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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필리핀

필리핀 엘니도 : 놀러 와서도 바지런 떠는 당신, 여기 오지 마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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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엘니도

필리핀 엘니도 바다
엘니도 바다는 터키옥(玉)이라 부르는 짙푸른 청록빛이다. 물결은 잔잔하고 조류(潮流)도 세지 않다. 수영을 못해도 구명조끼만 입으면 얼마든지 카약을 저어 이 섬 저 섬 기암절벽을 돌아볼 수 있다. / 필리핀관광청 제공
필리핀은 우리나라와 경도(經度)가 비슷하다. 비행기를 타면 계속 남쪽으로만 날아간다. 서울에서 마닐라까지 비행시간은 3시간 30분 정도. 기내식 한 번 먹고 커피 한 잔 하다 보면 어느새 도착하는 가까운 거리다. 그렇지만 필리핀은 열대지방이다. 1년 내내 여름이다. 우리나라 봄·여름·가을·겨울 어느 계절에 비행기를 타도 목적지에 다다를 즈음이면 벌써 공기가 다르다. 뜨거운 태양이 비행기를 달궈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어도 후끈후끈 열기가 몸을 감싼다. 미국이나 유럽, 중국처럼 지구를 동서로 가로지르는 여행에서는 맛볼 수 없는 묘미다. 그러니 필리핀 여행을 유쾌하게 즐기려면 기내 가방에 반팔 티셔츠와 반바지, 샌들을 챙겼다가 비행기가 슬슬 고도를 낮출 무렵 옷을 바꿔 입는 것이 좋다.

엘니도(El Nido)는 마닐라에서 남서쪽으로 420㎞ 떨어져 있는 섬이다. 단일 섬이 아니라 꼬마 섬 45개로 이뤄진 군도(群島)다. 대부분 무인도이고, 그중 몇 군데에만 여행객을 맞는 리조트가 있다. 여행객은 대개 미니록, 라겐, 팡굴라시안, 아풀릿 네 섬 중 한 곳에 머무른다. 여기까지 가려면 마닐라 공항에서 국내선 비행기로 갈아타고 한 시간쯤 날아 엘니도 본섬 공항까지 간 뒤 거기서 다시 40분쯤 배를 타야 한다. 인천 공항에서 아침 8시 비행기로 출발해도 엘니도 리조트에 체크인 할 무렵이면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넘어간다. 그러나 그렇게 들인 시간이 전혀 낭비가 아니었음을 깨닫는 데는 그다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필리핀 엘니도 바다에서 스쿠버다이빙
스쿠버다이빙을 할 줄 알면 금상첨화다. 떼 지어 노니는 예쁜 열대어를 손으로 만져볼 수도 있다.
엘니도는 스페인어로 '새의 둥지'란 뜻이다. 엘니도의 아침은 새소리와 함께 열린다. 새벽 5시 반, 온 세상 새가 모두 엘니도에 몰려오기나 한 것처럼 요란한 새소리가 온 섬에 울려 퍼진다. 문을 열고 발코니에 나서면 방갈로 뒤편 울창한 숲 속에서 쏟아져 나오는 시원한 숲내음이 가슴 깊숙이 스며든다. 눈앞은 바로 바다다. 촘촘히 박혀있는 수많은 섬이 천연 방파제 노릇을 해줘 바다는 마치 호수처럼 잔잔하다. 날이 밝아오면 바다는 진한 코발트블루의 황홀한 자태를 드러낸다. 맑고 푸른 빛에 눈이 시리다.

그리고 완벽한 자유가 시작된다. 배를 타고 가다 마음 내키는 곳 아무 데서나 멈춰 물안경과 오리발을 차고 바다 밑 산호를 감상하고 신기한 열대어들과 친구가 될 수 있다. 이 섬 저 섬 기기묘묘한 석회암 절벽들을 끼고 도는 보트 크루즈를 할 수도 있고 직접 카약을 저어 바다 동굴을 탐험할 수도 있다. 절벽 주변에는 스쿠버다이빙 포인트가 수십곳 있다. 그 밑에는 화려한 산호초 100종, 진기한 물고기 800종, 엘니도에만 서식하는 바다거북들이 산다. 점심은 코코넛나무 그늘에 돗자리를 펼쳐놓고 먹는다. 아침에 리조트에 신청하면 바나나 잎에 싼 밥, 싱싱한 해산물, 잘 구운 바비큐, 망고 디저트를 곁들인 피크닉 바구니를 챙겨 준다. 해변에서 몇 걸음만 걸어 들어가면 천연 원시림이 펼쳐진다. 가벼운 하이킹을 즐기며 코뿔새·다람쥐·박쥐 같은 희귀종들이 서식하는 열대우림의 속살을 들여다볼 수 있다.

스노클링도, 수영도, 다이빙도, 낚시도, 하이킹도 내키지 않거든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된다. 바다가 바라다보이는 풀장 안락의자에 누워 산미겔 맥주나 마가리타 한 잔을 옆에 놓고 하루를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다. 다른 사람 아무도 없는 무인도를 찾아 단둘이 로맨틱한 시간을 보낼 수도 있다. 10만원쯤 비용을 들이면 리조트 직원이 보트로 원하는 섬에 데려다 주고 분위기에 맞는 디너 테이블을 차려준 뒤 약속한 시각에 데리러 온다. 엘니도 여행객 중에는 신혼 커플이 많다.

엘니도에서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면 번잡한 도시의 기억은 거짓말같이 아스라해진다. 사방이 바다인 엘니도에서 탈출은 불가능하다. 스노클링 같은 데 취미가 없는 사람이라면 낮에도 별로 할 일이 없다. 해가 지면 세상은 어두워지고 섬은 적막에 싸인다. 밤늦게 술 마시고 떠드는 사람도 없고 술집도 없다. 리조트 말고는 마을도 주민도 없는 무인도에서 딱히 갈 곳도 없다. 이런 밋밋한 곳에서 여행객은 하루하루 속절없이 중독된다. 시간은 꿈결처럼 몽롱하게 흐른다. 그러다 체크아웃 날짜가 다가오면 자기도 모르게 "돌아가기 싫다…"고 중얼거리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외딴 시골 비행장에서 프로펠러 쌍발기에 몸을 싣고 하늘로 날아오르면서 여행객은 문득 꿈에서 깨어난다.

여행 수첩

엘니도까지 직항은 없고 마닐라에서 필리핀 국내선으로 갈아타야 한다. 필리핀항공(Philippine Airlines)이 인천-마닐라를 매일 2회, 부산-마닐라를 매일 1회 운항하고 7월 25일부터 무안에서도 주 2회 운항한다. 국내 여행사들과 제휴해 다양한 엘니도 여행상품도 판매한다.

필리핀 관광청 한국사무소 02-598-2290, www.7107.co.kr

필리핀 항공 1544-0008(상품) 1544-1717(항공), www.philippineair.co.kr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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