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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독일

독일 : “지금도, 로렐라이 요정은 살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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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흐른 지금도 뭇 남성들을 홀릴 만큼...

"로렐라이(Loreley) 언덕"! 한 번도 가보지 않았다 하더라도 잘 알려진 노래 덕분에 노을이 지는 강가에서 금발의 미녀가 슬픈 사연을 달래기 위해 빗질을 하며 피리를 불고 있는 그림이 그려질 것이다.

브렌타노경의 담시에 등장하는 전설이 하이네를 통해 시로 이어지고 질허의 아름다운 선율에 절정을 이루어 만인의 여인이 되었고 세계적인 관광지가 되었다고들 한다. 때로는 코펜하겐 바닷가의 인어공주상, 브뤼셀의 오줌싸개동상과 묶어 유럽의 '삼대 썰렁'이라고도 하지만 황홀한 자연의 장엄한 역사적인 증거를 인어공주상과 오줌싸개동상과 같이 다룬다면 첫 사랑에 실패한 슬픈 사연을 간직한 체 바다로 뛰어 들었던 로렐라이의 영혼이 눈을 감지 못할지도 모른다.





로렐라이 언덕 위에서...

로렐라이 언덕위에 올라 넓은 대지의 한 부분에 라인강이란 흔적을 남기고 살아졌던 빙하기 이후의 거대한 얼음덩어리의 큰 발자국을 느끼노라면 천지를 창조한 분의 전지전능함에 머리를 숙여 감사치 않을 수 없다. 사람들의 이기를 따라 수많은 전쟁의 자리로 내어 줄 수밖에 없었던, 전후 급변하는 산업화의 소용돌이 곳에서 한 때 사진 필름을 현상할 수 있을 만큼 오염되어지기도 하였다던, 함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자기 본분에만 충실하며 유구한 역사를 고이 간직한 체 말없이 자신의 품의를 지키며 지금도 많은 이들을 불러드려 쉼과 용기를 내어주고 있음에 머리 숙인다.

유럽의 지붕인 알프스에서 힘차게 내달음 쳤던 빙하는 이곳에서 숨을 고른다. 눈앞에 부딪친 억센 바위 덩어리를 놓고 잠시 쉬어 갈 수 밖에 없었다. 장고 끝에 돌아 갈 수밖에 없음을 알았고 세상을 창조한 하나님의 섭리에 순종할 줄 알았던 자연은 깊고 좁게 굽이쳐 내려가며 암초와 소용돌이침을 남길 수밖에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많은 이들의 목숨을 앗아갔다. 함에도 불구하고 전쟁의 아픈 역사조차도 품어야 했던 대 자연의 거대한 장관은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로 하여금 복잡한 삶의 고뇌를 털어 놓게끔 유혹하기에 충분하다.

그랜드캐년처럼 거대하지는 않지만 협곡으로 이루어졌음을 강 건너 언덕위의 평화로워 보이는 마을에서 그리고 동서남북 펼쳐진 광활한 평원의 모습에서 확인할 수가 있다. 힘겹게 오르내리는 유조선과 갈탄을 실은 화물선이나 세계 각국을 나르는 컨테이너선에서 그리고 여름이면 많은 관광객들의 마음과 하나 된 유람선들을 통해 아직도 살아 있음을 증명이라도 하는 듯하다.





유람선상에서 바라본 Schönburg와 Oberwesel이란 동네





요양소로 사용하는 'Burg Katz'(일명 고양이 성)





제주도의 하루방이 이 곳에 왔다..

결코 '썰렁'이 아니다. 라인강과 어우러진 아름다움은 여러 세대를 넘나들며 소설가와 시인과 음악인들과 화가들의 마음조차도 사로잡았다. 프랑스의 소설가 빅토르 위고, 미국의 시인 롱펠로우, 영국의 시인 바이론경, 독일의 시인 괴테도 독일의 음악가 베토벤도 그들이 만들어 낸 작품의 소재로 다루었다. 누구에게나 새로운 자신의 생을 발견하게하며 천지를 창조한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게 하는 웅장하고 감미로운 곳이 아닐 수 없다.

각박한 세상의 마음이 아니라 자연의 마음으로 바라보는 자에게만 보여 지는 여유일까? 세상은 생각하는 대로 되어진다. 아름다운 것만 보고자하면 아름다운 것만 보여 지고, 안 된다고 하는 마음을 가진 자에게는 안 되는 이유만 찾아질 테니까!

아직도 살아 있는 바위의 요정은 삶의 여유를 즐기고자 하는 적어도 긍정적인 사고를 가진 많은 이들에게 무엇인가 희망적인 새로운 것을 나누어주기에 넉넉한 자태를 뽐내며 오늘도 우리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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