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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아메리카/미국

미국 매사추세스 : 빨간 기운이 솟아나요 원더풀 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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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매사추세츠주 오션 스프레이 협동조합

물에 떠오른 크랜베리를 한데 모아 수확하는 모습
물에 떠오른 크랜베리를 한데 모아 수확하는 모습 /박정우 사진작가
따뜻한 오전 햇살을 받으며 방수(防水) 장화를 신는다. 지하수가 가득 채워진 크랜베리(cranberry) 밭에 발을 내디딘다. 축구장 25개 넓이 밭에 크랜베리 열매들이 송골송골 물 위로 떠올라 주변을 발갛게 물들이고 있다. 둥둥 떠다니는 크랜베리를 장화로 가르며 농장 주인 에이드리언 몰로(43)와 함께 붉은 세상 한가운데에 섰다.

여기는 미국 동부 매사추세츠주 핸슨(Hanson) 농장. 지평선 아래로는 크랜베리의 빨간 기운이, 위로는 가을 하늘의 파란 기운이 서로 기분 좋게 맞대고 있다. 가을 내음이 코를 휘감는다. 크랜베리는 북미(北美)에서 자라는 시큼한 맛의 과일. 가을이면 영롱한 붉은색을 띠고 오동통하게 익는다. 크기는 대추만 하다. 9월 말~11월 중순 사이 이곳 농민들은 크랜베리를 거둬들이며 한 해를 마무리한다.

무수히 달린 크랜베리를 하나하나 손으로 따는 건 어려운 법. 번뜩이는 아이디어는 습식(濕式) 수확이었다. 먼저 크랜베리 밭에 지하수를 끌어와 무릎 높이로 붓는다. 그다음 워터릴(water reel)이라는 장비로 물속에서 크랜베리 가지를 흔든다. 그러면 열매들이 덩굴에서 떨어져 나가고, 즉시 물 위로 떠오른다. 몸 안에 네 개의 구멍을 가진 크랜베리는 수영장 튜브처럼 가볍게 수면 위로 얼굴을 내민다. 저마다 농도가 미세하게 다른 붉은빛을 내뿜는 크랜베리들이 사방을 뒤덮는다. 둥둥 떠다니는 크랜베리를 한 데 모아 커다란 호스로 빨아들여 트럭에 담는다. 붓으로 수채화를 그리는 듯한 수확 과정이다.

호스에 빨려 들어가기 직전의 크랜베리를 하나 집어 그대로 입에 넣었다. 상큼함이 온몸에 퍼진다. 크랜베리는 햇과일로 먹는다.

크랜베리로 만든 살사 소스를 얹은 칩스(왼쪽)와 크랜베리 소스를 발라 오븐에서 구워낸 칠면조 요리(오른쪽).
크랜베리로 만든 살사 소스를 얹은 칩스(왼쪽)와 크랜베리 소스를 발라 오븐에서 구워낸 칠면조 요리(오른쪽). /박정우 사진작가
미국인들이 먹는 연간 18만t에 달하는 크랜베리의 20%는 추수감사절(11월 넷째 주)에 소비된다. 수확이 끝나고 밭에서 물을 빼면 이듬해 봄 약속이나 한 것처럼 새로운 싹이 돋는다.

농장 주인 몰로는 컨설팅회사에서 근무하다 9년 전 농장으로 돌아와 가업을 잇고 있다. "어릴 적 가축도 길러보고 채소도 재배했지만 크랜베리는 특별해요. 땅이 사람에게 주는 즐거움을 한껏 맛볼 수 있게 하는 과일이죠."

크랜베리에는 미국 역사가 있다. 원래는 북미 인디언들이 즐겨 먹었다. 염색 재료로 썼을 뿐 아니라 화살 상처에 발라 독(毒)을 빨아내는 데도 사용했다. 사슴고기와 크랜베리를 다지면 사냥 갔을 때 비상식량으로 제격이었다. 쓰임새가 하도 많아 '원더베리(wonderberry)'라고도 불렀다.

크랜베리라는 이름은 독일과 네덜란드에서 건너온 이주민들이 "두루미(crane) 베리"라고 부르면서 생겼다. 늦봄에 크랜베리 덩굴에서 피는 옅은 색깔의 꽃이 두루미의 머리와 부리를 빼닮았기 때문이다.

매사추세츠는 19세기 초 내다 팔기 위해 크랜베리를 대량 재배하기 시작한 곳이다. 세계 최대의 크랜베리 협동조합인 오션 스프레이(Ocean Spray)도 85년 전 이곳에서 태동했다. 1930년 일대의 농장주 셋이서 손을 잡고 설립한 오션 스프레이는 지금은 700여명의 농장주를 빼고도 임직원이 2200명에 달한다. 연 매출은 20억달러(약 2조3400억원)에 이른다.

각 농장에서 크랜베리를 가득 싣고 온 트럭들은 오션 스프레이 집하장에 모인다. 트럭들이 짐칸을 뒤로 들어 올려 후두두 크랜베리를 쏟아내면 거대한 컨베이어 벨트를 타고 한곳에 모인다. 깨끗하게 씻어낸 뒤 다시 공장으로 옮겨 갖가지 웰빙 상품으로 가공한다. 주스나 소스는 기본이다. 건포도(raisin)처럼 크랜베리를 말려 가공한 크레이진(craisin)은 건포도보다 단맛이 덜하고 시큼하다. 초콜릿으로 만들기도 하고, 요구르트와 섞기도 한다. 아몬드 같은 곡류와 크레이진을 버무린 상품도 출시한다. 물론 생과일로도 먹는다.

미국 동부 매사추세츠주 핸슨(Hanson) 농장 위치도
크랜베리의 의학적 효능은 입증돼 있다. 요로(尿路) 건강에 좋다는 건 임상시험에서 확인됐다. 시큼한 맛을 내는 원천인 프로안토시아니딘이라는 천연 영양소는 신체를 정화시키는 효능이 있다.

오션 스프레이의 연구개발 총괄인 크리스티나 쿠 박사는 "크랜베리를 먹으면 세균이 위벽에 달라붙는 현상을 현저하게 줄일 수 있다"며 "아시아인의 70%가 갖고 있는 헬리코박터 파이로리균을 제어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했다. 한국에도 대형 마트를 중심으로 냉동 크랜베리, 크레이진, 크랜베리 주스가 시판되고 있다.

날이 저물자 크랜베리를 이용한 가정식을 전문으로 하는 작은 숙박업소를 찾았다. 메이플 시럽과 크랜베리 소스를 온몸에 바른 칠면조 한 마리가 그릇에 담겨 있다. 과일향 풍기는 칠면조 가슴살은 쫀득한 맛이 일품이다. 크랜베리와 양파 볶음을 곁들인 와일드 라이스는 가을에 어울리는 미국 음식이란 느낌이 가득하다. 디저트로 나온 파이는 속에 채워넣은 크랜베리와 사과의 조합이 풍미가 있다. 이야기꽃이 피는 사이 어둑해진 바깥에서는 귀뚜라미가 울었다. 가을밤은 그렇게 깊었다.
변희원 문화부 기자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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