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프 산맥의 발치에 내려앉은, 모로코에서 가장 예쁜 마을길. 인디고 블루와 화이트의 대비가 눈부신 빛의 마을. 스페인과 모로코 스타일의 행복한 만남 속으로 걸어가는 길. 광장의 카페와 골목을 어슬렁거리며 느리게 시간을 소요하는 곳.

세계의 여행자들을 매혹시키는 작은 마을

쉐프샤우엔은 모로코 북서부의 작은 산간마을이다. 리프산맥의 두 봉우리 사이에 걸터앉은 이 작은 마을이 세계의 여행자들을 매혹시키는 이유는 무엇일까. 스페인 남부의 안달루시아 스타일과 모로코 베르베르 스타일이 조화롭게 어울린 건축물들의 매력이 첫 번째 이유. 한편으로는 이곳 마을 전체에 떠도는 느긋하고 한가로운 분위기다. 마라케시의 화려함도, 페스의 열정도 아닌, 쉐프샤우엔만의 여유로움이다. 젤라바를 입고 동네를 산책하는 할아버지들과 전 세계에서 모여든 젊은 히피들이 어울려 만들어내는 평화로움이 이 마을에 독특한 아우라를 던져준다.

제벨엘켈라 산으로 가는 길에 보이는 쉐프샤우엔 풍경

일정에 쫓기지 않는 여유로움이 필수

험준한 리프산맥에 둘러싸여 오랫동안 고립된 마을이었던 덕분에 이 동네 사람들은 모로코에서 강인하고 독립적이기로 소문났다. 이들은 종종 자기네 마을을 옛 이름인 샤우엔(Chaouen - 베르베르어로 뿔)으로 부른다. 마을 뒤로 두 개의 뿔처럼 솟은 산봉우리 티소우카(Tisouka 2,060m)와 메고우(Megou 1,616m) 때문이다. 베르베르어로 쉐프샤우엔은 ‘뿔들을 보라’는 뜻.


해발고도 660m에 자리 잡은 쉐프샤우엔은 포르투갈에 대항한 기지로 15세기 중반에 건설되었다. 곧 이어 15세기 말, 그라나다에서 대규모의 무슬림과 유대인들이 기독교의 박해를 피해 이주해오면서 번성하기 시작했다. 하얗게 채색된 집들, 작은 발코니, 주홍색 기와를 얹은 지붕, 오렌지 나무가 자라는 파티오 등의 히스패닉 향취가 가득한 건물을 짓기 시작한 이들이다. 창문과 문에만 이슬람의 전통 색깔인 초록을 입혔던 건물들이 지금의 창백한 푸른색으로 바뀐 건 1930년대에 건너온 유대인 이주자들 덕분이었다.

전형적인 안달루시안 스타일로 지어진 건물

유대인 이주자들에 의해 칠해진 인디고 블루의 빛깔이 선명한 골목

걷기 여행의 시작은 모로코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쉐프샤우엔의 메디나(구시가지)에서 시작하자. 이 마을의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만끽하기 위해서는 일정에 쫓기지 않는 여유로움이 필수. 여기저기 가지를 치며 굽어 드는 미로 같은 골목들을 이곳 저곳 기웃거리다 보면 시간은 직장인의 일요일처럼 흘러가버리기 때문이다. 혹 길을 잃는다 해도 걱정할 필요는 없다. 골목길을 몇 번만 돌다 보면 금세 제 자리를 찾아올 수 있을 만큼 작은 마을이니까. 안달루시아의 정취가 담긴 주홍색 테라코타 타일을 올리고 흰색과 푸른색으로 칠한 집들은 눈이 부실 정도로 환하다. 햇빛에 바랜 듯, 바람에 씻긴 듯, 지중해의 물빛을 닮은 인디고블루는 아찔한 유혹이다. 마치 보이지 않는 손에 이끌리듯 이 골목과 저 골목을 한없이 기웃거리게 된다.

가게에서 팔고 있는 알록달록한 파스텔 컬러의 페인트들

고양이 한 마리가 마치 모델처럼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다.

메디나의 중심부는 잔돌이 곱게 박힌 우타엘하맘(Uta el-Hammam)광장이다. 광장에 줄지어 늘어선 카페와 식당들이 잠시 여행자의 발목을 잡는다. 뜨거운 박하차 한 잔을 시켜놓고 노천 카페에 앉으면 천국이 따로 없다. 이곳에 들어서면 누구나 할 것 없이 긴장이 풀린다. 모로코를 여행하는 동안 잡지의 부록처럼 따라붙던 호객꾼들과의 실랑이도 사라지고, 어느새 이곳의 느슨한 분위기에 감염되고 만다. 골목마다 ‘드레즈락(대걸레자루 모양의 헤어스타일)’을 하고 알록달록한 색깔의 헐렁한 옷을 걸친 히피들이 가득하다.

청량하기 그지없는 마을의 모습

카페의 정면으로는 15세기에 지워진 이슬람 대사원과 붉은 빛의 성채 카스바가 둘러싸고 있다. 카스바의 탑에 올라가면 비신자에게는 입장이 허락되지 않는 대사원의 지붕과 광장 주변이 한 눈에 들어온다. 카스바는 그늘지고 고요한 정원과 미술관, 민속학 박물관, 옛날 감옥을 품고 있다. 우타엘하맘 광장을 벗어나 동쪽을 향해 걸으면 마즈젠(Place el-Majzen) 광장. 이곳에서 동쪽 끝의 안사르(Bab el-Ansar) 문까지 이어지는 골목은 쉐프샤우엔에서도 가장 예쁜 골목길로 꼽힌다. 작은 공방과 식당, 직물이나 가죽 신발을 파는 가게들을 거쳐 안사르 문에 도착하면 계곡에서 빨래하는 동네 여자들과 마주친다. 계곡을 가로질러 2km 남짓 언덕길을 오르면 폐허로 남은 옛 모스크. 이곳에서 바라보는 쉐프샤우엔의 풍경은 올리브밭의 초록색과 마을의 흰색이 어울려 청량하기 그지없다. 피크닉을 나온 동네 사람들과 어울려 수다를 떨다보면 어느새 설핏해지는 해.

어떤 풍경을 만나게 될지 설레게 되는 곳

골목을 돌때마다 어떤 풍경을 만나게 될지 설레게 되는 곳. 몸과 마음 깊은 곳까지 내리 쪼이는 빛의 물살에 출렁이게 되는 곳. 바다의 숨소리가 들릴 듯 온통 푸른 골목길과 젤라바를 입고 마실 다니는 할아버지들이 매력적인 곳. 시간은 자꾸 늘어져만 가고, 떠나고 싶지 않은 마음에 자꾸 꾸물거리게 되는 곳. 산에 기대어 바다의 빛깔을 두른 마을 쉐프샤우엔은 오늘도 소란스럽지 않게 이방인을 유혹하고 있다.

바다의 숨소리가 들릴 듯 온통 푸른 골목길과 젤라바를 입고 마실 다니는 할아버지들이 매력적인 곳.

코스 소개
쉐프샤우엔은 모로코 북서부 쉐프샤우엔 지역의 중심도시다. 해발고도 660m에 자리 잡은 인구 35,000명의 작은 마을. 기독교 세력에게 쫓겨 1471년 스페인에서 망명 온 몰레이 알리 벤 라시드(Moulay Ali ben Rachid)에 의해 건축되었다. 20세기 중반까지 스페인이 지배하고 있었던 덕에 스페인 영향을 받고 모로코 베르베르 스타일을 덧입은 건축물이 들어섰다. 대부분의 주민이 아랍어와 스페인어를 구사한다. 대부분의 숙소는 메디나에 위치하고 있다. 따로 정해진 코스는 없고, 메디나의 어느 곳에서든지 걷기 시작해 어디서든 마무리할 수 있다. 메디나의 우타엘하맘 광장에서 시작해 옛 사원 유적지까지 걷고 돌아온다면 2-3시간이 걸린다.

여행하기 좋은 때
11월부터 3월까지는 우기여서 비가 많이 내린다. 부활절 기간과 크리스마스 기간은 스페인 여행자들로 마을이 가득 차므로 피하자. 여행하기 좋은 시기는 봄에서 가을까지. 리프 산맥 주변은 여름철에도 비교적 시원하다.

찾아가는 법
카사블랑카, 마라케쉬, 라바트, 탕헤르 등에 국제공항이 있다. 한국에서의 직항은 없다. 런던이나 파리, 마드리드, 암스테르담 등 유럽의 주요 도시를 거쳐 갈 수 있다. 유럽의 저가항공을 미리 예매한다면 저렴한 가격으로 모로코까지 갈 수 있다. 페스에서 버스로 4시간. 탕헤르에서 버스로 3시간.

여행 Tip
메디나 바깥의 신시가지에서는 월요일이나 목요일에 장이 선다. 산에 사는 소수부족들이 전통 옷을 입고 내려오는 시장이므로 꼭 둘러보자. 모로코는 아프리카에서 가장 축복 받은 땅이라고 불릴 만큼 매력적이고 다양한 풍경을 자랑한다. 설산과 사막과 지중해를 다 품고 있다. 북부의 지중해와 산간마을부터 남부의 사하라사막까지 천천히 둘러보자.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