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뭐래도 내게는, 타지마할보다 플로리다 키웨스트!

하늘과 맞닿아 있는 플로리다 키웨스트의 해변. 천국이란 게 지상에 존재한다면 바로 이곳이 아닐까.
하늘과 맞닿아 있는 플로리다 키웨스트의 해변. 천국이란 게 지상에 존재한다면 바로 이곳이 아닐까. / 미국 관광청 한국사무소 제공
상당히 나이를 먹고서야 깨달았으니, 나는 여행을 그다지 즐기지 않는다. 여행을 떠나면 피치 못하게 쫓기는 듯한 심정이 되고 마는데, 그 느낌이 별로다. 촘촘한 스케줄과 낯선 환경에 쫓기는 것은 물론이고, 내가 지금 보는 게 가장 좋은 게 맞는가 하는 의미 없는 의구심에마저 쫓기니 여행 내내 참으로 무익한 주판알 위에서 동동거리는 바보인 셈이다.

그런 내가 모든 계산속을 집어치우고 여행이 주는 순수한 기쁨에 온전히 몸을 내맡기는 순간이 있으니, 바로 여행지에서 야생동물을 만날 때다. 숲 속의 회색 곰, 암벽의 산양, 검은 해변의 바다거북을 만나는 순간의 흥분과 설렘이란! 그들과 시간을 보내느라 샤 자한이 직접 참석하는 타지마할 준공식을 놓친다 하더라도 나는 크게 아쉬워하지 않을 것이다.

소설가 심윤경
그러므로 나의 플로리다 여행은 뜻하지 않은 기쁨이 내내 충만한 여정이었다. 올랜도와 마이애미의 유명한 관광지들을 거쳐 키웨스트로 향하는 길은 그 자체로 유명한 관광 포인트다. 섬과 섬을 연결한 270㎞의 고속도로는 오래된 수영장처럼 다소 촌스러운 파란색 페인트를 칠해놨는데, 대양 속으로 빠져들 듯 달리는 분위기와 퍽 잘 어울린다. 그 길의 끝에 미국 땅의 최남단, 키웨스트가 있다.

미국의 대표적인 새해맞이 파티 장소로도 유명한 키웨스트는 아기자기한 기념품 가게와 카페가 줄지어 늘어서 있는 예쁜 동네다. 푸른 바다가 넘실거리는 키웨스트의 예쁜 카페에서는 펠리컨이 우리 곁에 앉아 있었다. 어벙한 눈매의 키웨스트 펠리컨들은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아서 손을 내밀어도 날아가지 않는다. 귀찮다는 듯 어기적, 한 걸음 옆으로 비킬 뿐이다. 둔하고 멍청해 보이는데 날개를 펴면 굉장히 크고, 바다 표면을 스치듯 날아가며 사냥하는 모습은 아까 그 멍청한 새 맞는가 싶도록 날렵하고 멋있었다.

고양이가 한가로이 노니는‘헤밍웨이 홈 앤 뮤지엄’
고양이가 한가로이 노니는‘헤밍웨이 홈 앤 뮤지엄’/ 미국 플로리다 관광청 
키웨스트의 최고 유명 관광지라 할 수 있는 헤밍웨이의 집에서도 나는 즐거움을 만끽했다. 굉장히 섹시하고 차가운 남자와 마주 앉아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헤밍웨이의 문체와는 다소 어울리지 않는 화사하고 여성적인 라틴풍 주택이었는데, 그곳을 오늘과 같은 명소로 만든 것은 온 집 안을 어슬렁거리고 돌아다니는 오륙십 마리의 고양이였다. 헤밍웨이는 소문난 애묘가로 이 집에 사는 동안 늘 이삼십 마리의 고양이를 키웠고 오늘날까지 그 고양이들의 후손들이 이 집을 지키고 있다.

그는 키웨스트에 머무는 시기에 '무기여 잘 있거라'를 썼고 장차 '노인과 바다'의 소재가 될 바다낚시에 심취했다. 안락의자, 시가, 뿔사슴의 머리와 청새치 등으로 장식된 선배 작가의 멋진 집필실에 대해서는 이렇게 넓은 방에서 글을 쓰면 좀 휑하지 않나 하는 정도의 감흥밖에 없었지만 스무 마리 고양이라니! 고양이 두 마리 키우는 나는 스무 마리 키우던 헤밍웨이 앞에서 열배만큼의 격차를 인정하고 부러워하는 수밖에.

돌아오는 길에는 플로리다 반도 끝 부분에 위치한 에버글레이즈 국립공원에 들렀다. 좀 전까지 야자수 잎 한들거리던 화려한 관광 도시가 사라지고 머리 위 삼백육십 도를 둘러보아도 하늘뿐인 열대 사바나 대평원의 풍광이 펼쳐진다. 우리가 이곳에서 무엇을 보게 될지 사전 정보가 별로 없는 상태로 갔는데, 천연기념물 독수리가 주차장부터 건달패처럼 무리 지어 어정거리고 있었다. 에버글레이즈는 그런 곳이었다. 일산 호수공원처럼 평평하게 잘 닦인 나무 데크 길을 산책하듯 걷다 보면 제 몸값 귀한 줄도 모르고 체신 없이 막 나와 돌아다니는 천연기념물 가마우지 독수리 악어들을 동네 백수 보듯 만나게 되는 곳.

사람이 여행을 즐기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텐데, 나는 그곳에서 만난 동물들로 여행의 추억을 간직한다. 그런 의미에서 플로리다는 나에게 최고의 여행지였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주는 모든 편의를 한껏 누리면서 쉽게 야생과 황무지를 경험할 수 있는 곳. 플로리다에 다녀온 뒤 날짜 지난 샤 자한의 초대장을 발견했더라도, 나는 후회하지 않았을 것이다. 

키웨스트로 향하는 고속도로.
키웨스트로 향하는 고속도로./ 심윤경 작가 
여행 정보

마이애미나 올랜도로 가는 직항편은 없기 때문에 애틀랜타나 샌프란시스코 등에서 한 번 갈아타야 한다. 여행 시 렌터카를 이용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플로리다주는 17만㎢, 남한 면적의 약 1.7배에 달하기 때문에 며칠 안에 구경하려면 서울에서 출발해 광주에서 점심 먹고 제주도까지 내처 달린다는 식의 일정을 각오해야 한다.

마이애미가 20㎞에 걸쳐 펼쳐진 해변으로 유명한 전통적인 휴양 도시라면 올랜도는 디즈니랜드와 유니버설 스튜디오, 시랜드, 케네디 우주센터 등이 한데 모여 있는 테마파크 도시다. 올랜도의 디즈니랜드는 6개의 테마파크가 모인 구조로 올랜도시 옆에 디즈니랜드시가 붙어 있다고 표현해도 될 만큼 거대한 규모다. 아이들을 데리고 1주일 내내 테마파크 안에서만 지내는 여행 상품도 인기라고 한다.

키웨스트 지도
에버글레이즈 국립공원은 미국의 국립공원 중 3위, 전라남·북도를 합한 면적에 해당하는 거대한 공원이다. 쾌적한 산책을 즐기며 편안하게 야생동물을 만나려면 공원 초입에 있는 '아닝가 트레일(Anhinga Trail)'을 추천한다. 아닝가는 플로리다에 서식하는 가마우지를 일컫는 이름이다.

플로리다에서는 길가에 과일을 쌓아놓고 파는 트럭이나 텐트를 흔히 볼 수 있다. 양파망처럼 커다란 자루에 넣어서 파는 플로리다 오렌지는 기막히게 과즙이 풍부하고 향긋하다. 신선한 해산물과 자극적인 양념을 사용한 케이준 음식은 다소 짜고 기름지지만 나름 특색 있다. 악어고기 메뉴도 흔히 볼 수 있는데, 용기를 내어 악어고기 햄버거를 주문해봤더니 약간 육질이 단단한 닭 가슴살 같았달까. 무슨 음식을 시키건 산더미처럼 퍼 담아주는 감자튀김을 보건대, 미국 음식은 맛보다는 열량으로 승부하는 것 같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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