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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아메리카/미국

미국 뉴욕 멘해튼 : 어디선가 본 도시, 멘해튼!(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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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홀리役은 헵번이 아니라 먼로였다

문 리버. 헨리 맨시니의 아련한 멜로디가 흘러나오고, 뉴욕의 옐로우 캡 한 대가 맨해튼의 텅 빈 아침거리에 도착한다. 택시에서 한 여자가 내린다.

지방시의 우아하고 고혹적인 블랙 드레스를 차려입은 미스 '홀리 고라이틀리(오드리 헵번)'가 크루아상과 커피를 마시며 보석상 '티파니' 쇼윈도 앞에 서서 아름다운 보석들을 바라본다. 아침을 먹기에는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문 닫힌 티파니. 그러나 이 장면을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영원한 고전 영화의 첫 장면으로 가슴 깊이 간직하게 된다.

언젠가 '노스탤지어'에 대한 글을 쓰다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너도 '알람브라 궁전의 추억'을 들으면서 떠나간 첫사랑 생각하고 그러니? 향수에 젖어서? 거긴 가본 적도 없으면서 말이야." 음악이란 국적을 초월하는 게 분명하다. 그렇지 않다면 '문 리버'를 듣는 것만으로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맨해튼 '티파니'에 향수 따위를 느낄 리 없다. 제아무리 헨리 맨시니가 오드리 헵번의 목소리에 어울리는 곡을 쓰기 위해 어마어마한 창작의 고통을 겪었다는 걸 알아도 말이다. 창가에 걸터앉아 조그마한 기타를 들고 '문 리버'를 부르는 그녀의 모습에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단어는 단 하나다.

노스탤지어!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의 배경이 되는 뉴욕 맨해튼의 모습. 화려한 모습에도 불구하고, 뉴욕 맨해튼에서 찍은 '티파니에서 아침을'을 본 뒤 느껴지는 감정은 '노스탤지어'다.
홀리 골라이틀리. 가난해서 구걸을 해야만 했던 어린 시절을 거쳐, 겨우 16살에 아내를 잃은 텍사스 농부와 결혼한 미스터리 한 여자. 과거를 지우고 뉴욕으로 온 후, 언제라도 떠날 사람처럼 명함에 항상 '여행 중'이라는 문구를 새기고 다니는 이 여자는 이름 없는 길고양이를 키운다. 고양이를 '나비'나 '해피'라 부르지 않고 그저 '고양이'라고 부르는 이 독특한 고양이 주인은 부유한 남자를 만나 결혼하는 게 꿈인 '파티 피플'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대책 없는 낭만주의자 홀리 골라이틀리는 다이아몬드는 나이 든 여자에게나 어울린다고 믿고, 단지 착한 사람 같다는 이유로 마약업자인 '샐리 토마토'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해 편지를 전하기 위해 교도소를 들락거린다. 삶이 공허할 때면 맨해튼의 '티파니'에 가는 그녀. 보석이 좋아서가 아니라, 불행한 일이 모두 빗겨갈 것 같은 티파니 특유의 친절한 공기 때문에 그곳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만인의 연인 같은 모습으로.

홀리의 아파트 위층에 사는 '폴'은 가난한 작가로 부유한 여자의 후원을 받는 한량이다. 그는 이웃인 홀리의 매력에 점점 빠지며 그녀의 알 수 없는 과거를 하나씩 알게 되고, 그녀의 전남편을 만나 홀리의 과거 이야기를 듣게 된다. 마약업자 '샐리 토마토' 사건에 연루된 그녀를 도와주다가 사랑을 확신한 폴은 비 오는 거리를 달리는 택시 안에서 사랑을 고백하고 영화는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세상의 모든 일 가운데 가장 슬픈 것은 개인에 관계없이 세상이 움직인다는 것이다. 만일 누군가가 연인과 헤어진다면 세계는 그를 위해 멈춰야 한다" 같은 문장을 쓴 작가라면 좋아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 남자, 트루먼 카포티가 바로 '티파니에서 아침을'의 원작자다.

원작은 사실 영화와 상당히 다르다. 특히 남녀 주인공의 사랑이 이루어지는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된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홀리가 어디론가 계속 '여행 중'이란 암시를 주며 끝나는 원작의 '열린 결말'과 상당히 다른데, 무엇보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 작품을 쓸 때 트루먼 카포티가 홀리 역할로 '매릴린 먼로'를 염두에 두었다는 것이다. 만약 원작자의 의도대로 영화화되었다면 뇌쇄적인 금발의 섹시한 홀리 골라이틀리가 탄생할 뻔했던 것.

그토록 다른 결말에도 불구하고,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배우 중에 소설에서 묘사하는 '유난히 큰 눈, 큼직한 입에 납작한 엉덩이의 깡마른 여자'에 부합하는 것은 '오드리 헵번'뿐이다. 가끔씩 상점에서 사소한 물건을 훔치고, 화장실에 갈 때마다 남자들에게 50달러씩을 뜯어내는 속물인 콜걸을 순진무구한 낭만주의자 스타일로 연기할 만한 배우가 도대체 오드리 헵번 말고 누가 있겠는가.

이윤기 감독은 언젠가 씨네21에 쓴 '스크린 속 나의 연인'이란 글에서 오드리 헵번에 대해 "한 여배우를 바라보며 신비롭다라는 느낌으로 마음마저 뭉클해진 경험은 그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헵번은 '영혼은 그대 곁에'를 끝으로 착한 일 많이 하다가 4년 뒤인 1993년에 저세상 사람이 되었다. 그녀에 대한 무수한 좋은 평판으로 보건대 아마도 지금은 마지막 영화에서처럼 천사가 되어 활동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천사로 헵번을 기용했던 스티븐 스필버그. 새삼 뛰어난 예지력을 가진 감독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재미 있는 우연은 그가 '티파니에서 아침을'이란 동명의 영화를 만들었다는 사실이다.(아직 개봉은 하지 않았다.)

●티파니에서 아침을: 1961년 블레이크 에즈워드 감독 작품. 오드리 헵번, 조지 페퍼드가 출연했다. 이 영화로 헨리 맨시니는 34회 아카데미 음악상과 주제가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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