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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메리카/브라질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 언제나 축제인 열정의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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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니발의 광기, 삼바드로메

매년 2월, 브라질의 도시 리우데자네이루(히우지자네이루, Rio de Janeiro)는 지상에서 가장 거대하고 화려한 파티장이 된다. 세계 곳곳으로부터 60만 명 가까운 사람들이 오직 그 행사를 위해 리우로 날아온다. 지구의 나머지 모든 축제의 참가자와 맞먹는 수치라고 한다. 환호와 불꽃, 음악과 춤, 지치지 않는 리듬이 그들의 심장을 가속시킨다.

리우는 삼바의 도시. 카니발의 핵심은 도시를 마법의 세계로 변신시키는 삼바 퍼레이드다. 삼바드로메(sambadrome)는 700미터 길이의 퍼레이드 전용 공간으로, 축제에 참가할 삼바 스쿨들의 공식 경연이 벌어지는 장소다. 리우 곳곳에 산재해 있는 삼바 학교들은 재의 수요일 직전에 벌어지는 4일 동안의 경연을 위해 혼신의 열정을 불태운다.

팀당 1백만 달러를 호가하는 무대 장식과 기묘한 장치들, 화려한 의상과 그에 어울리는 댄스…. 주제는 아메리칸 인디언, 모세의 기적과 같은 고전적 테마에서부터 홀로코스트의 참상,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같은 시사적인 테마에 이르기까지 다채롭다. 12~13개 톱클래스 그룹의 퍼레이드가 벌어지는 일요일과 월요일에는 7만 명의 좌석이 꽉 차고, 가장 좋은 자리의 입장료는 3백만 원까지에 이른다.


삼바드로메는 축제의 서장일 뿐이다. 코파카바나(Copacabana) 해변을 비롯한 도시 곳곳에서 펼쳐지는 야외 퍼레이드는 리우를 광기 속으로 끌고 들어간다. 삼바 스쿨들은 저마다의 개성을 살린 무대차를 앞세우고 화려한 의상을 입고 거리로 뛰쳐나온다. 그 학생들이 아니라도 좋다. 누구든 끊이지 않는 삼바 리듬에 맞춰 춤추고, 마시고, 내일이 없을 것처럼 논다.


카니발은 온갖 색채의 향연이다.




이파네마의 소녀는 지금 어디에?

리우는 코파카바나, 레블론, 파케타, 펭야 등 세계적인 해변으로 둘러싸인 도시다. 비키니 왁스보다 더 심한 브라질리안 왁스를 마친 여성들은 까무잡잡한 피부를 내보이며 그 바닷가를 돌아다닌다. '카리오카(Carioca)'는 리우의 사람들, 특히 이들 해변의 소녀들을 일컫는 말이다.


보사노바는 물론 재즈의 스탠더드가 된 '이파네마의 소녀', 오리지널 앨범.


1962년 겨울, 보사노바 뮤지션인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은 작사가 비니시우스 데 모라에스와 함께 이파네마 해변에서 뮤지컬에 쓰일 노래를 만들고 있었다. 그때 해안에 자주 놀러오던 아름다운 15살의 소녀, 엘로이사(Heloísa Pinheiro)가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리고 전설의 명곡 '이파네마에서 온 소녀(Garota de Ipanema)'가 태어났다. 모라에스는 그 곡이 태어나던 때를 떠올리며 말한다.

"젊은 카리오카의 패러다임. 소녀는 황금빛 십대, 꽃과 인어의 혼합물, 빛과 우아함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또한 슬픈 모습이다. 소녀는 스스로를 바다로 향한 길로 데리고 간다. 사라져가는 젊음의 감각, 절대 소유할 수 없는 아름다움. 그것은 끝없는 조수 속에서, 아름다움과 우울함을 함께 품고 있는 삶의 선물이다."


이파네마의 소녀는 어떻게 되었을까? 엘로이사는 모델로 인기를 모았고, 1987년 브라질판 <플레이보이> 잡지에 등장했다. 2003년에는 딸과 함께 다시 그 잡지에서 몸매를 뽐내기도 했다. 그녀는 이파네마 해안에 노래 제목을 그대로 가져온 의류 부티크 숍을 오픈해 '이파네마에서 온 소녀' 티셔츠를 팔았다. 조빔과 모라에스는 이를 금지하기 위해 소송을 걸었지만 지고 말았다.




금요일은 라파의 삼바 클럽

리우의 밤은 언제나 뜨겁다. 그러나 라파(Lapa)의 금요일 밤에 견줄 만한 곳을 찾기란 어렵다. 18세기에 만들어진 수도교(Arcos da Lapa, 水道橋)와 공원(Passeio Público)을 중심으로 펼쳐져 있는 라파는 리우에서도 매우 고풍스러운 지역이다. 하지만 어느 해변보다 뜨거운 동네이기도 한다.

1950년대부터 이 동네에 스스로를 '몽마르트르 카리오카(Montmartre Carioca)'라 부르는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그들은 리우의 일반 시민 특히 지식인층과 거리를 두며 자유분방하고 원초적인 삶을 추구했다. 다운타운의 중심이 남쪽 해안으로 옮겨가고, 브라질의 수도가 브라질리아로 옮겨간 것도 큰 이유가 되었다. 새로운 탄생을 위해 시들고 썩는 시기가 필요했던 것이다. 다행히 삼바 음악과 춤은 여전히 그곳에 있었다. 사람들은 궁핍 속에서도 삼바를 통해 기쁨을 얻었고, 관광객들의 홍수 속에서 진짜 리우를 지켜냈다.


20세기가 되면서 라파 곳곳에 산뜻한 클럽들이 생겨났다. 처음에는 현지인들조차 위험하다며 꺼리기도 했지만, 클럽의 명성은 커졌고 골동품 가게와 노천 시장이 거리를 풍미를 더했다. 그리고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말한다. "진짜 삼바를 만나려면 라파로 가라. 거기에 스릴과 드라마와 땀이 있다."


라파의 상징인 아르코스, 18세기 때의 모습이다.




축구, 축구, 축구, 심심하니 올림픽

삼바가 아닌데도 이 도시 사람들 모두를 미치게 할 수 있는 것이 있을까? 놀랍게도 존재한다. 축구! 리우는 브라질에서 가장 뜨거운 열정의 도시, 그리고 리우에서 가장 뜨거운 장소는 코파카바나 해변이 아니라 마라카나 스타디움(Maracanã Stadium)이다.

마라카나 스타디움은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들이 축구 경기를 관람한 장소다.


1950년 월드컵을 개최하기 위해 만든 이 축구 경기장은 리우 시민, 브라질 국민, 그리고 전 세계의 축구 팬들에게 역사의 현장으로 남아 있다. 당시 브라질 팀은 월등한 실력으로 대회를 압도해갔다. 지금과 같은 토너먼트 방식이 아니라 결승 리그전이 펼쳐졌는데, 브라질은 우루과이와의 최종전을 앞두고 승리를 기정사실화했다. 그 경기에서 비기기만 해도 우승을 확정할 수 있었고, 이전의 경기들은 압도적인 스코어로 지배했다. 그리고 최종전의 순간이 다가왔다. 스타디움은 공식적으로 82,000석 규모였지만 유료입장객만 17만 3천여 명이 들어왔다. 실제로는 20만 명 가까이 들어와 축구 역사상 가장 많은 관람객을 동원한 경기로 기록되었다. 그리고 그 관중들 모두가 브라질의 우승을 당연시하는 분위기였다. 브라질은 자국대표 팀원들의 이름을 새긴 22개의 금메달을 미리 만들었고, 피파 의장인 줄 리메는 포르투갈어로 된 브라질 우승 축하 연설문만 준비해왔다. 그러나 경기는 거짓말처럼 우루과이의 2-1 승리로 돌아갔다. 이 전설적인 패배는 '마라카나조(Maracanazo)'라는 이름으로 남아, 아직까지 브라질 국가대표 팀을 꼬리처럼 따라다니고 있다.


마라카나 스타디움은 2010년에 대대적인 리노베이션에 들어갔다. 브라질이 2014년 월드컵과 2016년 올림픽을 연이어 개최하게 되면서, 새로운 역사의 장으로 탈바꿈할 기회를 얻은 것이다. 과연 21세기의 스타디움은 마라카나조의 치욕을 뒤집을 수 있을 것인가?




할리우드를 꼬이는 슬럼가

영화 [엘리트 스쿼드]. 교황의 방문 전에 리우 

빈민가의 범죄단을 소탕하라.


영화 [인크레더블 헐크]를 본 사람이라면 에드워드 노튼이 미친 듯이 도망가는 판자촌의 모습을 잊지 못할 것이다. 얼기설기 덧댄 집들이 초등학생이 맞춘 레고 장난감처럼 불규칙하게 포개져 있던 모습. 그럼에도 그 형형색색의 조화는 규격화된 도시에서는 절대 찾을 수 없는 아름다움을 보여주었다. 그 무대는 바로 리우의 대표적인 슬럼가인 타바레스 바스토스(Tavares Bastos). 지긋지긋한 가난과 흉악무도한 범죄가 판을 치던 이곳이 지난 10년간의 대대적인 치안회복 운동을 통해 새로운 삶을 얻고 있다. 그리고 그 독특하고 매력적인 풍광 덕분에 영화 [엘리트 스쿼드], 스눕 독의 뮤직비디오 등의 촬영지로 각광받게 되었다.


룰라 대통령의 브라질은 월드컵과 올림픽 유치를 계기로 리우데자네이루(히우지자네이루, Rio de Janeiro)를 새로운 도시로 변신시킬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리우는 높은 범죄율 때문에 많은 기업체들이 떠나갔고 그로 인해 실업의 문제가 심각하다. 대외적으로는 관광 엽서 속의 해안가 도시의 이미지를 지우지 못하고 있다. 우디 앨런과 같은 감독들을 초청하며 리우를 배경으로 한 영화를 만들고자 하는 적극적인 움직임이 그들에겐 변신의 중요한 열쇠다.




리우의 언덕을 오르는 가장 아름다운 방법

남미의 대국으로 세계 경제를 주도하던 영광의 시대가 사라진 뒤, 리우의 시민들은 매우 엄혹한 시간을 통과해야만 했다. 도시의 곳곳은 오랫동안 무질서 속에 방치되었다.

기업체가 빠져나간 건물들은 흉물스럽게 썩어갔다. 그러나 덕분에 얻은 기쁨도 있었다. 리우는 가난한 아티스트들의 화폭이 되었고, 놀라운 원색의 벽화 등 거리 예술이 꿈틀대는 곳이 되었다. 그중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예술품은 세라론의 계단(Escadaria Selarón)이다.


칠레에서 태어나 이 도시에 터전을 마련한 예술가 세라론은 자기가 사랑하는 이 거리의 계단을 모자이크 타일로 장식하기 시작했다.

그는 215개의 계단을 초록, 노랑, 파랑의 색으로 덮으며 브라질 국민들에 대해 경의를 표했다. 그리고 세계 곳곳에서 가져온 거울들로 빛의 향연을 만들어냈다. 세라론은 최근 자신의 작업을 라파의 아르코스에까지 이어가고 있다.


세라론의 계단. 언제나 기념사진을 찍는 사람들로 가득해 계단만을 찍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출처 : Donmatas at en.wikipedia.com>




과일과 춤과 무술이 뒤섞이는 시장

이 시장은 브라질 전통의 무술 퍼포먼스인 

카포에이라를 보기에도 좋은 장소이다.


흥청망청 온갖 사람들이 뒤섞이는 것이 당연한 리우. 이 도시의 시장 역시 흥겨운 축제의 현장과도 같다. 특히 북동시장(Feira Nordestina)은 자자한 명성으로 사람들을 불러모은다. 수백 개의 가게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거대한 시장은 명성 높은 바이안(Bahian) 음식을 먹기에도 아주 좋은 장소다.

사탕수수로 만든 술과 맥주를 들이켜고 길을 걸으면, 아코디언과 기타를 메고 나온 연주자들의 리듬에 취하게 된다. 삼바를 비롯한 여러 전통 음악은 물론, 브라질 전래의 무술 퍼포먼스인 카포에이라도 감상할 수 있다. 이 놀라운 광경은 금요일 저녁 8시부터 일요일 밤까지 이어지기도 한다고. 물론 현지인들과 심야에 뒤섞이는 일은 많은 위험에 노출되는 것이기도 하다. '스릴과 드라마와 땀'은 좋은 것이다. 단 건강하게 돌아왔을 때에만.


※ 지명, 인명 등 외국어 표기는 국립국어원에서 제정한 표준외래어표기법을 따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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