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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스위스

스위스 바젤 : 작은 것들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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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일상을 역사의 페이지로_바젤 카니발

우리의 일상이 모여서 역사가 된다는 것은 자명하지만, 사실 잊기 쉬운 것이기도 하다. 혁명, 전쟁과 같은 거창한 사건들만이 역사의 페이지에 오를 수 있다고 믿고 있는 것은 아닌지, 가끔은 스스로 생각해보아야 할 일이다. 바젤의 카니발은 작은 사건들을 역사의 반열에 올려놓는 의미있는 행사다. 우스꽝스러운 가면을 쓴 사람들이 지난 1년간 바젤에서 있었던 사건들을 풍자하며 상기시킨다. 지난 1년간의 ‘인물’들도 마찬가지다. 분장을 하고 행렬에 참가한 만명 이상의 사람들은 오렌지, 노란 미모사와 함께 풍자시구가 적힌 색종이인 찌델(Zeedel)을 사람들에게 나누어준다. 명실상부하게 1년을 정리하는 자리가 화려한 축제로 열리는 것이다.


풍자적인 시구를 읊는 “슈니첼뱅크(Schnitzelbänke)” 공연단은 주로 레스토랑을 중심으로 돈다. 100개 이상의 슈니첼뱅크 공연단은 다양한 멜로디와 촌철살인의 가사로 풍자의 대상을 알고 있는 사람들을 웃게 한다. 그와 동시에 바젤의 시민들은 지난 1년간 있었던 일을 새삼 떠올리며 일상이 역사 속으로 편입했음을 실감한다. 14세기 즈음에 시작된 바젤의 카니발은 16~17세기의 종교탄압에도 굴하지 않고 전통을 유지해왔다. 사순절이 시작된 직후의 월요일부터 3일간 열리는 카니발은 이제는 그 규모와 아름다움으로 꽤 유명세를 떨치고 있다. 바젤의 일년간의 역사를 모르더라도 과장된 가면과 흥겨운 음악은 충분히 즐겁고 재미있다. 하지만 그 내용을 들여다볼 수 있다면 더 짜릿하게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종이의 역사와 현재 - 종이박물관(Basler Papiermuhle)

인정하긴 어려워도, 종이가 인류의 역사에서 점점 그 중요성을 잃어가는 것은 사실인 듯하다. 인류가 쌓아온 문명을 기록하고 전수하는 데 지대한 역할을 했던 종이는 저장매체로서의 역할을 서서히 잃어가고 있다. 한편에서는 새롭게 종이를 발견하고 갖가지 필기구와 도구들을 이용하여 갖고 놀고 있지만, 그보다는 자판에 익숙해져 손에 펜 한번 잡아보지 않은 사람들이 늘어나는 속도가 더 빠르지 않을까 싶다.


그렇기 때문에 종이의 A에서 Z까지 볼 수 있는 바젤의 종이박물관은 의미가 크다. 라인강으로 흘러드는 지류 바로 옆에 자리 잡은 이 작은 박물관은 오래된 물레방아가 인상적인데, 중세시대에 제지공장으로 지어진 이래 500년간 쉬지 않고 움직인 이 물레방아는 현재 종이를 만드는 작업도 톡톡히 돕고 있다. 이곳에 온 사람들은 종이를 피부로 만날 수 있다. 1층에서 종이원료인 펄프로 종이를 만드는 일부터 직접 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종이박물관에서 만들어져 판매되는 책자들.

2층에서는 그렇게 만든 종이 위에 펜으로 흔적을 남겨볼 수 있으며, 납활자 제작현장을 볼 수도 있다. 3층에 준비되어 있는 것은 다양한 시대의 인쇄기계들. 직접 자신의 이름과 종이박물관 건물 그림을 인쇄해본 뒤 가장 위층으로 올라가면 그렇게 해서 묶인 종이들이 책으로 만들어지는 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책에 관한 전시물들을 구경하는 것은 덤이다. 바젤의 종이박물관이 내용적으로 충실한 이유는, 바젤이라는 도시 자체가 예부터 학문활동이 왕성했던 덕분에 인쇄와 출판산업이 발달했기 때문이다. 옛 제지공정의 기술을 다시 볼 수 있는 것도 그 덕분이다. 기념품으로, 작은 납활자를 살 수 있다.

미시사, 역사의 새로운 시선 -바젤대학교

야콥 부르트하르트는 역사서술에 있어 탁월한 공을 세웠다.


미시사(Microhistory)를 한마디로 설명하면 '작은 것의, 혹은 작은 것을 통해 보는 역사'이다. 전쟁, 혁명, 경제체제의 변화 등 거대한 사건들이 아니라, 개개인의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밝혀주고 작은 것의 역사를 섬세하게 들여다보아 과거 선조들의 삶의 실상을 드러내는 것이 미시사가 추구하는 방법이다.


1860년에 쓰여진 야콥 부르크하르트(Jacob Burckhardt)의 저서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 (Die Kultur der Renaissance in Italien)]는 언어, 관습, 축제, 음식, 질병, 출생, 가족, 결혼 등 일상의 소재들을 꼼꼼히 들여다보는 역작이다. ‘아래로부터의 역사’를 추구한 이 책 이후 ‘르네상스’가 일반적인 용어로 사용되기 시작하였으니, 이 책의 영향력을 짐작해볼 수 있다. 저자인 야콥 부르크하르트는 1818년 바젤에서 태어났다. 바젤문법학교를 졸업하고 바젤대학교에서 그리스어를 공부한 그는 베를린에서 유학하고 돌아와 바젤대학교에서 예술사를 가르쳤다. 오늘날 예술사의 기초를 마련하는데 크게 공헌한 그는 역사서술에 있어 자신의 문학적 능력을 아끼지 않았다.

‘국수’라는 먹을거리를 통해 국수를 먹고 사는 다양한 나라의 다양한 사람들의 역사와 문화를 설명한 책 [누들(Noodle) ]의 부제는 ‘세계의 식탁을 점령한 음식의 문화사’이다. 이 책의 저자 크리스토프 나이트하르트(Christoph Neidhart) 또한 바젤에서 태어나, 바젤대학교를 졸업했다. 스위스에서 가장 오래된 바젤대학교가 설립된 해는 1459년. 에라스무스, 프리드리히 니체, 칼 융 등 유럽지성사에서 굵직굵직한 흔적을 남긴 이들도 바젤대학교 출신이다.

만화의 예술성을 옹호하다 - 만화박물관(Karikatur & Cartoon Museum Basel)

한때는 저급한 문화로, 또 한때는 상업적 도구로만 치부되었던 만화. 하지만 예술성의 측면을 포함한 다양한 측면에서, 만화는 이야기할 거리가 많은 장르이다. 바젤의 만화박물관은 세계 40여 개국 700여 명의 작가들이 그린 2천 점을 훌쩍 넘는 캐리커처와 카툰 원화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이곳을 설립한 것은 만화가 위르크 슈파르(Jürg Spahr)이다. 후원자인 디터 부르크하르트(Dieter Burckhardt)와 함께, 가치가 높다고 판단되는 원화들을 수집하여 1996년에 문을 열었다. 건물 또한 역사적 가치가 높은 것을, 스위스의 유명한 건축가인 자크 에르조(Jacques Herzog)와 피에르 드 무롱(Pierre de Meuron)이 개조하여 현재의 모습으로 만들었다.


작품 수집의 가장 큰 원칙은 ‘예술성’이다. 큰 원칙 아래 정치와 시사만화는 배제하며 휴머니즘, 사랑 등의 주제를 주로 다루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만화의 주요기능 중의 하나인 비판과 풍자를 배제한 것은 아니다. 당면한 현대문명의 문제에 대해 비판하는 작품도 볼 수 있다. 한편에서는 일본만화 캐릭터도 전시하여, 넓은 포용을 시도하고 있다. 소장된 원화의 규모는 상당하지만, 그때그때 선정된 주제에 따라 전시된 작품은 정기적으로 교체된다.


바젤 박물관 문화의 선구자, 바젤 대학교 교수 요한 야콤 단논(Johann Jakob d’Annone)의 캐리커처.

여기저기에 어린이를 위해 ‘그림 그리는 곳’이 마련되어 있어 아이들이 좋아하기는 하지만, 이곳은 어린이를 위한 박물관이 아니라 만화의 예술성을 향유할 수 있는 어른들을 위한 곳이다. 만화에 좀 더 관심이 많은 사람은 수요일과 토요일에 문을 여는 만화도서관을 이용하는 것도 괜찮을 듯.

작고 반짝이는 것들, 모여라 - 바젤월드(Basel World)

사람들이 원하는 선물은 비싼 것이 아니다. 작고 반짝거리는 것을 원할 뿐이다. 작고 반짝거리는 게 비싼 것은, 그러니까 바람직하지는 않은 우연일 따름이다. 바젤에서는 1년에 한 번, 3월 말에서 4월 초경에, 작고 반짝거리는 것들을 위한 박람회가 열린다. ‘바젤월드’라 불리는 이 박람회에 모이는 것은 보석과 시계. 그뿐 아니다. 스트랩, 상자, 쇼핑백, 리본 등등 이와 관련된 모든 제품이 이곳에 모여든다. 1972년 스위스 산업박람회 안에서 열린 ‘유럽 시계 주얼리 쇼’에서 시작된 이 박람회는 2003년에 바젤월드라고 새롭게 명칭을 바꿨다. 표만 구입하면 일반인도 입장할 수 있는 이 대중적인 행사는 ‘월드’라는 이름에 걸맞게 전 세계의 관심을 받고 있다. 45개국에서 근 2,000개에 달하는 업체가 참가하고 100여 개 나라에서 십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참관하는 이 행사는, 다루는 것은 ‘작은 것’이지만 가히 세계 최대의 시계 보석 박람회라 부를 만하다. 신제품 시계와 보석들을 구경하는 것도 재미있지만, 독특한 부스들도 흥미롭다. 각종 시연이 벌어지고 만나기 힘든 사람들이 왕래한다. 진귀한 시계는 예약을 하고 가야 볼 수 있지만, 대부분의 시계들은 그 장소에서 직접 만져보고 착용해볼 수 있으니, 시계에 관심 있는 이들이라면 여행가기 전에 일정을 확인해보는 것도 좋겠다.


14세기 즈음에 시작된 바젤의 카니발은 16~17세기의 종교탄압에도 굴하지 않고 전통을 유지해왔다. 사순절이 시작된 직후의 월요일부터 3일간 열리는 카니발은 이제는 그 규모와 아름다움으로 꽤 유명세를 떨치고 있다. 바젤의 1년간의 역사를 모르더라도 과장된 가면과 흥겨운 음악은 충분히 즐겁고 재미있다. 하지만 그 내용을 들여다볼 수 있다면 더 짜릿하게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잃어버린 인형을 찾아서 - 돌 하우스 박물관(Puppenhause mugeum)

그 많던 인형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한때는 물고 빨고 절대 놓지 않았던 인형들. 이름을 지어주고 대화를 나누며 살아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인형들. 자란다는 것은 인형을 버리고 간다는 뜻일 것이다. 말 그대로 살아있는 사람들과 말 그대로의 대화를 나누며, 무언과 상상 속의 우정을 잊어간다는 뜻일 것이다.


바젤 인형박물관의 전시물인 인형들을 보면서, 그 인형을 갖고 놀았던 사람들이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 떠올리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사람보다 훨씬 짧은 수명을 지닌 것처럼 보이는 인형들이, 지금은 이미 죽은 사람들 대신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정기적으로 개최되는 바젤 가을 박람회(Basel Autumn Fair)에 전시된 미니어처 작품들 몇 개에서 시작된 바젤의 인형박물관은 유럽 내의 인형박물관 중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 4층 건물의 각 층마다 테디베어, 인형, 정교한 회전목마를 비롯한 장난감 등 폭넓게 수집된 전시물들은 각각의 주제 하에 독창적인 기준으로 전시되고 있다. 특수재질 유리로 된 전시장은 자외선과 열로부터 인형을 지킨다.


테디베어는 오랜 역사를 가졌다.

눈에 띄는 것은 1904년에 제작된 테디베어. 독일에서 마르가르테 슈타프가 첫 테디베어를 만들었던 해가 1903년이니, 그 역사를 짐작해볼 수 있다. 1850년에서 1950년 사이에 만들어진 미니어처 인형집들도 눈길을 끈다. 그러한 역사적 전시물 외에도, 현대작가들의 미니어처 작품들도 볼 수 있다.

가구는 어떻게 쓰이는가 - 비트라 디자인 박물관(Vitra Design Museum)

비트라 디자인 박물관 전경.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물건들을 수집하고 있지만, 확실히 ‘가구’는 수집하기 쉬운 품목은 아니다. 값도 값이려니와 보관할 장소도 꽤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가구의 아름다움에 홀린 ‘보통’ 사람이라면, 대리만족을 추구할 수밖에. 나 대신 가구를 모아준 이의 컬렉션을 감상할 수 있다면 그 또한 행복할 터이지만, 마음을 사로잡은 가구를 미니어처 형태로 구입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비트라 디자인 박물관은 스위스의 가구회사 비트라가 만든 곳이다. 1976년에 비트라의 CEO가 된 롤프 펠바움(Rolf Fehlbaum)은 1980년대 디자이너들의 가구를 수집했는데, 이를 토대로 현재 비트라 디자인 미술관의 관장인 알렉산더 폰 베게작(Alexander von Vegesack)과 함께 대중들에게 공개되는 디자인 박물관을 1989년에 오픈했다.

1,800점 정도의 수집품은 가구 디자인의 역사를 보여줄 만큼 핵심적인 제품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곳이 유명한 이유는 건물 덕분이기도 하다. 프랭크 게리(Frank o. gehry)가 디자인한 디자인미술관 건물도 눈길을 끌지만, 가이드를 동반한 2시간의 건축투어에서 볼 수 있는 건축물도 쟁쟁하다. 자하 하디드(Zaha Hadid)의 소방서, 타다오 안도(Tadao Ando)의 회의소, 니콜라스 그림쇼(Nicholas Grimshaw)와 알바로 시자(Alvaro Siza) 등 현재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현대건축가들의 작품이 스위스 접경 지역인 독일 바일암라인(Weil am Rhein)에 위치한 비트라 복합단지, 이 한 곳에 모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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