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금각사' '꼼짝도 하기 싫은 사람들을 위한 요가' ―교토
소설을 가장 잘 읽는 방법은 "작가가 작품을 쓴 곳에 가서 읽는 것"이라는 말을 한 건 소설가 K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 '설국'을 느끼자면 겨울의 니가타현으로 가는 것보다 좋은 방법은 떠오르지 않는다. 눈이 그저 하늘에서 땅으로 '내리는 것'이 아니라, 눈 아닌 모든 것이 그저 눈의 그림자로 보일 법한 눈의 고장이라면, 눈은 분명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보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눈을 내 눈으로 직접 보았을 때에만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신호소에서 기차가 멈춰섰다" 같은 가와바타의 문장도 제대로 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제야 우리는 설국의 '눈'에 대해 비로소 안다고 말할 수 있게 된다.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설국'을 쓰기 위해 직접 니가타현의 낯선 여관방에 머물렀다. 그곳에서 소설 속 주인공처럼 목선이 아름다운 어느 여인과 남몰래 사랑에 빠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곳에서 작가가 느꼈을 감성은 유자와 온천의 어느 골목을 걷다 보면 불현듯 느껴질지도 모를 일이다.
2014년의 거의 마지막 날, 일본 오사카에서 열차를 타고 교토에 도착했을 때, 나는 금각사(金閣寺)부터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미시마 유키오의 금각사를 읽었던 열여덟 살 때 기억이 떠올라서였다.
"어려서부터 아버지는 나에게 자주 금각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아버지 말에 따르면 금각처럼 아름다운 것은 이 세상에 없었고, 또한 금각이라는 글자, 그 음운으로부터 내 마음이 그려 낸 금각은 터무니없이 멋진 것이다. 그토록 꿈에 그리던 금각은 너무나 싱겁게 내 앞에 그 전모를 드러내었다. 나는 이리저리 각도를 바꾸어, 혹은 고개를 기울여 바라보았다. 아무런 감동이 일지 않았다. 그것은 낡고 거무튀튀하며 초라한 3층 건물에 지나지 않았다. 꼭대기의 봉황도, 까마귀가 앉아 있는 것처럼 보일 뿐이었다. 아름답기는커녕 부조화하고 불안정한 느낌마저 들었다. 미(美)라는 것은 이토록 아름답지 않은 것일까, 하고 나는 생각했다. 나날이 내 마음속에서 다시 아름다움을 되살려 어느덧 보기 전보다도 훨씬 아름다운 금각이 되었다. 어디가 아름답다고는 말할 수 없었다. 몽상에 의하여 성장한 것이 일단 현실의 수정을 거쳐, 오히려 몽상을 자극하게 된 것으로 여겨진다."
나는 주인공이 느낀 금각사에 대한 심리 변화를 함께 느껴보고 싶었다. 금각사를 처음 보았을 때의 느낌, '아름다움이란 이토록 아름답지 않은 것인가!'에서 '어딘가 아름답다고 말할 수 없지만 아름답다고 느끼게 된 금각' 사이의 심리적 거리와 간격을 들여다보고 싶었던 셈이다. 실제로 존재하는 그토록 아름다운 금각사를 걷다 보면 결국 그것에 집착해 금각을 불태우고야 마는 파멸의 씨앗이 보일 것 같았다.
교토에 도착한 날 버스 터미널에서 시티버스를 무제한 이용할 수 있는 1일 패스를 끊었다. 금각사로 가는 버스 승객의 줄은 길었다. 정류장을 지나갈수록 버스에는 점점 더 많은 사람이 타기 시작했다. 하지만 버스에서 내리고 나서 금각사에 들어갔을 땐 놀라움이 거의 공포로 바뀌었다. 금각사는 사람들의 정수리 색깔, 검은색으로 뒤덮여 있었다. 외국인뿐 아니라 연말을 맞아 나들이를 나온 일본인 관광객들의 뒤통수 덕분에 사실상 걸어 다닌다기보다 마치 수평 에스컬레이터 같은 게 있어서 의지와 상관없이 정해진 동선 위를 떠다니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말하자면, 12월 30일에 금각사에 가는 일은 거의 미친 짓에 가까웠다. 그저 외국인 관광객과 일본인의 정수리 냄새를 제대로 맡아볼 계획이라면 상관없겠지만 금각사를 제대로 느끼기 위해서라면 말이다. 금각사를 보기는 봤지만, 봤다고 말할 수 없는 상태로 나는 절 밖으로 빠져나왔다. 가방 안에 소설 '금각사'를 챙겨왔(다고 생각했)지만 펼쳐 볼 엄두는 나지 않았다. 압도적으로 많은 사람을 보았을 때의 피로감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나는 결국 배낭 속에서 새로운 파스 몇 장을 꺼내 발에 붙이고,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낯선 길을 지도도 없이 걷기 시작했다. 무조건 사람이 없어 보이는 골목으로 들어간 셈이다. 어쩌면 길을 잃기로 작정한 것이 아니라, 이미 길을 잃은 것인지도 몰랐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나는 '금각사'를 잃어버렸다. 대신 다른 책의 이런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물건들은 없어진다. 그냥 사라진다. 무언가를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온 마음을 다 바쳐 노력하지만 그럼에도, 믿을 수 없지만, 그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걸 잃어버린다. 아끼는 물건일수록 언젠가는 잃어버리게 될 거라는 예감도 그만큼 더 확실하게 다가오고, 잃어버렸을 때 찾아오는 상실감도 크다."
결국 금각사 근처에서 내가 읽은 책은 '꼼짝도 하기 싫은 사람들을 위한 요가'였다. 그것은 고대 유적이 보존되어 있는 로마와 렙티스 마그나부터 자동차 산업이 붕괴하며 도시 자체가 쇠락해버린 디트로이트까지 '폐허'를 여행하는 한 소설가의 황량한 내면 풍경으로, 당장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나는 "폐허는 과거를 떠올리게 하지 않습니다. 그건 보는 이를 미래로 안내하죠. 거의 어떤 예언 같은 느낌입니다" 같은 문장에 여러 번 밑줄을 그었다.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사막에서 사이보그가 나오는 미래의 SF 영화를 찍는 건 이런 맥락일지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유독 오래된 절이 많은 교토의 사찰에서 이 책을 읽는 기분은 기묘했다.
"'금각사'를 본 날, '금각사'를 잃어버렸다"고 노트에 썼다. 그리고 12월 31일, 일본 NHK 텔레비전 화면 속에서 믿기지 않는 장면을 봤다. 폭죽을 터뜨리고 요란스럽기만 한 우리나라와 미국의 연말 방송만 보다가, 2014년에서 2015년으로 바뀌는 그 순간에 카운트다운조차 하지 않는 일본 방송에 문화적 충격을 느낀 것이다. 너무 고요해서 혹시 텔레비전 볼륨을 잘못 조절했나 의아해질 즈음, 이 책의 거의 마지막에서 이런 문장을 발견했다.
"나무는 온통 자라는 일에만 관심이 있는 것 같잖아."
창밖의 나무는 아직 잎이 없는 겨울나무였다. 하지만 서울보다 8도쯤 높은 교토의 겨울이 어쩐지 새해의 봄날처럼 느껴졌다. 창문을 열어도 춥게 느껴지지 않았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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