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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로마

이탈리아 로마 : 나만의 홀로서기 홀러세움, 그곳은 콜로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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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로세움

콜로세움(Colosseo)은 고대 로마 시대의 원형경기장이다. 현재는 로마의 랜드마크가 되어 ‘로마’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유적지가 되었다. 총 4층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둘레 527미터, 높이 48미터의 돌로 된 거대한 건축물이다.
로마에 가면 가장 먼저 가보고 싶은 곳이 콜로세움이 아닌가 한다. 단순히 ‘석재로 만들어진 거대한 원형경기장’ 정도의 지식만으로는 콜로세움을 몸으로 느끼기엔 다소 부족 할 것 같다. 조금은 지식을 가지고 보는 것도 그리 나쁜 여행은 아닐 것 같다. 콜로세움을 처음 접하는 이들은 로마의 오래된 역사를 실감하며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건축기술이 좋은 현재도 이 정도 규모가 되면 굉장히 위협적으로 느껴졌을 텐데 콜로세움은 전혀 그렇지 않고 온화하고 가지런하다. 알고보면 콜로세움은 많은 검투사들이 목숨을 잃은 장소이다. 그 생각만으로도 이 경기장의 의미를 담고 있는 이면에는 인간의 잔혹함도 섞여 있으리라 생각한다. 어찌 되었든 타임머신을 타고 고대 로마로 온 것 같은 착각은 여행자들이 진짜 여행을 실감하는 순간이 된다.

콜로세움 Colosseo

  • 주소 : Piazza del Colosseo, 1 00184 Roma, Italia
  • 입장료 : 12 EUR
  • 찾아가는 법 : METRO B선 Colosseo 역에서 하차 콜로세움이 보이는 방향으로 도보로 1분


콜로세움의 개요

AD 72년 착공해서 AD 81년에 완공되었다. 완공시키는 데 10년이 걸렸다. 착공은 베스파시아누스 황제에 의해 시작되었으며 티투스 황제에 의해 완공되었다. 베스파시아누스는 평민 출신 황제였다. 정치적으로 이 경기장 건립을 시도하였다고 하는데 네로황제의 폭군정치에 대비되는 서민 이미지를 가지려고 네로의 황금 궁전 호수 터에 지었다고 한다. 원형경기장은 로마제국의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콜로세움이 가장 큰 경기장이다. 건물은 석재와 콘크리트로 이루어져 있다. 내부 관람석은 경사가 있어 내부를 관람하기 쉽게 되어 있다. 총76개의 출입구가 있다.
객석의 배치는 고대 로마의 신분에 따라 지정되었는데 경기가 가장 잘 보이는 북측과 남측에 특별석이 존재해 황제와 베스타 여제들을 위한 자리로 사용되었다. 그리고 그 주변에는 원로원의 신분이 앉을 수 있었다. 그 당시 원로원 중 일부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 석재 바닥이 아직 남아있다. 그야말로 특별석은 지정 좌석 이었던 것이다. 1등석은 귀족과 장군, 그다음은 평민들의 자리였고 이 부분의 객석은 다시 부유한 평민과 가난한 평민 등으로 나뉘어서 앉게 되어 있다. 도미지아노 황제는 맨 꼭데기 층(지붕층)에 빈민과 노예와 여성의 자리도 마련해 놓았다. 또한, 몇몇 직업을 가진 자들은 콜로세움에 출입할 수 없었는데 장의사, 전직 검투사, 배우 등이 있다. 콜로세움이라는 이름의 뜻은 바로 area(아레나) 경기장이라는 의미이다. 원형경기장이 있었던 곳들은 ‘아레나’라고 부르는 곳이 많다. 타원형의 경기장은 그리스의 원형극장을 모델로 확장시킨 것이다. 기둥은 아치와 볼트로 이루어져 있고 연속되는 수평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러한 외관을 로마식 아치라고 한다.

콜로세움 단면도

  • 직경 : 긴 쪽 188m, 짧은 쪽 156m, 둘레 527m, 높이 48m
  • 정식명칭 : 플라비우스 원형경기장. 중세시대 이후 콜로세움이라 불림
  • 수용 인원: 5만명


검투장으로서의 콜로세움

검투경기는 고대 로마 시대의 오락경기 였다. 검투사 중에 유명한 사람은 드라마에서도 들어본 노예 스파르타쿠스가 있다. 스파르타쿠스는 로마 공화정을 상대로 싸운 노예 계급이었다. 검투경기는 죽을 때까지 싸우는 것은 아니다. 특수한 경우 죽을 때까지 싸우는 경기가 있었으나 일반적으로는 한쪽이 부상을 입었을 때 관중들이 중단을 시키거나 심판의 판단으로 결정했다. 그렇다더라도 기록에 의하면 콜로세움에서는 대략 50만 명의 검투사와 100만 마리가 넘는 동물이 죽었다고 한다. 일종의 우리 안의 전쟁터였던 것이다. 물론 사고사로 죽는 경우가 더 많았다고 한다. 때때로 관중들은 싸움에서 진 검투사의 죽음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검투사 주인의 용인에 따라 죽음을 용인하는 경우도 있었다. 황제가 엄지를 밑으로 내리면 죽는 것이다. 관중들은 죽음을 원하지 않을 때 엄지를 위로 치켜세웠다고 한다. 검투사가 죽으면 가족에게 보상이 주어지는데 그 비용이 현재 우리 돈으로 수억 원의 가치가 있다고 한다. 그래서 죽음까지 가게 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검투경기는 AD 399년 공식적으로 금지된다. 기독교가 확산되면서 살인을 금기시하는 문화가 민중들에게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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