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아몬드 82% 나는 캘리포니아

셰이커’가 거대한 집게발로 아몬드 나무 기둥을 잡고 흔들자, 열매가 우박처럼 떨어진다. 미국의 영농기계화가 이룩한 압도적 풍경이다. 오른쪽 위 사진은 수확기의 아몬드 열매.
셰이커’가 거대한 집게발로 아몬드 나무 기둥을 잡고 흔들자, 열매가 우박처럼 떨어진다. 미국의 영농기계화가 이룩한 압도적 풍경이다. 오른쪽 위 사진은 수확기의 아몬드 열매.
아몬드 나무 3만 그루 사이로, 카우보이 모자를 쓴 부녀가 걸어간다. 3대째 아몬드 농사를 짓고 있다는 아버지 랜디(Randy)와 딸 젠(Jenn). 합치면 100세 가까운 이 부녀는 이날도 새벽 4시에 일어났다고 했다. 1년 중 가장 바쁜 가을 수확철. 떡 벌어진 밤송이처럼 쩍쩍 벌어진 아몬드 열매가 가지마다 빽빽하다.

풍성하게 아람 연 열매들을 흔들어 바닥으로 떨구는 임무는 '셰이커'(Shaker)가 맡았다. 거대한 집게발처럼 생긴 장치로 나무 기둥을 꼭 붙잡고 흔드는 기계 차량이다. 자칫 나무를 상하게 할 우려가 있어 숙련된 전문가만 조종할 수 있다는 '셰이커'의 운전은 젠의 형부 몫이다. 15년생 아몬드 나무 기둥을 셰이커의 집게발이 조심스레 껴안는다. "사시나무 떨듯"이라는 속담의 시각적 재현이 여기에 있다. 2~3초 흔들자 마치 우박 쏟아지듯 아몬드 열매가 남김없이 곤두박질친다. 말 그대로 압도적인 풍경이다.

샌프란시스코 국제공항에서 동쪽으로 약 150㎞ 떨어진 작은 도시 모데스토(Modesto). 인구 20만가량 작은 도시지만, 캘리포니아 아몬드의 본산이다. 전 세계 아몬드의 82%를 캘리포니아에서 생산하고, 이를 지원·통제하는 협회 사무실은 이곳 모데스토에 있다. 협회의 아시아 마케팅 매니저인 베키 세레노(Sereno)는 "한국 언론에 아몬드 수확 장면을 공개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했다. 그 생색이 크게 밉지 않을 만큼, 장관이다. 셰이커가 열매를 바닥으로 떨구면, '스위퍼'(Sweeper) 차량이 다소곳하게 바닥에 한 줄로 세우고, 그다음 '픽업 머신'(Pick up Machine) 차량이 짐칸에 모아 담는다. 전 단계 자동화다.

사실 아몬드에 대한 지식과 관심은 많지 않았다는 게 정직한 고백일 것이다. 매혹은 샌프란시스코행 비행기 안에서 읽었던 재미작가 이창래의 장편소설 '만조의 바다 위에서'(On Such A Full Sea)에서 시작됐다. 이창래는 고흐의 걸작 '꽃피는 아몬드'(Almond Blossem)를 특별히 인용하고 있었다. 체리 블라섬(Cherry Blossom·벚꽃)과 아몬드 블라섬의 발음이 보여주는 리듬감. 청자색 배경을 바탕으로 희끄무레한 고흐의 아몬드 꽃잎과 구불구불하고 이끼가 낀 가지들은, 만개한 벚꽃과 구분하기가 쉽지 않았다. 땅콩처럼 바닥을 기는 난쟁이 식물로 추측했던 건 완전한 오산이었다.

아몬드의 영양학적 특징과 장점 소개는 현지 교수와 유명 셰프가 맡았다. 요약하면 비타민과 단백질의 보고라는 것. 그리고 노화 방지와 심장 강화, 그리고 체중 조절에 빼어나다는 것. "콜레스테롤 감소 및 심장 강화"(2003 미국 FDA) "암, 심장 질환 등으로 사망할 확률 20% 낮아(2013 뉴질랜드 의학저널), "체중 증가 없는 포만감"(2013 유러피안 영양학 저널) 등이 제시됐다.

직접 요리를 만드는 셰프 입장에서는 어떨까. 아몬드 요리 시연을 하던 CIA(Culinary Institue of California)의 수석 요리강사 레베카에게 물었다. 왜 호두도 아니고, 땅콩도 아니고, 아몬드여야 하는가. 그는 화이트 와인을 홀짝거리며 "다른 견과류보다 더 달콤하고, 요리용 오일도 더 진하고 맛있다"고 했다. 그리고는 "아몬드에서는 건강한 단백질을 얻을 수 있다"면서 "육류 중심 사회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미국에서는 최고의 대안 중 하나"라고 강조했다.

다시 랜디와 젠 부녀에게로 돌아온다. 칠순 가까운 랜디는 마치 서부 시절을 떠올리듯 "기디 업, 기디 업(giddy up·이랴, 이랴!)"이라 외치며 셰이커, 스위퍼, 픽업머신 '트리오'를 독려했다. 아몬드 재배의 필요조건은 건조하고 더운 여름과 추운 겨울. 전 세계 생산량의 82%를 캘리포니아 내륙에서 독점하고 있는 이유다. 9월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강렬한 햇볕이 오(伍)와 열(列)을 맞춘 아몬드 군락에 수직으로 내리꽂히고 있다. 캘리포니아의 아몬드 농사는 88%가 가업(family business)이라고 했다. 젠은 자신의 자식 세대에게도 가업을 잇게 하겠다고 했다. 부녀가 '기디 업'을 다시 합창한다. 아버지 랜디의 미소가 따뜻했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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