고 불리는, 단일 증류소에서만 제품을 만드는 시스템을 180여년 고집해왔다. 스코틀랜드의 위스키 증류소 100여곳 중 50여곳이 '물 좋고 흙 좋다'는 스페이사이드에 몰려 있다.

강가를 등지고 180여년의 비밀이 전수되는 곳, 증류 공장으로 갔다. 거대한 돔처럼 생긴 금속 용기 앞에서 매시턴(mashturn) 작업이 한창이었다. 보리의 싹을 틔워 곱게 빻은 뒤 뜨거운 물을 부어 당분을 최대한 뽑아내 단맛을 이끌어내는 과정이다.

매쉬턴을 마친 원액은 지름 4m 짜리 3만L들이 통으로 나뉘어 옮겨졌고, 통마다 부글부글 끓어 거품을 냈다. 효모를 넣고 발효시켜 알코올 성분을 일으키는 워시백(washback) 과정이다.

그렇게 '물'은 '술'이 돼 거꾸로 세운 나팔처럼 생긴 증류기로 들어가 다시 펄펄 끓여진다.

이렇게 만들어진 따끈한 새내기 위스키들은 짧게는 12년, 길게는 60년 넘도록 참나무통에서 긴 잠을 잔다.

관광객들이 맥캘란 위스키 증류소를 둘러보고 있다. / 정지섭 기자
스페인산(産) 참나무통에서 무르익는다

증류장이 정적이라면 숙성장은 동적이었다. 아름드리 굵기에 사람 키만 한 참나무통에 호스로 위스키 원액을 주입시키는 작업이 한창이다.

참나무통 저장고는 맛과 향을 마지막으로 책임지는 곳이다. 앞 단계까지는 스코틀랜드 안에서 자급자족했지만, 숙성 과정만큼은 '외세'가 개입됐다. 숙성을 책임질 참나무는 모두 스페인 발렌시아산이다. 깊고 그윽한 맛과 향을 간직하기에 그만한 게 없다고 한다.

고즈넉한 고성과 시골철길 볼거리

증류소 말고도 스페이사이드의 볼거리가 있으니 숲과 언덕 사이로 꼭꼭 숨어 있는 작고 아담한 성(castle). 그 중 한 곳인 발린달로크(Ballindalloch)성으로 가는 길은 빼어난 드라이브길이었다.

언덕진 초원을 따라 달리다 스친 곳은 대장간이 있다는 읍내 더프타운. 한국에서도 보기 힘든 단선 철길과 간이역을 만났다. 이 시골 철길의 애칭은 '위스키 라인(Whiskey Line)'이다. 성탄절 등 연휴시즌에만 간간이 운행된다.

저녁 무렵 발린달로크성에 도착했다. 16세기에 지어져 줄곧 한 가문(맥퍼슨-그랜트·Macpherson-Grant)이 살아온 곳이라 했다. 응접실, 주방, 식당에 초라한 하녀 방까지 온전히 보존돼 있다.

여·행·수·첩

어떻게 가나

애버딘까지는 직항편이 없기 때문에 런던에서 영국 국내선으로 갈아타야 한다. 히스로공항 5번 터미널에서 애버딘행 국내선이 하루 4~6차례 운항된다. 운행 시간은 1시간 30분.



해외여행 유럽 영국 런던
우리가 유럽을 상상하면서 꿈꾸는 모든 로망을 갖춘 도시

COMPAS THE COW
패션 에디터를 꿈꾸는 최빈 런던을 만나다
유러피언처럼 유럽을 즐기는 방식 (3) 폅, 그리고 기네스

영국인들에게 펍은 맥주를 마시는 곳이 아니라 하루를 마무리하는 장소이다. 맥주를 마시며 게임을 하고, 댄스를 배우고, 코미디 쇼 등 각종 공연을 볼 수도 있는 곳으로 하루의 스트레스를 풀기엔 이만한 곳이 없다.

워커홀릭에게는 사교의 장소, 열광적인 축구팬에겐 뜨거운 응원의 장소, 일요일에는 가족과 선데이 로스트를 즐길 수 있는 레스토랑으로 변신하면서 런더너를 위로하는 것이다.

사실 런던에 여행 온 관광객에게 펍은 실망스러운 공간으로 느껴지기 쉽다. 낮에도 실내가 어두컴컴하고 맥주 냄새가 채 가시지 않은 테이블에 눅눅한 피시 앤 칩스, 겉은 뜨겁지만 안은 차가운 포크 파이를 내오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스트로펍에 가면 영국의 전통 음식과 기네스를 맛볼 수 있다.

가스트로펍은 캐주얼한 영국 전통 식사와 맥주를 함께 마실 수 있는 곳이다. 차가운 고기 페이스트와 빵, 계란 피클, 데워 먹는 고기 파이 등 간단한 스낵을 제공했던 전통적인 펍이 1990년대부터 훌륭한 음식과 드링크를 마실 수 있는 가스트로펍 Gastropub(pub과 gastronomy 식도락의 합성어)으로 변모했다. 셀러브리티 셰프인 고든 램지가 열 올리는 사업 중 하나로 엄선된 맥주와 칵테일, 그리고 와인 리스트와 그릴 위의 립아이 스테이크를 맛볼 수 있다.

맥주를 제대로 주문하는 법

맥주는 크게 라거Larger와 비터Bitter, 두 종류로 나뉜다. 라거는 하이네켄Heineken, 포스터스Forsters, 스텔라 아트로스Stela Artows 등 유명 해외 브랜드의 맥주이고, 영국의 전통 맥주로 지방마다 다른 맛을 가진 맥주들은 에일Ale이라고 한다. 비터는 색깔이 검고 맛이 쓴 영국의 흑맥주이다. 비터 중에서 가장 유명한 맥주가 바로 기네스Guines이다.

여름철 드링크를 주문하라

런더너는 여름이면 사과로 만든 알코올, 사이다를 즐긴다. 사이다는 맥주와 달리 얼음홀 동동 띄워 더 시원하게 마시는 술인데, 벌머스bulmers, 매그너스magners, 아스팰aspall이라는 브랜드가 한국인의 입맛에 맞다. 또 다른 여름 드링크로는 핌즈fimm's 칵테일이 있다. 피처로 시켜 친구들과 나눠 먹으면 좋은 핌즈 칵테일은 딸기, 레몬, 라임, 오이, 민트를 섞어 만든 상큼한 칵테일이다.

The compass 더 컴퍼스
까다로운 입맛을 가진 런더너들이 인정한 펍. 런던 펍의 스타 셰프로 불리는 벤비숍Ben Bishop이 이끄는 곳으로 양념이 필요 없는 립아이 스테이크와 핸드 커팅 칩스, 워터 크레송이 맛있기로 유명하다. 각 재료의 신선한 맛과 재료의 조화를 중시한다. 일요일에는 기름기 빠진 선데이 로스트를 맛볼 수 있다.

The Eagle 더 이글
오픈 키친이 인상적인 이곳은 런던의 첫 번째 가스트로 펍이다. 모던 브리티시 음식과 각 지방의 에일Ale 셀렉션을 맛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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