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에서 새로운 정상을 바라보다… 네팔 카트만두에서 시작된 히말라야 등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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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레스트 정상에서 본 동쪽 티베트. 오른쪽 봉우리는 마칼루(세계 5위봉, 8,463m)
'눈의 거처'라는 의미를 지닌 히말라야는 인도 대륙과 유라시아 대륙이 충돌하면서 융기된 산맥으로, 비교적 근세에 형성되었다. 동쪽 부탄에서부터 서쪽 파키스탄까지 동서로 2,500km나 뻗어 있는 거대한 산군이다. 그 가운데 가장 높은 봉우리가 ‘에베레스트’. 히말라야, 그리고 세계 최고봉이다.

네팔에서는 ‘어머니의 여신’을 의미하는 ‘사가르마타’, 중국 티베트에서는 ‘대지의 여신’이라는 뜻인 ‘초모랑마’라 부른다. 에베레스트, 사가르마타, 초모랑마 이 세 가지의 이름을 '8,848m'라 한다. 

에베레스트 등반은 네팔정부 관광성에 허가를 득해야 할 수 있고, 허가를 얻게 되면 로열티(입산료)를 지불해야 한다. 올해는 한 사람당 기본적인 입산료가 $11,600이다. 등반은 등반 팀이 네팔에 있는 트레킹 회사를 통해서 행정이나 가이드까지 고용 계약을 한 후 이루어지며, 일반 여행가들이 갈 수 있는 '트레킹(trekking)', 아니면 '원정(expedition)' 두 가지로 나뉘어진다.

트레킹은 보편적으로 8,000m 봉을 중심으로 베이스 캠프까지 다녀오는 것을 말한다. 카트만두를 중심으로 동쪽으로는 칸첸중가(8,586m), 동북쪽으로 마칼루(8,463m)와 에베레스트(8,848m), 초오유(8,201m), 서쪽으로 마나슬루(8,156m), 안나푸르나(8,091m), 다울라기리(8,167m)까지 다양한 트레킹코스가 있다. 트레킹도 정부가 지정한 트레킹 오피스에 여권을 가지고 가서 코스에 따른 여행일정과 허가를 얻어야만 원하는 트레킹을 할 수 있다.

언제나 설레는 트레킹, 그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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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부체로 가는 길목
처음 카트만두에 등반 온 것이 1982년. 34년 전 그때는 매연도 없고 힌두 문화를 잘 간직한 수도, 카트만두였는데 지금은 꽤나 복잡한 시내와 사람들이 가득한 곳으로 바뀌었다. 왠지 빨리 트레킹을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든다.

2016년 4월 7일, 드디어 트레킹을 떠난다. 설레는 마음으로 짐을 꾸려 비행기에 올라탄 것도 잠시, 눈앞에 늘 보아왔던 히말라야가 보인다. 그 모습에 폭 빠져 있다 보니 어느새 루크라 공항(2,840m)에 도착했다. 기류 때문에 걱정했건만, 비행기 안에서 안도하는 마음에 환호를 한다. 3시간 정도 걸어 파크딩(2,610m)까지 이르는 길은 정말 아름다운 코스다. 셀파족(셰르파족, 네팔의 산악지대에 거주하는 민족)들의 모습과 경작지가 만년설 배경과 잘 어우러져 있어 계속 카메라 셔터를 누르게 만든다.

파크딩을 떠나 아름다운 두드코시 강(우유빛 강)을 따라 조르살레를 지나고, 가파른 언덕길을 오르면 남체바자르(Namche bazar, 3,440m)가 나타난다. 에베레스트로 향하는 길목으로, 셀파족들이 많이 모여 살고 있으며 상권이 잘 형성된 마을이다. 매주 토요일마다 장터가 열리는 이 곳에서는 각종 음식 재료도 살 수 있고, 등산복이나 장비도 구입할 수 있다.

우리 원정대가 고소 적응(고산에 적응하는 것)겸, 렌조패스(Renjo pass, 5,360m)를 넘어 아름다운 고쿄 호수 숙소에 묵으며 트레킹을 마친 후 베이스캠프에 올라 선 것이 4월 16일이었다. 베이스캠프(5,364m)는 만년 빙하이기 때문에 얼음을 깨고 돌을 채워서 평평하게 한 후 텐트를 쳤다. 베이스캠프에서 제사 ‘부다야’를 지내고, 네팔 가이드, 원정 팀 모두 술과 음식을 나누어 먹는다. 트레킹에서 등반으로의 전환점이라 할 수 있는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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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체 바자르 마을 풍경(3,440m) / 남체 바자르에서의 부처님 생일축제(석가탄신일)

힘겨운 고소 적응이 반복되는 과정

렌조 패스를 올라가는 포터들
렌조 패스를 올라가는 포터들

본격적인 등반이 시작된 4월 22일, 나와 대원들 그리고 셀파 가이드는 새벽 2시부터 일어나 개인 장비를 챙기고 간단히 식사도 한 후, 등반의 첫 발걸음을 뗀다.

아이스 폴(빙하의 경사가 폭포처럼 된 곳) 하단부에는 완만하지만 가파른 빙벽이 나타난다. 안전벨트를 단단히 매고, 크람폰(발톱)을 등산화에 착용하고 나서 거친 숨소리와 함께 빙벽에 올라 크레바스(crevasse, 빙하 표면의 갈라진 틈)를 건넌다. 깜깜한 밤 속 헤드랜턴 불빛 하나만으로 위험한 공간을 오르고 또 오른다. 베이스캠프에서 제1캠프까지는 5시간, 하산은 2시간 정도, 하루에 총 7시간을 고소 적응을 위해 매일 등반을 한다. 이렇게 반복될 때면 대원들은 제1캠프에서 자기 인생의 높이가 바뀐다고 말한다.

3~4일간 제1캠프까지의 고소 적응이 끝나면 제2캠프(6,500m)에 적응을 한다. 그리고 제2캠프에서 제3캠프(7,300m)까지 다시 힘든 적응 등반이 시작된다. 로체 훼이스(Lotse Face), 고정된 로프에 매달려 가깝게 보이는 제3캠프에 올라가는 것이 왜 이렇게 멀고, 힘든지••• 등반할 때마다 고도가 높아지면 호흡곤란에 행동도 느려지고, 매달려 쉬는 시간이 점점 많아진다. 제3캠프 적응이 끝나고 나면 날씨를 체크해서 정상 공격 날짜를 잡게 된다. 

5월 15일 사우스 콜(South Col) 제4캠프 텐트 안, 하루 종일 강한 바람이 분다. 저녁부터는 정상 공격을 해야 하는데 정상을 쳐다보면 걱정이 앞선다. 상상 밖의 바람, 추위, 산소 부족••• 다치지 않고 살아 돌아올 수 있을까? 여기서부터는 산소 마스크를 쓰고 정상까지 다녀올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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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조 패스에서 본 히말라야. 왼쪽은 초오유(8,201m), 중앙이 에베레스트(8,848m), 오른쪽은 다우체(6,542m), 촐라체(6,400m)

무산소 등반과는 천지차이

베이스캠프와 쿰부 아이스 폴
베이스캠프와 쿰부 아이스 폴

오후 4시, 복장 점검을 시작한다. 우모 복 상하, 이 정도면 안 춥겠지. 등산화, 우모 장갑, 카메라 등 여러 번 확인했음에도 다시 한번 점검하고 나서야 크람폰을 착용하고 정상을 향해 움직인다.

나는 장부 셀파(JangBu Sherpa), 밍마 셀파(Mingma Sherpa)와 같이 등반을 시작한다. 경사진 청빙 지역의 만년설 얼음에 크람폰 소리가 착, 착, 착 둔탁하게 들려오고, 날이 어두워지니 뒤에 올라오는 중국 팀의 헤드 렌턴 불빛이 기차 길처럼 보였다. 온도는 영하 25도, 움직일 때마다 강한 바람과 온 몸을 울리는 거친 숨소리에 내 심장은 요동을 친다. 쉴 때마다 계속 심박수를 체크하는데, 산소 마스크를 쓰고 등반하면 8,500m에서 심박수가 150회 정도 뛴다.

에베레스트 정상을 배경으로 허영호 대장과 함께한 대원들
에베레스트 정상을 배경으로 허영호 대장과 함께한 대원들

에베레스트 등반에 있어서 산소 사용과 무산소 등반은 하늘과 땅 차이다. 산소 마스크를 썼을 때는 비교적 10발자국 정도 걸을 수 있지만, 무산소 등반은 3발자국만 걸어도 폐가 터질 것 같다. 1993년 4월 13일 무산소로 6일 만에 등반을 마친 적이 있다. 중국 북쪽에서 등반을 시작하여 4일 만에 정상에 섰고 이틀 동안 무산소 상태로 비박(최소한의 장비로 숙영하는 것)을 하면서 베이스캠프로 하산을 했다. 에베레스트를 무산소 등정•횡단한 경험으로 산소 사용과 무산소 등반은 엄청난 차이가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장부 셀파와 나는 교대로 러셀(눈길 다지기)을 하면서 고도를 높여갔다. 쌓인 눈길에 무릎까지 빠지고 눈은 계속해서 끊임없이 흘러내린다. 힘든 등반이다. 등반 시작 4시간 만에 발코니(8,500m)에 도착하니 폐가 터질 것처럼 힘들어서 그냥 눈 위에 누워 버렸다.

그 사이 중국 팀이 올라왔고 앞서 가기를 기다렸는데, 그들도 힘이 드는지 도무지 갈 생각을 안 한다. ‘에라 나는 장부 셀파 보고 가자!’ 하는 생각으로 일어섰고 또 다시 힘겨운 러셀이 시작됐다. 그렇게 눈길을 헤쳐가다 보니 우리보다 앞서간 팀이 하나도 없었다.

정상에서, 새로운 정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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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바스를 건너는 셸파 가이드

우리가 첫 번째 팀이 되었다. 언제나 끝날는지, 그저 길었던 러셀이 끝나고 이제 바위에 고정된 로프를 잡고 올라가는 길이다. 많이 지쳤는지 로프를 잡고 매달리는 자체가 불안하고 힘들다. 영하 30도의 추위와 강한 바람 속에 체감온도는 영하 50도 이하로 내려가고, 바람이 너무 거세서 몸을 지탱하기가 쉽지 않다. 사우스 피크(South Peak 남봉, 8,765m)에 올라서니 동쪽 저 멀리 실눈처럼 조금씩 얕지만 밝은 빛이 보인다. 이제 한 시간이면 올라 설 수 있을 만큼 정상은 지척이다. 남봉에서 정상까지는 칼날 능선에, 오른쪽은 커니스(눈 처마)라서 어느 곳 하나 무난하지 않지만 목표가 보인다.

1987년 12월 22일 동계 에베레스트 등정 후 하산하다가 이곳 힐러리 스텝(Hillary Step, 정상 도달 직전의 수직빙벽) 하단부 커니스 지점에서 추락한 적이 있는데 죽을 뻔한 걸 셀파 가이드 덕분에 구사일생으로 탈출했다. 다시금 돌이켜 생각해도 정말 아찔한 순간이었다.

정상에 가까이 가니 티베트 쪽으로 날아가버릴 것 같이 바람이 세게 밀어붙인다. 바람 때문에 못 가고 있는데 뒤에 있던 밍마 셀파가 내 몸에 확보 로프를 연결했다. 밍마 셀파와 함께 의지한 체 드디어 새벽 5시, 정상(8,848m)에 섰다. 정말 힘겨운 등반이었지만 눈앞에 펼쳐진 아름다운 파노라마를 보니 감회가 새롭다. 6년 만에 다시 올라선 이 기분을 뭐라 표현할 수 있을까. 8,848m는 산소가(1/3), 기압이(1/3) 생명체가 존재하지 않는 제3극(The third pole), ‘죽음의 지대’라 부른다.

올해 나는 다섯 번째 정상에 올라섰다. 힘겨웠던 모든 순간에 같이, 함께 호흡한 대원들과 셀파 가이드에게 감사를 드린다.

정상에 서면 또 다른 정상이 보인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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