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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네팔

네팔 카트만두 : 응시의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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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여신의 시선, 쿠마리 사원

네팔에는 살아 있는 여신이 있다. 당신이 운이 좋다면, 혹은 동전 몇 푼을 낼 용의가 있다면 그 여신이 당신을 창 밖으로 내다보며 응시하는 시선을 느낄 수도 있다. 그녀가 갑자기 울거나 웃거나, 혹은 부르르 떨지 않고 당신을 가만히 바라본다면 그것은 당신의 소원이 이루어졌다는 뜻이다. 신의 땅 네팔의 살아있는 여신, ‘쿠마리’는 현재 요란한 아동학대 논쟁에 휩싸인 채 아직도 더르바르 광장의 남쪽 끝에 있는 목조 사원 안에서 가끔 밖을 내다보며, 그렇게 살고 있다.


‘쿠마리’는 어린 소녀들 중에서 선출된 신이다. 쿠마리는 ‘탈레주’ 여신의 화신으로 여겨진다.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는 이렇다. 여신 탈레주는 인간의 몸을 빌려 카트만두 왕국에 내려왔다. 왕은 여신을 극진히 모셨으나, 너무도 아름다운 모습에 그만 이성을 잃고 만다. 하마터면 인간 왕에게 욕을 당할 뻔한 탈레주 여신은 분노하여 그만 사라지고 말았다. 돌아오지 않는 여신에게 끈질기게 기도한 왕의 정성은 결국 탈레주 여신의 마음을 누그러뜨렸다. 여신은 어린 여자아이를 선택하여 섬긴다면 그녀의 몸에 깃들겠노라 약속했다. 그것이 바로 ‘쿠마리’의 시작이다.


쿠마리의 선택과정은 엄격하다. 어느 정도 사리를 분별할 수 있다 생각되는 3세에서 5세의 나이, 네왈리의 카스트를 지니고 석가모니의 후손이라 여겨지는 샤카족에서 태어나야 후보자에 이름을 올릴 수 있다. 보리수 같은 몸, 사슴 같은 허벅지, 소와 같은 눈꺼풀, 고등 같은 목. 몸에 흉터가 없고 눈과 머리카락은 새카만 색이어야 한다. 32가지의 기준을 만족시키면 테스트가 기다리고 있다. 캄캄한 방에서 소, 돼지, 양, 닭 등의 피투성이 사체들과 하루를 보내야 하는 것. 울지도 않고 침착하다면 그녀는 쿠마리로서의 능력을 인정받게 된다.


그 이후의 삶은 신으로서의 삶이다. 외부출입은 금지되고 1년에 열댓번, 종교의식 때 사원 밖으로 외출할 수 있다. 특히 9월 인드라 자트라 축제 때는 그녀의 앞에 국왕이 무릎을 꿇고 복을 구한다. 짙은 화장을 하고, 이마에 ‘티카’라 불리는 제 3의 눈을 그려 넣는다. 어떤 경우에도 몸에서 피가 나서는 안 되며, 사람들에게 늘 안겨 다닌다.


몸에서 피가 나거나 생리를 시작하게 되면 쿠마리의 생활을 마감하고 집으로 돌아간다. 이후 그녀를 대체할 다른 쿠마리가 그 자리에 앉는다. 여신에서 평범한 소녀로 돌아가는 삶이 순탄할리는 없다. 예전에는 그 이후의 삶이 신산하기 짝이 없었으나, 요즘은 나름대로 이후의 삶을 모색하는 적극적인 모습을 보인다. 개인교사에게 교육을 받고 중등교육과정 졸업자격에 합격하거나 영어를 익히는 그녀들. “경영학을 공부해 은행에서 일하고 싶다”는 꿈을 가진 인간적인 여신이라니, 낯설지만 그 또한 현재 네팔이 가지고 있는 모습이다.

지혜의 눈이 닿는 땅, 보드나트 스투파 (Boudanath Stupa)

네팔에서 사람들은 어디서나 “지혜의 눈”을 만난다. 지혜의 눈은 묘한 시선으로 당신을 응시한다. 그 눈은 만물을 바라보는 부처의 눈이다. 깨달음과 모든 번뇌에서 해방되는 경지를 뜻하는 그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없다. 어떤 이들은 이 눈을 그려 넣은 이유를 이 눈이 바라보고 있는 바로 이 땅에서 불교의 이상세계를 이루려는 바램에서 찾는다. 이마에 그려진 제3의 눈은 카르마를 꿰뚫어본다.


거대한 탑이라는 뜻의 ‘초르덴 쳄포(Chorten Chempo)’, 위치한 동네의 이름을 따 ‘보우다(Bouda)’로도 불리는 세계에서 가장 큰 스투파(Stupa)인 보드나트에는 사면에 거대한 눈이 그려져 있다. 기단의 높이만 36m, 그 위에 탑의 높이 38m. 기단의 길이가 100m인 이 탑은 우주를 구성하는 다섯 가지 에너지, 즉 땅, 물, 불, 바람, 하늘을 상징하며 또한 깨달음의 13계단을 상징한다.

5세기경, 불교를 받아들이기 시작한 송첸 감포 왕의 시기에 지어졌다고 하는 이 탑에 전해 내려오는 전설이 있다. 도축한 소의 살을 저며내는 일을 평생 하며 살아온 천민 노파 자드지모(Jadzimo)의 소원은 불탑 하나를 세우는 것이었다. 그녀는 왕에게 “물소 한 마리의 살로 덮을 수 있는 만큼의 땅만 주신다면 그 안에 불탑을 세우겠다”고 읍소한다.

왕은 소 한 마리, 라는 말에 선뜻 허락하였는데, 그 한 마리에서 저며낸 살로 덮은 땅이 지름이 100m가 넘었다. 지방 귀족들은 천민이 탑을 건설한다는 이야기에 분노하여 왕에게 철회를 탄원하였으나, 왕은 "한번 허락된 것은 철회할 수 없다(Jarung Kashor)"며 일언지하에 거절하였다. 현재의 보드나트는 이슬람교도들에게 파괴된 후 15세기에 다시 지어진 것이라 한다.


현재 보드나트 주변은 티베트불교의 중심지가 되어 있다. 그 옛날 카트만두와 라싸 사이의 무역로로 사용되던 길 근처에 세워진 이곳은 티베트인들에게는 성스러운 곳이다. 티베트인들은 이곳이 카트만두 계곡의 모든 기운이 모이는 바로 그 중심에 있다고 믿으며, 부처의 유골이 묻혀있다고 생각한다. 중국이 티베트를 무력으로 합병한 뒤 1960년부터 티베트에서 망명한 이들은 이곳을 중심으로 다시 뭉쳤고, 네팔에서 가장 큰 티베트불교 커뮤니티를 만들어냈다. 스투파를 둘러싼 30여 개의 사원들은 불교강좌를 비롯하여 외국인들을 위한 명상코스를 운영하기도 한다.


스투파의 사면에는 지혜의 눈이 그려져 있다.

히말라야를 바라보는 법, 나가르코트 전망대

카트만두를 찾는 많은 대부분의 사람들 목표는 히말라야에 오르는 것이다. 카트만두는 히말라야에 오르는 디딤대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 왔다. 하지만 아무리 가벼운 트래킹이라도 히말라야는 만만한 곳이 아니다. 그러므로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좋다는 이들을 위한 전망대가 있을 법하다. 나가르코트 전망대처럼.

나가르코트에서는 히말라야 산맥의 여러 봉우리들을 볼 수 있다.


해발 2,190m인 이곳은 히말라야의 전경을 가장 잘 바라볼 수 있는 곳이다. 카트만두 계곡 가장자리에 있는 곳으로, 이곳에서 일출과 일몰을 바라보는 것은 특별한 경험이다. 동쪽으로 내려다보이는 인드라와티(Indrawati)강 계곡도 절경이다. 이곳에서는 무엇을 볼 수 있을까? 

안나푸르나산의 S봉(7,273m), 안나푸르나 제3봉(7,557m), 제1봉(8,090m), 제2봉(7,937), 에베레스트산(8,848m), 칸첸중가산(8,603m), 마나슬루, 랑탕히말, 시샤팡마, 쿰부히말. 날씨가 좋을 경우의 얘기다. 에베레스트를 선명하게 볼 수 있는 날은 흔치 않으니, 날씨 좋은 날을 나가르코트에서 맞이한다면 자신의 행운을 기뻐해야 할 것이다. 이곳에는 안전상태가 좋아 보이지는 않는 전망탑도 마련되어 있다. 조금이라도 멀리 보고 싶은 이를 위해 만들어진 것인데, 이곳에서 떨어지지 않고 전망을 즐길 수 있었다면 자신의 행운을 한번 더 기뻐해야 하리라.

원숭이의 시선을 따라, 스와얌부나트 사원

당신은 가파른 385개의 계단을 오르면서, 그리고 오르고 난 뒤에도 번득번득한 응시의 시선을 견뎌야 한다. 당신이 뭔가 먹음직스러운 것으로 가득 차 보이는 가방을 들었거나 손에 음식물 봉투를 들었다면 더욱 그렇다. 그들은 탐욕스럽게 당신을 눈으로 좇다가 급기야 당신의 손에 있는 것을 낚아채고 말 것이다. 스와얌부나트 사원, 일명 몽키템플(Monkey Temple)의 원숭이들은 굉장히 눈치 빠르고 상당히 과격하니까.


약 2천 년 전에 건립되었다고 알려진, 네팔에서 가장 오래된 사원인 스와얌부나트 사원은 네팔 불교의 성지다. 1979년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한 이곳은 붓다가 태어난 룸비니 다음으로 신성시되는 곳으로 순례자들이 끊이지 않는다. 이곳은 카트만두가 생겨남과 동시에 생겨났다고 전해진다. 히말라야에 있는 호수에 핀 연꽃 위에 어느 날 대일여래가 나타났는데, 그를 경배하기 위해 온 문수보살은 그 호수에 악한 뱀이 살고 있어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문수보살이 신성한 검으로 쪼바르 산을 둘로 가르자, 호수가 없어지고 그 자리에 가장 먼저 스와얌부나트가 떠올랐다고 한다.

스와얌부나트란 ‘스스로 존재함(Self existent)'을 뜻한다. 지질학자들은 실제 카트만두가 3만 년 전에 호수였다는 것을 밝혀냈다. 이곳은 불교의 성지이지만 서로 다른 종교들이 평화롭게 어깨 겯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한 켠에는 네팔 불교미술의 한 경지를 보여주는 불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고, 또 한쪽에는 땅의 여신 바순다라, 바람의 신 바유 등 힌두교 신을 믿는 사원들이 줄줄이 늘어서 있다. 힌두의 여신 강가와 야무나의 상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곳은 이슬람에 의해 약탈당한 역사를 갖고 있기도 하다. 이곳에도 보드나트와 마찬가지로 지혜의 눈이 그려진 스투파가 있다. 1349년, 스투파에 금은보석이 숨겨져 있다 믿었던 그들은 탑을 낱낱이 해체하다시피 했는데, 다행히 곧 복원되었다고 한다.


이곳은 카트만두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전망대로도 유명하다.


스와얌부나트는 ‘몽키템플’이라고도 불린다.



코끼리를 타고 가며 보다. 로열치트완 국립공원

세상에는 이미 볼 수 없는 동물들이 많이 있다. 멸종동물인 이들은 이제는 무슨 방법을 써도 직접 볼 도리는 없다. 그런 의미에서, 멸종위기의 동물들을 보호하여 볼 수 있게 해놓은 곳들은 소중하다. 아시아의 세렝게티라 할만한 로열치트완 국립공원이 그 중 하나다.

로열치트완 국립공원은 코끼리를 타고 돌아볼 수 있다.


히말라야 산맥 기슭에 위치한, 아시아 최대규모의 야생동물 보호구역인 이곳에는 멸종위기에 놓인 인도 코뿔소와 벵골호랑이가 산다. 아열대 기후의 평원과 밀림으로 이루어진, 말 그대로 야생동물의 천국이다. 400종 이상의 조류, 80종 이상의 나비가 관찰되는 곳이기도 하다.


1973년에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이곳은 차츰 확장되다가 1984년 유네스코 지정 세계자연유산이 되었다. 공원 안에는 랍티강과 나라야니강이 흐르고 있어 배를 타고 공원을 둘러볼 수도 있지만, 이곳을 둘러보는 사람들은 주로 코끼리 트래킹을 애용한다.


이곳의 이름은 어원이 분분하다. '레오파드의 숲'을 뜻하는 치투와밴(Chituwa Ban)에서 왔다는 설이 있는가 하면, '정글 속 깊이'를 뜻하는 치타밴(Chitta Ban)이라는 주장도 설득력을 갖는다. 힌두교의 신인 시타의 숲을 뜻하는 시타밴(Sita Ban)에서 온 말이라는 주장도 일리가 있다.



죽음을 바라보다, 퍼슈퍼티나트 사원

인도의 갠지스(갠지즈)강변, 바라나시는 화장터로 유명하다. 그곳에서는 한 켠에서 시체를 태우는 광경과 타다 만 시체가 물에 떠내려가는 장면, 그리고 또 한 켠에서는 그 물로 목욕하고 마시는 장면을 볼 수 있다. 그 풍경 속에 생과 사는 기묘하게 섞인다. 네팔에도 똑같은 풍경을 볼 수 있는 곳이 있다. 퍼슈퍼티나트 사원 앞을 흐르는 바그머띠 강은 규모는 작지만 갠지스강(갠지즈강)의 지류로 성스러운 강으로 여겨진다. 네팔의 힌두인들에게 이곳은 죽은 몸으로라도 가고 싶은 최고의 성지다. 이곳에서 시신을 화장하면 윤회를 벗어나 해탈에 이를 수 있다는 믿음이 강력하다.


강 주변에는 아르여가트라는 이름의 화장터가 있다. 총 여섯 개인데, 신분에 따라 사용할 수 있는 화장터가 구분되어 있다. 상류 오른쪽은 왕족 전용이고, 하류로 갈수록 신분이 낮아진다. 이곳의 장례식은 꽤 평화로운 편. 너무나 평화로워 장례식장의 통곡에 익숙한 이들에게 문화적인 충격을 주기도 한다. 하류에는 시체의 유품을 건져다 쓰려는 이들이 어슬렁거린다.


파슈파티나트에는 시체를 태우는 연기가 가시지 않는다.

퍼슈퍼티나트 사원은 네팔 최대의 힌두교 사원이자, 인도대륙에 있는 4대 시바사원 가운데 하나이다. 파괴의 신인 시바는 금뿔이 달린 사슴인 퍼슈퍼티로 변신해서 이곳에서 즐겨 노닐었다 한다. 그것에서 이곳의 이름이 유래했다. 이 지역의 이름은 미르가스털인데, “사슴이 산다”는 의미를 가진다. 이 사원은 태어날 때부터 힌두교도인 이들만이 출입을 할 수 있다. 바그머띠 강변에는 시바를 모신 사원 외에도 부다와 브라흐마 등 여러 신을 모신 사원들이 즐비하다.

눈을 크게 뜨고 보라, 네팔 아이 호스피탈

네팔에는 백내장 치료 수술 과정에 함께 한 뒤 히말라야를 오르는 프로젝트가 있다.


아무리 멋진 자연풍광을 가진들, 볼 수 없다면 소용없다. 아무리 멋진 스투파와 조각들을 가진들, 볼 수 없다면 아무 소용없다. 아이러니하게도 볼 게 많은 나라인 네팔에는 실명자들이 많다. 햇볕이 강해 백내장에 걸릴 위험이 높기 때문이다. 자외선에 자주 노출된 눈은 수정체가 조금씩 익어 회복되지 않고, 결국 백내장을 유발하게 된다.


백내장은 5분 안에 끝나는 간단한 수술로 치료될 수 있는 병이다. 하지만 가난은 그 ‘간단한’ 치료의 기회조차 박탈한다. 가난은 수많은 실명자들을 양산해냈다. 백내장 치료만을 위해 전 세계의 의료봉사팀이 네팔에 가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카트만두를 중심으로 하여, 네팔전역에는 백내장 센터가 있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눈병원도 이곳에 있다. 네팔에서 백내장 수술을 많이 해본 경험을 가진 이들은 다른 가난한 나라로 봉사활동을 떠나기도 했다. 네팔출신의 안과의사 산둑박사는 북한에 방문하여 10일동안 천명의 백내장 환자를 수술하기도 했는데, 이는 내셔널지오그래픽의 다큐멘터리 [북한을 가다]를 통해 많은 이들에게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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