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서 가장 아름다운 종소리… 마르크트 광장에 울려 퍼지네

유럽을 한 달 이상 돌아다니다 보면 어떤 지겨움이 목울대까지 치밀어 오를 때가 있다. 무슨 엽서에서 튀어나올 것 같은 나무숲, 고딕풍 성당과 운하, 무슨 동화책에서나 나올 법한 호수 게다가 백조까지…. 특히 관광지 위주의 여행이라면 더욱더 그렇다. 독일의 그 성은 오스트리아의 그 성 같고, 체코의 그 광장은 스페인의 그 광장 같고, 광장 위에 서 있는 종탑마저 모두 비슷해 보이는 것이다. 고백하자면, 나는 아름답고 거대한 베르사유를 투어하는 2시간 동안 내내 졸았다. 

벨기에의 도시 브루게(Brugge)는 고딕풍의 성당, 아름다운 운하와 종탑으로 동화 속에서나 나올법한 도시가 현실에도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조선일보 DB
'거울의 방'을 보는 것도 시큰둥했고 아름답게 재단된 정원을 보는 것 역시 별로였다. 독일과 벨기에·네덜란드·스페인 등등을 돌면서 성을 보는 것에 너무 지쳐 있었고, 건축과 미술에 대한 공부가 한참 부족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벨기에에 대한 첫인상은 모든 게 작다는 것이었다. 브뤼셀에는 벨기에의 국토만큼이나 조그마한 광장이 있는데 이 광장을 따라 조그만 '레이스 숍'들이 즐비한 울퉁불퉁한 포석 위를 걷다 보면 '오줌싸개 동상'을 볼 수 있다. 바로 그것을 보기 위해 벨기에까지 왔다는 게 조금 허무했다. 동상 옆에는 그 아이의 동상을 축소시킨 기념품 가게들이 관광객들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이봐, 오줌싸개 아이야! 바로 그 아이라고!" 한 가지 인상적인 게 있었다면 오줌 싸는 그 아이가 쓰고 있던 생뚱맞은 털모자 정도였다.

물론 벨기에는 아름다운 곳이다. 그곳에는 고디바처럼 비싼 초콜릿 말고도 맛있는 핸드메이드 초콜릿을 파는 가게들이 많고, 아름다운 성당들도 많다. 다만 내 여행이 브뤼셀에서 그친 건 아쉬웠다. 사실 한국에 여행을 왔는데 서울만 보고 경주 제주를 못 보고 간다는 건 한심한 일 아닌가. '킬러들의 도시'를 보고 나니, 브루게(Brugge)에 가보지 못한 게 정말 후회스러웠다. 시간이 정지된 이 중세풍 도시에 '킬러들의 도시'라는 제목이 붙여진 이상, 이 도시를 바라보는 감독의 관점에 무척 흥미가 생긴 것도 사실이고.

'내 인생 최고의 영화'와 '내 인생 최악의 영화'라는 평이 나란히 붙어 있는 누군가의 첫 번째 영화를 볼 때면 늘 상념에 빠지게 된다. 이건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이지만, 나 역시 첫 번째 작품으로 '내 인생 최고의 소설'과 '내 인생 최악의 소설'이라는 극단적인 평을 받았기 때문이다. 극단적인 평 사이의 행간에는 수많은 목소리들, 이를테면 증오·분노·조롱·열망·질투·시기·역겨움 같은 것들이 장엄하게 진동한다. 보고 또 봐도 좋은 사람과 보면 볼수록 역겨운 사람들 사이의 대립각이 크면 클수록 말이다. '킬러들의 도시'는 그런 영화다. 이 영화의 배경인 벨기에의 브루게에 도착하며 콜린 파렐이 던지는 첫 마디는 이것이다. 이런 엿 같은 브루게!

킬러인 레이와 켄은 자신들의 보스에게 벨기에의 브루게에 2주 동안 가 있으라는 연락을 받는다. 킬러들의 관광은 브리주를 통해 이 도시의 아름다움을 빈번히 역설하는데 건축가가 건축물을 보고 감동받듯, 레이와 켄은 15세기 네덜란드 출신의 화가 히에로니무스 보슈의 그림 '최후의 심판'을 보며 감동을 토한다. 죄를 지은 인간들이 심판을 받는 무시무시한 그림 앞에서 지옥과 천국의 중간지대인 '연옥'의 존재에 대해서 말이다. "나쁘진 않지만 그렇다고 좋지도 않네요"라는 레이의 말은 갈팡질팡 경계 위에 서 있는 한심한 인간들에 대한 난상토론 같다. 좋은 삶을 살 수도 있었던 그 시간에 사람 죽이는 일을 불평 없이 한 것에 대한 속죄, 물론 그들의 판단엔 죽어 마땅한 인간들이긴 했지만 말이다.

●킬러들의 도시: 아름다운 중세풍 도시, '뚜껑 없는 박물관'이란 별칭을 가진 브루게에서 벌어지는 킬러들의 쫓고 쫓기는 추격전. '연극계의 타란티노'란 애칭과 함께 천재작가로 불리던 마틴 맥도나 감독의 첫 작품. 이 영화로 할리우드의 악동 '콜린 파렐'은 66회 '골든 글로브'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살인의 세계에 아름다운 살인이 있을 리 없지만, 킬러들에게는 아마 이런 불문율이 존재하는 것 같다. '죽어 마땅한 놈은 죽어야 한다.' 그들은 '이 죽일 놈'이란 명제를 완성시켜주는 존재들이다. 세상에 작용과 반작용이 존재하듯 명제가 완벽해지려면 그 '역'도 명료해야 한다. '죽어 마땅한 놈은 죽어야 한다'는 명제가 성립하려면 '절대 죽어선 안 되는 존재'도 있어야 하는 것이다. 가령 아직 죽어 마땅한 죄를 지을 시간이 없었던 어린아이 같은 존재가 그렇다. 레이가 불안한 시선으로 이 아름다운 도시를 희번덕대는 건 실수로 아이를 죽였기 때문이다. 킬러들의 불문율을 어겼기 때문에 레이는 어느덧 킬러 사이에서도 '죽어 마땅한 놈'이 되어 버린 셈이다.

동화 속에서나 나올 법한 도시에 핏빛 헤모글로빈이 낭자하게 떨어지는 건 감독이 의도한 바를 분명히 드러낸다. 브루게의 고딕풍 성당과 아름다운 운하 그리고 마르크트 광장에 서 있는 아름다운 종탑 위에서 벌어지는 밤의 추격전은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종소리를 낸다는 브루게의 종탑을 아이러니의 집합체로 만든다. 아이를 죽게 한 레이를 비난하면서, 자신이라면 아이를 죽게 한 바로 그 순간 자살했을 거라고 호언장담하던 보스 헤리의 말은 그래서 더 비극적이다. 어른 난쟁이를 일곱 살짜리 아이로 오인해버린 그 기막힌 아이러니마저도!

영화의 엔딩을 보다 문득 박민규의 단편 '누런 강 배 한 척'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인생을 알고 나면, 인생을 살아갈 힘을 잃게 된다. 몰라서 고생을 견디고, 몰라서 사랑을 하고, 몰라서 자식에 연연하고, 몰라서 열심히 살아가는 것이다…. 인간이란 천국에 들어서기엔 너무 민망하고, 지옥에 떨어지기엔 너무 억울한 존재들이다." 아마도 신은 여전히 연옥에서 고민깨나 하고 있을지 모른다. 어떤 놈을 천국에 보내고, 어떤 놈을 지옥에 보내야 한단 말인가.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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