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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터키

터키 트라브존 - 투박하면서도 이질적인 삶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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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해 최대 도시인 터키 트라브존에서 느껴지는 정서는 복잡다단하다. 도심 메이단 공원에 나서면 본토 흑해 주민과 함께 러시아인들의 창백한 얼굴과 흔하게 마주친다. 트라브존은 흑해를 사이에 두고 그루지아 등 옛 러시아 문화권과 맞닿은 곳이다.

이스탄불에서 출발하면 동북부 트라브존까지는 버스로 16시간을 달려야 한다. 언어만 같을 뿐 심리적인 거리가 멀다. 지리상의 단절 때문에 트라브존은 지중해 연안의 화려한 도시들과는 다른 풋풋한 개성을 잉태했다.

가옥들은 해안과 산자락 사이의 비탈길에 가지런하게 정렬해 있다. 흑해의 바다는 검고, 지붕들은 붉으며, 도시의 배경이 된 산자락들은 계절이 흐르면 녹음으로 채색된다. 그 안에 투박하면서도 이질적인 삶이 공존한다.

보즈테페 언덕에서 내려다 본 트라브존 시내와 흑해. 언덕 위에는 차이를 마시는 노천카페들이 들어서 있다.

절벽위에 들어선 쉬멜라 수도원

트라브존의 최대 유적은 쉬멜라 수도원이다. 쉬멜라 수도원 가는 길의 마치카 마을은 소박한 흑해지역 도시의 단상을 엿볼 수 있는 곳이다. 찻집에 빼곡히 모여 담소를 나누는 할아버지들의 일상이나, 오가는 길손에게 차이 한잔 건네주는 생선 가게 아저씨의 소박한 손길은 따뜻한 온기로 남는다.


비잔틴 문화가 새겨진 수도원은 1628m 지가나산 절벽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다. 수도원은 5세기부터 지어지기 시작해 천 년의 세월을 견뎌 왔으며 절벽 밑 그리스도의 삶을 다룬 프레스코화도 7~13세기에 그려진 것이다. 아득한 수도원 산길을 따라 오르면 수도사들이 겪었을 고행과 속세와의 단절이 가슴 깊이 새겨진다.

흑해 연안인 트라브존의 과거는 고대 그리스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후 로마, 비잔틴, 트레비존드 왕국, 오스만 제국 등 수많은 왕조의 지배를 받았다. 도심으로 나서면 아야소피아, 오르타히사르 등의 유적들과도 조우한다. 흑해를 바라보며 서 있는 아야소피아는 이스탄불의 것과 이름만 같을 뿐 규모는 아담하다. 빨간 지붕의 비잔틴 교회는 오스만 왕국때 이슬람 자미로 사용되기도 했다. 14세기 트레비존드 왕국때 지어진 성벽인 오르타히사르에서는 트라브존의 시련의 역사가 묻어나고. 터키 초대 대통령인 아타튀르크의 별장은 수려한 정원으로 도시를 장식한다.

도심 거리는 메이단 공원을 중심으로 미로처럼 뻗어 있다. 트라브존의 명동 격인 ‘우준’ 거리는 인파로 북적거리고 해변으로 향하는 길목에는 세련된 카페들이 눈길을 끈다. 가장 독특한 풍경은 거리의 가로등에 죄다 물고기가 매달려 있다는 것이다. 트라브존은 흑해 해산물중 ‘하므시’(큰 멸치) 튀김으로 유명한 곳이다. 번화가에도 생선가게가 버젓이 들어서 있고 도시의 상징물은 하므시로 세워져 있다. 이 생선, 담백한 맛도 일품이다.

보즈테페에서 흑해를 보며 차 한잔

트라브존을 감상하는 가장 탁월한 방법은 보즈테페 언덕에 오르는 것이다. 언덕 꼭대기 주변으로는 차 한잔 마실 수 있는 노천 테이블들이 옹기종기 들어서 있다. 트라브존 청춘들에게 이곳은 데이트코스이자 한낮의 한적한 아지트다. 터키 '차이'는 주문하면 주전자 채로 넉넉하게 나온다. 트라브존에서 홍차의 산지로 유명한 리제까지는 지척거리다. 이곳 차는 좋은 이웃 도시를 둔 덕에 맛이 깊으면서도 은은하다.

골목 곳곳에서 흑해 주민들은 정겨운 미소가 깃들어 있다.

보즈테페에서 해변으로 이어지는 길은 단아하고 아름답다

차이 맛보다 가슴을 먹먹하게 적시는 것은 테이블 아래로 펼쳐지는 풍광이다. 비탈길에 가득 늘어선 붉은지붕과 모스크들 사이로 검푸른 흑해는 끝없이 이어진다. 보즈테페 언덕에서 내리막길을 따라 걸음을 옮기면 비탈에 기댄 사람들의 일상이 낮은 가옥들 사이로 다가선다. 해변까지 30여분간 이어지는 이 길이 참 예쁘다.

흑해가 더 이상 탁하지 않고 따뜻하게 느껴지는 것도 비탈길 골목에서 만나는 주민들의 미소 때문이다. 터키사람들에게 오히려 흑해는 '손님을 좋아하는 바다'라는 정겨운 의미로 오랫동안 인식돼 왔다.

축구 마니아들이라면 트라브존이라는 이름이 또 다른 이유로 친숙할 수도 있겠다. 2002년 월드컵이후 이을용이 현지 프로팀에서 활약했으며 FC서울의 기네슈 전 감독은 트라브존에서 축구 영웅으로 숭상 받고 있다.


가는 길

트라브존까지는 인천에서 이스탄불을 경유하는게 일반적이다. 이스탄불까지는 터키항공이 매일 운항하며, 트라브존까지는 하루 3~4편의 비행기가 있다. 이스탄불을 경유할 경우 추가요금 없이 이스탄불 체류도 가능하다. 버스로는 이스탄불에서 약 16시간 소요. 트라브존에서는 우준 호수나 터키의 알프스로 불리는 아이데르 등을 둘러보면 좋다. 트라브존의 날씨는 겨울에도 평균 5도로 온화한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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