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수원

인도는 영적인 여행지라는 말을 많이 한다. 인도는 휴식을 위한 곳이 아닌, 무언가 얻기 위해 떠난다는 말도 많이 듣는다. 하지만 굳이 그런 생각을 가지고 떠났던 것은 아니다. 나의 인도 여행 3개월의 첫 시작은 ‘가깝고 싸니까’였다. 당연히 나의 무계획 인도 여행은 좌충우돌 그 자체였다.

인디라간디국제공항. 자정이 지나 비행기에서 내린 나는 고온다습한 공기에 적응할 틈도 없이 공항에서 빠져나가는 것을 걱정해야 할 판이다. 인도에 대한 가이드북에서는 늦은 밤에 공항 밖으로 나오는 것은 위험하니 아예 공항 안에서 하룻밤을 지내고 나오는 게 낫다고 적어놨을 정도니 인도가 처음인 여행객에게는 진땀이 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럴 때는 그냥 포기하고 공항의 딱딱한 의자에 몸을 맡기거나 용기를 내 바깥으로 나가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객기로 밖으로 나가면 후회할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이때는 프리페이드(pre-paid) 택시를 이용하는 편이 낫다. 공항 내에 있는 부스에서 미리 택시비를 내고 지정된 택시를 타는 것인데, 이것 또한 사기를 당할 확률이 있지만 그래도 맨몸으로 나가 택시를 잡는 것보다는 안전하고 믿을 만하다(최근에는 공항과 뉴델리 기차역이 지하철로 연결되어 훨씬 이동하기 수월해졌다).

하지만 택시를 무사히 탔다하더라도 안심하긴 이르다. 브레이크 라이닝 타는 냄새가 진동하는 오래된 택시는 차선 무시, 깜빡이 무시, 사이드 무시다. ‘제대로 된’ 운전사를 만나면 한국의 총알택시는 얼마나 얌전하게(?) 운전하는 건지를 깨닫게 될 정도다.

ⓒ 손수원

여행자들의 베이스캠프 파하르간지
델리에서 여행자들이 베이스캠프로 삼는 곳은 뉴델리 기차역 맞은편의 파하르간지(Pahar Ganj)다. 대략 시장 거리 정도라고 생각하면 되는데, 특히 델리의 파하르간지는 인도를 여행하는 세계 각국의 여행자들이 모여드는 ‘여행자 거리’다.
새벽에 도착해 생각지도 않은 거금 400Rs(루피)극 내고 첫 숙소를 잡고 방으로 들어간 순간, 충격과 공포에 휩싸였다. 덩그러니 방 한가운데 놓인 침대는 그렇다 치고, 땀범벅이 된 몸을 씻으려 화장실 문을 여니 엄지 손가락만 한 바퀴벌레가 ‘안녕?’ 하고 더듬이를 흔들어댄다. 수세식이라 믿었던 변기는 양동이로 직접 물을 흘려보내야 하고, 석회질이 듬뿍 함유된 수돗물은 누군가가 ‘조금이라도 마시면 폭풍 설사를 경험하게 될 것’ 이라고 겁을 준지라 비좁은 화장실에서 입을 앙 다문 채 큰 맥주잔만 한 양동이로 겨우 땀만 씻어낼 수밖에 없었다.

사람과 릭샤, 소와 개가 한 공간에서 공존하는 델리의 파하르간즈는 인도의 과거와 오늘, 미래까지도 공존하는 장소다. ⓒ 손수원

뜬눈으로 밤을 보내고 거리로 나오자 현지인들이 분주하게 움직인다. 사람이 끄는 릭샤(인력거)부터 사이클릭샤와 오토릭샤, 거기에 사람과 개, 소가 뒤섞인 풍경은 그야말로 ‘혼돈’ 그 자체다. 아침 청소 시간인지 아낙들은 연신 바닥을 쓸어내지만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먼지만 날리게 만들 뿐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모두 ‘노 프라블럼(No problem)’이다. 먼지가 입에 모두 들어가도, 소가 길 한복판에 떡하고 서서 길이 막혀 꿈쩍하지 못해도 그저 ‘노 프라블럼’이다. 역시 인도인들의 무한 긍정의 힘은 대단하다. 길가에서 안절부절못하는 이는 인도가 낯선 외국여행객들뿐이다.

1 길에서 사모사와 과일 등을 파는 노점상인. 처음에는 먹을 엄두가 나지 않지만 한번 맛들이면 헤어나올 수 없을 정도로 맛있다. 2 인도의 소는 못먹는 것이 없다. 과일 껍질은 물론, 종이와 비닐까지도 아주 잘 먹는다. 3 카메라를 든 외국인은 인도 아이들에게 더없이 좋은 구경거리이자 놀잇거리여서 카메라만 들이대면 알아서 재밌는 포즈를 척척 연출해준다. ⓒ 손수원
현지 식당에서 카레와 차파티(밀가루로 만든 납작한 빵)로 요기를 하는데, 향신료 냄새가 어찌나 심한지 반도 채 먹지 못했다. 한국에서 먹던 카레와 다를 거라는 것은 각오하고 있었지만 마른입에 한술 떠먹으려니 이것도 고역이다. 앞으로 험난한 여행이 될 거란 예감이 든다.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있는 나를 보고 인도인 사장은 웃으며 “Are you happy?”라고 묻는다. 나 또한 억지웃음을 지으며 “No problem”이라고 말해주었다. 결국 인도인 사장은 한사코 괜찮다는 나를 위해 카레를 리필해주었다.

무굴제국의 부귀영화를 가장 잘 보여주는 올드델리의 붉은 성. 일단 규모에서부터 압도된다. ⓒ 손수원

야무나강이 흐르는 올드델리와 뉴델리
델리는 고대부터 수없이 많은 주인이 바뀌었다. 왕조의 교체는 물론, 이웃나라의 침략으로 힌두교와 이슬람문화가 공존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델리는 크게 올드델리와 뉴델리로 구분할 수 있다. 올드델리는 수천 년에 걸쳐 생긴 도시다. 무굴제국 시절 황제 샤자한은 건축에 대해 굉장한 집착을 보였는데, 올드델리 또한 그의 손을 거치면서 성벽도시로 탈바꿈했다. 반면 뉴델리는 인도를 정복했던 영국에 의해 건설되어 가지런한 시가지와 영국풍의 건물이 인상적이다.

인도에서의 첫 여정은 붉은 성으로 시작하기로 한다. 흔히 ‘랄 킬라(LalQuila. 랄은 붉은, 킬라는 성을 뜻한다)’라고 불리는 붉은 성은 델리에서 도 올드델리에 속하는 곳에 있는데, 아그라의 타지마할을 세운 샤자한이 아그라에서 델리로 수도를 옮기면서 지은 것으로 유명하며 그의 일생에서 마지막으로 세운 성으로 알려져 있다. 붉은 성 입장료는 250Rs. 우리나라 돈으로 약 7000원 정도다. 웬만한 게스트하우스 하루치 숙박비에 맞멎는 금액이지만 더 놀라운 사실은 현지인들은 단돈 10Rs란 것이다. 외국인 여행객들의 입장료가 무려 25배나 더 비싼 셈. 해도 너무 한다는 생각이 들지만 어쩌랴 난‘Incredible India’에 들어와 있는 걸….

1 붉은 성으로 들어가는 입구. 테러사건이 종종 일어나는 인도인지라 검색이 철저하다. 2 인도에서 흰 소는 신과 같은 신성한 대접을 받는다. ⓒ 손수원

붉은 성은 200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정복은 하지 않고 침략만 당한 인도의 역사 속에서 붉은 성도 세포이 항쟁 대 많은 부분이 파괴되고 훼손되었다. 비록 영국 식민지 시절에 일부 복원되었다고는 하나 너무도 성의 없이-기술의 부족함일지 모르겠지만- 시멘트를 덕지덕지 발라놓거나 대충 페인트칠을 한 티가 난다. 하지만 그와는 상관없이 붉은 성은 성 자체의 위용과 성 안의 아름다운 건축물만으로도 예술 작품 그 이상의 볼거리를 준다. 무굴의 황제들이 앉아 손님을 맞이했을 디와니카스(Diwan-i-khas)는 비싼 보석으로 치장이 되어있었다.

샤자한은 10년에 걸쳐 이 성을 완성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이 성에서 지내지 못했다. 그가 델리로 수도를 옮기기도 전에 그의 아들 아우랑제브에 의해 왕좌를 빼앗기고 아그라 포트에 감금해버렸기 때문이다. 붉은 성 안은 여느 평범한 공원과 같은 분위기가 난다. 현지인에게는 소풍을 즐길 수 있는 장소이고, 델리의 무더운 날씨에 적응을 하지 못하는 여행객들에게는 잠시 숨을 돌릴 수 있는 휴식처가 되어 준다.

붉은 성 맞은편 언덕에 당당한 위용을 뽐내며 서 있는 건물은 인도 최대의 모스크인 자미 마스지드(Jami Masjid)다. 인도는 힌두교의 나라지만 델리는 무슬림의 영향력이 큰 탓에 이렇게 이슬람 사원이 공존한다. 인도 최대의 시장 ‘찬드니촉(Chandni Chowk)’은 그야말로 사람의 바다다. 평일인데도 사람에 치여 앞으로 나가기는커녕 오히려 뒤로 밀려나기 일쑤다. 찻길과 인도가 따로 없는데다 오토릭샤와 오토바이, 자동차는 연방 경적을 울려댄다. 우리나라에서는 욕먹을 짓이지만 인도에서는 경적을 울려주는 것이 예의다. 그래서 자동차나 오토릭샤 뒤를 보
면 으레 ‘Horn Please’라는 글귀가 적혀 있다. 사이드미러조차도 자동차의 옵션인 인도에서는 경적이 운전의 일상인 셈이다.

1 델리의 중심을 유유히 흐르는 야무나강. 이 강은 후에 갠지스강과 합쳐서 바라나시의 타즈마할을 지난다. 2 인도 최대의 시장인 찬드니촉. 사람이 붐비면 ‘10억 인구의 나라’를 몸으로 느낄 수 있다. 3 인도에서 가장 자주 먹게 되는 비리야니. 한국이 볶음밥과 비슷하지만 쌀 자체가 달라 금방 허기가 진다. 4 영국풍 분위기가 물씬 느껴지는 코넛 플레이스는 인도에서도 가장 현대적인 느낌이 나는 곳이다. ⓒ 손수원

찬드니촉에서는 10억 인구란 말이 실감 난다. 남대문 시장, 동대문 시장만 해도 눈이 핑핑 돌아갈 정도인데, 찬드니촉에서는 그런 비교조차되지 않는다. 외국인 여행객으로서 물건 하나 사기가 하늘의 별따기보다 어렵게 느껴질 정도다. 사람의 물결은 그렇다 치고 장사꾼의 호객 행위는 기가 찰 정도다. 50Rs도 안 되는 물건을 두고 300Rs부터 불러 크게 선심 쓴다는 표정으로 150Rs를 부른다. 이럴 때는 미련 없이 뒤돌아서면 그만이다. 5초도 안 되어 따라와선 “Your last price?”를 부르기 때문이다. 당연히 처음 가격보다도 싼 40Rs를 불러도 거래는 이뤄진다. 이것이 바로 인도의 ‘local price’다. 이런 흥정 과정이 처음에는 무척 짜증나고 기분 상하지만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 인도인들과 흥정하기 만큼 재미있는 일도 없을 정도다. 그런 와중에도 인도인들은 기분 상한 표정을 짓지 않는다. 비싸게 팔면 좋은 것이고 자기가 손해를 보더라도 그것은 신의 뜻이기 때문이다.

정신없는 올드델리와는 달리 뉴델리 쪽은 비교적 정리가 잘 된 편이다. 로터리가 여기저기 뒤섞여 신호등도 없는 도로는 여전히 눈을 핑핑 돌게 만들지만 코넛 플레이스(Connaught Place)나 인디아 게이트 쪽으로 발길을 돌리면 현대를 수용한 인도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맥도널드와 커피데이 등 외식 체인점은 물론, 리복, 나이키, 아디다스 매장도 곳곳에 들어와 있다. 나름 스카이라인을 형성한 현대적인 건물들도 올드델리의 모습과는 많이 다르다. 심지어 이곳엔 지하철역도 들어와 있고, 지하상가도 있으니 여긴 서울과 별반 다를 것이 없을 정도다. 그래서 대부분의 여행객들은 일부러 시간을 내어 델리를 둘러보지 않는다. 흔히 골든 트라이앵글(델리-아그라-자이푸르)이라고 불리는 단기간 인도 여행의 시작점이자 끝이기에 남는 시간 동안 둘러보면 그만인곳이다. 더구나 3개월 정도의 장기간 여행자라면 델리는 최소 3~4번은 들러야 하는 곳이다.

인도의 첫 여정인 델리는 이렇게 인도의 사람들에게 적응하는 과정이다. 그들이 입에 달고 다니는 ‘No problem’의 뜻을 1/10이라도 이해한다면 더 이상 인도는 ‘충격과 공포의 나라’가 아닌 ‘가장 자유롭고 편안한 나라’로 여행자의 마음속으로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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