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채의 지구조각](20) 핀란드 리시툰투리

북유럽 핀란드는 1000개의 호수로 둘러싸인 나라다. 아름다운 산과 숲이 가득하다. 핀란드의 북쪽 라플란드는 여름이면 대자연을 만끽하러 찾아오는 많은 여행객으로 붐비지만, 겨울이 오면 호수는 모두 얼어붙고 모든 것이 새하얀 눈으로 가득 찬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거란 생각은 금물. 오히려 눈으로 가득 쌓인 풍경이 동화처럼 아름다워 여름보다 더 매력적이다. 그런 겨울 풍경을 제대로 즐겨보고 싶다면 찾아갈 곳이 있다. 리시툰투리 국립공원(Riisi tunturi National Park)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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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에 눈이 가득 쌓여 신비한 풍경을 만들어낸다. 핀란드 리시툰투리 국립공원은 마치 우주 외계의 공간 같다. /케이채
핀란드 북동쪽 포시오(Posio)에서 30km 정도 떨어진 리시툰투리 국립공원은 77㎢의 면적이다. 크고 작은 언덕과 늪지대로 이루어진 리시툰투리의 겨울을 정의하는 풍경은 눈이 가득 쌓인 나무들의 모습이다. 이곳에 가장 흔한 가문비나무에 거대한 눈덩이가 쌓이면서 그 무게에 나뭇가지가 축 처지게 되는데, 마치 예술 작품처럼 기묘한 모양을 한 나무들이 공원 주변을 가득 메우게 된다. 마치 외계의 풍경을 보는 듯하다. 그 기묘함은 여름이 찾아오면 사라진다. 눈이 녹아내리면서 나뭇가지가 부러져 떨어져 나가 사라져버린다. 매해 겨울에만 볼 수 있는 풍경이라서 더 매력적이다.

아무리 아름답다고 해도 겨울에 1m 넘게 눈이 쌓이는 곳을 어떻게 찾을 수 있느냐고?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눈이 아무리 많이 쌓였어도 문제없이 하이킹을 즐길 수 있다. 스노 슈즈(Snow shoes)가 있다. 이 널찍한 눈신발을 신으면 눈 속에 파묻히지 않고 문제없이 리시툰투리를 돌아볼 수 있다. 겨울에도 즐길 수 있도록 준비된 하이킹 트레일은 총 40㎞를 넘어선다. 짧게는 4.3㎞ 정도인 리신 라파시 트레일(Riisin Raapasy Trail)을 통해 돌아볼 수도 있고, 10.9㎞의 키린마탈라(Kir inmatala)나 7㎞의 키린쿠옵파(Kirinkuoppa) 등 취향에 맞는 루트를 선택해 걸어볼 수 있다. 리시툰투리에서 가장 높은 언덕인 리시툰투리 언덕에 오르면 시원하게 뚫린 하늘 아래로 킷카야르벳 호수(Lakes Kitkajarvet)와 주변 언덕, 그리고 그 언덕을 장식하는 가문비나무 숲이 만들어내는 동화 같은 겨울 풍경을 만끽할 수 있다.

겨울의 라플란드는 해가 무척 짧기 때문에 밖에서 활동할 수 있는 시간이 길지 않다. 그래서 당일 여행보다는 하룻밤 정도 리시툰투리에서 머무는 것이 이 국립공원이 가진 매력을 제대로 느껴볼 수 있다. 이런 마음을 지닌 이들을 위해 공원 내에는 하이킹을 즐기는 여행자들이 쉬어가거나 밤을 보내고 갈 수 있는 오두막집이 준비되어 있다. 마련된 땔감으로 벽난로에 불을 지펴 따스하게 몸을 녹이며 시간을 보내고, 다른 여행자들이 찾아오면 함께 여행에 대한 대화를 나누며 시간을 보낸다.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자신이 사용한 땔감만큼 떠나기 전에 다시 채워놓아야 한다는 것. 핀란드 겨울 여행자들의 에티켓으로, 다음에 찾아올 여행자가 금세 추위를 벗어날 수 있도록 땔감을 쌓아주고 떠나야 한다. 오두막집 옆에 나무가 있고 톱과 도끼 또한 있으니 잊지 말도록 한다. 땔감을 마련하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따스한 오두막집에서 시간을 보내다 보면 금세 밤이 찾아온다. 그렇다고 바로 잠자리에 들 생각은 말자. 하늘만 깨끗하다면 수십수백 개에 달하는 별이 밤하늘을 아름답게 비추고 있을 테니까. 그리고 운이 좋다면 겨울에만 나타나는 하늘의 축복, 오로라의 방문을 받게 될지도 모른다. 리시툰투리 특유의 독특한 설경(雪景) 위에 오로라가 펼쳐지면 그 아름다움은 정말 말로 설명하기 어렵다. 오직 그 한순간만을 위해서 이곳을 찾아도 후회는 없을 것이다. 당신이 꿈꾸는 겨울 동화의 한 장면을 리시툰투리 국립공원에서 모두 만나볼 수 있을 테니까.

항공기 편 안내

☞가는 길


핀에어에서 핀란드의 수도 헬싱키까지 주 7회 직항편을 운행하고 있다. 헬싱키에서 국내선으로 환승 후 쿠사모(Kuusamo)로 향하면 차로 1시간 거리에 있는 리시툰투리 국립공원에 닿을 수 있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The best way to experience France

여행 패턴이 변화하면서 유럽도 하나의 국가를 찬찬히 둘러보는 체류형 여행이 늘고 있다. 여행사 입장에서는 고객에게 안내하고 상담해야 하는 정보의 깊이도 더욱 깊어진 셈이다.

프랑스관광청과 프랑스 대도시 연합회가 소개하고 있는 '최고의 프랑스 도시 여행을 위한 9개 여정'은 프랑스 지방을 여행하고자 하는 고객들이 점점 증가하는 요즘 자료가 부족한 여행사에서 활용하면 좋을 유익한 정보가 가득하다. 9개의 여정에 소개된 25개 도시의 가볼만한 곳과 여행자의 기대를 완벽하게 만족시킬 수 있는 축제, 이벤트, 교통편 정보 등 여행사에서 고객에게 프랑스 여행을 안내하는 데 필요한 정보가 세세하게 정리돼 있다. 4일에서 8일까지 다양하게 구성돼 있는 9개의 여정을 살펴봤다.

편집자 주

●여정 1

피카르디Picardie와 플랑드르Flandre 4일
종탑의 도시 릴(Lille) - 대성당의 도시 아미앵(Amiens)


11세기에 생성된 도시 릴(Lille)은 산업 혁명을 거치며 은행과 보험의 중심도시, 유럽의 주도로 거듭난 도시다. 산책하기 좋은 구시가지를 비롯해 루아얄(Royal)에서는 1890년에 릴에서 태어난 샤를 드 골의 생가를 볼 수 있다. 섬유, 가구, 디자인 컬렉션과 19세기-20세기 작품을 전시하는 루베 예술과 산업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는 아르데코 양식의 옛 시립 수영장과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종탑도 명물이다.

아미앵은 고풍스러움과 현대 건축물이 조화를 이루는 도시이다. 파리에서 기차로 1시간이면 도착할 수 있고 시내 중심부에 위치한 가옥 주변의 수중 정원을 배로 둘러 볼 수 있는 쥘 베른의 집,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노트르담(Notre-Dame) 대성당 등이 있다. 마카롱, 기와 모양의 초콜렛, 라 피셀 피카르드(la ficelle picarde), 바뚜(battu) 케이크 등의 특산품도 유명하다.

●여정 2

샹파뉴Champagne와 부르고뉴Bourgogne 4일
샴페인의 도시 랭스(Reims) - 예술과 역사의 도시 디종(Dijon)


랭스(Reims)는 와인과 샴페인의 도시다. 랭스 산 기슭에 조성된 포도 밭에서 유명 샴페인이 만들어지는 데 샹파뉴(Champagne) 지방의 대표적 자랑거리인 샴페인의 유명 브랜드 대부분은 랭스를 기점으로 형성돼있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된 노트르담 대성당, 생 레미(Saint-Remi) 바질리크 교회당, 생 레미 수도원 박물관도 볼거리다.

부르고뉴 공국의 중심 도시로 일찍부터 수륙 교통과 상공업의 중심지를 이루었던 디종(Dijon)은 수많은 건축 유적지들로 유명하다. 역대 부르고뉴 공의 관저는 현재 박물관이 되었으며, 생 베니뉴 대성당, 생 필리베르 교회, 법원 등 옛 건물이 많아 프랑스에서도 손꼽히는 예술 도시다. 파리에서 기차로 1시간 40분이 소요된다.

●여정 3

로렌Lorraine과 알자스Alsace 8일
친환경 도시, 로렌 지방의 주도 Metz(메츠) - 문화의 도시 Nancy(낭시) - 쁘띠 프랑스 스트라스부르그(Strasbourg) - 산업과 예술의 융합, 뮐루즈(Mulhouse)


기원전 1000년 전에 생성되기 시작한 메츠는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의 영향을 받은 다양한 양식이 접목된 건축물을 소유하고 있다. 오늘날 메츠는 상업과 친환경도시로 로렌(Lorraine) 지방의 주도이며, 파리에서는 기차로 1시간30분이 소요된다. 낭시는 국립 오페라, 발레, 오케스트라, 서정시, 국립 드라마 센터, 낭시파(Ecole de Nancy: 아르누보 양식) 박물관, 음악 축제와 행사, 바와 까페 등으로 낮과 밤이 살아 있는 문화의 도시로 유명하다.

2000년의 풍부한 역사를 지닌 도시 스트라스부르그는 유럽의 수도로 문화, 건축 유적지가 매우 특별한 곳으로 도시 전체가 1988년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에 등재되었다. 바또 무슈(bateau mouche), 미니 열차, 트램, 자전거와 같은 교통 수단으로 편리하게 도시를 둘러 볼 수 있다. 1746년, 유럽에서 최초로 면직물을 생산하기 시작한 뮐루즈(Mulhouse)는 2008년 문화부 장관이 인증하는 프랑스 라벨 '예술과 역사의 도시' 인증을 획득했다. 뮐루즈 근처에 위치한 꼴마르(Colmar)는 작은 베니스라 불리는 아기자기한 매력의 관광지다.

●여정 4

론 알프스Rhone Alpes 4일
디자인 수도 생떼띠엔느(Saint-Etienne) - 화산의 도시 끌레르몽 페랑(Clermont-Ferrand)


예술과 역사, 관광 도시로 지정된 생떼띠엔느(Saint-Etienne)는 잘 보존된 자연이 인상적이다. 프랑스의 대표적인 산업도시였던 생떼띠엔느는 점차 산업디자인이 발전하면서 디자인의 수도로 진화했으며 생떼띠엔느 보자르(프랑스 미술학교)는 디자인 특성화 학교로 유명하다. 현대 건축의 거장인 르 꼬르뷔지에의 건축 이념도 만날 수 있다.

끌레르몽 페랑(Clermont-Ferrand)은 rock, 럭비, 단편 영화의 도시로 연중 내내 다양한 볼거리로 활기가 넘치며, 샤또브리앙(Chateaubriand)은 화산과 더불어 클레르몽 페랑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라고 칭송하기도 했다. 도시의 주요 유적지는 도보로 둘러볼 수 있으며, 중세 시대의 저택들과 르네상스 시대의 유적으로 유명하다.

●여정 5

프로방스Provence와 리비에라Riviera Cote d'Azur 8일
중세 기독교의 중심지 아비뇽(Avignon) - 세잔의 도시 엑상 프로방스(Aix-en-Provence) - 찬란한 문화 유산을 간직한 항구 도시 마르세유(Marseille) - 지중해의 매력에 빠지게 되는 니스(Nice)


중세 기독교의 중심지였던 아비뇽에서는 유네스코 지정 세계 문화 유산인 중세 시대 최고 성직자의 거주지였던 교황청(Palais des Papes)과 '아비뇽의 다리 위에서' 노래의 배경이 되었던 생 베네제(Saint-Benezet) 다리를 놓쳐서는 안된다. 매년 7월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아비뇽 연극 축제가 열린다.
엑스(Aix)는 폴 세잔의 태생지이며, 세잔과 졸라는 미녜(Mignet) 고등학교에서 우정을 다진 곳으로 유명하다. 현재는 4만여 명의 학생들이 거주하고 있는 젊은이들의 도시로 연중 내내 다양한 문화 행사가 개최된다.

기원전 600년 그리스인에 의해 건설된 마르세유는 프랑스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로 2600년의 역사가 이뤄낸 문화 유적지가 경이롭다. 또한 노트르담 드 라 갸르드에서 내려다보는 마르세유 구항구의 전경은 매우 아름답다. 2013년에는 유럽 문화의 수도로 지정되었고, 지중해·유럽 문명 박물관(MuCem 뮤쎄엠)을 오픈 하였다.

1860년 이후 철도가 생기며 주요 휴양지로 떠오른 니스는 시대별 역사를 대변하는 상징적인 건축물을 발견할 수 있다. 파리 다음 가는 박물관의 도시로 꼽히는 니스에는 마티스 미술관, 마크 샤갈(Marc Chagall) 국립 미술관 등 20여 곳의 박물관과 갤러리가 있다.

●여정 6

르 빼이 독Le Pays d'Oc 6일
프랑스의 로마, 님(Nimes) - 세계적인 건축가들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몽펠리에(Montpellier) - 장밋빛 도시 뚤루즈(Toulouse)


프랑스의 로마로 불리는 님(Nimes)은 로마 황제 아우그스투스에 의해서 건설되었으며, 원형 경기장(Arenes)을 비롯해 세계에서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는 유일한 고대 사원인 메종 까레 (Maison Carree) 등 로마 유적지를 볼 수 있다.

몽펠리에(Montpellier)는 프랑스 남부 지방 랑그독 루씨옹(Languedoc-Roussillon)의 주도이며, 역사와 유적지의 도시로 파리에서 기차로 3시간, 바로셀로나와 이탈리아에서 3시간, 지중해에서는 불과 11km 거리에 위치해 있다.

보르도와 알비, 루르드, 카르카손을 아우르는 여정에서 빠질 수 없는 뚤루즈는 "장밋빛 도시"라는 특징을 가진 곳 프랑스 남서부 지역의 요충지에 위치한 미디 피레네 지역의 수도다. 2000년의 예술과 역사를 간직한 카피톨(Capitole)의 시청과 극장의 화려한 접견실을 볼 수 있다.

●여정 7

보르도Bordeaux에서 푸아티에Poitiers까지 4일
와인의 대명사 보르도(Bordeaux) - 찬란한 과거 유산과 미래의 역동성이 공존하는 푸아티에(Poitiers)


갸론(Garonne)강이 흐르는 보르도는 순례자의 길인 생 쟈크 드 콩포스텔(Saint Jacques de Compostelle)과 같은 세계 유산에 등재된 3곳을 비롯해 350여 곳이 넘는 역사 유적지가 위치하고 있다. 또한, 와인의 수도답게 다양한 와인 관련 행사가 있는데, 6월에는 그랑 크뤼 마니아들을 위한 주말 와인 행사로 100여종 이상의 그랑 크뤼의 시음이 가능하며, 직접 생산자들이 참가한다.
푸아티에(Poitiers)는 무려 86곳 이상의 유적지를 간직한 역사의 도시다. 로마네스크 예술의 대표적인 건축물인 노트르담 라 그랑드(Notre-Dame-la-Grande)에서는 매년 여름 저녁과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환상적인 다채로운 색의 빛의 축제가 펼쳐진다. 오귀스트 로댕(Auguste Rodin)과 까미유 끌로델(Camille Claudel)의 조각 작품을 만나 볼 수 있는 생 크루와(Sainte Croix) 박물관 등 볼거리도 풍부하다.

●여정 8

부르타뉴Bretagne와 빼이 드 라 루아르Pays de la Loire 6일
부르타뉴의 주도, 독특한 매력의 Rennes(렌느) - 프랑스에서 가장 기발한 테마파크가 있는 Nantes(낭트) - 루아르의 중심 Angers(앙제)


렌느는 브르타뉴 지방의 수도로 이 곳의 집들은 갈로 로만의 영향을 받은 벽과 팡 드 부와(pans-de-bois: 나무의 구획으로 지은 집이란 뜻으로 집의 절반만 나무로 지은 집)로 이루어져 있다.
프랑스 서부의 연안 수도인 낭트에는 부르타뉴 대공의 요새이자 거주지였던 부르타뉴 대공성을 만날 수 있으며 낭트 섬에 있는 테마공원인 레 마쉰 드 일 드 낭트(Les Machines de l'Ile de Nantes: 낭트 섬의 기계들)에서는 낭트의 상징인 거대 코끼리와 대형 회전목마 등이 있다.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에 등재된 앙제(Angers)는 시내에 위치한 정원들과 루아르 고성, 천혜의 자연 환경이 어우러진 도시다. 앙제 근교의 브리삭 고성(Chateau de Brissac)은 루아르 지방 고성 중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며, 사전 예약 시 숙박 및 연회가 가능하다.

●여정 9

노르망디Normandie의 주요 도시 4일
태양왕의 찬란했던 시대를 느낄 수 있는 베르샤유(Versailles) - 인상파 화가 클로드 모네의 도시 Le Havre(르아브르)


베르사유 궁전은 17세기 초 사냥을 즐겼던 루이 13세가 시골 마을에 불과했던 이곳을 수렵장으로 만들고 작은 성을 지은 것에서 비롯됐다. 베르사유 성은 그 화려하고 웅장장 규모의 정원으로도 유명한데, 전형적인 프랑스 정원으로 기하학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베르사유 궁전 근처에는 승마 아카데미, 향수 박물관 오스모테크(Osmotheque), 도시의 역사를 조명해볼 수 있는 랑비네 박물관(Le Musee Lambinet) 등이 있다.

르 아브르(Le Havre)는 프랑스의 다른 도시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최근에 생겨난 도시다. 바다와 센 강의 만이 만나서 생겨나는 독특한 물빛으로 많은 젊은 화가들이 이곳에서 작품의 모티브를 얻었고, 인상주의의 시작이 되기도 했다. 1872년 클로드 모네가 르아브르 항구 입구에서 인상주의 대표작인 <인상, 해돋이 Impression, soleil levant>를 그린 것으로도 유명하다.


  1. Favicon of https://travelbible.tistory.com 오리궁둥이 2014.11.28 07:47 신고

    정리 굿!! 프랑스 기차여행의 기본이 다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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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바르셀로나

퀴즈 하나. 이 나라, 거대하지만 섬세하다. 순례길에는 종교적인 경건함이 있다. 이비사 해변에는 거추장스러운 옷을 벗어 던지고 날것 그대로의 나를 찾아가는 진지함이 있다. 끈기, 열정? 차라리 말을 말자. 우리나라라면 건축 공기 5년도 많다고 난리 칠 일을 수백 년 공을 들여 자자손손 짓고 있는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을 보라. 이쯤 되면 대부분 독자들, '스페인'을 당연히 입에 올리실 게다. 

이 가을, 유럽 중에서도 이국적인 풍물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나라인 탓에 요즘 유럽여행의 트렌드는 스페인으로 옮겨가고 있다. 서유럽 대신 스페인, 혹은 서유럽 다녀온 다음에는 스페인 여행 이런 식이다. 거기에는 따뜻한 지중해성 기후가 큰 몫을 한다. 여행객의 즐거운 하루를 보장하는 데 밝은 햇살과 눈부신 하늘만큼 중요한 것이 또 있을까. 태양의 나라 스페인의 부드러운 바람은 두터운 겨울 외투를 벗어 던지게 만든다. 스페인을 이루는 문화는 참 다양하다. 거칠게 질주하는 투우의 강렬함과 현란한 세고비아 기타 선율 위로 튀어나오는 플라멩코와 탱고의 에로틱한 춤사위는 강렬한 붉은색을 품고 죽은 영혼을 살려낸다. 들어는 봤나. 건축가 가우디. 21세기 들어 주가가 쭉쭉 올라간 스페인이 낳은 걸출한 인물이다. 자연과 건축의 공존이라는 건축 테마가 신선하다. 스페인 사람들 엉뚱한 데도 있는 모양이다. 풍자소설 '라만차의 돈키호테'는 고전문학인데도 웹툰만큼 구성이 기발하다. 살바도르 달리의 초현실주의 작품세계는 또 어떻고. 

축구팬에게는 프리메라리가 상위권 레알 마드리드 축구팀이 최고일 터. 감각적인 CF를 선보이며 우리나라에도 매장을 늘려가고 있는 트렌디한 의류 브랜드 자라도 스페인이 본산이다. 노란색 샤프란이 들어간 해산물 쌀요리 파에야는 우리 입맛에도 잘 맞으니 스페인 여행 적응 준비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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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론다

그저 유럽이 입에 붙어서 언젠간 유럽여행을 찜해 두고 있다면 이 가을 '유럽 멜팅폿(용광로)' 스페인만 찍어도 딱이다. 남들 다 가는 서유럽 끄트머리에 자리 잡은 스페인이란 나라. 프랑스와 맞닿은 이 드넓은 땅덩이에는 태양의 심장을 가진 사람들이 정열을 불태우며 살아간다. 굴곡 없이 오늘에 이르지 않아 이 나라의 오늘은 더 깊은 울림을 준다. 마드리드를 시작으로 이슬람 문화가 숨쉬는 그라나다를 만나고, 아랍 최고 유적지 알람브라 궁전에서는 이슬람 문화의 진수를 본다. 안달루시아 지방의 백색 도시 미하스와 아찔한 요새도시 론다는 그 옛날 어떻게 저런 장소에 집을 지었을까 의문이 생긴다. 사그라다 파밀리아성당과 구열공원 등 천재 건축가 가우디가 숨결을 불어넣은 바르셀로나에서는 손수건을 준비해두는 것이 좋겠다. 길어야 100년살이 짧은 인생이 영원 속에 들어간 것 같을 테니. 스페인을 쭉 훑어 올라가다 보면 스페인의 정열과 인생철학에 메말랐던 내 감성에 촉촉촉 물기가 돌지도. 

그런데 가을에서 겨울로 달리는 시기, 스페인 여행을 추천하는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스페인이라는 이 나라, 유럽에서도 한때 잘나가던 큰 형님이다. 잘난 척 대마왕으로 뻐길 법도 하다. 지금은 왜 이 모양 이 꼴이냐고 신세 한탄을 한다면 그야말로 하수. 그런데 한껏 여유로운 풍모로 현재를 즐기고 있다. 잘나가던 시절 맞춰둔 흰 구두 흰 양복 백고 모자를 갖춰 입고 젠틀한 그레이 신사의 매너를 보여주시니 어디에서나 환영 받는다. 환절기 거울 속 거칠어진 내 모습이 못생김으로 나와 "이렇게 또 세월이 가는구나" 초조해 하는 나의 등을 거친 인생 지나온 살집 좋은 손으로 투닥투닥 두드려줄 것만 같은 큰 형님. 아직 즐길 인생은 남아 있다고 네 인생이 어때서 그러느냐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고민을 싹둑 잘라줄 고민 해결사 큰 형님 최고. 태양처럼 강렬하게 열정적으로 살고 싶다고? 그렇다면 볼 것 없다. 늦가을, 무조건 스페인이다. 



그림책 만드는 아티스트 정화, 베를린을 읽어내다
베를린이 우연히 내게로 걸어오다

내가 베를린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8할이 우연이다. 베를린행을 결심할 당시 나에겐 전환점이 필요했다. 타인이 가르쳐주는 정형화된 디자인을 배우기보다, 내 안으로 끝까지 파고들어 새로운 디자인을 실현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유학을 빙자했지만 나의 베를린 생활을 긴 여행이라 정의하고 싶다. 예쁜 것만 찾아보는 짧은 여행보다 낯선 곳에서 새로운 호흡법을 배우고 적응해가는 나를 체험하는 진정한 여행을 하고 있다고. 난 이곳에서 베를린만의 독특한 환경을 체험하고 직접 경험하면서 열정을 되찾게 된 것이 더없이 기쁘다.

내게 흑백 영화 속의 이미지로 기억되던 베를린은 예술과 여유, 자유, 다양성 등 여러 가지 빛깔을 띠며 나의 삼십 대를 무지갯빛으로 물들이고 있다.

NO.1 베를린 매거진 리스트

요즘 내가 가장 주목하고 있는 독일 잡지는 <FT>다. 이 잡지는 매 회 다른 주제로, 그들이 직접 만들어낸 타이포그래피와 드로잉, 사진과 아트 디렉팅, 그리고 레이아웃을 선보인다. 매 호 새로운 잡지가 창간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흥미로운 것은 Vier5라는 작은 팀이 이 모든 것을 만들어낸다는 것. 이 잡지는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공존하고, 그 중간쯤의 미학을 보여준다. 컴퓨터 세대가 만들어내는 날카롭고 매끈한 그래픽 이미지가 지배하는 이 시대에 핸드메이드 감성을 지닌 예술가들이 만들어냈다. 이 잡지는 작은 글씨체, 여백, 낙서, 실수로 보이는 흔적까지 모두 그대로 보여주면서 날카로운 내 감성을 자극한다. 물론 이들이 만들어내는 건조하고 반항적인 이미지는 철저히 계산되어 생산된 것이기에 더 가치가 크다.

베를린을 대표하는 컬처 매거진 <032c>도 소장 가치가 높은 잡지이다. 건축과 예술, 디자인, 패션의 경계를 넘나들며 문화 전반을 보여준다. 고전적인 스타일의 빨간 표지 속에는 매 호 현대문화를 <032c>만의 독자적인 시각으로 다룬 기사가 가득하다. 너무나 대중적인 주제를 이렇게 다양한 방식으로, 또 깊이 있게 다룬 내용을 읽으면, 잡지의 역할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대중매체가 미디어로서의 역할을 책임감 있게 지켜내고 있다는 것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홈페이지www.032c.com/kim/hedislimane에 들어가면 2007년 에디 슬리만과 함께한 파티 사진도 구경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추천하고 싶은 잡지는 <Slanted>이다. 타이포그래피 전문 잡지인 <Slanted>는 발간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갈수록 기대를 품게 되는, 강단 있는 잡지다. 타이포그래피의 세계를 보다 넓은 영역으로 펼치고자 하는 다양한 시도로 지면을 가득 메우고 있으며, 그 세계를 발견할 수 있는 수십 가지의 길을 제공한다. 

남프랑스 툴룽부터 이탈리아까지 이어지는 40킬로미터의 해안을 일컫는 코트다쥐르.
그중에서도 가장 아름답기로 소문난 2곳의 휴양지 칸과 생트로페를 찾았다.
내 생애 가장 아름답고 화려한 휴가를 보냈다.

↑ 남프랑스 ㅋ코트다쥐르의 바닷가

파울로 코엘료의 소설 <승자는 혼자다>에는 영화제 기간 동안 칸을 찾는 다양한 사람들에 대한 묘사가 등장한다. 영화 제작자의 눈에 들기 위해 1년 내내 모은 돈으로 산 가장 비싼 옷을 입고 온 배우 지망생, 다시 한 번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위해 영화제를 찾은 왕년의 스타 등 칸 영화제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꿈과 욕망의 파노라마에서 칸은 꿈과 허영, 패션과 유명인, 물질과 가치 등 모든 것이 공존하는 곳으로 표현된다. 크루아제트 거리Boulevard de La Croisette의 벤치에 앉아 있는데 한 번도 직접 보지 못했던 람보르기니와 롤스로이스가 차례로 지나갔다. 관광객은 물론이고, 동네 할머니 패션조차 예사롭지 않다. 택시 운전사도 레스토랑 점원도 할리우드 배우 빰치게 잘생겼다. 칸에서 볼 수 있는 흔한 풍경이다.

칸은 압도적인 레드 카펫의 이미지에 밀려 도시 자체의 아름다움이 가려진 것도 사실이다. 은막에 고정된 시선을 잠시 돌리면 칸은 영화만의 도시가 아니다. 도회적인 건물들과 큰 도로에 일렬로 종려나무가 서 있는 풍경은 언뜻 하와이나 캘리포니아와도 겹쳐진다. 니스에서 남쪽으로 26킬로미터 떨어진 칸은 코트다쥐르의 피한, 피서지로 유명하다. 중세까진 작은 마을에 지나지 않았으나 19세기에 해수욕장으로 발전했으며, 특히 제2제정시대(나폴레옹 3세 통치 시대) 이후 대규모 호텔이 건립되면서 세계적인 관광지가 되었다.

"칸은 니스의 5분의 1밖에 되지 않는 크기지만 비즈니스는 프랑스에서 파리 다음으로 많이 이루어지는 곳이에요. 작지만 4성급 이상의 호텔이 100여 개나 있고, 매달 이벤트와 국제적 규모의 각종 축제가 열리죠. 9월 9일에는 인터내셔널 보트 쇼인 칸 요팅 페스티벌Cannes Yaching Festival이 열리기도 했어요." 칸 관광사무소의 카린 오스Karin Osmuk은 칸이 고급 휴양지인 동시에 비즈니스 포럼이나 영화제, 광고제 등 국제적인 페스티벌이 많이 열리는 문화와 비즈니스의 도시라는 것을 강조했다.

관광은 보통 칸 국제 영화제가 열리는 '팔레 데 페스티벌에 데 콩그레Palais des Festival et des Congres'(이하 '팔레 데 페스티벌')부터 시작한다. 세계적인 영화제가 열리는 곳 치고 생각보다 평범해서 실망스러웠을 때, 길바닥에 새겨진 세계적인 배우들의 프린팅이 눈길을 모았다. 새겨진 이름을 하나하나 살피며 시동을 걸다보면 그 옆에서 칸의 백미라 할 수 있는 크루아제트 거리가 손짓을 하며 유혹한다.

웅장하고 고전적인 고급 호텔들과 명품 부티크, 길게 뻗은 백사장, 호화로운 요트와 바닷가 앞의 바, 거리를 수놓은 종려나무, 웃통을 벗고 거리를 뛰는 청년들. …, 이국의 정취가 물씬하다. 2킬로미터 남짓의 크루아제트 거리를 거닐다보면 마치 레드 카펫을 걷는 것처럼 흥분되고 들뜬다. 크루아제트 거리 앞 백사장은 대부분 호텔과 레스토랑 소유라 백사장에 몸을 눕히는 게 쉽지 않지만, 거리 벤치에 앉아 코발트빛 바다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이국의 낭만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영화제가 열리는 시즌의 칸에서는 호텔 잡는 게 하늘의 별 따기보다 어렵다. 수상작 못지않게 어떤 배우가 어떤 호텔에 머무는가도 이 시즌의 핫 이슈다. 크루아제트 거리에 있는 그랜드 하얏트 칸과 인터컨티넨탈 칼튼 칸은 그중에서 가장 핫한 호텔들이다. 인터컨티넨탈 칼튼 칸은 1911년에 생긴 유서 깊은 호텔로 그레이스 켈리, 알프레드 히치콕, 소피 마르소, 시드니 폴락 등 내로라하는 배우와 감독들이 머물렀던 곳이다. 그레이스 켈리는 1955년 칸 영화제 때 이 호텔에 머물다 모나코의 왕자 레니에 3세를 만나 이듬해 결혼했다. 7층에는 그녀의 이름을 딴, 이 호텔에서 가장 럭셔리한 그레이스 켈리 스위트룸이 있다. 이외에도 스타들이 머물렀던 39개의 객실들은 스타의 이름이 붙어 있는데, 배우들이 이 호텔에 오면 그 방에 우선적으로 머문다. 그랜드 하얏트 칸 역시 오랜 역사와 고풍스럽고 우아한 건축 양식으로 유명 배우와 감독들이 즐겨 찾는 호텔이다. 이곳에는 27개의 스위트룸과 유럽 내에서 가장 큰 스위트룸인 '펜트하우스 스위트'가 있다. 리비에라 해안을 둘러싼 크루아제트 거리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펜트 하우스의 테라스는 칸의 드라마틱한 야경을 감상할 수 있는 최고의 장소다. 가장 좋은 위치에 넓은 프라이빗 해변을 갖고 있을 뿐 아니라 미슐랭 2스타 레스토랑이 있어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 거리의 악사.

구시가는 크로아제트 거리와 달리 정감 있다. 포빌 시장 앞 거리의 악사.

↑ 칸에는 영화와 관련된 13개의 벽화가 있다.

칸에는 영화와 관련된 13개의 벽화가 있다.

↑ 구시가의 골목길을 찾은 관광객들.

구시가의 골목길을 찾은 관광객들.

↑ 이국의 정취가 물씬한 크루아제트 거리 앞 바다.

이국의 정취가 물씬한 크루아제트 거리 앞 바다.

살아 있는 칸을 만나는 법

살아 있는 칸의 모습을 만나려면 옛 항구 비외 포르Vieus Port로 가야 한다. 팔레 데 페스티벌 건물 서쪽, 크루아제트 거리가 끝나는 곳에 고깃배들이 가득 정박해 있는 비외 포르 서쪽의 르 시케Le Squet 지역과 서북쪽의 생앙투안Saint-Antoine 거리 근처가 바로 구시가다. 버스 터미널 건물에 그려진 거대한 벽화가 먼저 시선을 모은다. "거주민의 삶을 향상시키기 위해 칸은 2002년부터 거대한 벽화 프로그램을 시작했어요. 도시의 다양한 장소에 영화와 관련된 그림을 그린 거죠. 모두 13개의 벽화가 있어요."

느긋하게 도시를 걷다보면 제임스딘, 마릴린 먼로, 찰리 채플린, 베트맨 등의 벽화가 있는 곳에서 발을 멈추게 된다. 언덕을 따라 좁은 골목을 올라가면 사람 냄새 나는 정겨운 풍경과 마주친다. 포빌 시장은 칸에서 가장 큰 시장이자 현지에서 나는 신선한 채소와 과일, 치즈, 올리브 등을 파는 푸드 마켓으로, 화요일에서 일요일까지, 오전 7시부터 오후 1시까지만 열린다. 월요일에는 각종 앤티크 그릇, 책, 인형, 잡화 등을 파는 벼룩시장이 열린다.

구시가 르 시케의 카스트르 광장 슈발리에 언덕으로 가면 칸의 역사적인 장소와 만난다. 카스트르 박물관Musee de La Castre은 12세기에 바다를 통해 침입하려는 외부의 적들을 감시하는 망루이자 선원들의 무사 귀환을 비는 예배당 역할을 했던 요새를 개조해서 만든 박물관이다. 네덜란드 출신 19세기 탐험가 바롱 뤼크마나Baron Lyckmana의 수집품을 기반으로 한 민속 인류학 유물, 아프리카, 고대 이집트와 그리스부터 19세기 남프랑스 화가의 작품까지 다양한 물건들이 보존되어 있다. 시계탑에서는 칸 시내를 360도 파노라마로 내려다볼 수 있어 늘 관광객들이 북적인다.

↑ 카스트르 광장 슈발리에 언덕으로 올라가는 길.

카스트르 광장 슈발리에 언덕으로 올라가는 길.


↑ 앙티브 거리에서 만난 멋진 할아버지, 할머니.

앙티브 거리에서 만난 멋진 할아버지, 할머니.


↑ 인터컨티넨탈 칼튼 칸의 그레이스 켈리 스위트룸.

인터컨티넨탈 칼튼 칸의 그레이스 켈리 스위트룸. 1955년, 그레이스 켈리는 이 호텔에서 모나코 왕자를 만났다.


↑ 모차렐라 토마토 샐러드

그랜드 하얏트 칸 호텔 마르티네의 레스토랑에서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모차렐라 토마토 샐러드를 맛보았다.

↑ 구시가에 있는 포빌 시장. 월요일에는 벼룩시장이 열린다.

구시가에 있는 포빌 시장. 월요일에는 벼룩시장이 열린다.

칸은 아주 작은 도시다. 구석구석까진 아니어도 이틀이면 웬만한 데는 둘러볼 수 있다. 하루 더 머문다면 주변 섬으로 반나절 외유를 떠나는 것도 좋다. 칸 앞바다에는 레랭 제도로 묶이는 2개의 섬 생마르그리트Saint-Marguerite와 생토노라 Saint-honorat가 있다. 생마르그리트Saint-Marguerite는 둘 중 큰 섬인데 칸의 옛 항구 비외 포르에서 배로 15분이면 닿는다. 알렉상드르 뒤마의 소설 <철가면>의 배경이 되었던 곳으로 <철가면>의 모델인 수수께끼의 죄인이 갇혔던 성채가 있다. 요새였던 이곳은 오랫동안 초소와 감옥 등으로 사용되었는데 그 형태가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 관광객뿐 아니라 현지 학생들에게도 좋은 견학 코스가 되고 있다. 좁은 감옥에 직접 들어가 보니, 철가면의 정체에 대한 궁금증이 증폭됐다. 성채 안의 박물관 뮤제 드 라 메르Musee de La Mer에서는 오래전 침몰한3해적선이나 화물선에서 건진 전시물들을 만나볼 수 있다.

유칼립투스 나무와 소나무로 뒤덮인 섬은 산책하기에 좋다. 그리 크지 않아 1시간이면 넉넉히 돌아볼 수 있다. 소나무 숲이 울창한 해안가는 동서양이 섞인 오묘한 풍경을 만들어낸다. 같은 지중해이지만 배 타고 불과 15분 걸리는 육지에서와는 바다 빛깔이 전혀 다르다. 깨끗하고 조용하기 때문에 생마르그리트 섬은 현지인들이 망중한을 즐기는 장소로 인기가 높다. 생마르그리트 섬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뇌>의 배경이 되기도 했다. 과거에는 한 번 갇히면 영원히 탈출할 수 없는 유배의 섬이었지만 <철가면>과 달리 <뇌>의 주인공은 건너편 섬으로 헤엄을 치는 것으로 묘사된다. 이처럼 외롭고 어두웠던 '유배의 섬'에서 이제 어둠은 사라지고 자유만 남았다. 자발적인 고립감을 느끼기 위해 15분만에 아름다운 섬으로 외유를 떠날 수 있는 칸 사람들이 마냥 부러웠다.

↑ 칼튼 힐에서 바라본 에든버러의 야경.

↑ 에든버러의 상징인 에든버러 성.

↑ 스코틀랜드 독립 영웅 윌리엄 월레스로 분장한 배우.

↑ 칼튼 힐의 저녁 무렵.

에든버러의 첫 인상은 귀족 가문의 조용한 숙녀와 마주하는 것 같았다. 도시 곳곳에 들어선 조지안 스타일의 건물들과 오래된 벽돌길, 잘 다듬어진 공원과 우뚝 솟은 성은 기품이라는 말을 떠올리게 한다. 고풍스러운 건물들이 저녁 햇살에 붉게 물들 때 바람에 실린 백파이프 소리가 아련하게 번져왔다.

스코틀랜드인의 자존심, 에든버러 성

에든버러는 영국이지만 영국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이다. 도시의 풍경도 다르지만 언어도 확연히 다르다. 사투리가 굉장히 심하다. 사람들은 영어를 말하지만 마치 독일어처럼 들린다. 파운드화를 사용하지만 화폐 디자인도 잉글랜드 지역과 다르다.

올드타운 서쪽의 바위산에 자리한 에든버러 성(Edinburgh Castle)은 스코틀랜드 사람들의 자부심을 상징한다. 6세기에 처음 지어진 에든버러 성은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격렬한 투쟁사를 보여주는 현장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성의 대부분은 군사 박물관으로 이용되고 있다. 수많은 전시품 중 제임스 2세의 손자 찰스 에드워드가 일으킨 1746년의 컬로든 모어 전투에서 사용된 군기 조각도 있다. 스코틀랜드인들이 국가의 자랑스러운 유물처럼 다루는 물건이다. 또한 16세기에 만들어진 스코틀랜드 전통의 왕관, 칼, 지휘봉 등이 전시돼 있다.

많은 작가가 배출된 에든버러에서 가장 사랑받는 작가는 소설 '아이반호'로 유명한 월트 스콧 경이다. 에든버러 시내 한가운데에 우뚝 서 있는 스콧 기념탑은 스콧 경의 죽음을 애도하기 만들어진 것이다.

에든버러의 정수를 품은 로열마일

에든버러의 가을을 즐기는 좋은 방법 중 하나는 로열마일(Royal Mile)을 천천히 거니는 것이다. 여기만 거닐어도 에든버러는 다 봤다고 할 수 있을 정도다. 올드타운에 있는 로열마일은 에든버러 성과 홀리루드하우스 궁전 사이에 뻗은 길이 1.6㎞의 자갈길이다. 지도에는 보통 하이 스트리트(High Street)라고 표시돼 있다. 과거에는 귀족들만 걸을 수 있었기 때문에 로열마일이라 부른다. 이곳에는 전통 토산품점, 오래된 펍, 시립박물관, 천문관측대, 스코틀랜드 각지의 위스키를 한자리에 모은 '스코치 위스키 헤리티지 센터' 같은 볼거리가 늘어서 있다.

평범한 백성들은 로열마일 대신 클로스(close)라는 작은 오솔길로 다녀야 했다. 클로스 중 가장 유명한 곳은 브로디스(Brodie's) 클로스다. 낮에는 목수와 시의원으로, 밤에는 강도와 도둑으로 살다가 단두대에서 생을 마감한 윌리엄 브로디의 이름을 따서 붙여졌다. 그의 이중적인 캐릭터는 영국 소설가 R.L.B.스티븐슨에게 영감을 줬고, 소설 '지킬박사와 하이드'로 쓰여졌다.

로열마일 끝의 홀리루드하우스 궁전(Palace of Holyroodhouse)은 영국 왕실이 에든버러를 방문할 때 사용하는 궁전이다. 바로크 양식으로 호화롭게 지은 궁전은 과거 부유했던 스코틀랜드의 영광을 그대로 보여준다. 여왕의 식당에서는 16~17세기의 찻잔과 수저 장식물 등을 볼 수 있다.

낭만적인 에든버러의 야경, 칼튼 힐

가을에 잠긴 에든버러를 보고 싶다면 프린스 스트리트 동쪽 끝의 칼튼 힐(Calton Hill)로 가면 된다. 해발 105m 높이지만 대부분 평지인 에든버러에서는 높은 언덕과 같다. 칼튼 힐에는 에든버러의 역사를 보여주는 기념비가 가득하다. 칼튼 힐에서 가장 크고 눈에 띄는 건물은 국립 기념비다. 나폴레옹 전쟁에서 전사한 용감한 스코틀랜드 민족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졌다. 에든버러 최고의 건축가 중 한 명인 윌리엄 헨리 플레이페어가 아테네의 신전을 본떠 설계한 것으로, 1822년 공사에 들어갔지만 재정상의 문제로 완공되지 못했다. 저녁 무렵 칼튼 힐에 올라가면 넬슨 기념비, 스콧 기념탑, 에든버러 시내를 붉게 물들인 노을을 볼 수 있다.

여행 정보

한국에서 에든버러까지 가는 직항이 없기 때문에 런던을 거쳐 가는 법이 제일 간단하다. 이지젯, 라이언에어 등 저가 항공편을 이용하면 싸다. 에딘버러공항은 시내 북서쪽으로 약 16㎞ 떨어져 있다.

런던 빅토리아 코치 스테이션에서 에든버러까지 매일 내셔널 익스프레스 버스가 운행된다. 9~12시간 정도 걸린다.

런던 킹스 크로스 역에서는 매일 20회 정도 에든버러까지 가는 기차가 운행된다. 4시간30분~5시간 정도 걸린다.

  1. Favicon of https://travelbible.tistory.com 오리궁둥이 2014.10.07 21:52 신고

    가고싶다 나도 ㅠ

중세의 다리는 성과 마을뿐 아니라 삶과 세월을 잇는 소통로다. 체코 프라하카를교(까를교)는 보헤미안의 애환과 600년을 함께 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구시가와 프라하성을 연결하는, 블타바강의 가장 오래된 다리이기도 하다.


카를교는 겉과 속이 다르다. 블타바 강변에서 바라보는 카를교는 조연에 가깝다. 최고의 야경으로 일컬어지는 프라하의 야경을 추억할 때 카를교와 블타바 강은 프라하성의 버팀목이자 배경이다. 여행자들에게는 성으로 향하는 관문이 되고, 소설가 카프카를 되새기며 다시 구시가로 돌아오는 길에는 사색의 연결로가 되는 곳이다.

카를교는 프라하성과 구시가 광장을 이으며 600년 세월을 보헤미안의 애환과 함께 했다.



다리 동쪽 탑 위에 올라서서 내려다보는 카를교는 세월만큼의 풍류를 선사하다. 다리는 강의 흐름을 거스르지 않으려는 듯 한쪽으로 완만하게 기울어진 채 이어져 있다. 다리 건너편으로는 짙고 깊은 블타바 강과 붉은색 지붕들, 프라하 성의 모습이 가지런하게 배열된다. 교각 위는 빼곡하게 구경꾼들이 채운다. 다리에서 공연을 펼치는 중년의 악단이나 거리의 화가들은 카를교의 한 단면이다. 어느 계절, 어느 시간에 몸을 기대던 다리 위에서는 보헤미안들의 애환이 녹아든 랩소디가 울려 퍼진다. 체코가 낳은 감독인 카렐 바섹(Karel Vacek)이 "프라하성과도 바꿀 수 없다"고 칭송한 다리는 영화, 드라마의 단골촬영 장소로 사랑을 받고 있다.




보헤미안의 애환과 사랑이 담긴 다리


카를교의 미학적인 가치는 다리 위에 놓인 동상들 덕분에 더욱 도드라진다. 다리의 난간 양쪽에는 성서 속 인물과 체코의 성인 등 30명의 조각상이 세워져 있다. 이 동상들은 각자의 개성과 사연을 지니며 카를교의 볼거리가 됐다.

카를교 양쪽에 세워진 동상들은 다리의 미학적 가치를 더한다.


17세기 예수 수난 십자가상은 다리 위 동상 중 최초로 세워졌다. 가장 인기 높은 작품은 성 요한 네포무크(성 존 네포무크)의 상이다. 동상 아래 부조에는 바람을 핀 왕비의 비밀을 밝히지 않아 혀를 잘린 채 강물에 던져지는 요한 네포무크 신부의 모습이 묘사돼 있다. 이 동상 밑 동판에 손을 대고 소원을 빌면 행운이 깃든다는 전설 때문에 그 부분만 반질반질하게 퇴색돼 있다.

카를교 위에서는 악사들의 

품격 높은 연주를 들을 수 있다.

소원을 빌어 반질반질해진 성 

요한 네포무크 동상의 동판

탑 위에서 내려다본 카를교. 여행자들로 빼곡히 채워져 있다.


카를교는 그 사연과 역사가 천 년을 넘어선다. 9세기 초 나무로 지어졌던 다리는 홍수로 여러 차례 유실됐고. 현존하는 카를교의 모습을 지니게 된 것은 보헤미아의 왕인 카를 4세(까를 4세) 때다. 50년의 공사과정을 거쳐 1406년에 완공되는데, 600년이 흐른 최근에도 다리의 초석을 놓은 오전 5시31분을 기리며 축포를 쏘는 풍습이 남아 있다. 풍파를 겪어낸 보헤미안들은 아직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다리’로 이 카를교를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구시가와 프라하성을 추억하다


카를교는 프라하성과 구시가를 오가는 시간여행의 통로다. 보헤미아 왕국의 수도로 1000년 세월을 간직한 프라하는 중세의 모습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

프라하성에서 내려다본 구시가 전경. 중세 건축물들이 단아하게 배열돼 있다.


카를교에서 앙증맞은 문패들이 가득한 네루도바 거리(Nerudova Ulice)를 지나면 프라하성이다. 성곽 내부의 황금소로는 금을 만드는 연금술사들의 골목이자 프란츠 카프카가 두 평 남짓한 공간에서 [변신], [성], [소송] 등의 작품을 써내려간 공간이다. 카프카 외에도 프라하는 음악가 드보르자크를 낳았고, 모차르트가 가장 사랑했던 도시였다. 성루에 오르면 블타바 강 너머 구시가의 울긋불긋한 전경이 아득하게 펼쳐진다.

카프카가 집필을 했던 황금소로. 카페, 책방 등이 들어서 있다.

‘프라하의 봄’의 사연을 담고 있는 바츨라프 광장의 기마상


60년대 피로 얼룩진 `프라하의 봄`의 배경이 됐던 바츨라프 광장이나 천문시계틴 성당으로 대변되는 구시가지 광장도 고풍스런 프라하를 단장한다. 매 시각 인형들의 춤이 시작될 때면 광장 앞은 고개를 쳐든 구경꾼들로 빼곡히 채워진다.


미로처럼 뻗은 골목에서 마주치는 건축물들은 프라하가 중세 건축의 전시장임을 보여준다. 고딕, 바로크, 로마네스크 양식의 빛바랜 담벼락들은 흐린 날 비라도 내리면 낮은 음성을 읊조리듯 친밀하게 다가선다.

구시청사의 천문시계. 매시 

정각이면 인형이 나와
춤을 춘다.

프라하성 내부 고딕양식의 성 비트 성당.


이방인들은 밤이면 뒷골목 낯선 바에 앉아 필스너 우르켈(Pilsner Urquell)을 마신다. 700년 전통의 보헤미안 맥주는 ‘달그락’거리는 동유럽 특유의 둔탁한 골목과 어우러져 운치를 더한다. 1,000년 된 거리와 600년 된 다리가 뿜어내는 묘한 매력은 도시의 잔상을 몽롱하고 알싸하게 변질시킨다.



가는 길
대한항공 등이 인천~프라하 직항편을 운항 중이다. 열차를 이용할 경우 독일 뮌헨이나 오스트리아 에서 들어가면 가깝다. 입국 때 별도의 비자는 필요 없다. 불시에 티켓검사를 하니 버스 등을 탈 때 무임승차는 삼가야 한다. 달러나 유로는 거리 곳곳 환전소에서 쉽게 환전이 가능하다. 한국 민박집들이 20여 곳 성업 중이다. 최근에는 인근 중세마을 체스키 크룸로프까지 둘러보는 여행이 인기다.

아빌라

大데레사 성녀 "초심 되찾자", '맨발 가르멜 수도회' 창립
16세기 수도원 개혁운동 産室… 수녀, 연주하며 수도생활 달래

'태양의 나라'라는 스페인이지만 봉쇄수도원으로 쓰였던 공간은 서늘했다. 지난 8일 찾은 스페인 북서부 고성(古城) 아빌라의 엔카르나시온 수도원. 지금은 박물관으로 쓰이는 건물이다. 50㎝ 두께는 되어 보이는 돌벽 안의 공간엔 작은 창문 몇 개 외에는 빛도 들지 않았다. 심지어 나무로 만든 출입문도 두툼했다. 한 번 들어가면 죽을 때까지, 아니 죽어서도 나오지 못한다는 봉쇄의 의미가 가슴에 꽂혔다.

스페인의 아빌라 성벽 밖에 서 있는 대 데레사 성녀의 석상. 맨발 차림에 하느님을 바라보며 펜을 들고 영성 서적을 쓰고 있는 모습이다.
스페인의 아빌라 성벽 밖에 서 있는 대 데레사 성녀의 석상. 맨발 차림에 하느님을 바라보며 펜을 들고 영성 서적을 쓰고 있는 모습이다. /김한수 기자
실내엔 각종 냄비와 프라이팬 등이 보인다. 주교와 사제들의 제의도 여러 벌 걸려 있다. 수백 년 전 수녀들이 만들어 봉헌하거나 주문을 받아 제작한 것들. 그런데 뜻밖의 물건이 유리 진열장 안에 전시돼 있다. 기타, 북, 피리 심지어 하프도 있다. 작은 실내악단을 구성할 만한 악기들이다. 봉쇄수도원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비감함 혹은 '숨죽이는 공간'만은 아니었다. 엄격할 때는 엄격하되 그 안에서 바깥세상과 똑같이 밥도 먹고, 음악도 연주하며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하느님과 만나는 곳이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사제·수도자들에게 "얼굴 찌푸리지 말라"고 하는 '복음의 기쁨'이란 바로 이런 정신이 아닌가 싶었다. 박물관 마당 건너엔 지금도 수녀 10여명이 봉쇄 수도 생활을 하고 있다고 했다.

엔카르나시온 수도원은 아빌라의 대(大) 데레사(1515~1582) 성녀가 지금도 봉쇄수도원의 대명사로 불리는 '맨발 가르멜 수도회'를 창립한 곳, 16세기 수도원 개혁운동의 요람이다. 예수회의 이냐시오 성인보다 한 세대 후에 태어난 데레사 수녀는 '펜'과 '맨발'이 트레이드 마크다. 맨발은 수도원 개혁을, 펜은 그의 영성을 상징한다.

주방용품과 더블베이스가 함께 전시된 엔카르나시온 수도원 박물관 내부.
아빌라의 부유한 유대인 가문에서 태어난 성녀의 꿈은 '하느님 만나기'였다. 7세 때 순교자가 되겠다며 오빠와 함께 아프리카로 가출을 감행한 당돌한 소녀였다. 12세 때 어머니를 여의고 수녀원에서 자란 그는 기도 중 예수님이 매질당하는 환영을 보게 되고,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을 읽으며 큰 신심(信心)을 얻는다. "그때까지 나의 생활은 나 자신의 것이었으나 그 후부터 나의 생활은 내 안에 계시는 예수의 생활이었다." 갈라디아서에서 바오로 사도가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내 안에서 사시는 것"이라고 한 순간을 연상시킨다.

그런 열정의 성녀에게 당시 수도회들은 초심(初心)을 잃어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것으로 보였다. 자신이 몸담은 가르멜회도 그랬다. 이스라엘 가르멜산(山) 은수자(隱修者)로부터 시작돼 13세기 서유럽으로 이주한 가르멜회는 14세기 전성기를 맞았다가 점차 초기 정신이 희미해졌다. 흑사병과 온갖 전쟁 그리고 종교개혁 등 당시의 뒤숭숭한 시대 상황이 수도원 담까지 넘어 수행 분위기를 흐린 것. 데레사 성녀는 청빈, 기도 생활, 침묵과 고독, 공동체 정신의 회복을 외치며 '맨발 가르멜 수도회'를 열었다. 맨발은 초심 회복의 상징이었다. 1562년 성녀의 나이 40대 후반의 일이다.

아빌라 위치 지도
이후 성녀는 스페인 전역을 당나귀 타고 다니며 봉쇄수도원을 세웠다. 모두 17곳에 이른다. 그의 삶은 끊임없이 기도하고, 집필하고, 수도원을 여는 것이었다. 마지막도 길 위에서였다. 유언도 "주여 나는 성 교회의 딸입니다"였다. 그의 유해가 모셔진 살라망카 외곽 알바 데 토로메스 수도원 성당. 제대 옆 성녀의 상(像)은 보자기가 아닌 박사모(帽)를 쓰고 있다. 1970년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교회학자로 선포된 성녀의 영성을 기리고 있는 것.

엔카르나시온 수도원 마당 바닥, 십자가를 중심으로 새겨진 동심원 7개는 신앙의 열정을 보여준다. 넷째 동심원까지는 자발적인 노력으로 다가갈 수 있지만 다섯~일곱째 동심원은 하느님이 이끌어주셔야 닿을 수 있는 경지다. 그가 남긴 '천주 자비의 길'(자서전) '하느님 사랑에 관한 명상' '개혁 가르멜 창립사' '완덕의 길' '영혼의 성' '영적 보고' '하느님께 외침' '수도원 시찰방법' 등의 저술은 일곱째 동심원에 다가서기 위한 노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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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만드는 아티스트 정화, 베를린을 읽어내다

씹을수록 맛있는 독일의 빵

프랑스의 바게트, 영국의 머핀, 덴마크의 페이스트리 같은 다른 유럽의 빵에 비해 독일 빵은 세계적으로 그리 유명하지 않다. 하지만 씹을수록 고소한 맛이 나는 독일 빵은 향기가 좋고 건강에도 좋으며, 그 자체만으로도 하나의 훌륭한 식단이 될 만큼 품질이 우수하다.

독일 빵을 처음 맛보는 사람들은 약간 신맛이 나고 씹기 힘든 딱딱한 질감 때문에 부담스러워하지만, 한번 맛을 들이면 “독일 빵이 세계 최고다”라고 말하게 된다. 어쩐지 알면 알수록 매력적인 나라, 독일. 그 자체와도 많이 닮아 있다. 빵의 종류도 다양하다. 건강에 좋은 발효빵인 검은 호밀빵을 비롯하여 약 350여 가지의 다양한 빵 종류가 있다.

Vollkornbrot 폴콘브로트
다양한 곡물이 들어가는 건강빵. 빵 위에 해바라기씨, 호박씨 등의 건과류가 가득 붙어 있는 폴콘브로트는 한눈에 보기에도 먹음직스럽다. 호밀이 주재료인데, 맛은 약간 시큼하고 식감은 뻑뻑하다. 독일 사람들은 이 빵을 잘라 샐러드, 토마토, 치즈, 살라미, 슁켄 등을 토핑하여 먹는데, 한국 사람들은 입안 가득 씹히는 곡물과 특유의 강한 신맛, 거친 질감 때문에 처음에는 먹기 힘들다. 하지만 한번 맛들이면 빠져나올 수 없는 빵이 바로 이 폴콘브로트이기도 하다. 나 역시 이 거친 맛에 중독돼서 지금은 샌드위치를 만들 때, 이 빵만 쓴다. 한 끼를 먹어도 든든하게 잘 먹었다는 느낌이 드는 영양 만점의 빵이다.

Turkisches Brot 터키빵
부드럽고 쫄깃한 터키빵. 베를린에는 터키인이 많이 거주하기 때문에 그들의 문화도 큰 축을 이루고 있다. 독일빵보다 훨씬 연하고 올리브오일이 많이 함유된 터키빵은 소화가 잘되어 먹고 나서도 속이 편안하다. 치즈나 샐러드, 고기 등이 들어 있는 것도 있는데 되너Doner, 케밥Kebap, 뒤름Durum, 터키식 피자Turkische Pizza 같은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기도 한다. 올리브나 터키식 치즈, 콩으로 만든 소스 등을 곁들여 먹으면 훨씬 맛있다. 베를린에서는 터키인들의 디저트도 꽤 대중적으로 잘 팔리는데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단맛이 인상적이며 값도 비싼 편이다.

Brezel 브레첼
독일의 대표 빵. 밀가루 반죽을 둥글게 리본으로 묶어 구운 독특한 모양으로, 독일빵을 상징하는 아이콘이 되었다. 독일 남부 지방에서 유래된 빵으로 소금이 박혀 있어 조금 짜지만 쫄깃한 맛이 일품이다. 이 모양으로 된 과자도 맥주 안주로 유명하다. 독일인들은 음식을 짜게 먹는 편이라 어린아이들도 브레첼 을 잘 먹지만, 한국인의 입맛에는 다소 짜다. 소금을 털어내고 먹어야 제맛을 느낄 수 있다. 시루떡처럼 쫄깃한 식감에 짭짤한 맛이 배어 있어, 입맛이 없을 때는 한 끼 식사 대용으로도 든든하다.

12월에 즐기는 크리스마스 빵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독일 사람들은 가족들끼리 쿠키나 달콤한 빵을 구워서 나눠 먹는다. 크리스마스에 즐겨 먹는다고 해서 ‘크리스마스 빵’이라고 부른다.

Berlinerbrot 베를리너브로트
초콜릿과 갈색 설탕, 밀가루, 하젤 땅콩이 들어간 케이크의 일종. 주로 따뜻한 차나 따뜻하게 데운 레드 와인과 함께 먹는다.

Weihnachten Platzchen 크리스마스 플랫첸
여러 가지 모양으로 구운 버터 쿠키. 초콜릿이나 견과류 등을 넣은 과자로 명절에 온 가족이 모여 함께 모양을 만들고 굽는다.

파리―빅토르 위고와 '레미제라블'의 자취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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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파리 시테 섬 북쪽의 샹주 다리. 빅토르 위고의 소설 ‘레미제라블’에서 경찰관 자베르가 투신자살한 곳이다. 뒤에 보이는 건물은 프랑스 혁명 당시 감옥으로 쓰였던 콩시에르주리. / 파리=유석재 기자
"내일이 오면 신의 뜻한 바를 알게 되리라. …내일은, 내일로!" 현재 서울에서 공연 중인 뮤지컬 '레미제라블'중 1막 마지막 부분에서 시위대가 부르는 노래다. 1862년 세상에 나온 프랑스 문호 빅토르 위고(Hugo·1802~1885)의 소설 '레미제라블'이 154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여전히 세계인의 가슴을 울리고 있는 것이다. 위고와 '레미제라블'의 주요 무대는 프랑스 파리. 파리에 거주하는 번역가 이재형씨의 도움으로 그 자취를 따라갔다.

부자 동네서 탄생한 '레미제라블'

파리 지하철 바스티유 역에서 한 정거장 떨어진 생 폴(St-Paul) 역에 내리면 생 폴 생 루이 성당이 나온다. 1641년 루이 13세가 예수회 수도원 부속 교회로 건립했으며 소설 '레미제라블'에서 1833년 장발장의 양녀 코제트가 마리우스와 결혼식을 올린 것으로 묘사된 장소다. 이곳에선 1843년 위고의 큰딸 레오폴딘이 실제로 결혼식을 올렸다. 그때 위고가 성당에 기증한 구불구불한 외양의 성수반(聖水盤·성당 입구에 놓아두는 성수를 담은 그릇) 두 개가 아직도 벽에 붙어 있어 진한 부정(父情)을 전한다.

여기서 동쪽으로 조금 걸어가면 보주(Voges) 광장이 나온다. 17세기 초 앙리 4세가 만든 '왕가의 광장'이었으며, 북쪽에는 귀족들이 대저택을 지어 살았다. 지금도 정치인, 배우, 방송국 앵커 같은 유명인들이 거주한다고 한다. 광장 남동쪽 건물 3층에 빅토르 위고의 집이 있다. 위고는 '레미제라블'에 나온 1832년 6월 혁명이 일어난 지 4개월 뒤 보주 광장 6번지의 이 집으로 이사했고 1845년부터 17년 동안 여기서 '레미제라블'을 집필했다. '비참한 사람들'의 지역이 아니라 부유층이 사는 동네에서 '레미제라블'이 쓰여졌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복원된 위고의 서재와 응접실, 침실, 가족 초상화를 볼 수 있다. 로댕이 만든 위고의 흉상은 힘이 넘친다. 근처 카르나발레 박물관(파리역사박물관)에선 1830년 7월 혁명의 자료를 통해 2년 뒤 일어난 '레미제라블' 속 '혁명'의 열기를 유추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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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르 위고의 집 내부. 위고의 초상화와 흉상(로댕 작품)이 보인다. ‘레미제라블’을 쓴 곳이다.
바리케이드 자리엔 신발·청바지 가게

박물관 건너편에 있는 파리역사도서관의 오른쪽 벽면은 예전 라 포르스(La Force) 감옥의 외벽이 있었던 곳이다. 이 감옥은 코제트의 후견인으로 행세하던 '레미제라블'의 악역 테나르디에가 살인미수 혐의로 체포돼 갇혀 있다가 탈출한 곳이다. 근처에 장발장과 코제트가 살았던 것으로 설정된 레 자르시브가 40번지가 있다. 장발장은 경찰 자베르의 추적을 피해 집 세 채를 옮겨다니며 살았는데, 그중 한 곳이다. 지금은 유치원(école mater nelle)이 들어선 4층 석조 건물이다.

마레 지구에서 퐁피두 센터를 지나 서쪽으로 가면 '레미제라블'의 주요 배경인 빈민가가 있던 보부르(Beaubourg) 지구가 나온다. 생 드니(Saint-Denis)가는 프랑스 역대 왕이 전쟁하러 떠날 때 지나가던 길이며, 현재 환승 지하철역이 있는 레 알(Les Halles) 일대에는 1970년대까지 큰 시장이 있었다.

'레미제라블'의 시대인 19세기 전반기엔 이 일대 좁은 골목마다 다양한 직업을 지닌 빈민들이 살았다. 이 빈민가의 길은 마차 한 대가 간신히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좁았고, 배설물이 흐르는 길가 구석마다 창밖으로 내던진 쓰레기가 쌓였다고 한다. '레미제라블'에서 '혁명' 주도 세력의 모임 장소인 코랭트 술집도 이 일대에 있었다. 소설 속에서 시위대가 바리케이드를 치고 대치했던 길에는 지금 건물이 들어서 있는데, 신발 가게(닥터 마틴)와 청바지 가게(리바이스) 사이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 좁았을 길에 쌓인 바리케이드는 영화나 뮤지컬에 등장하는 장대한 규모일 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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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퐁피두 센터 서쪽 보부르 지구 레알 전철역 인근 거리는 ‘레미제라블’에서 혁명군이 바리케이드를 쳤던 골목이 있던 장소다. 당시엔 신발 가게와 청바지 가게 사이쯤으로 길이 나 있었다.
자베르는 다리에서 무엇을 보았을까

오랜 세월 도망자 장발장을 추격하던 경찰관 자베르는 '혁명'의 와중에서 도리어 장발장이 그의 목숨을 구해 준 뒤 자책감에 빠진다. 그는 센강의 한 다리에서 투신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작품에는 이 다리의 이름이 나오지 않지만, 전문가들은 소설의 정황상 시테 섬 북쪽의 샹주 다리(Pont au Change)인 것으로 보고 있다. 파리의 주요 공연장인 테아트르 드 라 빌, 샤틀레 극장과 인접한 곳이다. 자베르는 이 다리 북동쪽 난간에서 센강으로 몸을 날렸다는 것이다. 지금은 그 아래 강물 대신 자동차 도로가 놓여 있고 강 건너편에는 마리 앙투아네트가 수감된 감옥이었던 콩시에르주리가 보인다. 평생 엄정한 법의 집행자를 자부했던 자베르는 마지막 순간 '법 집행'의 상징과도 같은 그 건물을 보며 회의에 빠진 것인지도 모른다.

강 건네 시테 섬에는 빅토르 위고의 또 다른 대표작 '파리의 노트르담'의 무대였던 노트르담 대성당이 있다. 프랑스 혁명 이후 창고나 야전병원으로 쓰일 정도로 격하됐던 이 성당은 1831년 위고의 소설이 나온 이후 옛 위상을 되찾게 됐다. 위고야말로 '노트르담의 은인'이었던 셈이다.

여기서 지하철 국철 구간으로 한 정거장 떨어진 뤽상부르 공원은 마리우스가 코제트를 처음 만난 것으로 묘사된 장소다. 정원 북쪽 궁전 정면의 오른쪽에 있는 돌벤치에 장발장과 코제트가 앉아 있었고, 마리우스는 그녀를 보고 한눈에 반해 버린다. '혁명'이 실패로 돌아간 뒤 장발장은 쓰러진 마리우스를 구출한 뒤 하수도를 통해 필사적으로 도주하는데, 그 옛 하수도의 자취를 볼 수 있는 곳은 에펠탑과 가까운 지하철 퐁 드랄마(Pont de l'Al ma) 역 근처 파리 하수구 박물관(Des égouts de Paris)이다. 지금까지의 장소 중 유일하게 관람료(4.4유로)를 받는다.

① 생 폴 생 루이 성당: ‘레미제라블’에서 마리우스와 코제트가 결혼식을 올린 곳

② 빅토르 위고의 집

③ 카르나발레 박물관(파리역사박물관)

 테나르디에가 탈출한 감옥

 장발장과 코제트가 거주한 집

 1832년 시위대가 바리케이드를 친 곳

⑦ 샹주 다리: 자베르가 투신자살한 곳

⑧ 노트르담 대성당: ‘파리의 노트르담’의 무대

⑨ 뤽상부르 공원: 마리우스가 처음 코제트를 본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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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기에 르네 마그리트 미술관과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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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 마그리트가 자주 들렀던 카페 ‘라 플뢰르 앙 파피에 도레’. 벽에 마그리트(오른쪽에서 둘째)와 동료 작가들 사진이 걸려 있다. / 브뤼셀=최수현 기자

벨기에는 경상도 크기만 한 작은 나라다. 하지만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자랑거리가 여럿 있다. 한입 크기 초콜릿 ‘프랄린’을 만들어낸 ‘디저트 왕국’이고, 만화 주인공 땡땡·스머프 등이 탄생한 애니메이션 선진국이며,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장’으로 불리는 그랑플라스를 품었다. 또 하나, 화가 르네 마그리트(1898~1967)의 고향이다.

20세기 초현실주의 거장 마그리트는 브뤼셀에서 거의 평생을 지냈다. 작은 도시 브뤼셀에는 그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마그리트는 이곳의 '대표 상품'이다.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파이프와 중절모, 사과를 활용한 기념품을 판다. 2009년 문을 연 마그리트 왕립미술관은 관광 명소로 손꼽힌다.

지하철 파르크(Parc) 역에서 내려 공원을 가로지르면 왕궁 맞은편에 미술관이 있다. 3층에서 출발해 1층까지 연대순으로 정리된 작품들을 따라가다 보니 마그리트의 생애가 한눈에 들어왔다. 마그리트 그림처럼 신비로운 분위기로 가득했다. '예술의 개념을 바꾼 예술가'로 평가받는 마그리트는 익숙한 사물을 낯선 맥락 속에 배치해 상식과 선입견에 도전했다. 작품을 감상하는 이들은 혼란과 충격에 빠지면서 당연하게 여겨오던 것들을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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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그리트 왕립 미술관은 창문을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중절모 쓴 남성 실루엣으로 꾸몄다. / 고디바 제공

대표작 '빛의 제국'은 마지막 전시관 가장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는 같은 제목의 작품을 여러 점 남겼는데 그중 1954년과 1961년작이 걸려 있다. 대낮의 하늘과 가로등불 켜진 밤거리가 공존하면서 마그리트 특유의 신비스럽고도 불안한 분위기가 조성된다.

지하에는 마그리트 일대기 다큐멘터리 영화가 상영되고 있었다. 양복 재단사 아버지와 모자를 만드는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14세 때 어머니가 강물에 몸을 던져 자살하는 비극을 겪었다. 현실과 환상을 오가는 그의 작품 세계가 어머니를 잃고 방황해온 내면과 연관돼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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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그리트가 1930년부터 24년간 살았던 집.

미술관에서 나와 지하철을 타고 벨지카(Belgica) 역에서 내렸다. 마그리트가 아내와 함께 1930년부터 24년간 살았던 집으로 가는 길이다. 'MAGRITTE'라는 문패가 달린 붉은 벽돌 건물 앞에 '빛의 제국'에 등장하는 것과 똑같이 생긴 가로등이 서 있었다.

18세 때 브뤼셀 왕립미술학교에 들어간 그는 어느 날 이탈리아 초현실주의 화가 조르조 데 키리코(1888~1978)의 작품을 보고 '그림이 그림 이외의 것을 이야기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고 한다. 1927년 첫 개인전이 혹평을 받자 프랑스 파리로 건너가 초현실주의 작가들과 어울렸다. 그러나 화랑의 경제적 지원이 끊기면서 3년 만에 돌아와 이곳에 정착했다.

마그리트 부부는 3층 건물 중 1층을 썼는데 현재 미술관으로 복원돼 있다. 비좁은 집안에서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창문, 계단, 벽난로 등 일상의 소박한 사물들을 그대로 발견할 수 있었다. 작업실은 부엌에 붙어 있는 작은 다이닝룸이었다. 마당 한편에 스튜디오가 있었으나 거기선 생계를 위한 광고 디자인만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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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그리트 1928년작 ‘공간의 문제’. 전쟁 당시 사라졌던 작품을 복원해 그가 살았던 집에서 전시했다. / 르네 마그리트 미술관 제공

마그리트가 동료 작가들과 함께 자주 갔다는 카페에 들렀다. 그랑플라스에서 걸어서 5분 거리인 '라 플뢰르 앙 파피에 도레(La Fleur en Papier Doré·금빛 종이로 만든 꽃)'는 그가 전시회를 열기도 했던 곳이다. 예술 작품이 벽을 가득 채우고 있는 카페에 앉아 벨기에 맥주를 마셨다. 마그리트가 동료들과 함께 찍은 대형 사진이 걸려 있었다.

카페를 나오니 입구에 붙어 있는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마그리트의 대표작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Ceci n'est pas une pipe)'를 패러디한 것 같았다. '이곳은 미술관이 아니다: (음료를) 마시는 곳이다(Ceci n'est pas un musée: on consomme).'

한국에서 벨기에로 가는 직항편은 없다. 대한항공, 영국항공 등 경유편을 이용해야 한다. 마그리트 왕립 미술관(www.musee-magritte-museum.be) 입장료는 8유로. 월요일 휴관. 마그리트가 살았던 집(www.magrittemuseum.be)은 지하철 Belgica역에서 51번 트램 타고 두 정거장. 입장료는 7.5유로. 월·화 휴관. 카페 위치는 알렉시엥길(Rue des Alexiens) 55번지. 홈페이지 참조(www.lafleurenpapierdore.be)


안달루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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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이 98m의 ‘누에보 다리’는 절벽 위의 도시 론다의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를 잇는다. 헤밍웨이는 “연인과 스페인으로 떠난다면 꼭 론다에 가라”고 했다. /양지호 기자

스페인에 간다면 안달루시아로 가라. 스페인 하면 떠오르는 투우, 플라멩코, 시에스타(낮잠) 모두 안달루시아에 기원을 두고 있다. 이슬람과 기독교 문화가 뒤섞인 안달루시아의 독특한 모습은 수많은 문호와 예술가를 자극했다. 스페인의 정수(精髓)가 이 남부 지방에 녹아 있다. 안달루시아는 8세기부터 15세기까지 스페인의 거의 전역을 지배했던 이슬람 왕조의 영토였다. 안달루시아는 당시 이베리아 반도를 지배한 이슬람 왕조의 별칭인 알안달루스(Al-Andalus)에서 유래했다. 1492년 그라나다가 함락되며 이슬람 세력은 이베리아 반도에서 축출됐지만 그들의 유산은 세계의 여행객을 불러모으고 있다.

◇연인의 도시 론다

협곡 위에 세워진 98m 높이의 누에보 다리는 론다의 상징이다. 론다의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를 이어주는 이 다리는 42년간의 공사 끝에 1793년 완공됐는데 보는 이를 압도하게 한다. 소설가 헤밍웨이는 "허니문으로, 또는 연인과 스페인으로 떠난다면 론다에 꼭 가야 한다"고 했다. 그는 대표작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와 '무기여 잘 있거라'를 이곳에서 썼다.

론다는 스페인 근대 투우가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 18세기 투우사 프란치스코 로메로는 소를 모는 망토와 물레타(붉은 천)를 고안하고 근대 투우를 확립했다. 그의 손자 페드로 로메로는 5000마리 넘는 소와 대결해 승리하면서 전설적인 투우사가 됐다. 인구 3만명의 소도시지만 마을 한가운데에 있는 투우장에서 경기가 열리면 6000석이 가득 찬다.

론다의 진면목은 동트기 직전 이슬이 내려앉은 거리를 거닐며 느낄 수 있다. 여행객의 떠들썩함이 가신 고요한 론다를 새의 지저귐이 채운다. 헤밍웨이가 왜 연인과 오라고 했는지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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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설 ‘카르멘’은 스페인 코르도바에 있는 로마교를 건너는 집시 여인의 모습에 영감을 받아 탄생했다. 2 알람브라 궁전 나스리 궁에 있는 ‘사자의 샘’. 3 세비야‘4월 축제’를 즐기는 스페인 시민. 4 피카소의 고향 말라가의 항구 전경. 말라가는 스페인 남부‘코스타 델 솔(태양의 해변)’의 시작점이다. /양지호 기자
◇코르도바, 이슬람과 가톨릭의 대비

코르도바의 상징은 한때 이슬람 왕국의 모스크였던 '코르도바 산타마리아 성당'이다. 이 성당은 메스키타(Mezquita·스페인어로 모스크)라는 일반명사로 더 유명하다. 10세기 이슬람 토후국의 수도였던 시절 이슬람 사원으로 지어졌다가 13세기 국토회복운동(레콩키스타)을 통해 가톨릭이 코르도바를 차지하면서 성당으로 개축됐다. 건축양식은 여지없는 모스크인데 건물 벽면과 천장은 카톨릭 성화(聖畵)와 성상(聖像)이 가득하다. 교회에 탱화와 불상이 있는 모습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이다. 가톨릭 문화와 이슬람 문화의 기묘한 동거다.

코르도바는 오페라 카르멘을 낳았다. 오페라의 원작이 된 소설 '카르멘'을 쓴 프랑스 작가 메리메는 코르도바를 가로지르는 과달키비르 강 위에 놓인 로마교 위를 걷는 집시 여인을 보고 착상을 얻었다고 한다.

코르도바에서는 파티오 거리를 꼭 찾아야 한다. 파티오는 'ㅁ'자 형태로 집을 만들고 가운데 정원을 꾸미는 안달루시아식 주택의 안뜰을 말한다. 메스키타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인 이곳에서는 매년 5월부터 12일가량 '파티오 축제'가 열린다. 어느 집 안뜰의 화초가 더 아름답게 가꿔졌는지를 겨룬다. 스페인의 햇살을 받은 꽃들은 코르도바 건물의 흰색 벽에 대비돼 더 화사하게 빛난다.

◇축제의 도시 세비야

스페인 안달루시아
안달루시아 자치주의 주도(州都) 세비야는 스페인 하면 떠오르는 정열의 도시다. 매년 펼쳐지는 '4월 축제'와 부활절 즈음 펼쳐지는 '세마나 산타'가 양대 산맥이다. 봄의 축제로도 불리는 4월 축제는 일주일 동안 축제 부지에 천여 개 넘는 축제용 천막 '카세타'를 세우고 춤을 즐긴다. 머리에 꽃모양 장식을 달고 안달루시아식 주름치마를 입은 여성과 정장을 차려입은 남성들이 천막을 돌아다니며 춤을 춘다. 축제가 벌어지는 거리는 말을 탄 연인과 마차를 탄 가족들로 가득하다. 연주와 춤은 매일 새벽 2시까지 이어진다. 올해 축제는 지난 11일에 시작해 17일 밤에 불꽃놀이와 함께 끝났다. 세마나산타와 4월 축제가 이미 끝났다고 해서 아쉬워할 필요는 없다. 세비야관광청은 "5월 이후 예정된 축제만 21개"라고 밝혔다.

플라멩코가 발원한 안달루시아의 최대 도시인 세비야에는 플라멩코 공연장도 여럿이다. 스페인어 불꽃(flama)에서 유래한 이름인 만큼 화려하고 뜨겁다. 플라멩코 하면 춤만 떠오르지만 사실 무용수, 가수, 기타 연주자의 호흡이 중요하다. 노래는 판소리처럼 구성지고 춤은 탭댄스를 떠오르게 할 정도로 화려하다. 처음에는 어색해하던 관광객들도 무대에 빠져들면서 함께 손뼉을 치고 '올레'를 외쳤다.

◇피카소가 나고 자란 도시 말라가

말라가는 스페인의 유명 휴양지 ‘태양의 해변(Costa del sol)’으로 가는 관문이다. 지중해의 화사한 햇살이 쏟아지는 말라가부터 지브롤터 해협까지의 해변을 그렇게 부른다. 우중충한 날씨의 서유럽 사람들에게는 최고의 휴양지다. 이 땅에서 파블로 피카소가 나고 자랐다. 말라가 대성당 인근에 있는 피카소미술관에서는 피카소의 유족으로부터 기증받은 작품 80여 점을 전시하고 있다. 일정이 바쁘다면 말라가 대성당을 둘러본 뒤 피카소 미술관으로 가면 된다.

(위로부터) 론다 산(産) 재료로 만든 고기 파에야. 코르도바 상점에 걸린 하몽.
인천공항에서 스페인 말라가로 가는 직항편은 없다. 이스탄불을 경유해 말라가 공항으로 가는 편이 거리가 짧다. 터키 항공(turkishairlines.com·1800-8400)은 6월부터 이스탄불-말라가편을 1일 2회 운항한다. 인천-이스탄불 주 11회 운항. 말라가에서 그라나다, 세비야, 론다, 코르도바까지는 차편이나 기차로 이동. 말라가에서 론다까지는 1시간, 세비야, 코르도바, 그라나다는 2시간 안팎 걸린다. 말라가에 도착해 론다, 세비야, 코르도바, 그라나다 순으로 방문한 뒤 말라가로 돌아와 출국하면 동선 낭비가 적다.

알람브라 궁전의 야경을 보며 식사하고 싶다면 궁 맞은편 알바이신 지구의 카르멘 아벤 후메야를 추천한다. 레스토랑 정보지 자가트가 꼽은 ‘세계에서 가장 낭만적인 레스토랑 톱10’에 이름을 올린 곳이다. 야외 테이블과 실내에서 모두 알람브라 전경이 보인다. 프랑스 출신 셰프가 안달루시아 전통음식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메인요리 20유로 안팎. 5 코스 이상의 정찬(正餐)도 50유로부터 시작한다. 1유로는 약 1300원. +34 633 04 28 81

론다에서는 18세기 전설적인 투우사의 이름을 딴 레스토랑 페드로 로메로가 유명하다. 벽에 늘어선 소 머리 박제가 인상적이다. 안달루시아식 소꼬리찜(Rabo de toro·20유로)이 많이 팔린다. +34 952 87 11 10

스페인 하면 떠오르는 하몽(말린 돼지다리)은 잘못 고르면 돼지 냄새 때문에 거부감을 느낄 수도 있다. 하몽 전문 매장이나 시장에서 조금씩 맛을 본 뒤 사는 편이 안전하다. 현지인들은 말라가 대성당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아타라사나스 시장(Mercado Central Ata razanas)에서 출국 전 하몽과 말린 무화과, 견과류를 싸게 살 수 있다고 조언했다. 운영시간 오전 8시~오후 2시.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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