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들의 명품 사랑 이해 못하겠다고? 당신은 왜 프리미어 리그에 열광하는가

아름다운 도시 바르셀로나(왼쪽·가운데)도 마이클 토넬도에겐 이베이에 팔‘버킨 백’을 사기 위한 여행의 거점일 뿐이다. 피레네 산맥의 절경을 간직한 안도라(오른쪽)는 그에게‘에르메스 스카프가 바르셀로나보다 30달러 정도 저렴한 곳’이다 /조선일보 DB
명품 기사를 보다가 '샤테크'라는 말을 발견했다. 샤넬이 가장 인기 있는 가방인 '샤넬 2.55'의 가격을 매년 계속 올림으로써 그 가방을 미리 사두면 중고시장에 팔더라도 얼마간 돈을 남길 수 있다는 것이다. 샤넬 2.55는 크게 빈티지와 클래식이란 이름으로 나뉜다. 이 두 카테고리가 분화해 사이즈와 가죽별로 대략 수십 가지쯤으로 다시 분류되는데, 이 가방의 가격은 내가 첫 직장에서 받은 석 달치 월급보다 훨씬 비싸다.

박지성이 활약 중인 프리미어 리그를 아직까지 '프리미엄 리그'로 잘못 알고 있는 여자라도 샤넬 빈티지의 버클과 가죽 질감, 체인의 무게 따위에 대해선 박식할 수 있다. 레알 마드리드의 감독 이름을 보며 "세상에 무리수도 아니고, 무리뉴라는 이름 너무 이상해!"라고 말하는 여자가 있다면 "샤넬 2.55? 도대체 그런 괴상한 숫자가 왜 소수점까지 튀어나온 건데?"라고 반문하는 남자도 있는 것처럼 말이다. 주식에 무지했던 시절, '선물 거래소'를 아트박스 같은 선물 가게로 착각했던 나 같은 황당한 사람도 있으니, 특정한 분야의 문외한이나 마니아를 비하하지 말자.

'명품은 무슨, 그냥 비싼 가방이지!'라고 조소하는 사람이 있다면 사실 그 말도 맞는다. 한국은 럭셔리와 명품을 구분하지 않고 뒤죽박죽 섞어 쓰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이런 명품 광풍에 정점을 찍는 브랜드가 있으니 에르메스다. '버킨 백(샹송 가수 제인 버킨을 위해 만든 백)'으로 유명한 이 브랜드는 가격 정책의 목표를 아마도 '식겁'이란 말로 정의한 것 같다.

"남성용 사각팬티는? 하나에 295달러. 남성복 코너에서 가장 싼 것은 100달러짜리 손수건이었다…. 코끼리 문양이 있는 밝은색 순면 비치 타월이 시선을 끌었다. 450달러. 차라리 그냥 몸의 물기가 저절로 마르게 내버려두는 게 낫겠다 싶었다. 담요는 어떨까 했는데 940달러였다. 여기에 쓰이는 울이 어디서 나온 거기에 그런 거지? 캐비어를 먹여 키운 양에게서 나오기라도 한 건가?"

버킨이 제아무리 장인이 '한 땀 한 땀' 작업해 18시간 동안 만든 가방이라 해도 이 물건 하나의 가격이 수천만원이라면? 그런데 이 수천만원짜리 가방을 가지고 싶어하는 사람이 너무나 많아서 웨이팅 리스트에 이름을 올려놓고 2~3년을 더 기다려야 한다면, 이 기묘한 가방의 정체를 궁금해할 수밖에 없다.

'에르메스 길들이기'는 에르메스 제품을 온라인 경매로 팔면서 인생이 바뀐 전직 '미용사' 출신의 마이클 토넬도의 무용담이다. 그는 직장을 찾아 바르셀로나로 이주했지만 결국 살길이 막막해 다른 일을 찾기 시작했고 곧 '꿈의 직업'을 찾아낸다. 집 안에서 파자마를 입고 이베이에서 '버킨 백'을 파는 것이다. 그는 사기 힘들다는 '버킨 백'을 찾아 곧 세계 곳곳을 돌아다닌다. 자신의 주거지인 스페인 바르셀로나를 기점으로 자동차를 끌고 엑상프로방스와 아비뇽, 마르세유 같은 프랑스의 남부 지방을 돌고, 이탈리아 시칠리아 섬까지 샅샅이 뒤진다. 그가 단지 버킨 백을 사기 위해 칠레의 산티아고와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행 비행기를 탈 즈음이면 누구도 이 책이 여행기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는 특히 스페인의 국경을 접하고 있는 특별한 도시 '안도라'에 대한 설명을 장황하게 늘어놓는데 '안도라'가 "세금이 없는 공국으로 피레네 산맥의, 프랑스와 스페인의 경계 지점에 위치해 있고, 캘리포니아 요세미티 국립공원의 7분의 1밖에 되지 않는 작은 나라라는 설명 이 외에 "더욱 중요한 것은 그곳에서는 에르메스 스카프가 바르셀로나보다 30달러 정도 저렴하다는 것!"이라는 부연 설명을 덧붙인다. 이쯤 되면 '에르메스의, 에르메스에 의한, 에르메스를 위한 삶'이라고 할 만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버킨 한 개를 구하려고 2년을 기다리는 마당에 그는 어떻게 30분 만에 버킨 백을 구할 수 있었을까. 마이클 토넬도의 계산에 의하면 "나는 그들이 버킨을 기다리는 시간을 1만7519시간(더하기 30분)이나 단축해주는 셈"이다. 그러니 한껏 잘난 척하며 "그날 나는 핸드백계의 해리 포터였고, 모자에서 토끼를 꺼내는 것보다 훨씬 더 훌륭하게 마술을 부리는 능력이 있었다"라고 외치는 그의 잘난 척에도 나름의 논리가 있었던 셈이다.

여기에서 그의 '에르메스 길들이기' 비법이 공개된다. 그의 비결은 밑밥 던지기. 버킨을 사기 전에 스카프나 팔찌, 노트 같은 에르메스 제품을 구입해 자신이 얼마든지 이 브랜드의 제품을 구입할 만한 '재력'이 있다는 걸 직원에게 증명하는 것이다(생각만큼 복잡하진 않지만 '버킨'을 사기 위해 몇 년치 월급을 모아 온 보통 사람이라면 실현 불가능한 전략인 셈).

이 책에 의하면 에르메스엔 애초에 '웨이팅 리스트' 따윈 없으며 (부자로 보이면 얼마든지 이 백을 살 수 있다) '예약'이란 스티커가 붙어 있는 백도 실은 순 뻥(마케팅!)이라는 것. 언젠가 레스토랑 컨설팅을 하는 K에게 도쿄 '노부(일식 레스토랑)'의 마케팅 전략에 대해 들은 적이 있었다. 그들이 '일부러' 웨이팅 리스트를 처리하는 부서를 만들고, 사람들을 '일부러' 기다리게 만들며, 무수히 많은 전화를 받고 있는 직원들을 '일부러' 레스토랑 전면에 배치한다는 것이다. 결국 명품 브랜드는 인간의 욕망을 사고팔아 큰 이윤을 남기는 것이다.

이 책을 '명품 중독자들을 위한 여행기'로 읽는다면 꽤 독창적인 독서 체험이 될 것이 거의 확실하다. 책을 읽고 나면 약간의 정보도 덤으로 얻을 수 있는데, 저자의 개인적인 견해에 의하면 프랑스 마르세유 에르메스 매장의 직원은 까다롭고 무례하다는 것. 스페인 바르셀로나에는 에르메스 매장이 생각보다 후지다는 것과 에르메스 매장 중 도쿄 매장이 가장 화려하다는 것 정도. 그러나 무엇보다 귀가 솔깃한 것은 에르메스에는 웨이팅 리스트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에르메스 길들이기: 먹고살 일이 막막했던 어느 날, 99달러짜리 랄프 로렌 스카프를 이베이에 올려 430달러에 팔았다? 주인공은 이에 고무되어 책, 스카프 등 팔 수 있는 것은 모두 이베이에 올리기 시작하고, 에르메스 스카프를 이베이에 올렸다가 버킨 백의 존재를 알게 된다. 까다롭다는 에르메스 매장을 공략해 버킨을 사들이기 시작한 그는 ‘버킨 찾아 삼만리’라는 주제로 세계 곳곳을 여행하기 시작한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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