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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이집트 기자 지구 피라미드 - 고대 왕국의 혼이 담긴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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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무지 땅에서 만나는 피라미드는 의외로 친숙하다. 수천 년 세월이 담겼고, 세계 7대 불가사의인 진귀한 보물이지만 피부로 느껴지는 존재감은 일상과 가깝다. 이집트 기자 지구의 피라미드 역시 삶과 뒤엉켜 있다. 수도 카이로에서 외곽으로 접어들면 시야에 들어오는 게 ‘삼각의 무덤’들이다. 변두리 재건축 지역에 우뚝 솟은 회백색 건물처럼 피라미드는 생뚱맞게 서 있다.

기자 지구 피라미드. 책 속에서 봤던 피라미드 군이 나란히 도열해 있다.

기자 지구 피라미드는 보통 카이로의 한 부속 관광지처럼 설명되곤 한다. ‘카이로에서 서쪽으로 13km 떨어진 곳에 위치했으며 버스로는 40분 정도 걸린다.’ 4,500년 역사를 지닌 피라미드 입장에서 보면 마뜩잖다. 카이로가 도시로서 의미를 갖춘 것은 바빌론 성을 쌓은 후부터니 피라미드보다 2,000년쯤이나 뒤진다. 기자 지구 일대는 카이로가 들어서기 전, 이미 고대 왕국의 혼이 담겼던 곳이다. 어쩌면 이곳 투박한 땅에서 어색한 것들은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도시의 경관일지도 모른다.

4,500년 역사의 쿠푸왕 피라미드

이집트에서 발견된 피라미드는 70여 개가 넘는다. 나일강 일대, 문명의 발상지에 고루 흩어져 있다. 그중 기자 지구의 3대 피라미드는 가장 빼어난 것으로 손꼽힌다. 쿠푸왕의 피라미드부터 카프라왕, 멘카우라왕의 피라미드 등 사막 위에 도열한 세 개의 무덤들은 묘한 여운이 서려 있다. 그 중 대 피라미드로 알려진 쿠푸왕의 피라미드는 기원전 2,650년경 전 만들어진 것으로 이집트의 피라미드 중 가장 크고 오래된 대표주자다. 원래 높이가 145m였으며 수 톤 무게의 석재들만 200만 개가 넘도록 쌓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쿠푸왕의 피라미드를 쌓아올린 석재에는 수천년
세월이 담겨 있다.

가장 크고 오래된 규모를 자랑하는 쿠푸왕 피라미드.

이제는 유명 관광지가 된 피라미드에 닿는 길이 수월하지만은 않다. 다가서기 전 낙타 몰이꾼을 만나고 사진을 찍어주겠다며 접근하는 호객꾼들의 성화가 이어진다. 수천 년 역사를 조용하게 음미할 여유가 부족하다. 하지만 세계 7대 불가사의를 만나는 ‘진통’ 쯤으로 생각해 두자. 오히려 경계할 것은 세계 7대 불가사의 앞에서 사진 한 장 찍고 훌쩍 이동하려는 가벼운 마음이다.

이곳 피라미드는 보는 위치와, 높이에 따라 표정이 다르다. 태양의 움직임에 따라 바위 하나하나에 드리워진 그림자의 윤곽도 변한다. 멀리서 웅장한 자태를 감상했으면 사막의 태양 아래 반만년을 견뎌온 바위 하나하나를 곱씹어 본다. 돌덩이에는 지난한 세월의 온기가 전해진다.

이집트 기자 지구의 피라미드군은 세계 7대 불가사의의 수수께끼를 안고 있다.

투박한 땅 위 피라미드 인근에는 도시가 형성돼 있다.

피라미드의 실체에 궁금증을 느끼는 사람들은 피라미드 안으로 들어서는 투어에 나선다. 사람 하나가 간신히 오갈 작은 통로가 무덤 속에는 미로처럼 뻗어 있다. 이집트 원정에 나섰던 나폴레옹은 쌓인 돌들을 바라보며 프랑스 전 국경에 장벽을 세울 수 있겠다며 감탄했다고 한다.

황무지에 쌓아 올린 ‘세계 불가사의’

피라미드를 둘러싼 학설은 하나로 모아진다. 피라미드가 왕의 무덤이며 왕이 하늘로 오를 수 있는 계단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왕이 죽으면 하늘로 올라가 별이 되고 태양신과 함께 하늘을 순회한다고 믿었다. 피라미드에 대한 발굴과 연구는 2차 세계대전 이후 활발하게 계속됐으며 아직도 진행 중이다. 다만 정확한 축조법에 대한 의문은 아직도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쿠푸왕의 피라미드는 10만 명이 동원돼 20여 년 동안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집트인의 신앙심이 표출된 피라미드에 대해 건축가 알베르티는 ‘미치광이의 발상’이라며 헐뜯기도 했다.

피라미드를 지키는 역할을 했던 스핑크스는 세월이 흐르면서 다소 애착이 가는 모습으로 변했다.

기자 지구의 피라미드를 지키는 스핑크스는 길이 57m, 높이 20m의 대단한 덩치를 자랑한다. 하지만 아랍인의 침입 때 코가 잘리고 영국에 수염도 빼앗긴 뒤로는 다소 애처로운 모습이 됐다. 피라미드와 스핑크스를 배경 삼아 야간에는 ‘소리와 빛의 쇼’가 펼쳐진다. 형형색색 화려하지만 수천 년 잠들어 있을 무덤 속의 왕에게는 번거로운 일일 수도 있다.


피라미드에서 나서면 복잡한 거리가 형성돼 있다. 현지인들은 아흐라무 거리, 여행자들은 피라미드 거리로 부르는 곳이다. 이집트의 각종 맛집들과 상가들, 전 세계 패스트푸드점들이 거리에 빼곡하게 들어서 있다. 2012년에는 이곳에 투탕카멘 등의 유물이 보존될 그랜드 이집트 박물관이 들어설 예정이다. 고대의 왕들은 수천 년이 흐른 뒤에도 자신의 흔적에 기대어 살 ‘고마운’ 터전을 마련해 줬다.

피라미드를 구경하기 위해 나선 이집트 소녀들.

이집트의 전통 종이 파피루스에 새겨진 그림.

피라미드가 전통적인 삼각탑 형태만 지닌 것은 아니다. 통념적으로 생각하는 피라미드의 모양은 지역에 따라 다른 개성을 보여준다. 기자 지구 인근인 사카라조세르왕 피라미드는 계단식으로 돼 있으며, 다슈르는 한쪽 변이 굴절되거나, 벽돌색이 붉은 피라미드로 유명하다. 이 일대의 피라미드들은 고대 왕국이었던 멤피스의 영화로움을 반증하고 있으며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돼 있다.


이집트를 찾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피라미드를 알현해야 할 듯한 유혹에 빠진다. 그 앞에 서면, 무슨 주문에라도 홀린 것처럼 하늘에서 땅으로 이어지는 수천 년 세월의 흔적에 고개를 떨어뜨리게 된다.

가는 길
인천~카이로 구간은 대한항공, 카타르항공 등이 운항 중이다. 이집트 입국 때는 별도의 비자가 필요하다. 30일 동안 유효한 비자를 현지 공항에서도 발급받을 수 있다. 카이로에서 기자 지구까지는 버스가 운행되며 택시로도 이동이 가능하다. 기자, 사카라, 다슈르를 어우르는 현지 투어 프로그램도 마련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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