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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터키

터키 파묵칼레 : 하얀 온천지대와 고대 유적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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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에 익숙한 터키의 3대 명소를 꼽으면 이스탄불, 카파도키아, 파묵칼레쯤 되겠다. 이스탄불이 동, 서양 문물의 교차로 성격이 짙다면 카파도키아는 특이한 자연지형으로 명함을 내민다. 규모는 다소곳하지만 파묵칼레의 성향은 좀 색다르다. 석회층으로 이뤄진 터키 남서부의 온천지대는 고대 로마시대의 유적이 어우러진다. 석회층은 세계자연유산으로, 로마 유적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는데 이런 복합 세계 유산은 전 세계적으로 드문 경우다.

언덕 위 온천 수영장에서는 고대 로마 유적 사이를 헤엄치는 독특한 체험을 즐길 수 있다.

‘목화의 성’. 파묵(목화), 칼레(성)에 담긴 의미다. 하얀 온천지대 하나만으로도 독특한 풍경이다. 터키 현지인들이 아름다움을 비유할 때도 파묵칼레(파무칼레, Pamukkale)가 종종 등장한다. 그 면면을 살펴보면 이해가 간다. 생긴 모습은 흡사 계단식 다랭이논을 닮았다. 소금가루를 겹겹이 쌓아놓은 듯 하얀 석회층이 절벽 한 면을 빼곡히 채운다. 돌무쉬(Dolmus, 미니버스)를 타고 멀리서 바라보면 흡사 빙산이나 설산 같다. 석회를 머금은 물이 흘러내리면서 그 성분들이 층을 이뤘고 층마다 푸른 물을 머금고 있다. 맑은 날이면 석회층은 물과 함께 청아하게 빛난다.

계단식 논을 닮은 파묵칼레의 석회층.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온천에 발을 담그다


이 석회층들은 하루에도 여러 차례 색이 변한다. 푸르던 물은 희게 변색되며 해 질 녘에 띠는 색깔은 붉은빛이다. 그렇기에 두세 시간 석회층과 인근 유적만 둘러보고 훌쩍 떠나는 것은 삼가는 게 좋다. 마을 사람들이 즐겨 찾는 대중 온천에서 발을 담그며 현지인들과 미소도 나눠 보고. 겉은 딱딱하고 속은 말랑말랑한 터키빵 에크멕도 인근 시장 골목에서 제대로 맛봐야 한다. 그렇게 노닥노닥 보낸 뒤 파묵칼레가 시간에 따라 빚어내는 색의 마술을 감상하면 좋다.

파묵칼레 시장에서 빵을 굽는 할머니.

파묵칼레 마을에 머물며 현지인의 삶을 엿볼 수 있다.

예전에는 석회층에서 직접 몸을 담그며 목욕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뒤에는 목욕은 금지됐고 입구에서도 신발을 벗어야 일부 구간에 들어설 수 있다. 원천수의 온도는 대략 섭씨 35도. 생긴 것은 빙산처럼 보여도 발끝에 젖어드는 감촉은 따사롭다. 온천 분위기 내려고 수영복 차림으로 오가는 청춘들도 있고 석회층에 걸터앉아 멍하니 사색에 잠기는 여행자들도 있다.

전 세계를 둘러봐도 색감 있는 온천으로 유명세를 탄 여행지는 드물다. 코스타리카아레날 화산 인근은 노천 계곡물이 온천수였고, 헝가리 부다페스트 역시 왕궁 같은 건물 안에 온천이 들어서 있다. 그래도 주연보다는 조연의 성격이 짙었는데 파묵칼레는 온천이 당당하게 주인공이다.

카클르크 동굴 앞 광천수에서 헤엄을 치는 어린 꼬마.

온천의 유래를 살펴보면 몇몇 유럽의 온천과 태생이 유사하다. 부다페스트의 온천이 한때 헝가리를 지배했던 로마인에 의해서 개발됐듯 파묵칼레 역시 로마황제들이 망중한을 즐겼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클레오파트라가 방문했다는 설도 있다. 산화칼슘이 함유된 온천은 신경통에 좋아 당시 돈 많은 부유층에게 인기가 높았다고 한다.

고대 목욕탕의 흔적 ‘히에라 폴리스’


온천의 역사를 반증이라도 하듯 석회층 언덕 위에는 고대 로마 유적들이 남아 있다. 히에라폴리스로 불리는 로마 유적은 기원전 2세기 페르가몬 왕조의 터전이었다. 로마의 지배를 받으면서 성스러운 도시를 뜻하는 ‘히에라폴리스’로 불렸고 한때 인구 8만에 이르는 큰 도시였으나 전쟁으로 인해 11세기 이후 쇠락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히에라 폴리스에는 1,000여 개의 석관묘가 늘어서 있다.

고대 로마 유적은 폐허가 된 뒤에 발굴됐지만 그 잔상을 또렷하게 남아 있다.

1350년대 대지진으로 사라졌던 도시는 19세기 발굴작업에 의해 모습을 드러냈다. 원형극장, 공동묘지, 목욕탕 등은 폐허가 된 채 넓게 흩어져 있다. 1,000여 개의 석관이 남아 있는 고대 공동묘지는 터키에서 가장 큰 규모인데 목욕탕과 어울려 있다는 점이 독특하다. 이 석관들이 치료와 휴양을 위해 몰려들었던 병자들의 무덤이라는 주장도 있다.

대리석 기둥으로 채워진 옛 목욕탕은 현대에도 고스란히 재현돼 있다. 후예들은 폐허가 된 유적지에 온천물을 담아 언덕 위에 온천 수영장을 만들었다. 수영장 밑바닥에는 무너진 거대한 기둥들이 그대로 남아 있고 주변은 카페처럼 꾸며져 있다. 고대 로마 시대의 황제들이 온천에서 즐겼던 풍류를 재현하고 있는 셈이다.

제2의 파묵칼레로 불리는 카클르크 동굴.

파묵칼레 인근에는 또 다른 온천 명승지도 자리 잡았다. 제2의 파묵칼레로 불리는 카클르크(카크리크) 동굴은 최근에 발견된 종유동굴로 동굴 안에서 광천수가 뿜어져 나온다. 카라하우트(karahayit)로 불리는 휴양지 역시 온천 숙소들이 밀집돼 있다. 최근에는 파묵칼레의 훼손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온천 호텔들이 무분별하게 들어서면서 온천수는 고갈되고 푸르고 흰 석회층은 누렇게 변색되고 있다. 쇠락의 길을 걸었던 고대 로마의 잔상은 파묵칼레에도 투영되는 듯 애잔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가는 길
파묵칼레는 터키 남서부 데니즐리 주에 위치했다. 인천에서 이스탄불까지는 직항편이 오간다. 이스탄불에서 데니즐리까지 항공으로는 1시간 10분 소요된다. 버스 등 대중교통으로는 10시간가량 걸린다. 데니즐리 터미널에서 파묵칼레행 미니버스가 운행된다. 작은 호텔이나 숙소는 파묵칼레 마을에 들어서 있으며 리조트, 호텔 등은 카라하우트 쪽이 많은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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