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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아메리카/미국

미국 댈러스, 칠레 : 케네디.. 그 죽음의 현장.. 댈러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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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댈러스와 칠레 산티아고

긴 여행 뒤에 쌓인 사진들은 여행의 기억처럼 뒤죽박죽이다. 엉뚱한 사진들이 짝을 맺는다. 그 사이에 나만의 여행 이야기가 놓인다.

미국 댈러스의 엘름가 아스팔트 도로 한복판에 작은 엑스(X)자 표시가 그려져 있다. 관광객들이 도로 이쪽저쪽에 서서 그 엑스표를 사진 찍는다. 엑스자 표시는 1963년 케네디 대통령이 퍼레이드를 하며 이동하던 중 총에 맞은 장소를 표시한 것이다.

아스팔트 도로 바닥에 그려진 엑스자를 사진에 담은 관광객은 이번에는 고개를 들어 옆 빌딩을 찍는다. 옛 교과서 보관창고 빌딩이다. 이 빌딩 6층에서 리 오즈월드라는 젊은이가 케네디를 쏘았다고 알려져 있다. (이 '알려져 있다'는 불안한 표현은 이 빌딩 안내 동판에 새겨져 있는 표현이다.) 지금 그 6층은 '6층 박물관'이라는 이름의 박물관으로 바뀌었고 내부에는 장총 한 자루가 당시의 모습대로 거리를 겨누고 있다.

이미지 크게보기미국 텍사스주 댈러스의 도로 위에 케네디 대통령이 총을 맞은 자리를 표시한 엑스 표시가 있다.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채승우 사진가
박물관만이 아니라 도로 곳곳에 안내 표지가 있다. 나무 담이 있는 언덕 위의 안내판은 '이곳에 수상한 사람이 보였다는 증언이 있지만 증거는 없었다'며 음모론을 부추기고 있고, 도로 가까운 언덕에는 '이곳에서 제프 루더라는 양복점 주인이 무비카메라로 케네디의 암살 순간을 찍었다'는 설명이 사진과 함께 붙어있다.

그 안내판들만으로 대통령 암살 스토리에 만족 못 했다면 코팅한 사진을 들고 서성이고 있는 관광 가이드에게 물으면 된다. 제프 루더의 사진을 다각도로 분석해가며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가이드가 이야기를 하며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킬 때마다 관광객들은 그곳을 사진으로 찍는다.

한 블록 떨어진 곳에 케네디 대통령 추모비도 있지만, 관광객들의 관심사는 그쪽보다는 박물관 옆 기념품점이다. 케네디 대통령의 얼굴이 그려진 머그컵부터 티셔츠까지 다양한 물건이 준비되어 있다.

칠레 산티아고칠레 산티아고의 대통령 궁인 ‘모네다 궁’ 앞 광장 주변에 전 대통령들의 조각상들이 서 있다. 그중에 살바도르 아옌데 대통령이 있다.
대통령의 죽음을 추모하는 것인지 관광 상품으로 만든 것인지 헷갈리던 댈러스를 보고 나서 생각난 것은 나와 아내가 몇 달 전에 지나온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였다. 우리는 세계여행을 시작하기 전에 여행할 나라들을 공부하기 위해 몇 권의 책을 읽었는데, 칠레에 대한 책은 '칠레의 모든 기록'이었다. 관광 안내서인 줄 알고 읽기 시작한 이 책은 칠레의 민주화와 독재 시절에 대한 이야기였다. 이 이야기에는 대통령 두 명이 등장한다. 민주국가를 이루려던 살바도르 아옌데 대통령과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뺏은 피노체트이다. 탱크가 둘러싸고 비행기가 폭격을 하는 순간까지 아옌데 대통령이 대통령 궁에서 끝까지 항전하다 사망한 이야기는 유명하다.

칠레를 이해하는 데 이 시기는 중요하다. 피노체트 독재정권은 수천명을 학살하는 큰 상처를 남겼다. 힘든 시기에 예술가들이 사람들에게 힘을 주었다. 빅토르 하라나 비올레타 파라, 인티 이이마니를 포함한 가수들의 음악은 아직도 울림이 크다.

지도댈러스에는 케네디 저격 장소 외에 추신수 선수가 있다. 대부분의 미국 여행이 그렇듯 자동차가 없으면 여기저기 여러 곳을 둘러보기가 쉽지 않다. 저격 장소는 내비게이션에서 ‘6층 박물관’을 찾으면 된다. 칠레 산티아고 중심부인 아르마스 광장 옆에 관광 안내소가 있다. 시내 지도를 하나 얻으면 쉽게 걸어다닐 수 있다. 서울에서 산티아고까지는 직항 비행기 편이 있다.
한 칠레 청년이 우리에게 '그는 시인 이상의 시인이야'라고 소개했던 파블로 네루다도 있다. 네루다는 대통령 후보가 되었다가 아옌데에게 양보하고 민주화를 위해 힘을 모은다.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라는 소설이 유명한데, '이슬라 네그라'에 있는 그의 집이 배경이다. 네루다의 집들은 그가 직접 지은 독특한 모양으로 시인의 흔적이 진하게 남아 있다. 산티아고에서 멀지 않은 바닷가에 있다. 동네 이름이 '검은 섬'이지만 실제 섬은 아니다.

칠레는 댈러스만큼 관광객에게 친절하지 않다. 아옌데와 네루다, 빅토르 하라의 흔적을 보기 위해서 여기저기 찾아다녀야 한다. 나에게는 그것이 칠레를 여행하는 좋은 방법이었다. 비록 빅토르 하라의 공연장은 주민들의 소음 항의에 문을 닫았고, 비올레타 파라의 노래를 들으러 갔을 땐 관객들이 노래를 따라 부르는 바람에 가수의 목소리는 안 들렸지만 말이다. 칠레 역사박물관에는 아옌데가 마지막 순간에 썼던 부러진 안경테가 전시되어 있다. 관심이 있다면 그 정도만으로도 충분히 여행의 이정표가 될 수 있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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